제30회

30

허달수는 윤치홍이 다녀가자마자 뒤축이 주저앉은 신발을 아무렇게나 꿰지르고 집을 나섰다. 그는 발이 어디에 놓이는지도 모르고 목에서 겨불내가 나게 야학방을 향해 걸어갔다. 부아가 얼마나 치밀어올랐던지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듯이 쿵당쿵당 뛰였다.

처음부터 달갑지 않게 보던 야학이요 곱지 않게 대하던 최진명이였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사위녀석의 전적을 생각해서 특별한 충돌도 없이 평탄하게 지내왔다. 그런데 오늘 심지에 불이 달리였다. 최진명이 마침내 자기 본색을 드러낸것이다.

달수는 야학방 문을 열자마자 목에 피대를 세우며 고아댔다.

《선생, 그래 농민의 자식들을 위해 삼치골에 왔다는 선생이 그렇게 처신해야겠소? 젊은 사람이 왜 벌써부터 그렇게 고약한 계책을 쓰우?》

그는 성이 독같이 나서 이마에 내천자를 파며 씩씩 거칠게 숨을 톺았다. 진명은 순하게 생긴 눈을 껌뻑이며 침착하게 상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렇게 노하셨습니까?》

검은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자기를 지켜보는 진명의 《뻔뻔스러운》태도는 달수의 혈관에서 흐르는 피를 길길이 뛰게 하였다.

《일은 제가 저질러놓고 나더러 영문을 대달라… 이 허달수를 뭘로 알고 감히 그런 숨박곡질을 하는거요?》

온 마을이 떠나갈듯 한 달수의 고함소리에 이집저집에서 문이 열리고 목을 빼든 얼굴들이 야학방쪽을 넘겨다보았다. 평온만이 흐르던 이 삼치골에서 근래에는 한번도 들어볼수 없었던 괴성에 골목길에서 자치기를 하던 조무래기들까지 야학방앞으로 달음박질해왔다. 송아지를 끌고 강뚝에서 돌아오던 김로인도 그들의 뒤를 따라 습보로 뛰여왔다.

《봉녀 애비, 무슨 일인가?》

김로인이 진명을 등으로 가리우며 달수와 마주섰다. 달수는 두주먹을 부르쥐고 후들후들 떨며 좀전보다 더 높은 악청으로 떠들었다.

《좌상령감, 제발 저 야학선생을 우리 마을에서 들어냅시다.》

그 소리에 야학방안에 있던 아이들이 진명의 량쪽 겨드랑이밑으로 고개를 빼들고 적의에 찬 눈길로 자기네 선생을 모욕하는 달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달수의 등뒤에 스무나무명 남짓하게 진을 친 마을어른들은 자기네 존장을 노엽힌 야학선생에게 눈총을 쏘고있었다. 계몽의 물결에 뛰여들어 첨벙거리는 삼치골의 나어린 선구자들과 그것을 배척하거나 관망하는 수구보수세력의 어마어마한 대치이다.

《야학선생을 들어내자는건 도대체 무슨 소린가? 그런 말을 할 땐 리유가 있을게 아닌가?》

김로인은 송아지고삐를 잡은채 다시금 물었다.

《너무 엄청나서 입에 올리기두 싫수다.》

로인은 허달수를 등지고 진명이쪽으로 돌아섰다.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봉녀 애비가 저렇게 분해하나?》

《나도 모르겠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을 안해주고 책망만 하시니 무슨 쪼간인지 알겠습니까.》

최진명이도 어지간히 볼이 부었다. 김로인은 다시 달수쪽으로 돌아섰다. 로인의 하얀 장미가 사납게 쭝깃거리였다.

《이 사람, 그렇게 배배 새끼만 꼬지 말고 무슨 영문인지 쭉 빠개놓게나. 말을 해야 시비를 가를게 아닌가.》

달수는 마치 김로인때문에 문제의 말썽이 생기기라도 한듯이 그와 마주서서 손짓까지 해가며 노성을 터뜨렸다.

《좌상형님, 생각 좀 해보우다. 저 야학선생이라는 사람이 글쎄 우리 집 소작지에다 야학방을 짓게 해달라고 했다니 이게 어디 밥먹는 사람이 할짓이우? 지금까지 야학에서 하는것들을 보면서 어떤건 제법이라구 생각했댔는데 그게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서 이런짓을 하자는것이였단 말이우다. 그게 더 괘씸하지 않수.》

달수는 김로인이 자기의 분노에 편승해나설것을 바라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김로인까지 나한테 합세하면 진명은 삼치골에서 더 배겨내지 못한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이번 기회에 저 싱거운 젊은이를 사정없이 들어내쳐야 한다. 우리 마을을 소란스럽게 하는 장본인이 저 진명이다. 진명이를 쫓아버리지 않다가는 삼치골사람들이 장차 무슨 화를 당하게 될지 모른다.

김로인은 몸을 반쯤 돌려 어깨너머로 진명에게 물었다.

《선생, 그게 사실이우?》

진명은 입가에 쓴웃음을 짓고 맹랑한 눈길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내가 어떻게 그런 너절한짓을 할수 있겠습니까. 야학방을 확장하는 일이 중요한건 사실이지만 나는 농민들의 리익을 침범하면서까지 그걸 성사시킬 생각이 없습니다. 윤구장이 나와 마을사람들사이에 쐐기를 박느라고 그런 말을 한것 같은데 달수아버님은 구장한테 속았습니다.》

달수는 그 말을 듣자 진명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마오. 한 마을을 책임지고있는 구장이 어떻게 그런 허튼 소리를 할수 있단 말이우?》

그러자 아까부터 곱단이 어머니와 함께 귀속말을 나누던 부실이 달수의 편역을 들어 말참견을 하였다.

《달수아주버니 말이 맞아요. 윤구장어른이 다른 사람은 다 속여두 달수아주버니만은 속이지 못하지요.》

《어머니, 그런 떨떨한 소린 하지두 말라요. 윤두소때문에 속아넘어가고도 그런 한심한 소리를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진명의 등뒤에서 차돌이가 총알처럼 내쏘는 말이였다. 아들한테서 난데없는 벼락을 맞은 부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다가 새된 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어른들 일에 무슨 참견질이야!》

《참견을 안하게 됐나 보라요. 어머니도 봉녀 아버지도 다 눈뜬 소경들이예요. 윤구장한테 그만큼 속았으면 됐지 그게 뭐예요!》

《아가릴 닥쳐라!》

부실은 이를 사려물고 아들을 쏘아보았다. 그때 진명이가 김로인을 옆으로 약간 밀어제끼고 달수앞으로 다가갔다.

《달수아버님, 오늘은 제 한마디 좀 합시다. 서두에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저는 여러분들과 꼭같은 평범한 농사군의 자식입니다. 출신으로 보아도 저같은 사람은 농민들에게 해되는 일을 할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명심해주기 바랍니다.》

진명은 잠시 말을 끊고나서 야학방앞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가 말하는 사이에도 사람들은 한명, 두명씩 자꾸 모여들었다. 삼치골주민들중에서 아마 절반은 모였을것이다. 진명은 말을 계속하였다.

《야학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과 그 부형들을 위한 교육입니다. 삼치골에는 중학은 물론 보통학교에 다니는 학생조차 한명도 없습니다. 저는 삼치골로 오면 농민들과 힘을 합쳐 야학을 본때있게 운영하려고 결심하였더랬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있는 힘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신식공부를 하면 감옥귀신이 되든가 신세를 망친다고 하면서 야학을 무작정 배척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야학을 〈치안유지〉의 화근으로 보면서 온갖 방해를 다 하는 왜놈들의 장단에 춤을 추는 옳지 못한 처사입니다.》

진명은 여기서 일단 말을 끊고 달수와 부실을 한참동안이나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눈길이 얼마나 랭철하고 집요했던지 달수는 고개를 외로 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진명의 눈에서는 불같은것이 황황 일고있었다. 달수는 그 불이 자기의 넋은 물론 육체까지도 깡그리 태워버리는것 같은 환각에 빠져 한참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런 무아의 경지에서도 그는 자기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하고있었다. 자기는 그 누구보다도 왜놈들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는것과 그래서 왜놈들의 장단에 춤을 출수 없는 몸이라는것을 력설하고싶었다. 그의 혀끝에서는 그것을 론증할수 있는 수백마디의 말마디들이 맹렬하게 감겨돌아갔다.

《그러니까 내가 왜놈들의 장단에 춤을 춘다는거구만.》

달수는 그 수백마디의 말중에서 이 한마디만 가까스로 하였다. 나머지말들은 다 바람에 날려가는 지푸래기나 먼지처럼 종적도 없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그 한마디마저 입밖으로 간신히 새여나왔다. 그래도 진명은 그 말을 알아들은것 같았다. 그는 입가에 느슨한 웃음을 짓고 달수를 마주보다가 격한 음성으로 열변을 토하였다.

《물론 달수아버님이 의식적으로 왜놈들의 장단에 춤을 출수야 없지요. 그런데 결과가 그렇게 되였다는겁니다. 야학을 배척하는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다 왜놈들을 도와주는것으로 됩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왜놈들이 우리가 개명하는것을 바라지 않기때문입니다. 놈들은 지금 야학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있습니다. 나까무라소장은 윤구장을 만날 때마다 야학을 잘 감시하라는 당부를 한다고 합니다.》

달수는 이 대목에서 손을 들어 진명의 말을 제지시키였다.

《그럼 야학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다는 일본놈들이 왜 그걸 승인은 하나?》

진명은 그런 질문을 받자 자기의 등뒤에서 어깨성을 쌓고 이 불쾌한 접전의 증견자가 되여 지켜보고있는 한무리의 야학생들속에서 차돌이의 팔을 앞으로 끌어당기였다.

《차돌아, 네가 그 문제에 대해 좀 말해보아라.》

차돌은 버릇처럼 손등으로 코마루를 쓱 문댄 다음 자기 어머니와 달수의 눈치를 흘끔 살펴보고나서 말문을 열었다.

《왜놈들이 야학을 하라고 승인해주는건 조선사람들이 고와서도 아니고 우리 민족이 개명하는것을 도와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건 세상사람들앞에서 자기네 일본이 조선민족의 진흥과 발전에 리로운 정치를 하고있는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조선에 와서 못된짓을 하도 많이 하다나니 그걸 가리우자는겁니다. 도와주는 흉내를 내는거지요.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하나 구실을 붙여 없애버리자구 도끼눈을 하구 벼르고있단 말입니다. 어머니, 알겠나요?》

그는 질문을 한 사람이 달수가 아니라 자기 어머니이기나 한것처럼 부실에게 물었다. 그러자 부실은 발끈했다.

《이녀석아, 그걸 나한테 왜 묻니?》

《정신을 차리라고 묻는거예요. 그러니 다시는 야학이 하는 일에 방해를 놓지 말란 말이예요. 어머니도 친일파란 말이야 듣고싶지 않겠지요?》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듣겠니. 나는 일본이란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소나 말이 되는 한이 있어도 친일파야 되지 말아야지.》

부실이가 말을 끝내자마자 야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야학방마당에 진을 치고있던 어른들은 모두 차돌이가 똑똑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진명은 그들앞으로 한걸음 다가서서 또다시 일장연설을 하였다.

《보십시오. 야학생들까지 다 아는 문제를 삼치골의 어른들은 모르고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자기네 마을 구장이 하는 말을 듣고도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사람이 배우지 못하면 세상리치를 모르게 되고 세상리치를 모르면 자기가 왜 한평생 가난에 울어야 하고 5천년력사를 가진 제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도 모르고 팔자타령만 하게 됩니다.》

진명은 잠시 말을 끊고 좀 지친듯 한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의 검둥근 눈에서는 희열이 끓고있었다. 달수는 그가 한 말이 자기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것을 제꺽 감촉하였다. 그는 진명이한테서도 차돌이한테서도 따귀를 얻어맞은듯 한 심정이였다.

진명은 어조를 낮추어 말을 계속하였다.

《여러분들은 우리 나라가 왜 망하고 우리가 왜 망국노가 됐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 요인가운데서 중요한 한가지가 우리 인민이 개명하지 못했던데 있다고 봅니다. 개명하지 못한 백성은 약소민족이 되고 개명하지 못한 나라는 후진국이 되여 남들의 침략과 지배를 받게 됩니다. 지금의 삼치골사람들처럼 배움에 무관심하고 무식을 응당한것으로 여긴다면 우리 나라는 백년이 가도 독립을 쟁취할수 없습니다. 이러한 력사의 교훈으로부터 우리 새 세대 청년들은 로동자, 농민들과 그 아들딸들을 계몽시키는 사업에 뛰여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야학을 잘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달수아버님이 그 앞장에 반드시 서주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진명은 말을 마치자 야학방으로 들어갔다. 야학생들이 량옆에서 그의 팔을 끼고 문가에서 사라졌다.

야학방을 진명의 《고약한 반농행위》를 발가놓는 성토장으로 만들고 삼치골에서 야학이라는 골치거리를 없애버리려던 달수의 의도는 물거품이 되였다. 오히려 그는 혹 떼러 갔다 혹을 붙이고 돌아가는 망신스러운 꼴을 면할수 없게 되였다.

왜 사태가 이 지경으로 되였는가.

달수는 쿡쿡 쑤시는 머리를 싸쥐고 강뚝쪽으로 맥없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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