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견결한 통일의지를 지니시고

또다시 만나주신 해녀

 

주체56(1967)년 8월초 어느날이였다.

함경남도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리 멀지 않은 수산사업소에 지난날 제주도에서 해녀로 일하던 나이지숙한 녀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을 보내시여 그를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무슨 사연인지도 알지 못한채 차에 올라 어느 한 곳에 도착한 녀인은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일가?)

그때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녀인의 앞으로 마주오신 장군님께서는 고향이 제주도라기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수고로이 오게 하였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녀인의 보폭에 자신의 걸음을 맞추시며 년세는 어떻게 되였는가, 고향은 제주도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나이는 쉰살이 넘었고 고향은 남제주 표선리라는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어델 가나 금수강산이니 필경 제주도도 경치가 좋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어찌나 친절하게 대해주시는지 녀인은 어려움도 잊고 제주도경치에 대하여 한참동안이나 자랑을 늘어놓았다.

녀인의 두서없는 자랑을 흥미있게 듣고나신 그이께서는 고향에 갈 그날은 꼭 온다고 하시면서 고향에 가까운 혈육이라도 있는가고 또다시 물으시였다.

두고 온 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수십년세월이나 서로 갈라져 소식조차 모르고있으니 얼마나 보고싶겠는가고 하시며 오늘은 우리와 함께 보내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한 녀성일군을 녀인에게 붙여주시며 그와 함께 휴양소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도록 각별한 사랑을 돌려주시고 선물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때로부터 꼭 한해가 지난 여름 어느날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평범한 제주도녀인을 잊지 않으시고 바다에 함께 나가자고 또다시 불러주시였다.

배에 올라 수산물생산을 늘이기 위한 여러가지 대책을 세워주신 장군님께서는 갑판우에 서있는 녀인의 곁으로 다가가시며 고향에 두고 온 딸생각을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렇다는 녀인의 솔직한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이 배길이 제주도와 잇닿아있으니 고향생각이 왜 나지 않겠는가고 하시며 오래도록 남쪽바다를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 배를 타고 내처 제주도까지 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 물새들도 자유롭게 북과 남을 오고가는데 한피줄을 나눈 부모처자들이 서로 갈라져 생사여부조차 모르고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녀인은 죄송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때문에 너무 속을 쓰지 마십시오.》

장군님께서는 혈육들이 서로 갈라져 이제는 얼굴도 모르게 된 이 비통한 일이 어찌 어머니네 한가정만의 비극이겠는가, 온 민족이 당하는 고통이다, 그래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문제를 두고 제일 심려하고계신다고 하시였다.

잠시 사이를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당은 어떤 일이 있어도 분계선장벽을 허물고 조국을 통일할것입니다. 조국은 반드시 통일됩니다.

어머니, 그날까지 늙지 말고 오래 사셔야 합니다.》

녀인은 몇번이나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통일된 강산에서 사랑하는 딸을 만날 감격의 그날을 그려보았다.

이날 저녁이였다.

숙소앞 백사장을 거니시던 장군님께서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두고 못내 가슴아프시여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국토의 량단으로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국통일은 더이상 미룰수 없는 민족지상의 과제입니다.

오늘 제주도해녀를 다시 만나보니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하여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은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야말겠다는 철석의 의지를 더욱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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