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부

 

탈 출

 

14

 

사냥군로인과 헤여진 후 주몽과 협부는 줄곧 로인이 가리켜준 산줄기를 따라 남으로 내려갔다.

그 며칠간은 계속 비가 내렸다.

주몽과 협부는 비에 젖어 후줄근한채 길을 재촉했다. 그러느라니 성한데라군 찾아볼수 없이 주접이 들기 시작하였다.

산속에서 걸어가는 이 며칠간 옷 한번 제대로 말리지 못하고 끈끈하게 지내는데다가 밤이면 모기에 뜯기워서 사람이며 말이 모두 피접이 들었다. 지금 협부는 저절로 침울해졌다. 이제는 주몽의 뒤를 따라 거의 맹목적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차츰 날씨는 개이였다. 걷는 사이에 입은 옷이 저절로 꾸둑꾸둑해간다. 이제껏 줄달음쳐오던 산줄기가 마침내 끝나고 다시 그앞에 보다 험하고 높은 산줄기가 막아서고있었다.

로인이 일러주던대로 비로소 부리산에 닿은것 같았다.

《협부, 저기가 부리산이 아닌가?》 하고 주몽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협부는 무표정하게 앞에 놓인 산줄기를 바라보고있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산줄기가 점차 낮아지고 평평한 들판이 띠오리처럼 다음산줄기와의 사이를 감돌아놓여있었다.

주몽은 협부가 대답이 없어 다시 돌아섰다. 협부가 어지간히 지친 모양이다. 하긴 주몽자신도 지치기는 매일반이였다. 이런 상태에서 주몽보다 협부의 고충은 더한것이였다. 주몽은 그래도 이런 생활을 어지간히 체험하였지만 협부는 그렇지 못했다.

외아들로 홀어머니 손길에서 고이고이 자란 협부였다.

《협부, 오늘은 저기 앞에 보이는 거리에 내려가보세.》 하고 주몽이 얼리다싶이 말하였으나 협부는 여전히 침울하였다.

《오늘은 이상한데?… 왜 말이 없나, 협부!》 하고 재촉해서야 협부는 미간을 찌프리며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이거야 어디, 사내가 한번 나서 큰소리치고 칼 휘두르다 죽으면 그만일텐데… 밤낮 쫓기는 들쥐모양 살아야 하니 무얼 해보겠소이까?》

주몽은 협부의 짜증을 잠자코 들었다.

《협부, 우리 좀 쉬여갈가?》 하고 주몽이 물었으나 협부는 묵묵부답이다.

주몽은 협부의 무뚝뚝한 태도에서 지치고 짜증난 그의 심정을 감촉하며 산발을 둘러보았다.

협부가 짜증내는것을 결코 탓할수는 없다.

천하를 호령할 큰뜻을 품고 집을 떠났지만 객지에서 고생하게 되니 자연히 집생각도 나고 더우기 오늘처럼 비맞으니 따뜻한 아래목생각과 어머니가 차려주던 밥상을 생각하며 울적해질수 있다.

그렇다면 모르는체 해둘가? 아니, 그럴수는 없다. 나는 협부를 충분히 리해하지만 협부는 이 고비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협부를 어떻게 하면 돌려세울것인가?

《협부, 내 옛적 일을 하나 이야기하겠네.

하늘님 뜻을 받들고 환웅께서 지상에 내려와 인간과 세상을 교화하실적에 곰과 범이 같은 굴에서 살고있었네.》

주몽은 협부의 기색을 살폈다.

누구나 다 아는 단군선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협부도 물론 그것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주몽은 구태여 그 이야기를 꺼냈다. 협부의 태도를 보자고 하는것이다.

협부는 듣는지 마는지 여전히 묵묵했다.

주몽은 협부를 못 본체 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범과 곰이 하루는 환웅께 저희들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지. 환웅께서는 쑥과 마늘을 주시면서 이걸 먹고 백날을 해빛보지 않으면 사람이 되리라 하셨다는거야. 범과 곰은 그걸 먹고 드디여 굴속에서 사람이 되는 도를 닦기 시작하였네.

그런데 범은 참을성이 없어서 환웅께서 정하신 날을 채우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는 바람에 그만 인간이 못되고 곰만이 사람이 되였지…》

주몽은 다시 협부를 곁눈질로 살폈다.

협부는 이마살을 찌프리며 입술을 깨무는것이였다.

그래, 협부는 자기 잘못을 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협부는 짜증을 낸다. 이건 응석인가? 아니면?…

그대로 지나쳐버릴가? 협부는 지금 힘든 고비를 당하고있다. 그러나 지금의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나면 협부가 반드시 오늘을 두고 자책할거야.

하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법이다.

사람이 실수하게 되는것은 꼭 몰라서 그런것만이 아니다. 리치도 알고 할바도 뻔한데 사람은 꼭 그러지 말아야 할 때 가서 실수하게 될수도 있는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투정질하는 협부, 그것이 어느때인가는 그에게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가져올수도 있는것이다. 협부의 저런 태도는 혹 리해해주는이가 있으면 몰라도 대체로 여러 사람들에게는 랭대를 받기가 쉽다 하고 주몽은 생각하였다.

주몽은 될수록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협부에게 말했다.

《협부, 우리가 이전에 한 맹세를 잊었나? 사나이의 한생이 육신이 당하는 고통에만 좌우된다면 그걸 어찌 피할수 있겠나?》

협부는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주몽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큰뜻과 포부가 없이야, 또 있다고 한들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서야 사나이의 한생이라고 말할수 없지. 그건 한낱 필부의 생에 불과한거야!》

협부는 우뚝 멈추어서서 먼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푸- 내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나서 말했다.

《됐소이다, 형님. 투덜거린건 비맞은 놈의 역증이라 생각하시오이다. 제가 원래 속이 좁은 놈이여서 넓은 생각을 못했소이다. 용서하시오이다.》

주몽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협부! 자네는 많은 면에서 우점이 있어. 그런데 그러지 말아야 할 때 가서 이따금 분별력을 잃군 하거든. 그러나 뉘우친다면 좋아…

주몽은 비로소 큰숨을 내쉬였다.

《그렇다면 좋네. 자, 한숨 돌리고 거리에 내려갈 차비를 하자구.》

주몽과 협부는 어슬녘이 가까와서 노루 한마리를 잡아메고 거리로 내려왔다.

부리산으로 통하는 길을 끼고있는 이 거리는 그 아근 백리어방에 유일한 교통로인것으로 하여 오가는 길손, 머무르는 길손들로 제법 흥성거리는 곳이였다.

부리산을 넘어온 사람은 넘어온김에 여기서 쉬여가고, 이제 부리산을 넘으려는 사람은 또 반드시 여기서 한숨 쉬고 넘어가기마련이여서 거리가 자연 흥성일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 마을은 비록 크지 않아도 부여국이 남쪽나라들과 통하는 유일한 교통지이기도 해서 린접한 나라의 물산과 희귀품이 여기를 머물러서 나돌았다. 이것은 자연히 장사군들을 동반하는 법이여서 마치 두 나라의 교역시장같이 되여버린것이였다. 저자거리는 매일이다싶이 사람들로 붐비였다.

한창때에는 싸구려 소리로 벌둥지를 련상케 하군 한다.

그때면 눈뿌리 시게 펼쳐진 별의별 잡동사니, 진귀품들로 하여 초벌 얼혼이 나가는데다가 또한 별의별 해괴한 소리들을 제가끔 질러대며 두벌 얼혼을 쑥- 뽑아놓군 하였다.

그러나 해가 저물면 사람들은 한바탕 복마전에서 제 갈길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거리 유축진 곳에 주막집을 표시하는 천쪼각이 장대에 끼여 흔들거렸다.

주몽은 그 주막이 한결 조용한 곳이라고 여겨져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따르던 협부가 주몽을 멈춰세웠다.

《주몽형, 번잡스러운 주막에 들어가서 무엇하시오이까? 어느 조용한 집에 들어가 저녁 한끼 먹으면 되겠는데…》

주몽은 협부의 손등을 툭-툭 치며 말하였다.

《형세를 알려면 이런 곳이 맞춤해. 그리고 오늘은 자네가 세상에 난 날인데 술 한모금 들이키는것도 나쁘지 않을거야. 너무 조심스러워 하지 말고 들어가보자구.》

협부는 눈이 휘둥그래서 주몽의 뒤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흔연하게 자기의 생일을 운운하는 바람에 협부는 얼떨떨해졌다.

사실 아까 산에서 협부의 기분을 잡치게 한것은 산속에서 여러날 고생해서만이 아니였다. 괴로울 때 즐겁던 날 떠오른다고 협부에게는 문득 오늘이 자기의 생일이라는것에 생각이 닿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차려주던 자기의 생일상과 안온하던 집안의 풍경이 되살아나 저도 모르게 삐뚤어진 심사를 부렸던것이다.

그러고보면 주몽형은 벌써 그때 오늘이 자기의 생일날인줄 다 알고있었단 말인가? 하긴 오이나 협부가 주몽에게 반한것은 그의 높은 뜻과 바로 이런 세심한 인정미 그리고 따뜻한 육친의 정때문이기도 하였다.

《아니, 협부! 왜 그러고 섰나? 어서 오라구!》 저쯤 가던 주몽이 재촉해서야 협부는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주몽은 주막집에 들어서는 차례로 주인을 불렀다.

키가 자그마하고 귀가 발쭉한 사내가 머리에 수건을 동인채로 나왔다.

《주인님, 우린 길가던 나그네들인데 한그릇 얻어먹으려고 들렸소이다.》 주몽이 곰살궂게 주인과 인사를 나누며 말하였다.

주인은 한동안 주몽과 협부의 모양을 아래우로 훑어보며 말없이 서있었다.

《그렇다고 그저 먹여달라는 구걸객은 아니오이다. 여기 노루한마리를 가져왔으니 그걸로 사례를 하겠소이다. 엥이- 그놈노루 한마리 잡느라고 온통 신역을 치렀는걸…》 하고 수선을 떨며 주몽이 협부에게 손짓을 해서 노루를 주인앞에 멨다꽂게 했다. 그들의 행색을 두루 살피던 주인은 《혹시 손님들은 저… 남쪽으로 피난가는 사람들이 아니오이까?》 하고 묻는다.

《피난이요? 허, 거 주인이 참 별난 말씀 다하시오이다. 우린 그저 산수놀이하면서 고생맛보는 떠돌이들이오이다.》 하고 협부가 아닌보살을 부렸다.

그러나 주인은 이상스럽게도 두귀바퀴를 제마끔 움찔움찔 놀리며 실웃음을 지었다.

《저의 눈은 못 속이오이다. 하지만 마음은 놓으시오이다. 저의 주막에 오시길 잘했소이다. 소인이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람은 볼줄 알지요. 손님들이 좋은 사람들이라는것을 알아봤습니다. 옛날부터 뜻이 통하는 사람들은 서로 알아본다고 하오이다.》 주막집주인의 두귀가 또다시 제마끔 움찔움찔거렸다.

《허허, 주인이 사람들을 많이 대상하다나니 모르는게 없소구려. 좋수다. 어쨌든 좀 페를 끼치겠소이다.》 하고 주몽이 말하자 주인은 신바람이 난듯 머리수건을 벗어 휘- 퉁기더니 주몽과 협부를 안내하였다.

《이제는 좀 조용해졌으니 참 다행이오이다. 자! 어서! 이거 뭐… 노루까지 잡아가지고 오시다니요. 참…》 주인은 심부름군을 불러 노루를 주방칸으로 가져가게 하고는 자기가 손수 음식을 내오기 시작하였다.

한참 부산스럽게 음식들을 날라다가 상우에 차리고난 주인은 주몽과 협부에게 술까지 손수 부어주는것이였다.

《이거 혹시 주인댁에 화거리를 만드는지 모르겠소이다?》 하고 주몽이 넌지시 묻자 주인은 황황히 두손을 내저었다. 그러더니 《내가 실례했소이다. 주인이 먼저 술을 드는 법인데…》하며 자기가 먼저 술잔을 들이키는것이였다.

《의심하지 마시오이다.》 하고 주인은 술잔을 탁자우에 놓으며 말하였다.

참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이렇게도 갑삭갑삭하기 좋아한다고야… 과연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듯 흥취가 나게 만들었을가? 노루 한마리때문에? 아니면 오늘 하루종일 주막이 흥성거린 때문에? 혹시 관가의 고발쟁이가 아닌가?

주몽은 짐짓 주인을 공경해주면서 그 주인에 대해서 가늠해보느라고 여러모로 생각을 굴렸다. 주막집주인이 제 먼저 술마셔보이는것도, 손님들과 동석한다는것도 드문 일이지만 그건 주막이 닫게쯤 되고 사람래왕도 그쳤으니 그럴만 한 일이라고 돌릴셈치자! 꾸민티가 없는가?

주인을 찬찬히 건너다보던 주몽은 그의 얼굴표정에서 나타나는 진실한 빛을 가려보았다. 무어라고 설명할수 없는 그런 빛을, 오로지 신선들이나 알고있는 그런 빛을 띤 사람들은 악한이 되거나 비렬한이 될수 없는 법이다. 크고 맑은 눈은 쉬임없이 달리고있었고 발쭉한 두귀는 이따금 표정과는 관계없이 곧잘 따로 놀았다.

《의심이야 뭘 하겠습니까. 우린 그런걸 두려워하지 않소이다. 오직 주인님의 환대에 황송할뿐이오이다.》 하고 말하고난 주몽은 협부와 함께 음식과 술을 들었다.

그제서야 주인도 주몽과 협부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손벽을 마주쳤다. 나를 의심하지 않나? 하는 그런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주인님도 같이하시지 않겠소이까?》 하고 협부가 물었다.

주인은 얼결에 허리를 굽신거리더니 손가락을 비틀어서 딱- 소리를 냈다.

《에라! 오늘은 이래저래 대길이다. 내 손님들 같으신분들 하고야 제법 마주앉길 좋아하지요.》

술이 서너회 돌아서자 주인은 주몽에게 귀속말 했다.

《손님들은 저 나라님께 죄를 짓고 피난하시는분들이 옳지요?》

주몽은 협부의 긴장해진 눈초리를 감촉하며 대답하였다.

《뭘 숨기겠소이까. 우리의 운수가 사나와서 그런 지경에 닿았소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시오?》

주인의 얼굴은 대번에 발기우리해지며 만족한 웃음이 떠돌았다.

《손님들이 나를 믿어주시는구려… 알아보신다니까. 에, 호걸들이야 물론 나를 알아보지요. 내가 체격은 이렇게 왜소해도 속통은 그렇지 않소이다. 그래서 호걸들이 알아주며는 내 대길하는 날이고 또 내 인생이라는것도 그속에서 그네뛰는 판이지요. 하, 하… 사실 며칠전부터 여기서는 손님들을 붙잡지 못해서 막 야단이우다.》 하고 말하던 주인은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주몽의 귀에다 술내나는 입김을 불어넣었다.

《저 부리산에 숱한 군사들이 손님네를 잡으려고 지키고 앉았소이다. 그러니 조심하시오이다.》

주인은 귀속말을 마치자 깔깔 웃으며 《호걸은 호걸을 알아본다니까.》 하고 주몽의 어깨를 툭-툭 치였다.

《그 군사들을 몰고 온 놈팽이들속에 곰보딱지 녀석 하나가 있습네다. 그놈이 들이닥치자 바람에 나를 하인배 몰아대듯 하지 않겠소? 내가 원래 체격이 초라하니 아주 속물로 보는 모양이지, 허 그놈.》

주인의 횡설수설을 들으며 협부는 수저든 손을 멈추었다.

《곰보딱지? 주몽형, 곰보딱지라면 언제인가 로파와 젊은 색시를 만났을 때 우리곁을 지나쳐간 그놈이 아니오이까?》

주몽은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제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내고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주인님은 의로운분 같은데 부리산을 넘을 방책이 없겠소이까?》

주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밤토끼가 아니고서야 거길 어떻게 넘겠소이까? 손님들은 보아하니 귀하신 얼굴들인데 사서 욕보지 마시고 달리 조처하시오이다.》

《다른 조처란 어떤것이오이까?》 하고 협부가 다우쳐 물었다.

《되돌아서는거지요.》 하고 주인은 벌거우리해진 눈시울너머로 협부를 보며 잘라말했다.

그러던 주인이 별안간 무엇에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며 《아이구! 또 오셨소이까?》 하고 부산스럽게 문쪽으로 향하여 일어섰다.

주몽과 협부는 얼른 등을 돌렸다. 주인은 귀속말로 재빨리 중얼거렸다.

《조심하시오이다. 절대로 저를 보지 마시고 머리를 돌리지 마시오이다.》

주몽은 술잔을 만지작이며 새로 들어온자의 동태를 감촉하려고 애썼다.

발걸음소리가 쿵-쿵- 방안을 울리는것으로 보아 보통체격의 작자가 아닌것 같다. 뒤눈길로 얼핏 띄여보니 새로 들어온 사람은 커다란 삿갓같은것을 푹- 내려썼는데 어깨에는 철퇴를 메고있었다. 새로 들어온자는 그것을 마루에 쿵- 하니 내려놓고 앉았다.

주인은 주방칸에 음식을 들여보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그자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듯 부산을 피웠다.

《아이구! 장수님이 또 오셨구려. 뭘 꾸물거리느냐? 어서, 어서 냉큼냉큼 들여오지 못하고…》

그사이 협부가 음식을 집는척 하며 주몽의 가까이에 다가가 속삭였다.

《주몽형, 낌새가 좋지 않으니 슬그머니 내뺍시다.》

주몽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협부가 먼저 일어서며 손님쪽에 잔등을 돌리고 변소에라도 가는척 바지를 추스리며 문을 나섰다.

뒤에서 《아, 손님, 아니 장수님! 미안하오이다. 잠간만 앉아계십쇼. 내가 청산을…》 하는 소리와 함께 주인이 따라나왔다.

《왜 벌써 일어나시오이까?》 하고 주인이 다가오며 물었다.

《주인님, 정말 신세를 많이 졌소이다.》 하고 주몽이 나직이 말하며 머리를 숙였다.

주인은 대답없이 마당까지 따라나오며 물었다.

《왜 저를 의심하시오이까?》

《아, 그런건 아니고 딴 손님이…》

《하긴 저 황소같은 손님은 낮에도 왔댔습지요. 저도 처음보는데 글쎄 대뜸 손님들의 모습 같은이들이 여기 머물러간적이 없느냐? 하질 않겠소이까.》

《그래서요?》

《보지 못했다고 했습죠. 그런데 아무말없이 나가더니 저렇게 또 왔소구려. 그런데 아까 낮에 거리에서 피뜩 보니 군복을 입은 장수와 쑥덕거리는게 아니겠소이까? 혹시 렴탐군?… 황소괴물마귀같으니…》

주인은 뒤끝을 흐렸다.

주몽은 말없이 주인의 말을 듣고나서 사례했다.

《초면에 주인같은 어진분 만나서 정말 감사하오이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주인님의 신세를 갚겠소이다.》

《안하실 말씀. 호걸은 호걸을 알아보지요. 참 저 부리산으로 절대로 가지 마시오이다. 그쪽에는 군사들이 우글우글 하오이다.》

주몽과 협부는 말을 찾아타고 거리를 빠져나왔다.

몇집 건너 달아나는데 뒤에서 방금 헤여진 주막집주인의 청높은 소리가 들렸다.

《아니, 손님. 장수님, 음식을 청해놓고 그저 가는 법이 어디 있소이까?》

뒤를 돌아보던 협부가 주몽에게 말했다.

《주몽형, 아까 그 사람이 주막집을 나왔소이다.》

주몽이 돌아보니 희미한 속에 삿갓쓴 사람이 이쪽을 바라고 나온듯 한데 그앞에 키작은 주인이 시끄럽게 막아나서며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저자가 우릴 알아챈게 아니오이까?》

《협부, 두말말고 어서 거리를 빠지세.》 하고 주몽이 부루나에 박차를 가했다.

어두운 골목길에 말발굽소리가 울렸다.

개들이 컹컹 짖었다.

주몽과 협부는 이마에 땀이 질벅하게 나오도록 달려서야 겨우 뒤따르던 괴짜의 추적을 떼버릴수 있었다.

거리의 후미진 곳으로 말을 몰아가던 주몽이 협부보고 물었다.

《요즈음 무슨 달이 뜨던가?》

협부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하현달이오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주몽은 우중충하게 솟아있는 부리산을 바라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주몽형, 어쨌든 오늘 밤은 아무 곳에서나 보내고 래일 낮에 마련을 보는것이 어떻겠소이까? 새벽은 밤보다 똑똑하다질 않소이까?》 협부가 물었다.

주몽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주몽이 협부에게 물었다.

《협부, 주막집주인이 하던 말 생각나나?》

《무슨 말이오이까?》

《밤토끼만이 부리산을 넘는다고 하던 말!》

《그런데 그게 어쨌소이까?》

《밤되여 군사들의 탕개가 풀어져있을 때 우리가 저 부리산을 넘을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하는 말일세…》

《그러나 만일 복병이라도 있으면 어찌겠소이까?》

《마찬가지야. 어차피 저 산을 넘어야겠는데 그럴바치고는 이밤도와 냅다 쳐넘기는것이 어떤가 하는것일세. 래일 아침이면 우리가 이 어방에 왔다는것이 어쨌든 소문날테니까?》

《듣고보면 그럴듯 하오이다. 그러나 혹시…》

《명백히 뒤로 물러설수 없으니 어차피 앞으로 나갈수밖에 없을것 같네.》

주몽이 자기의 속심을 터놓았다.

《기어코 오늘 밤 산을 넘자는것이오이까?》

《응. 협부, 오늘 저녁은 푸짐히 요기를 했으니 그 바람으로 넘어보세. 혹 알겠나? 자네나 나나 운수가 틔였다면 단군선인께서 생일날 자네를 욕되게 하지 않겠지…》

협부는 캄캄한 속에서 흰 이를 드러내며 벙긋 웃었다.

《까짓거. 형님이 그렇게 결심하였다면 한번 해봅시다.》

일단 결심을 정한 그들은 말에 자갈을 든든히 물리고 발통을 헝겊으로 싸매서 소리가 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활과 전통도 다시 손질하고 칼을 옆구리에 찼다. 준비는 끝났다.

《협부, 례나루선생님께서는 어디서 기다리신다고 했던가?》

《부리산너머 엄리수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시였소이다.》

《마리와 오이는 어찌 됐을가?》

《선생님께서 마리와 오이도 같이 오실줄 아오이다. 스승께서는 엄리수에서 형을 배웅하시겠다고 하셨소이다.》

《그래, 그럼 떠나볼가.》

사방은 밤새들의 울음소리와 풀벌레소리로 찼다.

주몽과 협부는 조심히 부리산으로 향하였다. 이제는 거리가 저멀리 물러갔다.

한껏 긴장해져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도사리며 걸었다. 주몽과 협부가 산어귀에 들어섰을 때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다.

푸르스름한 하늘에 별이 총총한데 하현달이 구름속에서 숨박곡질하고있었다.

부리산을 넘는 길은 산턱을 깎아낸 길이였다. 길아래는 깊이를 알수 없는 아찔한 낭떠러지여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친다.

어느덧 산중턱에 이르렀다.

문득 주몽과 협부가 지나온 산아래쪽에서 불빛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하나 둘 보이더니 삽시에 수십개나 불어났다.

주몽과 협부는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불빛은 점점 산우로 올라오고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주몽이 나직이 물었다.

《혹시 밤중에 산 넘는 사람들이 범이 무서워서 불켜든것이 아니오이까?》 하고 협부가 자기 생각을 비쳤다.

《산 넘는 밤손님들이다? 그렇다치기로서니 너무 무리가 큰데?…》

불길한 예감이 주몽의 뇌리를 스쳤다.

《협부, 나를 따르라.》 하고 주몽은 말고삐를 채며 우로 치닫기 시작하였다.

이제 거의 산우에 올라섰을가 할 때였다. 여직껏 청승맞은 밤새울음소리만 들리던 산우에서 별안간 홰불이 솟았다. 홰불은 점점 좌우로 퍼져갔다.

《매복이로구나.》 협부가 엉겁결에 소리쳤다.

주몽은 웃쪽의 동태를 다시 살펴보았다. 홰불들만이 좌우로 하나 둘 퍼져갈뿐 아직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알수 없었다.

《젠장, 일두 더럽게 됐군.》 협부가 신음소리 비슷하게 냈다.

주몽이 산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무리는 열대여섯될듯. 어쩐다, 우로, 아래로,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설마 이런 진퇴량난에 빠질줄 누가 알았으랴, 하늘도 무심하구나!

아니다, 허거프게 빌 때가 아니다.

그렇다!

아래로!

생각보다 먼저 주몽은 말머리를 돌렸다.

《협부, 말을 돌리라구. 밑으로 짓쳐내려가자. 그쪽이 약하다.》

《주몽형, 술책이 아니오이까? 저 산밑에 있는것이 더 큰 위험같소이다. 상대가 모르는 곳에는 허세를 펼치고 아는 곳에 진세를 펼수도 있지 않소이까? 그러니 웃쪽으로 올라가야 할것 같소이다.》

협부가 소리를 질렀다.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힘껏 싸워 뚫고나갈수밖에 없는데 우로는 말을 달릴수 없다. 말을 달리지 못하면 절반은 힘이 꺾인셈이다. 밑으로 내려가서 매복이든 뭐든 쳐부시고 급한 고비를 넘겨보자.》 주몽이 결연히 웨치며 무작정 말을 돌렸다. 경사가 심해서 말들이 발을 벗디디며 꾸물거렸다. 경사를 벗어나 조금 평평한 곳에 이르니 비로소 말들이 굽을 놓았다.

《협부, 어차피 오늘 결산이다. 나를 따르라!》

《주몽형, 내가 선두에 서겠사오니 뒤로 물러서시오이다.》

두사람은 아래로 짓쳐내려갔다.

이렇게 한참 내려가며 보느라니 웬일인지 아래에서 올라오던 무리들이 란잡해진것이 알렸다.

주몽은 웬일인가 하고 그쪽을 살폈다.

홰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하는데 그쪽에서 좌우충돌하며 철퇴를 휘두르는 사람이 유난히 눈에 띄였다.

《주몽형, 저 사람이 우리 뒤를 좇던 그 사람이 아니오이까?》

《그런것 같기도 한데… 무슨 놈의 감투끈이람?》

주몽과 협부는 멈추어섰다.

철퇴를 휘두르던 사람이 마침내 이쪽으로 달음쳐왔다.

《당신은 누구요?》 하고 주몽이 검을 빼들고 소리질렀다.

상대가 《나 오이요.》 하고 대답해왔다.

《뭐라구?!》

주몽과 협부는 깜짝 놀랐다.

《오이라구?》

《그렇소이다.》

《오이, 네가 웬일이냐?》 주몽이 놀라서 물었다.

《그건 후에 차차 말하기로 하시오이다. 주몽형, 어서 말을 돌리시오이다. 방금 저 아래쪽에 대이왕자가 숱한 군사를 이끌고 왔소이다.》

《뭐?》

《내가 선봉에 서겠소이다. 협부, 자네는 주몽형을 호위하라구.》 하고 오이는 철퇴를 앞으로 비껴들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오이, 위험하다. 서라!》 주몽이 뒤따르며 소리쳤다.

《걱정마시오이다. 어쨌든 이번에는 제 뒤를 따르시오이다.》오이는 무작정 냅다 말을 몰아 웃쪽을 바라고 짓쳐나간다. 주몽과 협부는 어쩔새없이 그뒤를 따랐다.

산우에는 홰불이 더욱 많아지고 왁작 떠드는 소리가 높았다.

오이가 달려올라가며 소리쳤다.

《나는 오이다, 너희들이 나와 대적하겠느냐?》

산우에 진치고있던 군사들속에서 갑옷을 차려입은 사람이 홰밑에 우뚝 서서 칼을 비껴들고있었다.

오이와 주몽, 협부가 짓쳐올라오는것을 본 군사들이 병쟁기 쩔렁거리며 술렁댔다.

《가만!》 하고 우뚝 섰던 장수가 소리쳤다.

《군사들은 내 령을 들으라. 나는 대소왕자의 령을 받들고 죄인들을 생금하러 왔다. 화살이나 창을 날리는자 있으면 내 먼저 그자를 참하리라.》

군사들이 주춤거렸다.

그런데 장수의 옆에 섰던 부하가 이를 사려물고 소리질렀다.

《내 언제든 이럴줄 알았다. 여봐라 군사들, 살을 시위에 메우고 창을 집어라.》

《이놈이?》

먼저 장수가 부하를 노려보았다.

그러거나말거나 부하는 깔깔 웃으며 내뱉았다.

《그럴줄 몰랐겠지? 네가 이럴줄 알고 해리나으리가 날 보냈다. 마리, 너두 이젠 끝장이다, 이 곰보가 뭐 네 끄나불인줄 알았어?》

《네놈이?》

마리는 곰보를 쏘아보며 칼자루를 쥐였다. 곰보 역시 그러리라 짐작했던지 범에 쫓기는 이리마냥 허리를 꼬부리고 온몸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마리, 당신은 저 사람들을 구원하고싶을테지? 그러나 안될걸,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라. 나는 이 바줄을 끊어버릴테다.》하고 곰보는 불빛에 번쩍거리는 칼을 흔들어댔다.

마리는 주춤했다. 이놈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이런 흉계를 꾸몄는가? 바줄을 끊어버리는 날에는 그우에 쌓아놓은 돌무지가 밑으로 굴러내려 당장 사람이고 말이고 풍지박산낼 판이다.

그렇게 되면?

마리는 긴장해졌다.

마리와 곰보는 서로 쏘아보며 씨근거렸다.

군사들은 아직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멍청하니 두사람을 지켜보고있었다.

실로 아래에서 올라오던 사람들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신세에 놓이게 되였다.

오이도 철퇴를 내리고 그쪽을 긴장하게 쏘아보기만 했다. 칼날 한번 비껴치는데 따라 돌사태가 쏟아지면 아무리 억대우같은 사나이라도 별수 없었다.

갑자기 곰보는 으악- 소리를 지르며 칼을 떨어뜨리며 뒤로 천천히 돌아섰다.

홰불이 비치는쪽에 칼을 든 사람이 서있었다.

례나루였다.

곰보는 례나루를 붙잡으려는듯 허우적거리다가 스르륵 무너져앉았다.

이 틈을 타서 주몽과 오이, 협부는 산우로 치달아올랐다.

《선생님!》

례나루는 주몽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주몽, 무사했나?》

《선생님, 어찌된 일이오이까?》

《긴 말은 차차하고 어서 여기를 벗어나야 하겠네!》

《알겠소이다.》

주몽이 돌아섰다.

《오이, 군사들의 창과 활을 거두게.》

협부와 오이가 함께 군사들의 무기를 빼앗아 산밑으로 내던지였다.

주몽은 례나루를 옹위하여 말머리를 돌렸다.

그들의 뒤를 살피던 마리는 돌무지를 지지해놓았던 바줄을 끊었다.

그러자 온 산이 무너져내린듯 바위돌들이 산아래쪽으로 쏟아져내렸다.

아래쪽에서 일대 아우성소리가 몰방으로 터져났다. 말울음소리, 돌이 구르는 소리, 사람의 비명소리…

《마리! 우리도 어서 가세!》 하고 협부가 재촉했다.

《협부! 자네 먼저 앞서라구!》 하고 마리는 한쪽에 몰려 웅성거리는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와 너희들은 원쑤진 일이 없다. 난 너희들에게 악하게 놀지 않았고 또 너희들은 나를 공손히 따랐다. 오늘 일이 부득이해서 곰보는 해치웠으나 너희들의 목숨은 살려둘테다. 너희들은 우리 뒤를 좇지 말라.》

마리는 유유히 군사들을 둘러보고나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부리산을 넘어서자 주몽은 례나루에게 물었다.

《선생님! 엄리수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시고 어떻게 부리산에 오시였소이까?》

《실은 그랬지… 내가 마리에게 오이를 데리고 부리산쪽으로 가겠으니 왕자들의 동태를 살피다가 빠져나와 엄리수에서 만나자고 했네.

오이와 함께 부리산까지 왔으나 그대가 어찌됐는지 알수 없더군. 그래서 오이는 떨구어두고 먼저 엄리수에 가있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마중오던 길이였네!》

《그렇소이까?》

주몽이 례나루에게 사연을 듣고는 마리에게 돌아섰다.

《마리, 자네가 여기에 나타날줄 몰랐네. 어떻게 된 일인가?》

《형님이 협부와 함께 남쪽으로 가다가 왕자무리들에게 걸렸던적이 있소이까? 그때는 왕자가 미처 몰랐다가 후에 자기의 형 대소를 찾아와 주몽형이 남쪽으로 가고있다고 알렸소이다. 마침 해리가 이 부리산을 찍으면서 여기서 형님을 사로잡으라고 하는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래 제가 자진해서 나서서 여기 왔소이다. 나는 혹시 형님이 여길 빠져나간것이 아닌가 해서 하마트면 내뛸번 하였소이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장터에서 우연히 오이를 만나게 되였소이다. 오이도 형님을 못 찾았다기에 좌우간 오늘 밤까지 여기서 기다려보기로 했던것이오이다.》

《그렇게 됐구만. 하여튼 이렇게 자네들과 만나니 이 기쁜 맘 뭐라해야할지 모르겠구만. 난 지금 이 세상을 통채로 얻은것처럼 기쁘구나.》

《우리 역시 같은 심정이오이다!》 마리가 목멘 소리로 말하였다.

제자들의 끝날것 같지 않은 회포를 듣고있던 례나루가 《주몽, 회포는 차차 풀고 어서 여길 떠나야 하네. 대이왕자가 기필코 우릴 따라올거야.》 하고 걱정하였다.

《알겠소이다.》

일행은 행장을 정리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부리산너머부터는 넓은 벌판이 나섰다.

앞에 넓은 강이 나섰다. 어둠속에서 넓은 강은 검은 룡마냥 꿈틀거리며 흘러내렸다.

길은 거기서 끝나고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나루배로 건느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나루배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저쪽 대안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다가는 되돌아가는 모양이였다.

희붐히 밝아오는 새벽이여서 강건너쪽의 산발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혹시나 하고 오이가 《여-》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건너기슭은 조용하였다.

소란스러운 강의 흐름소리만이 귀가 멍- 하게 울렸다.

《선생님! 어쩌면 좋겠소이까?》 마리가 강건너를 바라보며 물었다.

례나루는 사품치며 흘러내리는 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때 협부가 무슨 기미를 느꼈던지 말에서 뛰여내려 땅우에 귀를 댔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서며 웨쳤다.

《주몽형, 말탄 무리들이 오고있소이다.》

《뭐라구?》

《틀림없이 대이왕자일테지.》 하고 례나루가 말했다.

미구하여 말울음소리까지 들리였다.

《내가 저놈들을 요정낼터이니 협부와 마리는 선생님과 주몽형을 모시고 피하라구.》 하고 오이가 철퇴를 비껴들었다.

《나도 같이 가겠소.》 마리도 나섰다.

둘이 가겠다느니, 안 가겠다느니 싱갱이질하는것을 지켜보던 례나루가 말했다.

《적의 형세 사나웁고 우리 형세 불리할 때는 피하는것이 상책이다. 공연한 생각 말고 나를 따르라!》

주몽일행은 말고삐를 채서 강웃쪽으로 향하였다.

강세를 보면 웃쪽 어디인가에 사람이 건늘만 한 여울이 있을듯 싶었다.

이때 《가만!》 하는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마리가 강가운데를 가리켰다.

거기에 웬 사람의 머리가 솟구쳐올랐다. 모두의 눈길이 거기에 쏠렸다.

물속에서 머리를 쳐든 사람이 《그대들은 누구인고?》 하고 이쪽을 살피며 물었다.

《우리는 강을 건느려는 길손들이오이다.》

《강을 건는다고? 어인 일로 이 새벽에 건는다는것인고?》

《그럴 일이 있소이다.》 하고 주몽이 잘라 대답하자 상대방이 기슭으로 헤염쳐나왔다.

보아하니 수염이 더부룩하고 외팔이였는데 왼쪽눈귀에 검은 터럭이 난 사마귀가 붙어있는것이 인상적이였다. 그는 한쪽밖에 남지 않은 손에 끝이 날카롭고 코가 돋은 세발 작살을 쥐고있었다. 어떻게 헤염을 치는지 참으로 이상하였다. 분명히 그는 물속에서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에 작살을 쥐고있었을것이였다. 나이도 퍼그나 먹어보였다.

물속에서 나온 사람을 아래우로 살피던 마리가 경계하는 눈길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어부요.》 하고 외팔이는 단마디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부? 괴이한 사람이군. 차라리 물속에서 나온 늙은 괴물이라고 하지…》 하고 마리는 중얼거렸다.

외팔이는 그 말을 분명히 들은듯 한쪽눈을 찡끗하며 쓰겁게 웃었다. 그러더니 대뜸 《그대들은 나라법을 어긴 역적들이겠다.》 하고 표독스럽게 내쏜다.

《뭐라구, 역적?》 하며 오이가 불쑥 나서는것을 주몽이 제지하였다. 외팔이는 천연스럽게, 그러나 조롱기어린 표정으로 주몽과 오이의 일거일동을 살피더니 눈섭 한번 까딱 않고 말한다.

《나라법은 엄한 법, 피할수도 없는 법, 이미 나라에서 역적을 잡아들이라는 엄명이 내렸겠다. 이 나라 백성으로 그 법 어길수 없으니 그대들은 스스로 벌을 받도록 하오.》

《늙은이는 어인 근거로 우리를 역적이라고 꾸짖나이까?》 하고 주몽이 물었다.

《이 강은 엄리대수, 부여나라의 지경끝, 벌써 그네들의 모상을 가지고 잡아들이라는 나라명이 여기에도 내렸거늘 어찌 소홀함이 있을손가? 내 이미 기다린지 오래다.》

외팔이는 매서운 눈매로 주몽이네를 쏘아보았다. 작살을 움켜쥐는 그의 나무개비같은 마디진 손가락이 이상하게 눈길을 끌었다.

《에익, 이 빌어먹을 늙다리, 당장 죽여버릴테다!》

오이가 얼굴을 푸들푸들 떨며 소리쳤다.

그러거나말거나 외팔이어부는 껄껄 웃는다.

《나를 없앤다고 살아날상싶었드냐? 물에 들어서는 수달같은 우리 애들이 가만있지 않을테니까!…》

너무나도 흔연하고 무자비한 조롱에 네 젊은이는 잠시 아연해졌다.

억이 막힌 오이가 철퇴를 흔들며 우뢰소리를 질렀다.

《이런 병신같은 놈아! 나라법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나라법에 충성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우둔한 백성놈아!》

그래도 외팔이는 히물히물 웃기만 했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주몽이 나직이 한숨을 쉬고나서 옆구리의 칼집에 손을 가져다대며 말했다.

《정녕코 늙은이가 고집을 부린다면 어쩔수 없소이다. 다만 늙은이같은 백성들과 마주해 칼을 뽑지는 않겠사오니 관군과 싸울 때 부디 끼여들지 마시오이다. 성한 몸도 아니시온데… 그리고 똑똑히 알고나 있으시오이다. 우리는 결코 역적이 아닐뿐더러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큰뜻 품고 나선 사나이들이오이다.》

주몽의 또박또박한 말에 늙은이의 한쪽눈이 이상하게 쭝긋하였으나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요지부동이였다.

멀리서 말발굽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싸울 준비를 해라, 배수진을 칠수밖에. 어차피 이 엄리대수가 우리들의 마지막싸움터가 되는가보구나.》 하고 주몽이 돌아섰다.

주몽이 돌아서자 이때껏 뒤에서 지켜보던 례나루가 나섰다.

《무정한 늙은이로군.》

어부는 주춤거리며 례나루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여보시오, 늙은 어부! 물가에서 살아가는 목숨이라면 하백의 이름은 들었겠지?》

《나는 옛날 그분의 부하였소.》

《그렇다면 똑똑히 보오. 여기 이 젊은이는 하백의 외손자요.》

《거짓말!》

《이건 거짓말이 아니요. 주몽이 하백의 외손자, 곧 류화의 아들이요.》

《뭐라구? 류화라고… 그럼 청하강가의 그…》

주몽은 뜻밖에도 어머니를 알고있는 그 어부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우리 어머니를 아시오이까?》

늙은이는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잠시 눈을 껌뻑이였다. 그의 작살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였다.

《알고말고… 알고말고… 나는 부추라는 어부요. 20년전에 내가 바로 우발수가에서 몸을 던진 류화아가씨를 구원한 사람이요. 류화아가씨를 구원하긴 했소만 오히려 금와왕의 궁성에서 아가씨가 괴롬을 받는것을 보고는 우발수를 떠나 여기에서 여생을 보내고있던터이요, 아! 하마트면 이 늙은것이 류화아가씨에게 두번 다시 죄를 지을번 하였고나…》

늙은이는 작살쥔 주먹으로 자기 이마를 툭툭 치였다.

《그러하오면 늙은이는 우리 어머님의 생명의 은인이시였소이까? 아 아, 어머님! 세상에 이런 기이한 인연도 있소이까?》 하고 주몽이 탄식하는데 부추는 두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익 하고 휘파람소리를 냈다.

어디선가 역시 휘파람소리가 났다.

《놀라지들 마오. 우리 아이들이요.》 하고 부추는 이번에는 갈새소리를 냈다.

그러자 웃쪽 갈숲에서 커다란 떼목이 내려왔다.

주몽은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아 아, 어머님!

어이하여 주몽은 이다지도 선량한 백성들의 은혜를 입어 매양 죽음에서 구원되는것이오이까.

내 기어코 이런 백성들을 위해 보잘것 없는 몸 기꺼이 바치겠소이다.

《부추어른, 부디 저의 절을 받아주시오이다!

어른은 우리 어머님의 은인이자 저희들의 은인이시오이다!》하고 주몽이 무릎을 꿇으며 절을 하였다.

부추는 한손으로 만류하였다.

《그러지 마시오. 그러지 마시오. 그저 바라옵건대 도령이 천명을 입어 뜻을 이룬다면 부디 다나구루님검(단군)의 땅에서 시기와 질시, 분렬과 전쟁, 동족상쟁과 살륙을 없애고 한겨레가 복락할 다나구루님검의 땅을 다시 일으켜주시오이다. 이것이 이 부추의 소원이자 백성들의 소원이오이다.》

부추는 떼목우에 주몽일행과 말들을 올렸다.

부추는 떼를 힘껏 밀어냈다. 떼는 천천히 기슭을 떠났다. 수면우로 느물느물 피여오른 안개가 갈라졌다.

떼가 강복판으로 잡아들기 시작할 때 기슭에는 마침내 대이의 군사들이 닿았다. 기슭은 삽시에 말들의 울부짖음소리, 병쟁기 부딪치는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그것을 본 오이가 부추의 아들에게 돌아섰다.

《빨리 응, 내가 좀 밀어보라우? 그렇게 얼음을 걷는 소새끼처럼 꾸물거리다가 일치겠다.》

오이는 제가 장대를 잡으려고 하였다. 부추의 아들이 오이의 손을 탁 쳤다.

《안되오, 강바닥이 고르롭지 못해 힘내기만 해서는 오히려 장대가 부러질수 있소. 떼가 뒤집히는걸 보고싶소?》

《젠장, 이거야 속이 타서…》

오이는 아직도 못 미더운 눈초리로 부추의 아들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떼는 물살을 타기 시작하였다. 부추의 아들은 자리를 바꾸어 장대로 떼길을 잡았다.

한편 벼락치듯 달려오던 대이는 강기슭에 이르러 말을 멈추었다. 대이는 숨을 씨근덕거리며 강아래우를 훑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강우에 떠가는 떼를 발견하였다.

《저기다!》 하며 대이는 말채찍으로 떼목을 가리켰다. 군사들이 주춤거렸다.

《뭣들 하느냐, 활을 쏴라.》

대이의 호령소리가 강물우로 퍼졌다. 그러자 놀란 군사들이 활을 벗어들고 화살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바람탄 비꼬치처럼 화살이 어지럽게 날아왔다. 주몽을 위시로 모두가 칼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눈먼 화살이 피융-피융- 소리를 지르며 머리우로 날아가자 떼우의 말들이 불안해하였다.

칼을 들고 날아오는 화살을 막던 주몽이 소리쳤다.

《오이, 말들을 잡아라!》

오이가 말고삐들을 틀어잡으며 말들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말고삐들을 감아쥔 오이는 한편 기슭을 보고 한편 부추의 아들이 장대질하는것을 불안스럽게 살피고있었다.

화살은 여전히 모기떼처럼 어지럽게 날아왔다.

주몽은 이마를 겨누고 날아오는 화살을 발견하고 머리를 옆으로 비켰다. 바람째는 소리를 내며 빗나간 화살이 부루나의 귀바퀴를 스치며 등뒤로 떨어졌다.

순간 주몽은 떼가 기우뚱하는것을 느꼈다.

놀란 부루나가 고삐를 채며 주둥이를 쳐들었던것이다.

《이런, 제기랄.》

오이가 투덜대며 황급히 부루나의 고삐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부루나는 앞발을 쳐들었다.

주몽은 부루나의 놀란 소리에 얼핏 뒤를 보았다. 부루나가 갈개면 떼가 위험하다. 주몽은 몸을 뒤쳐 번개같이 부루나의 고삐를 틀어잡았다. 그러나 주몽은 바로 그 순간을 노리는 대이가 자기의 잔등을 겨누고 쇠활촉을 끼운 화살을 겨누고있는것을 보지 못했다. 대이는 시위를 맘껏 당겨 뾰족한 화살촉끝에 정확히 주몽의 정통을 집어넣었다.

주몽이 부루나의 고삐를 틀어잡은것을 피끗 본 례나루는 기슭쪽을 살피다가 눈을 크게 떴다. 대이가 주몽을 겨누었던 활깍지를 금방 놓는 순간이였다.

검은 쇠활촉이 주몽을 향해 날아왔다.

《주몽!》

왼손을 쳐들며 소리친 례나루가 주몽쪽으로 몸을 날렸다.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든 화살이 례나루의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으윽!》

례나루는 왼쪽가슴에 꽂힌 화살을 움켜쥐며 우뚝 굳어졌다.

말고삐를 오이에게 넘겨주던 주몽이 깜짝 놀라 뒤로 돌아섰다.

《선생님!》

하지만 때는 늦었다.

례나루는 아래도리의 맥을 잃고있었다.

주몽은 노성을 지르며 활을 메여 대이왕자를 겨누어 쏘았다. 시위우는 소리가 한번 울리자 말을 돌리려던 대이가 뒤로 번뜩 넘어졌다. 화살이 목고대를 꿰였던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떼는 점점 기슭을 멀리 하였다. 화살이 점차 맥을 잃고 떼앞에서 떨어졌다.

《선생님!》

주몽이 쓰러지는 례나루를 흔들었다.

《주몽, 그대를 바래우려 했는데…》

《선생님, 정신차리시오이다.》

주몽은 온몸에 찬기운이 섬찟하게 휩싸는감을 느끼며 애타게 소리쳤다.

가쁜 숨을 두어번 몰아쉬던 례나루가 주몽을 올려다보았다. 은빛장미아래 눈길이 간절한 빛으로 타고있었다. 례나루의 손이 주몽의 팔을 더듬었다.

《주몽… 부디…뜻을…이루거라!… 단군선인의… 옛성지를…》

례나루의 고개가 맥을 놓았다.

《안되오이다, 가실수 없소이다.》

떨리는 주몽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이제 막 시작되는 아침노을을 받아 피방울이 되였다. 온 누리가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가실수 없소이다, 눈을 뜨시오이다.》

주몽이 몸을 떨며 나직하게 되뇌이였다.

문득 정적이 깃들었다. 온 누리가 숨을 딱 멈춘듯 하였다. 주몽의 눈길이 례나루스승의 얼굴에서 강기슭으로, 다시 붉은 빛으로 물드는 안개우로 이어져갔다.

왜 이렇게 조용할가, 왜?

아, 례나루스승께서 가셨다!

그럴수 있을가!

주몽은 고개를 들었다. 어룽거리는 산발이 멀어져갔다.

《선생님!…》

주몽은 입속으로 불렀다. 금시라도 례나루스승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설듯 싶었다.

주몽의 몸이 휘청거렸다.

마리와 협부가 주몽의 팔을 붙잡아 흔들었다.

《주몽형! 이 일을 어쩌면 좋소이까?》

그들의 눈굽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몽은 례나루스승을 부여잡은채 오열에 떨고있는 오이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모든 일이 꿈 같았다. 눈을 뜨면 이 모든게 사라질듯 싶었다. 멍멍하던 고막에 점차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물은 쉬임없이 흐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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