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상 편

 

6. 조정에 몸 담그고

 

4

 

세월은 류수와 같이 흘러갔다. 그사이 은천은 례부랑중을 거쳐 례부시랑이 되였다. 임금(성종)은 최승로가 죽은 뒤 그가 총애하던 은천을 례부의 부책임자로 등용한것이다.

관직상 서렬로는 시랑이 상서성 6부(행정집행기관-내각과 같음)의 매 부서에서 네번째 자리였지만 실지로는 두번째 자리였다.

6부의 각 부서장인 판사는 재신(중서문하성의 평장사-정2품)들이 겸임하고있으면서 주로는 왕명을 전달하고 왕에게 상주하는 일만을 주관하였는지라 실무처리는 그 다음서렬인 상서(정3품)들이 책임지고 하였고 또 상서 다음서렬인 지부사 역시 중서문하성의 관료들이 겸임으로 있으면서 필요한 때에만 협조지원하는 형식으로 일하였으므로 그 다음서렬인 시랑이 결국 부책임자였던것이다.

임금이 은천을 례부의 시랑으로 전격등용한데는 그동안 은천이 치른 수고에 대한 치하의 뜻이 담겨져있었다.

그간에 복잡한 북방정세에 대처하여 제일 볶이운 부서가 병부와 례부였다.

네해전인 985년, 이해에 녀진인들의 뻔질난 습격과 로략질로 해서 가뜩이나 팽팽한 북방정세가 더욱 악화되고있었다.

전해인 984년에 임금은 형관어사 리겸의에게 명령하여 압록강 중류대안에 새롭게 성을 쌓고 녀진인들의 출몰을 단속하게 하였었다. 그런데 녀진인들은 군사를 발동해가지고 코코에 방해를 놀던 끝에 리겸의를 랍치해가지고 달아나는데 이르렀다. 하여 그해에 새롭게 쌓도록 계획되였던 성들은 어느 하나 완성된것이 없었고 겸의가 데리고갔던 군사들은 제뿔뿔이 흩어지고 돌아온것은 삼분의 일도 되나마나하였다. 흩어진자들이란 그곳 변방에 거처하는 주민출신들이 태반이여서 다시 거두어모으면 될 일이지만 겸의와 함께 랍치되여간 군사들은 되찾을 길이 묘연하였다.

녀진인들의 기본습격통로를 막아놓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채 설을 쇠고난 뒤에 병부에서 다시금 수습책을 강구하느라 설레발을 치고있는 때에 이번엔 송나라에서 송황제의 조서라는것을 가진 특사일행이 들이닥쳐 례부가 분주탕을 피우게 되였다.

특사는 송나라조정의 감찰어사직을 가진 한국화라는 사람이였다.

…고려는 송과의 신의를 지켜 례의로 나라를 다스리고있으나 국토가 오랑캐(거란)들에게 점령당해있어 그 해독이 우리와 못지 않으니 그동안 쌓인 울분을 이제 씻어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고려는 마땅히 군대를 발동하여 우리 송과 함께 적들을 섬멸하자. 한번 진군하면 용기를 분발하여 거진 망해가는 오랑캐들을 쉽게 평정하리라. 좋은 때는 두번다시 오지 않으니 고려임금은 명심하고 동참하기 바란다. 싸움끝에 로획한 우마, 우양, 재보, 기계(병기)들은 전부 고려군을 고무하는 상품으로 될것이다. …

송황제가 보낸 서신의 골자는 대략 이러하였다.

대방의 사정은 고려함이 없이 마구다지로 강박하는 투의 서신장인지라 임금의 이마살은 대번에 찌프러졌고 대신관료 과반수가 시기가 적합치 않다느니, 무리한 제의니 하면서 일단 덮어두고보자는데로 의향이 모아졌다.

그러나 송나라 특사는 수락하는 응답을 받기 전에는 돌아갈수 없다며 려장을 다시 챙길념조차 하지 않고 버티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것이 송은 최근 거란과의 몇차례 싸움에서 련주, 계주 등 여러곳의 땅뙈기를 적지 않게 떼웠었다. 수세에 몰려가지고도 시기적절을 운운하고있었다. 거란을 완전히 섬멸하기에는 가당치 않은 상황이였지만 떼운 땅을 되찾기라도 해야 속이 조금은 풀릴판이라 궁냥끝에 고려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고나선것이였다. 그동안 모색끝에 거란의 서쪽 익측에 있는 녀진족들을 얼마간 포섭한것이 있어 그들을 끌어들여보았지만 아직은 오합지졸들이라 락타엉치에 모기침주기정도로 당초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던것이다.

고려를 난감케 하는것은 당장에 승산이 안 보이는 그 싸움에 덮어놓고 뛰여들었다가 이후에 부닥치게 될 정황이 문제였기때문이였다. 거란으로 하여금 보복을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하게 할 구실이나 주기 십상이였던것이다.

나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할 사명을 지닌 국가관료들로서 누구든 송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자고 서뿔리 응해나올수 없는 처지였다.

보다 큰 안목에서 보면 송과의 동맹이 필수불가결이라 하겠지만 당장의 국익에 심히 저촉되는 일을 막무가내로 해나갈수는 없는것이였다.

어전은 밤늦도록 불이 켜져있었다.

조정의 중서문하성 참지정사, 정당문학이상 평장사에 중서령, 문하시중까지, 상서성의 6부 상서들까지 대신반렬의 정3품이상 관료들이 졸음을 참아가며 임금앞에 부복한채 난해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것인가를 쥐여짜느라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페하! 이 일은 례부가 주관부서이니 례부에서 타개책을 세우게 함이 어떠할가 하나이다.》

시중 박량유가 지루한 침묵을 깨뜨리며 임금에게 청을 올렸다.

《국사야 여기 모인 대신들속에서 결론이 나야지 실행부서에서 방략을 잡으라 하다니 그 무슨 괴이한 말이요. 차라리 관모를 바꿔쓰구려.》

임금은 대번에 퉁을 놓았다. 하면서도 별도리가 없는 모양 고개를 돌려 분부했다.

《가서 내사시랑 서희와 례부시랑 강은천을 불러오라!》

조금 후에 은천은 서희와 함께 임금앞에 대령했다.

《짐이 덕이 없고 복이 없어 대신들을 에돌아 그대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되였노라. 그대들도 현황을 익히 알고있으려니와 송의 제의를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는지 기탄없이 말하라.》

임금은 송의 제의를 받아들이되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를 말하라고 하고있었다. 오는 길에 상론을 하고 방향을 초잡은 뒤라 둘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송과의 동맹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출병을 거행하는것이 지당한줄 아뢰오이다.》

《거란이 침공이라 규정하고 우리에게 방향을 돌려 내려오면 어쩔셈인가?》

임금은 서희의 대답에 대번에 반문을 표시했다.

《거란의 진중에까지는 미치지 아니하고 압록강너머까지만 진군하는것이옵니다. 그것만으로도 송의 제의는 받아들이는것으로 될줄 아옵니다.

거란이 마주 나와도 저들의 진중까지는 우리가 다가붙지 않았으므로 침공이라 몰아붙이기에는 리유가 완벽하지 못할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압록강대안방비를 보강코저 기동한것이라 둘러칠수가 있는것이로소이다. 현재 거란과의 명백한 국경이 그어져있지 않는 조건에서 거란의 진중에까지 접근해가지 않는 이상 그들은 우리에게 침공이란 딱지를 서뿔리 붙일수가 없는것입니다. 거란은 우리의 출병에 우선 놀랄것이고 일단 지켜보면서 력량을 보강해나올것인즉 송과 대치한쪽의 력량이 줄어들게 될것이온데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송의 제의를 받아들인것으로 되는것이오이다.》

《거란의 주의를 분산시키는것만으로 송을 돕는것이 될가?》

《모름지기 송은 접전까지는 기대하지 않을수 있사옵니다. 우리 고려군의 출병 그자체만으로도 송은 소기의 목적은 이루는것으로 되기때문입니다. 거란을 움츠러들게 하고 송에 대한 공격력을 감소시켜주는게 적은 도움이겠소이까?》

《딴은 그럴듯 한데…》

《아울러서 우리가 얻는 득은 대단히 크오이다. 거란으로 하여금 우리 고려가 앉아서 방비책에나 급급해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것을 인식시켜주는게 첫째 득이옵고 아무래도 이후에 한번은 반드시 거쳐봐야 할 전장을 우리 군사들이 미리 밟아보게 함이니 지형을 숙달케 하고 현지를 파악하게 되여 거란과의 싸움에 대비한 한차례 실전연습을 하게 됨이 둘째 득이옵니다. 셋째 득은 서북방방비에 힘이 가해져 거란은 물론이고 녀진인들의 침입도 한결 수월히 막을수 있게 됨이오이다.》

《일리가 있소.》

임금은 한결 풀린 얼굴로 연신 끄덕였다.

《은천은 보충할것이 없나?》

임금은 은천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모처럼 찾아온 특사이오나 밥값은 받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송나라 특사에게 한가지 덤을 지우자고 하옵는데…》

《특사에게 밥값까지?! 그러다 우리 고려의 인심이 얄팍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가? 하여간에 그에게 지우자는 덤이란게 대체 무언가?》

임금은 호기심이 동해서 은천을 바라보았다.

《녀진인들이 송나라조정에 외곡되게 고변한 문제를 깨우쳐주어 송황제가 진실을 알고 우리 고려에 사죄하게 하는것이옵니다.》

《녀진인들의 그 거짓고변을 바로잡을 소임을 특사에게 맡긴다는건가?》

《그렇소이다.》

《아닌게아니라 그 사건은 반드시 해명해야 할것이야. 그럼 어디 그걸 자네가 해보게.》

《알아들었소이다.》

임금은 더없이 흡족해하였다.

녀진인들의 거짓고변이란 년초에 있은 거란군사들의 녀진인추격사건에 대한 외곡된 고변을 말하는것이였다.

당시 녀진군사들은 송의 지시에 따라 거란의 옆구리를 들쑤셔놓았다가 반격을 받고 퇴각을 거듭하다가 급한 나머지 압록강을 넘어 고려의 지경안으로 쫓겨들어오게 되였다. 하지만 고려군의 현지수비병들은 그것이 녀진인들의 속임수일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들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만신창이 된 주제를 보면서도 억류하고 문초할수는 없다 생각되여 즉시 되돌아갈것을 촉구하였다. 녀진인들이 송을 섬기고있는 내속을 고려하여 취한 적절한 처리안이였다.

하지만 녀진군사들은 뒤쫓아온 거란군사들에게 체포되는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추격을 지휘한 거란군장수는 고려군수비군사들에게 막부득한 사정으로 하여 사전예고없이 고려지경을 범한데 대해 곱게 량해를 구하였고 녀진인들이 고려지경으로 도망쳐들어오면서 략탈하였던 고려주민들의 물건들까지 고스란히 고려군사들에게 넘겨주며 깍듯이 례의를 표하고 돌아갔다.

사실이 이러하나 녀진인들은 송나라에 《고려가 거란과 결탁하여 녀진인들을 랍치하여갔다.》는 얼토당토않은 고변을 하였다.

송은 비위가 몹시 거슬려 때마침 송을 방문한 고려사절 한수경에게 《체포해간 녀진인들을 당장 돌려보내고 거란과의 진짜 관계를 밝히라.》고 삿대질해나섰다. 고려는 아직 그에 대한 해명을 해주지 않고있는 상태였다.

이번 송나라특사의 협공요청은 모름지기 그 사건에 대한 의심을 풀어보려는데도 목적이 있는것인지 모른다.

송나라특사가 그 사건에 대해 옳은 인식을 가지고 자기 나라 임금에게 진실을 보고하게 된다면 그것은 고려와 송의 관계에 드리운 그늘을 가시는데도 대단히 유익한 일이였다.

은천은 그날로 송나라사신을 만나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여 조정과 임금의 걱정거리 하나를 덜었다.

뜻밖에 차례진 기회를 요긴하게 써먹은것이였다.

이 일로 해서 임금은 서희와 은천의 재능을 다시한번 확인하였고 더욱더 총애하게 되였다.

병석에 누워있은탓에 그날의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던 최승로는 후날에 이 사실을 전해듣고 더없이 만족해하면서 은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서희와 은천의 자문으로 취해진 그날의 조치는 즉시 은을 내였으니 송나라는 저들이 오해한것을 사과하는 서신을 보내오는 한편 녀진인들로 하여금 고려군이 압록강을 건너 북상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거란군에 대한 기습전을 더 많이 하라고 다그어댔다. 뒤이어 고려군이 압록강대안에 기동해올라와 전개하자 바빠맞은 거란은 이듬해(986년) 정월초 벽두에 궐렬이란 장수를 보내여 고려에 화친을 청하는데 이른것이였다.

이전에 서희가 그러했던것처럼 은천도 이제는 젊은 나이지만 조정의 머리 흰 관리들 못지 않게 인정을 받는 존재가 되였다.

이 나날에 은천을 말없이 뒤에서 밀어주던 원로 최지몽이 죽었다.

일찌기 18살 성년식도 치르기 이전 나이때부터 태조 왕건의 수하 모사가 되여 고려국의 통일전이 성공하도록 보좌하였고 이후로 혜종, 정종, 광종, 경종과 지금 임금까지 6대에 걸쳐 여섯 임금을 보좌한 특이한 재능을 갖춘 관록있는 충신원로 최지몽, 이 기간에 그는 내의령, 내사령 등의 관직을 독차지하고 임금의 잘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주로 맡아하였고 경종5년에는 동래군후의 봉직을, 현 임금 원년에는 상주국 훈위를 받는 등으로 고려황제국의 군왕의 지위를 누렸다.

987년 3월 갑자일에 향년 여든한살로 죽으니 왕은 부고를 내고 깊이 애도하였고 부의로 포목 1천필, 쌀 3백석, 보리 2백석, 차 2백각, 향 20근을 주었으며 관비로써 장사지냈다. 이어서 태자태부로 추증하고 시호는 민후라 주었다. 또 태사를 더 추증하고 994년 여름 경종묘에 배향하였다. (《고려사》 렬전)

은천은 최지몽이 림종을 앞둔 시각에 자기에게 한 말을 언제나 되새겨보군 하였다.

《인재가 나라를 지킨다. 부디 페하의 눈과 귀가 되고 팔다리가 되여 고려의 안녕과 부흥을 도모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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