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상 편

 

6. 조정에 몸 담그고

 

3

 

최승로는 은천의 조회보고를 들으면서 다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가 반란을 기도하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렷다.》

《그렇게 진단했소이다.》

《하지만 경계를 늦추어서는 아니된다. 그가 6위의 한토막을 쥐고있는 점을 명심해야 할것이야. 그의 관할지역이 너무 넓은것이 안심찮거던. 아무래도 페하께 상주해서 내미홀 서쪽너머를 뚝 떼버려야 하겠어.》

최승로는 강조의 세력이 구월산일대의 류씨세력관할지경까지 접근해가는것을 우려하고있는것이였다.

그는 지방세력들의 균형을 맞추는데 대단히 관심이 높았다. 조금이라도 득세하는 세력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손질을 하고야말았다. 그로 해서 지방두령들의 미움을 적지 아니 사고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해야 할 일이였다. 태조이래 5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지방할거세력들의 터세는 여간한게 아니였다. 최승로의 시무책은 이를 거세하기 위한데도 목적이 있었던것이다. 그만큼 그는 조정의 중앙집권력을 높이는데 비상히 힘을 넣고있었다.

《그래 접객소들의 촌때는 벗겼나?》

최승로는 화제를 돌리며 은천이 그려온 사경도(대상물을 실물 그대로 옮겨그린 그림)를 펴들었다. 부포와 을포의 접객소외형과 내부를 옮겨놓은 그림이였다.

《청기와를 올리니 제법 관청맛이 나는군. 그곳 관리들이 고분고분하던가?》

《대감나리의 성함이 극히 존귀하더이다. 그들은 만사 제치고 나섰소이다.》

《간지럽다. 말귀가 왜 그리 요사하냐. 은천이답지 않구나.》

최승로는 자기를 춰올리는 말에 이마살을 찡그렸다.

은천은 얼굴을 붉히였다. 존경의 마음을 내비친다는것이 그만 지나친듯싶었다. 아첨이라면 질색하는 최승로였다.

《허… 자기일식이 제법인걸. 차종지 하나 변변한것이 없다고 들었는데…》

최승로는 그림속의 응접탁자며 그우에 놓여있는 자기주전자며 자기잔이며 하는것들을 들여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곳 자기터에서 제일 상등인것들을 골라서 차려놓았소이다.》

《어떻던가? 여기 개경이나 저아래 경주자기를 따를만 하던가?》

《별로 차이가 없어보였소이다. 송나라 장사치들은 그 자기그릇들을 개경자기라면 개경자기로, 경주자기라면 경주자기로 그대로 믿고 사간다고 하더이다.》

《웬걸 그러기야 하겠나. 은천이 촌바람을 한번 쐬더니 말이 늘었군.》 하면서도 최승로는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괜찮아. 자기의 수준이자 나라의 수준일세. 송나라사람들이 우리 고려의 지방토산자기가 이 수준인걸 알면 머리를 숙일걸세. 거참, 한질 가져올걸 그랬네.》

최승로는 직접 만져보지 못하는것을 아쉬워했다.

은천은 아차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뒤더수기에 손이 올라갔다.

최승로가 누구보다 자기에 관심이 높은것을 뒤늦게 깨달은것이였다.

그 당시에 고려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하였지만 최승로는 특히 자기에 빡했다. 자기는 물론 도기, 토기까지 여간 애착을 가지고있지 않았다. 그의 서재며 침실은 말할것도 없고 집안팎을 돌아가며 곳곳에 놓여있는 모든것이 도자기들이였다. 정원에 남들처럼 꽃밭을 조성하지 않고 도자기와 토기화분으로 꽃덕대를 만들어놓고 꽃보다도 도자기를 더 감상하기 좋아하는 그였다. 목욕을 해도 나무함지가 아니라 도기함지에 하는 정도였다.

은천은 자기가 너무 인사불성인것을 자책하지 않을수 없었다.

《제가 너무 둔치로소이다, 그런 생각도 못하고있었으니…》

《그게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은천이지. 난 그런 부하가 좋네. 하지만 은천이, 이다음에 다른거라면 몰라도 도자기만은 보는대로 가져오게. 값은 후하게 물테니.》

《그리하겠소이다.》

《후에 우리 집에 한번 가봅세. 내가 손수 구해들인 도자기가 적지 않으이. 아마 고려지경안에 소문난 도자기는 다 있을는지도 몰라.》

껄껄 웃던 최승로가 또 화제를 돌렸다.

《참, 강조 그 사람이 불상을 수집하기 좋아한다며?》

《그런 소린 들은게 없사옵니다.》

《금불상을 만들었다는 소리도 있어. 내가 역불책을 펴니까 더 기를 쓰고 맞서는거야.》

《그도 불교사원을 정리하고 사원토지를 회수한것은 긍정하였더랬소이다. 팔관회와 연등회를 그만두게 한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였소이다만…》

《그럴테지. 그게 임금의 어지인데도 마음에 들지 않아해? 아까는 왜 그 말을 안했나? 그게 스쳐보낼 일인가?》

《법으로 다스리려이까?》

《물론이지.》

《평장사나으리!》

은천은 와뜰 놀라 엎드렸다.

《왜 그러나?》

《제 얼굴을 봐서라도 그를… 용서해주시오이다.》

《흠, 단둘이 한 소리를 옮긴게 마음에 걸린다 그건가? 그의 한을 사는게 두렵다?! 하루밤을 묵고나서 평생지기라도 되였나?》

《아닌 말로 교분을 나누었소이다. 제가 보건대 그가 조정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엔 별다름이 없는줄 아오이다. 그러한 장수 하나 얻기가 쉬운 일이 아니잖소이까.》

《흠, 인재는 아끼라는 말이렷다. 그가 흑심만 먹지 않는다면야… 엥이, 시기가 시기니만큼 아무래도 자네 말을 들어야 할가보군.》

《제가 루루이 말을 해주었거니와 앞으로도 길이 어긋나지 않게 살펴주겠소이다.》

《살펴주기까지야 뭘… 곱씹어 말하는데 그는 늘 눌러가지고있어야 하네. 잠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되느니.》

《알아들었소이다.》

《그가 한 말은 그만 덮어두려네. 하지만 다시한번 보살타령하면 그땐 용서가 없는줄 알게.》

《명심하겠소이다, 나으리!》

최승로는 불교와 관련한 자기의 시무책에 강조가 여전히 다른 뜻을 품고있는것이 대단히 불쾌한 모양 꼿꼿한 얼굴로 은천을 바래웠다.

최승로는 고려사상 처음으로 불교를 배척한 배불론자였다. 그리고 광종(고려 4대임금)때에 후주의 한족관료 쌍기를 받아들여 정사에 인입하고 한족의 문물을 지나치게 끌어들인것을 더없는 수치로 여기면서 단군이래 내려오는 조상전래의 미풍량속을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족우위론자, 중앙집권력을 높여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외부에 고려의 국력을 과시하게 한 국위선양론자였다.

최승로는 자기의 시무책을 실현코저 고심분투하다가 6년후인 989년 5월 신묘일에 향년 예순세살로 눈을 감았다.

그는 죽기 전해에 문하 수시중으로 나라에서 임금 다음가는 관직에 올랐고 청하후로 봉해져 고려사에 몇 안되는 군왕의 지위를 누렸고 목종원년(998년)에 성종묘에 배향되였다.

은천은 최승로의 슬하에서 많은것을 배웠다. 최승로는 륙부의 모든 부서를 다 참견하였지만 례부는 특별히 직접 틀어쥐고 일한터여서 그와의 상종이 잦은 덕이였다. 아니, 그보다는 최승로가 은천을 특별히 관심하고 누구보다 총애한 덕이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이후에도 은천은 최승로의 시무책을 기본자대로 삼아 조정일을 보필하였다. 그만큼 최승로의 시무책은 고려조정의 정치사에 굵은 여운을 남기였다. 태조 왕건이 최승로를 어릴 때부터 특별히 조정에 앉혀놓고 키운 덕에 후대에 큰 보탬이 된 력사적사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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