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놀이 윷놀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민족적향취가 짙게 풍기는 민족음악과 민족무용, 민족미술을 발전시키고 태권도, 씨름을 비롯한 민족체육을 장려하며 유희오락을 하여도 윷놀이, 팽이치기와 같은 민속놀이를 많이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윷놀이는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에 의하여 창조된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민속놀이의 하나이다.

윷놀이는 네개의 윷가락을 던져 엎어지거나 젖혀지는 결과를 가지고 윷판에서 말을 전진시키면서 누가 먼저 돌아나오는가를 겨루는 놀이로서 고대시기 자연과 사회현상의 원리들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중경지》, 《오주연문장전산고》와 같은 옛 문헌들에 의하면 모두 29개의 밭으로 구성되여있는 윷판에서 제일 가운데밭은 북극성을, 그 둘레의 나머지 28개의 밭은 해길을 중심으로 널려있는 별자리를 의미하였다고 한다. 또한 윷판주로는 사계절의 변화법칙이 반영된것으로서 제일 짧은 주로(11개의 밭으로 돌아나오는 길)는 동지, 대각선방향의 주로들은 춘분과 추분, 제일 긴 주로는 하지를 의미하였다고 한다.

4개의 윷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반영한것이다.

윷수의 명칭에도 저가, 구가, 우가, 마가 등 고대국가 관직들과 당시 널리 기르고있던 집짐승들의 크기와 속도가 반영되였는데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또는 슝)》은 소, 《모》는 말을 의미하였다.

이러한것들을 통하여 윷놀이는 높은 사람이 되여 집짐승을 타고 세상천지를 마음껏 돌아보고싶어한 고대사람들의 소박한 념원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볼수 있다.

고대시기에 발생한 윷놀이는 세나라시기와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 우리 민족고유의 민속놀이로서 계승발전되였으며 다른 나라들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어느 한 고구려무덤구역의 바위에 새겨진 인물화의 가슴부분에는 윷판도형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을 보아도 고구려시기 윷놀이가 대중적인 민속놀이로서 광범하게 진행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웃나라들에서 전해내려오는 8세기 기록들에 《도》와 《걸》과 같은 윷수명칭들에 대한 해석이 들어있는 사실은 당시 윷놀이가 다른 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는것을 보여준다.

고려시기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윷놀이가 널리 진행된 사실은 당시의 윷판도형유물과 윷놀이에 대한 시작품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고려의 왕궁터였던 만월대유적에서 당시 리용되고있던 윷판도형을 새긴 바닥돌이 나온것을 보면 이 시기에 윷놀이가 얼마나 큰 인기를 가지였는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14세기 리색이 쓴 《목은집》과 15세기 시인이였던 김시습이 지은 《선행과 함께 윷놀이를 보면서》라는 시에는 이웃집 늙은이들이 서로 모여 윷놀이를 하는 장면과 윷수에 따라 말을 옮기며 진행되는 윷놀이의 흥미진진한 과정 등이 재치있게 묘사되여있다.

이처럼 자연과 사회현상의 원리들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윷놀이는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뿐아니라 다정다감하고 풍부한 생활정서적요구가 반영된 민족고유의 민속놀이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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