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2월 24일


서부지역

서부지구

 

개성지구

평양에서 남쪽으로 1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조선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알수 있게 해주는 개성시내, 공민왕릉, 박연폭포지구와 민족분렬의 비극을 직접 목격할수 있는 판문점, 콩크리트장벽참관으로 이루어진 특색있는 관광지구이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기차길과 자동차길이 있는데 평양-개성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가는것이 편리하다.

평양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에 중간지점인 수곡휴계소에서 휴식도 할수 있으며 휴계소로부터 몇개의 차굴을 지나가서는 1억 8천만년전의 공룡발자리화석도 볼수 있다.


개성시

조선의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조선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918-1392)의 수도로 번성하였던 력사적인 곳이며 고려인삼의 원산지, 군사분계선을 가까이하고있는 도시이다. 예로부터 이곳 송악산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있어 《송도》(소나무고을)라고 하던것을 고려시기에 이르러 수도로 되면서 《개경》이라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부터 성을 연다는 의미에서 《개성》이라 불렀다.

개성시는 현대거리와 옛 거리가 어울려있어 다른 도시들에서는 볼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펼쳐보인다.

년평균기온은 10. 3℃이며 년평균강수량은 1 300~1 400mm이다.


자남산

자남산

개성시내 한복판에 솟아있는 산이다.

자남산(높이 104m)은 뒤에 보이는 송악산의 아들같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시내를 한눈에 부감하기 좋은 곳이다. 약 6km의 포장도로를 따라 휴식터들이 꾸려져있다. 산마루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동상이 모셔져있다. 예로부터 경치좋은 곳으로 이름난 자남산기슭에는 관덕정을 비롯한 여러 력사유적들이 있다.


송악산

자남산뒤에 있다.

예로부터 사철푸른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산이라 하여 송악산(높이490m)이라고 불렀다. 이 산기슭에는 만월대, 개성첨성대, 고려박물관, 개성성의 외성 등 여러 고적들이 있다.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

개성시 북안동에 있다.

개성남대문은 고려시기에 건설한 개성성 내성의 남문으로서 1391년부터 1393년까지 세운것이다. 측대우에 합각지붕을 씌운 조선의 옛 성문들과 같은 류형의 건물이다.

남대문측대우에는 조선5대명종의 하나인 연복사종(1346년 주조)이 있다. 본래 금강산 연복사에 매달았던것을 1563년에 그 절이 불타면서 개성남대문으로 옮겨왔다.

1900년대 초까지 개성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었다. 종소리는 맑고 우렁차며 종의 몸체에 부각한 무늬들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무게는 약 14t이며 높이는 3. 12m, 두께는 23cm이다. 아구리직경은 1. 9m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조선의 종들가운데서 제일 크다.


승양서원

승양서원

개성시내 중심에서 동북쪽으로 1km 떨어진 선죽동에 있다.

비교적 규모가 갖추어진 중세조선의 대표적인 서원(유교를 가르치던 사립교육기관)의 하나이다.

승양서원은 중세서원의 건축형식을 보여주면서도 송죽같은 절개를 지녔던 고려충신 정몽주의 생애와 관련된 곳으로 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유적이다. 승양서원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과 숙소였던 동재, 서재로 이루어져있다. 정몽주가 타살된 후 1573년에 고쳐세웠다.


선죽교

선죽교

개성시 자남산남쪽기슭에 위치하고있는 돌다리이다. 눈에 별로 띄지 않는 자그마한 이 다리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것은 고려의 마지막충신 정몽주가 리성계에 의하여 피살된 장소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고려왕조와 리왕조의 교체과정이 더 촉진되였다는 력사적사실이 깃들어있기때문이다.

처음에는 정몽주의 피가 다리우에 붉게 물들었다고 하여 선지교라고 하였는데 그후 그 자리에서 그의 곧은 절개를 보여주는듯 참대가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선죽교로 부르게 되였다.

선죽교 가까이에는 정몽주의 충절과 관련된 성인비, 하마비, 표충비 등 유적들이 있다.


표충비

표충비

선죽교와 길을 사이에 두고있다.

비각에 두개의 비석이 있는데 고려충신 정몽주처럼 백성들이 리왕조에 《충실》할것을 바래서 하나는 1740년 조선봉건왕조왕 영조가, 다른 하나는 1872년 고종이 세운것이다. 두개의 비석은 다 거북잔등우에 세웠으며 비석에는 정몽주를 찬양하여 쓴 왕들의 필적이 새겨져있다.

통돌로 된 거부기, 련꽃무늬, 비석의 처미돌에 새긴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

개성시내중심에서 동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다.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 량반자식들에게 유교를 가르치던 최고교육기관인 성균관의 건물이다. 원래 이 건물은 11세기초엽에 고려의 별궁인 대명궁으로 건설하였던것이다. 그후 순천관(외국사실들을 들이던 숙소), 승문관(유교교리에 관한 사무를 보는 기관) 등으로 변천되여오다가 고려성균관의 전신인 국자감(992년 창설)이 이곳으로 옮겨온 후 1308년에 성균관이라 이름을 고치였다.

현재 이 건물은 력사박물관으로 꾸려져 귀중한 유적유물들을 수많이 전시보존하고있다. 2만㎡의 부지면적에 기본건물 12개, 부속건물 6개가 있으며 천여년자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여 보호관리되고있다. 현재 개성에는 개성경공업종합대학《고려성균관》이 있다. 고려성균관의 력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랜 대학으로 손꼽히는 이딸리아의 볼로냐대학(1088년 설립)이나 영국의 옥스포드종합대학(1107년 설립), 프랑스의 쏘르본대학(1253년 설립)에 비해 훨씬 앞선것으로 된다.


개성첨성대

개성첨성대

만월대의 서쪽에 있다.

고려가 여기에 궁성을 쌓으면서 그 초기에 세운 천문현상관측대이다. 측대의 높이는 2. 8m이며 그 한변의 길이는 2. 6m이다. 기초와 그 조립수법이 매우 정밀하고 우수하다.

고려시기 이 첨성대에서는 태양흑점에 대한 관찰뿐아니라 일식과 월식, 혜성과 별찌, 특이한 기후현상 등 다양한 천문현상들을 계통적으로 관측하였다. 30여차례에 걸쳐 진행한 태양흑점관측자료는 현재 고려박물관에 보관전시되여있다.


안화사

안화사

안화사는 개성남대문에서 4km 떨어진 송악산중턱에 있다.

930년에 건설한 고려태조 왕건의 4촌동생 왕신의 원찰이다. 대웅전, 명부전, 오백전, 7층돌탑, 료사로 이루어져있다. 볼만 한것은 부처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몸가짐과 각이한 인상을 하고있는 500명의 라한들이 7개의 단우에 자리잡고있는 오백전이다.


인삼밭

인삼밭

개성시내를 참관하면서 인삼밭도 볼수 있다.인삼은 그늘에서 잘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있으므로 지붕을 씌운 특수한 포전에서 자래운다. 손님들은 이곳에서 직접 인삼재배과정을 볼수 있으며 또 적합한 가격에 개성고려인삼을 구할수 있다.


목청전

개성시 운학동에 자리잡고있다.

원래는 조선봉건왕조를 세운 리성계가 왕이 되기 전까지 살던 집인데 그가 죽은 후 궁전으로 확장하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리용한 건물이다. 조선전쟁시기 파괴된것을 1954년에 원상복구하였다.


개성학생소년궁전

개성남대문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개성시학생소년들의 과외교양기지로서 1961년 6월 6일 조선소년단창립 15돐에 즈음하여 개관하였다. 연건평 1만 2천여㎡에 700석극장, 120여개의 실험실, 40여개의 소조실이 있다. 하루수용능력은 3 000여명이다.


만월대

만월대

송악산의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조선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왕궁터이다. 부지면적은 125㎡이며 궁성면적은 약 39만㎡이다. 원래 달을 바라보는 대(집)라는 뜻에서 망월대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이 오랜 세월 전해오면서 만월대로 되였다고 한다. 궁성과 황성으로 이루어진 만월대에는 많은 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웅장화려한 신봉문은 2층건물로서 왕을 비롯한 봉건관료들이 올라와 경기도 구경하고 군사들을 사열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의 중심건물인 회경전을 중심으로 전후좌우에 수많은 궁전과 루각들이 배치되여있었다. 궁전주변에는 태평정을 비롯한 푸른 기와를 인 별궁들과 정자들이 있었고 꽃나무, 과일나무 우거진 정원들이 있었으나 1361년 외적에 의해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박연폭포

박연폭포

개성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25km 떨어진 곳에 있다.

금강산 구룡폭포, 설악산 대승폭포와 함께 조선3대명폭으로 손꼽힐뿐아니라 16세기 철학가 서경덕, 16세기 녀류시인 황진이와 함께 《송도3절》로 되고있다.

높이가 37m인 폭포꼭대기는 직경 8m가량의 박연이라고 부르는 못이 있고 폭포수밑에는 직경 40m인 고모답이 있다. 박연에 물이 고였다가 떨어지면서 생긴 폭포라고 하여 박연폭포라고 부른다. 범사정에 올라 바라보는 폭포의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관음사

관음사

박연폭포우에 있는 고려시기 산성인 대흥산성의 북문을 지나 1. 5km 올라가면 있다.

관음사는 970년에 세운 절인데 지금의것은 1646년에 다시 건설한것이다. 970년 법안국사라는 승려가 대웅전 앞뜰 서쪽구석에 있는 자연굴에 관음보살상 한쌍을 가져다두고 그 굴의 이름을 《관음굴》이라 부른 때로부터 이 절의 이름을 관음사로 부르게 되였다. 크지는 않으나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 지은 건물로서 건축양식이 독특하며 장식에서 특징을 가지고있는 우아한 절이다. 절앞에는 7층돌탑이, 관음굴에는 그때의 관음보살상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 고려중엽에 만든 관음보살상은 매우 진귀한 유물로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있다.


왕건왕릉

왕건왕릉

개성시에서 북쪽으로 6km 떨어진 해선리에 위치하고있다.

조선의 첫 통일국가 고려의 건국시조왕 왕건(877-943년)의 무덤이다. 왕건의 생일 1117돐을 계기로 1994년 1월 31일 개건하였다. 부지면적 5만 5 000㎡의 왕릉구역에는 왕건의 무덤과 그의 초상을 비롯하여 슬기와 용맹을 떨친 이름있는 문인들과 무인들을 형상한 돌조각상들, 고려인민들의 투쟁업적을 화폭에 담은 여러점의 미술작품들, 릉문과 제당 등이 있다. 릉문앞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을 한문으로 새긴 고려태조왕건왕릉개건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왕릉은 사람들이 들어가 그 내부와 벽화를 직접 볼수 있게 되여있으며 릉앞에는 넓은 공원이 있다.


공민왕릉

공민왕릉

개성시내중심에서 서쪽으로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으로서 왕비가 죽은 후 왕자신이 설계하고 백성들을 동원하여 만든 왕과 왕비의 쌍무덤이다. 1365년터 1372년까지 7년동안 건설하였다. 공민왕릉은 무덤구역, 문관상구역, 무관상구역, 무덤의 제당이 있는 구역으로 이루어져있다.무덤구역에는 왕과 왕비의 무덤이 나란히 놓여있다. 무덤의 밑둘레에는 구름무늬와 12지신을 부각한 화감암병풍돌을 12각으로 돌리였으며 그밖에 돌로 조각한 조선범 등을 세워놓았다. 무덤칸에는 벽화가 있는데 천정에는 해, 북두칠성, 삼태성을 그렸고 동, 서벽에는 12지신을 그렸다. 무덤앞 상돌무게는 7. 2t이며 무덤좌우에는 6각형의 망두석이 있다. 1905년 일제에게 도굴당하여 순장품은 모두 없어졌으나 한쪽 모서리가 마사진것을 복구한 흔적이 있을뿐 릉은 원상그대로 보존되여있다.

살아움직이는듯 한 사람과 동물조각상들은 당시 고려의 화강석가공기술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주고있다.


판문점

판문점

개성시내에서 8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다.

조선전쟁시기 조선과 미국사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곳이다. 판문점은 개성과 서울사이에 있는 마을의 이름이다. 언제인가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길손들을 위해 누군가 널판자로 가게를 짓고 판문점이라 한것이 고장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였다고 한다. 자그마한 농촌마을에 불과하였던 판문점은 정전담판이 진행되면서부터 세계가 다 아는 력사의 땅으로 되였다.

판문점구역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 정전담판회의장, 정전협정조인장,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통일각과 판문각이 있다.


정전담판장

정전담판장

1951년 6월에 정전담판을 제기한 미국측과 개성시 고려동에 있는 래봉장에서 첫 회담을 가진 다음 6개월이 지나 다시 담판이 진행되며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회담이 진행된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북측수석대표와 성원들이 정전담판을 할 때 사용하였던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정전협정조인장

정전협정조인장

정전협정을 조인한 곳이다. 조인장에는 정전협정조인 당시 사용된 조인탁, 의자, 기발 등이 그대로 전시되여있다.


통일각

판문점경비구역안에 있다.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여러 회의들과 북남쌍방접촉을 진행하는 장소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필비

김일성주석의 친필비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로 들어가는 길 우측에 자리잡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순간에 조국통일관계문건을 친히 보아주시고 그 첫장에 남기신 친필을 새긴것이다.

길이 9. 4m, 너비 7. 7m인 천연화강석에 《김일성 1994. 7. 7.》이라는 친필을 그대로 새겼다.

친필비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운동사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과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영원히 빛내여갈 조선인민의 마음이 담겨져있다.


콩크리트장벽

콩크리트장벽

개성시에서 동쪽으로 27km 가면 콩크리트장벽을 볼수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

남측이 조선반도의 동서부를 가로질러 비무장지대 남측계선에 구축한 군사시설물이다. 1977년부터 수년간에 걸쳐 건설한 장벽의 길이는 240km, 높이 5~8m, 웃너비 3~7m, 밑너비 10~19m이다. 콩크리트장벽을 쌓는데 세멘트 80여만t, 철근 20여만t, 모래자갈 350여만㎥ 들었다고 한다.


령통사

령통사

개성시에서 동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오관산 령통끝에 자리잡고있다.

령통사는 조선 불교교단에서 처음으로 천태종을 하나의 종파로 성립시키고 널리 퍼뜨려 그 시조로 된 대각국사(고려태조 왕건의 4대손인 문종왕의 넷째아들)의 행적이 깃들어있을뿐아니라 그의 부도와 사당건물이 세워진것으로 하여 조선천태종의 성지로 된 이름난 절이다.

령통사는 10세기초에 건립되여 고려태조 왕건의 가문과 인연을 맺고 력대 고려왕들의 보호를 받으며 700여년간 번성해오다가 16세기에 페사되였다. 지금 건물은 2005년에 새로 복원한것이다. 복원된 령통사는 6만㎡의 부지면적에 보광원, 중각원, 숭복원, 보조원, 영녕원, 경선원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에는 대각국사비와 당간지주, 불교그림을 비롯한 많은 유족물들이 전시보존되여있다.


개성민속려관(2급)

개성민속려관(2급)

개성시 자남산기슭 서쪽에 위치하고있다.

조선식단층건물들로 이루어진 민속려관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지은 조선식살림집을 려관으로 전환하여 1989년에 개업하였다. 19개 호동으로 이루어진 려관은 내부시설과 봉사시설들이 조선식으로 꾸려졌다. 손님들은 조선식온돌방에서 하루밤 류다른 체험을 할수 있다. 예로부터 소문난 반상기를 비롯하여 개성특산음식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방수:50개(1등실 2개, 2등실 4개, 3등실 44개)


자남산려관(2급)

자남산 남쪽기슭에 자리잡고있다. 아늑하게 꾸려진 4층짜리 려관이다. 주변경치가 수려하여 손님들의 평이 좋다.

방수:42개(1등실 1개, 2등실 4개, 3등실 37개)


통일관

시내중심 자남산기슭 남쪽에 있다.

조선민족료리전문식당으로서 일반적으로 조선음식 특히 반상기, 인삼닭곰, 개성보쌈김치, 개성약밥, 경단 등을 잘하는것으로 하여 인기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