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5월 8일 《로동신문》

 

위인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충실한 혁명전우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이였던 김양건동지가 받아안은 고귀한 믿음과 은정


숭고한 동지적사랑과 도덕의리의 위대한 힘으로 개척되고 승리해가는 우리 혁명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영광의 삶을 빛내인 참다운 애국자, 혁명가들을 성스러운 력사의 갈피마다에 무수히 기록하고있다.

그가운데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자신의 가장 가까운 혁명전우로 믿어주고 내세워주시면서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신 당중앙위원회 비서(당시)였던 김양건동지도 있다.

때로는 화창한 봄날처럼 따뜻한 정과 열을 나누시던 모습으로, 때로는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고 하늘도 머리숙이게 하는 고결한 도덕의리의 정화로 경애하는 우리 원수님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깊이 새겨주신 김양건동지!

절세의 위인의 마음속에서 오늘도 뜨겁게 살아숨쉬는 그의 고귀한 삶은 위대한 동지애의 력사가 장엄히 흐르는 이 땅에서 혁명가의 영생은 불멸의 진리라는것을 힘있게 구가하고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운데서 그 일부를 우리는 세상에 전한다. 그것은 그대로 김양건동지가 소리높이 터치고싶었던 심장의 고백이고 또 한분의 위대한 혁명의 태양을 높이 모시여 긍지높은 이 시대의 뜨거운 메아리이다.


나는 비서동무를 믿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인 주체106(2017)년 3월 27일이였다. 그날 개건확장된 조선혁명박물관을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새로 꾸려진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도 돌아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슬하에서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자라나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고귀한 한생을 바친 일군들의 자료를 하나하나 일별하시며 뜨거운 추억의 세계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득 누군가의 모습을 찾으시더니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에 김양건동무의 자료가 전시되지 않았는데 그가 최근에 사망하였으므로 아직 전시하지 못한것 같다고 서운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온몸에 쩌릿이 차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김양건동지가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두해가 되여오지만 우리 원수님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전사가 금시라도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아서였다.

우리 당의 조국통일방침과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력적으로 사업하던 충직한 일군, 당이 준 과업을 최상의 수준에서 집행하기 위해 칠순나이에도 밤낮없이 뛰여다니던 전사의 자욱을 하나하나 더듬으시는듯 그이께서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한없는 은정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속에서 능력있는 일군으로 자라났습니다. 앞으로 김양건동무의 자료도 다 전시해놓아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성스러운 혁명력사와 더불어 사랑하는 전사의 한생을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김양건동지가 걸어온 남다른 인생행로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았다.

해방전 품팔이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는 극빈한 가정에서 출생한 김양건동지는 6살 나던 해에 아버지를 잃고 일찍부터 고생많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나어린 《세대주》구실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려운 집안살림때문에 그는 학교갔다 돌아올 때면 여러가지 나물과 송기를 채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주머니에 메싹이며 갖가지 열매를 넣고 와서 어린 동생과 할머니에게 주군 하던 그 시절에야 김양건동지에게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있는지 누가 알수 있었으랴.

그러던 그에게 보람찬 새 삶의 길을 열어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도 배움의 종소리를 랑랑히 울려준 위대한 어버이의 품은 중학교를 졸업한 김양건동지를 1211고지가 바라보이는 지혜산에서 혁명군인의 견실한 사상정신과 고상한 풍모를 지니도록 해주었고 군사복무를 마친 다음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의 넓은 교정으로 불러 희망을 한껏 꽃피워주었다. 대학졸업후 중요기관들에서 일하던 김양건동지는 우리 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던 때 위대한 수령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영광스럽게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참으로 꿈만같은 일이였다. 탁월한 위인들을 높이 모신 우리 조국의 품에서 극적인 운명전환과정을 체험한 사람이 그 얼마이랴만 김양건동지야말로 천행만복을 받아안은 주인공이라고 할수 있었다.

막벌이군의 자식에 불과한 자기를 품에 안아 키워주시고 인간다운 존엄을 안겨주신것만도 하늘같은 은덕인데 조선혁명의 최고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의 일군으로까지 내세워주시였으니 받아안은 그 감격을 무슨 말로 다 형언할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에게는 미처 상상도 할수 없었던 영광의 시각들이 수없이 마주 오고있었다.

지난 1970년대 중엽 특출한 정치실력과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령도로 우리 당을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가시던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대외사업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이 사업에 당성이 강하고 책임성이 높은 젊은 일군들을 대담하게 인입시키도록 하시였다. 그이의 크나큰 믿음을 받아안은 일군들중에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갓 시작한 30대의 김양건동지도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고지식하고 대바를뿐아니라 사업실무에도 밝은 그를 눈여겨보시며 당대외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과업들도 주시고 무거운 직무도 맡기시면서 걸음걸음 정을 다해 키워주시였다.

김양건동지가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임명되던 날이였다. 오랜 기간 애지중지 손때묻혀 키워주신 전사의 성장을 두고 더없이 만족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김양건동지의 손을 잡아 이끄시여 위대한 수령님앞에 내세워주시였다.

뜻깊은 그 자리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전사 한사람한사람을 천만금과도 바꾸지 못할 귀중한 동지로 여기시고 품들여 자래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슬하에서 또 한명의 쟁쟁한 일군이 배출된것이 못내 기쁘시여 김양건동지에게 믿음어린 가르치심도 안겨주시였다. 그후에도 풍부한 식견과 넓은 안목을 가지고 우리 혁명에 유리한 대외적환경을 마련하는데 적극 이바지하는 그의 활약을 대견하게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는 김정일동지가 키운 일군이라고 하시면서 값높이 내세워주시였다.

온 세상이 경모하여마지 않는 희세의 위인들의 따사로운 품속에서 혁명을 배우고 지략과 담력을 키우며 유능한 정치활동가로 성장하는 나날은 김양건동지에게 있어서 하루하루가 환희와 긍지로 가득찬 감격의 세월이였다.

하지만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랑, 날마다 더욱 커만 가는 은덕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려 아글타글 애쓰던 심정과는 달리 김양건동지는 새 세기가 시작되던무렵 그만 본의아니게 당에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였다. 사소한 실수도 허용될수 없는 책임적인 위치에 있었던것으로 하여 그는 당적처벌을 받게 되였다.

김양건동지는 뼈를 에이는것 같은 죄책감에 얼굴을 들수 없었다.

함께 사업하던 일군들조차 안타까움과 민망스러움에 얼굴을 돌리던 그때, 살을 저미는 아픔에 시각마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하루하루 괴로움에 모대기던 어느날 김양건동지는 뜻밖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몸소 골라 내려보내주신 여러가지 자료들을 받아안게 되였다. 대외사업분야에 절실히 필요한 귀중한 상식자료들과 정세자료들이였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비록 아무 말씀도 없이 보내주신 자료들이였지만 김양건동지는 그 한페지한페지의 자료에서 사랑하는 전사에게 아픈 매를 들고 잠 못 이루시는 어버이의 모습을 뵈왔고 일어나라, 분발하라, 더욱 억세게 준비하라는 그이의 절절한 음성을 삼가 새겨들었다.

한두달도 아니고 한두해도 아닌 수년세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불민한 전사에게 학습자료들을 끊임없이 내려보내주시면서 처벌을 받는 기간이 그를 더욱 유능하고 세련된 정치외교일군으로, 강철의 혁명가로 준비시키는 수업과정으로 되게 하시였다.

그가 습득한 지식과 리론을 실천활동을 통하여 공고히 다지도록 하시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특별학습》기간에 큼직큼직한 일감들도 직접 맡겨주시면서 대들보를 다듬으시듯 전사의 자질과 능력을 키워주시였다.

그러던 어느해 12월 김양건동지가 위대한 장군님의 특사로 외국에 파견되게 되였을 때였다. 평양을 출발하는 날 김양건동지는 뜻밖에도 년로한 어머니가 사망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과업을 주시면 그 순간부터 전장을 달리는 병사처럼 순간도 헛눈파는 법을 몰랐던 김양건동지는 력사적사변과 잇닿아있는 막중한 임무를 놓고 달리 결심할수 없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가까운 동지들과 가족들에게 부탁하고난 그는 출발보고를 드리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을 찾아뵙게 되였다.

누구나 쉽게 대신할수 없는 일이기에 그를 보내셔야 하였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떠나기에 앞서 어머니에게 꼭 들려보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양건동지가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찾아가겠다고 말씀올리였으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러지 말고 꼭 어머니를 보고 가라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김양건동지는 비행장으로 향하던 바쁜걸음을 돌려 어머니의 령구앞에 서게 되였다. 일찌기 남편을 잃고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며 어쩌다 생긴 가마치마저도 어린 자식들을 위해 치마폭에 꽁꽁 싸군 하던 순박한 녀인, 다 자란 자식이건만 당을 받드는 길에서 자그마한 탈선이라도 있을세라 잔걱정을 놓지 않던 어머니의 령구앞에 꿇어앉은 김양건동지는 어머니, 위대한 장군님께서 저를 여기로 떠밀어보내주셨습니다라고 하며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어깨를 들먹이며 그가 드린 큰절이 어찌 세상을 떠난 늙은 어머니에게 올리는것이라고만 할수 있으랴. 혁명은 인간에 대한 최대의 사랑이라는 가장 숭고한 혁명관, 나는 곧 그대이고 그대는 곧 나자신이라는 열렬한 동지관을 지니신 자애로운 어버이께 드리는 무한한 감사와 흠모의 정이 어려 그의 눈물은 불처럼 뜨거웠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양건동지에게 전보다 더욱 무거운 직책을 맡겨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동무를 믿는다고 한없이 뜨거운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믿음, 위대한 수령의 믿음!

그것은 인간으로서, 혁명가로서 받아안을수 있는 사랑중의 가장 고귀한 사랑이고 누릴수 있는 행복중의 가장 큰 행복이며 평범한 인간도 신념의 거인으로 되게 하고 고목에도 청춘의 활력이 넘쳐나게 하는 열정의 원천이다.

그에게 있어서 너무도 가슴벅찬 이 영광은 또 한분의 걸출한 령도자를 높이 모시여 끝없이 빛나게 되였으니 김양건동지야말로 우리 당이 아로새기는 위대한 동지애의 력사를 뼈속깊이 체험한 긍지높은 한 증견자였다.

바야흐로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시대가 도래하던 9년전 어느날 김양건동지는 다함없는 경모심을 안고 우러르며 언제나 뵈옵고싶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날개라도 돋친듯 한달음에 달려간 전사가 정중히 올리는 인사를 다정히 받아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 시기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더 책임적인 직무에서 사업하게 된 김양건동지를 따뜻이 축하해주시면서 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언제나 잊지 말고 그에 보답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데 대하여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인자하신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며 자신께서는 비서동무를 믿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비서동무를 믿습니다!

전사의 가슴에 온 우주를 통채로 안겨주시는것만 같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믿음에는 당의 기초축성시기부터 손때묻혀 키워온 전사들을 자신의 곁에 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정,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까지 합쳐 혁명전사들의 삶을 더욱 빛내여주시려는 자애로운 어버이심정이 깃들어있었다. 동시에 그 믿음에는 뜻과 정을 함께 하고 피와 살도 나누는 동지적사랑으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실 그이의 드팀없는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나는 비서동무를 믿습니다!

자나깨나, 앉으나서나 경애하는 원수님의 음성이 가슴속에 메아리쳐 위대한 수령님들의 품에서 시작된 영광의 삶은 인생의 황혼기에 환희의 절정으로 더욱 줄달음쳤다. 절세의 위인의 이렇듯 위대한 믿음의 세계속에서 조국도 인민도 주체혁명의 새시대에 장엄히 들어서고있었다.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혁명전사들과 인민들에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믿음은 그 어떤 정치리념이기 전에 그이께서 지니신 숭고한 천품이고 누구나 한번 받아안으면 일심일체의 위대한 세계에 넋과 마음을 통채로 맡기게 되는 열화같은 포옹력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불보다 뜨거운 동지애와 태양의 인력과도 같은 친화력에 심장으로 매혹되군 한 김양건동지에게는 언제나 마음속에 안고 산 한장의 뜻깊은 기념사진이 있었다.

천만전사들과 인민들이 운명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고 살던 위대한 장군님을 뜻밖에 잃고 땅을 치며 비분에 떨던 피눈물의 해 12월의 마지막날이였다.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격정을 누르지 못하시면서 장군님의 성스러운 혁명생애를 뜨겁게 추억하시였다. 오래도록 금수산기슭의 하늘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숭엄히 우러르는 일군들에게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위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이어나가실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시고나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시였다.

참으로 력사에 길이 남을 뜻깊은 시각이였다. 앞에는 가야 할 생눈길 천만리가 펼쳐져있고 뒤에는 시련의 언덕을 넘고넘어 오직 당만을 충직하게 따라온 인민,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겨온 혁명의 려정이 있었다. 준엄한 투쟁의 길을 떠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과연 무엇을 믿고?》라는 력사의 물음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키워오신 사랑하는 인민들, 혁명동지들과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라는 철석의 의지로 대답하고계시는것이였다.

또 한분의 천출위인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영광스럽게도 그이의 웅지가 실린 뜻깊은 기념사진을 함께 찍게 된 김양건동지는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한별의 노래를 부르던 청년공산주의자들처럼, 열혈의 심장을 불태우며 위대한 장군님을 받들어모시던 당의 기초축성시기 일군들처럼 어려움도 나이도 다 잊고 자애로운 원수님의 품에 와락 안겨든 김양건동지는 벌써 그이께 삶과 미래를 다 맡긴 운명, 그이의 위대한 심장에서 흐르는 하나의 뜨거운 피방울이였다.

얼마후 김양건동지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그날의 사연깊은 기념사진을 받아안게 되였다. 기념사진에는 령도자와 전사의 마음이 한치의 간격도 없이 어울린 혁명적동지애의 감동깊은 순간이 소중히 담겨있었다.

하지만 김양건동지는 기념사진을 보고 또 볼수록 무한한 기쁨과 함께 평범한 전사로서 너무도 허물없이 행동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겹쳐들었다. 그의 안해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아무리 무랍없이 대해주신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수 있는가고 하며 야단하였다.

김양건동지는 다음날 경애하는 원수님께 안해에게서 꾸중을 들은 사실과 함께 죄스러움으로 하여 얼굴을 들수 없는 자기의 심정을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그 사진은 비서동무의 마음속진정을 그대로 담은것이기때문에 내가 그대로 내려보내주었습니다. 비서동무의 부인이 그 사진을 보고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고 하면서 나무람하였다는데 나에 대한 비서동무의 진심을 다 모르기때문에 그런 말을 하였을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김양건동지의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이였다. 한생을 함께 살아온 안해까지도 선뜻 리해하지 못한 자기의 행동에서 전사의 진심을 먼저 헤아리시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처럼 귀중히 여겨주시니 혁명전사의 크나큰 이 영광을 억만금을 준다고 바꾸랴, 열번 다시 태여난들 잊을수 있으랴.

그후에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김양건동지의 순결한 충정을 깊이 헤아려보시고 그가 로당익장하면서 혁명의 지휘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도록 적극 떠밀어주고 내세워주시였다.

때로는 전화로 찾으시여 혹은 곁으로 부르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고 현지지도의 길에도 자주 데리고 다니시면서 안목을 틔워주시였으며 급변하는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 책략있게 사업을 전개해나가도록 묘술도 안겨주시였다. 어느날에는 출장길에 오른 그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여러차례 은정깊은 말씀을 해주시고 또 언제인가는 당중앙위원회의 오랜 일군이라고 내세워주시며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두도록 은정어린 조치도 취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경애하는 그이의 친근한 음성, 하늘같은 기대를 가슴에 지녀 몸은 비록 로년에 이르렀어도 전사의 혁명열, 투쟁열은 언제나 드높았고 담력과 슬기는 언제나 세계를 굽어보는 자신감으로 충만되여있었다.

조선혁명의 명맥을 잇고 내 나라, 내 조국의 미래를 꽃피우시는 우리 원수님의 두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짐이 실려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에 그는 길을 걸어도, 자리에 누워서도 사색과 탐구를 멈추지 않았고 사업에서 만족을 몰랐다.

나는 경애하는 원수님과 팔을 끼고 어깨겯고 혁명하는 전사다!

이것은 김양건동지의 명예나 긍지이기 전에 신성한 자각이였고 한시도 흐릴수 없는 혁명가적량심이였다.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일, 원수님께서 관심하시는 문제라면 다 자기가 해야 할 일로 생각하였고 그이께서 심려하시는 일, 안타까와하시는 일은 그 어느것이나 참을수 없는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였다. 그런것으로 해서 그의 사색과 열정은 담당한 부문의 사업뿐이 아니라 과학, 교육, 체육, 인민봉사부문을 비롯하여 그 어디에나 새겨졌다.

언제인가 김양건동지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체육부문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어느 한 종목의 기재때문에 걱정하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즉시 부서성원들과의 협의회를 조직한 그는 물론 체육부문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라시는 일에 어떻게 네일내일이 따로 있을수 있겠는가, 경애하는 원수님께 기쁨을 드리는 일이라면 품을 들여서라도 기어이 해야 한다고 하면서 치밀한 조직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짧은 기간에 그 체육종목의 기재들이 그쯘하게 해결되게 되였다.

몇해전 어느 한 기회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전에 김양건동지가 있을 때 체육기자재들을 솔선 맡아 해당 부문 사업을 도와준데 대하여 뜨겁게 추억하시였다.

과학기술전당을 건설할 때에도 그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로고를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직접 현장에 자주 나와 걸린 문제들을 알아보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웠으며 원수님께서 나라의 교육사업을 두고 마음쓰신다는것을 알고는 스스로 어느 한 소학교의 후원자가 되여 학교개건공사를 힘있게 떠밀어주기도 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당에서 바라는 일이라면 열백밤을 지새우면서라도 최상의 수준에서 해내기 위해 아글타글 노력하는 그의 충정심을 헤아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비서동무가 항상 나의 사업을 보좌하기 위해 애쓰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나는 비서동무가 동지적인 믿음과 의리를 가슴에 안고 일을 더 잘해나가리라고 생각합니다.》

전사가 해놓은 일보다 그밑에 보석처럼 깔려있는 진정을 더 귀중히 여기시며 끝없이 믿음을 베풀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오르시였던 뜻깊은 날에도 동지애의 숭고한 화폭속에 전사의 삶을 빛내여주시였다.

주체103(2014)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김양건동지를 비롯한 일군들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시였다.

절세의 위인을 맞이한 기쁨을 그 장엄한 기상에 담아 떨치려는듯 백두산은 호호탕탕 천지를 진감하며 설레이는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전사들과 함께 거연히 산정에 서계시였다. 한치앞도 가려보기 힘들게 눈보라는 세차게 휘몰아치건만 경애하는 원수님과 함께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나아가는 전사들의 모습은 얼마나 긍지에 넘쳐있었던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선렬들이 우렁차게 부르던 《혁명가》의 노래소리가 금시라도 씩씩하게 울려퍼질것만 같던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전우들을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의 혁명정신,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안고 살면 세상에 무서울것도 없고 못해낼 일도 없습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김양건동지는 얼마전 다리치료를 받고나서 다시 대지를 활보하게 된 자기를 그이께서 왜 눈보라치는 백두산에 데리고 오르시였는지 그 숭고한 의도가 가슴가득 어려와 격정을 누르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때 백두의 혁명위업을 완성하는 길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혁명동지, 오늘의 빨찌산전우가 될것을 바라시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담아 김양건동지와도 뜻깊은 기념사진을 남기시였다.

원래 김양건동지는 성격이 유순하고 웬간해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이라는것을 낼줄 모르는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있었다. 하지만 대외사업마당에서 그는 점잖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면서도 우리 당의 권위와 조국의 존엄을 지키는데서는 맹호와도 같이 상대를 무섭게 다불러대군 하였다.

그가 이듬해 우리 조국앞에 엄중한 정세가 조성되였을 때 대담하고 능란한 활동을 벌릴수 있은것도 천하제일위인을 우러러 백두산에서 다진 억센 신념이 가슴속에 산악처럼 자리잡고있었기때문이였다.

걸음걸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슬기와 배짱을 키워주시며 정치외교전의 로장으로 내세워주신 자애로운 스승께 이 세상 가장 숭엄한 어휘들을 고르고골라 경의를 드린대도 모자라건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조국과 혁명앞에 세운 전사의 공로를 영웅메달로 빛내여주시였다.

김양건동지의 가슴에 빛나던 영웅메달, 혁명가의 위훈을 증시하는 그 값높은 영예는 과연 무엇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있는가.

위대한 우리 시대의 영웅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상과 신념을 닮고 그이께서 안겨주신 숭고한 사랑과 믿음을 목숨처럼 간직하고 싸우는 혁명적동지애의 고귀한 산아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신다.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영생의 품


《우리 수령님들과 원수님께서 미흡하기 그지없는 나를 지금껏 키워주고 보살펴주시였소.

경애하는 원수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맡은 사업을 더 잘해야 할텐데…

여보, 나는 이젠 집에 더 들어올것 같지 못하오.》

《당신 언제 집에 꼬박꼬박 들어온적이 있었나요. 식사랑 제때에 꼭꼭 하면서 그저 일만 잘하세요.》

이것은 김양건동지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날 병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면서 안해와 나눈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안해와 헤여진 그길로 혁명초소로 향한 김양건동지는 아래일군들에게도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주시는 과업을 한몸이 열백쪼각 난대도 무조건 최상의 수준에서 집행하며 그이의 사상과 령도를 더욱 충직하게 받들자고 절절히 당부하였다. 이것이 동지들과 가족들이 본 김양건동지의 마지막모습이였다.

누가 알았으랴. 경애하는 원수님의 그처럼 극진한 보살피심속에 로당익장하던 김양건동지가 뜻밖의 일로 그렇게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될줄을.

금시라도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 안길것만 같은 전사가 운명하였다는 비보를 받으신 4년전 12월의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너무도 억이 막히고 믿을래야 믿을수가 없으시여 몇번이고 그의 이름을 외우시면서 일손을 잡지 못하시였다. 그의 장의와 관련한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고도 떠나간 전사에 대한 생각으로 끼니도 잊으시고 잠도 이루지 못하신채 한밤을 지새우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김양건동지의 령구가 안치된 곳으로 향하시였다.

억장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그이의 비통한 심정을 전하듯 하늘에선 흰눈이 하염없이 흩날리고있었다.

가고싶지 않으신 길, 가시면 사랑하는 전사와의 영결을 어차피 인정하셔야 하겠기에 정녕 떨어지시지 않는 발걸음이였다.

꿈속이였으면 얼마나 좋으랴. 한해전 어느날처럼 전사의 병문안을 가시는 길이라면 그이는 얼마나 기쁘시랴.

그때도 이렇게 흰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이였다. 발목을 상한 김양건동지를 위해 구체적인 치료대책까지 면밀히 세워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나오시였다.

중병도 아니고 그저 발목을 좀 다쳤을뿐인데 경애하는 원수님께 커다란 심려를 끼쳐드리고 나라의 천사만사를 돌보시느라 분망하신 그이께서 몸소 전사의 입원실을 찾으시게 하였으니 김양건동지는 죄스러움과 감격이 엇갈린 커다란 흥분속에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자리에서 벌떡 뛰쳐일어나려고 하였으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안깐힘을 쓰는 전사를 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다정히 그의 어깨를 눌러 앉혀주시며 비서동무가 다리를 다쳤다는데 어떻게 치료를 받고있는가, 건강상태는 어떤가 따뜻이 문안도 하시고 치료를 잘 받으라고 거듭 은정어린 당부도 하시였다.

그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의 다리치료를 위해 특별조치를 취해주시고 곁으로 부르시여 체육경기관람도 함께 하시면서 치료를 잘 받도록 고무해주시였으며 1년이라는 기간을 통채로 건강회복기간으로 정해주시고 온천치료대책까지 세워주시였다.

해마다 그의 생일이 오면 아무리 바쁘시여도 꼭꼭 음식상을 차려주군 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 기쁜 일이 있어도, 무엇 하나 좋은것이 생겨도 늘 전사를 먼저 찾아 정을 나누시고 애지중지 그를 돌보시느라 마음놓으신적 없건만 어버이의 진정을 정녕 몰라서 이렇게 빨리 간단 말인가.

이윽고 그이께서는 일군들과 함께 장의식장에 들어서시였다. 비통하게 울리는 추도가의 선률속에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 전사를 바라보시는 순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끝내 참고참았던 오열을 터치시였다.

인민은 행복의 길만 걷게 하고 자신의 고생길은 절대로 보이지 않게 해야 한다시며 언제나 해빛처럼 밝고밝은 미소만을 지으시던 그이이시였지만 이번만은 어쩔수가 없으시였다.

싸늘하게 식은 전사의 시신에 손을 얹으시고 너무도 큰 슬픔에 눈물흘리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텔레비죤화면으로 뵈오면서 온 나라 인민들이 울었다. 그이의 환하신 영상을 뵈옵기만 하여도 힘과 용기를 찾는 인민이기에, 단 한순간이라도 그이께 기쁨을 드리는것을 간절히 소원하는 인민이기에 수도 멀리 조국땅 한끝에서도 아픔의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동지여, 그대는 진정 우리 원수님의 가슴에 이다지도 아픈 상처를 남긴채 무정하게 떠나려는가. 시련을 헤치는 조국과 인민을 위해 고생도 많으시고 할 일도 산처럼 많고많으신 우리 원수님의 가슴을 그대는 어쩌면 이렇게도 모질게 허벼놓는단 말인가.

한생을 같이하여온 남편을 잃은 슬픔도 컸지만 고인의 미망인인 신행송녀성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비애를 금치 못하시며 유가족들앞으로 다가오시자 온몸이 졸아드는듯 한 안타까움에 진정할수 없었다.

그는 이미 남편과 함께 여러차례나 경애하는 원수님을 만나뵈왔었다. 어느해 3. 8국제부녀절에는 김양건동지의 부부도 경애하는 원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달려가 그이의 팔을 꼭 끼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받아안았었다. 그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칠순이 넘은 그들부부를 다정히 세워주시고 몸소 사진을 찍어주시며 따뜻한 축복을 안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손수 찍어주신 부부사진을 보며 얼마나 행복에 겨웠던가. 그런데 남편이 없이 나만 홀로 서있는것을 보시면 그이께서 또 얼마나 가슴아파하시랴 하는 생각에 눈물이 샘처럼 흘러내렸다.

그러는 신행송녀성의 손을 잡고 따뜻이 위로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이윽고 전사가 남긴 어린 손자들앞에 이르시자 더욱 아픈 마음을 누르지 못하시면서 그들을 한품에 뜨겁게 안아주시였다. 생전에 전사의 무릎우에서 재롱을 부리며 사랑을 독차지하였을 그 어린것들을 보시니 전사를 대신해주고싶은 심정도 솟구치시고 그들의 몸에서 전사의 체취도 풍겨오는것만 같으시여 오래도록 꼭 껴안아주시였다.

떠나시던 발걸음을 돌리시여 귀중한 전우의 모습을 가슴에 깊이깊이 간직하시려는듯 그의 령구를 보고 또 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

이런 충직한 혁명전사를 잃은것은 우리 당과 혁명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된다고, 김양건동무는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자신의 충실한 방조자, 전우였다고 하시면서 함께 손잡고 해야 할 많은 일들을 앞에 두고 이렇게 간다는 말도 없이 야속하게 떠나갔는데 마지막으로 손이라도 한번 따뜻이 잡아보고 보냈으면 이다지 가슴허비지는 않겠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에 온 장내가 숭엄한 격정에 휩싸였다.

잊지 못할 그날로부터 또다시 세월은 흘러갔다. 혁명은 줄기차게 전진하고 조국은 무수한 시련의 고비를 넘고 헤치며 위대한 승리들을 력사우에 아로새기였다.

거창한 력사적대업들을 하나하나 실현하고 세계를 경탄시키는 사변들을 결행하실 때마다 우리 원수님 얼마나 전사가 그리우셨으랴.

《김양건동무가 있을 때…》라고 말머리를 떼시면서 자주 그를 추억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우러르며 일군들은 몸은 비록 자신의 곁을 떠났어도 귀중한 전우를 언제나 마음속에 두고계시는 그이의 변함없는 사랑과 동지적의리의 세계를 눈시울뜨겁게 절감하였다.

주체105(2016)년 새해의 첫아침, 이날도 과학기술전당 준공식장에 몸소 나오시였다가 이 대상건설을 위해 뛰여다니던 김양건동지를 추억하시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득 남편을 잃고 새해를 맞이하고있을 그의 안해에 대하여 걱정하시였다. 그리하여 해당 일군이 김양건동지의 안해를 찾아오게 되였고 당에서 품어주고 돌봐주자고 하시며 그의 경력까지 헤아려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속에 년로보장을 받았던 신행송녀성이 다시 혁명초소에 서게 되였다.

또 한해를 보내고 맞이한 주체106(2017)년의 설명절날이였다. 늘 활력에 넘쳐있던 전사의 모습을 못 잊어 그려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그의 유가족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아버지에게 매여달리듯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에 안긴 김양건동지의 가족은 그때 자기들의 육친의 정보다 혁명전사를 그리시는 원수님의 동지적의리의 세계가 얼마나 열렬한것인가를 가슴뜨겁게 새겨안게 되였다.

이날 전사의 유가족의 친어버이가 되시여 다심한 사랑을 기울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오래동안 사업하면서도 그 어떤 특권도 허용하지 않은 고지식하고 량심적인 김양건동지에 대하여 추억하시면서 그의 자식들이 아버지처럼 당과 혁명에 충실하도록 사업과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세월의 흐름으로도, 육체적생명의 죽음으로도 가를수 없는 이 일심일체의 혈연적뉴대속에서, 이 위대한 동지애의 장엄한 력사속에서 우리 당의 혁명전우 김양건동지는 오늘도 래일도 고귀한 생을 이어갈것이다.

시련도 광풍도 과감히 짓부시며 광명한 미래에로 나아가는 천만의 심장에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절절한 말씀이 메아리되여 울린다.

혁명의 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한 전우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는 혁명을 추동하고 전진시키는 원동력이다!

우리 당은 앞으로도 혁명적동지애의 위력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할것이다!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은 혁명적동지애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두리에 산악같은 신념의 성새, 사랑과 의리의 혼연일체로 더욱 굳게 단결할것이며 그 불패의 힘으로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의 혁명위업을 기어이 완수하고야말것이다.



본사기자 김준혁

본사기자 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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