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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호교수는 이즈막에 매우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이 출토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력사학계의 학자들과 출판보도계의 기자들은 물론 낯모르는 로동자, 사무원, 청년학생들, 지어는 가정부인들도 찾아왔다. 유적의 발굴경위에 대하여, 유적출토의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문의하였다. 강명호는 상대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유적출토는 자기나 고고학연구소의 학술적공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어느날에는 최현이 강명호를 찾아왔다. 방안에 들어선 최현은 오랜 무관답게 차렷자세를 취하며 정중히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참으로 오래간만에 이렇게 만나게 되였습니다.》
강명호는 의아한 눈빛으로 최현을 여겨보았다. 숱진 눈섭을 치켜올리며 크게 벌려뜬 상대의 눈에는 옛지기를 만난듯 한 반가움이 어려있었으나 강명호는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어데선가 만났던것 같은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으나 딱히 알수 없었다.
《가만, 뉘시던가요?》
《제 최현입니다.》
《아, 그렇군요. 어서 앉으십시오.》
낯은 설었으나 이름은 익히 알고있었다. 강명호는 의자를 권하고 마주앉았다.
최현은 책상우에 놓인 강명호의 조글조글한 손등을 무랍없이 쓸어만졌다. 참말로 오랜지기를 만난듯 한 반가움의 표시였다.
《선생님, 이게 몇해만입니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하여도 선생님은 펄펄한 장년기의 초반이였는데 인제는 이렇게 년로하셨군요.》
강명호는 또다시 어리둥절하였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최현을 만났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가 어데서 언제 만났댔던가요?》
《중국 동북지방의 명승지인 승덕이라는 곳에서 얼마간 떨어진 들판에서였지요. 날자는 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고구려시기의 자료를 수집하던 선생님은 저에게 녹쓴 활촉 하나를 기념으로 주지 않았습니까.》
드디여 기억이 떠올랐다. 강명호는 반가움에 넘쳐 최현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럼 그때 독립군대장이 당신이였던가요?》
《옳습니다. 왕년에 아버지를 따라서 독립군에 참군했던 일이 있습니다.》
《미처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때 최현동지가 아니였다면 고생스레 수집했던 귀중한 사료들이 마적들의 휴지장이 될번 하였지요.
강명호는 문득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덮쳐잡으며 물었다.
《그 가방의 뚜껑 안쪽에 한자로 최득권이라는 이름이 씌여있는데 그건 어찌된 일입니까?》
최현은 히죽이 웃으며 응대했다.
《독립군시절까지 제 이름은 최득권이였습니다.
《그랬댔군요. 만일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의 상봉이 늦어지지는 않았을겁니다. 최현동지야 우리 인민들속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것만큼 내가 진작 찾아가거나 편지라도 했을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상봉이 늦어진것은 최현동지탓입니다.》
《때늦게나마 제가 오늘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오게 된것은 우리
강명호는 최현의 우리
강명호는 최현에게 머리를 약간 수그리며 조용히 물었다.
《〈우리
최현은 그 물음이 새삼스럽다는듯 숱진 눈섭을 치켜올리며 응대했다.
《
최현은 주름진 얼굴에 사뭇 경건한 빛이 떠오르는 강명호를 마주보며 뒤를 이었다.
《산에서 싸우던 우리들은 어린시절부터 비범한 군사적천품을 보여준 자제분을 오래전부터 그렇게 부르군 했습니다. 최근년간에는 군대내 총참모부나 총정치국 동무들이 〈청년장군〉으로 부르군 합니다.
강명호는 크게 감심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자기의 진정을 토로하는 강명호의 주름진 얼굴에 혈조가 번지면서 경건한 빛이 떠오르고있었다.
최현은 로학자의 실토에 크게 공감하면서 저력있는 목소리로 응대하였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도 내 심정을 기탄없이 펴보이겠습니다. 선생님도 아다싶이 나는 청춘시절 독립군에서 싸우던 때부터 한평생 군사에 몸을 잠그어온 사람입니다. 한뉘 무관으로 살아온 사람이지요. 그런데 우리
어쩌면
우리
강명호는 제꺽 호응하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과시 옳은 말씀입니다. 오늘은
최현은 강명호의 열기띤 목소리에 뜨거운 공감을 느끼며 책상우에 놓인 로교수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선생님의 그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입니다. 인민군대의 모든 장병들의 심정도 선생님과 같습니다.》
비록 년령차이가 10여년이 넘고 직업도 다르지만 두 로인은 청춘시절의 지기처럼 력사의 과거와 미래를 두고 공통된 감정에 사로잡힌
잠시후에 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오늘 강선생에게 반가운 소식을 한가지 전하겠습니다.》
《무슨 소식입니까?》
강명호는 호기심을 드러냈다.
《내 오늘 대학당위원장을 만났댔는데 우리
《물론입니다. 이삭은 알차고 영글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지요. 내가 알기에도 그 학급의 당세포에서는 오래전에 입당청원서를 쓰라고
강명호는 가슴속에 품어오던 오랜 숙원을 풀게 된듯이 기뻐하였다. 그는 여러달전에 최정택과 함께 대학당위원회를 찾아가서
《
《어찌 대학뿐이겠습니까. 우리
최현은 엄숙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
1961년 7월 22일이였다. 입당심의를 하는 당세포총회는 학급의 강의실인 3층 9호실에서 정중히 진행되였다. 한창 무더운 여름철이였지만 청사의 서쪽에 자리잡은 강의실은 서늘한편이였다.
워낙
당세포총회에서는 전원찬성으로
《동무들, 고맙습니다. 이미전부터 당생활을 하여오던 동무들이 앞으로 신입당원인 저를 잘 이끌어주고 도와주십시오.》
스치는 인사말이 아니라 이 순간에 가슴에 넘치는 진정을 말씀하시였다. 어쩐지 당원들 한사람한사람이 새삼스레 친근하게 안겨오는것을 느끼시였다.
당세포총회는 끝났으나 흥분은 숙어들줄 몰랐다. 오늘을 계기로 인생의 새로운 출발계선에 나섰다는 엄숙한 자각이 내처 심장을 격동시켰다.
《정일동무, 복도에서 선생님들이 기다립니다.》
자리에서 일어서신
세 교수는 각각 들고온 꽃송이를 안겨주며 기뻐하였다.
《정일동무, 입당을 축하합니다.》
꽃송이들을 받으시는
학우들로부터 축하를 받을 때와는 다른 강렬한 감격을 느끼시였다.
지난날에 깊은 사연이 얽혀진 세 교수이지만 이렇게 꽃송이까지 가지고 축하를 해주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하시였다.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이 잘 배워주고 이끌어주셨기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강명호가 두번다시
《우리 세사람은 정일동무의 입당을 학수고대하면서 당조직에 그러한 심정을 알린바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 배워주고 이끌어주었다는것은 당치 않은 말입니다. 그 말에 얼굴이 뜨거워지누만요. 그와는 반대로 정일동무의 현명한 깨우침과 따뜻한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것입니다. 내 일전에 최현동지앞에서도 솔직한 심정을 터놓은바 있지만 정일동무는 실상 우리들의 스승입니다.》
《선생님,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어디까지나 배우는 학생입니다. 왜 듣기에 거북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실상 정일동무는 학생복을 입었을뿐이지 사상리론적높이와 지식의 폭에 있어서 대학의 어느 교수도 따를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있습니다. 아까 우리 셋이 정일동무를 두고 솔직한 심정을 나누었지만 강선생의 심정은 나나 최선생의 심정입니다. 강선생이 최현동지한테서 들은바에 의하면 군대에서는 이미 정일동무를 〈우리
《부학부장선생님은 강선생님보다도 한술 더 뜨시는군요. 제발 이러지들 마십시오.》
《
《가만! 선생님, 그만하십시오.》
…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대학청사는 아직 새벽의 정적에 잠겨있었다. 룡남산마루에 오르시니 불현듯 지난해 9월 1일 조선을 빛내일 맹세를 다지시던 추억이 방불하시였다. 그날의 격정도 되살아났다.
주체의 한길로 억세게 나아가리
사나운 풍랑도 폭풍도 헤쳐
조선을 이끌고 미래로 가리
아, 조선아 너를 떨치리
지난 한해동안의 학창생활을 돌이켜보시였다.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심히 혼탁되여있는 대학교육의 실태를 꿰뚫어보시고 여러 과학의 분야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오시였다. 부인할수없이 그 투쟁은 좋은 결실을 가져왔다.
정치경제학, 력사학, 철학, 문예학 등 사회과학전반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잔재가 극복되고 주체가 확립되였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이 출토되고 민족의 시원문제가 명백히 해명된것은 민족사적의의를 가진다고 할수 있다.
생산실습을 통하여 산지식을 습득하고 룡성도로공사에 참가하여 육체적단련을 한것은 혁명인재로 준비하는 좋은 계기였으며 교육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사업의 중요한 고리의 하나였다. 대학생들속에서 벌어진 만페지책읽기운동은
얼마나 보람찬 학창의 나날, 빛나는 혁명활동의 나날이 흘렀는가. 이 나날을 거쳐서 주체확립을 지향한 대학교육사업에서는 전변이 일어나고 나는 드디여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다. 혁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당원이 된다는것은 새로운 출발계선에 나선다는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흔히 입당하는 날을 제2의 생일로 여기는것은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니다. 나는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것으로 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셈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리정표가 세워졌다. 이 리정표를 계선으로 학창생활의 전반기는 끝나고 보다 정력적으로 혁명활동을 벌려야 할 학창생활의 후반기가 시작될것이다. 이제 남은 학창생활기간에 혁명활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이끌어나가시려는 결심이 가슴속에 차오르시였다.
아침노을이 시시각각으로 더 붉게 퍼져오르면서 공간과 대지를 곱게 물들이였다. 아침노을의 자락이 온몸을 휩싸는 순간
누리에 빛나는
대를 이어 해빛으로 이어가리라
주체의 붉은 노을 지구를 덮을
공산주의 그날을 앞당겨오리
아, 조선아! 나의 조선아!
×
며칠후 일요일이였다.
그들을 만나신
기쁨에 넘쳐 그들과 인사를 나누신
《오늘 어떻게 이렇게 모두 오셨습니까?》
그 물으심에 다소 뜻밖인듯 투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머밋거리였다.
《어떻게라니? 우리
림춘추의 말이였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년로하신분들이 이렇게 걸음을 하셨습니까?》
《그게 큰일이 아니면 어느것이 큰일이겠습니까.
림춘추는 말마디에 그루를 박았다.
이때 황순회와 김옥순이 승용차에서 꽃송이들을 가져다 남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꽃송이를 받은 투사들은 그것을 정히 두손으로 받들어
《입당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녀투사들은 꽃송이를 드린 후
《어머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김옥순이 목메인 어조로 뇌이였다. 목소리가 갈리며 목밑으로 잦아드는 대신 두눈에 눈물이 고이였다. 황순희도 저도 모르게 소리없이 흐느꼈다.
오늘의 경사를 보지 못하고 너무도 일찌기 곁을 떠나신
《로친네, 이 기쁜 날에 우리
최광이 이쪽으로 한걸음 다가오며 김옥순에게 하는 말이였다.
《녀자들이란…》
최광의 말꼬리를 잡고 령감을 마주보는 김옥순의 눈에 빛이 가해졌다. 청춘시절에 남편과 함께
최광의 부인 김옥순은 어깨에 왕별을 여러개씩 얹고 군대에서 책임적인 직무를 맡고있는 남편을 가정에서는 꼼짝 못하게 다스리는것으로 일찍부터 녀투사들속에서 소문이 나있었다. 그는 청춘시절의 자존심과 타성을 로년기의 오늘까지 이어가고있었다. 그러나 김옥순은 령감의 눈시울도 젖어있는것을 보고는 더 항변을 하지 않고 침묵해버렸다.
최광도 이 경사로운 일을 접하고보니
《어서 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기왕 오신 걸음인데 저와 이야기라도 나누고 가셔야지요.》
투사들은
림춘추가 방안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참, 세월이란 옛 사람들이 말하다싶이 류수와 같소. 우리
좌중은 일시에 숙연한 감회에 잠기였다. 그때 환성을 올리며 우리 민족사에 대통운이 텄다고 기뻐하던 일이 엊그제 일처럼 누구의 기억에나 방불하였다. 사령부를 멀리 떠나 적후공작에 나가있던 투사들은 련락원을 통해 경사로운 소식을 전해듣고 감격을 이기지 못해 《백두광명성 솟았다!》라는 구호를 아름드리나무들에 새겼다.
림춘추가 여전히 생각깊은 어조로 뒤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입당을 하는 날은 인생의 두번째 생일이라고 하오. 입당은 인생의 중요한 리정표이지요. 이것은 우리
우리모두가 이미전부터 확신해온것처럼 우리
투사들은 엄숙한 감정에 휩싸여
오백룡이 곁에 앉은 림춘추의 무릎을 치며 경탄조로 입을 열었다.
《역시
고개를 숙이고계시던
《저는 지금 대학생에 불과합니다. 듣기에 거북한 말씀들은 삼가해주십시오.》
최광이 숱진 눈섭을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청년장군은 대학생이지만 인제는 당원이 된것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