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을해가 서켠으로 기우는 저녁무렵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업을 마치고 교정을 나서시였다. 학급동무들은 이미 돌아간지 오래였다. 그이께서는 강의가 끝난 후 대학민청에 들리셨던것이다. 만페지책읽기운동과 천리마학급칭호쟁취운동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킬데 대한 문제를 토론하느라 늦어지셨던것이다. 교정을 나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뻐스정류소로 걸음을 옮기면서 요즘 쓰는중인 경제학론문의 체계를 더듬어보시였다. 길에서 구상을 깊이하면 오늘 밤에 그만큼 집필속도를 높일수 있는것이다. 그 론문은 문제로 된 송금석교수의 무역경제학강의가 있은 그날부터 구상을 익히신것이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자립적민족경제건설과 다른 나라와의 경제기술교류의 호상관계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필요를 느끼시였다. 그것은 리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시급히 해명을 기다리는 문제였다. 원칙적립장에서 그 어떤 편향도 없이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기술교류를 활발히 벌린다면 자립적민족경제를 성과적으로 건설하는데 기여할수 있는것이다.

정일동무!》

사색을 몰아가며 걸음을 옮기시는데 큰길 맞은편에서 느닷없이 부름소리가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돌리시였다. 밤빛중절모를 쓰고 큼직한 가방을 든 중년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시였다. 저게 누군가, 송금석선생님이 아닌가? 방금 정류소를 떠난 팔동교행뻐스가 그의 모습을 가리우며 지나갔다. 그 시간이 무척도 길게 흐르는것 같이 느껴지셨다. 뻐스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얼핏 나타났다가 또다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려는 그를 붙잡지 못할것 같으시였다. 마침내 뻐스가 사라지자 송금석의 모습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왔다. 전에 보시지 못한 진회색양복을 입었지만 류달리 미간이 넓고 입술이 두툼한 그는 분명 송금석이였다! 영원히 잃을번 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신듯 한 기쁨이 북받치며 심장이 세차게 고동쳤다. 그러면 그렇지, 송선생님이 어찌 조국을 영원히 떠나갈수 있으랴. 형언할길 없는 반가움에 눈시울이 화끈해지셨다.

《선생님!》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성을 터치며 송금석이 서있는쪽으로 달려가시였다.

정일동무!》

송금석의 컴컴하던 얼굴이 삽시에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의 기쁨과 반가움의 빛발이였다. 그는 수치감에 휩싸이며 길복판에 굳어진채 무겁게 머리를 떨구었다.

《선생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인사를 하시며 그의 손에서 가방을 앗아드시였다. 송금석의 볼편으로 경련도 아니고 미소도 아닌 뜻모를 파동이 스쳤다. 차마 마주볼수가 없는듯 외면을 하는 그의 눈은 금시 뿌옇게 흐려졌다.

정일동무, 고맙습니다, 흙주머니를 보내주어서…》

흐느낌에 젖어 어음이 똑똑치 않게 울려나오던 목소리가 마침내 잠겨버리였다.

《선생님, 어서 대학으로 가십시다.》

《정작 되돌아오기는 했으나 교정에 다시 들어설 면목이 없구려.》

송금석은 주밋거리며 어설픈 미소를 그리였다.

《왜 이러십니까, 선생님들이 모두 기다립니다.》

송금석은 김정일동지께서 이끄시는대로 걸음을 옮기며 그 사이에 겪은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을 다 터놓은 그는 한결 마음이 후련해졌다. 번거롭던 상념과 복잡하던 감정이 정화되면서 김정일동지에 대한 감사의 정만이 가슴에 남았다.

대학청사앞에 이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되돌아가야 하시였다. 함께 들고온 가방끈 한쪽을 금석에게 넘겨주시였다. 금석은 선자리에서 헤여지기가 싫어 머뭇거리였다.

《어서 들어가보십시오. 선생님이 오신걸 알면 학부선생님들이 모두 기뻐하실겁니다.》

김정일동지께서 확신에 넘치는 어조로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정일동무, 고맙습니다!》

송금석은 김정일동지에 대한 자기의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범상한 말만 되풀이한것을 안타까와하면서 용기를 내여 현관안으로 들어갔다.


×


송금석은 오빈우에게 돌아왔다는 보고를 하려고 총장실로 갔다. 퇴근을 하려고 서둘던 오빈우는 방안으로 들어서는 송금석을 보자 반색을 하였다. 하지만 송금석은 그를 대하기가 전과 달리 어색했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고 간단히 말하였다. 떠날 때에도 총장에게는 자기 심정을 헤쳐보이지 않았었다. 자기반성을 시작한 때로부터 총장에 대한 전날의 존경과 신뢰가 사라져버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서 돌아갔다 하더라도 부모를 잃은 비애란 이를데가 없지. 그러나 어찌겠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는 일이니까.》

오빈우는 측은한 어조로 위로하였다.

《…》

《그래 요즈음 쏘련형편은 어떻소?》

《뭐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쏘련의 현실을 투시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긴 그랬을테지. 경황없는 걸음이였으니까. 모스크바를 거치면서도 선생은 응당 들려보아야 할곳도 들리지 못했더군, 쎄브기관지 편집국에서 며칠전에 회보가 온것을 보니까.》

오빈우는 책상서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쎄브기관지에 보냈던 선생의 론문이요. 편집국의 옛 친구가 내앞으로 보내왔더군. 선생의 론문은 두어달후에 싣겠다오. 편집국에서 륜독을 했는데 일치하게 론문을 좋게 평가했다오. 그런데 몇군데 수정을 해달라고 했소. 구체적인 수정방향은 론문과 함께 보내온 편지에 적혀있소.》

송금석은 아무런 흥심도 없이 봉투를 자기앞으로 끄당겼다. 그리고는 자기 몸에서 태여난 기형아를 지켜보는 어머니처럼 서글픈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론문이야말로 자기의 사대의식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정신적소산이다. 그것을 투고하면서 우리 나라 경제발전에 쎄브가 크게 기여해주리라고 황홀한 꿈을 꾸던 일이 상기되였다. 얼마나 허망한 일이였던가.

오빈우는 머리를 기웃했다. 이쪽에서 뛸듯이 기뻐하리라고 여겼는데 묵묵히 앉아있으니 웬일인가? 그는 상실의 비애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에게는 자기 생활의 목표가 의연히 남아있는거요. 어느때까지 비애에 잠겨 맥을 놓는것은 선생답지 않은 일이요. 인차 론문을 수정하시오. 수정이 늦어지면 모처럼 차례진 발표의 기회를 놓칠수 있소.》

도저히 수긍할수 없는 권고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자기 송금석의 성공을 바라는 진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순간에 그의 권고를 정면에서 물리치고싶지는 않았다. 또 그러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서글피 여겨졌다. 가슴을 헤치고 그와 진지하게 말할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는것이다.

《총장선생, 저는 가보겠습니다.》

《먼 려정에서 무척 지친 모양이구만. 원고를 수정한 다음에 나한테 보이시오.》

송금석은 응답없이 총장실을 나섰다. 이미 교원들이 다 퇴근한 청사안은 조용했다. 현관밖으로 나온 송금석은 청사옆의 방울나무그늘밑으로 가서 줌안에 말아쥔 원고에 성냥을 그어댔다. 새빨간 불길이 널름거리며 솟아올랐다. 어느결에 새까맣게 재가 된 종이장들이 몸부림치듯 오그라들었다. 거기에는 아직도 글자들의 흔적이 남아있는듯싶었다. 그러나 다시 불길이 스치자 이번에는 새하얀 재로 변하여 바람에 날려가버리였다. 송금석은 불길이 꺼진 후에도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있었다. 그는 어깨를 솟구며 교정의 청신한 밤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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