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버님, 제가 돌아왔습니다.》

송금석은 옛집에 들어서자 려장도 풀새없이 아버지의 침대옆으로 다가갔다. 중태에 빠진 아버지는 자는것인지 의식을 잃은것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다가오는 림종을 피할수 없다는것이 확실했다. 살이 쭉 빠져서 검은색이 도는 피부밑에서 골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우에 죽음의 그림자가 떠도는듯싶었다. 곁에 선 늙은 계모가 아버지의 팔굽을 안타까이 흔들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이 왔는데 좀 정신을 차리구려.》

아버지는 서서히 눈을 떴다.

《아버님, 제올시다.》

송금석은 아버지의 머리우에 깊이 머리를 수그렸다.

멍하니 흐려졌던 아버지의 눈에 빛이 가해졌다.

《네가 왔구나!》

아버지는 일어나려고 두팔을 부들부들 떨며 허우적이였다.

《아버님, 누워계십시오.》

송금석은 아버지의 팔을 잡아 눌러주며 끓어앉았다.

《아버님, 불효막심한 이놈을 용서하십시오.》

이 순간에는 어쩐지 곁에서 돌보아드리지 못한 자기의 불찰로 아버지의 생명이 끝나가는것만 같이 생각되여서 눈물이 쏟아졌다.

《얘, 일어나거라.》

아버지의 푹 꺼진 눈에도 눈물이 고이였다. 하지만 잦아들던 피흐름이 되살아나는듯 주글주글한 얼굴에 미세한 혈조가 번지였다. 아들을 본 기쁨이 그에게 최후의 불꽃과도 같은 생기를 주었다. 저녁에 송금석은 제 손으로 아버지에게 미음을 권하였다. 계모의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어제부터 곡기를 끊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들의 손에 정히 떠받들린 미음숟가락을 본 아버지는 까실까실하게 말라버린 입술을 벌리고 달게 받아먹었다. 아들을 본 덕에 얼마간 원기를 회복한 아버지는 깊은 회억에 잠기며 말하였다.

《내 요사이 꺼져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한생을 돌이켜보니 한스러운 일이 실로 한두가지가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애국심이 없지 않아 왜적과 싸웠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역에서 이역으로 쫓겨다니던 나머지 이 세상 한끝 여기까지 굴러와서 생을 마치게 되였다. 원동의 저 우쑤리강변에서 살림을 펴고 살적에 김일성장군님께서 새로운 조선군사를 일구고 백두산에서 싸우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는 내 나이 40대여서 넉근히 다시 총을 메고 나설수 있었으나 비루하게 이것저것 재면서 백두산에 달려갈 결심을 못했었다. 그 잘못이 늘 마음속의 옹이로 남아있었던지라 해방후 너를 조국에 내보냈었다. 하긴 너도 그때 뜻이 없지 않아서 귀국하기를 원하였지. 아무튼 너만이라도 해방된 조국에서 장군님을 받들어 새 나라 건설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하니 이 아버지는 이역에 살면서도 조국앞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그게 다 구차스러운 자기위안이 아니겠느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같이 겨레의 아들로 한생을 살아야 할것이다.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니 조국에서는 미국놈의 사등뼈를 분질러놓은 기세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는데 그 속도가 한달음에 천리창공을 주름잡는 전설의 준마에 대비된다니 얼마나 장하고 기쁜 일이냐. 헌데 나는 그러한 조국의 륭성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것없이 타국에서 저승길을 가게 되였으니 여한이 이를데 없구나!》

아버지는 곁의 사람이나 겨우 들을 정도로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회한에 젖은 목소리가 송금석이한테는 뢰성처럼 들리였다. 아버지의 념원과는 너무도 어긋나게 살아온 자신을 깨달았기때문이였다. 만일 조국과 겨레를 위하여 쇠와 돌처럼 의지가 굳세기를 원하며 아버지가 지어준 《금석》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학생들앞에서 사대의식으로 얼룩진 내용을 강의하여 물의를 일으킨 사실을 아신다면, 이번 걸음에 영원히 조국과 리별할 생각을 하는 이 아들의 내심을 아신다면… 아버지는 폭발하는 분격을 참을수 없어 기절하실것이다.

《금석아, 어서 가져온 조국의 흙을 내놓아라. 내 팔자 기구하여 태를 묻은 고국에 가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되였으니 참으로 절통스럽다. 실로 그 마음 비길데 없은즉 조국땅 한줌의 흙에서 평생 그리도 가보고싶던 삼천리근역을 마음속에 부여안아보련다.》

아버지는 기를 쓰고 웃몸을 일으켰다. 숨이 붙어있는 이상 어찌 누운채로 어머니대지와 상봉을 하랴 하는 숭엄한 감정이 그를 지배하는듯 했다. 송금석은 황황히 려장을 뒤지였다. 그러나 흙주머니가 없었다. 눈앞이 캄캄해왔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분주히 생각을 더듬던 그는 그만 사무실에 두고왔다는것을 마침내 깨달았다. 이런 엄청난 실수를 하다니, 얼른 밖에 나가서 정원의 흙을 파다가 아버지에게 보여드릴가? 조국의 흙과 이 고장 흙의 조성이 별로 다를수는 없었다. 눈속임을 하자면 간단하다. 그러나 어찌 그렇게 할수 있으랴. 아버지의 마지막부탁을 거짓으로 대답한 죄악은 영원히 씻을 길이 없다. 송금석은 솔직히 고백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아버지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조국을 떠날 때 덤비다가 그만 흙주머니를 두고 왔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에 피끗 실망의 빛이 서리더니 그것이 곧 무서운 노기로 바뀌였다.

《불효막심한 이놈! 잊을것이 따로 있지 그걸 잊는단 말이냐?》

《제가 평생 돌이킬수 없는 실수를 했나봅니다.》

《지금에 와보니 너는 이 아버지의 심정을 들은체도 안하는 고약한 놈이였구나!》

간신히 앉아있던 아버지는 절통한 부르짖음과 함께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아버님!》

송금석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를 흔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정신을 잃었다. 송금석은 흙을 가져오지 못한 실책이 죽을 때까지 자기를 괴롭히는 추억으로 남아있으리라는것을 의식했다. 아버지는 그 이튿날에 정신을 차렸으나 아들을 외면하며 자기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였다. 아무리 용서를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사흘째되던 날 오후였다. 지급항공우편으로 모스크바에서 보내온 흙주머니가 도착하였다. 꿈아닌 현실로 믿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소포의 보내는 사람 주소란에는 《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김정일》이라고 씌여있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송금석은 넋을 잃은 사람처럼 눈길을 허둥거리며 그 글발을 바라보았다. 물론 어떻게 되여 그이께서 흙주머니를 찾아 보내주셨는지 알수 없었고 그이의 부탁을 항공역 녀인으로부터 전하여들은 외무성일군이 이곳까지 올수가 없어서 모스크바에서 소포로 부치였다는 구체적내막을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이께서 보내주신것만은 확실했다. 송금석은 조국의 흙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며 항공우편으로 도착했다는것을 알리였다. 아버지는 몸을 일으켜달라고 하였다. 아들의 부축을 받아 상체를 일으킨 그는 되도록 정중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쓰면서 두손으로 흙을 움켜쥐였다. 그리고는 손을 후들거리며 백발의 수염이 드리운 턱밑으로 가져가더니 오래도록 그 흙에 입맞추었다. 송금석은 앙상한 아버지의 어깨가 바람을 탄 물결처럼 떨리는것을 보았다. 이윽하여 아버지는 고개를 들고 손에 쥐였던 흙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불우에 흩어진 흙부스레기까지 깐깐히 모아서 조심히 담았다.

《그래 이 흙을 보내준 고마운분이 누구라고 했지?》

김정일이라고 지혜와 인품이 뛰여난 학생인데 위대한 수령님의 자제분이십니다.》

《그렇거니!》

아버지의 눈이 빛났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경건한 어조로 계속했다.

《과시 그 아버님에 그 아드님이시구나. 이 늙은것의 소원을 중히 여겨 네가 흘리고온 흙을 보내준것만으로도 내 그분의 덕망이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음같아서는 백발을 숙여 골백번 절이라도 하고싶구나. 네 조국에 돌아가거든 내대신 감사의 인사를 드리여라!》

《명심하겠습니다.》

송금석은 힘주어 대답하며 아버지의 품에 그리도 소중히 안겨있는 흙주머니를 다시 보았다. 불로 지지듯이 눈뿌리가 화끈해지면서 앞이 흐려졌다. 눈물이 어린탓인지 흙주머니가 현란한 무지개빛으로 안겨왔다. 황금에도 비길수 없는 흙주머니, 그것은 그대로 내 조국의 축도이고 상징이다. 그것을 흘려버렸다는것은 결국 내 마음속에서 조국이라는 그 숭엄한 존재를 잃을번 하였던탓이 아니였을가? 그것을 잊지 않고 이역만리에 보내주신 김정일동지의 은혜에 그 무엇으로 갚음을 하랴.

그는 흐느낌에 젖은 감격의 목소리가 터져오르는것을 의식하며 마음속으로 뇌였다. 김정일동무, 무슨 마음이 그리도 지극하고 사려깊은지 알길이 없구만. 학생들앞에서 잘 가르친것보다 잘못 가르친것이 더 많은 내가 아니요. 차라리 학생들의 비난을 당해야 마땅할 내가 아니요. 김정일동무, 정말이지 한번 사귀면 영원히 배신할수도 헤여질수도 없는분이시구려! 그대는 제자이기 전에, 학생이기 전에 나의 동지고 스승이요. 내 동지곁으로, 조국으로 속죄의 마음을 안고 네발로 기여서라도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이발을 앙다물었으나 눈물은 그냥 쏟아지고 참을수 없는 격정으로 몸이 덜덜 떨리였다.

《어쩌면 내 병이 덜리는가싶구나. 오늘 밤은 걱정들 말고 편히들 자거라.》

아버지가 다시 말을 할 때에야 송금석은 어느 정도 진정할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부디 밤편히 쉬십시오.》

송금석은 눈물을 훔치며 계모와 함께 아버지의 침대에서 물러났다. 여러날 밤샘을 하던 식구들은 안심하고 이날 밤 깊은 잠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아버지는 병구완으로 지친 식구들을 편히 재워놓고 숨을 거두었다. 조국의 흙을 가슴우에 포개여얹고 숨을 거둔 아버지는 영원히 평온한 안식에 잠긴듯 했다. 송금석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로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순간에 무엇을 원하였는지를 짐작했다. 분명 아버지는 죽어서도 조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을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소원만이 아니다.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되는 순간에 걸음걸음 조국의 13도를 마음속에 부여안으며 열세발자국을 걸어가 총탄을 받은 어머니도 그것을 원하였을것이다. 송금석은 아버지의 령전에서 엎드려 눈물로 다짐했다.

《부모님들의 유해를 모시고 생전에 그리도 그리워하시던 내 조국으로 다시 돌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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