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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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를 앞두고 온 나라가 높은 정치적열의와 눈부신 로력투쟁으로 들끓고있었다. 그 어데보다도 평양시가 더욱 그러했다. 위대한 수령님의 웅대한 수도건설구상에 따라 학생소년궁전과 아동백화점, 대동강유보도공사와 붉은거리 중심도로공사가 벌어지고있었다. 방대한 수도건설대상들중에는 와산동-룡성사이 도로확장공사도 들어있었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이 도로는 자름자름한 릉선을 따라 오불꼬불 이어진 협소한 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시내중심부로 들어오는 관문인 이 도로를 곧고 시원하게 트인 넓은 도로로 개건확장할데 대한 구상을 품으시고 중구지구건설사업소에 그 과업을 맡기시였다. 그런데 공사는 계획대로 진척되지 못하였다. 결코 만만한 공사가 아니였던것이다. 수십만립방메터의 흙쌓기작업과 흙파기작업을 하여야 했고 도로포장과 석축, 다리공사까지 하여야 했다. 이처럼 방대한 공사량에 비하면 건설력량이 어방없이 적었다. 다른 건설대상들은 4차당대회전으로 끝낼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려있었으나 와산동-룡성사이 도로확장공사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시내에서 대대적으로 건설이 벌어지다보니 새로 보강해줄 건설력량이 없었다.

평양시건설실태를 료해하신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저택에서 김정일동지와 마주앉으시였다. 자신의 안타까운 고심을 터놓으시면 무슨 문제든지 좋은 방략을 내놓군 하는 김정일동지이시였던것이다.

심려어린 안색으로 와산동-룡성사이 도로확장공사에 대해 말씀하신 수령님께서는 어느 단위에 이 공사를 맡겼으면 좋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일순 생각에 잠기였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명백히 대답을 올리시였다.

《그 영예로운 임무를 김일성종합대학에 맡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는것을 생활의 좌우명으로 여기는 그이이시였다.

《대학생들에게? 좋은 생각인데…》

수령님께서는 고개를 젖히시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말씀을 이으시였다.

《청년대학생들이 동원되면 당대회전으로 룡성도로공사를 넉근히 끝낼수 있소.》

수령님께서는 커다란 시름을 벗은듯이 기뻐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육체로동을 통한 단련이 아주 중요하다, 육체로동을 하여야 사상단련을 잘할수 있고 집단로동을 하는 과정에 집단주의정신과 동지애,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자기희생성 등 혁명가의 풍모를 다 갖출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로동에 참가하여 제일 힘든 일을 맡아서 자신을 단련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였다.

다음날 대학에서는 와산동-룡성사이 도로확장공사를 당 제4차대회전으로 끝낼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궐기모임이 있었다.

모임이 끝난 다음 대렬이 편성되고 명단이 작성되였다. 학급의 초급일군들은 의논끝에 김정일동지를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그이께서 우리 혁명의 장래와 관련된 중요한 로작을 집필하고계시기때문이였다. 이 사실을 아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초급일군들을 나무라시며 자필로 명단에 존함을 써넣으시고 힘주어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는 일에 누구도 빠져서는 안됩니다. 동무들은 나를 무슨 특수한 존재처럼 여기는데 두번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이번 공사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일에 나서기로 이미 결심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것인가를 첫날작업부터 현실로 보여주시였다.

이른아침 안개 흐르는 작업장에 나오신 그이께서는 뜻깊은 첫삽을 박으시였다. 뒤이어 대학생들이 도착하여 작업조가 무어질 때에는 제일 힘든 목도조에 망라되시였다. 학급에서 그중 힘장사라고 하는 허동무와 함께 목도를 메시였다. 첫날은 산중턱의 흙을 파서 진펄을 메꾸는 작업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선참으로 목도채가 휘도록 듬뿍 흙을 퍼담아 메고 달리시였다. 허동무는 몇걸음 옮기더니 비칠거렸다. 힘겨워서가 아니라 목도를 메는 묘리를 모르기때문이였다. 상대와 발걸음을 맞출줄 몰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며 깨우치시였다.

《목도를 할 때에는 발걸음과 박자를 맞추어 〈허기영, 치기영〉 소리를 치면서 하여야 힘들지 않습니다. 동무가 먼저 선창을 떼시오.》

허동무는 얼굴을 붉히며 침묵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정일동지께서 먼저 《허기영!》 하고 선창을 떼시였다. 허동무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에는 쾌활한 축이였는데 지금은 이상스레 거북해하는 눈치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오명식이 소리내여 웃음을 앞세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동무 아버지이름이 허기영이란 말이요.》

작업장에 유쾌한 웃음이 터졌다.

《그랬댔구만.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수야 없지요. 이제부터는 〈어기영, 어기영〉 하고 소리를 칩시다.》

허동무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지였다.

《어기영!》

그는 크게 소리쳤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소리를 받으시였다.

《어기영!》

발걸음과 박자가 잘 맞추어졌다.

작업장은 청년대학생들의 힘과 열정으로 끓어번지였다. 그이의 모범을 따라 모두다 힘껏 일하였다.

누군가가 구호를 웨치였다.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를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자!》

남자의 그 웨침에 녀자의 웨침이 뒤따랐다.

《룡성도로확장공사를 기한전에 완수하자!》

잠시 일손을 멈추고 온 작업장이 그 구호에 화답했다. 삽과 곡괭이, 목도채가 일제히 솟구치고 청년대학생들의 웨침이 뢰성처럼 산발과 들판을 흔들었다. 군데군데 꽂은 붉은 기폭이 봄바람에 불길처럼 나붓겼다.

작업은 다시 계속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목도를 메고 달리시였다. 흙을 듬뿍 퍼담아 메고 수십메터를 달리는 목도는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수십번 오가고나니 어깨가 부어오르고 런닝샤쯔는 쥐여잘 정도로 화락하니 땀에 젖었다. 남동무들 여럿이 다가와서 목도채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이의 건강이 념려되였던것이다. 그때마다 그이께서는 만류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목도를 하다가 죽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 걱정은 마십시오.》

함께 목도를 메던 허동무는 이튿날부터 삽을 잡았다. 어깨가 아파서 더는 목도를 멜수 없다고 하였다. 학급장인 오명식은 퉁퉁 부어오른 그의 어깨를 보고 승인하였다.

《학급장동무, 정일동무도 교대시켜주시오. 흙을 퍼담는 조와 목도조를 하루에 한번씩 교대하는걸 제도화합시다.》

허동무가 하는 말이였다. 자기만 교대를 하는것이 미안했던것이다. 학급의 다른 학생들이 모두들 허동무가 좋은 제기를 하였다고 떠들었다.

《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을 제지시키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저 허동무는 작업 전기간 목도를 메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아버지이름이 허기영이기때문입니다. 목도를 메면서 〈허기영, 치기영〉 하면서 걸음을 맞추어야 하는데 허동무와 짝을 무어보니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아버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것은 실례가 되는 일이였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였다. 허동무만은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얼굴을 붉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작업조를 매일 바꾸면 로동능률에 지장을 줄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회적로동에서 분업이 생겨난것은 까닭없는 일이 아닙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 육체도 거기에 적응되고 로동의 묘리도 생기게 됩니다. 지금은 어깨가 좀 아프지만 며칠 지나면 썩살이 덮여서 아프지 않을것입니다. 나는 작업 전기간 목도를 메겠습니다.》

내처 제일 힘든 일을 하시려는 그이의 결심은 확고하시였다. 학생들은 그이의 헌신성에 경건히 머리를 숙이였고 무슨 일에서나 자신의 견해에 명백한 론리를 세우시는 그이의 풍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며칠 지나자 김정일동지는 온 작업장에 목도대장으로 알려지게 되시였다. 다른 중대와 소대들에서는 목도를 메시는 그이의 모습을 보고 묘리를 익혀가려고 일부러 찾아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루는 송금석이 작업장에 나왔다. 작업복차림이였다. 학생들과 함께 작업을 할 잡도리를 하고 나온것이 분명했다. 그는 목도를 메신 김정일동지를 보고 펄쩍 놀라며 오명식을 꾸짖었다.

《나는 토목일을 해봐서 목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알고있소. 하필이면 정일동무에게 제일 험하고 힘든 일을 시키오?》

《스스로 맡아하는걸 저희들인들 어쩌겠습니까. 선생님도 정일동무를 잘 알지 않습니까?》

송금석도 제일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서시는 김정일동지의 성품을 잘 알고있었다. 더는 말없이 뜨거운 눈길로 봉국이와 함께 목도를 메고 달리시는 김정일동지를 오래도록 바라볼뿐이였다. 흔히 생활에서는 두뇌가 뛰여난 사람은 상대적으로 육체적능력이 약한 편이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지적능력이나 육체적능력이나 어느 한쪽 기울지 않고 다같이 비상하시다. 참으로 다방면적으로 탁월함을 갖춘 영재이시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머리에 갈마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 흙을 부리우고 돌아서셨을 때 삽을 들고있던 송금석은 그이를 자기한테로 불렀다.

정일동무, 여기로 오시오. 내가 흙을 퍼담아주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봉국이와 함께 그한테로 가시였다. 잠시 허리를 펴고 송금석의 땅파는 솜씨를 지켜보시였다. 그가 이런 일에는 정 솜씨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셨는데 예상밖이였다. 땅이 굳어서 다른 학생들은 파기를 힘들어하는데 송금석교수는 자리를 적게 잡고 그것을 넓혀나가는 방법으로 곡괭이질과 삽질을 번갈아하며 수월히 팠다. 굳은 땅파는 묘득을 잘 알고있는것이 분명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송금석은 흙을 듬뿍 담아주었다.

《이거 너무 많이 담은게 아니요?》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고 성이 차게 담아주셨습니다.》

정일동무 마음이야 내가 잘 알지.》

송금석은 즐겁게 응대하며 빙긋이 웃었다.

얼마후에 작업의 휴식을 알리는 신호나팔소리가 울리였다.

모두들 산기슭 소나무밑에 둘러앉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금석에게 조용히 물으시였다.

《선생님은 언제 그렇게 굳은 땅파는 솜씨를 익혔습니까?》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감회에 잠기는듯 한 송금석의 얼굴에 시선을 모았다.

전혀 육체로동을 모를상싶은 평소의 인상과 다른 그를 보는것이 놀라왔던것이다. 송금석은 즐겨 지나간 생활의 한토막을 들려주었다.

간도지방에서 독립군으로 싸우던 그의 부모들은 아홉살난 아들을 어느 한 농가에 맡겨두고 어데론가 멀리 떠나가버렸다. 그런데 그가 얹혀살던 인심후한 동포농가는 불의에 들이닥친 일제의 《토벌》에 몰살을 당했다. 다행히 나무를 하러 산에 갔던 송금석만이 살아남았다. 의지가지 없게 된 그는 동냥밥으로 두해를 보내고 그후부터 토목공사장에서 일하였다. 어린 뼈가 힘겨운 토목로동에 굵어지면서 여러해가 흘렀다. 원동으로 쫓겨갔던 부모들은 그곳에서 왜놈들과 싸웠다. 어머니가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된것도 그무렵이였다. 원동에 평화가 깃들자 아버지는 다른 동포들과 함께 우쑤리강변에 살림을 펴고 후처를 맞이했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이 시작되자 아버지는 쏘만국경을 넘어와서 아들의 행처를 찾았다. 그러나 쉬이 찾을 길이 없었다. 오랜 방랑끝에야 토목공사장에서 몰라보게 자라난 아들을 찾았다. 그리하여 송금석은 열다섯살때에 아버지를 따라 쏘련으로 가게 되였다.…

학생들은 송금석의 생활에도 그런 수난이 있었다는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오명식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송금석선생의 아버지와 자기의 아버지를 대비하여보았다. 얼마나 대조적인가. 한쪽에서는 이역땅에서도 아들의 행처를 끝내 찾아내는데 한쪽에서는 해방된 제 나라 땅에서 아들의 행처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무관심했다. 만일 송금석선생이 이 오명식과 총장과의 관계를 안다면 총장의 멱살을 거머쥐고 당신도 인간인가고 따지고들것이다.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목도를 메고 다시 달리시였다.

삽자루를 잡고서서 잠시 그이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송금석이 오명식을 불렀다. 오명식이 다가왔다.

《학급에 사진기를 가진 동무가 없소?》

《있습니다. 선생님, 사진을 찍으시렵니까?》

《내가 찍으려는게 아니요. 목도를 메는 김정일동무의 모습을 한장 찍었으면 하오. 매우 뜻깊은 사진이 될거요. 동무들도 진작 그런 생각을 했어야지.》

《저희들도 그런 생각을 했댔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반대하면서 지금의 작업모습을 기념으로 남기려면 다른 동무들부터 사진을 찍어주라고 우기였습니다.》

언제나 힘든 일은 자신이 맡으시고 좋은 일은 동무들에게 돌리시는 김정일동지이시였다. 학급에서 집체사진을 찍을 때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앞에 다른 동무들을 세우시고 자신은 맨 뒤줄 구석에 서군 하시였다.

오명식이 사진기를 멘 학생을 데려왔다. 몸매가 다부진 그 학생은 병사시절 어느 보병사단의 사진사였다고 했다.

송금석은 그에게 과업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본인이 알면 이번에도 펄쩍 뛸수 있으니 저기 보이는 강냉이짚무지에 숨어서 사진을 찍으시오.》

《알았습니다.》

이렇게 되여 무겁게 목도를 메고 달리시는 김정일동지의 숭고하고 헌신적인 모습이 한폭의 사진으로 후세에 전해지게 되였다.

룡성도로확장공사가 있은 때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였다. 세계언론계에서 이름이 자자한 재미동포 녀류기자 문명자가 김일성종합대학을 찾았다. 런닝샤쯔바람으로 목도를 메신 김정일동지의 모습을 경건한 시선으로 오래도록 우러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뜻깊은 사진입니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으며 인민과 조금의 간격도 없는 령도자이시라는것은 이 한장의 사진이 움직일수 없는 사실로 다 말해주고있습니다. 빗나간 시각으로 조선을 보는 서방세계의 일부 사람들도 이 사진을 보면 인식을 바로할수 있습니다. 나는 조국을 떠날 때 이 사진을 한상 꼭 모셔가겠습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언론에 그 사진을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서방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심사가 꼬인 사람들도 엄연한 력사적사실을 부인할수는 없었던것이다. 그 사진은 우리 나라뿐만아니라 온 세계의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전해지면서 세계 어느 나라 령도자에게서도 찾아볼수 없는 김정일동지의 특출한 위인상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심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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