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바다는 눈부시게 해빛을 반사하며 고요한 평온에 잠기였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붙은 수평선 한끝에서는 엷은 해무가 피여올랐다. 연보라빛으로 물든 해무에는 금시 현란한 신기루라도 비낄상싶었다.

귀국선은 망망한 대해를 가르며 쾌속으로 달리였다. 먼곳에 눈길을 주면 너무도 느리게 움직이는듯 했으나 선체에 부딪쳐 포말을 일으키며 뒤로 밀려나는 물결을 보면 얼마나 놀라운 속도로 달리는가를 현실적으로 느낄수 있었다. 수를 헤아릴수 없는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귀국선의 주위를 날아옜다.

려순정은 딸애를 데리고 선실밖의 갑판에 서있었다. 딸애는 갈매기들을 향해 손에 든 공화국기발을 흔들며 말없는 속삭임을 다정히 나누고있다. 한껏 즐거움에 도취되여 가늘게 뜬 두눈이 새물새물 웃고있다. 니이가다항에서 배를 탄이래 갈매기를 수없이 보아왔건만 지금따라 왜 저리도 기뻐하는것일가? 어린 가슴에도 내 조국의 갈매기라는 생각이 사무쳐오기때문일것이다. 방금전에 선실의 고성기에서는 귀국선이 조국의 령해에 들어섰다는것을 알리였다. 그래서 순정이도 딸애를 데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실밖으로 나왔던것이다. 그는 딸애의 시선을 따르며 갈매기들을 유정한 눈길로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갈매기는 바다의 새이지만 륙지에서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운다. 저 갈매기들은 분명 내 조국 바다가의 어느 벼랑이나 흔한 섬에서 생을 받았을것이다. 방금 알에서 까난 그것들의 동그란 눈동자에 처음으로 비낀것이 내 조국의 바다와 하늘이였고 연약한 두발로 내짚은 땅도 내 조국 땅이였다. 그래서 갈매기들은 대양만리를 날으다가도 저녁이면 내 조국의 보금자리에 되돌아가 깃들인다. 태여난 곳을 떨어져 살수 없음을 생의 철리로 알고있는 갈매기, 너는 깃을 퍼덕이며 정다운 우짖음으로 그 철리를 찬가처럼 속삭여주는것이 아니냐. 바다는 넓고넓어도 보금자리를 옮길줄 모르는 내 조국의 새야, 난 너희들앞에서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저도 모르게 가슴이 저릿해오며 소리없이 눈시울을 적셨다. 려순정은 딸애가 볼세라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치였다.

《조국이 보인다!》

누군가가 목메여 소리쳤다. 동시에 배고동소리가 련이어 길게 울렸다. 거기에 만세의 함성이 어울렸다.

순정은 대양이 떠나갈듯 한 그 함성에 자기의 목소리를 합치며 마음이 들떠서 키돋움을 하였다. 서쪽 수평선 한끝에 아직은 형체가 아리숭하게 보이는 해안선의 륜곽이 나타났다. 꿈결에도 그립던 조국땅, 그품에 엎드려 손이 닳도록 쓸어보고싶던 어머니대지, 기쁨과 감격의 파도가 세차게 온몸을 흔들었다. 즘즛했던 눈물이 다시 흐르면서 드넓게 트인 앞이 안개속에 묻힌듯 흐려진다. 배는 더욱 속도를 높였지만 초조한 마음에는 너무도 느리게 움직이는듯싶었다.

《엄마, 부두에 아버지가 나와있을가?》

진희가 물었다. 어린것의 눈망울에 간절한 기대가 어렸다. 귀국신청을 한 그날부터 아버지한테로 간다고 밤잠도 제대로 못 자며 기뻐하던 진희였다.

그 애한테는 조국이 곧 아버지의 품이기도 하였다.

하긴 순정에게도 사랑하는 조국과 사랑하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하나로 련결되여있었다.

《그래, 지금 저기 부두에서 너를 기다리고있을거다!》

순정은 확신적으로 대답했다. 안내하는 일군의 말에 의하면 조국의 일가친척들에게 미리 련락이 되여있기때문에 조국땅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상봉을 하게 된다고 했었다. 순정은 남편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보았다. 벌써부터 그의 온화한 눈빛이 피부에 닿는듯 하고 감격에 젖은 정다운 목소리가 귀에 흘러드는듯 했다. 사랑과 행복이 무르녹던 평양의 그 집, 다시는 안길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그대의 품으로 돌아간다. 아, 운명이여, 우리 모녀를 부디 행복에로 이끌어다오.

순정은 일본에서 남편에게 편지를 할 때까지만 해도 회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남편이 새 가정을 이루었을것이라고 단정했기때문이였다. 자기의 편지가 새 가정에 그늘을 던질것 같아서 은근히 후회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한 대학생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 막연한 기대속에 한 편지였기에 회답을 받는다는것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였다. 그는 자기의 생활에서 가장 뜻깊은 계기를 맞이하는듯 한 심정으로 편지를 읽었다.

《려순정사모님에게

저는 최정택선생님을 존경하는 한 학생입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의 담임교원입니다.

선생님은 저에게 사모님의 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사모님의 행처를 알게 된것이 말할수 없이 기뻤습니다. 전선에서 훌륭히 싸우고 대학으로 돌아온 선생님은 지금까지 사모님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속을 태우며 독신생활을 하고계십니다. 그러던차에 일본에서 보내온 사모님의 편지를 보게 되였던것입니다. 참으로 불미스럽고 유감스러운 일이 많았더군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 누가 사모님이 겪은 모든 불행과 재난이 사모님의탓이라고만 단언하겠습니까. 사모님의 경난은 그대로 복잡다단한 우리 민족수난의 여파가 아니겠습니까. 편지를 보니 사모님은 지나치게 자기를 학대하고 비하하는것 같습니다.

사모님,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는 오늘의 시점에서 주어지는것이지 과거의 생활로 계산되는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이자 우리 당의 정책입니다.

사모님, 주저마시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조국은 사모님에게 행복한 새 생활을 안겨줄것입니다. 최정택선생님은 사모님이 알고있는 그러한분일뿐 달라진것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리별의 고통이 짙어 머리에 철이르게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을뿐입니다.

최정택선생님은 말할것도 없고 우리 학생들도 사모님과 따님이 귀국하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저는 지금 해빛 따사로운 어느 명절날에 선생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경치좋은 모란봉이나 대동강변에서 야유회를 가지는 즐거운 정경을 머리속에 그려봅니다.

이것이 과연 허망한 꿈으로 되고말아야 하겠습니까? 기다립니다. 부디 달리 생각마시고 선생님에게로, 우리들에게로 돌아오시기를 학수고대하는바입니다.

상봉의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편지의 구절마다에 넘치는 따뜻한 고무와 격려가 가슴을 들부셨다.

나같은 사람에게 이렇게도 후더운 인간적온기와 살뜰한 구원의 손길을 보내주다니, 려순정은 자기의 체내에 깊이 박혀서 무시로 심신을 괴롭히던 피멍이 한순간에 풀려버린것 같아 딸애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흐느껴울었다. 생의 의욕과 용기가 다시금 솟구쳐올랐다.

이제부터 나의 인생의 좌우명은 이 편지가 아닐가? 죽을 때까지 고마움에 넘쳐 이 편지를 외우면서 살게 될것이다. 나에게 만일 운명의 신이 있다면 이 편지일것이다. 누가 알랴, 은혜로운 조국이 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딸을 잊지 않고 보내주는 구원의 손길이 이 편지를 통해 뻗쳐오는것이나 아닌지.…

그리하여 그는 딸애와 함께 조국을 되찾아가리라 결심을 내렸던것이다.

청진항이 다가오는 이 시각 려순정은 륜곽이 점점 뚜렷해지는 조국산천을 바라보며 편지를 다시금 마음속으로 외워보았다. 밤마다 읽고 읽어서 이젠 보지 않고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울수 있었다. 편지의 구절들은 자기들 모녀를 부르는 조국의 목소리처럼, 새 생활의 밝은 앞날을 펼쳐보이는 랑만의 노래처럼 걷잡을수없이 심금을 흔들어주었다.

《엄마, 아버지사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환성을 올리는 사람들의 사품속에서 딸애가 려순정의 저고리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려순정은 꿈속에서 깨듯 소스라치며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동그란 손거울이 대뜸 손에 잡히였다.

《빨리, 엄마!》

딸애가 소리쳤다.

《그래 진희야, 여기 있다. 여기!》

려순정은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내 딸애한테 주었다.

《야, 아버지!》

진희는 손거울뒤면에 끼워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기쁨이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다.

전쟁이 터져서 정치공작대로 떠나는 남편과 헤여질 때 그 사진을 두개의 손거울속에 넣어서 하나는 남편을 주고 하나는 자기가 간수했었다. 작별의 기념품이였다. 운명의 파도에 떠밀리우면서도 언제한번 품속에서 떼여놓지 않은 거울속의 사진이였다. 그 사진이 없었더라면 딸애는 아버지의 얼굴마저 모를번 하였다. 그 애는 지금 부두에 나와있을 아버지를 못 찾을가봐 사진을 들여다보고있는것이다.

(그이가 진희를 알아볼가?)

순정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헤여져 멀리 흘러간 세월속에 커가는 자식의 모상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부모들은 첫눈에 알아본다. 거기에는 인간의 기억력이나 상상력을 초월한 피줄의 인연이 주는 특별한 감각이 작용하는 법이다. 순정은 딸애를 품에 꼭 껴안았다.

격정의 파도가 밀려가고 밀려오는 가운데 귀국선이 부두에 닿았다. 환영곡이 울리고 꽃보라가 날린다. 어깨와 머리우에 꽃보라를 들쓰며 귀국동포들이 배에서 내린다. 진희또래의 소년단원들이 그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준다.

려순정이한테도 소녀가 달려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들어서 꽃인지 소녀인지 분간할수가 없었다. 려순정은 꽃다발을 받는 순간 북받쳐오르는 감격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그립고그립던 조국의 향기가 페부에 스며들며 아찔하게 정신을 휘젓는다. 죄많은 나한테도 꽃다발을 주다니, 차마 소녀의 얼굴을 마주볼수가 없어 꽃다발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부두에서 환영식이 있은 다음 일가친척들과의 상봉이 벌어졌다. 순정은 딸애의 손목을 잡고 뒤설레는 인파속을 헤치였다. 하지만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찾고 또 찾아도 그리운이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려순정은 남편이 항구에 나오지 않았다는것이 확인되자 오금을 꺾으며 주저앉았다.

방금전까지 가슴을 옥죄이던 기대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남편과의 상봉을 그려본것이 한갖 어리석은 욕망으로 느껴졌다.

(그이는 나같은 녀자가 자기의 안해였다는것을 씻을수 없는 수치로 여기고있어. 그렇다 하여도 나로서야 그이를 탓할수 없지. 원망할건 오직 나 하나뿐이야.)

《엄마, 아버진 어데 있나?》

진희가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그 물음이 엄마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허비는지 모르는듯싶었다. 려순정은 딸애가 금시 울음을 터뜨릴것만 같아 두다리에 힘을 모아 일어섰다.

《너의 아버지는 어데서 무얼하느냐?》

려순정을 곤경에서 뽑아주려는듯 곁에 섰던 중년남자가 진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환영식을 할 때 주석단에 섰던 사람이다. 해외교포사업을 맡아보는 일군인것 같았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 교수예요.》

진희의 대답은 무척 자랑스럽게 울리였다.

《너의 아버지는 참 훌륭한분이로구나. 애야, 오늘 귀국한 사람들의 일가친척중에서 평양에 사는 사람들중엔 여기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래일이면 귀국동포들이 모두 평양으로 가거던. 그러니 평양에서 만나지 굳이 예까지 찾아올 필요야 없지 않느냐. 더구나 너의 아버지야 대학교수라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느라고 몸을 뺄수가 없었겠지.》

듣고보니 과연 그럴상싶었다. 설사 이쪽의 마음을 위안하려고 꾸며낸 말이라 하더라도 그 친절한 태도가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순정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사말을 했다.

그 이튿날 귀국동포일행은 예견대로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역두에도 수많은 환영군중이 나와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최정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상심한 순정은 50년 여름, 바로 이 역두에서 남편과 작별하던 일을 회상했다. 그때 그는 군용렬차에 오르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여보, 몸성히 잘 싸우고 돌아오세요. 승리의 그날까지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어요.》

순정은 그렇게 부탁하고 그렇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부탁과 그 다짐을 제 먼저 버렸었다. 그렇게 배신한 녀자가 지금은 이 역두에서 남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자기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나 행여나 하여 상봉의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였다. 그러나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실망감이 가슴에 밀려들었다. 청진항에서 이미 한번 겪은 실망이여서 그때처럼 모질게 가슴이 쓰리지는 않았다. 응당 이렇게밖에 달리 될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최정택선생 사모님!》

이게 누구를 찾는 소리인가? 바싹 귀를 강구었다. 사위를 둘러보았다. 낯익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 귀를 의심했다. 환각속에서 그런 부름소리를 들은듯싶었다.

이때였다.

《려순정사모님!》

다시 부름소리가 올리였다. 이번에는 분명히 가려들었다. 소리나는쪽으로 급히 머리를 돌리였다.

《려순정사모님!》

입가에 두손을 오그려대고 목이 터지도록 애타게 소리치는 두 대학생이 사람들의 사품 변두리에 보이였다. 대학생모자에서 빛나는 모표를 보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라는것을 알았다. 평화시절에 익혀 머리에 새겨왔기때문에 어지간히 거리가 먼곳에서도 가려볼수 있었다.

《저를 찾습니까?》

맞받아 소리치려고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목소리는 입밖으로 터져나가지 못했다. 충격적인 흥분으로 목이 잠겨버렸던것이다. 대학생들을 향해 걸음을 떼였다. 딸애의 손목을 이끌고 반달음을 놓았다. 두 대학생은 그 자리에서 그냥 같은 부름소리로 찾고있었다. 거리가 퍽 가까왔을 때에야 목이 열리였다.

《제가 려순정입니다!》

놀란듯 두 대학생이 얼른 시선을 마주치더니 반겨 달려왔다.

한걸음 앞선 대학생이 허리굽혀 인사를 하며 더없이 정겨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모님, 이렇게 만나게 되여 반갑습니다. 저는 최정택선생님에게서 배우는 학생 김정일입니다.》

김정일!

려순정은 입속으로 뇌이고나서 황홀한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순간 가슴속깊이에서 고마움과 매혹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어쩌면 그 모습이 그리도 영준하실가! 정답게 웃으시는 모습에서 그 어떤 신비로운 친근감이 발산되며 자기의 몸에 와닿는듯 하였다.

《그렇다면 저에게 편지를 보내준…》

《그렇습니다. 제가 사모님에게 편지를 보냈댔습니다.》

려순정은 저도 모르게 그이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저는 그 편지를 받고…》

그는 또다시 목이 메여서 뒤를 잇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곁에 서있는 오명식을 소개하시였다.

《우리 학급 학급장동무입니다. 전쟁시기 최정택선생님과 함께 싸웠습니다.》

려순정은 학생모를 벗어드는 오명식에게 먼저 인사를 하였다.

《이렇게 만나게 되여 반갑습니다.》

《귀국하신 사모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최정택선생님은 급한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고 대신 저희들이 나왔습니다. 이제 대학에 가면 만날수 있을것입니다.》

오명식은 적당히 둘러댔다. 실은 실습장을 떠나면서 최정택선생님이 이미 평양역에 나와있을줄로 알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총장의 처사로 역에 나오지 못했을것이다.

잠시후 김정일동지께서는 귀국동포들을 안내하는 일군에게 사정을 알리고 려순정과 딸애와 함께 대학으로 떠나시였다. 오명식도 함께 갔다.

《네 이름이 뭐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딸애의 손목을 잡고 걸으시며 다정히 물으시였다.

《최진희예요!》

《선생님이 이제 진희를 만나면 무척 반가워하실거다. 너도 아버지를 만나고싶었지?》

진희는 두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대학구내에 들어섰을 때에는 해가 서켠으로 기울고있었다.

《내가 강좌에 가서 선생님을 모셔올테니 동무는 사모님을 모시고 교직원합숙으로 가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명식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대학청사를 향해 급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려순정은 다시금 사무쳐오는 고마운 심정을 느끼며 일순 걸음을 멈추고 대학청사를 바라보았다. 대학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보람찼던 시기의 추억이 깃든 정든 곳이다. 해방후 5년간 대학과 더불어 꿈같은 생활이 흘러갔다. 그 생활이 이제 다시금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였다.

《사모님, 교직원합숙으로 가십시다.》

오명식이 재촉했다.

려순정은 남편이 생활하는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뭉클한 충격을 받았다. 남편의 체취가 확 풍겨오는듯 하였다. 책상과 침대, 옷걸이에 걸린 옷가지들을 둘러보며 눈길을 허둥거렸다. 벌써부터 금시 남편을 만난듯 한 흥분에 사로잡히였다.

얼마후에 복도에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김정일동지께서 급히 방안에 들어서시였다.

《선생님은?》

명식이가 그이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려순정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시였다.

《사모님, 선생님도 오셨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한발 먼저 달려왔습니다. 선생님은 너무 흥분하셔서 걸음이 좀 늦어지는군요.》

려순정은 제 귀를 의심하며 그이와 명식을 번갈아보았다. 참말로 이제 눈앞에 남편이 나타난단 말인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속이 텅 비여버리고 전신의 피도 심장에 몰켜든채 흐름을 멈춘듯 하였다.

이윽고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남편이 들어섰다. 순간 려순정은 쓰러지듯 비틀거렸다. 오래 그려오던 남편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자 걷잡을수없이 넋이 헝클어지면서 다리의 맥이 풀렸던것이다. 그는 다리에 힘을 주면서 안개속처럼 희뿌연 공간속으로 다가오는 남편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여보!》

남편의 부름소리가 귀전을 쳤다.

려순정은 쓰러질듯 몸을 그에게 맡기였다. 한껏 포옹해주는 남편의 따뜻한 체온에 전신이 녹아드는듯 하였다. 자기의 몸이 형체를 잃고 꽃보라가 뿌려지는 환상의 공간으로 새털같이 가벼이 떠가는것 같기도 했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한순간이 지나자 가슴이 터질듯 한 아픔이 뒤따랐다. 둘사이에는 한치의 간격도 없는 부부간이였지만 자기의 잘못으로 오랜 세월 헤여져 살아야 했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심장을 찔렀던것이다.

《고마워요, 용서해주어서…》

이 순간에 사죄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를 놓쳐버릴것만 같은 절박감에 사로잡혀 중얼거렸다.

그리고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만하오.》

그렇게 말하며 껴안았던 팔을 푸는 남편의 얼굴에도 눈물이 어린것을 보았다. 려순정도 자기 격정에 휘몰리여서 곁에 대학생들이 있다는것을 까맣게 잊었던 자신을 깨닫고 남편의 품에서 물러났다. 그는 황황히 눈물을 닦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대학생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아저씨들은 어데 가셨니?》

진희에게 물었다. 그 애의 눈가에도 가랑가랑 눈물이 고였다.

《몰라, 나두.》

《우리끼리 있으라고 자리를 피했나보오.》

어느새 책상에 마주앉은 남편이 귀띔하였다. 그리고는 딸애의 손목을 잡아 이끌더니 꼭 껴안았다.

《우리 진희가 이렇게 컸구나.》

최정택은 딸애의 말큰한 입김이 덜미를 스치자 정녕 헤여져서는 못살 혈육의 정을 느끼였다. 머리속에는 젖먹이시절의 딸애가 표상되여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몰라보게 자랐다. 진희는 더욱 힘주어 아버지의 목을 담쑥 껴안았다.

잠시 선채로 남편과 딸애의 포옹을 지켜보던 려순정은 침대모서리에 앉았다. 가슴속에는 하고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듯 하지만 정작 이렇게 마주앉으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남편도 말없이 딸애를 애무하기만 했다. 그 역시 격렬하게 뒤엉키는 감정을 말로써는 표현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방안에는 폭풍전야의 정적과도 같은 침묵이 깃들었다. 마침내 려순정이 그 침묵을 깨쳤다.

《나는 지금의 기쁨이 클수록 우리들의 상봉을 마련해주시려고 마지막까지 그처럼 애를 쓰신분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이 나요. 김정일! 정녕 그분은 우리 가정의 은인이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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