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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택은 공장에 나오자 몸이 홀가분해지는것 같았다. 웅글고 기운찬 전동기소리며 쇠를 깎아내는 공작기계소리들은 차차 그의 복잡하던 생각을 정리해주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천리마의 기세로 내닫는 현실의 약동하는 맥박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총포탄이 울부짖던 준엄한 전화의 나날을 상기시켜주기도 하였다. 그는 대학생들이 로동자들과 흥취나게 일하는 모습을 돌아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군하였다. 더구나 거칠사한 영옥이가 김정일동지앞에서 떼도 쓰고 응석도 부리면서 내처 명랑한 표정으로 걸싸게 일하는 모습을 볼 때면 이름할수 없는 따뜻한 감정이 가슴에 젖어들었다.

실습이 시작된 후에도 학생들은 로동의 여가를 타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만페지책읽기운동이 벌어진 직후여서 모든 학생들이 거의 날마다 로작을 한제목씩 읽었으며 읽는 과정에 생긴 모를 점들에 대하여 끈질기게 질문을 퍼부었다. 최정택은 만족스럽고 대견한 마음으로 밤늦게까지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었다. 그는 대학을 떠나 공장에 나오자 이렇게 새로운 재미를 붙이고 온갖 번민과 우려를 잊게 되였다. 들끓는 현실과 현실속에서 어엿이 성장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그로 하여금 온갖 신변잡사를 잊게 하였다.

다음날 대학으로 출근한 그는 총장의 부름을 받게 되자 다시금 전날의 우울한 심정에 잠기였다.

최정택이 총장실에 들어서니 책상우에는 자기의 강의안과 교수요강, 교수진도표들이 놓여있었다. 총장은 그동안 검토를 끝내고 결심을 내린듯싶었다. 어떤 처분을 내릴가? 최정택은 인사를 나눈 다음 오빈우의 얼굴을 얼핏 살피였다. 그의 혈색좋은 얼굴은 무표정했다. 마음이 편안치 않을 때면 오히려 담담해지는 오빈우였다. 최정택은 절대로 굽어들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최선생, 한가지 물어봅시다.》

긴장한 침묵끝에 오빈우가 입을 열었다. 억양이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어조였다. 최정택은 되도록 긴장하려고 애쓰면서 응대하였다.

《무슨 말씀인가요?》

《선생이 일본에 있는 안해에게 귀국을 하라는 편지를 했는가요?》

최정택은 흠칫 놀랐다. 예견치 못했던 질문이였다.

《저는 그런 편지를 한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

말꼬리를 길게 끌며 의심쩍은 눈길로 최정택을 쳐다보던 오빈우가 천천히 뒤를 이었다.

《해당 기관에서 대학에 련락이 왔는데 선생의 안해가 귀국을 한다오.》

《귀국을요?!》

최정택은 믿어지지 않아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오빈우는 의자등받이에 젖혔던 몸을 앞으로 끄당기며 여전히 억양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안해가 귀국을 하면 가정의 재결합문제가 제기되겠는데 선생은 어떻게 할 결심이요?》

최정택은 오빈우의 말을 가려듣지 못했다. 뜻밖의 충격에 현실감각을 잃었다. 귀전에는 오빈우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보!》, 《아버지!》하는 안해와 딸애의 목소리가 메아리쳐왔다. 상봉의 기대로 가슴이 세차게 높뛰였다. 그는 일순간에 뒤엉키는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애썼다. 가만, 언제 온다고 했던가, 언제? 딸애도 온다고 했던가? 그럼, 그 애가 안 올리 없지.

오빈우는 어리친듯 한 그를 깨우치려고 《최선생!》 하고 불렀다. 그리고는 내심을 꿰뚫어보려는듯 한 시선을 최정택의 눈동자에 박으며 계속했다.

《나에게는 물론 선생의 사생활문제에 간섭할 권리가 없고 또 그럴 의향도 없소. 다만 심사숙고하라고 하는 말이요.》

세찬 격동으로 뒤설레던 최정택의 가슴이 불시에 싸늘하게 식어들었다. 비로소 오빈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달았다. 오빈우는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말했으나 그 밑바닥에 깔린 의미는 심각했다.

최정택은 머리를 쳐들었다. 답변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결심이 서지 않아 입을 열지 못했다. 안해는 먼저번 편지에 쓰기를 조국앞에서, 남편앞에서 돌이킬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기때문에 못 견디게 조국으로 돌아가고싶지만 단념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돌연히 귀국의 용단을 내렸는가? 그의 신상에 그런 용단을 내릴 무슨 운명적인 일이라도 벌어졌단 말인가? 아무리 상상해보아도 알수 없었다. 하여튼 그는 조국을 찾아, 남편을 찾아 오고있다. 더는 미룰수 없이 인제는 안해와의 관계에 결심을 내려야 한다. 문득 안해의 편지를 받았던 그날 김정일동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귀전을 쳤다. 그때 그이께서는 용서하고 믿고 그리고 조국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최정택은 자기를 찾아온 안해와 딸애를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결심을 말하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서늘한 빛을 뿜는 오빈우의 눈빛에 부딪치자 온몸이 식어들며 응대를 하고싶은 생각이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빨리 자리를 뜨려면 무슨 말인가 해야 할것 같았다. 그래서 내키지 않는 말을 시작했다.

《난 지금껏 안해와 자식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재결합을 하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그 사람을 만나본 후에 결심하겠습니다.》

《음, 하여튼 잘 생각해보시오. 그런데 내가 한가지 조언을 주고싶은것은 혁명적립장우에 그 어떤 인간적감정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점이요. 가끔 생활에서는 혁명이냐 사랑이냐, 계급의식이냐 인정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있소. 그런 때 감상주의에 젖은 소부르죠아인테리들은 후자를 택하게 되오. 혁명적세계관이 확고히 섰다고 할 때 거기에는 사상과 의지뿐아니라 륜리도덕적감정까지도 혁명의 원칙에 복종시킬줄 안다는 의미가 담겨져있소. 선생도 잘 아는 문제를 내가 이렇게 강조하는것은 앞으로 부닥칠 안해와의 관계에서 감상주의적태도가 나타나지 않기를 원하기때문이요. 내가 이 말을 하는것은 최정택선생이 내가 존경하고있는 많지 않은 학자들중의 한사람이기때문입니다.》

오빈우의 마지막말에는 진정이 비껴있었지만 최정택은 그의 타이름이 불쾌해서 머리를 떨궈버리였다. 오빈우는 최정택의 침묵을 미타하게 여기며 훈시를 계속하였다.

《선생으로서도 준엄한 시기에 조국을 배반했던 녀성을 다시 사랑할 의향이 없겠고 그 녀성 역시 귀국을 결심한것은 다르게도 분석할수 있겠지만 좋게 분석하면 죄의식에 대한 반성일뿐 감히 선생을 만나자는 목적은 아닐게란 말이요. 10여년전에 배반했던 남편을 무슨 면목으로 다시 찾겠소. 듣자니 그 녀성은 왜정시기에 전문교육까지 받았다더군. 그러니 자기반성능력도 있고 수치가 무엇인지도 알게 아니요. 그러니만치 그 녀성이 귀국을 한다 하더라도 선생과의 관계에서 무슨 복잡한 문제가 제기될것 같지는 않소. 그 일때문에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을것 같소. 그건 그렇고…》

오빈우는 마디들이 통통한 손을 뻗쳐 전화기옆에 놓인 강의안들을 집어들었다.

《내 선생의 강의안들을 검토해보니 사태가 엄중하기 이를데 없소!》

홀연 그의 표정이 달라졌다. 얼굴색이 엄숙해지면서 위압적인 목소리가 울리였다. 안해에 대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적인 성격을 띠기때문에 친절히 조언을 주지만 강의안의 내용이 잘못된것은 사업과 관계되는것만치 도저히 용서할수 없다는 뜻인듯싶었다. 최정택 역시 강의안 문제만은 절대로 타협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높이 추켜들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론담을 벌리려고 선생을 이 자리에 오라고 한것이 아니요. 나는 이미 선생의 그릇된 경향에 대해 여러번 충고를 주었소. 그런데 이번에 강의안들을 보니 예견했던것보다도 선생은 더 멀리 선행리론에서 리탈했소!》

오빈우는 가까스로 눌렀던 분격을 터뜨리였으나 최정택은 태연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전같으면 총장의 그러한 말에 놀랄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저는 선행리론을 부정하거나 반대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 당정책이 가장 정당하고 독창적이라는것을 주장했을뿐입니다. 저는 어떤 경우든지 자기의 학술적신념을 달리할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누구나 우리 당정책을 열렬히 옹호해야 하오. 그러자면 우리 당정책의 연원을 옳게 해설해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았소. 그리고 선생은 교육규률도 란폭하게 위반했소. 교수요강과 진도표대로가 아니라 제멋대로 강의를 했단 말이요. 이 한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선생은 응당한 제재를 받아야 하오. 그래서 대학행정협의회에서는 선생에게 당분간 강의정지책벌을 적용하기로 했소.》

최정택은 전신의 피가 머리로 콱 몰키면서 눈앞이 아뜩해졌다. 억울하고 분했다. 싸우고싶다. 용기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총장의 단독결심도 아니고 대학행정협의회에서 이미 결정을 하였다니 순종하는 수밖에 없다. 즉석에서 항의를 하는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것은 더욱 좋지 못한 후과를 가져올수 있다. 문제를 조직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내가 정당한 이상 책벌은 취소될것이다.

오빈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였다.

《수차 충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엇서는 선생의 태도를 봐서는 아주 해임시켜버릴 생각도 없지 않았소. 그러나 선생의 교육자적성실성과 재능을 인정하는것만큼 우리는 신중한 토의끝에 그러한 조치를 취했소. 책벌이 언제 해제되는가 하는것은 선생의 자기반성여하에 달려있소. 지금 담임한 학생들의 실습을 지도하고있다는데 래일부터 송금석부학부장한테 인계하시오.》

최정택은 결렬이라도 선언하듯 자리에서 성큼 일어섰다.

그가 방안을 나간 뒤 오빈우는 송금석에게 전화를 걸어 저간의 사연을 알리였다. 송금석은 뜻밖인듯 놀라는 기색이였다.


×


송금석은 이튿날 내키지 않는 걸음이였으나 하는수없이 방직기계제작소로 나갔다. 총장의 지시를 거역할수가 없었다. 담임교원대신 그가 나타난것을 보고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들이였다.

《오늘부터 당분간 최정택선생을 대신해서 동무들과 함께 실습을 하게 되였습니다.》

송금석은 무척 난처한 표정으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최정택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학급장 오명식이 물었다.

송금석은 고개를 숙이며 학생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어차피 후에는 알게 될 일이지만 학생들에게 진실을 말하기가 주저되였다. 그는 점심시간에 김정일동지와 학급장 오명식을 조용한 곳에서 만났다.

《최정택선생이 책벌을 받은 사실을 알면 그에 대한 학생들의 신뢰가 떨어질수 있기때문에 내 아침에 학급동무들모두에게는 말하지 않았소. 그 선생한테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소.》

송금석은 무겁게 허두를 떼고 구체적인 사연을 말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도 총장의 처사를 은근히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말끝을 맺으면서 절통한 어조로 한마디 뇌이였다.

《며칠내로 부인이 귀국을 한다는데 그 선생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건 참으로 불미스럽고 가슴아픈 일이요.》

《총장선생도 최선생부인이 귀국한다는걸 알고있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급히 물으시였다. 참을수 없이 의분이 끓어오르시였다.

《물론 알고있소. 그들이 다시 결합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의도가 깔려있는것 같소.》

송금석은 침울히 응대했다. 그러자 오명식이 주먹으로 허공을 후리며 소리쳤다.

《나쁜 사람!》

총장이 곁에 있다면 그 드센 주먹으로 후려칠듯 한 기세였다.

송금석은 돌발적으로 격분하는 오명식을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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