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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직장 탈의실의 옷장앞에 난감한 기색으로 서계시였다. 어제 저녁 퇴근을 하면서 장안에 넣어두신 작업복이 없어졌다. 수수한 혼방직작업복인데 지난 며칠동안 바려서 누가 바꿔입을만 한것도 못되였다. 26호선반을 분해하여 낡은 부속도 갈아맞추고 도색을 다시 하시는 과정에 그이의 작업복은 다른 학생들의것보다 더 덞어졌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무들이 알면 무슨 말이 날것 같아 교복차림 그대로 작업장으로 나가시였다. 작업장 한쪽에 모여선 로동자들과 실습생들이 작업지시를 기다리며 한담을 나누고있었다.

《조용들 하시오!》

직장장이 나타나 손에 든 수첩으로 곁에 있는 선반기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번번이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신호기재로 쓰이는통에 그의 수첩뚜껑은 마련없이 헐어빠졌다.

《오늘도 〈천리마〉방직기와 신의주화학섬유공장 대상설비부속품들을 깎아야 하는데…》

그때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접수원처녀가 작업장에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직장장이 불길한 예감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접수원처녀는 급히 달려온 모양으로 가슴을 헐떡거리며 얼른 대답을 못했다. 그의 거멓게 질린 얼굴이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영옥동무가 글쎄…》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으나 숨이 차서인지, 억이 막혀서인지 뒤를 잇지 못했다.

《그 애가 또 어데서 무슨 말썽을 일으켰나?》

직장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다그쳐물었다. 처녀는 바싹 말라든 입술을 혀끝으로 추기고나서 간신히 대답했다.

《저기… 저… 공장으로 들어오는 길에서 차에 치웠어요.》

《아니, 무-어?! 많이… 많이 다쳤나?》

깜짝 놀란 직장장이 입술을 떨며 부르짖었다.

《내가 그렇게 한게 아니구… 많이 다쳤는지 그건… 모르겠어요.》

처녀는 자기가 사람을 치운듯이 따지고드는 직장장의 눈길에 겁이 났는지 황황히 자기변명부터 하였다.

로동자들과 실습생들은 뜻밖의 소식에 숨도 크게 못 쉬고 접수원처녀만 지켜보았다.

뒤전에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성큼 앞으로 나서시였다.

《그 동무가 지금 어데 있습니까?》

다급히 물으시였다.

《그 승용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갔어요.》

《제 좀 가보고 오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직장장한테 성큼 다가가 이렇게 말씀하시고 출입문쪽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작업장을 나서자마자 주먹을 부르쥐고 병원쪽으로 내달리시였다. 일각을 다투며 구원을 부르는 영옥의 처절한 형상이 눈앞으로 육박했다. 순간이라도 지체하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가 빚어질듯한 촉박감이 가슴을 조였다. 빨리! 더 빨리!… 안타깝도록 속도가 더딘것만 같았다. 목에서 단내가 풍기고 호흡이 가빠왔지만 속도를 늦출수가 없으시였다. 마침내 병원에 이르시였다. 그제서야 겉옷까지 화락하니 땀에 젖었다는것을 의식하셨다. 그이께서는 급히 현관으로 들어가시였다. 마침 하얀 위생복을 산뜻이 입은 녀인이 마주 걸어왔다.

《선생님, 방금 차에 치인 녀동무가 이 병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이께서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하며 물으시였다.

《들어왔어요.》

녀의사는 땀발이 돋은 그이의 존안을 찬찬히 살펴보며 대답했다.

《어떻습니까? 위급합니까?》

그이께서는 다시 다우쳐물으시였다.

《크게 상하지는 않았어요. 차체에 뿌리워 콩크리트바닥에 넘어지면서 왼쪽팔굽을 좀 상했을뿐이예요.》

《그렇습니까?!》

그이께서는 참을길 없이 옥죄이던 가슴이 확 열리는것을 느끼며 막혔던 숨을 터치시였다.

《좀 들어가봐도 일없을가요?》

《어서 들어가보세요, 이런 때는 면회를 못하게 되여있지만…》

그이의 표정에서 뜨겁고도 애틋한 혈육의 정을 읽어본 녀의사는 일순 규정의 요구를 잊어버렸다.

그이께서는 손수건을 꺼내 존안에 홍건히 흐르는 땀발을 씻으며 앞장서는 녀의사를 따라 치료실에 들어서시였다. 의료기구들이 번쩍거리는 치료실안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었다. 붕대를 감은 팔을 모포밖으로 내여놓고 누워있던 영옥이가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 표정을 보니 차에 치워 병원까지 실려왔으나 의식만은 한번도 잃지 않은것 같았다. 그는 놀란 눈길로 그이의 땀에 젖은 존안을 더듬더니 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때문에 이렇게…》

말끝을 맺지 못하고 방긋이 열린채 굳어진 그의 입술에 가는 파동이 일었다.

《아프지?》

그이께서는 침대곁으로 바투 다가서시였다. 영옥은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끄덕이였다.

《나때문에 많이 놀랐어요?》

이번에는 그이께서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눈웃음을 보내시였다. 영옥은 갑자기 성한 팔을 들어 베개밑을 더듬더니 보자기에 정히 싼것을 꺼냈다.

《자, 받아요.》

《그게 뭐요?》

《대학생동무의 작업복이예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크게 놀라시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

《어제 밤에 내가 가져갔댔어요.》

영옥은 어느새 즐거운 생각에라도 잠기는듯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건 왜?》

《그것도 짐작 못하겠어요?》

영옥은 응석을 부리듯 그이를 할낏 치떠보며 상글거렸다. 그 눈빛은 마치 오빠앞에 장한 일을 한 누이동생의 눈빛이였다.

그의 마음속 대사를 읽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자기 눈물이 쿡 치솟았지만 애써 맘을 감추시였다.

《덞어졌기에 오늘 저녁엔 집에 가지고가 빨아야겠다 생각했더랬는데 영옥이가 내 맘을 먼저 알았군.》

《맞아요.》

영옥은 자기의 마음을 알아맞힌게 기뻐서 성한 사람처럼 깔깔 웃어댔다. 그이께서는 가슴 한구석이 훈훈히 더워오는것을 느끼시였다.

《난 왜 그럴가요? 마음이 얼음장같이 차구… 뜨겁질 못하거던요. 눈치두 없구요.》

영옥은 두눈을 다시 쪼프리고 혼자소리처럼 속삭였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영옥이가 뜨겁지 못하다니…》

《난 어제 저녁에 퇴근하던 길에 방직공장에 다니는 학원시절의 동무를 만났댔어요. 반가운김에 함께 영화구경을 갔지요 뭐. 밤중에 합숙에 돌아오니 나하구 한호실에 있는 동무가 새침해있는게 아니겠어요. 그동문 날 보자마자 〈넌 량심이란 꼬물만치도 없어!〉하고 야단을 쳤어요. 〈대학생동무가 태로아저씨와 함께 26호선반은 물론 네 기대까지 닦구쓸구 도색까지 곱게 해놓았는데 넌 명색이 기대공이란게 영화구경을 가?!〉하고 욕을 마구 퍼부었어요. 대답질에 명수인 나두 할말이 없었어요. 난 그길루 합숙에서 뛰쳐나와 작업장에 가보았어요.》

영옥은 갑자기 말을 끊고 눈길을 들어 김정일동지를 우러러보았다. 크고 검은 눈동자가 어느결에 눈물에 잠겨버렸다.

《새것이 된 기대를 보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것 같아요. 그전같으면 난 남이 해준 도색을 내 손으로 박박 긁어버렸을거예요. 날 업신여기고 모욕한다구 생각했을테니까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저 고맙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사람의 마음이란 이상한거예요. 진심으로 위해주는건 제꺽 알리거던요. 정말 고마워요.》

영옥은 성한 손으로 머리맡의 수건을 당겨 눈굽을 훔치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첫날 볼 때의 그 차고 매서운 인상은 찾아볼수 없었다. 그가 다심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뭔가 보답하고싶었어요. 그래서 탈의실에 들려 대학생동무의 작업복을 들고나왔어요. 합숙에 돌아와 빨았는데 너무 늦다나니 아무리 봄철이라고 하지만 아침녘까지 어디 말라야지요. 그 속타던 생각을 하면… 다리미생각은 그담에야 들었지요 뭐. 그래 아침출근시간이 늦어졌어요. 대학생동무가 작업복을 찾을 생각을 해서 정신없이 뛰여오다가 그만…

난 암만 봐도 운수가 나빠요. 그저 한발자국만 움직여도 소동이 일어나거던요.》

《소동은 무슨 소동, 영옥동무, 고맙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영옥이가 내놓은 옷보자기를 헤치시였다. 영옥의 옹골찬 마음처럼 작업복은 다림발이 빳빳이 섰다. 무심히 쓸어보시니 다리미의 열기가 아직 배여있는듯 따스한 온기가 손끝에 느껴졌다. 그 감각속에서 영옥의 갸륵한 심정이 헤아려지며 목이 그득해오시였다.

《내가 어제 밤 빨래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세요?》

영옥은 갑자기 정색해서 속삭이듯 물었다.

《그래 무슨 생각을 했소?》

《내가 정 엉터리없는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탓하지 않겠지요?》

《탓하지 않겠소. 어서 말해보오.》

영옥은 가슴깊이 품어온 생각이지만 정작 말을 번지자니 서슴어지는듯 한동안 입술을 감쳐물고있었다. 그이께서 어서 말하라고 눈짓을 하셔서야 입을 열었다.

《나에게도 동무와 같이 훌륭하구 인정깊은 오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고 생각했어요. 난 이제부터 동무를 오빠라고 부를래요. 일없겠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간절한 기대가 어린 그의 눈길에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혈육이 얼마나 그리우면 그가 이런 말을 하랴. 그를 실망케 할수 없으시였다.

《고맙소, 영옥이가 날 오빠로 불러주겠다니 나도 영옥이를 동생처럼 여기겠소.》

《오빠!》

영옥은 금시 얻은 행복을 확인이라도 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그이를 《오빠》라고 불렀다. 방금까지 별처럼 빛나던 두눈에 뜨거운 눈물이 괴여올랐다. 오랜 세월 혈육의 정에 주렸던 영옥은 찾고찾던 친오빠를 이제야 만난듯싶었다.



치료실을 나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복도에서 마주오는 봉국을 보시고 우뚝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는 오늘 아침 학급장이 출석을 부를 때까지 공장에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불쑥 병원에 나타난게 모를 일이였다. 그의 친척들중에서 누가 입원이라도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봉국동무가 어떻게?》

그이께서는 다정히 물으시였다. 봉국은 웬일인지 사색이 된 얼굴을 무겁게 떨구고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무슨 일이 생겼소?》

그이께서 근심스럽게 다시 물으시였다.

《영옥동무한테 왔댔습니다.》

봉국은 기여드는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옥동무한테?…》

《사실은 오늘 아침 내가 차를 몰고오다가 그만 영옥동무를…》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에 사건의 진상을 깨달으시였다. 그가 자기 어머니의 승용차를 타고 때늦게 출근을 하다가 사고를 저질렀던것이다. 그이의 안광에서 예리한 빛발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래 사골 치고 어델 갔댔소?》

《영옥동무를 침대에 눕혀놓고 뭘 좀 구해오려고 식료상점엘 갔댔습니다.》

봉국의 손에는 과일통졸임과 사이다병이 들려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참을수 없는 분격이 치미시였다. 하지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준절한 충고를 하시기에는 장소가 마땅치 못했다. 봉국은 격노하신 그이의 시선에 몸을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날 저녁이였다.

공구직장 선전실에서는 민청초급단체총회가 열리였다. 봉국의 생활정형을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학급의 태반이 당원들이고보니 민청원들은 10여명밖에 안되였다. 그래서 선전실안의 앞쪽에 모두 모여앉았다. 총회에 참가한 민청원들의 얼굴마다에는 봉국에 대한 원망과 울분이 끓어번지였다.

민청위원장의 보고가 끝나자 봉국은 뜨직한 걸음으로 연단에 나섰다. 그는 평소에 학과토론이나 학술론쟁이 벌어질 때면 두루 다른 나라의 책들에서 본 지식을 활용하며 누구보다 화려한 토론을 하군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았다. 창끝처럼 날아드는 동무들의 시선을 받으며 무대에 나서보기는 처음이였다. 인민학교시절부터 고중시절까지는 칭찬을 받는데 습관되여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한 머리에 부상인 어머니의 눈부신 후광까지 받고있어서 모범학생으로 인정되여왔다. 소년단조직이나 민청조직에서 비판을 받아본 일이란 없었고 선생들로부터 꾸중을 당한 일도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여 최근에 한두번 비판을 받았을뿐이다. 조직적세련이 부족한 그는 지금 자신을 랭철히 돌이켜보려는 생각에 앞서 보고서의 내용이 정당한가를 따져보았다. 보고서에는 오늘 저지른 사고로부터 시작하여 실습 첫날에 결석을 한 사실과 외국류학을 꿈꾸면서 여전히 다른 나라 책들만 보는 그릇된 학습태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결함들이 지적되였다. 순간적인 실수로 사고를 친것은 잘못이라고 인정되지만 그밖의 결함들은 잘 접수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반발심이 치밀었다. 하루쯤 결석을 한것이 뭘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학급에는 나보다 결석을 더 많이 하는 학생도 없지 않다. 선행고전이나 다른 나라 책들을 깊이 탐독하는것도 그렇다. 적어도 고등교육을 받는 대학생이라면 응당 고전의 명제들을 알아야 하며 다른 나라의 책들을 많이 읽어야 할것이다. 마음속깊이에서 자신을 옹호하는 그러한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그러나 이 마당에서 그것을 감히 주장할 용기는 없었다.

연단에 나선 그를 치떠보며 민청위원장이 준절히 말하였다.

《동무는 승용차를 몰고 공장에 출근했습니다. 나라사정이야 어떻든, 인민들의 일반적인 생활형편이야 어떻든 자기만 분수에 넘는 물질적향리를 누리려는것은 조국과 인민이 안중에 없는 그릇된 생활태도입니다. 우리는 동무의 량심적인 자기비판을 듣고싶습니다. 이 시각까지도 자기를 심각히 뉘우치지 않으면 동무는 민청조직에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민청위원장의 마지막말에 봉국은 가슴이 얼어들었다. 공포심에 압도되면서 이 기회를 무난히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보고서에 지적된 결함들을 모두 접수합니다.》

힘겹게 허두를 뗀 그는 차사고를 친 사실은 법적제재를 받아 마땅하다고 전제하고 그런 사고를 빚어낸 사상적원인과 후과를 상세히 분석하였지만 이여의 결함들은 스치고 넘어갔다.

누구에게나 그의 반성이 성실치 못하다는것이 느껴졌다. 격분을 금치 못하는 날카로운 비판들이 비발치듯 쏟아졌다. 회의에 참가한 거의 모든 학생들이 모두 한마디씩 하였다.

민청원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봉국의 결함을 두고 누구보다 괴로와하시였으며 그가 오늘을 계기로 학습과 생활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시였다. 하지만 다른 학생들이 충분히 호상비판을 하기때문에 따로 말씀이 없으시였다. 장내를 울리던 격렬한 목소리들이 즘즛해지자 민청위원장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봉국동무에게 더 호상비판을 할 동무가 없습니까?》

선희가 주밋거리며 일어섰다. 얼굴을 떨구고 굳어진 그의 모습은 어쩐지 처량해보이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였다. 동무들은 봉국이와 선희가 가까운 사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선희는 금방이라도 오열을 터칠듯 한 표정이였다. 벌써부터 입술이 떨리고있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린듯 눈시울이 표나게 붉어졌다.

《다른 동무들이 제기한것처럼 봉국동무는 우리와 한자리에서 계속 공부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기의 결함이 어떤 사상적병집에서 오는지를 똑바로 깨닫지 못하고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봉국동무를 잘 압니다. 그는 참을수 없을 정도로 허영심에 들떠있습니다. 다른 나라 책들만을 읽는것은 그 무슨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학적인 겉멋을 위해서였습니다. 외국류학을 꿈꾸는것도 우리 조국의 부강발전에 필요한 과학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기때문입니다. 봉국동무의 경우는 우리 청년들이 허영에 들뜬 생활태도를 가질 때 남의것에 맹목적으로 환상을 가지고 종당에는 사대주의구렁텅이에 떨어진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나는 지난날 봉국동무와 한책상에 앉아 가까이 지낸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지내고보니 그는 더는 가까이 지낼 동무가 아니였습니다.》

선희는 절망적인 고통에 이지러지는 봉국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더는 계속하지 못하고 밑둥이 잘린 나무토막처럼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그후 누가 무슨 말을 하였으며 회의가 어떻게 결속되였는지 알수 없었다. 다른 동무들은 자리를 떴지만 그는 홀로 남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평소에 봉국에게 품었던 안타까운 심정을 가슴후련히 터놓았지만 까닭모를 오열이 북받쳐올랐다.

《선희동무!》

머리우에서 부름소리가 들리였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였다.

《봉국동무에 대한 동무의 비판은 정당했소. 누구보다도 봉국동무의 사상적병집을 명백히 지적해주었소. 그런데 봉국동무와의 관계를 수치스럽게 여긴다는게 진정이요?》

선희는 일어섰다.

《요즘 난 그 동무때문에 그냥 고민이예요. 그런 괴로움을 더는 참을수 없어요.》

흐느낌에 젖은 처녀의 목소리에는 심장의 아픔이 어려있었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에서 절절한 빛이 번쩍이였다.

《나는 동무가 그렇게 얄팍한 심장을 지닌 사람인줄은 몰랐소. 오늘 민청조직에서 봉국동무를 호되게 비판한것은 그의 결함을 고쳐주기 위한것이였소. 그런데 누구보다 봉국동무의 결함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동무가 오히려 그와의 관계를 부끄럽게 여긴다니 정말 뜻밖이요.》

선희는 무엇인가 응대를 하려고 했으나 목이 꽉 메여와서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깊이 숙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조를 바꾸어 타이르듯 말씀하시였다.

《가깝게 지내던 벗이 결함을 범하였다고 해서 쉽게 저버리기에는 우정의 의미가 너무도 숭고하오. 우정은 목숨처럼 귀중히 여겨야 하는것이요. 그것을 쉽게 저버리는 사람은 집단의 의무도 쉽게 저버릴수 있소. 봉국동무는 가정적인 영향으로 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면서 동무가 지적한대로 허영에 들떠있었소. 인간의 성장에서 가정적환경은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고 투영되는 경우가 없지 않소.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동지들의 영향이요. 선희동무, 우리 봉국동무를 귀중히 여기고 잘 도와줍시다.》

《그가 말밥에 오를 때마다 괴로웠어요. 봉국동문 절대로 용서받을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댔어요.》

《오늘의 비판으로 봉국동무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완전히 극복되리라고 생각할수는 없소. 그러나 그는 조만간에 개변될거요. 선희동무, 동무가 봉국동무와 가까이 지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한것은 분김에 한 말이겠지? 어떻소? 솔직한 심정을 말해보오.》

그이의 부드러운 눈빛에 부딪친 선희는 마음을 진정하며 자신을 랭철히 돌이켜보았다. 그에 대하여 랭혹한 말을 한것도 실상은 속일수 없는 심장의 애타는 절규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말없는 선희의 내심을 꿰뚫어보며 타이르시였다.

《평생 처음 호된 비판을 받은 봉국동무가 몹시 괴로워할거요. 동무가 잘 도와주오.》

선희는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서 검푸른 하늘에는 뭇별이 총총했다. 물기어린 망막에 비껴드는 별빛이 무지개빛으로 부서졌다. 문득 이 저녁에 깨달은 모든것이 인생의 먼길을 앞에 둔 자기에게 더없이 소중한 정신적자양으로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정문을 나서자 선희는 반달음을 놓았다. 그는 수치감과 배신당한 설음으로 모대길 봉국을 그려보며 마음속의 말을 더듬었다.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고무공장울타리옆을 지나니 가로등빛이 휘황한 뻐스정류소가 나타났다. 실습을 하면서부터 저녁마다 봉국이와 함께 뻐스를 기다리군 하던 낯익은 정류소였다. 급히 달려가서 혹시나 하여 줄지어 늘어선 손님들을 살펴보았다. 정류소에는 다행히도 봉국이가 있었다.

《봉국동무.》

조용히 불렀다. 머리를 돌려 이쪽을 알아본 봉국은 마침 잘 만났다는듯이 가로수옆에 선 선희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언제나 온화한 정채가 흐르던 그의 눈에 서슬푸른 의분이 불타고있었다. 당장 주먹행사라도 할듯 한 무서운 기상이였다. 그러나 가까이 마주서자 갑자기 상처의 진통을 겪는 사람처럼 얼굴이 괴롭게 이지러졌다.

《우리 함께 걸으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어요?》

선희는 사나와진 그의 표정에서 반발심을 느끼며 말하였다.

《이미 회의장에서 나에게 하고싶던 말을 다했는데 뭘 더 말하겠소. 나도 동무에게 더는 할말이 없소!》

봉국은 다가올 때처럼 이를 앙다물며 홱 돌아서 성큼성큼 가버렸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금 도착한 뻐스에 뛰여올랐다.

선희는 반사적으로 떠나는 뻐스를 향해 몇걸음 옮기다가 멈춰서버렸다. 화끈 달아오르는 얼굴을 그 누가 볼세라 두손으로 황급히 싸쥐였다. 스스로도 알수 없는 서글픔과 봉국에 대한 원망이 가슴에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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