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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0일

평양시간

제 4 장

 

1


학생들이 흥분속에 기다리던 조선사학과토론시간이 다가왔다. 며칠전에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과 그 력사적의의》라는 토론제목이 제시되였다. 누구나 열심히 토론준비를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구석기시대문제를 두고 그토록 깊이 연구하여오셨다는것을 알게 된 후부터 조선사에 대한 학습열의가 부쩍 높아졌다. 학생들은 여러가지 참고문헌들을 뒤져가며 정열을 기울여 쓴 원고를 들고 앞을 다투어 토론에 참가하였다.

교탁옆에 놓인 책상에 마주앉은 강명호는 시간이 퍼그나 흐르자 김정일동지께서 어서빨리 연단에 나서기를 기다렸다. 이미 그는 김정일동지와 오늘 토론하게 될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때 그이께서는 놀라웁게도 삼국통일에 대한 기존인식을 부정하는 의견을 내놓으시였다. 그래서 강명호는 오늘 토론이 시작되였을 때부터 그이를 주시하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단정한 자세로 다른 학생들의 토론을 주의깊게 들으시며 그냥 앉아계시였다. 혹시 사료들을 더 연구하는 과정에 달리 생각하는것일가, 아니면 다른 학생들에게 토론할 기회를 양보하시는것일가? 학생들이 꼬리를 물고 연단에 나서는통에 서둘지 않으면 토론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그들은 강의에서 배운대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된 과정과 그 력사적인 의의를 높이 평가하였고 김춘추와 김유신을 민족의 영웅으로 묘사하였다.

강명호는 토론이 끝날 때마다 뒤쪽에 앉으신 그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이께서는 자신이 준비한 토론원고에 무엇을 간단히 적어넣기도 하고 연필을 멈춘채 심각한 사색에 잠기기도 하시였다. 잇달리던 토론이 잠시 동이 났을 때 강명호는 더는 초조감을 누를길이 없어 입을 열었다.

정일동무, 삼국통일문제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는것은 없습니까?》

일순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신 그이께서는 손에 든 원고에 얼핏 시선을 주고나서 토론을 시작하시였다.

《저는 다른 동무들의 토론과 견해를 좀 달리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엄연한 력사적사실들로 미루어보아 신라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 첫 통일국가가 세워졌다는 지금까지의 인식이 잘못되였다고 생각합니다.》

교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긴장해졌다. 예견했던대로이지만 강명호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무엇인가 또다시 탁월한 론거에 부딪치게 되리라는 예감으로 가슴을 조이며 그이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신라는 당나라세력을 등에 업고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는 하였으나 대동강 이남지역밖에 차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북지역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이 창건되여 200여년동안 존재하였습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차지하고있던 령토에 두개의 서로 다른 주권국가인 발해와 신라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신라에 의하여 삼국이 통일되였다고 말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이와 같이 전제한 론거에 명백히 설명을 한 다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무엇보다먼저 신라통치배들이 신성한 우리 땅에 처음으로 외세를 불러들인 사대주의의 첫 시조라는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는 본래 동족의 나라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신라통치배들은 외세인 당나라침략자들을 등에 업고 그 힘을 빌어 동족의 나라들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외적과 합세하여 동족의 나라를 멸망시킨 신라에 대하여 그리고 신라왕조의 외세의존정책을 앞장서서 집행한 김춘추와 김유신에 대해서도 응당 재평가해야 할것입니다.》

그이의 주장에 놀란 학생들은 저마끔 긴장한 눈길들을 주고받았다.

지금까지는 우리 나라의 이른바 력대 《왕업》가운데서 국토를 통합한 신라의 《왕업》을 그중 높이 평가하여왔었다. 옛날부터 우리 사람들속에는 김유신이 지혜있고 용맹한 명장으로 널리 알려져왔다. 그의 《무훈담》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기소설로, 패설과 구전문학으로 전해졌던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신라의 《왕업》과 김유신의 《무훈담》에 동족을 배반하는 사대행위가 깔려있다는것을 보지 못했었다.

학생들이 숨을 죽이고있는 가운데 그이의 말씀은 계속되였다.

《당시 세 나라가운데서 삼국을 통일하려는 지향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줄기찬 투쟁을 벌려온 나라는 고구려였으며 우리 나라의 국토통일위업은 고려에 의해서 비로소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마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의향을 묻듯이 강명호선생을 바라보시였다. 강명호는 경탄의 빛이 흐르는 얼굴로 어서 앉으라고 눈짓을 하였다. 그는 토론내용이 강의에서 배워준것과 전혀 달랐으나 조금도 당혹하지 않았다. 구석기문제를 통하여 기존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그이의 독창적인 견해에 접하였던바도 있고 3국통일문제를 놓고 진작 초보적인 론의도 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가 예견하였고 기대하던대로 김정일학생이 또다시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는 생각으로 흡족한 기분이였다. 그는 선배의 지식이 끝나고 후배의 발견이 새롭게 시작될 때에만 과학의 발전이 도모된다고 간주하였다. 그렇기때문에 관록을 코에 걸고 자기의 견해와 다르다고 하여 후배들의 새로운 견해와 발견을 묵살하려는 사람들을 과학발전의 장애물로 치부하였고 도덕적으로 경멸하였다.

학생들은 의혹이 실린 시선들을 주고받았다. 아직은 그이의 토론이 가지는 민족사적의의를 다는 깨닫지 못하였다. 다만 그이께서 대학교단에서 가르쳐준 내용과는 전혀 상반되는 견해를 내놓았다고 놀랍게 생각할뿐이였다. 결론을 기다리는 학생들의 눈길이 자기에게로 쏠리는것을 의식한 강명호는 움쭉 일어나 김정일동지에게로 다가갔다.

《그 토론원고를 나에게 주시오.》

《란필이여서 선생님이 보실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글자가 크고 글씨가 활달해서 쉽게 볼수 있습니다.》

《그럼 한번 보아주십시오. 제 미숙한 견해를 적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원고를 내여드리며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시였다. 번번이 자신의 견해를 귀중히 여기면서 그것을 가꾸어주려고 성의를 다하는 스승의 수고가 헤아려지셨던것이다.

교탁앞으로 돌아온 강명호는 교실안의 학생들을 쭉 훑어보았다.

《방금 들은것처럼 김정일동무는 삼국통일문제에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 내용에 대하여서는 나 역시 지금은 공감보다 의혹이 더 짙습니다. 그런것만큼 좀 연구를 한 다음에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 력사학은 아직 많은 문제를 미지수로 남겨놓고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앞으로 있게 될 학과토론들에서는 다른 학생들도 배운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머물지 말고 김정일동무처럼 제기된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자기의 일가견을 세워주기 바랍니다.》

그가 교실에서 나갔으나 학생들은 학과토론을 하던 흥분의 여운에 잠겨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던지신 충격이 너무도 컸던것이다. 명백한 론리에 감동이 너무도 커서 모두 숙연한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직은 그이의 학과토론의 본질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였다.

봉국이가 침묵을 깨치였다.

《난 말이요, 오늘 학과토론을 준비하면서 한가지 커다란 의문을 가지였소.》

그는 오늘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 우리 나라 준민족형성에서 가지는 의의》라는 제목으로 토론을 하였다. 당시 학계에서는 삼국통일에 의해 비로소 준민족이 형성되였다고 하였다. 봉국의 학과토론도 그러한 방향에서 진행되였다.

《그래 어떤 의문을 가졌소?》

봉국이와 함께 바로 준민족형성문제를 가지고 토론에 참가했던 명식이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고전에 의하면 언어의 공통성, 지역의 공통성, 경제생활의 공통성, 문화적공통성에서 나타나는 심리적공통성, 이렇게 네가지를 민족을 특징짓는 징표로 보면서 그가운데서 어느 한가지만 빠져도 한 민족이 될수 없다고 하였소. 그렇다면 해외동포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이런 의문이 떠올랐단 말이요.》

명식은 일순 어리둥절하였다. 민족의 징표에 대한 고전명제를 모르기도 하였거니와 삼국통일이후에 형성된 준민족문제와 오늘의 해외동포문제를 련결시켜 생각해보지 못했던것이다.

《해외동포들이 우리 민족의 성원이라는거야 인민학교 아이들에게도 상식인데 뭘 그런 의문을 가진단 말이예요?》

곁에 앉은 선희가 봉국에게 눈을 빨며 어처구니없어하였다. 그의 말에 힘을 얻은 명식이가 다소 당황했던 기색을 풀고 번쩍 턱을 들었다.

《식자우환이라더니 봉국동문 고전을 너무 많이 읽다보니 그런 엉터리없는 의문을 가지누만.》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비난조가 느껴졌다.

봉국은 말마디에 힘을 주며 반박했다.

《동무들이 생각하는것처럼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소. 국내인민들과 해외동포들사이에는 언어가 같을뿐이지 그밖의 세가지 징표에는 공통성이 없거나 희미하오. 고전의 규정에 의하면 해외동포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는 결론이 주어진단 말이요. 그래도 내 의문이 엉터리라는거요?》

선희와 명식은 말문이 막히였다. 듣고보니 과연 심중한 문제인것 같았다. 다른 학생들도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알수 없어서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내가 좀 말하겠소.》

그들사이에 오가는 말을 주의깊게 듣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일어서시였다. 학생들은 일제히 그이께로 머리를 돌리였다.

《봉국동무로서는 응당한 의문을 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의 명제에 비추어보면 있을수 있는 의문이요.》

봉국은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오직 그이께서만이 자기가 제기한 문제의 학술적의의를 리해해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께서는 신중한 표정으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민족문제에 대한 해답을 고전이 아니라 수령님의 사상과 리론에서 찾아야 합니다. 민족의 징표에 대한 고전의 정식화는 유럽나라들, 여러 민족이 모여사는 나라의 경우를 참작하여 내놓은것입니다. 그 정식화는 그런 나라들에서는 맞을지 모르나 단일민족인 우리 나라의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지금 력사학계에서는 우리 나라의 민족형성문제를 두고 론의가 많습니다. 맑스의 명제에 따라 자본주의단계에 와서야 민족이 형성된다고 보는데로부터 우리 민족이 일제시기에 형성되였다고도 하고 지어 해방후에 형성되였다고 하는 황당한 주장들이 나오고있습니다. 만일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일제시기에 민족이 형성되였다면 그 이전시기에 해외로 흘러간 동포들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는 결론에 떨어집니다. 그리고 해방후에 민족이 형성되였다면 조선사람은 본래부터 한 민족이 아니라 북과 남의 서로 다른 두 민족으로 되며 따라서 조국통일문제는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민족분렬을 끝장내는 문제인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민족이 합치는 문제로 될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민족분렬주의자들과 맞장구를 치는것으로 됩니다. 동무들, 고전을 교조적으로 대하면 이렇게 엄중한 지경에 떨어지게 됩니다.》

학생들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이의 말씀을 들었다. 고전에 대한 교조적인 태도가 빚어내는 후과를 생동한 직관으로 보는듯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보다 절절한 어조로 계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을 이루는 공통성을 피줄, 언어, 령토라고 가르치시였습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것은 피줄과 언어라고 하시였습니다. 해외동포들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들은 우리와 한피줄을 이어받았고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있습니다. 그러니 두말할것없이 당당한 조선민족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학생들을 둘러보시였다. 창가로 흘러드는 해빛이 그이의 존안에 너울쳤다. 교실안에는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이의 명철한 분석과 정연한 론리에 감동된 학생들의 숨결소리만이 높아졌다.

선희는 문득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그는 할아버지를 통해 사학계에서 민족형성문제를 두고 론쟁이 거듭되여온 사실을 알고있었다. 《민족은 사회발전에서 부르죠아시대의 필연적산물이며 그 필연적형태이다.》라는 맑스의 명제에 따라 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이 현대에 와서야 이루어졌다고 보면서 그 구체적인 시기를 다르게 규정하는 주장들이 엇갈려왔다. 그처럼 수많은 사학자들이 지혜를 모아 모색하던 문제가 그이의 사색속에 비껴들자 어렵지 않게 선명히 밝혀진다! 선희는 엄숙한 기분에 휩싸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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