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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아버지에게

저는 최근에야 당신이 평화시절처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무사시노에 자리잡은 조선대학에 볼일이 있어서 갔댔는데 한 학생이 펼쳐든 정치경제학교과서에 저자인 당신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최정택》이라는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너무도 반갑고 기뻐서 글자마다를 소중히 안아보는듯 한 심정이였습니다. 저는 대학정원의 으슥한 곳으로 달려가 정원수줄기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우리가 첫사랑을 나누던 청춘시절과 공화국북반부에서 흘러간 단란하고 행복했던 생활의 단편들이 눈앞을 스쳤고 그것을 영원히 상실한 한스러움이 가슴을 찢었습니다.

그 아픔이 너무도 커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진희 아버지, 펜을 들고보니 오늘의 우리 모녀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알려드리기에 앞서 어찌하여 저의 생활이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을 아시면 당신은 놀라고 분격하실것입니다. 그렇지만 선량한 당신을 속이고싶지 않기에 모든것을 진실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용서하세요.

적들이 평양을 강점했을 때 저는 시내에 남아있었습니다. 한주일전에 대학교직원들의 가족들은 조직적으로 후퇴를 하였지만 저는 따라갈수 없었습니다. 중앙방송국은 수도에 남아서 마지막시가전이 격렬하게 벌어진 그날 아침까지 방송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대동강을 건너 본평양에 쓸어들었을 때에야 서둘러 기재들을 걷어가지고 철수했습니다. 저는 동무들과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황황히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날 아침 옆집할머니에게 맡겼던 진희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애를 둘쳐업고 문밖에 나서자 어느새 시내엔 적들이 한벌 덮여있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저는 대오를 따라갈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를 데리고 집에 눌러있게 되였습니다. 이럭저럭 보름이 지났습니다. 마가을의 찬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음산한 날이였습니다. 웬 사나이 셋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깨가 앙상하고 얼굴이 갸름한 사나이는 말쑥한 양복차림에 누런 종이우산을 썼습니다. 총대를 메고 《치안대》완장을 낀 두 사나이는 우비도 없이 찬비를 맞았는데 무척 초췌한 몰골이였습니다. 신사풍의 사나이는 평양에 자기네 방송국을 개설하는데 저더러 함께 일해볼 생각이 없는가고 물었습니다. 입으로는 점잖게 의향을 묻고있었지만 쏘아보는 싸늘한 눈은 무조건 순종을 강요하고있었습니다.

저는 몸이 불편한데다가 아이까지 앓고있어서 일을 할 계제가 못된다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와 진희는 독감에 걸려 앓고있었습니다. 놈들은 병색이 도는 저와 아이를 번갈아보더니 몸이 완치되면 방송국에 나와주기를 바란다는 말로 뒤를 다지고 떠나가버렸습니다. 저는 몹시 불안했습니다. 시내에서는 피비린 살륙이 벌어지고있었습니다. 저는 집구석에 그냥 눌러있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전쟁의 동란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지낼수 있는 새로운 피난처를 찾고싶었습니다. 문득 서울의 친정집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가 서울의 명망높은 신학교수인것만큼 딸의 신변은 보호해줄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무렵에 인민군대가 청천강이북까지 후퇴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양이 인차 해방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저에게 미국의 강대성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었습니다. 오늘에 와서 솔직히 고백하지만 어린시절부터 아버지한테서 숭미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저는 미군이 공화국북반부의 대부분지역을 강점하자 승리의 신심을 잃고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적들에게 복무하고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해방후 그리도 행복한 생활을 안겨주었던 공화국제도를 스스로 배신하고싶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집에 그냥 눌러있다가는 놈들의 방송국으로 끌려나갈수 있었습니다. 난감한 처지에 놓인 저는 어떻게 결심을 내려야 할지 몰라서 잠 못 이루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놈들의 시달림을 피하여 서울에 있는 친정집으로 갈 생각 을 했습니다. 여차하면 남해안까지 정치공작을 나갔던 당신도 미처 후퇴를 못하고 처가에 들려 은신하고있을것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희를 둘쳐업고 누구도 모르게 집을 나선 저는 서울을 향해 떠났습니다. 저는 그때 이 걸음이 후날 두고두고 혀를 깨물며 후회하게 될 치욕으로 되리라고는 상상할수 없었습니다.

며칠간의 보행끝에 옛집의 뜨락에 들어서는 순간 저는 그만 아연해지고말았습니다. 고향집은 그새 너무도 몰라보게 쓸쓸한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사랑채는 무너지고 본채도 금시 풀썩 주저앉을듯 위태롭게 서있는데 기울어진 앞벽에 곰팡이가 덮인 통나무가 고여있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저는 흙먼지가 두텁게 앉은 퇴마루우에 올라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러보았습니다.

《누구시오?》

방안에서 신음소리같이 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분명 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다급히 문손잡이를 당겼습니다. 문은 안으로 걸려있었습니다.

《아버지, 저예요. 순정이예요!》

저는 숨가쁘게 부르짖었습니다.

《순정이라니?》

방안에서 석쉼한 목소리가 울리더니 문이 힘겹게 열리였습니다. 저는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는 그새 머리가 하얗게 세고 병색이 도는 얼굴은 살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기껏해서 헤여진지 몇년밖에 안되는데 아버지의 모습에는 몇십년세월의 자취가 새겨진듯 하였습니다. 저는 오금을 꺾고 주저앉으며 아버지를 부둥켜안았습니다. 뼈마디가 앙상한 아버지의 손이 저의 등을 하염없이 어루만지였습니다. 뜨거운 눈물이 제 어깨를 적시였습니다. 친정이 커다란 불행을 겪었다는것이 한순간에 알려졌습니다. 그때 잠을 깬 진희가 울었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어깨너머로 진희를 바라보았습니다. 짓물린 아버지의 눈에 혈육의 정이 피여올랐습니다.

《어서 내려놓고 젖을 먹여라.》

아버지가 아이를 받겠다고 여윈 팔을 내들고 재촉하였습니다. 언제 불을 때보았는지 방바닥은 아이를 내려놓을 자리가 없게 찼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집어주는 방석을 깔고앉아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어머니와 오빠는 어데 가셨어요?》

저는 불안한 심정을 눅잦히며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습니다. 담배를 붙여무는 손이 후들거리고 잔주름이 얼기설기 얽힌 얼굴이 이지러졌습니다.

《집안꼴이 왜 이렇게 되였어요?》

다시 물었습니다. 무거운 정적에 숨이 막히는듯 했습니다.

《미국놈들이 너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였다!》

아버지는 금시 울음을 터뜨릴듯 입술을 떨며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마트면 진희를 방바닥에 떨굴번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희가 다시 울어서야 저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

저는 오열을 터뜨리며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의 볼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독한 담배를 한대 다 태워버리고서야 아버지는 그새 겪은 불행을 떠듬떠듬 말씀하시였습니다.

인민군대가 남진을 했을 때 오빠는 서울에서 정치공작을 하던 당신의 영향을 입어 인민정권기관에서 일하였다더군요. 그때의 일은 저보다도 당신이 더 잘 아실것입니다. 당신이 서울을 떠나 남해가로 공작지를 옮긴 다음에도 오빠는 여전히 종로구인민위원회 교육문화과장으로 사업하였답니다.

인민군대가 후퇴를 하고 적들이 다시 서울로 기여들자 시내에서 피비린 살륙이 벌어졌답니다.

그때에 오빠와 어머니는 놈들에게 잡혀 피살되였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난 저는 억이 막혀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어머니와 오빠를 잃은 슬픔때문이 아니였습니다. 서울로 떠나온 걸음이 만회할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실책이였다는것을 깨달았기때문에 자신을 저주하며 울었습니다. 앓고있던 아버지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날무렵에 돌아가시였습니다. 전쟁은 공화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것은 세계를 놀래운 사변이였습니다.

저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고싶었으나 분계선의 철조망이 귀환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설사 그 물리적장애가 없다 하더라도 돌아갈수 없었습니다. 조국을 배신하였고 후퇴시기에 당신도 신심을 잃고 서울에 눌러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당신의 신념을 모독하였던 제가 무슨 낯으로 다시 나타나겠습니까. 다가온 평화는 전쟁의 참화에 시달리던 모든 사람들에게 생활의 안정을 주었다고 할수 있겠지만 저는 전쟁시기보다 더 괴로운 번민에 시달렸습니다. 사죄할길 없는 죄의식과 자신에게 그리도 소중하던 모든것을 상실한 슬픔이 무시로 뇌수를 파고들었습니다. 참으로 하루를 살아가기가 힘겨웠던 저는 자기의 앞길에 비상한 그 어떤 전환이 있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팔아 돈을 구해가지고 일본으로 가는 밀선을 탔습니다. 서울에서보다는 오히려 이역땅에서 아이를 키우며 남모르게 살아가다가 눈을 감는게 편안할듯싶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밀선이 현해탄을 건늘 때 배전을 때리는 물결소리는 옛추억을 불러내며 저의 가슴을 아프게 자극했습니다. 현해탄의 물결우에는 청춘시절 우리들의 푸른 꿈과 불타는 사랑의 속삭임이 깃들어있습니다. 일본에서 서로 다른 대학을 류학하던 우리들이 처음 알게 된것도 현해탄의 물결을 가르던 관부련락선의 갑판우에서였고 장래를 약속하며 서로 사랑을 고백한것도 그 갑판우에서였습니다. 그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을 때 저의 심정이 어떠하였는지는 이 편지에서 애써 피하렵니다. 영원한 리별을 가져온 오늘에 와서 그런 심정을 고백한다는것은 당신앞에 실례가 되는 일입니다. 일본에서 저는 갖은 고생끝에 대학시절의 옛 스승을 만나 그가 경영하는 전자공학연구소에 취직할수 있었습니다.

연구소에서 여러해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텔레비죤에 대한 첨단기술도 익히였고 이럭저럭 살아갈 생활토대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두고온 조국, 잃어진 사랑에 대한 상실의 애수는 저의 가슴을 여전히 괴롭혔습니다. 대동강변에 자리잡고있던 정다운 우리 집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고 당신과 더불어 행복했던 나날들이 끝없이 눈에 밟혔습니다. 전 이 끝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언젠가 눈을 감게 될것입니다. 제딴에는 그래도 죄를 씻느라 애도 써보았습니다. 무슨 희귀한 문헌자료나 실험기구 같은것이 생기면 서둘러 싸안고 조선대학에 찾아가군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제가 할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것뿐이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저는 뜻밖에도 당신이 쓴 교과서를 보게 되였던것입니다.

진희 아버지

편지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리해하여주십시오. 이 가슴에 넘치는 만단사연을 다 쓰자면 한권의 책으로도 모자랄것입니다. 저는 몇번이나 귀국신청서를 썼댔습니다. 하지만 량심이 부끄러워 찢어버렸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새가정을 이루었을것입니다. 저를 무섭게 증오하며 새 안해를 맞이했을것입니다. 배반당한 과거는 깨끗이 잊으시고 부디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회를 보아 진희만은 귀국시키렵니다.

부탁컨대 어머니와는 달리 죄없는 그 애가 찾아가면 애정을 기울이시여 사회주의조국의 참된 딸로 키워주십시오. 그 애가 철이 들면 이 엄마의 슬픈 교훈을 심장에 새기도록 키워주십시오. 부디 그 애는 나처럼 되지 말기를, 나처럼 한뉘 눈물을 흘리며 살지 말기를 바래서 조국의 품으로, 당신의 품으로 보내렵니다.

이역만리에서 당신의 건강을 빕니다.

1961년 2월 11일

일본 도꾜도 찌요다구 후지미쬬

려순정 올림



김정일동지께서는 편지를 다 읽으신 후에도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그냥 들고계시는 편지지우에 려순정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익히 보아오신 사진속의 부인은 밝게 웃는 얼굴이였으나 이 시각 상상속에 련상되는 그는 하염없이 울고있는 처량한 모습이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생활의 풍파와 마음의 아픔을 겪으며 지나간 나날에 그가 흘리고 토한 무수한 회오의 눈물과 자탄의 한숨이 그대로 자신의 가슴에 마쳐오는듯 하여서 눈시울이 화끈해지시였다. 그에 대한 원망보다는 오히려 련민의 정이 끓어오르시였다.

《선생님, 부인에게 회답을 쓰십시오. 부인이 교훈을 찾았으니 남은건 선생님이 용서하는 일입니다.》

최정택은 절절히 당부하시는 그이를 그윽한 눈길로 마주볼뿐 대답이 없었다.

《사실 저는 부인에게 한번 편지를 띄워보려고 했댔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였으니 선생님이 따뜻한 회답을 쓰시는것이 제일 좋을것 같습니다. 선생님, 부인에게 회답을 하시겠다는걸 저하고 약속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덧 시름이 걷히기 시작한 최정택에게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고맙소, 정일동무. 좀 생각해보겠소!》

최정택은 목메인 소리로 대답하였다. 그리움이 없지 않지만 원망도 누를길 없는것이여서 안해에 대한 태도를 결심하기가 어려웠다. 당장은 회답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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