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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석은 자기 방에서 나와 총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였다. 길게 트인 복도의 대리석바닥이 창문으로 흘러드는 해빛을 받아 얼른거리였다. 틀지게 옮겨지는 홍창구두밑에서 개구리가 울듯 빠드득빠드득 가락맞는 소리가 울리였다. 그는 방금전에 총장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어제 준 론문원고를 다 읽었으니 토론을 해보자고 하였다. 송금석은 자기의 론문에 대한 총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사회주의진영의 통합경제와 매개 나라들의 경제기술적진보》 라는 제목을 단 송금석의 론문은 원고지로 200매가량 되였다. 그는 론문에서 쎄브성원국들의 발전상황을 분석하면서 《통합경제》가 지난날 뒤떨어졌던 나라들의 경제기술적진보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총장실에 들어선 송금석은 오빈우를 향해 다가가면서 그의 낯빛을 예민하게 살피였다. 오빈우의 온화한 얼굴에 만족한 기색이 어려있는것 같았다. 론문을 좋게 본것이 분명했다. 송금석은 머리를 약간 숙여보이며 입을 열었다.

《바쁘실텐데 론문을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

오빈우는 송금석이 자리에 앉기를 기다리더니 뒤로 젖혔던 몸을 앞으로 숙이며 책상우에 놓인 원고를 집어들었다.

《내 생각에는 론문을 아주 잘 쓴것 같소. 우선 현실적으로 매우 의의가 큰 문제를 다루었단 말이요.》

그는 옆벽에 걸린 달력을 피끗 보고나서 계속했다.

《이제 다가오는 이달에 베를린에서 쎄브회의가 열리게 되오. 송선생도 알겠지만 이번 회의는 〈모스크바성명〉정신을 구현하여 경제분야에서 국제적분업과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목적밑에 열리게 되오. 아직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사회주의나라들은 쎄브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무관계하지는 않소. 론문은 쎄브의 역할을 정확히 언급했소. 그리고 매우 세련되고 품위있게 씌여졌소.》

오빈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통통한 손가락으로 원고를 다독였다. 송금석은 가빠오는 숨을 몰아쉬였다. 북받치는 자부심과 성공의 기쁨으로 숨이 막히는듯 하였다.

《과분한 치하입니다. 부족점이 많을텐데 말씀해주십시오.》

송금석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겸손하게 물었다. 그는 자기의 론문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총장앞에서 전에없이 허심해지고싶었다.

《론문의 마지막부분은 좀 고쳐야 할것 같소.》

오빈우는 약간 아쉬워하는 기색을 지어보이였다.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국제적판도에서 경제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하던 필자의 시점이 결속부분에 와서 우리 나라 경제문제에 돌려지다보니 론문의 전반적구성에서 부조화가 생겼단 말이요. 내 생각에는 이 부분을 잘라버리는게 좋겠소.》

《저는 쎄브의 도움을 받아 우리 나라의 경제기술적진보를 도모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론문을 썼습니다.》

송금석은 긴장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론문의 뒤부분을 잘라버리라는것은 결국 필자의 의도를 무시하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다. 오빈우는 유감스러워하는 눈길로 돌변하는 송금석의 낯색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이번에 쓴 론문뿐만아니라 선생이 이미 쓴 론문들에서도 그런 경향이 반복되였지. 선생의 학구적눈길은 남달리 폭넓게 세계를 둘러보고 다른 나라의 리론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종당에는 늘 억지스럽게 우리 나라의 현실문제에로 돌려지군 했소. 다시말하여 선생의 론문은 세계를 통하여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나중에는 우리 나라 문제에 귀결시키군 하였단 말이요.》

《그러한 지적은 옳습니다.》

송금석은 흔연히 수긍했다. 자기딴에는 내 조국을 위하여 필봉을 든다고 확신하는 그였다. 그렇기때문에 이번 론문에서도 우리 나라 경제발전문제에로 론리를 귀결시켰던것이다.

비록 쏘련에서 배우며 성장한 그였지만 소년시절부터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가슴속에 품고 산 송금석이였다. 그 감정은 다분히 빼앗긴 나라를 찾자고 총검을 쳐들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역으로 밀려나 한탄과 애수의 한숨을 터뜨리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것이였다. 더우기 아버지를 따라 독립전에 나섰던 어머니의 비장한 최후는 그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였었다. 원동빨찌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싸우던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중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채 전장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였다. 적들은 어머니를 총구앞에 세우고 사형직전에 인도주의적관용이라도 베푸는듯이 마지막소원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상대가 로씨야인이 아니라 조선사람이며 그것도 치마를 두른 녀성인것만큼 과연 그의 심장속에 무엇이 불타오르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저들과 항전을 하였을가 하는 호기심이 작용했던것이다. 어머니는 남쪽으로 열세발자국을 걸어간 다음에 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 뜻이 무엇인가? 적들은 어리둥절하여 캐여물었다. 어머니는 떳떳이 대답했다.

《나의 마지막소원은 마음으로나마 조국땅 13도를 밟아보는것이다!》 어머니는 조국의 하늘을 향해 피흐르는 얼굴을 번쩍 들고 천천히 발자국을 떼였다. 드디여 총성이 울렸다. 함경북도에서 첫자욱을 뗀 어머니의 발걸음이 열세자욱만에 전라남도에서 끝나고말았다. 어머니의 붉은 피는 이역의 대지에 뿌려졌지만 그 선혈의 자욱자욱은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땅 13도를 새겨갔던것이다.

송금석은 후에 아버지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그때 참을길없는 슬픔과 더불어 숭엄한 감정이 그의 가슴에 차올랐다. 어머니는 묵묵히 열세발자국을 걸어나갔지만 그 순간에 조국의 하늘가를 우러러 피타게 절규하던 마음속의 호소가 뢰성처럼 귀가에 울려왔다. 철부지시절에 부모를 따라 이역으로 류랑했던 송금석은 조국에 대한 기억도 희미했다. 조국과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련결되여있는지를 생각해본 일도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조국이란 숨지는 순간까지 잊지 못할 귀중한 존재임을 그의 심장속에 피로써 새겨주었다. 그는 어머니처럼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조국을 잊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하지만 송금석에게 있어서 그 조국은 너무도 가난하고 뒤떨어진 존재로 표상되여있었다. 남들이 현대문명에로 도약하던 그 시절에 봉건적인 몽매속에 깊이 묻혀있던 조국, 그래서 대포와 기관총을 쏘아대며 달려드는 왜적앞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가 화승대로 대적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국이였다. 다른 나라에서 성장한 그는 많은 경우 아버지의 모습에서 민족의 넋과 조국의 면모를 상상했다. 아버지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 현실적으로 실감되는 조국의 모습이기도 하였던것이다. 쏘련에서 교육을 받고 그 나라의 문화에 익숙된 그의 눈으로 볼 때 아버지가 눈물겹게 끝까지 지키려고 하는 조국의 넋과 인습은 허다한 약점들을갖고있는 고루하고 진부한것이였다. 그는 마치도 부실한 부모를 모시고있는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효성을 다하려는 자식의 심정과도 같은 모순된 감정속에 늘 조국을 생각하였다. 그러한 송금석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애국의 길을 찾았다. 잃어진 조국을 되찾은 후에 선진사상과 현대문명으로 낡은 풍토를 근본적으로 쇄신하는 거기에 내 나라를 부강케 하는 길이 있다고 여기였다. 그리하여 해방이 되자 자신이 배운 현대과학지식으로 새 조국건설에 힘이 닿는데까지 이바지해보려는 뜻을 품고 귀국하였다. 그는 쏘련의 문화를 조국에 전수하는데서 선구자가 되려고 애를 썼다. 그러한 그의 지향과 사고방식에는 민족적허무감과 쏘련의 과학문화에 대한 숭배심이 짙게 투영되여있으면서도 부모들의 뜻을 이어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려는 그딴의 애국일념이 깔려있었다. 그가 쓴 일련의 론문들이 이렇게나 저렇게나 조국의 부강발전을 도모하려는 시도에로 론조가 귀결된것은 그때문이였다.

《나는 쏘련의 선진리론을 깊이 알고있는 송선생의 글들에서 민족적감정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것이 좀 이상스럽소. 특히 내가 이번 론문의 집필방향을 의논할 때 〈전세계 프로레타리아트는 단결하라!〉라는 불멸의 구호가 오늘날 사회주의진영의 경제건설에 어떻게 구현되여야 하는가에 력점을 두고 론중하라고 이른것 같은데 그 점은 소홀히 하였더군.》

오빈우는 론문의 마지막부분을 뒤적이며 서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민족적감정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이건 내가 학자이기 전에 갖은 수난을 다 겪은 조선사람이기때문입니다. 우리 경제의 발전출로를 닦으려는 소망이 내 론문의 바탕이였습니다.》

송금석은 자기의 근본립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듯 강경하게 말했다.

《리해되오. 하지만 민족의 리익을 주장하는 그자체가 과거의 되풀이로 될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시오. 론문의 뒤부분은 잘라버리고 방금 이야기한 그 점을 강조하시오. 그러면 이번 론문은 국내출판물만이 아니라 쎄브기관지에도 실을수 있소. 사실 론문의 전반적내용이나 품위로 보아 국내출판물에 싣기가 아깝단 말이요.》

오빈우는 의자의 팔걸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쭉 펴며 타일렀다.

《쎄브기관지의 비위에 맞게 고치라는겁니까? 나는 국내출판물에 싣자고 썼는데요.》

송금석은 수긍되지 않는다는 투로 응대하였으나 쎄브기관지에 추천해주겠다는 말에 어느 정도 마음이 동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쎄브에 대한 평판이 구구하고 인기가 없기때문에 자기의 론문이 국내독자들의 환영을 받지 못할수도 있었다. 쎄브기관지에 실리면 사정이 다를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론문을 쓸 때의 초지를 배신하는듯싶어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쎄브기관지에 싣는다 하여도 우리 독자들도 읽게 될거요.》

오빈우는 여전히 타이르는조로 말했다. 송금석의 알찌근하던 마음이 그 말에 어지간히 풀리였다.

《그럼 수정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금석은 뜨아하게 대답했다.

《내 소개신을 써주겠소. 쎄브기관지에 코민테른에서 잡지편집을 함께 한 친구가 있소. 원고를 보낼 때 함께 보내시오.》

오빈우는 책상뽑이에서 종이장을 꺼내더니 로씨야글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송금석은 잠시후에 총장이 쓴 소개신을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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