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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국은 다행히도 늦지 않고 돌아와있다가 어머니와 함께 송금석을 맞아들일수 있었다. 봉국의 어머니 정인화가 음식을 푸짐히 차린 덕에 점심식사는 즐거운 분위기로 끝났다. 세사람은 식사를 마친 뒤에도 식탁두리에 그대로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인화는 음식그릇만 내가고 과실과 당과류들이 담긴 접시는 그대로 두었다.

그는 무역성 부상이라는 직분을 가진 간부였으나 지금은 귀중한 손님을 맞이한 가정주부로서 명절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무척 다심스레 굴었다. 식탁우에 놓인 노란 귤과 빨간 사과가 접시우에 쌓인채 고운 빛갈과 달콤한 향기를 방안에 풍겨주었다. 봉국은 최정택교수에게 세배를 못 간것이 마음에 걸려 저으기 상심한 기색이였으나 정인화와 송금석은 매우 기분이 좋았다.

《점심식사를 아주 만족스럽게 했습니다. 진짜 설날은 이 집에 와서 쇠는것 같습니다.》

손수건으로 입귀를 깐깐히 닦고난 송금석이 담배를 붙여물며 하는 말이였다. 그는 참으로 후한 대접을 받았다. 오래간만에 꼬냐크와 샴팡을 마시였고 흔히 볼수 없는 빛다른 음식들을 먹었다.

어지간히 취기가 오른 그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였다.

《뭐 잡수신게 있어요. 집에 있었으면 부인이 대접을 더 잘했을텐데.…》

정인화가 귤 하나를 집어들고 조심히 껍질을 벗기며 상긋이 웃었다. 그도 송금석이 권하는 샴팡주를 마시여서 량볼에 홍조가 타오르고 잔주름이 잡힌 눈가장자리가 발깃했다. 쉰살이 넘었지만 혈색좋은 얼굴은 나이보다 젊어보이였다.

《집에 있었으면 오늘같은 날도 혼자서 찬밥을 먹었어야 했을겁니다.》

《하긴 배우들이야 명절때에 더 바쁘겠지요.》

정인화는 짐작이 갔다. 송금석의 안해는 무용배우였다. 그래서 오늘 명절공연에 나갔을것이다.

《지내고보니 녀배우와 사는 남자들이란 가정에서 주부노릇을 해야 할 때도 많더군요.》

송금석은 볼이 꺼지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며 푸념을 하였다.

《나는 송선생이야말로 가정의 행복을 만족스럽게 느끼는 사람으로 알고있는데 그건 무슨 소리예요?》

정인화는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실눈을 지었다. 송금석의 말이 선뜻 리해되지 않았다. 그의 안해는 보기 드문 미인이였다. 무엇때문인지 그는 서른살이 넘도록 로총각으로 있다가 정전직후 무역성에 있을때 때늦은 결혼을 하였다. 그 결혼식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은 황홀할정도로 우아한 신부를 보면서 송금석이 청춘시절을 고독하게 보낸 봉창을 했다고 하였다. 그의 안해는 예술을 위해 수많은 총각들의 유혹을 물리치며 그때까지 시집을 안 간 로처녀였다. 가정을 가지면 무용배우로서는 끝장이라는 타산으로 홀로 늙을것을 각오했던것이다. 그러나 송금석과 몇번 교제를 하여보고는 그런 남자라면 안해의 예술활동을 뒤받침해줄수 있다고 인정하고 결혼을 했다. 녀성의 리상을 존중히 여기는것을 교양높은 남자의 미덕으로 알고있는 송금석이였다. 때늦은 결혼은 그들부부에게 류다른 사랑의 감미를 주었다. 그들은 사랑의 행복에 미칠듯이 도취해버렸다. 먼저 퇴근을 한 남편은 극장주위를 에돌면서 안해가 공연을 마치고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남편이 출장을 가면 그 이튿날부터 안해는 언제 돌아오느냐고 무역성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가정생활을 두고 푸념을 하니 사랑의 열정이 어느새 식어버렸는가?

《공연을 하고 처가 매일 저녁 늦어서야 집에 돌아오다보니 저녁끼니는 번번이 내가 끓이지요.》

송금석은 불평을 늘어놓는듯 했지만 그 어조로 보아 롱담을 하고있는것이 분명했다. 실은 이름있는 무용배우인 안해를 예나 지금이나 자랑스럽게 여기고있는 그였다. 그러한 심정을 엿보았지만 정인화는 자기 역시 롱담을 건늬고싶어서 이렇게 변죽을 울려보았다.

《송선생은 언젠가 가정일을 녀성들의 연약한 어깨우에만 싣는것은 조선남자들이 뒤떨어진 세습에 포로되였기때문이라고 한것 같은데요. 그런 말을 하던 때가 언젠데 저녁끼니 끓이는것쯤을 부담으로 여기게 됐어요? 이제와서는 재능있는 무용배우가 춤을 집어치우고 남편공대나 하기를 바라는게 아니예요?》

《뭐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좋은 날에 기분까지 좋으니 가정의 리면사를 한번 말해보는거지요.》

사실 송금석은 다른 사람들앞에서는 좀처럼 집안일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역성에 있을 때부터 그들은 서로의 내심을 숨기지 않는 사이였다. 송금석은 녀성간부인 정인화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외로운 녀성의 몸으로 중책을 맡아나선 그를 동정하면서 부상이 주는 지시라면 어김없이 수행하군 했다. 다른 한편 정인화에게는 송금석의 지성과 문화적세련이 마음에 들었다. 정인화는 사회정치학분야의 풍부한 지식을 갖고있었다. 송금석은 그의 론담의 상대가 될만 하였고 생활에 대한 견해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휴일이나 한가한 시간이면 그와 공식적인 사업을 떠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군 했다.

《송선생, 내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어요?》

정인화가 은근한 투로 물었다.

《부상동지 부탁이라면야 들어주어야지요.》

송금석은 선선히 대답하며 정인화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어떤 부탁도 기꺼이 들어줄 결심이 그 표정과 자세에서 말보다도 더 진실하게 드러났다.

《우리 봉국이를 앞으로 모스크바종합대학에 연구생으로 보내도록 힘써주세요. 저 애가 대학을 졸업하자면 아직 멀긴 해도 목표를 그렇게 세워주어야 지금부터 분발할게 아닙니까.》

《부상동지도 어머니로서 자식에 대한 관심은 남들과 다를바 없군요.》

송금석은 몸을 뒤로 젖히며 싱긋이 웃었다. 그러한 부탁이 뜻밖이였다. 지난날 송금석은 정인화를 자신의 모든것을 희생하며 언제나 혁명사업에 집념하는 녀성혁명가로만 알고있었다. 해방전에 어느 방직공장에서 로동운동에 참가하여 이름을 떨친 정인화였다. 그는 한창나이에 남편을 잃었으나 가정의 행복과 사랑의 욕망을 단념하고 한뉘 혁명사업에 몸바쳐왔다. 무역성시절에 송금석은 정인화를 통해 비로소 녀성혁명가의 전형을 보는것 같았다. 그러한 정인화가 자기 아들의 일을 부탁하는걸 보니 역시 인간이란 리해관계의 속박에서 완전히 풀려날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모스크바종합대학에 아들을 보내야 훌륭히 키울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인화의 뜻이 공감되기도 하였다.

《나한테 자식이라고는 저 애 하나밖에 없지 않아요. 나는 저 애가 고중을 졸업하면서 류학생으로 뽑혔으면 했댔어요. 그런데 류학생선발시험에서 아쉽게도 점수가 조금 모자랐지요. 미리부터 선발시험준비를 하였더라면 영낙없이 뽑혔을겁니다. 그때의 교훈을 살려서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랑패가 없도록 하자는 생각이예요.》

《그런데 부상동지, 나로서 할수 있는것은 봉국이가 앞으로 외국에 파견할 연구생선발시험에 합격이 되도록 학습방향을 가리켜주고 지도해주는것뿐입니다. 연구생선발의 결정권은 나에게 없으니까요.》

송금석은 명백히 말했다. 정인화의 환심을 사기 위해 희떠운 장담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이상의것을 바라지 않아요. 송선생이야 모스크바종합대학출신이니까 그 대학의 연구생으로 되자면 어떤 교과목들에서 기초를 닦아야 하는지 잘 아실것 아니예요.》

《알겠습니다.》

송금석은 흔연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해빛이 어려 성에가 녹아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다. 청춘의 지혜와 꿈을 키워주던 모스크바종합대학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대학의 오랜 력사를 말해주는 고풍의 건물들과 번영하는 오늘의 위용을 과시하며 하늘높이 치솟은 현대적건물들, 인류의 지성이 모두 모인듯 한 대규모의 도서관, 첨단과학의 성과를 말해주는 설비들이 그쯘히 갖추어진 연구실과 실험실들, 세계적으로 알려진 저명한 교수들이 교단에 오르는 강의실들…거기서 흘러간 학창의 나날은 한없이 긍지로운 추억으로 그의 가슴에 소중히 간직되여있었다. 억단위의 인구를 가진 쏘련에서 그 대학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조선족청년으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송금석은 그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한 자부심이 큰것만큼 그 대학에서 배운 사상과 지식에 대한 확신도 컸다.

《아무쪼록 송선생이 잘 지도를 해서 우리 봉국이가 뜻을 이루도록 해주세요.》

정인화의 곡진한 목소리에 송금석은 창가에서 시선을 뗐다.

《봉국이는 공부를 잘하니까 크게 념려할것 없습니다. 이제 그 대학의 연구원을 나오고 이름있는 정치경제학자로 될겁니다.》

두사람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있던 봉국은 숨을 몰아쉬였다. 부푸는 희망으로 가슴이 설레였다. 고중을 졸업할무렵부터 모스크바종합대학은 가보지 못한 신비의 세계처럼 무시로 마음의 동경을 자아냈다. 이 꿈이 실현될 날은 반드시 올것이다. 송금석의 말을 듣고보니 그러한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송금석은 자기도 역시 정인화에게서 도움을 받자던 일이 있다는것을 상기했다.

《부상동지의 댁에 다른 사회주의나라 경제잡지들이 있지요?》

《있어요.》

정인화는 사업상 필요로 외국경제잡지들을 정상적으로 보고있었다.

《좀 빌려주십시오. 론문을 한편 써야 하겠는데 참고를 하려고 그럽니다.》

《어떤 론문을 쓰려는가요?》

경제리론에 밝은 정인화는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부상동지도 아다싶이 나라들 호상간의 경제기술적협조와 생산전통에 의한 분업은 사회주의진영의 경제적위력을 강화하는 기본담보로 되고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쓰려고 합니다.》

《나도 최근에 다른 사회주의나라 경제잡지들을 보면서 〈통합경제론〉에 공감되는바가 적지 않았어요. 참 현실적의의가 큰 쩨마를 잡았군요.》하고 정인화는 봉국에게로 눈길을 돌리였다.

《서재에 가서 송선생이 찾는 잡지들을 가져오너라.》

봉국이가 의자에서 성큼 일어나 서재로 건너갔다. 그의 등뒤를 바라보던 정인화가 송금석에게 다시 얼굴을 돌리였다.

《송선생의 그 론문은 우리 무역일군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거예요.》

송금석의 벌거우리한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였다. 정인화의 말이 고마왔다. 그는 과연 어떤 론문이 가치있는것인가를 알고있는 녀성간부였다.

《참,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 최근호에 발표된 오빈우선생의 론설을 읽었습니까?》

《아직 못 보았어요.》

《유감이군요.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은 국제적이다〉라는 총장선생의 글이야말로 꼭 봐야 할 론설입니다.》

송금석의 열정적인 설교에 당장 그 론설을 읽고싶은 충격을 느낀 정인화는 서재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봉국이더러 오빈우의 론설이 실린 잡지도 가져오라고 일렀다. 봉국이가 잡지들을 한아름 걷어안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 부디 훌륭한 론문을 써주십시오. 선생님들이 좋은 글을 쓰면 학생들도 자기의 성과처럼 기뻐합니다.》

송금석은 고맙다는 뜻으로 봉국에게 눈웃음을 보내고 잡지들을 뒤적였다.

이때 초인종이 울리였다. 노래의 선률처럼 듣기 좋은 그 소리는 담소가 중단된 방안의 정숙을 가볍게 흔들었다. 초인종이 울 때마다 늘 손님격으로 상관하지 않던 봉국이가 어머니보다 먼저 일어나 문쪽으로 달려갔다.

사실 이 순간 봉국은 한가지 즐거운 예감을 느낀것이였다. 어제 그는 김정일동지께 집에 와서 점심을 나누자고 초청을 드린적이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구태여 설날에 찾아가면 집에 부담이 될것이라고 사절하시면서 그대신 어머님께 설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하시였다. 그래서 봉국이도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설인사를 드리기로 약속했었는데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말았다. 봉국은 어째선지 꼭 그이께서 자기를 찾아오실것 같았다.

현관문을 연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났다. 밖에는 아닌게아니라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였다.

《난 동무가 어제 담임선생님한테 세배하러 오지 못했길래 또 앓지나 않는가 해서 들렸소.》

다정히 새해인사를 나누신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봉국은 편도선염으로 이따금 대학에 나오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깜빡 잊었댔습니다. 오늘 저녁에 혼자서라도 선생님을 찾아가겠습니다.》

봉국은 죄스러운 생각으로 얼굴이 가볍게 붉어졌다.

그랬으나 흔연해지려고 어설핀 웃음을 지으며 그이의 팔소매를 잡고 이끌었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인차 돌아가야겠소.》

《부학부장선생님이 지금 우리 집에 와있습니다.》

《그렇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인화한테 설인사를 드리고 인차 떠나시려고 하였는데 부학부장선생님이 있다니 잠시 들려보고싶은 생각도 드시였다. 워낙은 학부내 모든 선생님들을 찾아가 설인사를 드리려고 했으나 시간이 허락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송금석선생이 와있다니 반가우시였다. 아직은 그의 강의를 받아보지 못하셨지만 웃학년 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열정적인 달변에 시간가는줄 모른다고들 하였다. 1학년에서는 아직 그가 전공하는 무역경제학을 배우지 않았다. 학생들은 그의 부인이 이름있는 무용배우라는데 대해서도 선망을 느끼군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금석과 여러번 론담을 나누시였는데 그 과정에 그의 풍모를 어느 정도 알게 되시였다. 그는 어느때나 자기의 견해를 명백히 드러내군 하였다. 그의 사고에는 사대주의적의식이 짙게 배여있었으나 솔직하고 대바른 성품만은 마음에 드시였다. 옳고 그르든간에 자기의 립장을 드러내보이는 성정을 가진 그이기에 무슨 문제나 토론하고 신뢰하고싶으시였다.

《그럼 들어가봅시다. 어머님과 부학부장선생님에게 세배를 드려야 하겠소.》

김정일동지께서 방안에 들어서시자 방안은 다시 즐거운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리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정인화와 송금석에게 일일이 새해인사를 드리시였다.

송금석은 어느새 잔에 꼬냐크를 부어가지고 그이께 올리고 정인화는 큼직한 샴팡잔을 들고 다가왔다.

정일동무, 희망찬 새해에 학습과 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라오.》

《올해도 건강한 몸으로 공부를 잘하세요!》

《모두들 새해 부디 건강하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설인사를 보내시였다.

어느새 봉국이가 옆방에서 의자 하나를 더 가져왔다. 정인화는 반가움을 누를길 없어하며 과실접시와 사탕접시를 그이앞으로 밀어놓았다.

《이거라도 잡수면서 잠간 기다리세요. 내 얼른…》

얼른 음식을 챙겨오겠다는 뜻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두는 그를 급히 만류하시였다.

《앉아계십시오. 투사동지들에게 세배를 드리면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입니다.》

《어제는 담임선생님에게 세배를 드리셨다지요. 듣자니까 그 선생이 전쟁시기 가족을 잃고 홀로 생활한다더군요.》

아들을 통해 최정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바 있는 정인화는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다.

송금석이 제꺽 그의 말에 응수하였다.

《궁상스럽게 독신생활을 하는게 곁에서 보기가 딱하지요. 내 몇번 재취를 하라고 권고했지만 듣지 않더군요. 안해가 살아있다면 아직 안나타날리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최선생은 무한정 기다리지요.》

《남자들이란 한두달도 혼자 살기 힘들어하는데 여러해 독신생활을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여태까지 안해를 기다리는걸 보면 무척 고정한분인가봐요.》

정인화는 만나본 일이 없지만 최정택에게 동정을 느끼였다. 그토록 안해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지니고있는 그에게 녀성으로서 경의를 보내고싶기도 하였다. 송금석이 김정일동지께로 머리를 돌리며 경탄조로 말했다.

정일동무는 참으로 생각이 깊습니다. 외롭게 명절을 보낼 담임선생을 생각해서 일부러 찾아갔댔구만. 최선생이 무척 감격했겠습니다.》

《학생이 선생님들께 세배를 드리는거야 응당한 례절이 아니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인화앞에 오빈우총장의 론설이 실린 잡지가 있는것을 띄여보고 무심히 집어드시였다. 그 론설에는 총장의 사상적견해가 집약되여있었다.

정일동무도 그 잡지에 실린 총장선생의 론설을 읽었습니까?》

송금석이 물었다.

《읽었습니다.》

《남다른 독서욕을 가진 정일동무가 그 론설을 읽지 않았을리 없지. 그래 읽은 소감이 어떻습니까?》

송금석은 담배불을 재털이에 꺼버리고 기대어린 시선으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김정일동지께서 그 론설에 커다란 공감을 가지고 자기로서는 미처 몰랐던 우점들을 발견하셨으리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선행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쌓았을뿐더러 비상한 예지와 예리한 분석력을 지니신 그이를 장래의 세계적인 맑스- 레닌주의리론가로 인정하는 송금석이였다.

《제가 어떻게 총장선생님의 론설을 놓고 이렇다저렇다하고 말씀드리겠습니까.》

그이께서는 흥심없이 응대하시였다.

《언제나 정일동무는 지내 겸손하다니까요. 독자는 자기가 읽은 글에 대한 견해를 자유로이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송금석은 턱을 들며 초조감을 드러냈다. 기어이 그이의 견해를 들어보려는 잡도리였다.

《그렇다면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금석에게 자신의 견해를 명백히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였다.

《저는 론설의 내용에서 크게 두가지 점을 불만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였다. 치밀어오르는 괴로움을 억제해야 하시였다. 론설에 대한 불만이 크셨던것이다.

《어떤 점에서 불만스럽게 생각합니까?》

송금석은 자기의 기대가 빗나갔다는것을 깨달았으나 그이의 말씀을 끝까지 듣고싶은 욕망을 누를길 없어서 뒤를 재촉했다. 그는 학술론담을 특별히 즐겨했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이와 론담을 나누면 다른 그 누구에게서도 들을수 없는 견해를 듣게 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론담이 시작된것만큼 에돌지 말고 명백히 말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시였다.

《제가 론설을 읽고 불만을 느낀 점의 하나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문제를 론술한 대목입니다. 우리 당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통일단결을 위하여 그 어느 다른 나라 당들보다도 성의있는 노력을 기울이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장하는 통일단결은 매개 당들의 자주성을 그 기초로 하고있습니다.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형제당들 호상간에 지배와 종속이 없는 평등한 립장에서 공고한 계급적단결이 이루어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장선생님의 론설에서는 자주성을 배제하고있습니다. 론설에서는 작은 나라 당들이 무조건 큰 나라 당들을 옹호하고 따라야 하는것처럼 서술하고있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주성을 무시한 통일단결이란 본래의 의미에서 통일단결이 아니라 지배와 종속을 말합니다. 지배와 종속은 불피코 강요와 굴욕의 모순을 가져오게 되며 나아가서는 통일단결을 파괴하는 결과를 빚어낼것입니다.

론설을 읽고 수긍할수 없는 다른 한가지는 로동계급의 국제적의무와 민족적의무를 대치시킨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엇보다 자기 나라 혁명을 주인답게 잘하는것으로써 세계혁명위업에 기여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설에서는 로동계급의 국제적의무와 민족적의무가 모순되는것처럼 서술하였습니다.》

송금석의 숱진 눈섭이 미간에 모여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취기가 다 날아난듯 얼굴색이 긴장해졌다.

정일동무의 그러한 비평은 참으로 뜻밖입니다.》

《선생님은 그 론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가라앉은 어조로 물으시였다.

《나는 그 론설을 매우 좋게 보았습니다!》

송금석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 어조에는 총장의 론설을 좋게 본 자기의 견해가 정당하다는 확신이 울리고있었다. 그가 고개를 번쩍 들며 자기의 주장을 말하려고 하는데 정인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학술론담은 교정에서 하는것이지 명절날의 객실에서는 어울리지 않아요.》

론담이 깊어지면 격렬한 론쟁으로 번져질것 같은 위구를 느꼈던것이다.

《자, 명절날인데 명곡이나 듣자요.》

정인화는 이렇게 음악감상을 선포하고 서둘러 축음기를 틀었다. 봉국이를 위해 얻어온 발레극 《백조의 호수》중의 서장음악이 흘러나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때때로 즐겨 듣군 하시던 음악이였으나 지금은 흥심이 생기지 않으시였다. 예견하셨던바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지시는 교조와 사대의 장벽은 상상밖으로 높고 두터웠다. 오빈우와 송금석… 그들은 그 장벽을 완강히 고수함으로써만 자기들의 존재의 가치를 찾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대주의는 오랜 세월을 두고 배우고 터득한 과학지식과 결부되여있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의 머리속에서 사대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은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경우보다 몇갑절 복잡하고 어렵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거운 중압이 자신의 어깨에 실리는듯 하시였다. 가슴이 답답하여 심호흡을 하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레코드판이 바뀌여 이번에는 교향곡 《압록강 2천리》가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무거운 상념에서 벗어나 선률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선률은 백두의 천지에 시원을 두고 조국의 북변을 굽이돌아내리는 압록강의 도도한 흐름을 련상시켜주었다. 눈석이가 한창인 봄날의 압록강은 격랑을 일으키며 용용히 흐르는데 골짜기마다에서 휩쓸려온 썩고 어지러운 잡동사니들은 기슭으로 밀려난다. 바위를 타고넘으며 벼랑을 때리는 물결소리가 장쾌하게 울린다. 백두에서 시작된 주체위업의 력사가 바로 저렇게 흘러왔고 또 흘러가고있지 않는가. 그렇다, 주체위업은 중중첩첩이 가로놓인 시련의 언덕을 넘으면서 온갖 낡고 썩은 시대의 퇴적물들을 자기의 거세찬 흐름으로 휩쓸어버리면서 오늘에 이르러 또 한해의 자랑찬 년륜을 새기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엄숙한 감정에 휩싸이시며 다시금 새해의 결심을 굳게 다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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