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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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기념식을 거행하는것은 이제 와서는 사회계의 큰 관심을 모으는 하나의 년례행사로 되였다. 조선민족을 글자로써 독립케 한 훈민정음의 거대한 값이 날이 갈수록 력사우에 찬연한 빛을 뿌렸기때문이다. 이는 또한 조선어학자들이 수십년동안 간난신고를 이겨가며 면면히 이어온 국문운동의 한 보람이라 하겠다. 조선어연구회회원들이 훈민정음반포 8회갑 즉 480주년기념식을 처음으로 가진 후 벌써 7년이 지나 올해 10월 29일에는 훈민정음반포 487주년기념식을 가지게 되였다.

저녁 다섯시경에 돈의동에 있는 명월관에는 서울시내의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의 지명인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관청의 고급관리나 부자들이 많이 오는 이 이름난 료정에 조선의 이름있는 각계의 명사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기는 드문 일이였다. 사회의 단체들이 혹 모임을 갖는 경우에도 이러저러한 파벌관계로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앉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것도 조선어학회가 주도하는 오늘의 국문운동이 사회 각계의 큰 관심과 지지를 받고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더우기 오늘의 기념식을 계기로 그동한 조선어학회에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심혈을 기울여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드디여 발표하게 되므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클수밖에 없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각계 인사 예순명은 모였다. 호화로운 명월관의 조선식으로 잘 꾸려진 큰 홀에서 자개상들을 마주하고 폭신한 방석을 깔고 편안히 앉은 손님들은 마음부터가 화기애애했다.

다섯시반에 최현배의 사회로 기념식이 열리였다. 그는 지난 4월 8일 조선어학회 제13회 정기총회에서 간사장으로 선거되였다. 키는 작은 편이나 얼굴에 비하여 머리가 류달리 크고 훤한 이마도 턱도 네모져서 고집이 세여보이며 단단한 몸 어디를 찔러도 쇠소리가 날것 같은 인물이였다. 생활이 유족하여 연희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는외에는 일체 시간을 철자법연구와 문법책저술에만 바칠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조선어학회 회원들속에서는 가장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라 할수 있었다.

최현배의 개회사에 이어 리희승이 훈민정음서문을 랑독했다. 그는 키가 지내 작은데다가 까무잡잡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종종해서 외모는 볼품이 없으나 그와는 딴판으로 목소리는 굵고 우아하며 마음은 더욱 크고 공정한 학자였다. 그가 함께 일하는 김윤경과 같은 키큰 사람과 마주서서 이야기할 때에는 올려다보며 말하지 않으려고 의례히 한발자국 물러서서 이야기한다는것은 그의 자존심의 일단을 말해주는 삽화이다.

그다음 리윤재가 등단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제정에 대한 경과보고를 하였다. 그는 서울에 와서 사는지도 어언 10년이 되여오건만 그의 투박한 경상도억양은 그가 입은 무명두루마기처럼 조금도 때물을 벗을줄 몰랐다. 그러나 모임참가자들의 주목이 이 보고에 집중되였으니 여기에 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기까지의 고심어린 노력이 대체로 기록되여있었기때문이다.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학회총회에서 맞춤법통일안 위원을 내여 이로부터 맞춤법제정에 착수하게 되였습니다. 총회에서 뽑힌 12명의 통일안위원은 1930년 12월부터 초안작성을 시작하여 1931년 7월 9일까지에 초고 61항목이 탈고되였으며 그것을 다시 보유증정하여 1932년 12월에 이르러 초안 91항목이 작성되였습니다.…

이렇게 작성된 초안으로 토의하기로 작정하고 1932년 12월 26일부터 1933년 1월 4일까지 개성에서 회의를 열고 원위원 12명과 증원된 위원 6명을 더하여 모두 18명의 위원으로써 토의하여 제1독회를 마치고 이를 다시 수정하기 위하여 10명을 수정위원으로 뽑아 맡기였습니다.…

개성회의이후 수정위원회의 수정으로 78항목으로 되였으며 소위원회에서 다시 수정하여 70항목으로 고치였습니다. 이것을 다시 토의하기 위하여 1933년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화계사에서 제2독회를 열고 15명으로 (3명 빠짐) 토의를 마치고 이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기 위하여 정리위원 9명을 뽑아 안전체를 정리하게 하였습니다.…

화계사회의의 안을 정리위원회에서 원안 45항목, 부록 10항목으로 작성하고 다시 소위원회에서 원안 65항목, 부록 9항목으로 고치였으며 이것을 가지고 정리위원들은 여러 군데의 오유처와 모순점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전위원 3분의 2의 동의로써 문제삼기로 하고 통일안위원전체에 투표식을 행하여 그중 다수점을 취하여 개정하였습니다.

정리위원의 정리까지가 끝났으므로 통일안위원은 이 통일안을 1933년 10월 19일에 열린 림시총회에 제출하여 1, 2회의 수정으로써 통과되였습니다. 이로써 한글맞춤법통일안이 완전히 제정된것입니다.…

이와 같이 3개년동안에 모인 회수가 125회, 소비한 시간수가 433시간, 실로 적지 아니한 노력으로써 이 통일안이 나오게 된것입니다.…》

만장의 박수가 명예도 보수도 바람이 없이 철자법통일안을 제정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모든것을 다 바쳐온 조선어학회학자들의 자기희생적인 로고에 대한 응당한 평가로 되였다. 여기에 모인 사람치고 맞춤법통일안이 단순한 학술문제가 아니라 조선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왜적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라는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민족의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얼이 깃드는 그릇이며 말과 글을 떠난 민족문화의 창조, 계승, 발전이란 있을수 없기때문이다.

이어 각계를 대표하여 동아일보사 사장 송진우, 조선중앙일보사 사장 려운형, 조선일보사 전무 주요한, 동덕녀자고등보통학교 교장 조동식, 조선그리스도교 감리회 총리사 양주삼외 2명이 맞춤법통일안의 제정을 축하하여 열렬한 연설을 하였다.

려운형의 웅변도 좋았지만 《이 기쁜 날에 마음에 있는 소리도 못할바에야 차라리 말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하고 단마디로 연설을 끝낸 한 연설자의 말은 웅변에 못지 않게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그 말의 저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어학회가 존재하는 기간 한 일가운데서 가장 큰 공적은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완성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여 과학과 문화가 발전하고 서사생활에도 개변이 일어나 철자법을 더 보태긴 했지만 맞춤법통일안에 바친 어학회학자들의 고귀한 정신은 오늘도 의연히 살아있다.

각처에서 온 축전을 리극로가 랑독한 후 《한글만세!》 삼창으로 페회했다. 그다음 그 자리에서 식탁에 둘러앉아 화기애애한 축하연이 벌어졌다. 그동안 수고를 많이 한 18명의 철자법통일위원들에게 술잔이 집중되였는데 그가운데서 특히 술을 마시지 않는 리윤재에게 기어이 술을 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3년전에 맞춤법통일안초고작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수정위원으로, 정리위원으로 통일안을 마지막으로 결속할 때까지 전심전력을 다한 그의 남다른 열의와 노력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고맙소, 하지만 방금 한분이 말한것처럼 우리가 마음에 있는 소리를 마음껏 하게 되는 날 나는 이 술을 기꺼이 마시겠소.》하고 리윤재가 말하자 그 친구는 《그때는 광명한 날이고 지금은 어두운 밤인데 이밤의 상징같은 환산의 검정무명두루마기에라도 이밤의 기념으로 술을 붓겠소.》하고 리윤재의 두루마기자락에 술을 부었다. 그 친구는 그러지 않아도 기쁨과 흥분속에 휩싸인 리윤재의 마음에 불을 지펴주었다.

《고맙소.》하고 리윤재가 사람좋게 웃었지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케 하는바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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