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5 장

 

2

 

리윤재는 새해부터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조선어강의까지 맡게 되였다. 팔판동의 집을 나서서 서대문을 지나 아현동고개를 넘어 신촌동에 있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오전에 강의를 하고 그길로 오후강의가 있는 동대문밖 관훈동의 동덕녀자고등보통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자면 50리길은 잘된다. 그러나 그는 이 먼길을 전차를 타고다니는 일은 전혀없다. 아무리 추운 날도, 무더운 날도 그저 걷는다. 어지간해서는 왜놈의 운수수단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호주머니에 백통전이라도 몇잎 있는 날이면 도중에 설렁탕집에 들려 한그릇 하거나 오전짜리 호떡 한개로 점심을 에울수도 있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점심을 건느는 일이 많았다. 이런 일이 루적되여 그의 위에 무리가 가더니 어느날 끝내 심한 토혈을 하고 드러눕게 되였다. 집에서는 먹을 갈아 먹인다, 단골의원인 손진사를 데려온다 하며 법석이 벌어졌지만 리윤재는 아는 병이라 태연자약하게 누워있을뿐이였다.

앓아 누운지 이틀만에 리극로가 문병을 왔다.

리윤재는 리극로와 오랜 지기일뿐아니라 둘 다 신통히도 같이 오래고 복잡한 길을 우회하다가 조선어연구의 길에서 다시 만났던것이다.

리극로는 그해 즉 1929년 정월에 도이췰란드 베를린에서 귀국했다. 그는 자기가 연구했던 전공과 관련된 분야에 관계하지 않고 벌어먹고 살길도 없는 조선어연구회에 발을 들여놓았던것이다.

그의 관심을 끈것은 우리 말의 음운의 리치였으며 이미 도이췰란드에서 발전된 기구를 리용하여 실험한 자료를 가지고왔던것이다.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정신을 고수하겠다는 맺힌 마음에서 그는 철학자로부터 조선어학자로 방향을 바꾸어앉은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아직 집을 마련하지 못하여 시골에서 소학교훈도를 하는 안해와 자식들을 서울에 데려오지 못하고 독신생활을 하다나니 리윤재의 집에서 한동안 숙식한 일도 있어 이 집 가족들과는 이미 친숙했다. 그는 붙임성이 좋고 구변이 좋아 김해댁은 그를 곧 좋아하게 되였다. 키가 크고 몸집이 좋아 풍채가 름름한데다가 관골이 류달리 솟은것은 그의 의지적인 성격을 보여주는데 그와는 반대로 겁이 많을듯 커다란 눈은 양같이 순해보여 사람에게 호인상을 준다. 큰 몸집에 어울리게 목소리가 굵고 우렁우렁하여 대장부다운 기상도 엿보인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김해댁이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밥상이야 며느리도 나를수 있는것이지만 김해댁은 리극로를 특별히 대접하여 손수 들고들어온것이다. 자개상에는 곡상으로 담은 밥이 놓여있다. 반찬은 열무김치에 콩나물국과 구수한 두부찌개와 간장 한종지가 다였다.

《이거 찬이 없어 어쩌나.》하고 김해댁이 혀를 끌끌 찼다.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게 다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몸이 불편할 때 고향의 구수한 토장찌개생각이 어찌도 나던지. 어머니도 함께 자십시다.》하고 리극로가 말을 받았다.

《아니, 난 이따가 애들하고 같이 먹겠어. 찬이 없어도 많이 자셔.》

《예, 저는 먹는데 사양치 않습니다.》

정말 그는 탐스럽게 밥을 먹는다. 숟갈로 큼직큼직하게 밥을 몇술뜨니 밥그릇이 푹푹 자리가 났고 반찬도 남김없이 그릇을 가시듯 깨끗이 먹는다.

그는 숭늉을 마시고 그릇을 상에 놓으며 말했다.

《조선사람에게 못된 버릇이 하나 있어요. 남의 집의 음식을 대접받을 때 음식을 적당히 먹고 남겨야 인사가 되는것으로 여기는 그 체면 말이예요. 저는 그런 체면은 딱 질색이예요. 주는건 다 먹어야 주인에 대한 인사가 되지요. 안 그래요, 어머니?》

《그렇지 않구.》

김해댁은 리극로의 이야기에 끌려 밥상을 문앞에 밑어만 놓고 그냥 앉아있었다.

리극로는 담배를 안 피우는 대신 식후의 한담을 좋아했다. 그 한담이 시작된것이다.

《허식이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것이니 백해무익한것이지요. 왜놈들처럼 허례허식이 많은 놈들도 없는데 아마 그걸 미워하는데서는 환산선생이 저의 열갑절은 될거예요.》하고 그가 묵묵히 벽에 기대여 앉아있는 리윤재를 돌아보았다.

리극로가 다시 김해댁을 돌아보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 제가 이야기를 하나 하랍니까?》

《그리여.》 하고 김해댁의 얼굴에는 미리부터 웃음이 어리였다.

《제가 환산선생을 알게 된게 열여덟살때였으니 벌써 열일곱해전이군요. 그때까지 저는 의령에서 농사군의 자식으로 땅이나 뚜지고 살았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했지요. 그런데 하루는 우리 고장에서 남쪽으로 바라보이는 락동강으로 큰 바위만 한게 연기를 뿜으며 기여올라왔지요. 마을사람들이 기겁을 했어요. 괴물이라고 여겼거던요. 그런데 그때 남보다 좀 깬 사람이 하나 있어서 저건 괴물이 아니라 왜놈의 기선이라는 배라고 말했지요. 처음에 마을사람들은 믿지 않았지만 저는 그때 통탄하기를 (이런 절통할데라고있나. 왜놈들은 저런 큰 바위만 한 배를 끌고 남의 나라에 기여드는데 우리는 그걸 배라는것도 모르고있으니. 배우지 못하고 깨지 못해 그렇다. 새 학문을 배워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들고있던 호미를 밭에 팽개치고 달아났지요. 그길로 마산에 가서 기다란 머리태를 자르고 창신학교에 들어가니 그때 환산선생이 거기서 선생을 하고계셨습니다.》

리극로는 여기서 이야기를 잠시 끊었고 김해댁은 그다음이 궁금하여 군침을 삼켰다.

《다 자란 총각이 조무래기 아이들속에 끼여 공부하자니 참 가관이였지요. 꼭 병아리를 몰고다니는 암닭같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그만 감기에 걸렸지요. 우들우들 떨리는데 옷이란 입고온 베잠뱅이뿐이라 학교에 가자니 늦가을추위에 떨려 안되겠고 결석을 하자니 답답해 견딜수 없어 (에라, 모르겠다. 체면이 다 뭐냐. 배우는게 장땅이지.)하는 생각에 이불을 쓰고 학교에 갔지요. 그 꼴을 하고 교실에 떡 들어서니 환산선생이 수업을 하고있더군요. 선생은 괴상망측한 제 꼴을 보고 어디가 아프냐고 한마디 묻고는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교실에서 이불을 쓰고 공부를 했는데 아마 이런건 고금동서에 저 하나밖엔 없었을거예요. 환산선생, 기억이 나십니까?》

리윤재는 빙그레 웃을뿐이였다.

《마산창신학교에 다니다가 배우자면 아예 대처에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저는 돈 한푼 없이 덮어놓고 서울로 올라갔고 거기서 다시 순전히 걸어서 만주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리극로는 리윤재를 돌아보고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환산선생도 내가 만주에서 의병을 따라다닌건 모르시겠지요.》

《허허, 리박사가 의병출신이라.》하고 리윤재도 따라웃었다.

《먼저 서간도로 가서 환인현 동창학교에 갔습니다. 동창학교는 윤세복이 독립군간부양성을 목적으로 세운 학교였지요. 그때 신채호, 박은식이 거기서 조선력사를 가르치고있었습니다. 그후 나는 의병대장 리진룡이를 따라 무송으로 갔고 여기서 의병부대가 재편성되였을 때 총사령 리진룡, 총참모 윤세복밑에서 모집훈련감을 했습니다.》

《리진룡은 기개 있는 인물이였지.》하고 리윤재가 감회깊이 말했다.

《내가 평양감옥에 들어가기 한해전에 리진룡이 그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는데 그때까지 그는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있었다오. 왜놈에게 마지막까지 저항한거지. 그래서 그다음 어떻게 했어요?》

《그후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 하겠기에 상해에 가서 동재대학 예과공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리동휘가 쏘련에 갈 때 수원으로 따라갔다가 모스크바에서 윌헬름 피크와 친교를 맺게 되여 그의 도움으로 도이췰란드류학을 가게 됐습니다. 베를린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게 된것도 그의 도움이 컸습니다.》

《아유, 리박사는 정말 팔방미인이구려.》하고 김해댁이 탄성을 올렸다.

《안 간데가 없고 안한 일이 없구려.》

《허허, 그래서 이렇게 헛나이만 먹었지요.》하고 리극로는 다시 리윤재를 돌아보고 말을 맺었다.

《이렇게 동서양을 돈 한푼 없이 두루 돌아다니며 별의별 일을 다 겪어본 후 제게 생겨진것은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입니다.》

《동감이요.》 하고 리윤재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때 밖에서 놀던 리윤재의 다섯살 난 맏아들 종갑과 두살아래인 막냉이 종주가 집에 들어오다가 대돌우에 놓여있는 매생이만 한 신발이 놓여있는것을 보고 좋아하는 아저씨가 온줄 알고 아버지의 방으로 뛰여들어가려다가 호랑이같은 할머니가 앉아있는것을 보고 주춤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방문을 배시시 열고 졸랐다.

락화생, 아저씨, 락화생.

《아하, 이 댁의 대장들이 나타났군. 오냐, 주지. 옛다.》 하고 리극로가 두루마기 앞섶을 제끼고 커다랗고 불룩한 조끼 호주머니에서 락화생봉투를 꺼내여 아이들에게 내밀었다.

종갑은 할머니의 눈치를 흘끔흘끔 보며 주저하는데 종주가 뽀르르 들어가서 락화생봉투를 받아쥐였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원, 이런 버르장머리 봤나. 애아범이 아이들을 너무 어루만지니까 이렇게 버릇이 없지. 냉큼 나가지 못해!》

리윤재가 조용히 말했다.

《내버려두시오, 어머니. 일생 왜놈의 구속속에서 살아야 할 아이들을 뭣때문에 집안에서까지 구속을 하겠어요. 내버려두면 다 저절로 철이 듭니다.》

《옛 사람도 고운 자식 매질하라고 했는데 자식을 욕 안하고 어떻게 키운다냐.》하고 김해댁이 노여워한다.

《어머니, 제가 왜 하필 락화생을 사오는지 아십니까?》 하고 리극로가 커다란 눈을 슴벅이였다.

《이거 다 뜻이 있는거랍니다. 우선 락화생에는 사람몸에 좋은 단백질과 기름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특히 좋고 또 그것을 먹자면 껍질을 벗기고 다시 속껍질까지 벗겨야 하니 일을 안하고는 먹을수 없다는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단 말입니다. 이게 바로 아이들을 어릴적부터 일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거지요. 그러니 이 락화생이 욕보다는 얼싸하게 낫지요. 허허허.》

김해댁도 그제서야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따라웃었다.

《리박사는 자리를 보아가며 이야기할줄 알거던. 내 정신 봤나. 앉아서들 이야기하라구.》하고 김해댁이 밥상을 들고 방에서 나갔다.

둘은 한참 덤덤히 앉아있었다. 이윽고 리윤재가 근심스레 말을 꺼냈다.

《리박사도 가족을 빨리 서울로 이사시켜야지 언제까지나 그렇게 뜨내기살이를 할수야 없지 않아요. 그런데 서울에서 가장 힘든게 집을 마련하는거지만.》

《일없습니다. 궁한대로 견디면 통하는 날도 있겠지요. 나는 무일푼인 이내 꼴보다 조선어연구회의 꼴이 더 한심합니다. 창립된지 거의 10년이 되도록 제집 하나 있나, 뭘 하자니 돈이 있나. 왜놈치하에서 벌거벗은 내 나라의 꼴 그대로지요. 발간하던 잡지도 휴간하고는 다시 못 나가지, 기도했던 사전편찬도 좌절됐지, 어느 하나도 되는게 없군요. 환산선생이 상해에 갔다오신 후로는 사전편찬은 아예 료원한 일로 미루어버린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리윤재는 쓴 약이라도 먹은듯 낯을 찡그리고있다가 말했다.

《계명구락부와 상해에서 김두봉이 가지고있는 <말모이>원고를 찾아올 생각만 했지 우리 손으로 어휘수집부터 새로 시작할 결심을 못한게 우리의 잘못이요. 이제는 두 길이 다 막혔으니 죽든살든 우리 손으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어요.》

선행자의 《말모이》원고를 두고도 백지에서 시작해야 하니 너무도 아름차고 원통한 일이였다.

분한듯 코김을 불고있던 리극로가 이윽고 말했다.

《그래서 좀 생각해봤는데 올해 10월에 있게 될 훈민정음반포 483돐기념식에서 각계인사들을 초청하고 그들의 발기로 사전편찬회 같은것을 내오면 어떻겠는가 하는겁니다. 그렇게 하면 사전편찬사업이 사회 각계의 관심과 지원을 불러일으킬수 있을뿐더러 그 사회적인 권위도 생길게 아닙니까.》

《아주 훌륭한 착상이군요. 그렇게 하자면 지금부터 언론을 통해서 여론을 환기시키고 개별인사들을 만나서 의견을 타진하는 사전준비가 있어야 하지요.》

《미리 꾸미지 않고 저절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

앞으로 할일을 궁리하는지 한참 묵묵히 앉아있던 리극로가 돌아가려고 부시시 일어서며 말했다.

《환산선생, 건강에 각별히 류의해야 하겠습니다.》

《그냥 앉아계시오. 가나오나 남의 밥 자시기는 일반인데 나하고 이야기나 하다가 저녁도 함께 합시다.》

사실 리극로로서도 안해가 끓여주는 밥을 먹을 집도 없는지라 못이긴체 하고 눌러앉아 저녁까지 먹고 늦은저녁에야 이 집을 나섰다.

어느덧 그의 머리속은 사전편찬회를 꾸릴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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