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4 장

 

5

 

1927년 8월 중순 어느날 조선어연구회에서는 월례회가 열리였다. 조선의 대표적인 어학자들은 거지반 모인셈이다. 이만한 학자들이 모였으니 버젓한 나라같으면 한림원이나 학술원 같은 권위를 가져 마땅하겠지만 조선어연구회는 창립된지 6년이 지나도록 제 집 한칸 마련하지 못하고 남의 집 곁방살이를 하고있어 어느 집 2층 한구석의 창고 같은 방을 사무실로 쓰고있다. 마주 트인 창문이라도 있는 방이였더라도 8월의 이 무더위속에서 땀에 화락하게 젖어서 회합을 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사회를 맡은 신명균간사장이 조그만 연탁앞에 나서서 아직도 더 올 사람이 없는가 해서 잠시 장내를 말없이 둘러보았다. 앞줄에 흰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앉은 나이지긋한 일여덟명이 오늘 회합의 기본성원들이고 뒤에 놓인 긴 나무걸상에 공손히 앉아있는 십여명의 젊은이들은 방청으로 참석한 신진학자들과 각 학교 학생들이다.

신명균이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월례회에 내놓은 안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글>잡지발간정형에 대하여

둘째, 조선어사전편찬정형에 대하여

첫째 안건은 제가 말씀드리고 둘째 안건은 리윤재님이 말씀하시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지난 2월 10일에 <한글>잡지가 드디여 창간된것은 우리 어문운동사상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것입니다. 이것은 국문연구의 전문잡지로서 맨 처음일뿐더러 한글연구와 실행보급의 선도자의 소임을 다하게 되기때문입니다. 더우기 창간호에서 박승빈씨의 소장인 <훈민정음>원본을 빌어 그것이 진본임을 충분히 고증하여 사진판으로 찍어 부록으로 낸것은 학계와 독자들에 대한 우리의 큰 공헌이라 할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볼수 없는 <훈민정음>원본의 사진판이 수천개나 독자들의 손에 들어감으로써 한글연구가 더 광범히, 더 심오하게 벌어지리라는것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이루어진 이 모든 성과는 전적으로 회원 여러분의 아낌없는 노력과 지원의 결과로서 경하해마지않습니다.

그러나 발행과 편집을 책임진 본인의 힘이 모자라고 재주가 없어 잡지가 국문운동의 현 추세에 맞추어가지 못하고 독자의 요구에 만족을 주지 못하고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잡지가 동인지(뜻을 같이하는 몇몇 문인들이 자기네 작품을 발표하기 위하여 발간하는 잡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회원들의 연구론문이나 묶어내는데 그치고있으며 광범한 독자들과 호흡을 같이하지 못하고있는데 있습니다. 또한 잡지를 매달 내지 못하고 두달에 한권도 내나마나 하고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재정난과 관계되는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모처럼 고고의 성을 올린 <한글>잡지의 발전을 위하여 그 발전방향과 재정난의 타개책에 대하여 좋은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 앉았다.

학술문제라면 때로는 불꽃튀는 격론도 벌어지지만 이여의 문제 특히 재정문제에 들어가서는 언제나 덤덤한 분위기가 지배하는것이다.

이윽고 장지운이 한마디 던졌다.

《신문잡지란 발행부수가 적으면 원가만 많이 먹어 결손은 불가피하지요. 그러니 <한글>잡지의 경영난을 타개하자면 부수를 늘이는게 선결문제지요.》

신명균이 기가 막힌듯 말했다.

《현재 3천부정도 찍고도 다 발매하지 못해서 처리곤난인데 수요도 고려없이 발행부수를 어떻게 늘인단 말입니까.》

《그러니 발행부수를 늘일 대책이 있어야 할게 아니요.》

리윤재가 일어섰다.

《철자법을 통일하고 널리 보급해야 할 오늘날의 한글운동의 당면과제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한글>잡지는 응당히 대중계몽을 위한 잡지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동인지형식으로 전문가를 위한 전문가의 론문이나 실어서는 잡지가 대중속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우리 잡지의 궁극적목적은 민족정신이 담긴 언어의 정리와 통일을 통하여 대중속에 민족의식을 심어주는데 있습니다. 이 목적으로부터 출발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대중에게 친근한 잡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또한 잡지의 발행부수를 늘일수 있는 방도로 됩니다.》

어지간해서는 입을 떼는 일이 없는 최현배가 그 커다란 머리를 리윤재에게 돌렸다. 그는 경상남도 울산태생으로서 일본 교또제국대학 철학과에서 론리학을 전공한 후 조선어문법연구에 투신하며 현재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를 하고있다. 가난한 어학자들속에서 생활도 가장 유족한편이다. 그는 동작이 굼뜰뿐아니라 말도 뜨직뜨직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언제나 찌르는듯이 예리하다.

《독자대중을 잡지의 리론수준으로 끌어올려야지 학술잡지를 대중의 수준으로 떨군다는건 어불성설이요. 더구나 오늘 어문운동에서 초미의 문제가 리론적정립이 아니요. 리론을 떠난 어떤 한글운동도 키를 잃은 배와 한가지요.》

리윤재가 말을 받았다.

《오늘의 한글운동은 리론정립과 실천활동이 병행되기를 요구하고있습니다. 실천활동이란 대중을 리론으로 교육하는 사업입니다. 주시경선생이 목숨을 줄여가며 바로 그렇게 활동하여 조선어연구회의 기틀도 마련되였습니다. 우리 연구회는 학자들의 연구실에 그칠것이 아니라 대중교육의 광장으로도 되여야 합니다. 그래서 잡지를 통속화하자는겁니다.》

은테안경과 두툼한 눈등밑에 깊숙이 눈을 감추고 조는듯이 앉아있던 김윤경이 발언할 의사표시인듯 헛기침을 깇었다. 그는 키가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어딘지 귀인풍이 있어보인다. 일본 릿교대학 사학과를 나온 후 다년간 배화녀고에서 교편을 잡고있는데 《웃지 않는 선생》으로 정평이 붙을 정도로 근엄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문장을 깐깐하게 쓰는 그는 말도 꼭꼭 눌러가듯 한다.

《잡지의 성격은 발행기관의 목적과 관련하여 규정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선어연구회의 목적은 규약에 밝혀있듯이 조선어의 정확한 법리를 연구함에 있습니다. 그런만큼 그 기관지인 <한글>잡지는 마땅히 그 목적에 맞아야 할것입니다.》

결국 잡지의 통속화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다.

리윤재는 더는 입을 떼지 않았다. 옳은 말도 더 우기면 고집으로 된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의 주장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신명균은 《한글》잡지편집방향에 대하여 팽팽하게 대립된 두 주장의 무게를 마음속으로 달아보다가 아직은 리윤재의 주장이 연구회안에서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이것은 다수가결로 결정해버릴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는 앞으로 실천과정에서 해결할 숙제로 남기고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리윤재는 현재 박승빈이 주관하는 계명구락부의 조선어사전편찬소에서 진행되는 사전편찬의 현황과 그 문제점을 대략 소개하고 자기의 의견을 이렇게 첨부했다.

《첫째, 우리 조선어연구회의 모든 활동의 귀착점은 조선어사전편찬입니다. 그러므로 사전편찬사업을 우리 연구회가 전적으로 맡고 선배들의 고심어린 <말모이>원고를 계명구락부에서 넘겨받자는것입니다. 박승빈씨가 이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가 새로 시작하는수밖에 없는데 그 품을 덜기 위하여 지금 상해에 가있는 <말모이>원고를 찾아오자는것입니다.

둘째, 사전편찬은 장구한 시일을 요하는 사업이니만치 그사이에 우리는 전력을 다하여 철자법을 완성하고 표준어를 사정하며 외래어표기법도 제정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사전편찬에 필수불가결한 선행조건입니다. 더우기 계명구락부에서 사전편찬을 주관하고있는 박승빈씨가 우리의 신철자법을 전면부정하고 자기의 괴상한 설, 례컨대 ㅎ받침을 부정하고 된시웃을 주장하며 용어표기에서 이른바 력사주의적원칙이라는것을 고집하여 규범어사전편찬에 혼란을 주고있는 실태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경비는 가장 큰 애로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사전편찬의 당위성을 사회에 호소하여 온 사회의 관심속에서 독지가(남을 돕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의 재정상도움을 받는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후원단체를 조직하는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아름찬 일을 안고온 리윤재를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볼뿐이였다. 조선어사전편찬이 조선어연구회의 최대과제이고 당면임무라는것을 부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일을 당장 맡아서 해낼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들에게 너무도 힘이 없었다. 가난한 그들이 돈없이 밥 안 먹고 이 일을 해갈수는 없는것이다.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는 침묵이 계속되였다.

이윽고 장지운이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우리가 사전편찬에 착수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그 기초로 될 원고를 입수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데 크게 달려있는건 사실이요. 그런데 이전의 <말모이>원고가 상해의 김두봉에게 있는게 확실하며 그것을 찾아올 담보는 있는가요?》

회합에서는 먼저 말을 떼는 사람에 의하여 이야기가 부분적인 문제 혹은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였다.

리윤재가 대답했다.

《김두봉이 상해에 그 원고를 가져간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을 받아올수 있다고 여기서 장담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상해에 가봐야 한다는 말이겠군.》 하고 장지운이 안될 말이라는듯 고개를 저었다.

최현배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누구건 상해에 가는것을 반대합니다. 우리의 대표가 상해에 간다면 그것을 일본경찰이 사전원고때문이라고 볼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상해림시정부와 우리를 련결시키려 할것입니다. 더구나 김두봉이 상해에 있으니 일본경찰에 언질을 주고 감시와 탄압의 구실을 주겠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유리합니까. 나는 우리 연구회가 순수한 학술단체로서 약간의 정치적색채를 띠는것도 반대합니다.》

리윤재가 단호하게 말했다.

《외솔(최현배의 호), 너무 신경과민이 되지 마시오. 이건 정치문제가 아닙니다. 나도 상해림정과 련계를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중국을 떠날 때만 해도 상해림정은 파쟁으로 사분오렬되여 림정수반을 맡으려는 사람도 없어 국무령이 된 김구씨가 빈 집을 지키고있는 형편이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국내의 어문운동에까지 마음을 쓸 경황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상해에 있는 <말모이>원고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사실 박승빈씨가 자기네 <말모이>원고를 우리에게 넘겨주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전편찬을 빈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간고하고 장구한 시일을 요하는 일인가 하는것은 여러분도 짐작하실겁니다. 그래서 상해의 원고를 가져오자는겁니다. 경찰이 아무리 구데기같기로 된장이야 못 담그겠습니까.》

《그렇지만 그 먼 상해에 누가 가겠어요! 고양이목에 방울달기지.》하고 장지운이 시까슬렀다.

《상해에는 내가 가겠습니다!》

리윤재의 웅글은 목소리가 먼산 불보듯 하는 사람들을 꽉 눌러놓는것 같았다. 자신의 고난도 심지어 있을수 있는 희생조차도 감수하려는 그의 확고한 의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더는 시비를 걸려 하지 않았다.

신명균은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것이 보통걸음이 아니라 그의 일생에 어떤 화가 미칠지 모르는 위험한 걸음이기때문이다. 조용한 서재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기를 원하는 학자라면 누가 시켜도 이런 일은 맡으려 하지 않을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자리에 앉아서도 리윤재의 결심이 너무 무모하다고 비웃을수 있다. 그대신 남의 무수한 희생을 동반하게 될 사전편찬의 길에서 그들은 평온한 집필자로 자족할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드리우고있던 신명균이 드디여 결심하고 이 문제를 거수가결에 붙였다. 찬반이 동수가 되는것을 보자 그는 마지막으로 찬성의 손을 들었다. 그리하여 리윤재를 조선어연구회의 대표로 상해에 파견하는 문제가 결정되였다.

리윤재의 상해로 떠나가는것이 결정됨으로써 조선어연구회에서 사전편찬을 맡아하는 문제는 이미 기정사실로 되였고 사전편찬의 선행작업으로서 철자법완성에 주력할 문제가 일정에 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월례회는 총회 못지 않은 의의가 있었다.

리윤재는 려비를 마련하느라고 며칠을 지체한 후 8월 하순 어느날 상해를 향하여 서울을 떠났다. 물론 가족에게는 한글강습의 강사로 초청되여 한달가량 지방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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