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3 장

 

2

 

이튿날 리윤재는 반나절이 실히 걸려 도소재지인 진주까지 갔고 도경찰부에 가닿은것은 점심시간이 거의 되여서였다. 마굴같은 경찰부의 현관을 들어서니 어스크레한 복도를 끼고 량쪽에 방들이 촘촘히 있는데 아무리 살펴봐야 고등과라는 표찰이 붙은 방은 없었다. 그는 어느 한 방에 들어가서 물어보려 했다. 막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으쓸한 광경이 그의 눈을 찔렀다. 얼굴이 시뻘겋고 눈알이 번들번들한 형사가 《이 쌍년이!》하고 소리치며 갓난애기를 업은 젊은 녀인의 따귀를 후려갈기는것이였다. 녀인은 애기를 업은채 벌렁 자빠졌다. 애기는 자지러지게 울고 녀인이 들고있던 밥보가 땅바닥에 떨어져 사기그릇 깨지는 소리가 쩔거렁하고 났다. 아마 녀인이 형사에게 수감되여있는 남편의 사식을 받아달라고 졸랐던 모양이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광경이였다. 리윤재는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기도 곤난하고 그대로 서서 그 꼴을 보고있기도 난처하여 망설이고있는데 형사가 살기띤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넌 또 뭐냐?》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고등과장을 만나러 왔는데 방을 찾지 못해서 그럽니다.》하고 그는 공손히 말했다.

《야, 젊은 놈이 그게 무슨 옷주제야. 너 비국민이구나.》하고 형사는 리윤재가 입은 흰 무명두루마기를 쏘아보더니 책상에 있는 잉크병을 들어 그에게 홱 뿌렸다. 리윤재는 얼굴과 두루마기가 온통 잉크투성이가 되였다. 그는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랐으나 참을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옳고그름이 문제도 되지 않고 설명도 리유도 통하지 않으며 단지 인권이전의 권력과 폭력만이 란무할뿐이다. 인권유린과 중세기적인 고문으로 사람들에게 겁을 주고 반항을 거세하려는것이 왜놈이 조선에서 세운 경찰제도이다.

리윤재는 손수건을 꺼내여 얼굴에 묻은 잉크를 꼼꼼히 닦고 그 방에서 나와버렸다. 그는 이런 우스운 꼴을 하고 고등과장을 만나는것을 조금도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놈이 그놈일테니까. 모욕을 받은데서 오는 반발적인 배심이 도리여 생긴것이다.

그는 지나가는 경관에게 주저없이 고등과장실을 물었다. 그것은 2층 오른쪽끝에서 두번째 방이였다. 손기척을 해도 대답이 없어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문을 마주하고 책상앞에 50대의 번대머리가 앉아있었다. 숱한 사상범의 숨통을 조였을 이 방이 그저 보기에는 여느 관청사무실과 다름이 없었고 그 번대머리도 어찌 보면 수더분한 중늙은이같았다. 그러나 그는 보나마나 왜적이 조선을 먹고 세상에 류례없는 가혹한 헌병경찰제도를 실시하여 헌병사령관 아까시가 통감부 경무총감으로 둔갑할 때 헌병의 군복을 경찰관복으로 바꾸어입고 20년가까이 조선사람의 피와 눈물로 경관의 관록을 쌓아올린 놈일것이라고 리윤재는 생각했다. 그만큼 그는 사찰과의 풋내나는 형사와는 달리 좀 로련해보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을 보고도 별다른 기색이 없었고 어째서 왔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리윤재가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하고 불러서 왔노라고 말했지만 그는 눈을 쪼프리고 지그시 쳐다볼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말하는 사람이 도리여 무색할 지경이였다.

리윤재가 입을 다물자 그제서야 번대머리가 그의 눈을 곧추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서 알고있소. 그러니 내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하는게 좋소.》

그리고 그는 리윤재가 중국에 가있은 곳과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세세히 묻기 시작했다. 결국은 리윤재가 어떤 독립운동단체에 관계했는가 하는것이 질문의 초점이였다. 리윤재는 자기가 중국에 간 목적이 류학이였기때문에 어떤 정치단체에도 관계한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고등과장도 그 이상의것은 쥔것이 없는것 같았다. 그자가 무슨 단서라도 쥐고있었더라면 그를 잡아넣지 않고 지금까지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것이다.

잠시 침묵했던 고등과장이 불쑥 물었다.

《최재현씨를 아오?》

《다소 면식이 있습니다.》

《그럼 내 말을 명심해듣소. 최재현씨가 요즘 무슨 단체를 하나 꾸리고있는데 여기에는 지난날의 독립운동자들도 민족주의자들도 많이 참가하고있소. 당신도 여기에 가담하여 최재현씨를 도와주면 당신에게도 나쁘지 않을거요.》

리윤재는 그제서야 최재현이 자기에게 어째서 진드기처럼 달라붙고 고등과장이 자기를 왜 호출했는가 하는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그자들이 자기를 이 변절자, 타락분자들의 무리에 끌어들이고 전향시켜서 리용하자는것이다.

최재현이 자기에게 취직문제를 운운한것도, 김해와 마산에서 학교 교원자리 하나 얻을수 없는 까닭도 이제야 명백해졌다. 그자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경우에는 이미 시작된 박해가 더욱 가혹하리라는것을 그는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는 주저없이 말했다.

《나는 중국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어떤 정치단체에도 들지 않을 결심입니다.》

고등과장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싫단 말이지. 우리의 권고를 그렇게 대하면 본인에게 리롭지 못할거요. 하여간 오늘은 이만해두겠소.》

이야기는 이렇게 위협으로 끝났고 그는 무엇인지 짐 하나를 더 진 기분으로 방에서 나왔다. 이것은 힘있는자와 힘없는자의 위험을 배태한 대결이였다. 그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잡아먹을수 있는 야수의 족속이고 자기는 방어수단 하나 없는 양과 같은 존재이다.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밀림에서 일생을 생존의 위험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무력한 짐승을 그는 련상했다. 왜놈의 세상에서 조선사람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이 세상에 도전하듯 그는 가슴을 쭉 펴더니 《바보같은 놈!》하고 불쑥 소리내여 말했다. 그는 야만인에 가까운 번대머리같은 놈들이 폭력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을 죄인으로 다루는 그 꼬락서니를 속으로 멸시하였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힘없는자의 아큐식사고방식이라는 생각에 그의 입가에는 서글픈 웃음이 떠돌았다.

어슬어슬할무렵에 그가 집에 들어서니 하루종일 가슴을 조이던 어머니와 안해가 죽었다던 사람이 살아돌아온듯 반기며 한편 놀랐다.

《그 두루마기에 웬 잉크를 그렇게 뒤발랐느냐? 그놈들에게 행패나 당하지 않았느냐?》하고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왜놈들은 잠옷같은 유까다를 걸치고 뻐젓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조선사람은 조선옷을 입어서는 안된다는거지요. 섬오랑캐의 근성이 어디 가겠어요.》하고 리윤재가 두루마기를 벗어서 안해에게 주며 말했다.

《세상이 그러니 이젠 어디 나들이가실 때는 양복을 입으세요. 그거야 남 하는대로 해서 밑질게 없지 않아요.》하고 안해가 안타까와했다.

《아니야, 내 죽을 때까지 우리 선조가 물려준 조선옷을 벗지 않겠소. 옷손질에 당신이 좀 힘겹겠지만.》

사실 흰 조선옷을 람루하지 않게 계속 손질한다는것은 품이 이만저만 드는 일이 아니다. 조선옷은 매번 뜯어서 빨고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을 하고 다려서 새로 바느질을 해야 하는것이다. 깊은 밤 은은히 울리는 다듬이질소리는 자못 정서적이면서도 이 나라 녀인들의 정성이 그대로 숨배여있는것이다.

리윤재는 이때 한 약속을 일생 어기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완고한 하나의 고집이 아니라 왜놈들에게 맺힌 원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고 말없는 하나의 반항이기도 하였으며 민족의 넋을 귀중히 여기는 강직한 성품이기도 하였다.

리윤재가 방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안해가 저녁상을 차려오고 편지 한통을 가져다주었다. 오늘 낮에 왔다는것이다. 그는 수저를 들기 전에 편지부터 뜯어보았다. 뜻밖에도 평북도 오산학교 교장 리승훈에게서 온 편지였다. 학교에 조선어교원자리가 비여있어 좋은 사람을 하나 소개해달라고 조선어연구회에 부탁했더니 간사장 신명균이 리윤재를 천거하더라고 하면서 함께 후진육성에 매진해보지 않겠느냐고 하는 간단하면서도 정중한 초청이였다.

리윤재는 흥분했다. 생각지도 않던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뻗친것이다. 더우기 오산학교로 말하면 독립운동후비교육을 목적으로 리승훈이 세운 사립학교로서 교원진영에서나 이 학교출신에서나 쟁쟁한 인물이 적지 않다. 이런 전통이 있는 학교에 교원으로 초빙된다는것은 리윤재로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집을 이 꼴로 해놓고 또 어떻게 떠나겠는가?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어머니에게 편지내용을 이야기했다.

이 고마운 편지때문에 집안에서는 소동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거기 가는것을 완강히 반대한것이다. 정 가겠으면 식구를 다 죽이고 가라고 마지막말까지 했다.

이러고서야 리윤재가 가겠다고 굳이 우길수도 없었다.

안해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지만 더욱 침울해졌다. 리윤재는 단념하기는 너무도 아쉽고 그렇다고 훌쩍 떠날수도 없어 울적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어머니는 입을 봉하고 통 말을 하지 않았다. 마산창신학교에 갈 때도 이랬다. 한해쯤 있다가 이사하거나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떠나더니 거의 10년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죽었다면 차라리 기다리지나 않겠지만 온다온다 하는 사람을 10년이나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청상과부처럼 지내는 안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런데 안해가 며칠후 밤에 남편에게 귀띔했다.

《래일 아침에 어머니에게 다시한번 말씀드려보세요. 이번엔 들어주실거예요. 제가 낮에 애아버지가 상심하다가 탈이나 나면 어찌겠느냐고 말했더니 잠자코 계시더군요.》

《그럼 당신은 내가 떠나는걸 찬성한단 말이요?》하고 리윤재가 놀라서 물었다.

《어찌겠어요. 남정이 하는 일이 다르고 아낙네가 하는 일이 다른걸.》

리윤재는 가슴이 찡하고 울려왔다. 자기를 가장 소박하게 리해해주고 하늘처럼 믿어주는 안해가 자기의 마음을 받쳐주고있다는것을 느낀것이다.

이튿날 어머니는 침묵으로 승인했고 다음날 아들이 집을 떠나자 곧 방물보따리를 이고 집을 나섰다. 아들이 없는 집에 있기가 괴로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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