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12 장 

46

 

1950년의 새해도 기나긴 겨울을 물리치고 새봄을 맞이하고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해의 봄도 사람들에게 부푸는 희망과 넘치는 기대를 안겨주어야 하겠건만 지난 2월에 있은 리승만의 도꾜방문으로 하여 사람들은 커다란 위구심을 연추처럼 매단채 새 계절을 맞이하였다.

리승만이 채병덕을 비롯한 괴뢰군부의 장성들과 함께 프란체스까까지 대동하고 도꾜로 날아가 조선전쟁에 관한 맥아더의 11개조훈령을 받고온 사실이 드러나 세계가 법석 끓고있었다.

안개속에 감추어져있던 전쟁이 실체를 드러내고 조선의 굴곡많은 해안선으로 부지런히 접근해오고있었다.

3월초의 어느날이였다. 사회당의 재무부가 자리잡고있는 서울 삼공호텔의 별실로는 다과회의 명색으로 된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평화통일세력의 10인지도급인사들인 조소앙, 김규식, 조완구, 최동오, 엄항섭, 최일천, 조봉암, 장건상, 오하영, 안재홍이 모여앉았다.

모임의 의제는 이제 시작될 남조선괴뢰국회선거에 진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의 토의였다.

원래 남조선괴뢰정부가 조작될 때 제정한 《헌법》에 의하면 괴뢰국회의 임기주기는 4년으로서 1952년에 가서 선거를 다시 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초대《국회》인 경우에는 《제헌국회》라는 사명을 지니고있는것으로 하여 2년만에 재선거를 진행하여야 하였다.

이 《제헌국회》가 성립되던 2년전에는 남북련석회의에서 합의된 남북협상의지에 따라 김구, 김규식, 조소앙, 최동오 등 명망있는 인사들이 《5. 10단독선거》와 괴뢰정부조작책동을 배격하느라고 리승만이 미국과 야합하여 벌리는 일체 《선거》놀음과 《정부》참여에 애당초 등을 돌려대고 반기를 들었었다.

그래서 조소앙의 사회당을 비롯한 남북협상파내에서는 올해에 있게 될 2대《국회》선거에 자기들이 참가하는가, 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론의가 분분했었다. 남조선정치권에 대한 자기들의 참여가 결국은 리승만의 《대한민국》을 인정하는것으로 되고 평양련석회의정신을 배반하는것으로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제기된것이였다.

물론 리승만단독《정부》의 그 어떤 《선거》놀음도 겨레의 통일열망에 대한 또 하나의 거부이고 도전에 불과하였다.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두해전의 《5. 10단선》때처럼 이번의 《국회》선거 역시 매국적이며 비법적인것으로 타매하고 반대하여야 했고 따라서 그때처럼 일체 불참가의 원칙을 지켜야 하였다.

과연 그것이 옳은 결심이겠는가? 조소앙은 오늘 평화통일세력의 지도급인사들이 모여앉는 이 회의에서 그에 대한 최종적인 확답을 받고싶었다.

그는 조봉암이나 최일천 등 새로운 평화통일세력으로 등장하여 이전의 남북협상파세력과 합세한 사람들을 둘러보며 오늘 회의의 의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잠시동안 방안에는 깊은 사색에 잠긴 사람들의 숨결소리만이 흘렀다. 그동안에 조소앙은 최근 남조선에서 조성되고있는 정세를 다시한번 랭정하게 따져보았다.

미군의 완전철퇴를 위한 평화통일세력의 미군사고문단반대투쟁이 줄기차게 벌어지고있는 가운데 남조선의 군부도 통채로 뒤흔들리고있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리승만의 측근부하로서 지금까지 송악산을 비롯한 북조선지역에 대한 무장공격작전에 앞장섰던 김석원까지 전쟁을 반대한다는 자기의 립장을 밝히였던것이다. 그때 별안간 돌변해진 김석원의 태도에서 무엇인가를 느낀 리승만은 분노할대로 분노하였다. 김석원이 채병덕참모총장과 이미전부터 사이가 좋지 못했던 관계도 있은데다가 이제는 김구나 조소앙 같은 남북협상파세력과 쌍둥이같은 주장을 하고있으니 이런 사람을 그냥 최전연사단에 둘수 없었다. 결국 리승만은 김석원을 사단장직위에서 해임시키지 않을수 없었다. 38도선을 돌파하는 《북벌》력량의 기본주력으로 여기고있던 1사단장 김석원의 이와 같은 태도는 리승만에게 있어서 아연실색할 타격이였다. 이것은 리승만은 물론 전연에 배비되였던 다른 사단장들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파를 안겨주었다. 이제는 괴뢰군부의 중하층장교들은 물론 김석원과 같은 사단장급의 고위장성들까지 리승만의 《북벌》음모에 대하여 고개를 기웃하고 그 실행의 현실성여부를 놓고 동요하게 되였다. 이런판이다나니 김석원이 면직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남조선괴뢰군이 온갖 희생을 다 내며 간고하게 타고앉았던 38도선이북 벽성군 룡정리의 은파산과 비둘기산이 공화국경비대의 기습을 받고 손쓸사이 없이 점령되였다.

리승만과 로버트는 은파산을 되찾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고 병력을 증강한다, 대포를 들이민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였지만 그때로부터 수일간에 걸쳐 진행된 간고한 은파산전투는 공화국경비대의 승리로 결속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경무대에 들어앉은 리승만의 측근인물들속에서도 북과의 전쟁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며 조국전선의 평화통일선언서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50년은 이러한 환경속에서 시작되였다.

조소앙은 이런 유리한 형세에 토대한다면 리승만《정권》을 얼마든지 고립약화시킬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의 뇌리속에 먼저 떠오른것은 지난 남북련석회의때 남조선에서의 구국투쟁을 합법적투쟁과 비합법적투쟁을 배합하여 능동적으로 벌려나가야 한다고 하신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리승만《정권》내에서 합법적활동을 벌려온 평화통일세력이 이번의 《선거》경쟁에 뛰여드는것을 거부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미 미국의 뒤받침과 리승만의 강권으로 《대한민국》이라는것이 수립된 오늘날에는 대담하게 리승만권력층에 뚫고들어가 민중의 의지를 실현할수 있는 정치적지반을 확보하여야 하는것이다. 조소앙은 성시백에게 자기의 견해를 이야기하였다.

성시백은 반대하지 않았다. 이미전에 김구나 김규식, 조소앙이 남북의 협상을 실현하려면 권력부터 잡아야 한다는 주관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리승만《정부》에 저마끔 개별적으로 가담하려고 한것은 확실히 잘못이라고 볼수 있었다. 그러한 투쟁방법은 성과를 기대할수도 없었으며 남북련석회의때의 남북협상의지를 거부하는 행위로 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을 계기로 확대강화된 평화통일세력이 이번 《선거》를 통해 일제히 리승만의 괴뢰국회에 뚫고 들어간다면 《북진론》을 주장하는 호전세력들을 압도적으로 물리칠수 있었고 조국전선의 평화통일선언서를 실현할수 있는 정치적기초를 마련할수 있었다. 때문에 성시백은 남조선에 있는 로동당원들과 인민유격대를 비롯하여 리승만《정권》으로부터 공개적인 탄압의 대상으로 되고있는 사람들이 이번의 2대《국회선거》반대운동을 줄기차게 벌리고있는 조건에서 평화통일세력의 인사들은 《선거》전에 직접 뛰여들어 리승만정치권을 안팎으로 뒤흔들어놓는것이 혁명정세발전에 유리하다고 보았던것이다.

그래서 성시백은 리병우형제를 통하여 평화통일세력의 지도급인사들이 의도하고있는 새로운 《국회》투쟁을 적극 고무추동해주도록 하였다. 오늘의 이 모임도 성시백의 이와 같은 노력에 의해 마련된것이였다.

지금 조소앙의 삼공호텔에 모여든 최일천, 조봉암을 위시로 한 평화통일세력은 성시백과 그의 지우들인 리병우와 리창우를 통하여 조소앙을 위시로 한 《림정》계의 남북협상파와 련계를 보장하고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리병우와 리창우가 조봉암을 비롯한 새로 등장한 평화통일세력의 5명의 지도급인사들을 이곳 삼공호텔로 안내해왔던것이다.

경찰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바둑판을 몇개 펴놓고 그 두리를 따라가며 자리들을 잡았다.

《말씀들을 하십시오.》하고 조소앙이 마침내 방안에 가득찼던 정적을 주동적으로 깨뜨렸다.

《다가오는 〈국회선거〉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립장은 무엇인가? 난여러 선생들의 기탄없는 의견을 듣고싶습니다.》

누구인가 헛기침을 톺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족자주련맹위원장 김규식이였다. 체소하고 년로한 그는 한마디한마디에 그루를 박으며 자기의 견해를 피력해나갔다.

《나는 다가오는 5월에 있게 되는 2대〈국회선거〉에서 우리 남북협상파를 중심으로 한 평화통일세력이 꼭 참가할뿐만아니라 반드시 다수로 당선되여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권력도 금권도 없습니다. 때문에 유권자대중의 신망을 얻어 민의의 표를 받아 당선되여야 합니다. 중요한것은 북조선의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남조선민중의 절대적인 공감을 우리의 유일한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것입니다. 김일성장군님의 평화통일의지와 조국전선의 선언서를 내용으로 하는 이야기모임을 이르는 곳마다에서 가져야 합니다. 여기에 이번 총〈선거〉에서 우리가 권력이나 금권의 안받침이 없이 승리할수 있는 비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리승만〈정권〉의 수립을 계기로 사실상 정계은퇴를 한 사람이며 몸도 로약한만큼 이번 총〈선거〉전에 나설것 같지 못합니다.》

조소앙이 의아해하며 무엇이라고 반박하려는것을 김규식이 손들어 제지시켰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알아야 하지요. 자신의 능력이 응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어떤 관록이나 명예를 내세우며 주관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나는 아무쪼록 기력도 왕성하고 정치적관록이나 전개력, 수완이 뛰여난 조소앙선생이 이번 〈선거〉에서 주도적역할을 해줄것을 정식으로 제기합니다.》

《그렇지. 소앙이야 전번 백범장례식때부터 민심을 평화통일열망에로 이끄는데서 적지 않은 공헌을 세우지 않았소. 나나 우사는 이미 로약한 몸이라 자신의 힘에도 제한이 있다는것을 느끼고있는 사람들이요.》하고 한국독립당 위원장인 조완구(김구암살이후 그의 후임으로 위원장이 됨.)가 김규식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시했다.

《사회당이 지난날 한국독립당계와 통일촉진협의회에 망라된 80여개정당, 사회단체들의 지반을 잘 알고있는만큼 우리 한국독립당은 우사가 방금 이야기한것처럼 전권을 소앙에게 위임하오.》

모여앉았던 다른 인사들도 김규식과 조완구의 제기에 전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지금껏 잠자코있던 최일천이 더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듯 선언조로 이야기했다.

《나 역시 우리가 이번 〈국회선거〉전에 응당 뛰여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리승만의 전쟁책동을 분쇄하자면 리승만이부터 〈정권〉의 자리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이번의 5. 30 〈국회선거〉가 그 서막으로 될것입니다. 나는 조소앙선생이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계속하여 최일천은 자신이 길림시절과 오가자의 반제청년동맹시절 몸가까이 모시고 싸우는 영광을 지녔던 김일성동지의 위인상에 대하여 오래동안 이야기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통일방략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라는것을 허다한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하는 최일천을 보며 김규식이 한마디 했다.

《허허… 결국 내가 제기했던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모임은 벌써 시작된셈이구만.》

좌중에 즐거운 웃음발이 피여오르는 가운데 조소앙이 정색하여 자신을 그렇듯 믿어주는 여러 인사들의 마음에 사의를 표하고나서 이 자리에 참석한 유일한 초대《국회의원》인 조봉암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내라고 무슨 다른 의견이 있겠소.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동참하게 된것은 다 김일성장군님의 덕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나는 우리가 단합하여 싸운다면 얼마든지 리승만을 타도하고 남북의 협상을 실현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심은 천심입니다. 그 천심을 따르는 일이 어찌 실패할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민심은 천심이다. 김일성장군님을 받드는 남녘의 민심은 억제할수도 흔들수도 없는 거창한 힘을 내포하고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조소앙은 이런 생각에 잠겨 저으기 흥분되여 여러분들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조소앙은 결코 이번의 《선거》가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않을것이며 어쩌면 리승만의 모략과 테로의 희생물이 되여 생명까지도 잃을수 있는 위험한 길임을 모르지 않았다. 허나 이 땅에 태여난 남아로서, 정치가로서 민심을 따르는 길에서 주저할수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국회선거〉에서 우리가 리승만, 김성수의 권력층과 목숨을 내대고 싸울것을 오늘 회의의 결정으로 채택합시다. 다른 의견이 없겠습니까?》

모여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찬동의 뜻을 표시하였다. 회의는 성과적으로 결속되였다. 그러나 이 시각 조소앙은 오히려 더 큰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있었다. 정계에서 오래동안 생활해온 조소앙은 다가올 《국회선거》전이 예측할수 없는 불의의 참변과 참기 어려운 우여곡절을 겪을수 있으리라는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사실 그것은 말그대로 하나의 전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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