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12 장

44

 

매끈한 유리로 된 시창이 우둘투둘하게 쭈그러들고 기괴한 무늬의 금이 쭉쭉 그려져 당장에 산산쪼각이 날것 같았다.

사납게 내리퍼붓는 비줄기가 승용차에 연방 들씌워지고있었던것이다.

그때문에 눈앞으로 다가들고있는 도꾜시가가 비물이 들씌워진 시창처럼 그렇게 이지러지고 희부옇게 퇴색되여버린듯 했다.

맥아더는 그것이 오늘의 이 세상이 가지고있는 진실이 아닌가싶었다. 당장에 주먹을 휘둘러 이 부옇게 변색되여가는 세상을 부시여버리고싶었다.

뒤좌석에 앉은 월로우비가 아까부터 문건을 뒤적이며 무엇인가 계속 보고하고있다.

1949년도의 북벌계획이 좌절된 오늘날에 와서 도대체 무슨 보고할만한것이 있어 부지런히 혀를 놀리는것인지 모를 일이였다.

한참동안 귀기울여서야 서울에서 《한국》인들로 조직된 합동수사본부가 며칠전 3명의 소장파 《의원》을 더 체포하여 도합 13명의 《불온분자》들을 구류하였다는것을 알려주면서 그 이름들을 꼽아나가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경상남도 진양군출신의 황윤호, 전라남도 진도군출신의 김병희, 경상남도 남해군출신의 박윤원, 경상남도 동래구출신의 김약수를 포함하여 전남의 김옥주, 강원의 최태규, 경북의 배중혁…》

월로우비의 그 목소리는 맥아더의 분기를 더욱더 돋구고있었다. 물론 그 역시 올해에 계획했던 많은 첩보작전들을 그 어느 하나도 속시원히 성공하지 못하다나니 다 낡아빠진 신발을 다시 찾아신듯이 오제도합동수사본부의 《국회프락찌야》건을 뒤적여 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이 있다는 위안이라도 얻어보려고 한다는것은 짐작도 되고 리해도 되였다.

《그래서 그자들을 통해 어떤 단서를 쥐였소? 북의 지령을 받는 거물급지도세력을 들추어내기라도 했다는거요?》

《아직은 그들 13명이 북과 련계되였다는 단서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서가 있든 없든간에 그들을 북스파이로 규정하고 그럴듯한 근거자료들을 꾸며 여론을 계속 내돌리면 북조선수뇌부에 대한 남조선국민들과 세계여론의 인식을 흔들어놓을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을 구실로 해서 남조선국회의 반리승만세력들부터 완전히 눌러놓자는것입니다.》

《늦었소, 소장. 나와 외교할 생각은 하지 마시오. 난 군인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운명을 두어깨에 걸머진 정치가이기도 하오. 그래 당신은 이미 그런 유치한 방법으로는 그 어떤것도 해결할수 없다는것을 아직도 리해하지 못하겠다는거요?》

《…》

사령부앞에까지 다 왔는지 차가 스르르 속도를 죽였다. 차에서 내린 맥아더가 월로우비를 데리고 차광막이 드리워져 침침한 어둠에 묻혀있는 사령부의 응접실로 들어왔을 때 부관이 황급히 뒤를 쫓아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사령관각하, 라지오에서…》

맥아더는 그의 말을 자르며 무섭게 추궁했다.

《라지오가 어쨌다는거요?》

부관은 난데없는 벼락을 맞고 감전된듯 무춤 굳어졌지만 할 말은 끝까지 다 했다. 하긴 별로 길지도 않은 짤막한 소식이였다.

《라지오에서 지금 모택동이 연설하고있습니다.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의식이 진행중입니다.》

맥아더는 이미 예견하고있었다는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짓으로 부관을 내보냈다. 그리고는 월로우비를 힐끔 쳐다보며 구석쪽의 책상우에 놓인 육중한 라지오의 스위치를 넣었다.

삑― 하는 자극적인 신호음이 먼저 울려나왔다. 주파수를 조절하느라 조절변을 돌리는 동안 우주에 가득찬 무수한 전자기파들의 치렬한 싸움을 보도하는듯 한 어지러운 소음이 긴장한 자세로 마주선 두 군인의 고막을 사정없이 파헤쳐댔다.

이윽고 수륙만리 떨어진 먼곳의 소음이, 싸움이 아니라 평화를 선언하는 명백하고도 강렬한 음향이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으로… 우리 중화민족은…》

분명 모택동이 연설하는 목소리였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끊길줄 몰라 말소리를 알아듣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러나 세계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인구대국이 세계륙지의 6분의 1을 차지한 령토의 대국인 쏘련과 더불어 세계민주진영에 들어섰다는 내용만은 알아들을수 있었다.

맥아더는 탁자우에 놓인 지구의에서 극동지역을 찾아 자기쪽으로 빽 돌려놓았다.

지구상에서 제일 큰 두개의 나라를 끼고 그 관문에 들어앉은 자그마한 조선반도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끝내 이런 일이 벌어졌다. 두달전 8월에는 쏘련이 원자탄개발에서 성공하여 미국의 핵독점을 끝장내더니 오늘은 또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것이 생겨났다.

북조선, 바로 북조선공격작전에서의 정치군사적실패와 좌절이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것만 같았다.

《그래 이제는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겠지, 소장?》

《네… 인정합니다.》

총사령관의 평가를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묵상을 하듯 고개숙이고 서있던 월로우비가 힘겹게 입을 열자마자 분노한 맥아더의 질책속에 뿜어나오는 후끈한 열기가 그의 뺨을 후려갈겼다.

《아니요, 소장!》

맥아더는 앞에 나타난 모든것을 짓태울듯 한 기세로 눈가에 불꽃을 일으키고있었다. 월로우비는 그 불꽃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 38도선에서 타들어가는 전쟁의 도화선이 그 불꽃에서 보였던것이다.

《우리 미국은 설사 실패는 할수 있어도 패배는 할수 없소. 이 더글라스 맥아더가 있는 한 태평양은 우리 미국의 영원한 자연호수로 될것이요.》

맥아더는 반세기를 훨씬 넘게 살아오며 세계앞에 군사가로서뿐만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위용도 남김없이 떨쳐온 자신이 난생처음으로 가장 강력한 적수와 맞다들렸다는것을 의식했다. 현재의 북조선이야말로 창건된지 1년남짓한 짧은 기간에 정치적으로 보나 군사적으로 보나 미국의 막강한 힘도 두려워하지 않는 강철의 보루로 일떠선것이다. 맥아더는 이것을 인정하고있었다. 이것이 한생을 포화속에서 살아오며 별의별 경난을 다 겪어본 맥아더의 대결심리를 더 크게 자극하는것이였다. 그렇다, 맞다든 적수가 강적이 아니라면 설사 실패없는 승리를 이룩한다 해도 아무런 쾌감도 느끼지 못할것이다. 가장 훌륭한 성공으로 가는 길에는 가장 가혹한 실패가 있기마련이 아닌가. 맥아더는 이 실패를 새로운 성공으로 향해가는 디딤돌로 리용해야겠다는 야심만만한 배짱이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지금은 과거나 돌이켜보고 앉아있을 때가 아니요. 앞으로 우린 평양에서 불어치고있는 반미통일기운을 역리용하여 그것을 전면전쟁의 전제조건으로 만들어야 하오. 미국은, 또 이 맥아더는 결코 주저앉는 법을 모르오, 주저앉아서도 안되는것이고.》

맥아더는 자기가 뭇사람들에게 맥을 놓고 한숨 쉬고있는 저 월로우비처럼 보일가봐 그것이 더 두려웠다.

《올해에 있은 북조선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공세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것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교훈은 오직 하나요. 그것은 북조선을 타고앉아야 한다는 우리의 목적은 오직 한가지 방법, 즉 전면전쟁으로써만 이루어질수 있다는것을 다시금 증명해주었다는것이요.》

맥아더는 평양의 평화통일기운이 리승만《정권》을 위기에 몰아넣고있는 현 상황을 북의 남침공격준비의 한 고리로 역선전하며 가까운 앞날에 반드시 온 조선반도가 평양바람에 적색화될것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대통령과 국무성을 비롯한 미국의 지도부에 충분히 인식시켜주어야한다는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제 머지않아 또다시 북조선과 자기 개인의 명예, 미국의 명예를 걸고 정면대결할 날이 반드시 올것이라는것을 예감하고있었다. 그것을 위하여 우선 남조선군을 선견대적이며 돌격대적인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수 있게 준비시켜야 하였다.

맥아더는 국방성과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미국제장비와 기술수단들을 남조선에 더 많이 넘겨주고 그곳 군부의 고위장성들부터가 북조선에 대한 전격전을 목숨바쳐 치르어낼 열의에 충만되도록 적극 부추겨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외에도 준비하여야 할 수많은 일거리들이 있을것이다.

맥아더는 이제 다가올 더 크고 더 치렬하고 더 새로운 대결장에서는 반드시 승리할것이며 반드시 승리하리라는것을 자신의 한생을 걸고,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인격, 존엄을 걸고 확신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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