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10 장

36

 

강태무는 요즈음 나라의 통일이 눈앞에 박두하고 헤여졌던 안해와 다시 만날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있다는 생각에 혼자 길을 걸어가다가도 넘치는 희열을 걷잡지 못하고 빙그레 웃음을 짓군 했다.

며칠전에 미국이 륙군성 대변인을 내세워 남조선에 주둔하고있던 미군전원을 철퇴시킬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는 소식이 강태무가 일하고있는 내무성 경비국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것은 북반부에서의 쏘련군철수와 괴뢰국회안에서의 미군철거긴급동의서 상정, 《국회》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탄압에 련이어 벌어진 김구암살,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평화통일선언서 등 련이어 파생된 정치적사변들로 하여 더는 수습할수 없는 위기에 몰린 미국이 어쩔수 없이 내리게 된 결정이였다.

그 진속이야 어쨌든 미국이 김일성동지의 평화적조국통일로선과 그를 옹호하는 각계층의 목소리들을 공개적으로는 외면할수 없어 한걸음 후퇴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김일성동지의 통일의지를 실현하는데서 첫 돌파구가 열린셈이였다.

강태무는 김일성동지께서 계시는 한 미군의 철거가 나라의 평화통일에로 이어지리라는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이의 높은 신임으로 그처럼 소원이던 혁명의 군복을 입고 괴뢰군 소령의 계급장대신 내무성중좌의 묵직한 견장이 얹어지던 그날 강태무는 그 기쁨만으로도 이 세상에 부러운것이 더는 없을듯 했었다. 그러나 밤이 오자 벽에다 걸어놓은 자기의 군복을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저 군복을 입고 번쩍거리는 장화에 혁띠를 차고 군모우에 모표를 번쩍이며 안해와 만난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이 마음속을 아릿하게 허벼놓았었다.

그런데 미군이 철수한다니 이것이 꿈속에서 그려보던 소원이 당장 현실로 펼쳐질 일이 아닌가.

강태무는 오늘도 또 무슨 새로운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있을가 하는 기대감을 안고 아침일찍 정복차림을 단정히 하고 숙소에서 나왔다. 내무성 경비국청사를 향해 걸음을 옮겨가던 그는 현관앞에서 금방 밖으로 나오던 방학세부상과 마주쳤다.

강태무는 방학세를 향해 미소를 머금으며 잽싸게 경례를 붙였다. 그런데 무슨 좋지 못한 일이라도 있는지 방학세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강태무를 쪼프린 눈길로 한참동안 훑어보다가 《요새 표무원동물 만나보군 하오?》 하고 난데없는 질문을 불쑥 하는것이였다.

그 눈길과 어조에서 무엇인가 속을 선뜩하게 하는 불안감을 느낀 강태무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하고 성급하게 되물었다.

방학세는 아무 대답없이 강태무를 지나쳤다. 두어걸음 더 옮겨디디고서야 자기의 등뒤를 지궂게 주시하는 시선에 견디지 못하겠던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고개는 여전히 앞쪽으로 향한채로 표무원을 한번 찾아가 만나보라고 하였다.

《고향 대구에서 그의 어머니가 놈들에게 학살당했다오. 월북자아들을 키웠다는 죄명때문이지.》

강태무는 강한 충격에 머리가 뗑해졌다. 그는 방학세가 어느사이에 자기 시야에서 아주 사라져버렸는지 알수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그 어머니가 무슨 죄인이란 말인가. 아들을 장하게 키우는것이 그 암흑의 땅에서는 죄로 되고 처형의 대상으로 된단 말인가.

강태무는 이날 하루종일 무슨 정신으로 보냈는지 몰랐다. 틈만 있으면 표무원에 대한 측은한 동정심과 함께 자기 안해도 표무원의 어머니처럼 적들에게 붙잡혀 잘못되지 않았을가 하는 무서운 불안이 엄습해드는것을 걷잡을수 없었다.

그는 저녁에 표무원도 위로하고 자기자신도 위로하려고 술 한병을 차고 표무원에게로 찾아갔다.

표무원은 병영마당에서 의거입북자들로 무어진 자기의 부대를 훈련시키고있었다. 어머니의 소식을 받은 후여서 그런지 눈이 푹 꺼져들어가고 볼이 훌쭉해진 그가 앞에 나타나는 모든것을 짓태울듯한 불꽃을 눈동자에 싣고 북에 들어와 새로 배운 제식규정대로 《앞으로 갓, 차렷!》하고 힘있게 웨치고있었다.

쇠소리가 나는 구령이였다. 표무원이 자기의 슬픔과 분노와 울분을 그 구령소리에 다 담아 목청껏 웨치고있다는것이 대번에 알렸다.

《앞으로― 갓!》

또다시 반복되여 들려오는 구령소리.

어째서인지 강태무의 귀전에는 다른 구령소리는 들려오지 않고 《앞으로― 갓》소리만 그냥 들려왔다. 표무원은 지금 마음속으로 자기의 대원들과 함께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고있는것이였다. 앞으로, 앞으로!

분렬의 상징 38도선을 향해, 남쪽을 향해 표무원은 끝없이 나아가고있을것이다. 그의 눈동자에서 번뜩이는 비수같은 불꽃은 단순한 슬픔과 울분이 아니라 타오르는 적의감이였고 가차없는 징벌의 열망이였다. 그것을 느낀 강태무는 표무원에게 아무런 위로도 할수 없었다. 아무 말도 못했고 심지어 만나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어머니를 잃은 아픔에 어떤 말을 골라 해주어야 위로가 될수 있겠는지 알수도 없었거니와 사랑하는 인주에 대한 근심이 뼈를 깎는듯 한 고통과 동반되면서도 용기를 내여 일어나 분발할 대신 위로의 술이나 나누자고 찾아온 자기자신이 환멸스럽게 여겨졌던것이다.

그는 들고왔던 술병을 가슴노리까지 추켜들고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에익―》소리를 치며 손칼로 후려쳤다. 이번에는 지나간 시절의 언제인가처럼 순진한 청춘남녀의 사랑을 조롱하던 하사관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그렇게 후려갈겼던것이다.

며칠이 지난 뒤 강태무는 내무성에서 입수한 출판물들을 뒤적여보다가 그속에서 안해의 소식을 찾아보게 되였다.

거기에는 《월북자 강태무의 안해 박인주》의 사진과 함께 이 녀자를 찾는 경우 받게 될 현상금의 액수가 적혀있었다.

신문은 그것을 읽어본 다음부터 며칠동안 홀로 고통을 묵새겨가며 복수의 결의를 가다듬는 강태무의 땀에 절어 몇백년전의 종이처럼 보풀이 일고 너실너실해졌다. 그날 경비국으로는 강원도 린제와 양양에 괴뢰륙군정보국의 특별공작대라고 하는 《호림부대》가 나타나 인민들을 마구 도살하고 략탈한다는 통보가 날아들었었다. 그것은 안해가 바로 이런 사악한 무리들속에 있다는것을 강태무에게 부단히 강조해주는 소식이였다.

며칠후에는 또 내무성 경비국장이 강태무를 불러 송악산앞계선에 적들의 대병력이 집결되여있다는것을 알려주면서 38도선에 내려가 최현려단장을 도와 적들의 불의적침공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하였다. 강태무는 점점 더 자기자신을 저주하게 되였다.

(이건 뭔가? 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더니 통일이 아니라 전쟁이 다가오고있는것이 아닌가?!)

강태무는 승리의 시각이 다가올수록 원쑤들의 발악은 극도에 달한다는 가장 초보적인 진리를 날이 갈수록 사무치게 절감했다.

그는 명령을 받지 않았다 해도 스스로 38도선에 달려나갔을것이다.

자동차에 오른 그는 운전사를 재촉하여 평양에서 38도선까지의 먼길을 단숨에 달려갔다.

포연같은 안개발에 잠긴 38도선의 계곡들이 눈에 밟혀오고 전형적인 무관이라고 소문난 최현의 3경비려단지휘부가 가까와올수록 강태무의 마음은 점점 긴장되였다.

강태무자신이 몇해동안 괴뢰군에 복무하면서 미국제기술수단으로 무장한 괴뢰군의 무장장비와 병력상태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나니 이제 진행될 전투가 얼마나 가렬하고 힘겨울것인가를 충분히 가늠할수 있었던것이다.

만약 전투에서 패하여 송악산을 내놓고 물러선다면 통일의 날이 그만큼 멀어지는것은 물론 안해와 만날 길이 영영 막혀버릴수 있다는 예감도 들었다.

안해에 대한 생각, 전투에 대한 생각으로 마구 뒤엉키며 제가닥으로 퍼져나가는 천만가지 근심과 걱정과 각오로 하여 3경비려단지휘부 앞에 도착했을 때의 강태무의 모습은 금시 결전장에 달려나갈 병사처럼 비장해있었다.

그런데 정작 문을 열고 최현의 방에 들어섰을 때 강태무는 자기가 그려보던것과는 너무도 판이한 정황에 맞다들리게 되였다.

하얀 면내의만 걸치고 군복의 목달개를 다느라 어울리지도 않는 안경을 코에 걸고있던 최현이 《이게 누구야?》하고 벌떡 소리치며 성급히 일어서다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 가벼운 비명을 지르는것이였다.

최현은 군복을 책상우에 뭉개놓고는 급하게 다가와 다짜고짜 강태무를 힘껏 포옹하였다. 강태무가 38경비대의 도움으로 무사히 의거입북을 한 뒤 얼핏 보고는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최현이였다.

《멋있구나, 멋있어. 우리 군복이 강태무에게는 더 잘 어울려. 어―중좌견장이 어려운걸? 우리한테 검열내려왔나?》

강태무는 그의 포옹과 련이은 찬사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시후에는 자기가 상상하던것과는 너무도 다른 농민형의 푸수한 모습과 인정미에 가슴이 찌르르 젖어들었다.

《려단장동지, 너무 이러지 마십시오. 저야 엊그제까지만 해도…》

하고 강태무는 저로서도 저같지 않은 우물쭈물한 태도로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최현에게 말꼬리를 삼키우고말았다.

《아니, 아니야. 사실 내 언제부터 강태무를 만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싶었댔지. 우리 장군님께서 강태무의 소행을 보고받고 얼마나 대견해하신줄 몰라. 장군님께 조금이라도 기쁨드린 사람이라면 잔등에 업고 지구를 한바퀴 돌아도 힘든줄 모르겠어. 가만있자, 내 이런 참…

성에서 내려온 어른앞에 내의바람에 이 무슨 꼴이람.》

최현은 강태무를 가까운 걸상에 끌어다 앉히고 자기는 바느질하던것을 급급히 마무리하느라 서둘렀다.

《헌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나?》

《요즈음 송악산형편이 또다시 악화되고있다는 정보를 받고 경비국에서 절 여기로 파견했습니다. 앞으로 여기 더 자주 내려올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래 자주 내려와야지. 그래야 나하고도 더 친해지지. 〈그런데〉라는건 왜?》

《아닙니다. 그저… 누구인가 지금쯤 최현동지가 은파산전투때의 손실도 그렇고 송악산정황도 심상치 않으니 몹시 불안해하고있을것이라고 했는데…》

은파산소리가 나오자 최현의 베개통같은 목대에서 울대뼈가 움씰했다. 가까스로 봉합해놓았던 상처를 사정없이 헤집어놓는 상대방에 대한 원망이 로골적으로 풍겨왔다.

강태무는 자기가 뜬김에 실없는 소리를 했다는것을 느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도 이 백전의 무장은 자신을 다잡고 대범한 롱말로 응수했다.

《거 우에선 말질들이 꽤 많은 모양이다. 이 최현이가 이젠 그렇게 속통이 얄팍한 종이범으로 뒤번져졌는가? 은파산이야 이제 장군님께서 그거 이젠 도루 찾아라 한마디만 령을 내리시면 제꺽 도루 찾으면 되는거고 여보, 그것때문에 목달개도 못 달고 시꺼매서 있으라우?》

최현은 은파산이야기는 그쯤하자는 심기를 바느질하던 실을 이발로 끊어버리는것으로 표현했다.

이때 문이 열리고 군복을 맵시나게 다듬은 꺽두룩한 군관 한명이 들어와 멋들어진 경례를 했다.

《려단장동지, 명령대로 갔다왔습니다.》

《오! 데려왔나?》

최현은 그를 지금껏 기다리고있은듯 반색하였다.

《네, 데려왔습니다.》하는 대대장의 대답에 이어 어딘가 기운이 빠진듯 한 소위가 들어섰는데 강태무는 최현의 인상이 그를 보는 순간 대뜸 이지러지는것을 보았다. 최현은 뒤짐을 지고 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송충이눈섭을 꿈틀했다.

《꼴 좋다. 이리 가까이 와라! 어서!》

그는 보이지 않는 코뚜레에 매달린것처럼 최현의 책상가까이로 굴러들다싶이했다.

강태무는 범이라도 멨다꽂을듯 기고만장해진 최현과 호랑이앞의 오소리처럼 잔뜩 움츠리고있는 소위를 번갈아보며 무슨 심상치 않은 정황이 발생했다고 짐작했다.

《더 가까이!》

최현은 변익수를 뒤벽에 걸린 대형지도앞으로 이끌고는 빨간 작전연필을 던져주었다.

《여기다 짚어봐! 어디에 가있다구?》

《…》

《뭘 멍청하니 서있어? 짚어보라는데…》

《저… 이거야 작전지도가 아닙니까?》

《누가 그런 상관 하래? 어서 짚어!》

최현의 강박에 못이긴 변익수가 떨리는 손으로 지도의 어느 한 점을 짚자 그에게서 연필을 나꾸챈 최현은 거기에다 진하게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그리고는 익수에게 칼끝같은 눈초리를 던졌다.

《여기야 은파산밑이 아닌가.》

《네, 그의 부모들 말이 은파산아래마을에 있는 동무네 집에 다녀오겠다면서 떠났답니다. 그런데 아직…》

최현은 더 듣지 않고 손을 홱 내저었다.

《시라소니같은녀석! 그 애리애리한 체네 하나 붙들지 못해 놓쳐버린단 말이야? 은파산에서 전투가 있었고 사상자들도 적지 않았는데 생사여부는 알아봤나?》

《저… 사실은…》

《이 맹물단지같은것, 그러구두 소대장이라구? 똑똑히 들어, 그 체네 행처를 찾아가지고 내앞에 끌어다놓기 전까지는 작전지도에 그어놓은 이 빨간 동그라미가 없어지지 않을줄 알라. 가라! 가서 초소도 지키고 반월이도 찾아다놔. 만약 잘못되였으면 일생 장가갈 생각 하지도 말라. 소대장재목이 되긴 되는가 이번기회에 시험을 치겠다. 퇴짜맞으면 제대야.》

여느 사람같으면 몸서리칠만큼 으쓸한 위협이였지만 익수는 물에 빠진 주제에 비맞을 걱정하랴 하는 식이였다. 별로 놀라거나 겁나하지도 않고 들어올 때처럼 조용히 나갔다.

최현의 작전지도에 오른 빨간 동그라미가 강태무의 시야에 확대되여 날아들었다. 수림과 개울을 표시한 푸른색줄기가 그 빨간 동그라미안에 들어있다.

《그 동무가 간첩을 놓쳤습니까?》

강태무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다.

《애인을 놓쳐 그러질 않나.》

물론 강태무는 최현의 말이 시답지 않게 던지는 롱담인줄 알았다.

그러나 정색해서 듣고있는 대대장이나 자기가 그어놓은 빨간 동그라미를 심중해서 쳐다보는 최현의 행동거지가 결코 롱담이 아님을 보여주고있었다.

(무슨 일일가?)

알고싶었지만 구태여 더 캐여묻지는 않았다. 그저 범같은 최현의 지휘부안에서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정시같은 분위기를 야릇하게 느꼈을뿐이다. 강태무는 괴뢰군에 있을 때부터 소문으로 들어오던것과는 너무도 다른 최현의 모습을 자못 신기하게 지켜보았다.

최현이 강태무에게 방금 익수가 사라진 출입문가를 턱짓으로 가리켜보였다.

《이자 그 동무가 송악산 488. 2고지의 소대장이요. 부부장동무가 송악산형편을 료해할 결심이라면 그 동무와 함께 가보면 될것이요.》

강태무는 변익수를 따라갔지만 적정료해는커녕 최현의 작전지도에 오른 동그라미의 내막을 알아볼 사이도 없었다. 그가 송악산에 오른 바로 그 이튿날 새벽 송악산에 대한 적들의 3차공격을 알리는 포병준비 타격이 개시되였던것이다.

1949년 7월 25일 새벽 4시 10분이였다.

그 시간의 도래와 함께 신새벽의 고요는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고려태조 왕건의 건국업적을 깊숙이 묻어두고 수백년세월 전란으로 허덕이는 자기의 아들들을 추연히 내려다보고있던 송악산에 적들의 105미리 곡사포탄이 무차별적으로 날아와 폭음과 불길과 파편을 휘뿌렸다. 개인점호 못지 않은 구뎅이들이 순식간에 생겨나며 진짜참호에 배겨있던 전사들의 머리와 어깨에 흙먼지를 들씌웠다.

《은페하시오, 은페!》

교통호를 따라 뛰여가던 변익수의 모습이 폭음과 연기속에 가리워졌다. 강태무는 벌써 한쪽팔소매가 파편에 맞아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고막이 징징 울리고 내장이 통채로 파렬되여나가는듯 했다. 가까이에서 또 포탄이 터졌는지 흙모래가 얼굴에 들씌워져 눈을 뜰수가 없었다. 이제는 어느것이 가까이 날아와 터지는것이고 어느것이 멀리서 터지는것인지도 가려낼수 없었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지어 자기가 엎디여있는지 서있는지 달리고있는지도 몰랐다.

시계를 보려고 팔목을 쳐드니 시계는 간곳없고 시계줄이 늘어졌던 자리에 파편이 스치고 지나간 허물이 생기고 거기서 피방울이 배나와 손목전체를 검붉은색으로 물들이고있었다. 강태무는 그 검붉은 바탕에 시간이라도 새겨져있는듯 뚫어지게 쏘아보다가 진저리를 치며 손목을 탁 쳐버렸다.

적들의 포병준비타격은 약 20분동안 진행되였다. 포연이 바람에 날려가며 시야를 틔워놓자 산병선을 짓고 올라오는 적들의 형체가 뚜렷하게 눈에 밟혀왔다.

얼핏 보아도 전방에 집결되여있던 한개 련대력량을 몽땅 투입한것 같았다.

이날 적들은 4키로메터전선에 력량과 기재를 집중하고 송악산을 정면과 량익측에서 공격해오기 시작하였는데 주타격방향을 이 488. 2고지로 정했던것이다. 488. 2고지의 경비대력량은 변익수의 소대를 포함한 한개 중대밖에 안되였다.

한줄배기견장을 가려볼수 없게 흙먼지를 들쓴 중대장련락병이 허리를 굽히고 교통호를 따라 미끄러지듯 굴러왔다.

《부부장동지, 부부장동지!》

《여기 있소.》

강태무는 되도록이면 침착해지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중대장동지가 변익수소대장동지와 함께 좌익을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중대장동진 우익으로 들어오는 적들을 답새기겠답니다.》

《그래, 답새기라고 하시오.》

미국제소총과 자동총으로 무장한 적들이 멀리서부터 사격해오는 바람에 전호앞의 10메터지점에서 총탄들이 들어박히며 먼지를 일으키고 풀대들을 꺾었다.

멀리서 볼 때는 너무 느릿느릿하여 아물거리는 개미떼같던 적의 무리가 100메터밖에서부터는 급속도로 확대되여왔다.

뒤에서 권총을 휘두르는 장교놈의 악청이 바람에 실려 날아오고 다가오는 적들의 얼굴륜곽은 물론 가슴에 붙은 군표의 번호까지 가려볼수 있을것 같았다. 날이 밝고있는것이다.

적들의 총탄이 흉장에 들어박혀 눈앞에서 폴싹폴싹 먼지를 일으켰다.

어떤 총탄은 나란히 엎드린 강태무와 변익수의 귀뿌리사이를 통과해나가며 공기를 째는 앙칼진 소음을 량옆으로 뿌렸다.

강태무는 참호우에 놓인 변익수의 손을 한번 잡았다놓으며 《소대장동무, 놈들을 바싹 접근시켜놓고 답새깁시다.》하고 력량상 우세한 적과의 고지방어전에 대한 교범대로 움직일것을 권고했다. 이런 경우에는 조급해하다가 실수하기가 십상인것이다.

그러나 잠시후 강태무는 자기가 공연한 걱정을 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의 곁에 있는 변익수는 조급해하기는커녕 얼마나 성격이 늘어졌는지 마라초를 말아 슬슬 연기를 피워올리고있는것이였다. 참호안을 돌아보니 다른 경비대원들도 탄창을 갈아맞추거나 총신에 기름걸레질을 하고있는 등 셈평좋게 늘어앉아있는것이였다.

100메터, 80메터…

이제는 그가 괴뢰의 사관학교에서 배운 교범의 계선도 지나갔다. 그런데도 변익수는 여전히 사격명령을 내리지 않고있었다.

《소대장, 사격명령을 내리오.》

익수는 아직도 담배를 태우고있다. 그것이 다 탈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듯 했다. 그 담배와 함께 강태무자신의 속도 빠질빠질 타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어쩌자고 이러는것인가. 적을 지나치게 접근시키는것은 심리적으로 볼 때에도 방어하는쪽의 공포의식을 유발시킬수 있는것이다. 그래서 접근전인 경우에도 제정된 공식대로 계산된 수치가 있는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수자는 60메터, 50메터를 가까이 하고있다. 이것은 규범에 대한 란폭한 위반이였다.

강태무는 자기가 불을 놓고 자기가 바빠하는 격이 되여버렸다.

《소대장!》하고 그가 재차 부르짖어서야 변익수는 담배불을 전호턱에 비벼 꺼버리고 지금은 누구도 보지 않고 누구도 보이지 않는 뒤쪽을 얼핏 돌아보고는 권총을 머리우로 쳐들었다.

《동무들, 우리뒤에는 평양이 있다. 장군님이 계신다.》하는 단순하고 명백한 알림문에 이어 사격구령을 내렸다.

불줄기들이 쏟아져내렸다. 강태무도 적들을 향해 죽음을 무릅쓰고 총탄을 쏘아댔다.

근거리에서 내리쏘는 경비대의 첫 타격에 적들의 산병선이 기여가는 뱀처럼 이리 구불 저리 구불해졌다.

그냥 밀고나오는 우둔한 놈이 있는가 하면 무춤 멈춰서는 동요분자도 있고 뒤걸음치든가 홈타기에 몸전체를 구겨박는 약삭바른 놈도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적들의 무리 여기저기서 무서운 불기둥이 치솟아올랐다. 뒤계선에 배치되였던 아군곡사포가 적들을 타격하는것이였다.

적들의 산병선은 순식간에 없어지고말았다. 바위와 홈타기들에 들어배겨 아무곳에나 막 쏴갈기는 산발적인 총성만이 울릴뿐이였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자 적장교들이 먼저 얼굴을 들고 사병들을 위협하여 공격에로 내몰았다. 그러나 몇발자국 내짚지 못하고 다시 구령을 치는 변익수의 새된 울부짖음과 함께 경비대원들의 총구에서 사정없는 불줄기들이 쏟아져나와 비탈면을 휩쓸었다.

두어놈의 장교가 뻐드러지자 벌써 적들속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방향을 못 잡고 허둥거리는것이 알렸다.

잠시후 놈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내버리고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개 중대밖에 안되는 아군에게 밀리워 한개 련대력량의 적들이 퇴각을 시작한것이다.

강태무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서뿔리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이것은 다만 첫번째 전투 아니, 전투의 서곡에 불과한것이였다.

《분대장들, 손실을 보고하고 진지를 빨리 보수하시오. 부상자들은 위생소로!》

(어쨌든 이것은 기적이다!) 하고 강태무는 생각했다. 전사자는 없고 경상자가 한명 있을뿐이였다. 병사들은 사기가 충천했지만 별로 그것을 내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응당히 있어야 할 일이 일어난듯 응당히 겪어오던 일을 또 한번 겪었다는 범상한 표정으로 무너지고 파헤쳐진 진지들을 보수해나갔다.

강태무는 불과 며칠전부터야 《우리 사람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전의 이북 경비대원들의 모습을 자못 신비스럽게 둘러보았다. 이렇게 배심이 좋고 죽음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듯싶은 사람들을 당해낼 적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강태무는 이들의 상관으로서 《동무들, 장하오!》하는 축하를 해주고싶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병사들에게 비웃음거리로 될것만 같아 그만두고말았다.

(내가 만약 오늘 여기서가 아니라 이전처럼 저편에 서서 전투에 참가했었다면 이런것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한개 중대와 한개 련대라는 복잡하지 않은 계산상대조가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처럼 께름한 트림을 자아내군 하던 증상이 차츰 사라져갔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기에는 아직 멀었다.

잠시후에 재차 시작된 적들의 포사격밀도는 처음보다 곱절이나 더 조밀해진것이였다.

첫 포탄에 벌써 대원 한명이 중상을 입고 전호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양을 보던 강태무는 저도 모르게 어금이를 으득 갈았다. 전쟁을 도락으로 삼는 인간아닌 야수들에게서 우리 경비대원들이 흘리는 피값을 천백배로 계산하여 받아낼 결심이 솟구쳐올랐다.

산병선을 지은 적의 서렬을 보면 방금전보다 곱으로 증강된 병력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적들의 서렬 제일 뒤쪽에서는 굴뚝같은것들이 한줄로 서서 펑끗펑끗 불꽃을 일으키고있었다. 적들이 끌어다놓은 박격포였다. 흉장을 통채로 날려보내며 포탄들이 앞뒤에서 터졌다. 적들은 100메터주로에 나선 륙상선수들처럼 마구다지로 내달려왔다.

《동무들! 한치도 물러서지 말라!》

강태무는 쓰러진 경비대원이 잡았던 보총을 틀어쥐고 적들에게 증오의 총탄을 날려보내였다.

《음… 어머니…》

곁에서 사격하던 또 한 전사가 어머니를 부르며 전호턱에 얼굴을 박았다. 강태무는 그를 잡아내리고 상처를 봐줄새도 없었다.

적들이 벌써 코앞에까지 접근했던것이다. 그래도 물러서서는 안되였다. 공격과 방어에서의 력량상대비를 놓고 승리냐 패배냐를 미리 가늠하던 강태무의 리성적인 계산척은 이미 부서져나갔다. 변익수의 말처럼 우리뒤에는 평양이 있고 장군님이 계신다. 괴뢰의 계급장을 달고 동족에게 총부리를 내댔던 이 불민한 인간도 투쟁속에서 검열된 자신의 혁명동지로 믿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던 장군님의 후더운 맥박이 전호가의 흉장을 두드리고있다. 떠나는 남편앞에서 눈물을 짓씹어 감추던 사랑하는 안해의 애원서린 눈빛이 등을 떠밀고있다.

물러서선 안된다. 물러설 자리가 없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나는 더는 안해와 만날수 없게 될것이다.

파편에 모자가 날아나고 머리쪽 어디선가 끈적끈적한것이 꾸역꾸역 새여나와 이마를 뜨끈하게 달구는듯싶더니 속눈섭에 빨간 액체가 맺혀 눈을 흐리게 했다.

피가, 나의 피가, 우리의 피가 네놈들때문에 흐르고있다. 피에는 피로써 대답하리라. 네놈들은 이 강태무가 어떤 인간인가 아직은 모른다.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때문에 여기 섰는지 모르고 덤벼든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 고지로는 절대로 못 오른다.

《이놈들아! 어디 맞아봐라!》

수류탄고리를 벗기고 팔을 힘껏 휘두르는 순간 누구인가 뒤에서 그를 잡아끌었다. 첫순간에는 전호의 한구간이 돌파되여 참호에 뛰여든 적병이 목을 조이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백병전을 벌릴 자세로 달려든 《놈》을 떠박지르고 돌따서는데 적이 아니라 변익수였다.

《뭐요?!》

《중좌동지, 빨리 철수하랍니다.》

《오, 알겠소.》

무슨 말인지 듣지도 않고 돌아서다가 한순간이 지나서야 무작정 변익수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뭐, 철수라구?》

강태무는 이것이 변익수가 자의적으로 고안해낸 생각이 아닌가 의심했다.

《동무도 소대장인가? 우리뒤엔…》

변익수가 대원들에게 웨치던 말을 반복하려다가 그를 뿌리치는것으로 그 말을 대신했다.

《안되오, 우린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어야 하오.》

《죽으라는것이 아니라 철수하라는 명령입니다.》

《누구의 명령이라구?》

《중대장동지의…》

변익수는 말끝을 흐리더니 급기야 강태무의 팔을 세괃게 움켜쥐였다.

《중좌동지가 가서 좀 제기해주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물러섭니까?…》

보매 변익수도 철수라는 말에 얼혼이 나간 상태였다.

《아니요. 이건 도중에서 혼돈된게 분명하오. 련락병이 타박상을 입지 않았소?》

강태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중대장이 싸우는 우측계선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붕대를 든 위생병과 맞다들려 이마를 싸매주겠다고 하는것을 거칠게 밀어내고 교통호밖으로 뛰여나가 목적지까지 직선으로 단숨에 가로질러갔다.

도착해보니 중대장 역시 전화통을 붙잡고 울분을 토로하고있었다.

《대대장동지, 우린 더 싸울수 있습니다. 부상자가 좀 있을뿐 전사자는 한명도 없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 뭐라구요?! 상부의 명령? 도대체 어느 상부란 말입니까?》

실망해서 전화통을 내려놓으려던 중대장은 강태무를 띄여보더니 일루의 희망을 걸고 송수화기를 다시 움켜쥐였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잠간… 여기 강태무중좌동지가 와있습니다. 그와 전화를 바꾸겠습니다… 예?!… 아, 전화를 바꾸겠다지 않습니까? 예?!》

왜서인지 중대장은 전화를 바꾸어주지 않고 그냥 내려놓았다.

《후― 답니다. 중좌동지가 직접 책임지고 신속히 철수하라는겁니다.》

《어디 내가 다시 걸어보기요.》

강태무가 전화통을 움켜쥐자 중대장이 가로막았다.

《그만두십시오. 우리 대대장은 한번 아니 하면 다입니다. 지금껏 별의별 소릴 다 했습니다. 헌데…》

철수는 피할수 없었다. 명령에는 복종만이 따라서야 한다는것을 강태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참을수가 없었다.

변익수와 소대원들을 온갖 미사려구와 갖은 험구들을 다 동원하여 겨우 설복시키고 고지에서 신속히 철수해내려온 다음 강태무는 중대장과 함께 대대장엄페부로 달려들었다.

그렇다! 그저 간것이 아니라 달려들었던것이다.

《대대장동무, 어찌된겁니까? 누가 철수하라고 했습니까? 리유는 무엇이구요?》

대대장은 지도우에 코를 박다싶이한 얼굴을 들지도 않았다.

《이건 려단장동지의 명령입니다.》

《!…》

예상했던 반응이 없어서인지 대대장은 해쓱해진 낯을 힐끗 들더니 턱짓으로 전화기를 가리켰다.

《못 믿겠으면 전화를 걸어보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부부장동지네가 무사히 도착하면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강태무가 중대장의 옆구리침에 밀리워 송수화기를 들었다. 려단장을 찾았다.

《오, 내 최현이다! 뉘기야? 강태무? 무사했는가?》

《려단장동지, 무슨 일인지 좀 설명을 해주십시오. 왜 철수하라고 했습니까?》

《그건 아직 나도 몰라, 그저 상부의 명령이라는것밖엔…》

《도대체 상부라는건 누구를 말하는겁니까?》

《중좌! 당신은 아직도 우리 상부가 누군지 몰라?!》

최현이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수화기의 진동판이 징징 울었다.

《똑똑히 들어라! 이건 장군님의 명령이야.》

《!…》

장군님께서 명령하시면 우리는 리유를 묻지 않고 집행부터 해야 돼. 헌데 동문 나한테 리유를 물어?》

상대쪽에서 송수화기를 탕 내려놓는 소리가 고막을 쩡 울렸다.

중대장이 무슨 말을 하더냐고 어깨를 잡아흔들며 물었지만 강태무는 귀박죽에 가해진 충격으로 하여 처음 한동안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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