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7 장

26

 

김구는 요즘 이상한 고독감이 때없이 자기의 넋을 배회하는것을 느끼군 하였다. 평양방송으로 조국전선을 결성할데 대한 남조선민전의 제의가 보도되고 련이어 이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북조선민전의 회답서가 나온 때로부터 사흘이 멀다하게 찾아와 평양에서 진행하는 조국전선결성식에 참석하여야 한다고 해설하고 설복하던 리병우도 발길을 끊었다. 김구는 그 원인이 자기자신에게 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자신이 직접 리병우에게 조국전선결성은 남북좌익의 련합이라고 찍어말해주며 거기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립장을 밝혔던것이다. 리병우가 그때 몹시 분개해하다가 돌아갔는데 모름지기 가까운 지기인 성시백에게 그날로 찾아가 전달해주었을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성시백도 자신을 바로보려 하지 않을것이다.

김구는 조국전선결성문제를 놓고 자기가 지나치게 제 생각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김구가 아직까지도 평양의 조국전선결성에 참여할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는것은 《유엔조선위원단》에 대한 의존심이 새롭게 자라나기도 했거니와 조국전선결성이 나라의 평화통일운동에 주는 영향력에 대한 회의심이 갈마들었기때문이였다.

평양방송으로 북과 남의 정당, 사회단체들의 조국전선결성움직임이 매일이다싶이 보도되고있는 오늘날에 와서 남조선에 있는 우익민족주의단체들속에서는 여러가지 소문이 떠돌고있었다. 북반부에서 자기들에게 리익이 될 때에만 협상과 타협, 통일에 대하여 제의한다느니 조국전선결성은 남북좌익통일전선결성을 의미하는것이지 민족통일전선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라느니 조국전선결성에 참여할 남조선대표들의 입북이 어려울것이라느니…

물론 김구는 이런 소문을 다 믿지는 않았지만 조국전선결성에 참여할 남조선대표들의 입북이 어려울것이라는데 대하여서는 관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이 《신한국》의 권력을 쥐고있는것은 미국인들을 등에 업은 리승만이였고 리승만이 등에 업고있는 미국이였다. 정치가는 진리와 정의의 대변인이 되여야 한다는것은 사춘기학생들의 력사이야기책에나 나올수 있는 순진한 기대이고 실지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식의 강권에 의하여 움직이는것이 서울정계의 본태였다.

지난해 리승만의 단독《정부》조작음모를 분쇄하기 위하여 진행된 남북련석회의가 민족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기고 북남조선인민의 총의에 받들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과 같은 거대업적의 기반으로 된것은 사실이지만 리승만의 단독《정부》는 미국의 비호조장밑에 끝끝내 조작되였던것이다.

김구는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자면 결정적으로 남조선에서 미국의 세력을 몰아내야 한다는것은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여 명백히 깨달았었다. 그러나 조국전선결성만 가지고는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침투를 막아낼수 없다고 보았다.

김구는 남조선에서의 미국의 전횡을 막아낼수 있는것은 유엔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민족자체의 력량을 키워야 한다는 김일성장군님의 자주적립장에 공감하였으나 그 력량을 미국과의 직접적인 정치투쟁에 돌릴것이 아니라 유엔과 같은 국제사회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써먹어야 미군의 철퇴나 남북협상도 이루어질것으로 판단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럴바에는 한국독립당이나 조소앙의 사회당이나 김규식의 민족자주련맹이 리승만으로부터 민전과 같은 좌익정당으로 평가받아 비법화될수도 있고 테로의 희생물이 될수도 있는 조국전선결성참여보다는 보다 안전한 지름길로 보아지는 《유엔조선위원단》과의 사업에 더 힘을 넣어야 할것 같았다.

김구는 자기의 한국독립당이나 통일촉진협의회가 국민들속에서의 지지는 일정하게 획득하고있으나 미국의 지지를 받는 리승만과 정면으로 싸울수 있는 권력은 가지고있지 못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때문에 평양의 조국전선결성에 참가하는 경우 미국이나 리승만으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게 되겠는지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김규식도 한국민주당과 《대한》국민당이 련합하여 《민주국민당》이라는 야당세력을 형성하자 자기의 권력지반을 닦기 위해 새로 발족한 민주국민당의 신익희, 리청천 등과 교섭을 하여 그 당수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하였던것이다.

물론 김규식의 그 공상은 자금사정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구는 자기가 위원장으로 있는 통일촉진협의회내에서 김규식과 같은 제딴의 새길을 모색하는 인물들이 계속 련발하는것을 막기 위해서도 《유엔조선위원단》을 통한 남북의 협상을 빨리 추진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지금단계에서 한가지 명백한것은 《유엔조선위원단》이 남조선에서의 미군의 철퇴를 더는 어쩔수 없는 일로 여기고있다는것이였다.

《유엔조선위원단》에서는 이미 미군이 철퇴한 다음 남북정당사회단체협의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도록 승인할 의사도 가지고있는듯 했다. 그 대가로 《유엔조선위원단》이 입북하여 북조선의 여러 지역들에서 쏘련군이 정말 철수했는지 직접 확인해보아야겠다는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이 요구를 들었을 때 김구는 귀가 버쩍 열리는듯 했다. 쏘련군이 북에서 철수한것은 사실임에 명백하니 《유엔조선위원단》을 서울에서 평양으로 곧장 북상시켜 그 사실을 확인하도록 한다면 그들이 리승만단독《정부》를 불허하고 남북간의 평화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남북총선거에 적극적으로 응할수 있으리라 타산하였던것이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성시백은 분노하여 김구의 생각을 힐책하였다.

우리가 남북련석회의때 그저 리승만이나 미국이 미워서 단독《정부》를 결사반대한것은 아니지 않는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 남의 집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와 감놔라, 배놔라 훈시하는것이 벌써 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란폭한 침해행위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평양의 조국전선결성은 외면하고 이전날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후신에 불과한 《유엔조선위원단》을 평양에까지 끌어들이자고 하니 이것이 남북련석회의정신과 김일성장군님의 민족자주리념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 …

그 말을 듣고 김구는 가슴이 섬찍했었다. 그런 좋지 못한 언쟁이 있은 뒤부터 성시백도 리병우도 더는 김구를 만나려고 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내가 정말 배반을 한다는것인가?)

김구는 일단 한번 흥분하여 제딴의 곬을 발견하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거기에만 정신없이 집중하는 자신의 고질적인 정치방식이 이 복잡한 시국에 익숙되기에는 많은 부족점을 내포하고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여전히 조국전선결성에 대하여서만은 참가를 결심하지 못하고있었다.

(고목생화라고 했지. 정말 늙은 나무에도 꽃이 필수 있을가? 늙은 나무에는 꽃이 피여도 늙은 사람에게는 청춘의 정력이 찾아올수 없지.)

김구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며 창가에 피여있는 아름다운 노란색초롱꽃을 바라보고있었다.

맏며느리인 안미생이 시아버지가 늘 젊어있으라고 집안의 기물인 비취색고려자기꽃병에 꽃이 질세라 철을 따라가며 여러가지 꽃을 늘 꽂아넣군 하였다.

아마도 지금은 초롱꽃이 피는 계절인듯싶었다. 아름다운 비취색자기에 꽂혀있어 꽃이 더 황홀하게 보이는듯싶다. 김구는 창가로 다가가 꽃향기를 오래동안 들이켰다. 그러다가 마당으로 가로질러가는 아들 김신을 보고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뜻이 달라 평소에 사이가 좋지 못했던 아들이였지만 가슴을 야릇하게 긁어내는 불안감과 고독감속에 홀로 잠겨있자니 그에게라도 의지해보고싶은 마음의 충동이 부쩍 동했던것이다.

괴뢰군에서 장교로 근무하는 아들 김신이 오랜만에 부친의 부름을 받고 웬 영문인가 하여 의혹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들어오자 김구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나서 최근 《국방부》의 동향이 어떤지나 좀 들어보자고 하였다.

김신은 한숨부터 풀 내쉬였다.

《거 뭐 말이 아니지요. 강태무, 표무원의 의거입북사건때문에 요즈음은 매일처럼 마주앉아 책임전가를 하느라 싸움질이지요. 참모총장 리응준이 이미 그 책임을 지구 면직된것은 아버님도 알고계시겠지요?》

《그래, 만주에서 왜놈장교노릇을 하던 채병덕이가 그 자리에 대신 올라앉았다구 하더라.》

《며칠전엔 국방장관 신성모와 내무장관 김효석이 한바탕 붙었댔습니다. 신성모장관이 올해에 들어와 두번이나 있은 송악산전투에서 경찰력량이 전혀 맥을 추지 못했다고 하며 이런 완전무용의 경찰은 38선에서 전부 철수시키고 국군으로 대치하겠다고 하자 김효석장관이 책상을 치며 뛰쳐일어나 금번 춘천에서 800명, 홍천에서 500명의 국군이 월북해들어간것을 트집잡아 신장관을 맹렬히 비난했지요. 국방부의 미국인고문 하우스만은 또 그대로 1려단이 전번 송악산전투때 인민군을 400명이나 사살했다고 하는데 정작 알아보니 현지에서 한구의 인민군시체도 찾아낼수 없었다면서 결과가 없는 허보만 거듭하는 김석원려단장을 당장 파면시키겠다고 펄펄 뛰였습니다.》

김구는 아들의 말을 들으며 김일성장군님의 로숙한 정치군사적자질과 령도능력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경탄하였다. 이러나저러나간에 북조선이 리승만의 《대한민국》과는 정치적으로도 군사경제적으로도 대비가 되지 않게 강한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확실히 북조선은 강대한 나라야. 민족적긍지가 생기거던. 너도 이젠 그걸 인정하지 않을수 없겠지? 어디 솔직히 말해봐라. 넌 지금까지 이 아비가 한사코 대세의 흐름을 역행한다고 해왔는데 그래 북이 강한 나라이고 민족자체의 힘으로 강자가 된 그런 정치에 공감하게 되는것을 부정할수야 없겠지? 이젠 북에서 쏘련군대도 전부 철수한 뒤야. 그러니 북의 강대성이 쏘련의 힘에서 오는것이 아니라는것도 명백하게 알릴테지?》

김구는 혹시 반공리념을 버리지 않고있는 아들 김신의 객관적이고 랭정한 대답을 통하여 조국전선결성에 참여할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받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물어보았다.

아버지의 범같은 성질을 잘 알고있는 김신은 그가 제편에서 먼저 의견을 물어오는것을 좋은 기회라고 여겼는지 군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여 아들다운 친근한 태도로 담배를 권하였다.

《하지만 아버지, 제 여쭈는걸 좀 들어보십시오. 한국군의 뒤에는 미군이 있고 한국의 뒤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북조선이 한국과 평면으로 대비해볼 때 강한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라는 배경과 대비해볼 때에는 닭알과 바위격이지요. 송악산전투에서 두번이나 실패한 다음 국방부에서는 미군의 지원밑에 38연선과 그 주변에 주둔하고있던 국군려단들을 전부 사단으로 승격시켰습니다. 1사단장에는 김석원대령, 2, 3사단장에 류승렬, 최덕신, 5사단장에 송호성, 6사단장에는 류승렬의 아들 류재홍, 수도사단장에는 리준식… 말하자면 한국군의 능력있는 중진들이 모두 38선경계에 동원되였습니다. 미국은 남조선은 물론 북조선도 끝까지 놓치려 하지 않습니다. 제 늘 말씀드리는것입니다만 대세를 명백하게 보아주십시오. 조선엔 미국과 맞서싸울만 한 정치적능력도 물리적힘도 없습니다. 하잘것 없는 백성들의 지지따위에 잔신경을 쓰지 말고 이제라도…》

역시 아들도 《한국군》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렬등감은 느끼고있으면서도 미국의 힘에 대한 환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김구는 꺼질듯이 한숨을 내쉬며 아들의 말을 가차없이 잘라버렸다.

《그만해라.》

그리고는 나가라고 손을 홰홰 내저었다. 김신이 모처럼 마련된 기회를 놓치고싶지 않아 더 바싹 다가앉으려 하자 화를 벌컥 내였다.

《날더러 민족반역자가 되라는거냐? 이 김구는 반공도 련공도 다 애국애족을 위해 하는거야.》

《아버지…》

《나가라는데, 후레자식같으니!》

아들이 밸을 부리며 뛰쳐나갈 때 울리던 군화발소리가 오래도록 김구의 귀전에서 맴돌았다. 김구는 걸상에 등을 맥없이 기대고앉아 여전한 모양으로 창가에 피여있는 초롱꽃과 그것을 소중히 품안고있는 자기병을 바라보았다.

(물을 주어야겠군. 꽃병에 물을 넣어주어야겠어.) 하고 그는 생각하고있었지만 끝내 물을 주려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못했다.

며칠후 김구는 비서 한명을 리병우에게 보내여 남조선의 다른 정당단체들의 조국전선결성호응여부를 알아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김구는 《대한》로총, 자주학련, 《대한》정의단, 자주청년동맹, 민족해방청년동맹, 건국청년회, 농민당, 담수회(기자조직), 불교련맹 등 적지 않은 정당, 사회단체들이 평양에서 진행되는 조국전선결성을 두고 흥분하여 거기에 참여할 열의로 들끓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심지어 김구의 한국독립당내부에서도 조국전선결성식에 참가하자며 당수도 모르게 대표들을 선출하고있었다.

그런데 리병우나 성시백은 왜 침묵을 지키는가. 이전같으면 조국전선결성에 참가해야 한다고 열두번은 더 찾아와 해설하고 설복하고 질책했을 그들이였다. 혹시 정말 이젠 그들이 이 김구라는 사람에 대하여 환멸을 느낀것은 아닌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김구는 이제라도 그들이 또 평양으로 가야 한다고 설복하러 올가봐 두려웠다. 김구는 자기가 직접 평양에 가는것만은 끝내 결심할수가 없었다. 그런 경우 김구자신은 물론 한국독립당도 미국과 리승만의 가혹한 탄압으로 어떤 손실을 당할지 알수 없었다. 김구는 평생을 바쳐 벌려온 정치투쟁무대에서 그렇게 맥없이 스러지고싶지는 않았다. 김규식이나 조소앙도 이런 리유로 하여 북행결심을 선뜻 못 내리고있을것이다.

김구는 《국회》로 하여금 《유엔조선위원단》과의 사업을 다그쳐 미군철거를 하루빨리 마무리지을 제딴의 계획에 잠겨있었다. 그래서 《국회》소장파의 중심인물로 활동하던 리문원이라는 《국회의원》을 이튿날 경교장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리문원은 김구의 한국독립당 중앙위원이였고 성시백과도 깊은 연고관계가 있는 사람으로서 지난 시기 두차례나 있은 《국회》내에서의 미군주둔반대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었다.

그런데 다음날 김구는 서울 사찰계의 거두인 합동수사본부의 오제도가 리문원을 비롯한 《국회》 소장파 인물 3명을 체포구금해갔다는 놀라운 소식을 받게 되였다.

드디여 리승만이 김구를 비롯한 남북협상파세력과 미군주둔반대파들에 대한 보복을 개시했던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은 김구의 한국독립당과의 연고관계가 아니라 남조선로동당의 《프락찌야》라는 리유로 체포되였다.

급기야 김구는 자기가 계획하고있던 《국회》나 《유엔조선위원단》과의 사업도 역시 리승만이나 미국으로부터 어떤 무서운 보복을 당할지 알수 없는 위험한 일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러나 《유엔조선위원단》이 서울에 눌러앉아있는 이상에는 리승만이 감히 이 국제기구의 면전에서 한국독립당의 당수이고 남북협상파의 중심인물이며 통일촉진협의회의 위원장인 자기에 대하여서는 함부로 어쩌지 못하리라는 제딴의 위안을 애써 하며 번져가는 대세를 잠시 지켜보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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