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6 장

23

 

쾌청한 날씨였다. 아득한 멀리 들판 한끝에서 가까이 다가가 팔을 뻗치면 손에 잡힐듯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피여오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며칠전에 있은 2차송악산방어전투에 대한 총화를 지으시려고 3경비려단지휘부를 찾으시여 최현을 비롯한 려단안의 지휘관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만약 리승만의 괴뢰군이 송악산과 같은 교두보적의의를 가지는 38도선의 거점들을 손쉽게 장악한다면 오만방자해져 우리의 힘을 얕보고 전면적인 무장침공을 단행할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미제는 그것을 좋은 구실로 삼아 미군을 철수시키기는커녕 더 많은 력량을 남조선에 끌어들여 리승만의 《북벌》행동을 지원해줄것이고 통일의 날은 그만큼 더 멀어질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동족간의 분렬과 전쟁을 기어이 고취하려는 미제와 괴뢰군부의 음모를 그 시초에 분쇄해버리자면 송악산을 비롯한 38도선초소들의 방어를 강화해야 하였기때문에 시간을 바쳐가며 초소방어에서 나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품들여 가르쳐주시였다.

회의를 끝내시고나서 그이께서는 최현과 함께 밖으로 나오시였다. 최현과 나란히 걸음을 옮기시며 그이께서는 방금 회의에서 론의된 문제들을 집행할수 있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더 주시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난해 9월 룡당포에 나가시였을 때의 일이 화제에 올랐다.

그이께서는 그때 미군놈들때문에 식당근무처벌까지 받았던 변익수를 비롯하여 그곳 경비대원들의 안부도 물으시였다.

《그때 듣자니 익수는 고향에 애인도 있다고 하더랬는데 최현동무가 책임지고 잔치도 잘 차려주오. 안해가 생기고 가정이 생기면 아마 백배나 더 용감해질거요. … 아니, 최현동무, 갑자기 왜 그러오?》

그이께서는 까닭없이 심드렁해지는 최현의 기색을 의아쩍게 살피시였다.

《실은 그 변익수가 반월이란 체네하고 뭐사니하던것 걷어치우기로 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최현은 장군님앞에서만은 무엇이든 숨기는것이 없었다. 욕먹을 일도 칭찬받을 일도 그대로 드러내야 속이 편해하였다. 그리하여 그동안 변익수의 신상에서 발생한 불쾌한 사건들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씀올렸다.

《체네의 집이 나라사업에 등을 돌려대서 토지몰수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체네본인은 또 몰수된 토지를 되돌려받겠다고 헤덤비다가 해주에서 반동사건에 가담했는데 그 용서를 빌자고 익수가 있는 초소에까지 찾아왔댔습니다. 익수는 너무도 뜻밖의 일인지라 용서를 비는 처녀앞에서 아무런 대꾸도 못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저도 좀 알아보았는데 문제가 있는 집인것만은 사실이였습니다. 군에서 진행하는 관개공사에 낯을 돌리지 않은것도 사실이였고… 그래서 익수가 끝내는 처녀와…》

자기 생각에도 확실히 일이 잘된것 같지 않았기에 최현은 말끝을 흐리며 시선을 떨구었다.

사실 그때 최현은 우정 시간을 내여 송악산초소에 나가 변익수를 만나보기까지 하였었다.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전투문제보다 먼저 38도선초병들의 생활문제를 관심하고계시는데 한 경비대원의 가슴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길 변고가 발생한것이였다.

옛날부터 도적루명은 3대를 따라 물려진다고 했다. 설사 석고명이나 그의 딸이 본의아니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나라에서 준 토지까지 몰수당할 정도로 사회사업에 등을 돌려댔던 그 가정에 들씌워진 혐의는 악성종양의 번식처럼 기를 쓰고 또 자라오를것이라는것을 최현은 누구보다 먼저 직감하고있었던것이다. 잘못은 있지만 그들이 의식적으로 나라를 반역하려고 한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지 않아도 죄책감과 수치감에 억눌려 머리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있을 그들이겠는데 이제 변익수의 버림까지 받는다면 과연 그들의 가슴이 어떨것인가.

최현은 다른 타산보다도 먼저 물에 빠진 사람의 꼭뒤를 누르는것과 같은 짓은 사람이 할짓이 아니라는 단순하고 명확한 생각부터 했다. 그러자 석고명이나 그의 딸에 대한 측은한 동정심이 앞섰고 그래서 송악산 488. 2고지의 정점까지 단숨에 달려올라가서는 참호에서 자기 대원들과 함께 진지작업에 여념이 없던 변익수를 향해 거친 소리부터 내질렀다.

《날 따라와!》

최현은 변익수를 끌고 그늘진 침침한 수림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풀밭에 퍼더버리고앉아 익수를 가까이 불렀다.

《가까이 와 서라, 어서!》

그리고는 따져묻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가? 정말 처녀를 버릴 심산인가, 혹시 이미전부터 어디 다른데 또 봐둔 처녀라도 있지 않느냐? 만약 정말 그렇다면 널 가만두지 않겠다고 매섭게 따지고들었다.

최현의 앞에 차렷자세로 서있는 변익수의 두손이 바지혼솔을 힘겹게 비틀어댔다.

《어째서 대답이 없어? 그래 너는 처음 체네의 무엇을 보고 사랑했니?》

《그건…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였지만 리해는 되였다. 최현자신도 이제 누가 지금의 안해를 무엇때문에 사랑하게 되였는가고 묻는다면 갑자기 할말이 떠오를것 같지 않았다.

《좋아, 그럼 다음문제! 이제 와선 어째서 체네와 그만두겠다는거냐?》

《…》

《대답해봐. 나도 다 알아봤으니 숨길 생각은 꼬물도 하지 말어. 체네의 집이 무스기 아직도 예수교인지 감리교인지 하는걸 믿기때문에 그렇다는 말같지 않는 소린 싹 걷어치우구 솔직히 말하란 말이야. 그래, 토지몰수된것때문에 그래? 아니면 체네가 해주에서 뭣모르고 반동사건에 관여했던것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리유가 있는가?》

《…》

대답이 없는것을 보니 리유는 그뿐인듯 했다.

한줄기의 바람이 밀려와 최현과 익수의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 바람이 날라온 이상한 소음이 숨막힐듯 팽팽해진 분위기에 잠겨있는 두사람의 신경을 자극했다. 최현이 피뜩 돌아보니 커다란 황철나무아지에서 알락딱따구리 한마리가 먹이를 쫏느라 딱딱거리고있다.

그런데 부지런히 딱딱거리는 그 소리가 순수 먹이를 쫏는 소리같지는 않았다. 일반적으로 딱따구리가 나무통을 두드리는 소리는 먹이탐색에도 목적이 있지만 자기 세력권확장이나 특히는 암컷을 부르기 위한 수단으로도 많이 쓰인다고 했다. 그렇게 놓고보면 저 딱따구리가 모지름쓰며 내는 소리는 사랑을 구하기에는 지내 직선적이고 뻔뻔스러운데가 있는것 같았다.

《그럼… 그럼 전 어쩌면 좋습니까. 그래두 이젠 명색이 경비대 소대장인데 그런 처녀를 무작정 용인하고 그저 좋게 지낼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벌레를 잡아먹는 리로운 새라고 해도 계속 듣자니 딱따구리소리가 여간 귀찮지 않았다.

최현은 귀박죽에 벌떼라도 달라붙은듯 손을 홱 내저었다.

《뭐, 경비대 소대장이기때문에? 그러니 공화국경비대의 명예때문이라? 그거 정말 기특한 생각을 다 했구만.》

최현은 허파에 찼던 큰숨을 헉 내쉬였다. 익수에 대한 분노로 하여 목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최현은 경비대명예를 내걸고 제 속심에 분칠을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진정으로 분노했을 때 그러하듯 그의 두툼한 눈섭이 또아리를 틀기라도 할것처럼 꿈틀거렸다.

《도대체 뭐가 명예라는거냐? 일껏 좋아하다가 무슨 문제가 생겼다니까 서슴없이 내팽개치는 그런게 명예야? 앞으로 그런 식으로 맡은 임무도 훌 집어던지지 않는다구 누가 장담해? 우린 빨찌산시절에 그런 식으로 사랑을 하지 않았어. 설사 한사람이 루명을 쓰고 처형되여도 사랑만은 간직했어. 사랑이란 바로 그런거야. 바위같이 굳건한것이지 삭정이처럼 부서지는게 아니란 말이야.》

최현은 부르쥔 주먹을 익수의 눈앞에 대고 위혁적으로 흔들었다. 그는 익수에게 우선 처녀를 찾아가 용서도 빌고 위로도 해주라고 을러메듯 말하고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우점만이 아니라 결함도 품어주고 과오도 고쳐주는것이 바로 사랑이야, 알겠는가?》

최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힝힝 황소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려는것인지 무엇을 하려는것인지도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걷기만 했다.

그후에는 익수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때로부터 며칠후에 적들의 2차송악산침공이며 강태무, 표무원대대의 의거입북사건을 비롯한 중대사변들이 련이어 벌어지는 바람에 최현은 익수의 문제에 대하여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했던것이다.

《그동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연하신 안색으로 최현의 두툼한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시였다. 길을 잘못 잡았는지 앞에 길길이 자란 잡초밭이 나타났다. 그중에서 제일 길게 자란 풀대를 손을 휘저어 뽑아드시고 토막토막 끊어나가시였다.

최현은 그이께서 상심하시는 모습을 대하기가 괴로왔다. 그래서 모든것은 자기의 잘못이라며 얼결에 그이의 앞에서 익수를 두둔해나섰다.

《아마 익수도 제딴에는 고민이 컸던 모양입니다. 헌데 그 처녀의 부모들이 사회사업을 등한시하면서 믿을것은 예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례배당만 찾아다니니…》

김일성동지께서는 즉석에서 최현의 말을 반박하시였다.

《례배당소린 꺼내지도 마시오. 부모가 신자라고 동요할것 같으면 애당초 그런 집의 딸을 사랑하지부터 말았어야지. 그래, 우리 당이 언제 종교인들을 적대계급으로 규정하고 타도한적이 있단 말이요? 그건 한갖 구실이요. 이거야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지 비단을 씌운 굴레는 뭐 굴레가 아니라는거요?》

《…》

물론 그이께서는 자기 병사를 두둔하려고 하는 최현의 심정을 모르는바가 아니시였지만 이 문제를 그저 스쳐넘길수 없으시였다.

최현은 얼굴이 벌개져 고개를 떨구었다.

그이의 손에서 비틀리운 풀대들이 토막토막 끊기여 계속 땅바닥에 떨어져내렸다.

《정말 이런 일이 있을줄은 몰랐댔구만. 옛날부터 싸움은 말리고 혼사는 붙이랬는데 여기 경비대라는데선 붙어있던 혼사마저 파탄시키고있단 말이요. 이게 단순한 혼사문제로 그칠 일인가. 이제 그 처녀가 설음과 울분을 이기지 못하여 타락의 진창속에 빠지면 사람들은 어려울 때 그를 차버린 그 소대장을 욕할것이고 우리 경비대를 욕할것이요. 더우기 처녀의 부모들이 신자들이라니 나중엔 종교인들에 대한 우리 당과 인민정권의 시책에 대한 의심까지 품을거란 말이요. 그러니 이게 나라의 통일단결을 좀먹는 해독행위와 다를바 없지 않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량손을 허리에 얹고 주변을 거니시며 최현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 엄중성을 까밝히시였다.

《옛말에도 근원(남녀간의 애정을 뜻하는 말) 벨 칼이 없고 근심 없앨 약이 없다고 했소. 어제까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사랑을 무슨 일이 좀 있다고 해서 서슴없이 저버리는 그런 랭혈을 가지고 이 38도선은 어떻게 지키는가! 최현동무, 동무는 나와 같이 30년대 유격구를 휩쓸었던 〈민생단〉바람도 헤쳐보지 않았소. 그때 남편이나 안해가 〈민생단〉에 걸려들자 저 하나 살겠다고 갈라지겠다고 한 동무들이 있었소? 믿음은 충신을 낳고 의심은 배신을 낳는다는 피의 진리를 실지체험으로 겪어본 동무는 왜 변익수를 끝까지 쫓아가 처녀의 곁에 떠밀어보내지 못했소?》

장군님…》

최현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듯 부르르 떨려났다. 고동색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해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이 지금 최현에게 너무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시였다. 사실상 따져놓고보면 최현의 잘못으로 일이 저질러진것은 아닌것이다.

38도선의 경비사업을 책임진 려단장으로서 관하부대의 한 평범한 소대장의 사생활에 대하여 그런 정도로까지 알아보고 속을 썩였다는것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것도 사실이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누구보다 믿는 동지이기에, 또 인간적으로나 지휘관으로서나 누구보다 더 완성되고 세련되기를 바라시였기에 지나친줄 알면서도 할말을 끝까지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신것이였다.

《난 이것을 단순한 애정문제로 보지 않소. 한번 다진 약속에 대한, 신의에 대한 문제요. 한 혁명동지에 대한 다른 혁명동지의 책임성에 관한 문제이며 우리 당의 통일전선정책에 대한 관점과 태도문제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께서는 그토록 아끼고 믿어주고싶으시여 해주사건때 내무원들을 시켜 신변보위까지 하도록 특별히 강조해주었던 처녀가 애인이란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억이 막히시였다.

《변익수를 데려오시오. 만나봐야겠소.》

최현이 보기에 그이께서는 석고명의 개인주의적인 태도나 그 딸의 반동단체가담문제같은것에는 주의조차 안 돌리시는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반월의 반동단체가담사건의 전말은 그이께서 이미전부터 최현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고계시는 문제였던것이다.

지금 그이의 분노는 다른 곬을 타고있었다.

《부관, 금천으로 갑시다. 거기 위원장도 만나야겠소.》

그이께서는 빠른 걸음을 옮겨 차있는데까지 이르시더니 차문을 열어젖히시였다. 성급하게 발동을 거는 승용차안에서 그이의 격노한 웨침이 흘러나와 최현의 고막을 후려쳤다.

《땅을 몰수하다니!》

 

x

 

최현의 뒤를 따라 허겁지겁 달려온 변익수가 온몸이 땀주머니가 된채 말에서 뛰여내려 다가갔을 때 김일성동지께서는 리룡진을 비롯한 황해도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금천군으로 들어가는 큰 길가에 서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장을 보러갔다가 마을로 돌아간다는 한 늙은 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계시는중이였다.

뜻밖에도 이렇게 길가에서 장군님을 뵈옵게 된것으로 하여 어쩔줄 모르고있는 녀인의 머리우에 얹어져있는 커다란 보따리를 손수 내리워주시며 그이께서는 장마당엔 무슨 일로 갔댔느냐고 친절히 물어주시였다.

최현에게 등을 떠밀리워 몇걸음 나선 익수가 후두둑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경례를 올렸지만 그이께서는 본척도 하지 않으시고 녀인과만 이야기를 계속하시였다.

《실은 산나물을 좀 사러 갔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녀인에게서 받아 내려놓은 커다란 보따리를 놀랍게 바라보시였다.

《허… 그러니 이게 다 산나물이란 말입니까? 이 숱한걸 해선 뭘하자고 합니까? 집에 무슨 대사라도 있습니까?》

《아니올시다. 실은 제가 게으르다나니 수매계획을 못해놔서…》

《수매계획이요? 그게 얼마나 많기에 장마당에 나가 사다 바칠 정도인가요?》

《저…》

머밋거리는 늙은이가 대답을 올리기 송구해하는것 같아 그이께서는 더 따져묻지 않고 부관에게 자신의 차에 태워 그를 보내주라고 지시하시였다. 깜짝 놀란 녀인은 기겁을 하며 자기는 이젠 마을에 거의다 왔으니 차를 탈 필요가 없다며 두어걸음씩이나 닁큼 물러섰다. 녀인이 하도 완강하게 사양하는 바람에 그이께서도 어쩔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녀인의 두손을 잡고 좋은 세월에 건강하여 자손들이 잘 자라는것을 오래도록 봐야 한다고 따뜻이 이르시고는 그를 돌려보내시였다.

《수매국이 농민들한테서 산나물까지 걷어들이오?》

그가 사라져간쪽에 그냥 시선을 주신채 그이께서 누구에게라없이 물으시였다. 뒤켠에 있던 도위원장이 머밋머밋하며 두어걸음 나섰다.

《네, 고기나 무우오가리, 산나물같은 부식물도 수매하여 받아들이고있습니다. 그러면 농민들이 자체부업으로 마련한 그러루한것들을 가지고 보다 필요한 다른 물건들로 전환할수 있어 호평이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자 그 늙은이의 말은…》

《난 그 수매계획자체를 비판하자는게 아니요. 도대체 그 수매계획은 무엇에 기준하여 세우는거요? 어째서 농민들이 수매계획을 하겠다고 장마당까지 가서 사와야 되는가 말이요. 벌방지대에선 산나물같은것이 산골보다 적게 나는데 수매계획을 일률적으로 내리먹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가. 난 리룡진동무가 농사일에 귀신이라고 불리울만큼 물계를 잘 아는 사람이기때문에 여기 이 곡창지대에 파견했던것인데 이런 불공평한 일을 왜 무작정 받아물었는지 리해되지 않소. 량정은 곧 정치요. 농사를 잘 짓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걷어들이고 보관하고 배급하고 소비하는 모든 공정이 정확한 계획과 타산에 기초해서 진행되지 않으면 한쪽에선 랑비되고 한쪽에선 모자라 쩔쩔 매는 판국이 형성되고 그것이 국가의 정치실현에 막대한 장애를 조성하게 되오. 현물세 문제도 그렇소. 새로 개정된 농업현물세에 관한 법령에는 논에서는 수확고의 27프로, 밭에서는 23프로, 화전에서는 10프로의 현물세를 받도록 되여있소. 그런데 일부 지방인민위원회들에서는 농업현물세를 실지 수확고에 준하여 부과한것이 아니라 현물세량을 일률적으로 할당하는 방법으로 부과하다나니 어떤데서는 현물세를 실지 해야 할 량보다 많이 하고 어떤데서는 적게 하는 현상들이 발로되고있지 않소. 여기 황해도에선 그런 일이 없소?》

《우린 가을걷이때 정권기관 일군들을 농촌마다 파견하여 정확한 수확고를 작성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물세를 거기에 준하여 철저히…》

《동무만 철저해선 뭘하오? 도대체 금천일대에서 추가현물세라는 말이 나온건 어찌된거요?》

《네?!…》

《금천군인민위원장은 아직도 안 왔소?》

장군님께서는 이곳에서 기다리고있던 도위원장을 만나자마자 금천군위원장을 당장 데려오도록 하라고 엄하게 이르시였던것인데 아직도 그가 나타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네, 사람을 데리러 보냈댔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어디 가있는지 알수가 없답니다. 제 인차 또 련락을 보내겠습니다.》

《됐소. 그만하오.》

장군님께서는 뒤에 있던 호위성원들을 둘러보시였다.

《누가 빨리 차를 타고 가서 여기 내무서장을 불러와야겠소, 빨리…》

날파람있게 생긴 호위군관 한사람이 잽싸게 경례를 하고 차있는 곳으로 구보로 뛰여갔다.

《소대장동무!》

《…》

《소대장!》

옆에서 누가 툭 쳐서야 변익수는 그이께서 자기를 부르신다는것을 알았다. 도대체 이 판에 자기를 부르신다는것이 쉬이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는 아까부터 꿈에 취한듯 어리벙벙해있는 상태였다.

《동무가 한번 말해보시오. 동무의 애인이였던 석반월이라는 처녀의 집이 땅을 몰수당한 리유가 뭐요? 말해보오.》

과거의것만을 긍정하는 《애인이였던》이라는 말씀에 변익수는 그이께서 벌써 자기와 반월이 사이의 일을 다 알고계신다는것을 느꼈다. 사사로운 생활문제로 그이의 심중에 본의아닌 부담을 얹어놓았다고 생각하니 입술이 가랑잎처럼 초들초들 말라들었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사실 그건…》

《갑자르지만 말고 어서 말하오. 뭐가 죄송하다는것인지.》

《그건 저… 관개공사때문에 추가적으로 부과된 현물세납부에 등을 돌려대고 게다가 우리 정권기관에 대한 뒤소리를…》

《뒤소리가 아니라 바른소리요. 그가 옳지.》

장군님의 어조가 격해지시였다.

《바로 그것이 세외부담이 아닌가!》

따스한 봄공기가 급기야 얼어드는듯 했다. 귀가 시릴 정도의 쩡한 기운이 그이께서 서계시는 땅에서 피여올라 사방으로 급파되였다.

《추가적인 현물세라구? 그런 부당한 징수에 불응했다고 나라에서 주었던 토지까지 몰수했소! 누가, 무슨 권한으로… 금천군위원장이 제정신이 있는 사람인가!》

일군들의 가슴이 서늘하게 식어들었다.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고 너그러운 아량으로 일군들의 결함을 차근차근 일깨워주군 하시던 그이이시였지만 지금은 추호의 양보나 리해도 허용하지 않으실듯 안광에 분노를 실으시였다.

《누가 관개공사용이라는 명목으로 현물세를 더 받아내라고 했소! 누가 인민들에게서 함부로 돈과 알곡을 수탈해내라고 했는가! 도위원장은 이런 사정을 그래 전혀 알지도 못하고있었는가! 알지 못했다는 그 자체가 그렇게 하라고 추긴것과 다른게 뭐요? 그래 그런 식으로 관개공사를 추진시키라고 누가 추동했소? 나요? 그런 식으로 하는것은 지금 남조선반동들이 벌려놓으려 하는 〈농지개혁〉과 같이 위선적인 행위요. 그런 식으로 할바엔 관개공사는 해서 뭘하고 그런 식의 정권기관을 위해서라면야 품들여 국가를 세울 필요는 또 뭔가! 왜놈들처럼… 왜놈들처럼 인민들을 수탈할바엔 수만의 조선청년들이 만주벌 곳곳에 피를 뿌리며 나라를 해방한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말이요. 룡진동문 해방전에 왜 감옥살이를 했소? 이런 정권을 위해 그랬소?》

격노하신 그이께서는 들판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일군들을 등진 그이의 어깨가 세차게 들먹거렸다.

《더 묻지 않아도 뻔하오. 그 집사람들이 례배당에 다니는 신자들이라니 그래서 더더우기 어디 봐라 하는 식으로 프로레타리아정권의 〈본때〉를 시위했겠지. 또 거기에 발을 맞추어 이 경비대 소대장은 사랑의 약속마저 집어던지고 그 집의 처녀를 차버렸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생기에 넘쳐있던 그 가정이 지금쯤은 절망과 타락의 낭떠러지로 거침없이 굴러떨어지고있을거요. 하지만…》

그이께서는 솟구치는 의분의 충동으로 변익수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시였다.

변익수는 그이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곧바로 날아와 심장을 꿰버리는듯 했다. 몸서리치는 아픔을 예감하며 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버릴수 없소. 예수를 믿든 반동조직에 가담했든 그들은 나의 공민들이고 우리가 목숨바쳐 찾은 내 조국의 인민들이요. 결함이야 있겠지. 그거야 고쳐주면 되는것이구. 부모는 잘났든 못났든 자기 자식을 버리지 않소. 못난 자식에게서 추가적으로 뭘 더 받아내려고 하지도 않소. 우리 정권기관은 인민들의 생활을 보살펴주는 어머니가 되여야지 세금징수원이 되여서야 되겠소. 예수를 믿는다고 차별하고 세외부담에 응하지 않는다고 역적취급을 해야 되겠는가 말이요. 명심하시오. 그렇게 해선 애써 마련한 민주의 새세상을 절대로 지켜낼수 없소. 나라의 통일도 이룩할수가 없단 말이요.》

한동안 숙연한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머리우에 태양이 휘뿌리는 따스한 백광이 내려앉고있었다. 일군들은 크고 억세고 뜨거운 무엇이 아름차게 달려와 파고드는듯 한 느낌에 취해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 입으로 용서를 비는것은 너무도 속되고 유치한짓으로 될것이다.

승용차의 제동음이 아츠럽게 날아온다. 군내무서장을 데리러 갔던 호위군관이 돌아왔던것이다. 그의 뒤로 모자를 바로 쓰며 달려오는 농민형의 투박한 내무서장이 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외면하신채 그가 올리는 인사도 받지 않으시였다.

《동무가 군위원장이 지시한 토지몰수행위를 법적으로 집행했소?》

내무서장은 장군님께서 무엇을 물으시는지 대뜸 알아챈듯 했다. 뿐만아니라 자기가 나타나기직전까지 이곳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도 알아차린듯 했다.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두었던듯싶은 대답이 제꺽 튀여나왔다.

《그래서 현재 몰수한 토지를 되돌려주려고 재조사를 하고있는중입니다. 군위원장동지가 비록 그 집이 사상이 불건전한건 사실이지만 모내기철도 되여오는데 그쯤 자극을 주었으면 이젠 정신이 들었을거라고 하면서 토지를 되돌려주라고 권고했습니다.》

《그게 사실이요?》

《그렇습니다.》

《동무! 여기가 어디요?》

《네?!》

장군님께서는 내무서장의 반죽좋은 얼굴을 쏘아보시였다.

《여기가 어딘가 말이요?! 그래 여긴 공화국땅이 아니고 어디 다른 대륙에 붙어있는 독립국가인가? 여긴 당조직도 없고 나라도 없고 법도 없는가! 군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토지를 빼앗고 군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이젠 또 되돌려준단 말이요? 뭐 그쯤 자극을 주면 됐다구? 어떤 자극말이요? 세외부담에 응하지 않다간 역적이 될수 있다는 그런 자극 말이요? 내무서는 공화국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군위원장의 지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가? 아직도 정신이 덜 들어 무슨 재조사요 뭐요 정신없는 소릴 하고있다니! 그 토지는 나라에서 법령을 발포하여 우리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여해준 땅이요. 일개 군위원장이나 내무서장에겐 그 땅을 마음대로 회수하거나 돌려줄 권한이 없소. 이 내각수상에게도 나라의 법을 마음대로 희롱할 그런 권한은 없소. 사람들의 인권을 함부로 침해할 권한이 없단 말이요, 없어!》

그이께서는 한손으로 허공을 몇번이나 헤가르시였다. 그리고나서 내무서장을 향해 한걸음 내짚으시였다. 애써 어조를 낮추려 하시면서 안타까이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보우 내무서장, 좀 생각해보오. 우리 공화국은 사람들의 안정과 평온을 위해 존재하는 인민의 보호자요. 지금처럼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전쟁의 위험이 시시각각으로 다가드는 긴장한 정세하에서 내무기관이 자기 사명과 역할을 더 잘해나가는것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문제로 나서고있소. 나라를 지키고 받드는건 군대나 내무원만이 아닌 광범한 인민대중의 합쳐진 힘인데 그 인민들이 정신적인 불안과 고통에 헤매여서야 되겠소? 또 그런 나라를 애써 지키는 의의가 있겠는가 말이요. 그 석반월이라는 처녀는 몰수된 자기 집의 토지를 되찾겠다고 뛰여다니다가 반동놈들의 마수에까지 걸려들었댔소. 결국 여기서는 지금 반동을 잡고있는것이 아니라 반동을 만들어내고있지 않는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억이 막히신듯 고개를 몇번 흔드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신듯 승용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시였다. 차문을 열다가 문득 생각났는지 리룡진도위원장을 찾으시였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데 거 금천군위원장 말이요, 사람이 어떻소? 관료주의가 지나친 일군이 아니요?》

리룡진은 모든것은 아래일군들을 똑바로 교양하지 못한 자기 책임이라고 하면서 어쨌든 그는 일은 하자는 사람이라고 두둔해나섰다. 그 실례로 장군님께서 경비대군인들의 생활에 관심이 크시다는 소리를 듣자 경비대에 대한 지원사업에 한몫 단단히 하였다고 말씀드렸다.

《혹시 그것도 인민의 희생의 대가로 낯을 낸건 아닌지 모르겠소.》

그이께서는 고개를 천천히 한번 가로저으시였다.

《난 정말 모르겠소. 우에서 중시하는것 같은 일엔 발벗고 앞장서고 그 어간에선 이런 놀음판을 벌려놓았으니. 차라리 경비대지원사업에도 낯을 돌리지 못했으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다고만 생각하겠는데… 여하튼 동무가 좀더 잘 알아보오. 난 인민의 리익을 침해한 대가로 제 낯을 내는 일군은 그가 어떤 공로를 세웠건 인정하지 않소. 다른 과오는 몰라도 세도와 관료주의에 물젖어 인민들에게 전횡을 부리는 현상과는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되오.》

그이께서는 말씀을 끊고 농번기를 앞두고 조용히 누워있는 넓은 들판을 잠시동안 바라보시였다.

몹시도 힘들게 말씀하시는 그이의 음성이 리룡진이나 최현을 비롯한 일군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사실 난 오늘 동무들이 추진하고있는 관개공사가 올해농업발전과 2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기때문에 불원천리하고 찾아왔댔소. 언제인가 시변리인민들에게 한번 꼭 다시 찾아와보겠다고 한 약속도 있었고. 하지만… 하지만 난 오늘 차마 시변리에 가지 못하겠소. 내가 하라고 한 관개공사가 그들에게 추가현물세와 같은 세외부담을 얹어놓았으니 무슨 체면에 그곳에 가겠는가.》

리룡진도위원장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념도 못하고 고개를 더 깊이 수그렸다. 익수는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러워 당장 죽어버리고만싶은 심정이였다.

담담히 울리는 그이의 음성이 오히려 지금까지의 추궁보다 몇백배나 더 강한 힘으로 일군들의 심장을 두드리고있었다.

《만약 금천군에서처럼 토지몰수나 세외부담을 무기로 휘둘러댄다면 관개공사는 해서 뭘하고 농사를 잘 지어선 뭘하겠소. 집안에 땔나무가 없다고 기둥을 찍어 장작을 만들겠소?》

차문이 닫겼다. 허연 배기가스가 차체밑에서 흘러나왔다. 일군들은 감히 그이를 따라설념을 못하고 차츰 멀어져가는 그이의 승용차를 뜨거운 눈길로 지켜보기만 했다. 아득한 지평선을 이룬 저 멀리 푸른 들판 한끝에서부터 거대한 파도같은 구름무지가 밀려오고있었다. 목화송이들이 뒤엉킨듯 한 희디흰 구름떼는 이제 다가올 저녁의 장쾌한 노을빛을 반사할 목적밑에 서두르며 부지런히 밀려오고있었다.

익수는 그저 모든것이 꿈만같이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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