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2 장

6

 

려수, 려수… 강물처럼 흘러든 피물을 먹고 바다가 호곡하고있었다.

미군사령부 정보국의 안온한 응접실에 놓여있던 꼬냐크가 쩝쩔하고 비릿한 피물로 변하여 려수라는 크지 않은 땅덩이에 부어졌다.

태양마저 피덩이처럼 보이는 땅이였다. 밀려들고 짓뭉개는 땅크와 장갑차며 내리꽂히는 비행기와 폭탄들도 피덩이였다. 남해기슭의 삐죽이 솟은 자그마한 반도가 통채로 시체가 되여 딩굴리였다.

제주도인민봉기를 진압할데 대한 리승만의 명령이 발화점이 되여 10월 20일 새벽 2시경 괴뢰14련대의 애국적장교들에 의하여 발생한 려수군인폭동은 처음부터 애국과 매국, 통일과 분렬, 대화와 대결간의 치렬한 결투로 불타올랐었다.

10월 20일 오후 1시에 려수읍 광장에서는 4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려수시인민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서 토론한 로동자, 농민, 학생, 녀성 등 각계층의 대표들은 한결같이 미제의 남조선주둔을 반대하고 남북조선의 유일한 합법적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를 지지하며 리승만을 타도하고 공화국의 기치밑에 민주주의개혁을 실시하여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결의들을 다지였다.

려수는 1주일동안 폭동군의 손에 장악되여있었다. 그러나 명백한 행동전술과 통일적인 지휘체계가 결여된 치명적인 약점으로 하여 려수봉기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10월 26일부터 맥아더의 지령을 받은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의 지휘하에 폭동진압부대가 려수시를 공격하였다. 도시는 완전히 봉쇄되였다. 살해의 대상이 된것은 군인들뿐이 아니였다. 어른들뿐만아니라 아이들도 녀인들도 폭행의 희생물로 되였다. 그들은 도살자들을 향해 마지막순간까지 항거하여 돌을 던지고 식칼을 휘둘렀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려수의 공기가 대기의 흐름을 타고 북상하며 온 남조선땅을 증오와 분노, 무서운 공포의 소용돌이속에 휘감았고 오늘은 그 기운이 38도선과 린접한 남강원도 홍천의 비좁은 산골짜기에까지 덮쳐들었다. 그 공기를 제일먼저 들이마시고 제일 강하게 느낀것은 홍천에 주둔한 괴뢰8련대의 2대대장 강태무였다. 국가의 안전과 《대통령》을 반대한 범죄자로 락인되여 체포처형된 려수군인들의 명단과 그들에 대한 공판과정이 수록된 문건이 강태무의 대대에까지 내려왔다.

강태무는 대대부의 투박한 책상우에 앉아 문건을 펼쳐보았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명단우의 이름들을 훑어보다가 별안간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섰다. 그속에서 강태무는 잊지 못할 동료들의 이름을 찾아보았던것이다.

《김학수!》

강태무는 믿어지지 않아 고개를 마구 흔들어털다가 다시금 문서장을 움켜잡았다.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강태무는 자기를 걷잡을수 없었다. 책상우에 놓여있던 문서철이며 재털이며 필통이며 하는것들을 와락 쓸어버리고는 두손으로 머리칼을 와락 움켜쥐였다.

눈앞에서 무수한 별찌가 오락가락하는 속에 지나간 시절의 토막토막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이미 지나간 《국방경비대》사관학교시절(처음에는 군사영어학교, 다음에는 륙군사관학교로 개칭) 힘겨운 훈련과정안을 마치고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앉아 점점 더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놓고 통한의 한숨을 깊이 내쉬군 하던 일이 어제런듯 방불히 떠올랐다.

그때 강태무와 함께 사관학교 2기를 함께 다닌 동창들중에는 지금 춘천에서 1대대장을 하고있는 표무원도 있었고 출세욕과 반공사상에 환장이 된 박정희라는 야심가도 있었으며 김학수라고 하는 학생출신의 고지식한 청년도 있었다.

강태무가 사관학교에 입학할 당시 학교에서는 200여명의 모집인원가운데서 절반은 《국방경비대》의 하사관들속에서 선발하여 무시험으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일반에서 중학경력을 가진 응모자들을 시험을 통하여 받아들이고있었다.

해방후에 고향에서 전국농민조합 고성군련맹 부위원장으로 일하던 강태무가 나라 지키려는 순진한 열망으로 김학수를 비롯한 학생출신의 청년들과 함께 해당한 절차(두사람이상의 신원보증)를 밟고 시험을 쳐서 합격되였을 때 표무원 같은 사람은 이미 《국방경비대》 부소대장출신으로서 그 사관학교의 조교로 있다가 무시험으로 입학하였었다.

그때부터 강태무, 표무원, 김학수를 비롯한 열혈청년들은 어렵고 힘겨운 학교생활을 서로 돕고 이끌며 함께 보냈고 친미역적들의 롱락물이 되여 외세의 조리대우에 놓여있는 민족의 운명을 우려하여 뜻을 같이 나누어왔다.

물론 동창들중에는 악질교관들이나 미군고문관들의 주구노릇을 하는 사악한 인간들도 있었다.

언제인가 하루훈련과정안을 마치고 지칠대로 지친 김학수가 잠자리에 누워 친구들에게 학교의 미군고문관들이 조선사람을 깔본다고 불만을 터뜨린적이 있었다. 그때 곁에서 그 말을 들은 박정희가 김학수의 소행에 대하여 고스란히 교관들에게 일러바쳐 소동이 벌어졌다. 한밤중에 비상소집이 벌어지고 학수는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하사관들과 교관들의 무지한 폭행을 당해야 하였다.

강태무는 그날에야 평소에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어딘가 겉과 속이 달라보이군 하던 그 박정희라는 《동료》가 해방전에 왜놈들로부터 《특등일본인》이라는 칭호와 오까모도라는 일본이름까지 하사받고 왜놈군대의 중위노릇을 한 친일역적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강태무는 분하여 견딜수 없었다. 며칠후 비가 내리는 음침한 밤에 그는 표무원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박정희를 인적없는 훈련장구석으로 끌고나갔다.

모두의 주먹이 울분에 넘쳐 그의 면상을 휘갈길 기세에 충만되여있었고 그것을 느낀 박정희는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

강태무는 학수에게 네 손으로 저자를 복수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다시는 그따위 너절한짓을 못하게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주라구.》

믿었던 《동료》의 배신적인 행위로 억울한 행패를 당했던 학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정희에게 다가가 주먹을 쳐들었다. 그러나 허공에 쳐들린 그 주먹은 향방을 못 잡고 후들후들 떨리기만 하다가 그만 맥없이 내리워졌다.

학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저으기 울음기가 섞인 어조로 말했다.

《못하겠네. 사람을 치는 일은… 정말 못하겠네.》

김학수는 바로 그런 사람이였다. 학수뿐이 아니였다. 그와 같이 순진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래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자각을 안고 어려운 학교생활을 이겨냈고 졸업후에는 각지로 흩어져갔었다. 강태무는 강릉을 거쳐 여기 홍천에, 표무원은 춘천에, 학수는 려수에…

먼 남해기슭에 자리잡은 려수에서도 김학수는 정을 나누던 동료들을 잊지 못해 건강은 어떠냐, 색시와는 사이좋게 지내느냐 짤막하고 진정이 담긴 편지를 보내오군 하였다.

그처럼 순진하고 인정많던 학수가, 자기를 저버린 박정희 같은 인간에게도 손이 떨려 귀뺨 한번 치지 못했던 그 학수가 려수에서 반국가범죄자라는 터무니없는 죄명을 쓰고 총살되였던것이다.

여기는 땅이 아니라 지옥이다!

강태무는 몸서리를 치지 않을수 없었다. 어제는 제주도에서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원쑤들의 무차별적인 총격과 포격에 숨져가더니 오늘은 또 려수와 순천에서 그러한 참상이 되풀이되고있다.

지옥과 같은 이런 땅에서 가까운 벗들의 억울한 죽음이 언제까지나 그냥 지속되겠는지 알수 없었다.

중학시절 배웠던 쉐익스피어의 비극들에도 이런 가혹한 기록은 없었다. 강태무는 동족이 동족을 살해하는 이 비극의 력사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것이 데스디모나를 죽인 오쎌로의 고통같은것과는 대비조차 할수 없는것이라는것을 통절히 느끼게 되였다. 이아고의 음모는 오쎌로와 데스디모나의 생명을 빼앗아내는데 그쳤지만 오늘 미제와 리승만괴뢰역적의 책동은 가까운 앞날에 김학수뿐만이 아니라 온 조선민족을 말살시킬것만 같았다.

강태무는 미군놈들이 쥐여준 총을 잡고 나라를 지키려 했다는것이 수치스럽고 분했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봄 조선중앙일보 기자로 있던 셋째형 강태렬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련석회의에 남측기자단 성원으로 참가하고 돌아온 후부터는 이북사회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반동적인 리승만정치에 환멸을 느낄대로 느껴오던 강태무였다. 강태렬은 그때 몹시 흥분하여 동생의 앞에 나타났었는데 김일성장군님께서 실시하신 민주개혁으로 하여 북조선에 펼쳐진 자랑찬 현실들을 오래동안 이야기해주었었다.

원래 강태무에게 있어서 이 셋째형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강태무가 고향에서 소학을 마치고 학비를 더 댈수 없어 부모님들의 일손이나 도우며 농사를 지으려 할 때 남자는 꼭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의 손을 잡고 산설고 물설은 일본땅에까지 데려가 중학공부를 마치게 한 사람이 강태렬이였다. 해방직후의 최초의 군사학교였던 사관학교에 강태무의 등을 떠밀어보낸것도 이 셋째형이였다. 강태렬은 그때 천성적인 결패와 용의주도한 기질이 꿈틀거리는 동생에게 나라를 다시 빼앗기지 않으려면 뭐니뭐니해도 군대가 강해야 한다고 하면서 강태무에게 군복을 입도록 권고하고 주선해주었던것이다.

이러한 형의 북조선참관의 나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강태무는 김구, 김규식과 같은 한다하는 우익민족주의자들도 머리를 숙이는 김일성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였다. 그러던차에 제주도에 이어 려수에서 군인들의 봉기가 일어났고 원쑤들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였던것이다.

그 탄압은 비단 려수나 순천의 군인들과 주민들에 한한것만이 아니였다. 벌써 며칠전부터 대대에는 리승만의 명령으로 조직된 이른바 숙군조사반이라는것이 내려와 활개치고있었다.

려수군인사건이후 괴뢰군내부의 중하층장교들에 대한 공포에 질린 리승만은 전군을 대상으로 하여 군대내에서의 이른바 좌익분자숙청을 목적으로 하는 《숙군》소동을 벌려놓았고 《헌병사령부》와 《륙군정보국》, 《대한청년단》, 《서북청년단》의 악질반동분자들로 《숙군조사반》이라는것을 조직하여 각 부대들에 파견했었다.

이미 다른 부대들에서는 이 조사반의 마수에 걸려들어 적지 않은 애국적장병들이 《군법》의 판결을 받고 철직, 총살되고있었다.

강태무는 피가 끓어올랐다.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자기도 려수의 군인들처럼 친미사대주의와 민족분렬세력에 항거하여 싸우고싶었다. 원쑤들의 탄압으로 눈도 감지 못하고 숨져간 항쟁자들과 억울한 루명을 쓰고 《숙군》의 희생물로 숨져가고있는 동료들의 복수를 해주고싶었다.

번민속에 모대기던 강태무는 자기의 가슴속을 마음놓고 헤쳐보일 사람을 찾아 밤새 수십리길을 달려가 춘천주둔 1대대장인 표무원을 만났다. 그는 자기가 장악하고있는 홍천의 2대대와 표무원의 1대대가 자리잡은 춘천에서 동시에 항쟁에 떨쳐나서면 가뜩이나 제주도와 려수사태때문에 갈팡질팡하던 미국이나 리승만역도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될것이라는 제딴의 타산을 표무원에게 터놓았다.

표무원도 강태무에 못지 않게 성미가 드세고 무엇인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려는 욕망이 끓어오르고있던 참이라 봉기를 일으키자는 강태무의 의견을 적극 지지해나섰다.

《려수에서 악당들의 살해대상에 속한건 학수와 같은 군인들만이 아니요. 미군놈들과 그 주구들은 빨갱이는 씨종자까지 말리워야 한다면서 녀인들과 로인들, 철없는 어린이들까지 매모조리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태워죽였소. 려수에선 지금 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있는데 이걸 참고 보고만 있겠는가. 우리가 갈길은 명백하네. 우린 설사 그들처럼 다 죽는다 해도 여기서 우리 식대로 폭동을 단행하자구.》

표무원은 주먹으로 심장을 콱콱 박다가 벌떡 뛰쳐일어나기까지 했다.

표무원의 그러한 격동이 가뜩이나 피가 뚝뚝 뛰고있던 강태무의 몸안에서 참을수 없는 불을 지펴놓았다.

《그래… 나도 표소령이 그렇게 나오리라 짐작하고 왔댔소. 동족의 피를 물보다도 값싸게 여기는 저 리승만이와 미국양키들에게 조선사람은 결코 총칼앞에 순종만 하는 무맥한 민족이 아니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자구.》

《강소령!》

《표소령!》

그들은 손을 굳게 맞잡았다. 어쩌면 형체도 없는 무주고혼의 신세가 될지도 모를 위험속으로 스스로 뛰여들려고 결심했던것이다.

그들은 구체적인 폭동계획은 후날 다시 만나 의논하기로 하고 헤여졌다. 수많은 장병들과 그 가족들의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해야 하는 일이여서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했고 준비를 하는데 시간도 적지 않게 걸릴것이였다.

표무원과 헤여져 홍천의 자기 부대로 돌아온 강태무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쾌감인지 비애인지 알수 없는 흥분속에서 하루낮을 보냈다. 왜서인지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일찌기 집으로 들어갔는데 기다리고있던 안해가 여느때처럼 반기며 달려나왔다.

강태무는 불타는 복수심에 넘쳐 그처럼 위험하고 대담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마음 한켠이 자꾸만 산란해지던 원인이 다름아닌 소녀처럼 목에 동동 매달리며 애교를 부리는 사랑스러운 안해 박인주때문이라는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오래간만에 일찍 들어온 남편을 위해 인주는 있는 재간을 다 피워 알뜰한 저녁밥상을 마련했다. 그리고는 《반주는 요것으로 꼭 한잔!》이라며 줌안에 들수 있는 깜찍한 술잔을 들어보이고 방시레 웃었다.

강태무는 안해가 부어준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별스럽게 목안이 뜨끔한것이 그것이 안에 들어가면 내장까지 다 타들어갈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강태무의 몸안은 안해를 만난 첫 순간부터 활활 타번졌고 지금은 시꺼먼 재가루만 남아 먼지를 풀풀 일으키고있었다.

인주는 그동안 새로 배운 방법대로 만든것이라며 참나무버섯료리가 담긴 그릇을 바투 내밀어주었다.

《그런데 버섯을 너무 잘게 썬것 같아요. 잡숫기 안타깝겠네.》

아직도 마음은 하얀 세라복을 입고 꽃밭을 뛰여다니던 녀학생시절에 두고있어 그때와 별반 차이없는 중발머리를 하고 한창 피여나는 청춘의 증표인양 언제나 발가우리하고 보동보동한 얼굴에 수태를 머금은 미소가 남실거리는 안해의 모습은 강태무에게 파편처럼 아프게 박혀들었다.

안해인 박인주는 서울의 정치가들이 저마끔 권력을 다투며 만들어놓은 수라장같은 세상과 담을 쌓은채 소녀기의 녀고보시절을 지나보냈고 사춘기의 사범학교시절을 마치기 바쁘게 마음과 육체의 순정만을 고이 안고살던 처녀시절을 어느결에 강태무에게 모두 맡겨버린 애젊은 주부였다.

그때 인주는 공주녀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강릉에서 방송중계소에 취직하여 일하고있었다.

어느날 그는 사범학교시절에 친했던 한 동창생처녀의 부탁을 받고 강태무가 중대장으로 있는 강릉주둔 8련대 3대대병영에 나타났었다. 동창생처녀의 약혼자가 이곳 중대에 있었는데 그 사병에게 약혼녀의 편지를 전해주려고 왔던것이다. 그런데 정문보초소에서 어물거리던 하사관 몇놈이 인주에게서 찾아온 사유를 다 듣고는 군대병영에 계집의 향수내를 끌어들이는건 반역행위나 같다며 편지를 빼앗아 서슴없이 꾸겨 내버리고 군화발로 짓이겨댔다.

그러고도 모자라 편지의 임자인 그 약혼자라는 사병을 끌어내고는 본인이 보는 앞에서 편지속에 있던 동창생처녀의 사진을 담배불로 마구 지져대며 너털웃음을 쳐댔다.

격분한 사병이 반항하며 달려들자 건장한 하사관놈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그를 가운데 몰아넣고 미친듯이 조겨대였다.

중대부에 틀고앉아있던 강태무가 밖에서 울리는 번잡스러운 소음을 듣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슬렁슬렁 걸어나왔을 때 인주는 자기앞에서 펼쳐진 험악한 광경에 겁을 먹고 도망쳐버린 뒤였다.

강태무는 사병을 짓조겨대는 하사관들에게 무슨짓들이냐고 꿱 소리쳤다.

한창 매질에 열중하던 하사관들이 주춤 굳어졌다가 저마끔 열을 올려 태무에게 보고하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사병도 안깐힘을 쓰며 일어나 제 군복을 쥐여뜯으며 절통하게 몸부림쳤다.

강태무는 그러는 사병의 손에서 마구 찢겨지고 구겨진 편지와 사진을 받아들고 한동안 까딱않고 들여다보았다. 사연을 짐작한 그는 편지와 사진을 사병에게 던지듯이 돌려주고나서 하사관들에게로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 기세로 가까이에 있던 작달막한 하사관놈을 주먹으로 드세게 후려갈겼다.

해방전 도꾜의 사이따마중학교에서 고학을 할 때부터 왜놈학생들의 천대와 멸시를 물리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검술과 유술을 익혔고 그렇게 다진 무쇠주먹의 덕분에 해방후 《국방경비대》 사관학교에 들어가서도 무지한 교관들과 사관들의 폭행으로부터 동료후보생들을 보호해줌으로써 《비호대장》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던 강태무였다. 이런 사람의 불의의 타격을 받은 놈이 무사할리가 없었다. 놈은 찍소리 한번 못지르고 먼지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하사관의 꽁무니에 꽂혀있던 술병이 해빛에 번뜩였다.

강태무는 그것을 끄집어내여 손에 쥔 다음 쓰러진자의 목덜미에 군화발을 올려놓고 죽어라고 내리눌렀다.

《죽어라! 이 더러운 쓰레기!》

강태무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네놈에겐 어머니도 처자도 없단 말이야?! 창녀의 배가죽을 뚫고나온 사생아야!》

강태무의 발밑에 깔린 놈이 죽는다고 아우성치며 잘못했노라 빌었다. 곁에 있던 다른 하사관놈들이 어안이 벙벙해있다가 그제서야 말리려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순간 강태무는 이번에는 그들쪽으로 돌아섰다. 무섭게 분노한 그는 손에 쥐고있던 술병의 모가지를 손칼로 쳐서 대바람에 날려보냈다. 다가들던 하사관들이 엉거주춤해졌다. 저들쪽으로 날아와 딩구는 병모가지를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모가지가 날아나 험상하게 날이 선 술병이 안에 있던 액체를 꾸역꾸역 게우며 그자들의 눈뿌리를 지져댔다.

《너들 모두 똑똑히 들어라. 사람새끼로 태여났으면 사람흉내라도 내면서 살아라. 그러지 않으면 이 중대장에게서 짐승취급만 받다가 개죽음을 당할줄 알라!》

《…》

《알아들었는가?》

놈들이 무어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중얼중얼대는것을 듣지도 않고 강태무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사납게 찔러댔다.

《싹 꺼져버려!》

하사관들을 쫓아버린 다음 강태무는 이번에는 피투성이가 되여 애인의 편지와 사진을 량손에 갈라쥐고 눈물범벅이 되여 서있는 사병에게 다가갔다. 그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고 소리질렀다.

《이놈아, 울어서 무슨 소용이 있어? 자기 존엄은 자기가 지켜야 해. 제 애인이 이렇게 짓밟혔는데 넌 그래 그냥 얻어맞기만 했단 말이야? 시라소니같으니.》

바로 그 이튿날 저녁 강태무는 정문보초소에 누가 찾아왔다는 련락을 받고 나가보았다. 찾아온것은 녀학생들이 입는 흰 세라복차림의 중발머리처녀였다.

《전…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자구 찾아왔어요.》

처녀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자기처럼 흰 손수건을 잘근잘근 깨물며 겨우 말했다.

강태무는 그제서야 이 처녀가 어제 낮에 편지를 가져다주러 왔다가 하사관들의 폭행에 얼혼이 나가 도망쳤던 처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알고보니 그때 도망치던 처녀는 잡관목속에 몸을 숨기고 보초소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았던것이다. 그래 동창생처녀의 순결한 사랑을 지켜준 강태무에게 진심의 인사를 하자고 부끄러움도 무서움도 무릅쓰고 찾아온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강태무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강릉처녀 박인주를 알게 되였다.

인주에게 있어서 강태무는 전설속의 오듀쎄우스와 같은 환상적인 존재였다. 인주는 강태무 같은 사람만이 이 살벌한 세상에서 자기처럼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운명을 지켜주고 살펴줄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때문에 이제 남편이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무시무시한 폭동계획을 꾸미고있다는것을 알면 경악할것이고 더는 자기를 지탱하지 못할수도 있었다. 안온한 골짜기에 핀 청초한 나리꽃마냥 아름답고 선량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이 안해를 두고 죽음의 함정속에 스스로 뛰여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꺽 막히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했다. 그렇다고 사나이로 세상에 태여나 민족의 운명을 외면하고 저 하나의 처자생각에만 묻혀살수는 없었다.

아, 우리 조선사람들은 과연 언제까지 이런 수난과 불행을 계속 겪어야만 하는가. 해방전에는 왜놈들의 대포밥으로 끌려가 청춘이 시들어가고 죽어갔다면 오늘은 미국놈들과 리승만역적패당들때문에 생때같은 목숨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다. 그러니 부부간의 사랑이라고 어찌 무사할수 있겠는가.

수난당한 땅에서는 남녀간의 애정도, 친우간의 의리도, 부모자식간의 도리도 서리맞은 봄싹처럼 짓눌리게 된다.

식사가 끝나고 안해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을 때 강태무는 안해를 꼭 껴안아주며 신음소리같은것을 씹어삼켰다. 강태무의 심정을 알리 없는 안해는 그것이 그저 자신에 대한 애정의 표시인줄 알고 행복에 겨운 웃음을 지으며 남편의 품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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