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2012년 3월.

손을 얼핏 스치기만 해도 파란 물이 묻어날것 같은 맑은 하늘에서 비둘기떼가 한가하게 날아예고있었다. 그 하늘아래 펼쳐진 아득한 들판을 꿰지르며 달리는 승용차행렬에서 유난히도 눈부신 해빛의 반사광이 휘뿌려진다.

김정은동지를 모신 승용차는 지금 황해북도안의 들길을 달려 분계연선도시인 개성을 가까이하고있었다.

주위는 고요하고 이따금씩 가벼운 봄바람이 조심스럽게 불어오군 했다. 멀지 않은 어디선가 뜨락또르의 탁한 발동소리가 들려와 농촌특유의 목가적인 정서를 보태주고있었다. 문화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선 마을과 평행을 이루며 뻗어나간 뚝길 한가운데서 새김질을 하고있던 황소 한마리가 이쪽을 멀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평화롭다못해 한가로와보이는 분계연선지구의 풍치였다.

《차를 세우시오.》

김정은동지를 모신 승용차는 나지막한 언덕아래 굽이길에서 가볍게 멎어섰다. 뒤차에서 따라오던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비롯한 여러 일군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제꺽 차문을 열고 내렸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차문을 열어젖히기는 하셨지만 한동안 내릴념은 안하시고 차가 멎어서있는 도로바닥을 이윽히 내려다보시였다. 이어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길녘에 깔린 보드라운 흙을 한줌 쥐고 비벼보시였다.

《여기가 어딘줄 아오?》하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어보기는 하셨지만 별로 대답을 기대하시는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인가 개성시 북서부라고 대답을 올리는데 그러면서도 그이께서 과연 몰라서 물으시는가 하는 의혹때문에 우물쭈물하였다.

《여기는 그저 개성이 아니라 38도선이요.》

그이께서 바람결에 실려보내듯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일군들에게 뜨끔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손에 쥐고있던 흙을 바닥에 쏟으시려다가 그것을 다시 움켜쥐고 돌아서시더니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체구를 꼿꼿이 펴고있는 총정치국장의 손에 옮겨주시였다.

《만져보오. 부드럽소. 화약내도 안 나고… 총정치국장동무의 아버님이 피를 뿌리면서도 50년 6월의 그 일요일까지 끝까지 고수했던 땅의 흙입니다. 최현동지는 그때 이곳을 방어하고있던 제3경비려단을 지휘하고있었지요.》

어디선가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지나간 시대에 삶을 보냈던 전세대의 자취가 그 바람결에 후덥게 실려오는듯 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등산을 하고 야유회를 하고 아이들이 원족을 가는 경치좋은 송악산의 웅자가 가까이 치솟아있다. 한때 피어린 싸움터였고 고난과 피로 새겨진 준엄한 투쟁사의 한 부분이 지심깊이 뿌리내려있는 송악산에도 계절을 가리지 않는 푸름이 자리잡고있어 아직은 쌀쌀한 초봄이지만 사람들에게 수려한 여름의 모습을 시사해주고있다.

《어떻습니까? 총정치국장동무, 내가 오늘 판문점에 나간다는것이 세상에 공개되면 적들이 뭐라고 할가요?》

《여간 긴장해하지 않을겁니다. 장군님께서 나가시였을 때에도 법석 떠들었댔는데 아마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봅니다.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제편에서 먼저 떠들수 있습니다.》

그렇다. 그럴수도 있을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민족의 희망과 삶의 전부로 우러러 따르던 김정일동지께서 너무도 갑자기 서거하신 후 비통한 슬픔이 낳은 분노와 울분의 드센 압력이 콩크리트장벽을 허물고 거침없이 남하할수 있다는 제딴의 추측과 공포를 안고 그 무슨 《특별사태》의 《대처》를 떠들며 제편에서 전쟁열을 고취하고있는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이였다.

김정은최고사령관의 젊은 혈기와 의기를 자기식으로 해석한 온갖 리론과 판단이 세론을 끓게 하고 우리의 핵시험을 코에 걸고 세계여론의 응원을 호소하는 방송나발이 가없는 공간을 타고 지구상 여기저기에로 퍼져나가고있다.

《전쟁이 일어난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되뇌이시며 이마에 손채양을 하시였다. 이미 지나쳐왔던 비둘기떼가 여기까지 따라와 자기들 식의 편대를 짓고 방금전처럼 유유히 선회하고있다.

이제 적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판문점시찰보도에까지 접하게 된다면 공화국북반부상공에 떠도는 저 조류들의 움직임마저 폭격을 앞두고 목표를 확정하는 전투기의 급강하라고 선전할지 몰랐다.

문득 며칠전 우리의 신문과 방송으로 전세계에 선포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대변인성명의 한구절이 상기되시였다.

《이번 〈키 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은 우리의 애도기간을 노리고 감행되는 불한당들의 용납할수 없는 전쟁광기이고 우리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참을수 없는 침해이다.

그것은 또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전면도전이며 로골적인 파괴행위이다. …》

사실 그것은 민족의 령수를 잃은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누를길 없는 분노의 화산을 일으키는 선전포고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었다.

《…우리에 대한 선전이 포고된 이상 우리 식 성전으로 맞받아나아가 민족의 안전과 나라의 평화를 지키자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결심이다. …》

그이께서도 한 나라의 령도자이시기 전에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 없는 인간이시였다. 누구보다 사랑이 강렬하고 그만큼 증오와 분노도 강렬한 인간이시였다. 정치적인 자주권은 둘째놓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초보적인 도리를 지키고 인륜적인 모든것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결단을 내리고 전체 군대와 인민을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을 반대하는 거족적인 성전에로 불러일으킴으로써 세기를 두고 내려오는 민족의 숙망을 실현하고싶으시였다. 사실상 정세를 이런 벼랑끝에까지 끌고간것은 미제와 야합한 내외반통일호전세력들이였던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높은 인내와 아량을 가지고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

그렇다.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그것도 하루이틀이 아니라 장장 반세기에 걸치는 긴 세월을 그렇게 보내왔다.

그 오랜 세월 우리 수령님께서는 오로지 민족의 자주적이며 평화적인 통일과 만대의 번영을 위해 끊임없는 헌신과 로고의 길을 이어가시였고 우리 장군님께서도 그렇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자신을 불태우시였다.

그런데 장군님을 잃은 오늘날에 와서 50년 6월의 그날처럼 또다시 전쟁이 육박해오고있었다.

그이의 귀전에서는 격동에 넘쳐 웨치던 방송원의 흥분된 목소리가 쩡쩡 공명되여 울리고있었다.

《미제는 반세기이상 우리 민족의 가슴에 씻을수 없는 분렬의 한을 남기고도 모자라 또 한차례의 침략전쟁으로 〈미국식정치방식〉을 우리에게 강요하려고 달려드는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의 반공화국전쟁책동이 강화되면 될수록 반미결전태세를 갖추고 무모한 군사적도발과 무력증강, 전쟁연습책동을 짓부셔버리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의 기본장애물인 미제침략군무리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한 강도높은 투쟁에 총진입할것이다. …》

봄이 꿈을 안고 깃든 잠풍한 날씨였다. 가볍게 불어치던 바람결도 사그라들었다.

뜨락또르의 발동소리, 황소의 영각소리, 비탈밭 한가운데 전주대에 매달린 고성기에서 울려나오는 《풍년가》의 노래소리…

밟고계시는것은 그저 땅이 아니라 민족분렬의 피어린 력사가 깃든 38도선의 옛 전선지대이다.

《이 땅에서 전쟁의 포성이 울린 때로부터 벌써 반세기가 지나갔습니다. 너무도 오랜 기간 이 땅의 력사는 전쟁도 평화도 아닌 정전상태에서 흘러왔습니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격해지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오늘 전쟁을 위해서 판문점으로 나가고있는것이 아닙니다. 전쟁을 선포하는것은 최고사령부나 총참모부의 작전대에서도 할수 있는 일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문득 어느 영화에서 들었던 노래의 한구절이 떠오르시였다.

 

이제는 옛 전호에 탄피도 삭았으리

고지엔 산딸기가 빨갛게 익었으리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신 승용차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든듯 고요한 들판이 뒤쪽으로 멀어져갔고 고성기에서 울리던 《풍년가》소리도 차츰 사라져간다.

김정은동지께서는 지금 자신을 따라나선 인민군지휘성원들도 속으로는 전쟁을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섰을것이라고 여기시였다. 원쑤들의 전쟁도발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더 로골화되고있는 오늘의 정세하에서 최고사령관의 판문점시찰 결심을 놓고 다르게는 해석할리가 없는 그들이였다. 그들의 생각이 옳을수도 있었다. 국방위원회 대변인성명이 발표된 그날 총정치국장은 지금의 정세가 1950년 6월 25일의 전야와 꼭같다고 하였었다. 결국 그의 말은 래일은 전쟁이 발발할수도 있다는것이였다.

상기하기조차 괴로운 50년 6월의 일요일, 력사에 상처로 남은 그날을 생각할 때면 자연히 수령님의 영상이 먼저 떠오르군 하시는 김정은동지이시였다. 그때 우리 수령님의 심정은 과연 어떠하시였을가. 무엇을 생각하시였고 무엇때문에 제일 마음쓰시였을가?

문득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시는 자애에 넘친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도 귀에 익고 꿈에서도 그려보시던 그 음성…

김정은동지께서는 흠칠 등받이에서 몸을 솟구시고 고요속에 잠긴 주위를 둘러보시였다. 차안에 울리는것은 분계선으로 내닫는 고르로운 승용차발동기소리뿐이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분명 어느 먼 하늘가에서 울려오는듯 한 수령님의 음성을 들으시였다.

그것은 민족분렬의 력사와 함께 시작된 준엄한 결전의 길에 울리던 30대청년장군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그 시절의 모습으로 김정은동지의 마음속에 찾아오시여 복잡다단했던 공화국력사의 첫 기슭에서 있었던 가지가지 사연들을 하나하나 들려주고계시는것이였다.

김정은동지께서는 만단사연을 전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하고 계신다.

나는 무엇때문에 이 길을 가는가? 적진과 마주한 판문점의 그 땅에서 무엇을 보려 하고 어떤 일을 하려 하는가. 그곳의 그 무엇이 이렇게도 발길을 끌어당기고있는가? 그 대답은 지나간 력사의 갈피마다 웅변으로 깃들어있을것이다.

다가오는 남쪽의 연연한 산발들도 그이의 사색에 방해가 될가봐 엄정한 모습으로 굳어져있고 수림들도 고개를 수그리고있었다.

그 수림과 산과 언덕들사이로 과거의 화약내와 철조망들, 포연이 서린 송악산에서 육박전을 벌리던 유명무명의 수많은 영웅들과 이 계선의 가는 곳마다에 박혀있던 38도선표말들이 어려온다.

판문점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이께서는 60여년전의 그 나날속으로 깊이, 더 깊이 들어서고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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