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5 장  의서도적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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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2월 다시금 15만의 병력으로 전쟁을 일으킨 왜놈들은 기세등등하여 이 땅에 기여들었다. 인간살륙의 무리들은 전라도를 용케도 넘었으나 끝내 충청도는 넘지 못하였다. 도처에서 얻어맞으며 전전긍긍해있던 적들은 이듬해 가을에 들어와서는 싸움의욕을 아예 잃고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해 11월이 되여서야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완전히 퇴각하고말았다.

이로써 수년간의 임진전쟁은 드디여 막을 내리게 되였다.

이 전란속에서 나고야 겐이는 엄청나게 큰 횡재를 하였다. 나고야의 부탁대로 고니시 유끼나가가 《의방류취》를 일본에 날라왔던것이였다.

《나고야상. 난 자네와의 약속을 지켰다! 조선에서 <의방류취>를 훔쳐왔단 말이다!》

마차로 날라온 《의방류취》는 총 266권에 달하였다.

《이것이 그 진귀한 〈의방류취〉로구만! 고니시장군! 당신은 일본을 위해 정말로 큰 공을 세웠소이다! 이 의서는 금은붙이에 비기지 못할 더 값진 참보물이란 말이요!》

나고야는 무둑히 쌓여있는 《의방류취》의 서적더미를 두손으로 덥석 그러안으며 두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고니시 유끼나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나고야 겐이의 말대로 조선의 《의방류취》는 그야말로 진귀한 보물이였다.

나고야는 근 반년동안에 걸쳐 《의방류취》를 훑어보았다. 전 266권에 달하는 《의방류취》의 매 권은 100장(200페지)이상, 어떤 책들은 150장(300페지)을 넘는것도 있었는데 모두 합치면 근 6만페지가 넘었다.

나고야는 이 방대한 서적들을 금속활자로 3년동안에 다 찍어내였다. 그때까지 왜놈들에게는 금속활자가 없었으나 이번 전쟁때 《의방류취》뿐아니라 금속활자도 략탈해갔었다. 나고야는 조선의 슬기롭고 지혜로우며 품위있는 문화재인 《의방류취》에 대하여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이것은 조선의술의 높은 발전수준과 인쇄술의 결정체였다.

그후 나고야 겐이는 거액의 금전을 받고 《의방류취》의 원간본(금속활자로 찍은 원본)을 왜놈 왕궁문서고인 궁내청 서릉부에 넘겨주었다. 간특하고 악착스러운 왜놈들은 왕궁문서고에 《의방류취》를 감추어놓고 거기에서 서문과 발문(뒤글), 간기와 같은 주요사항들이 적힌 부문들을 다 없애버림으로써 그 책을 어느때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편찬하고 출판하였는지를 전혀 알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의방류취》를 편찬하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자들이 아니, 《의방류취》의 집필 당시 그러한 의서가 집필되는줄도 모르던 놈들이 이제 와서는 《의방류취》를 저들의 재부로 만들려고 획책한것이다. 력대로 남의것을 훔쳐오고 그것을 모방하거나 핵심기술에 간특하게 자기식으로 살짝 덧붙여 덕을 보군 하는것은 어제도 오늘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교활한 술법이다.

왜놈들의 이러한 략탈책동으로 하여 지금도 왜나라의 왕궁문서고인 궁내청 서릉부에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민족문화재보인 《의방류취》가 억울하게 갇혀있다. 이것은 그 누가 왜나라임금에게 례물로 바친것도 아니요 그 어떤 골동품애호가나 어느 관광객이 조선에 와서 비싼 값을 치르고 사간것이 아니라 조선에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 왜나라족속들이 백주에 강탈해간 조선인민의 국보인것이다.

실로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다. 결국 우리 인민의 슬기로운 지혜, 유능한 우리의 의학자들의 넋과 의지, 지혜가 깃들어있는 《의방류취》의 원간본이 우리 나라에는 단 한부도 남지 않게 되였다.

나고야 겐이는 앞으로 완성되게 될 《동의보감》도 이렇게 만들려고 꿈꾸고있었다.

삼년이 지난 후 나고야는 후유꼬에게 다시금 임무를 주었다.

《이젠 네가 움직일 때가 된것 같구나. 듣자니 허준이 지금 〈동의보감〉의 집필을 본격적으로 하고있다고 한다. 넌 속히 조선에 들어가서 곤도와 련계를 가지고 기회를 보아서 허모를 손안에 넣어야 한다. 다음엔 그놈을 통해 허준에게 접근해서 〈동의보감〉의 원고를 훔치도록 해라. 그 의서의 권수도 적지 않을터인데 될수록 많은 권수의 원고를 훔치도록 해라.

만약 그것이 곤난하면 다문 한두권만이라도 훔쳐와야 한다. 인쇄하기 전에 원고를 훔쳐오면 완전히 우리것으로 만들수 있노라. 내 말의 뜻을 알겠느냐?》

후유꼬가 고개를 까닥거렸다.

《알겠어요.》

이 몇해사이에 후유꼬의 타고난 미모는 더욱 세련되고 매혹적으로 다듬어졌다. 나고야는 익을대로 다 익은 후유꼬를 품안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이런 아름다운 녀인을 영원히 제 차지로 만들고 생을 마음껏 누리고싶은 생각을 하군 하였다. 이는 의원으로서보다 한 젊은 미인을 대하는 사내로서의 나고야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옥을 다듬은듯 맑고 깨끗한 후유꼬의 육체를 쓰다듬으며 그의 젊음을 마음껏 향유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고야는 자기가 너무도 모질지 않았는가 하는 자체모순에 빠지기도 하였다. 간혹 후유꼬를 아슬아슬한 그 길에서 완전히 떼내고 늘 곁에 두고 그 아름다움을 싫도록 감상하면서 생을 누리고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언제인가 후유꼬에게 그 말을 비쳤더니 후유꼬가 폭소를 터뜨리는것이였다. 너무 좋아 미치지 않았는가 생각하며 자기를 꼭 그러안고있는 늘씬한 그 허리를 잡아 돌려놓으니 후유꼬의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된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요?! 내 참 어이가 없군요. 날 이렇게 만든건 누구인데 이제 와서 알량한 인정을 베푸는가요? 후유꼬라는 녀인이 이 세상에 이미 없어진지가 언제인데 그런 소리를 하세요?…

큰일을 해야 한답시고 개한테 먹이 주듯이 나를 사내들에게 던져줄 때가 언제인데 제법 선량한체 하시니 당신은 너무 잔인하군요. 차라리 그 말을 꺼내지나 말았더라면 속통이 좁고 인정이 야비한 이 나라에 그래도 진짜 애국남아가 있구나 하고 영원히 생각이나 하지요.》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후유꼬는 딴 사람이 된듯싶었다. 이상한것은 나고야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진것이다. 지금까지 나고야와 후유꼬의 사이는 명확히 주종관계였다. 헌데 나고야는 후유꼬의 눈에서 때없이 발산하는 광채에서 후유꼬가 자기를 다만 상전으로서뿐아니라 이성으로서, 녀성의 시점에서 남성을 대하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허나 나고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서슴지 않는 기질의 소유자였다. 이 시각 조선으로 떠나보낼 후유꼬에게 임무를 주면서 나고야는 새삼스레 그런 생각을 하였다. 고개를 까닥거리던 후유꼬가 조용히 머리를 들었다. 그의 까만 눈에 생기가 돌았다.

《주인님! 소녀는 기어이 주인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겠나이다. 믿어주세요.》

그러더니 나고야의 목에 와락 매달렸다.

《난 당신을 위해 태여난 몸이예요. 당신이 있어 내 목숨이 있고 당신의 바람이라면 이 후유꼬는 그 무엇도 아까울게 없어요.

다만 이 후유꼬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정조를 바친 사내도 당신이고 죽을 때까지 정을 쏟아부을 사내도 다름아닌 나고야상 당신이라는것만 잊지 마세요.》

나고야는 후유꼬의 그 말에 치밀어오르는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말없이 젊고젊은 아름다운 후유꼬의 얼굴을 두손으로 정히 받쳐들었다. 비장하다고 할 아니,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그런 각오가 후유꼬의 고운 얼굴에서 심장이 서늘할 정도로 풍겨왔다. 나고야는 후유꼬를 부서질듯 꽉 그러안았다.

며칠후 후유꼬는 나고야의 바래움을 받으며 조선으로 떠나갔다. 떠나가는 후유꼬를 바래우는 나고야 겐이의 움푹 꺼진 볼편이 때없이 떨었다.

나고야 겐이는 후유꼬의 일이 성공하면 그 원고에 자기의 이름을 붙여 인쇄하여 일본의 의서로 만들 작정이였다. 아직까지 신통한 자기의 독자적인 의서가 없었던 사무라이의 후예들은 이런 방법을 써서라도 제 나라의 의술을 세상에 떠올리려고 했던것이다. 오직 이 한가지 목적으로 나고야는 후유꼬를 손때묻혀 키웠고 또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보내는것이였다.

나고야는 자기의 이런 처사가 후세 일본인들의 찬양을 받는 애국적인 일이라고 제딴에 자부하고있었다.

그의 눈으로 볼 때 의서뿐이 아니였다. 다른 측면에서도 자기 나라 일본은 자기의것이라고 당당히 손꼽을수 있는것이 별반 없었다. 도자기도 일본땅에서는 고려의 청자기를 제일로 일러주고있었다. 유명하다는 절간을 보아도 저 멀리 백제시기의 조선사람들이 와서 지어준것이며 이번 전란때에 훔쳐온 금속활자도 역시 조선사람들이 만들어놓은것이였다.

이러한 문화재의 빈곤은 나고야를 심히 실망케 하였으며 자기 민족에 대한 허무감을 한껏 불러일으켰다. 나고야는 자기의 이러한 심정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나고야가 《의방류취》의 앞머리와 뒤꼬리를 완전히 없애버린것도 결국은 조선의 보물을 종당에 가서는 자기 일본의것으로 만들자는 속심에서 출발한것이였다.

《동의보감》도 다를바가 없었다. 그와 같은 유명한 의서가 일본의것이라고 하면 넓고넓은 대양창파 날바다에 빙 둘러막혀 살아서인지 도무지 그릇이 크지 못한 여기 섬나라사람들에게 상상외로 민족적자부심을 북돋아줄수 있을것이라고 나고야는 확신하였다.

이제 두고봐라! 후세인들이 이 나고야 겐이를 위해 비라도 세워줄지 누가 알랴. 그때에 가서는 이 나고야 겐이를 신처럼 떠받들것이며 민족의 남아로 추억할것이다.

후유꼬의 모습은 점으로 되여 보이지 않건만 나고야의 눈앞에는 그날의 신적존재인 자기의 모습이 큰 산처럼 다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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