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5 장  의서도적놈들

3

 

평시에는 입만 벌리면 임금앞에서 지금은 태평시절이고 전하는 하늘이 내린 성인이라고 괴여올리며 일편단심 충정한답시고 군신유의를 떠올리던 량반관료들이 전쟁이 일어나자 제일먼저 들구뛰였다. 저들의 나라에 문명을 배워주고 전수한 은혜갚음대신 섬나라족속들은 20만의 대병력을 몰아 이 나라로 쳐들어왔다. 사무라이들이 일으킨 전쟁의 무서운 참화가 장마철 소낙비마냥 이 땅에 들씌워졌다. 당파싸움에만 몰두하면서 국방을 홀시하던 썩고 무능한 봉건조정은 왜나라의 침략에 물먹은 담벽마냥 맥없이 무너졌다.

임진년(1592년) 4월 14일 고니시의 부대에 의해 부산포가 무너지고 보름후인 4월 29일에는 충주가, 5월 2일에는 한성이 함락되였다.

고니시를 따라 한성에 입성한 후유꼬는 지체없이 자기 임무에 착수하였다. 고니시가 붙여준 군졸들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후유꼬를 호위하였다. 후유꼬는 나고야가 일러준대로 석구라고 부르는 장공인의 집을 찾아갔다. 장공인의 집은 자그마한 기와집이였다.

《어인 일로 이 살벌한 전란속에서 애어린 랑자가 이렇게 찾아왔소?》

사위를 한바퀴 휘둘러본 후유꼬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하였다.

《저, 여기서 은주전자를 세공한다기에 주문하러 왔어요. 매화꽃 세송이를 박아넣은 은주전자를 주문하려고 하나이다.》

장공인은 입술이 흉하게 째지고 눈꼬리가 새깃마냥 우로 솟구친게 첫인상에도 여간 감때사나와보이지 않았다.

《하필 세송이요? 여섯송이면 더 좋겠는데…》

이윽하여 후유꼬는 뒤골방에서 석구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이건 나고야주인님이 보내시는 금은붙이예요. 앞으로 일하느라면 필요하다면서 보내신거예요. 그래, 그 허모라는 감찰은 어떻게 되였어요?》

《네- 조정의 관리들에게 금전을 찔러주고 두루 그 행적을 알아보니 심원사로 피신했다고 합디다.》

《심원사는 어데 있는 절간이지요?》

《황해도 봉산쪽이라는데 예서 약 사백리정도 되오이다.》

《그래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후유꼬가 다시금 물었다.

《주치의 허준의 소식은 몰라요?》

《음- 듣자니 왕과 함께 서쪽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아마 조선왕이 있는 곳에 가있을것이오이다.》

후유꼬는 미간을 쪼프리고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허준을 당장 찾을길이 없다. 그렇다면 감찰이라는 허모를 먼저 찾아가 면식을 익혀놓음이 합당하였다.

《내 아무래도 감찰이 숨어있다는 심원사에로 가야 할것 같군요.》

《아니?! 여기서 그곳까진 사백여리 잘되는데 옥상이 혼자 어찌 가려구 그러시나이까?》

《괜찮아요. 고니시선봉장님께 말 한필을 달래가지고 그걸 타고가겠어요. 만일의 정황을 고려해서 절대로 이곳을 비우지 말아요. 이건 주인어른의 분부예요. 그리고 <의방류취>를 탐문해서 고니시선봉장님께 알려주세요. 자, 시간이 없어요. 난 이길로 떠나겠어요.》

남복차림을 한 후유꼬는 고니시가 내준 청부루를 타고 심원사를 향해 북쪽으로 질풍같이 내달렸다. 꼬바기 하루길을 달려 심원사에 당도하였다.

후유꼬는 난생처음으로 고색창연하면서도 우아한 조선고유의 절간을 보게 되였다. 그의 흑진주같이 새까만 눈은 놀라움으로 하여 동그래졌다. 일본의 절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건물이였다. 특히 본전인 보광전이 더욱 볼만 하였다. 고려시기의 전형적인 형태인 배부른 기둥과 포식두공(소의 혀모양으로 된 두공)은 무게가 있고 장중한감을 은근히 불러일으켜주었다. 건물정면의 량옆간은 격자무늬가 있는 문을 달아주고 가운데간은 모란과 련꽃을 새긴 꽃살문이 있었는데 실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후유꼬는 넋을 잃고 웅장화려한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이 웅장화려한 건물을 보면서 후유꼬는 이 나라의 유구하고 슬기로운 유산의 가치를 대번에 절감할수 있었다. 그래서 아마 나고야 겐이가 기를 쓰고 조선의 의서를 빼오는데 운명을 걸었구나 하는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뇌리를 쳤다.

후유꼬는 절간마당을 휘둘러보았다. 여느때같으면 중들이 어슬렁거려야 할 마당에는 한명의 중도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계단을 따라 정면의 문을 여니 누런빛을 뿌리는 불상앞에 장삼을 걸친 로승이 정중한 자세로 앉아 두눈을 감고 념주알을 주무르며 무슨 념불을 외우고 있었다. 후유꼬는 로승의 념불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스님, 여기에 조정의 관리들이 피난오지 않았나이까?》

로승의 애기손바닥만 한 큰 귀가 벌쭉거리는것이 후유꼬의 눈에 안겨들었다. 앉은 자세를 조금도 흐트리지 않은채 로승이 석쉼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아수라의 무리들이 신성한 땅에 쳐들어와 이 땅을 예토로 화하려 하며 부처님을 노엽히고 무고한 생령들을 마구 욕되게 하였도다. 야만의 무리들로 하여 아비규환이 된 이 땅에 부처의 령험이 언제면 다시 깃들일고. 그 아수라들을 마땅히 지옥의 염라국에 처넣어 백세천세 벌을 받게 할지로다. 나무아미타불!》

후유꼬의 손이 품안에 찌른 비수에로 저도모르게 가닿았다. 이 쌍놈의 중이 감히 우리 일본을 아수라에 비유해?!

진주같은 까만 눈에 살기가 풍겼다. 애써 자기 감정을 누르며 후유꼬는 다시 물었다.

《스님, 여기로 피난왔던 조정의 관리들은 지금 어데로 갔소이까?》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고 속세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야 열반에 이르러 극락세계에로 가거늘 란세의 고통을 피하여 달아난 그놈들 역시 저 바다건너 섬나라 아수라들처럼 천벌을 받음이 마땅하리다. 나무아미타불!》

웅얼거리는 로승의 목소리에 그만에야 후유꼬는 인내성을 잃고말았다. 어느새 후유꼬의 비수가 로승의 잔등에 푹 박혔다.

(뭐?! 천벌을 받으라구? 천만에! 네놈이나 천벌을 콱 받아라!)

어데로 도망갔는지 알수 없는 허모를 무슨 수로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할수없이 후유꼬는 한성으로 그냥 돌아오고말았다.

그 이후 전쟁의 대세를 관망해보던 후유꼬는 아직은 시기가 도래하지 못했음을 절감하였다.

의주로 피난간 조선임금을 따라 들어간 허준의 행방도 묘연하거니와 더우기는 이 란리판에 허준이 의서를 완성할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것이였다. 때를 기다림이 옳은 처사라고 생각한 후유꼬는 일단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더구나 전쟁의 와중에 거칠대로 거칠어진 고니시에게 매일밤 시달림을 받는것이 끔찍스러웠던것이다.

일본으로 떠나기 앞서 후유꼬는 석구를 찾아갔다. 후유꼬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타국에서 세월없이 지낼 석구를 손아귀에 단단히 틀어쥐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고니시가 준 금은붙이를 그에게 주며 후유꼬는 고국을 떠나 수년세월 사자밥을 등에 지고 한성에 잠복해온 석구에게 나고야가 준 임무를 잊지 말것을 불어넣었다.

《난 아무래도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가봐요. 내가 돌아간 후 당신은 어떤일이 있어도 허준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아요. 의서의 원고를 손에 넣는 일은 허모감찰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니 꼭 그자의 동태를 정기적으로 알려주세요. 이건 나고야 겐이주인님의 뜻이자 나의 요구예요. 그 상황을 통보받고 때가 되면 나고야어른의 지령에 따라 내가 다시 들어오겠어요.》

그 다음날 후유꼬는 일본으로 향하는 배편에 몸을 실었다.

기세등등하여 북상하였던 왜놈들은 우리 인민들의 거족적인 투쟁에 의하여 남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였으며 적들에게 강점되였던 수많은 고을들이 회복되였다.

이듬해 1월 평양성이 회복되였으며 행주산성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4월에는 마침내 한성을 탈환하였다. 한성이 회복되자 의주로 피난갔던 선조는 1593년 11월에 한성으로 돌아왔으며 왕을 따라갔던 허준도 돌아오게 되였다. 그 기간 허준은 《동의보감》의 집필구성안과 매 편에 들어가는 항목까지 세부적으로 다 세워놓을수 있었다. 허준은 이전에 나온 의서들과는 달리 이 의서가 진정으로 병자들의 치료에서 보감이 될수 있도록 편리하게 그리고 어느 질병에 대한 부분을 참고해보려고 하여도 그 증상과 치료방법들을 손금보듯 환히 볼수 있도록 항목을 특색있게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이였다.

례를 들어 《내경편》의 진액(몸안의 체액)항에서 한증(땀나는 병)을 보면 먼저 그 맥진법과 병의 원인을 주고 그다음에는 자한(깨여있을 때 몸에 부담주는것이 없이 저절로 땀이 나는것), 도한(잠잘 때 땀이 나는것), 두한(머리와 얼굴에 땀이 나는것), 심한(가슴에만 땀이 나는것), 수족한(손발에 늘 땀이 나는것), 음한(외생식기부위에 늘 축축하게 땀이 나는것), 혈한(피가 섞이여 연붉은 빛을 띠는 땀이 나는것) 등 여덟개의 목으로 분류되여있어 병자들을 대할 때 다른 여러가지 의서들을 이것저것 보지 않고서도 《동의보감》만 보면 치료효과를 얻을수 있도록 구성체계를 세웠다.

다섯개의 큰 편아래 모든 질병들에 대하여 이와 같이 항, 목을 설정하고 그 항, 목의 아래에는 치료방법과 처방들을 자세하게 렬거하자니 실로 그 집필량이 엄청날 정도로 방대하였다. 암만 생각해봐도 혼자힘으로는 너무도 아름찬 과제였다. 며칠동안 생각끝에 어느날 허준은 설유에게 자기의 의견을 내비쳤다.

《아무래도 전하께 상주하여 이 의서를 편찬하기 위한 편집국을 설치할데 대한 윤허를 받아야 할것 같구만.》

《그게 좋을것 같애요. 의서집필량이 너무 방대하게 느껴져요. <동의보감>이 개인의 의서라기보다 나라의 의술총서나 같은데 혼자서 하다간 세월이 없을것 같군요.》

설유도 기꺼이 찬성하였다.

《그렇소. 그렇게 하면 의서의 집필속도도 상당히 앞당길수 있을게요.》

임금의 정기적인 검진을 마친 어느날 허준은 조심스럽게 아뢰였다.

《전하께 소신이 아뢰일게 있소이다. 다름아니라 우리 나라의 의술에 관한 큰 의서를 집필할가 하옵니다.》

《그게 대체 어떤 의서냐?》

허준은 《동의보감》의 구성안과 집필요강에 대하여 세세히 설명하였다. 다년간 허준에게서 치료를 받아오는 과정에 그의 뛰여난 의술에 대하여 선조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명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글들은 틀림없이 명의술을 담은 명구들일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열여섯살나이에 임금으로 즉위한 선조는 초시기에 오로지 학문에만 전심하였고 매일 경연에 나가 정사와 학문을 론하군 하였던지라 의서에 대하여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있었다. 선조는 생각외로 선선히 승낙하였다.

《그런 의서를 만들겠다니 과인은 윤허하겠다. 내의원에 편찬국을 설치하고 어의가 그 의서의 편찬을 주관하도록 하라.》

《전하! 황공무지로소이다!》

이리하여 1596년에 유의인 정작과 태의 양례수, 김웅탁, 리명원, 정례남 등을 망라하는 편찬국이 내의원에 정식으로 발족되였다. 의서편찬국이 내의원에 생기자 제일 손이 시려한것은 양례수였다. 죽순이가 류이태를 찾아 산음으로 떠나간것을 알게 된 양례수는 이전의 곰상스럽게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자던 그 말을 헌신짝처럼 차던지고 그를 경계하기 시작하였다. 양례수로서는 자기의 허물을 알고있는 허준이 앓는 이발만큼이나 미워났다. 더구나 자기대신 임금의 주치의로 허준이 임명된것은 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손상시켰던것이다. 허준의 일이라면 양례수는 덮어놓고 시비중상하였다. 허준이 없을 때면 편찬국 의원들앞에서 로골적으로 시비질하였다.

《아니, 이 어수선한 세월에 의서편찬은 또 무슨 의서편찬이요? 그리구 세종대왕시절에 <향약집성방>과 <의방류취>와 같은 큰 의서들이 이미 다 나왔는데 무슨 또 의서를 쓴단 말이요! 그래, 청원 그 량반이 이제 그보다 더 나은 의서를 쓸것 같은가? 제사 나라안의 일등명의라는건데 이게 바로 제 생색을 내는것이 아닌가 말이요!》

양례수가 손짓, 몸짓 해가며 헐뜯었으나 다른 의관들은 그 비난에 함구무언이였다. 이른바 중립이였다. 그들도 금방 전란을 겪어왔고 또 언제 왜놈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 어수선한 세월에 의서를 편찬한다는것은 허무맹랑한 일이라는 생각을 다분히 품고있었다. 그러나 양례수처럼 로골적으로 비난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허준의 의술에 대해 자타가 싫든좋든 인정하고있었으며 더우기는 허준이 한갖 의관이 아니라 지엄한 나라님의 주치의였기때문이였다. 어명으로 편찬국이 무어졌는데 잘못 나섰다가는 불경죄에 왕명을 거역한 대역부도죄에 걸려 목이 날아날 판이였기때문이다.

편찬국이 무어졌다지만 양례수와 같이 음으로양으로 달가와하지 않고 또 마지못해 동원되다나니 허준은 대부분의 편찬사업을 혼자서 다 맡아하여야 하였다. 실오리같이 근근히 유지되여가던 내의원 편찬국마저도 1597년 2월 왜놈들의 재침으로 말미암아 유야무야되고말았다. 가증스러운 왜놈들이 15만의 병력으로 다시 침략해오자 편찬국에 망라되여있던 성원들이 때를 만난듯 뿔뿔이 다 흩어지고말았던것이다.

허준은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들고말았다. 임금에게 상주하여 힘들게 무었던 편찬국도 모래알처럼 다 흩어져버려 혼자서 씨름질하며 의서를 완성해야 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방대한 의서의 집필을 과연 내 혼자서 해낼수 있을가. 물론 혼자 해낼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혼자 하기로 결심한 의서가 아닌가. 허나 시간이 문제였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그 시간을 앞당기려고 임금에게 상주하여 편찬국을 설치할데 대한 윤허를 받았던 허준이였다. 하지만 얼마 못가서 흐지부지되고말았다.

그는 어머니의 삼년상을 치르겠다고 초막을 짓고 살던 그때 스승이 왜 그렇게 엄하게 자기를 신칙하였는지 새삼스럽게 느꼈다. 큰 의서를 쓰는 길에서는 별의별 고생을 다 각오해야 한다는 류이태의 절절한 강조는 바로 이런 경우를 념두에 두고 한 말같았다.

《예영이 아버지! 힘드시지요?》

문득 설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준은 상념에서 깨여나 안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치 깊은 호수를 방불케 하는 그의 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윽하였다. 그 눈만 들여다보아도 허준은 가슴이 후련해지군 하였다.

《힘드오. 정말 힘드오. 이자 겨우 <내경편> 두권을 썼는데 이제 수십권에 달하는 의서를 나 혼자서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구만.》

설유가 나직하나 또박또박 그루를 박으며 입을 열었다.

《예영이 아버지! 큰뜻을 품고 나선 이 길에 무슨 고생인들 없겠어요. 당신이야 다 각오하고 이 길에 나서지 않았나요. 제가 잘 돕겠으니 우리 이 고비를 넘기자요.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다시는 영영 일어서지 못해요. 힘을 내세요! 전 지금도 당신이 옥에 갇혔을 때 하시던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뜻과 의기만 든든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시던 말씀말이예요.》

목소리는 높지 않았으나 절절하였다.

허준은 정신이 버쩍 들었다. 순간이나마 흔들릴번 한 자기를 다잡아주는 설유였다. 설유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허준은 부르짖었다. 아니, 심중의 마음을 담아 웨쳤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내 잠시나마 마음이 약해졌댔소. 온 나라 사람들에게 건강을 주고 후세의 재부로 될 큰 의서가 쉬이 나올수 없다고 한 선생님의 그 말씀을 내 잊을번 했소. 왜 선생님이 그때 그렇게 말씀하신줄 내 잘 알겠소. 당신은 앞으로도 내가 이렇게 주춤거릴 땐 사정을 보지 말고 채찍질을 해주오!》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허준은 다시금 붓을 들었다.

이미 《내경편》 1권과 2권에 대한 집필을 다 끝낸지라 지금은 3권집필에 진입한것이였다.

허준은 벼루에 붓을 담그었다. 이윽고 그의 붓대가 참지우에서 힘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붓대에서 흘러나오는 하나하나의 글들은 뜻과 넋, 의지를 담은듯 힘있는 획과 선으로 이어져가고있었다. 그야말로 일필휘지였다.

《동의보감. <내경편> 3권. 오장륙부. 의원은 반드시 오장륙부를 알아야 한다. 이전의 선비들은 세상사람들이 천지만물의 리치를 연구하는데 힘쓰고있으나 자기의 몸에 있는 오장륙부와 모발(머리칼)과 근골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것을 한탄하였는바 하물며 의원으로서 그것을 모르고있을수 있겠는가?》

글의 꼭지를 뗀 허준은 오장륙부의 기능과 생리, 병리에 대하여 한줄한줄 써내려갔다.

《장부는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장부는 작용이 다르다.…

장과 부는 배합이 있다.…

오장은 일곱구멍과 통한다.…》

오장륙부에 대하여서도 이렇게 조목조목 쓸 항목이 허다하였다.

허준은 끊임없이 붓을 달리였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내돋았다. 그의 옆에 앉은 설유가 집필에 필요한 자료들을 분류정리하고 또 허준이 쓴 원고들에 대하여 추고와 교정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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