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4 장  왕실의 어의

6

 

허준의 진단은 정확하였다. 그의 말대로 선조에게는 큰 골치거리가 있었다.

세자책봉문제로 조정의 대신들이 동인, 서인으로 갈라져 갑론을박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좌의정 정철과 대사헌 리해수, 부제학 리성중 등이 강등(벼슬등급이 떨어지는것)되여 외직으로 쫓겨난지 달포가 되여온다. 그 세사람은 서인파였다. 서인들이 들고일어났다. 매일과 같이 상주문을 올려 령상인 리산해를 비롯한 동인들을 탄핵하니 선조는 골치가 아팠다.

그러니 어찌 임금의 신기가 편안할수 있으랴.

신기가 편안치 않으니 비위가 허약해져 전혀 수라상에 손을 댈수가 없었던것이다. 선조의 이러한 심리상태에 대한 허준의 진단은 그야말로 명의다운 정확한 진단이였다. 선조는 허준이 이렇게 진단내리자 자못 대견하게 생각하였다.

(그놈이 참 명의는 명의로다! 신통히 내가 겪고있는 일들을 다 들여다보듯 알아맞힌단 말이야. )

그 다음날부터 허준은 본격적으로 임금의 치료에 달라붙었다.

물론 임금의 신성한 룡체에 함부로 침을 찌르고 뜸쑥으로 살을 태울수는 없었다. 선조자체도 그런 고통스러운 치료를 바라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진단과 일치되는 명확한 압통점들은 진단점으로 되는것과 함께 가장 효과적인 치료점으로도 된다.

선조의 신체에 나타난 단중, 주영, 천종, 심유혈의 압통점이 바로 그러하였다.

허준은 안마와 지압법 그리고 탕약료법으로 치료하기로 하였다. 엄지손가락끝으로 단중혈을 가볍게 누르면서 허준은 임금에게 담담한 어조로 설명하였다.

《전하! 지금 누르고있는 혈은 단중혈이라 하오이다. 아주 중요한 혈이오이다. 아래배에서는 정혈이 그득히 저장된 배꼽아래의 관원혈이 제일 중요하다면 이 웃가슴에서는 가슴의 기가 다 모여있는 이 단중혈이 가장 중요하오이다. 이 혈을 이렇게 잘 풀어주면 막혔던 심기(심장의 기)가 열리면서 가슴과 심장이 시원해지게 되오이다. 심장이 편안하면 그가 주관하는 신명도 편안해지게 되오이다. 아마 잔등에 있는 천종혈과 심유혈까지 이렇게 다 풀어주면 전하의 정신이 거뜬해질것이오며 잠도 깊이 드실것이오이다. 전하의 상태에서 신명만 개선되오면 비위는 저절로 풀리게 되오이다.》

선조는 두눈을 감고 허준에게 몸을 맡긴채로 그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있었다. 병치료는 마음이 절반이다. 허준은 선조에게 심신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안정시키려고 치료의 리치를 알아들을수 있도록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지압과 약물치료외에 심리적안정료법을 더하자는것이였다.

허준의 유연한 손끝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누르기와 비비기, 떨며 누르기, 손끝으로 돌리기 등의 다양한 수법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지압과 안마의 강도를 더욱 높여나갔다. 단중혈에 이어 웃가슴부위의 주영혈과 어깨박죽의 천종혈, 잔등의 심유혈까지 다 풀고나니 사각은 실히 걸리였다. 허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내돋았다. 치료를 끝낸 선조가 희색이 만면하여 평상에서 일어나앉으며 말했다.

《어, 시원하다.- 정말 가슴이 시원하고 심장이 탁 트이는것 같고나!- 》

허준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였다.

《달포정도 이렇게 치료하면 효험이 뚜렷할것이오이다.》

《음, 과인도 그렇게 생각하노라.》

《소신이 이제 탕약을 지어올리겠소이다. 그 탕약은 귀비탕이라 하온데 건비(위를 건전하게 하는것), 안신(정신안정), 보혈작용이 있어 전하의 병치료에 아주 좋소이다.》

물론 치료의 리치설명에도 있었겠지만 다시금 임금에게 심리적안정과 치료효과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허준은 약에 대한 설명을 더 보태였다.

선조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허준은 진단과 치료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마음속은 자못 불안하고 초조하였다.

궁궐에 출입하여 임금의 병치료를 했다지만 그 결과가 어찌 될지… 스스로 긴장해지는 허준이였다. 약 열흘이 지나자 차츰 효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금이 미간의 주름을 펴고 말했다.

《그제밤부터는 잠을 푹 잤노라. 그전에는 늘 악몽에 시달리고 생각이 꼬리를 물어 밤을 꼬박 새웠는데 이젠 잠을 제대로 푹 자니 살것 같노라.》

스무날이 지나서부터는 수라상의 음식들을 축내기 시작했고 조금씩 식사량이 늘어났다. 달포가 지나자 허준의 말대로 선조의 얼굴에는 완연하게 희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선조는 만족한 기색을 짓고 령의정 리산해를 불렀다.

《내의원 판관이 과시 명의는 명의로다. 그를 왕실의 어의로 봉하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천만뜻밖에도 지엄한 임금의 주치의로 봉해진 허준은 한순간 얼떨떨해졌다. 사실 의관이라면 누구나 바라면서도 쉬이 넘겨다보지 못하는 어의자리였다. 이렇게 허준은 명의술로 한 나라 임금의 주치의가 되였다. 바로 이것이 장장 서른해라는 기나긴 세월로 이어진 어의의 첫걸음이였다.

허준이 어의로 봉하여졌다는 기별을 듣고 류이태는 만사를 제쳐놓고 일부러 산음에서 한성부에로 올라왔다. 허준과 설유를 마주한 류이태는 허준에게 자기가 가져온 술을 직접 부었다.

《자. 오늘은 내가 자네한테 한잔 붓는걸세.》

《선생님!》

엉거주춤하며 허준은 자기에게 잔을 내미는 류이태를 격정에 넘쳐 바라보았다. 죽순이와 가정을 새로 이룬 뒤 류이태는 점점 젊어지는듯 하였다. 설유가 아버지의 잔에 찰찰 넘쳐나게 술을 부었다. 류이태는 감개무량한지 한동안 술잔을 들고 선뜻 마시지 못하였다.

어찌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서얼이라는 그 한가지 리유로 모진 수모와 고통을 겪어온 허준이 아니던가. 그 어려운 속에서도 의학의 길에 들어선 허준이 의술이 높은 덕에 국왕의 어의가 되였으니 아무리 믿자고 해도 꿈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한달음에 그 먼길을 허위단심 달려온 그였다.

《자네가 오늘 이렇게 어의로 봉해진것은 높은 의술의 덕일세. 나와 선복이 어머닌 너무도 믿어지지 않아 며칠밤 꼬바기 새웠네. 나보다도 그가 더 기뻐하더군. 자네가 나한테 처음으로 의학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던 일이며 그리고 모친의 삼년상도 치르지 못한 자네를 한성으로 떠밀어보내던 일이며를 생각하느라니 절로 눈물이 나더구만. 자네의 모친이 오늘의 자네 모습을 보았더라면 얼마나 기뻐하셨겠나.》

류이태의 주름깊은 얼굴에 추연한 빛이 흘렀다.

《아버님! 아버님이 계셨기에 저의 오늘이 있는것이 아닙니까. 제눈에 흙이 들어간들 아버님의 그 은혜를 잊을수 있겠습니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허준의 말이였다.

《됐네, 됐어, 이젠 그런 말을 그만하자구. 내 오늘 자네를 축하해서 내 손으로 술을 붓고싶었고 또 앞으로 의서를 만드는 길에서 꼭 성공하길 바라서 먼길을 걸음했네.》

허준은 스승의 그 진정이 가슴에 미쳐와 눈굽이 스르르 젖어들었다.

《선생님의 그 진정을 잊지 않겠소이다.》

이윽고 류이태는 설유에게 눈길을 돌렸다.

《예로부터 큰일을 하는 사내의 뒤에는 현숙한 녀인이 있다고 하였다. 옛사람들의 말에 <현모량처>라는 말이 있는데 과시 틀리는 말이 아니야. 예영이 애비가 가는 길이 참말로 헐치 않은 길이야. 상상밖의 일도 생겨날수 있고 억울한 루명도 쓸수 있지.

난 네가 예영이 애비가 뜻을 이루도록 잘 돕기를 믿는다.》

《아버지! 절 믿어주세요. 제 꼭…》

류이태는 다음날 산음으로 떠나갔다. 허준과 설유는 말없이 떠나가는 아버지를 눈물속에 바래웠다.

(선생님, 선생님의 그 웅심깊은 사려와 기대를 잊지 않고 뜻을 이루겠나이다!)

후날 허준은 《동의보감》을 집필하는 나날에 무려 500여권이나 되는 의서들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그가 만든 《동의보감》에는 세종시기에 만들어진 《향약집성방》, 《의방류취》와 복희의 저작으로 전해지는 《천원옥색》, 신농의 저작으로 전해오는 《본초》 그리고 《소문》, 《영추경》 등 83종의 고전방들과 《상한경》, 《맥경》, 《단계심법》 등 한나라, 당나라에서 편찬한 수많은 의방서가 인용되였다.

허준은 어의생활을 하면서도 의서의 편찬요강에 대한 구상을 끊임없이 무르익혀나갔다.

얼마전까지 그는 제2권으로 되는 《외형편》에 대한 구성안을 비교적 세울수 있었다.

《외형편》에서 허준은 몸밖에서 볼수 있는 부분 즉 머리, 얼굴, 눈, 귀, 코, 입과 등, 가슴, 배, 피부, 손, 발 등의 해부, 생리, 병리학적인 현상들과 해당한 질병들을 주려고 하였다. 이 부분만 하여도 실로 방대한 량이였다.

허준은 이제 앞으로 쓰게 될 자기의 의서가 몇권으로 끝날 간단한 일이 아니라 수십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달한다는것을 가늠할수 있었다. 실제로 후날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은 총 25권으로 되여있으며 당시 한창 구성안을 무르익히고있던 《외형편》만 하여도 4권에 달하였다. 허준은 장차 얼마나 험난하면서도 아름찬 길이 앞에 놓이겠는가를 생각하며 자기의 어깨가 천근을 진듯 더욱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허나 이는 누가 시켜서 걷는 길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기스스로 택한 길이였기에 그는 동요없이 억척스레 걸어갔던것이다.

허모는 왕실어의로 허준이 임명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가 그한테 여지없이 패했다는것을 자인하였다. 웬간한 관료배들도 감히 뵙기 어려운 임금을 매일 상면하고 치료한다니 자다가도 까무라칠 정도가 아니라 관속에 있다가 당장이라도 튀여나올 일이였다. 술과 계집질로 찢어지는 아픔을 달래일수밖에 없었다. 완기의 실패를 두고 계집질은 사내를 해치는 독약이나 같다고 여기던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이즈음 조정의 공기는 심상치 않았다. 별의별 풍문이 팔도각지에 유령마냥 배회하였다.

그 풍문은 섬나라 일본의 형세를 알아보려 왜땅에 사신으로 건너갔던 통신사들의 서로 엇갈린 보고로 하여 더욱 신비성을 띠고 려염집아낙네들까지 쉬쉬거릴 정도로 험악해졌다.

통신사로 섬나라에 갔다온 정사 황윤길은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있다고 보고했으나 부사로 동행한 김성일은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상주하였다.

서로 다른 보고를 놓고 조야가 죽가마끓듯 웅성거렸다.

이 또한 동인이요 서인이요 하는 당쟁의 비극적인 산물이였다. 국가의 리익은 안중에 없는 이 당쟁의 주역들은 태평성대를 누리는 세월에 무슨 당치않은 왜나라침략인가고 자가사리 끓듯 찧구받구 하더니 나중에는 그런 론난마저도 가물에 물웅뎅이 마르듯 아예 없어지고말았다. 그러다가 다시 엉뎅이가 쑤시는지 당파싸움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그야말로 이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신세에 처하게 되였다.

뜻있는 선비들은 썩은 조정에 침을 뱉고 락향하였으며 김상궁의 오라비인 김공량과 같은 간신배들이 조정정사를 손탁에서 제마음대로 주물러댔다.

허나 바다건너 섬나라 왜놈들은 궁벽한 저들의 땅에서 풍요한 조선을 넘겨다보며 언감생심 침략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엿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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