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한성에 나타난 시골의원

5

 

류희춘은 환갑이 코앞에 와닿은 늙은이였다.

지금 조정안에 류희춘이만큼 인생경륜이 복잡한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스물여섯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류희춘이 재사로 물망에 올라 상승일로의 길을 걷고있다가 하루아침에 파산된것은 을사사화가 있은 직후였다.

그때 탄압당하여 1547년 9월 처음 제주도로 귀양갔던 류희춘은 이듬해 2월 바다를 건너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지를 옮기고 그곳에서 근 19년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1565년에 명종의 어지로 류희춘은 종성에서 류배지를 은진으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2년을 보내고 1567년 10월에 새로 등극한 선조의 부름을 받고 20년만에 다시 정계에 등장하게 되였다.

한달전에 임금은 그에게 박근원을 대신하여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으로 임명하였다. 허나 희춘은 대사헌벼슬을 사임하였다. 오랜 기간 귀양살이를 한 후과로 늘 병상에 있는 희춘으로서는 관리들의 능력과 수완을 판별하며 그들의 위법행위를 조사통제하는 관청의 장관직을 감당하기 어려웠던것이다.

요즘은 경연에 참가하며 임금과 경전에 대한 론의와 현행정사를 놓고 강론하는률이 많았다.

지금 희춘은 근래에 와서 수척해지는 임금의 신상이 걱정되여 대체 무슨 병일가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오래동안 병석에 있느라면 반의원이 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남보다 여의치 못한 몸상태로 하여 희춘은 의술에 대한 파악이 상당한 정도로 밝았다. 웬간한 의원들은 그앞에서 의술자랑을 하지 못한다. 불쑥 한성부에서 참군이 만나기를 요청한다는 통지를 가지고 도차지가 방에 들어섰다.

《한성부 참군이? 만나는것을 허락한다고 해라.》

곧 참군이 들어섰다.

《대감어른께 문안드리오이다. 귀체만강하셨소이까?》

한성부 참군은 류희춘의 형수의 친척벌이 되는 사람이여서 여러번 대면하였었다. 희춘의 형인 류성춘은 중종시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리조정랑에 이르렀다가 기묘사화에 련루되여 귀양을 갔다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희춘은 형을 잃은 조카들과 형수의 일이라면 제집일은 뒤켠에 미루고 더 극성을 부렸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형수의 친척벌이 되는 한성부 참군의 일에도 무관심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느냐?》

《대감어른께 한가지 부탁할 일이 하나 있어 왔소이다.》

《무슨 일이기에?》

《다름아니라 한 의원에 관한 문제오이다.》

류희춘이 의원이라는 말에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저- 우리 한성부 옥에 허준이라는 의원이 갇혀있소이다. 죄명은 명의라고 헛소문을 내면서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희롱했다는것이오이다.》

《인명을 가지고 흥정하는 놈은 옥이 아니라 교수형감이야! 그런 놈때문에 임자가 날 찾아오면 되나?》

《그런게 아니라 그 허준이가 진짜명의라 그 말이옵니다. 그의 의술이 얼마나 높은지 신기할 정도이오이다.》

참군은 자기가 치료받은 사실을 그대로 말하면서 한성시가에서 떠도는 풍문까지 제가 직접 목격한듯이 설명해주었다. 처음엔 시끄러운 문제를 들고왔다고 아니꼽게 생각하던 류희춘의 얼굴에 호기심과 의아함이 가득 비꼈다.

《헌데 왜 그런 명의를 옥에 끌어왔다던가?》

참군은 쭈밋거렸다. 기본은 이제부터인데 잘못 말했다간 벼슬길에서 온갖 풍파를 다 겪은 류희춘의 반감을 살수 있었다. 대바르고 강직하여 조정안에서 대신들도 어려워하는 그였다.

《사실은 사헌부에 허모라는 감찰이 있지 않소이까?》

《허모?!》

류희춘은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헌으로 임명되여 사헌부관속들을 점검할 때 룡천군수를 하던 허륜의 자제라면서 갑삭거리던 눈이 챕챕한 허모가 생각히웠다. 후에 듣자니 박근원의 턱에 바싹 붙어다니는데 수완이 여간 아니라고들 하였다. 그의 손에 걸려들면 빠져나가기가 어렵다고들 수군거렸다.

《예, 사헌부의 허감찰이 한성부 서윤어른에게 그 의원을 옥에 처넣으라고 했다는지…》

《허감찰이 사헌부에선 일을 제끼는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가 어찌하여 그런 명의를 아무런 리유도 없이 옥에 넣으라고 했을고?》

참군은 이때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게 이상하다 그 말이옵니다.》

류희춘은 눈을 들어 참군을 치떠보았다.

《그러니 임자가 부탁할거란 그 의원을 놔달라는건가?》

에두르지 않고 정통을 찌르는 류희춘의 물음에 참군은 당황했다.

《소인이 감히 그런 청을 드리리까?

그저 그 의원의 의술이 놀랍고 또 그런 명의를 아무런 근거없이 옥에 넣는것이 불공평해 보이기에 감히 여쭈어보는것입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으면 대감어른께서 그 의원을 불러 만나보면 알수 있을것입니다.》

그 순간 류희춘은 근간에 병색이 짙던 임금의 룡안이 떠올랐다.

《가만, 그런 명의라면 내 한번 만나보지. 래일 아니, 이제 당장 나한테로 데리고 오게.》

참군의 얼굴에 희색이 어렸다.

얼마후 류희춘은 허준과 마주하였다. 희춘이 보기에도 퍽 묵직해보이는게 허투루 명의랍시고 거짓소문이나 퍼뜨리고 다닐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다.

《임자가 허준인가?》

조정에서 류희춘이라고 하면 현 임금이 크게 신임한다는것을 웬간한 사람들은 다 알고있다. 허준은 자기가 어떻게 되여 류대감의 집으로 끌려왔는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렇소이다.》

《본관은 어딘가?》

《양천 허씨옵니다.》

《그래 부친은 누구인고?》

허준은 쭈밋거렸다. 서자인 제 처지에서 량반댁가문의 혈통이랍시고 아버지의 함자를 입에 올리기가 거북스러웠다.

《왜 그러나? 양천 허씨라면 대대로 명문가인데 뭘 그리 주저하나?》

허준은 머리를 쳐들었다. 서얼이라고 해서 주눅이 들 필요가 없었다.

《룡천고을의 사또로 있던 허륜이라는분이 소인의 부친이올시다.》

류희춘은 그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허륜의 아들이라면 사헌부 감찰인 허모와 형제간이라는건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수 있는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사람은 제 형한테 걸려들어 옥살이신세를 지고있는가?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불쑥 처조카인 죽순이가 룡천고을의 군수댁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죽순이 말하던 허륜의 서자가 분명했다. 헌데 이 젊은이가 참말로 의술을 배웠단 말인가.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봐야 한다. 아무리 죄가 크기로서니 동생을 옥에 처넣는 형도 있을가. 물론 청백리라면 십분 있음직하다. 허나 이 사람의 얼굴을 봐서는 어데 가서 나쁜짓을 할것 같지 않다.

순진한 눈 그리고 당당한 저 거동,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을 도고한 인품이 엿보였다.

《그렇구만. 그런데 무슨 죄로 옥에 잡혀왔노?》

《소인도 영문을 통 알길 없소이다. 작년에 소인은 저 경상도 산음현에 있다가 여기 한성부로 올라왔나이다. 소인은 본래 룡천서 살다가 의술을 배우려고 모친의 고향인 산음에 내려갔소이다. 룡천에 죽순이라는 용한 녀의원이 계시는데 그분이 저를 산음에 류이태라는 명의가 있다고 소개하기에 소인은 산음에 가서 그 류이태라는분에게서 수년간 의술을 배웠나이다.》

그의 말을 중둥무이하며 류희춘이 물었다.

《가만, 이자 룡천의 녀의원이 누구라구?》

허준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죽순이라고 하오이다. 그 녀의원의 의술이 룡천에서 첫손가락에 꼽히옵니다. 저의 스승인 류이태선생님이나 죽순의원님의 의술은 정말 나라안에선 보기 드문 경지에 있소이다.》

류희춘은 죽순이가 말하던 허륜의 서자가 바로 이 사람임을 확인하였다.

《이자 보니 우리 죽순이가 말하던 사람이 자네였구만. 자네의 모친이 려월이지?》

허준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아니, 소인의 어머니를 어떻게 대감께서 아시나이까?》

류희춘이 손을 내저었다.

《그건 후에 말하기로 하구 말을 계속하라구.》

허준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며 말을 이었다.

《산음에 내려가서 소인은 죽순의원님이 말씀하시던 류이태라는분에게서 의술을 배웠소이다. 소인이 근 칠팔년간 스승의 슬하에서 의술을 배웠는데 지난해 스승은 한성부와 같은 큰 도회지에 나가서 의술을 련마해야 한다시며 절 한성으로 떠밀어보냈소이다. 한성에 와서 아는 사람도 없지만 그런대로 병자들을 치료하다나니 불미한 소인이 명의라고 소문이 좀 난가 봅니다. 그건 아마 소인한테서 치료받아 병이 나은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린가 본데 솔직히 말해서 소인은 마음에 죄될만 한 노릇을 한게 조금도 없나이다.》

류희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죽순은 몇년전에 딸애와 함께 한성에 올라와 살고있었다. 선복이는 지금 궁실의 녀의원이다.

언제인가 죽순이 말하던 젊은이가 다름아닌 허준이란 사실앞에 희춘은 생각이 많아졌다. 희춘은 여기엔 무슨 쪼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허준을 믿고 옥에서 내보낸 다음 다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리라 생각한 류희춘은 허준을 돌아보았다.

《임자가 명의라고 하던데 그럼 나한테 그 의술을 좀 보여주게나.》

허준은 희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병은 내가 알고있으니 그만두자구. 그러니 내가 소개하는 그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게. 사헌부의 박근원대감이 요즘 계속 앓고있네. 그러다나니 제대로 출근도 못하지.… 이제 내가 사람을 하나 달려보내겠으니 당장 그리루 가게나. 약속할것은 임자가 그 사람의 병을 고치면 옥에서 나갈수 있다는걸세.》

말을 마치고난 류희춘은 그옆에 서있는 참군에게 몇마디 분부하더니 허준을 돌아보았다.

《그리구 임자가 그 박근원대감의 병을 고친 다음 나하구 다시 마주앉자구. 내 말뜻을 알겠나?》

《알았소이다.》

아직은 뭐가 뭐인지 분간할수 없었으나 허준은 일단 류희춘이 말한것처럼 박근원의 병부터 치료하기로 하고 그 집을 나섰다.

그길로 참군은 허준을 데리고 대사헌 박근원을 찾아갔다.

《저 대감어른께 한가지 아뢰일게 있어 찾아왔소이다.》

《무슨 일이냐? 또 중범인이 옥에 들어왔느냐?》

평상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시답지 않게 던지는 박근원의 말이였다.

《아니올시다. 좋은 소식이오이다.》

《뭐 좋은 소식? 그게 대체 뭔가?》

《네, 류희춘대감이 용한 의원 하나를 보내면서 나리의 병을 보아주라고 했소이다.》

《류대감이? 류대감이 어데서 그런 의원을 찾아냈다던가?》

《어데라니요? 다름아닌 이 한성바닥이옵니다.》

《한성에서? 하- 그런데 내가 왜 모르고있었을가? 웬간한 명의들은 내가 다 알터인데… 그래, 그 명의의 이름이 뭐라고 하더냐?》

《네, 허준이라 하오이다.》

《허준? 가만, 그 이름이 어딘가 귀에 익다-》

허준을 파멸시키려고 뻗닿게 이 집에 드나들던 허모의 사촉으로 귀에 익은 이름이건만 박근원은 끝내 허준을 기억해내지 못하였다. 참군은 허준이 병을 본 다음에 사실을 터놓는것이 더 효험이 있다고 타산하며 아닌보살하였다.

《온 한성시가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의원이니 대감어르신의 귀에 전해졌나 봅니다.》

《헌데 류대감이 그 의원을 왜 갑자기 나한테 보낸다더냐?》

이때라고 생각한 참군이 바싹 앞으로 다가섰다.

《그거야 류대감이 대사헌어르신의 몸을 걱정해서 보내신거지요.》

박근원은 충견의 목을 두드리듯 참군의 어깨를 가볍게 두세번 두드리며 흡족해하였다.

《음- 류대감의 그 진정이 참으로 고맙구나. 내가 류대감한테 감사해하더라구 인살 전하거라.》

사기가 난 참군은 자기가 오래동안 앓던 병을 허준이 단박에 고쳐준데 대해서와 여러 사람들속에서 돌아가는 허준의 의술과 관련한 일을 요란스레 과장하며 한바탕 쏟았다.

《그 의원의 의술이 그렇게도 용하단 말이지. 지금 어데 있느냐? 당장 데려오너라!》

《지금 문밖에 와있소이다.》

허준이 참군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서니 퉁퉁한 얼굴에 병색이 잔뜩 어려보이는 박근원이 참군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그 소문난 의원인가?》

허준이 가볍게 목례하였다.

《허준이라 하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내 병을 진단해보라구.》

근원은 허준이 과연 명의가 맞는지 가늠하려는듯 움푹 패인 두눈으로 허준을 여겨보았다. 보료에 걸써 앉아있는 근원의 량옆에 요염한 기생 둘이 붙어서 그의 넙적다리와 어깨를 새말간 두손으로 두드리고있었다. 시퍼런 대낮에 첨보는 사람앞에서 꺼리지 않고 녀인을 끼고있는 근원의 방약무인한 태도가 자존심을 건드렸으나 허준은 내색하지 않고 그앞으로 다가섰다.

허준의 뒤에 참군이 조심스레 앉았다. 자기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는 허준을 의아히 여기며 근원이 한마디하였다.

《뭘 그리 유심히 보나?》

허준의 뒤에 앉아있던 참군이 제가 안다는듯 얼른 나섰다.

《대감나리, 그게 바루 이 의원의 유명한 진찰법이오이다.》

《오, 그런가?》

허준이 근원의 얼굴을 관찰해보니 예상외로 창백하고 해쓱하였다. 눈시울밑은 과도한 주색의 후과로 푸릿푸릿하였다. 조중석으로 산해진미를 마주해서인지 배는 물동이처럼 뚱뚱하지만 도저히 기운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일명 사람들이 말하는 물살로 이루어진 육체였다. 손발을 만져보니 얼음장처럼 싸늘하였다. 허준은 정신을 가다듬고 맥을 짚어보았다. 예견했던바 그대로 맥이 미약하면서 삽(원활하지 못하고 거칠게 짚이는 맥)하였다.

대개 량반고관들과 한량들속에 이러한 병자들이 많았다. 녀색에 미쳐돌아가는 과도한 도락의 후과였던것이다.

허나 허준은 서둘러 진단을 내리기 전에 병상태를 좀더 확진해보기로 하였다.

《여기에 엎디시오이다.》

허준은 근원의 허리의 우아래를 예리한 촉감을 가진 손끝으로 가볍게 눌러보다가 콩팥이 있는 신유혈부위를 힘을 주어 꾹 눌렀다.

《으- 흥!-》

근원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강한 압통점이였다.

《이젠 됐소이다.》

근원이 일어나앉으며 기대어린 눈빛으로 허준에게 물었다.

《그래 무슨 병인것 같나?》 ·

그 물음에 허준은 확신성있게 대답하였다.

《일반적으로 높은 벼슬직에 있는 어른들속에서 나타나는 병이오이다.》

《대체 무슨 병인가? 좋다는 보약들과 진귀한 약들을 아무리 써도 영 기운이 나지 않거던. 몸은 점점 나는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도저히 기맥이 없는게 이상하지 않나?》

《그럴수밖에 없소이다. 나리는 나이에 비해 때이르게 무릎이 시리고 또 시큰거리고 걸으려면 다리맥이 없을것이오이다. 그리고 허리도 아플거구요. 몸이 지긋지긋하며 입맛이 썩 나지 않고 여기저기 안 아픈데가 없을것이오이다.》

《거참 신통하구만. 정말 내 몸이 그렇단 말이야.》

초조한 기색으로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참군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리더니 차츰 으쓱해하는 태도가 엿보였다.

주위를 둘러보고난 허준은 조용히 근원의 귀에 대고 나직이 말하였다.

《헌데 나리의 병명은 말하기가 좀 거북스러우니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내보냈으면 하오이다.》

근원이 의문스러운듯 허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허준이만 남고 나머지사람들은 나가라고 턱짓을 하였다.

참군과 녀인들이 나간 다음 근원은 초조히 물었다.

《그래, 도대체 무슨 병이게 그러나?》

허준은 잠시 머밋거리다가 낮으나 명확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나리의 병은 녀자들로 하여 생긴 병이오이다.》

근원이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마냥 눈알을 희번득거렸다.

《뭐라구? 그건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리인고? 세상에 그런 병도 있나?》

《나리의 병은 과도한 도락이 가져온 중한 병이옵니다.》

근원이 모를 일이라는듯 눈을 내리깔더니 머리를 기우뚱거렸다.

《중한 병이란 말이지.…》

《나리의 병은 그렇게 허줄히 볼게 아니오이다. 녀색에 절제없이 빠져 비명에 횡사한 어르신들이 어디 한둘이오이까?》

허준은 일단 여기에서 문득 말을 멈추었다. 이런 전례를 꼽으라면 끝이 없었다.

우리 나라는 물론 저 이웃나라에도 그러한 전례는 허다하였다. 어렵지 않게 그런 사실들과 일화들을 펴놓을수 있었다. 그러나 구태여 입에 올릴 필요는 없다.

근원은 허준이 말을 끊자 뒤말을 계속하라는듯 두눈을 끔벅이였다.

허준은 자연스레 이야기의 채를 근원에게로 돌려버리며 다음말을 이어갔다.

《그런거야 소인같은 의원보다 나리가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 그래 나라와 임금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셔야 할 나리가 그러한 녀인들때문에 귀한 옥체를 해친다는것이 어디 될 말이옵니까.》

박근원은 말없이 침묵만 지켰다. 허나 그는 속으로 이 의원에 대해 생각하고있는중이였다.

조정의 대신들도 사헌부의 대사헌인 자기앞에서는 눈치를 봐가며 말을 하군 한다. 그러나 허준이라는 이 명의는 가차없이 자기에게 색에 빠지지 말라고 재지 않고 권고하고있다.

어찌 보면 너 박근원은 색골이라는 핀잔이나 야유였고 지탄이라고 볼수 있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박근원은 이놈 봐라 어데다 대고 감히 하는 언짢은 생각이 치밀었으나 허준의 사심없고 대바른 성정이 가슴에 마쳐와 다시금 그의 일거일동을 세밀히 지켜보았다. 확실히 한성의 의원들가운데는 이런 담과 배짱을 가지고 자기 의술을 확신하는 의원은 없었다. 늘 골골거리는 체질이여서 한다하는 한성의 의원들에게 병을 보인 박근원이지만 허준이처럼 맞대놓고 《당신의 병은 계집질이 과도해서 생긴 병이요.》 하고 말하는 의원은 여직 보지 못하였다.

저러한 담과 배짱이라면 의원이 아니라 조정의 정승벼슬이래도 감당할수 있다. 보기 드문 인재가 바로 자기앞에 앉아있는 허준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저도모르게 박근원은 허준에 대한 공감이 슬며시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런 명의라면 놓치고싶지 않았다. 오늘의 만남이 앞으로의 친교로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여 근원은 상냥한 웃음을 띠우고 물었다.

《이보게, 의원! 내 자네를 믿구 또 사내끼리 하는 말이지만 세상에 녀자없이 무슨 재미가 있겠나? 그러나 내 앞으로 녀색을 멀리한다는 담보에서 솔직히 묻네만 그래, 내 병에 무슨 치료비방은 없나?》

허준은 자못 자기를 진지하게 대해주는 근원의 일변한 태도가 이상하였지만 의원의 본분에 맞게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그렇소이까? 그렇다면 소인의 말을 들어보시오이다. 사람에게서 정은 매우 귀중한 보물이오이다. 이 정은 신정이라고도 하옵니다. 나리의 허리에 있는 신유혈을 누를 때 그렇게도 심한 압통점이 나타나는것도 신정이 망탕 소모되였다는것을 의미하오이다. 원체 정이란 말도 극히 중요하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오이다. 이 정은 아주 귀한것이지만 대신 매우 적다고 하옵니다. 몸에 있는것은 모두 한되(한되는 1.8리터) 6홉(한홉은 한되의 십분의 일)뿐이옵니다. 이것은 남자가 16살에 정액을 한번도 배설하지 않았을 때의 수량이라 하옵니다.

이 정을 잘 조절하지 않고 망탕 소모하면 기가 쇠약해지며 기가 쇠약해지면 온갖 병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중에는 생명이 위태롭소이다. 나리의 지금 병증세도 바로 근본원인이 거기에 있소이다.》

근원은 이 방에서 사람들을 내보내라던 허준의 의도가 깨도되였다. 확실히 이 의원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갈마들었다. 허준은 계속 말을 이었다.

《특히 40살이전에 정을 망탕 소모하면 40살이 지나서부턴 기력이 갑자기 쇠진해지는것을 느끼게 되오이다. 그러면 온갖 잡병이 다 끼게 되면서 나중에는 손도 대지 못할 정도에 이르게 되오이다. 나리가 만일 욕망을 한번 억제하면 마치 등불을 한번 꺼서 기름을 저축하는것과 같소이다. 허나 제 욕망대로 망탕 정을 배설하면 이는 기름불이 꺼지려고 할 때 그 기름을 쏟아버리는것과 같사온데 어찌 심중치 않을수 있겠소이까.

그러니 사내들이 녀자들과의 관계에서 절제가 없으면 자기 몸을 해치는것은 물론 사내로서의 장한 일도 칠수 없소이다.》

허준은 여기서 말을 끊었다. 이 말은 의원으로서 병자에게 하는 말인 동시에 국가의 봉록을 그만큼 타먹었으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헌신분투함이 어떠냐 하는 그의 속대사이기도 하였다.

근원은 육중한 몸을 으시시 떨었다.

죽음! 죽음이란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것인가. 죽으면 땅속에 누워 좁디좁은 나무관안에 들어가 영원히 자기가 수결한 죄인들처럼 꼼짝 못하고 누워있어야 하지 않는가.

지금은 뭇사람들이 자기가 사헌부의 장관이라고 엎드려 설설 기고있지만 만약 땅속에 누워있게 되면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그런데 그 죽음이 이제 멀지 않은곳에 있다고 저 명의는 서슴없이 말하고있다. 동안이 좀 흐르자 근원은 자기를 다잡고 넌지시 물었다.

《이젠 잘 알겠네. 자넨 명의이니 이런 병쯤이야 땅 짚고 헤염치기일터인데 치료비방을 말해주게.》

《그럼 소인이 알려주는 비방을 잘 듣고 그대로 해보소이다.》

이무렵 허모는 뢰물보따리를 들고 박근원의 집문을 두드리고있었다. 대사헌의 도차지가 이 집으로 뻔질나게 드나드는 허모를 알아보고 반색을 했다.

뜨락에 들어서면서부터 깐깐히 의관을 정제한 허모는 방안동정을 살피느라 기웃거렸다. 박근원의 방을 엿보던 허모는 그만 그자리에 말뚝처럼 굳어져버렸다. 세상에 이런 변이 다 있는가. 귀신의 조화는 아닐텐데… 하면서 허모는 두세번 두손으로 실눈을 비비고 방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분명 박근원이앞에 마주앉아있는것은 허준이였다. 허모는 눈앞이 아찔하고 너렁청한 박근원의 뜰안이 빙빙 도는것만 같았다.

(아뿔싸, 내가 한발 늦었구나.)

허모는 무슨 정신으로 박근원의 집뜨락을 황황히 벗어났는지 알수 없었다. 집에 와보니 꿍져가지고갔던 뢰물짐이 제 손에 그냥 들리워져있었다. 급작스레 달아나다싶이 꼬리를 사리는 허모의 모습을 의아해 바라보던 도차지의 얼굴이 언뜻 떠올랐다.

이 무슨 망신인가. 박근원의 손발이 되여 돌아치는 그 도차지가 그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고발할것이다.

자기 방에 들어선 허모는 련거퍼 독한 감홍로를 사발들이로 마시고 벌렁 침상에 누웠다. 안해가 무슨 일인가 들여다보더니 머리를 기우뚱하다가 가버렸다. 천정으로 거미가 벌렁벌렁 기여가고있었다. 다리는 보기 드물게 긴데 몸뚱이는 왜 그리 작은지 기형적인 거미였다. 다리가 길어서 얼핏 보기에는 커보이지만 실지로는 힘이 약한듯싶었다. 자기앞으로 저보다 훨씬 작아보이는 거미가 다가오자 비실비실 뒤걸음질하였다.

허모는 새삼스레 자기의 힘과 능력을 두고 의심이 들었다. 자기가 허준보다 강하다고 여겼으나 오늘 여지없이 곤두박질당했다. 허모는 자기가 너무나도 허준의 명의술을 등한시했다는것을 깨달았다. 허나 이제와서 아무리 혀를 깨물며 후회를 했댔자 이미 때는 늦은것이였다.

비록 허준이 서얼이지만 사람의 목숨을 손에 쥐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는 명의술을 지닌 의원이였다. 분명 참군이란 자식이 대사헌에게 소개했을것이다.

허모는 피나도록 혀를 깨물었다. 늘 봐야 골골거리는 박근원에게 한성에서 제일 용하다는 의원을 붙여줄 생각을 왜 못했던가. 한성에 없으면 온 팔도강산을 뒤져서라도 찾아내여 박근원에게 붙여주었더라면 허준은 두말없이 지금쯤은 정배살이 갔을게 아닌가. 허준이 명의라는 소문이 짜하면 하루라도 오래 살고파 몸살을 앓는 고관대가의 량반들이 꿀종지에 불개미 모이듯 저저마다 찾아들것은 뻔하다. 혹 그러다가 나중엔 저 으리으리한 구중궁궐에 그 소문이 날아가면 왕실과 지엄한 임금까지…

그렇게 되면 지체높은 량반출신인 자기는 여지없이 서얼에게 패하고만다.

허모는 머리칼을 마구 줴뜯었다. 권력의 구도를 손금보듯 꿰들고있는 허모이다. 아무리 허준을 매장시키려고 해도 당장은 어쩌는 수가 없었다. 다시 박근원에게 입김을 불어넣자고 해도 이미 허준의 명의술을 인정한 박근원이라 서뿔리 다쳤다가는 코를 떼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버림을 받을수 있었다.

아직은 인내성있게 참는수밖에 없었다.

허나 허모는 실망하지 않았다. 자기가 조정의 백관들의 살생여부를 틀어쥐고있는 사헌부에 있는 한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것이다.

(허준이 이자식, 어디 두고보자. 내 기어이 너를 짓뭉개고 일어설터이다. 이 세상이 너같은 비천한 첩의 새끼가 활개치라구 그냥 놔둘것 같애? 미꾸라지 룡꿈이야. 네놈을 징벌하는것은 우리 모친의 사무친 원한풀이이고 또 설유년에 대한 나의 복수이다.)

한편 허준은 박근원이 처음과 달리 진중한 태도로 나오자 성근하게 치료비방을 설명하였다.

《나리의 이런 병에는 팔물탕을 써야 하오이다. 팔물탕이란 기를 보하는데서 으뜸인 사군자탕과 혈을 보하는데서 으뜸인 사물탕을 합한것이오이다.》

《음, 그리니 허해진 기와 혈을 같이 보한다 그 말이군.》

《그렇소이다. 그리고 가중나무뿌리껍질을 닦아서 가루내여 거기에다 술을 두고 풀같이 걸죽하게 반죽하여 벽오동씨만 하게 알약을 빚으시오이다. 이것을 저근피환이라 하오이다.》

《그건 무슨 효험을 가지고있나?》

《수렴(흘러나가는것을 거두어들이는것)작용이 있소이다. 이 알약을 팔물탕 달인물과 함께 드시오이다.》

《그럼 효험이 있나?》

《틀림없이 효험이 있을것이오이다.》

근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실렸다.

《이자 보니 자넨 의술도 높거니와 학문도 여간 깊지 않구만. 어쨌든 자네와 같은 명의를 만난건 내 복일세.》

허준은 당사자를 앞에 놓고 추어올리는 근원의 그 말이 멋적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치료기구를 집어넣으며 한마디 오금을 박았다.

《대감나리, 약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섭생이올시다. 그러니 잊지 마시고 류의하기 바라오이다.》

《알겠네. 내 명의의 말을 꼭 지키지.》

헌헌히 대척하는 박근원이였다. 허준이 떠날 때에는 도차지가 대문밖에까지 나와 바래주었다.

한달동안 허준의 처방대로 약을 달여먹으니 골골하던 박근원의 병이 하루가 다르게 나아져갔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얼음장같이 차던것이 훈훈해왔으며 다리에 기운이 동하는것이 알렸다. 그전에는 비들비들하며 고자처럼 어루쇠를 긁어내는 앵앵소리가 나더니 이제는 제법 기운찬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물론 이 기간에 매일같이 녀자들과 뒹굴던 도락질은 좀 뜸해졌으나 그렇다고 영 금한것은 아니였다.

허준의 덕으로 박근원의 병치료에서 효험이 보이자 참군은 이때라 생각하고 슬그머니 여쭈였다.

《대감나리, 그 명의가 옥에 갇혀있는데 어이하오리까?》

근원이 펄쩍 뛰였다.

《그 무슨 날벼락 맞을 소리냐! 어느 놈이 그런 사람에게 죄를 씌우려 한단 말이냐! 고현놈들, 잡으라는 나쁜 놈은 잡지 않구 생사람을 잡다니? 당장 놓아주라! 다시한번 그랬다간 누구든 용서없을줄 알라!》

참군은 차마 사헌부 감찰 허모가 시켜서 한 일이라고 제 입으로 뱉을수 없었다. 그자리에서 대충 얼버무리고 나와서는 허준을 제꺽 출옥시켰다. 그리고는 자기 집 식구들과 먼 친척들에 이르기까지 병을 볼 일이 있으면 허준을 불러들이군 하였다.

박근원의 말이 허모의 귀에 안 들어갈리 없었다. 허모는 참군이 허준을 리용하여 자기의 일가친척들을 치료하는 모양을 먼발치에서 쓰겁게 바라보았다.

허준이 출옥해 나오자 기동은 너무 좋아 부둥켜안고 빙빙 돌아갔다. 기동에게 잡혀 거쿨진 몸이 둥둥 떠서 허허 웃는 허준의 그 모습을 정차게 바라보는 설유의 그윽한 눈가에서 샘같이 맑고 뜨거운 눈물이 구슬마냥 굴러내렸다.

허준이 옥에서 풀려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칠성이가 먼저 마당에 들어섰다. 칠성이가 울먹울먹해서 허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의원님, 옥고를 치르시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이까.》

《어서 일어나게.》

허준은 들먹이는 칠성이의 어깨를 다정히 잡아 일으켜세웠다.

칠성이를 일으켜세우고 서로가 반가와하는데 달래가 웬 젊은 사내를 꼬리에 달고 나는듯이 달려들어오더니 천성그대로 호들갑을 떨며 수선을 피웠다.

《아유!- 우리 의원님께서 신수가 멀쩡해서 나오셨네. 그것두 모르구 사모님은 괜히 근심하시느라 그 고운 얼굴에 주름살이 졌군요. 그러니 우리 내인들만 속을 태운다니깐. 어쨌든 우리 의원님은 사지판에서도 살아나실분이예요.》

하더니만 달래가 갑자기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의원님! 그 모진 옥살이에서 귀체만강하였나이까. 흑흑-》

도저히 갈피를 잡을수 없는 달래의 돌변한 태도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허준은 달래의 심중이 가슴에 마쳐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달래의 뒤에 서있는 젊은 사내를 보고 물었다.

《헌데 이 사람은 대체 뉜가?》

달래의 뒤에 아전행색을 한 젊은 사나이가 어줍은 기색으로 서있었던것이다.

그 말에야 달래가 눈물을 씻으며 본래의 자세로 또 호들갑을 떨었다.

《아유, 내 정신 좀 봐. 의원님! 제 서방이옵니다.》

《뭐?!》 ·

허준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모두가 달래와 젊은 사내를 돌아보며 의혹을 금치 못하였다.

아전행색의 젊은 사내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는 칠성이의 눈찌가 곱지 않았다.

달래가 손가락으로 칠성이의 이마빡을 톡- 때렸다.

《칠성아, 넌 왜 그렇게 눈을 희뜩거리는거냐? 너한테 매형이 생겼는데 기쁘지 않니?》

시집가서 몇달만에 아이낳이도 못해보고 청상과부가 된 달래이다. 갓 스물한살인 달래는 자기보다 두살 아래인 칠성이와 여간 자별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은 친동기간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칠성이가 량볼에 밤알을 물고 투덜거렸다.

《누가 나쁘다나? 누이도 참 한심해, 이 한성바닥에 그렇게두 사람이 없어 하필이면 량반놈들 가랭이에 달라붙어 사는 아전나부랭이한테 몸을 척척 맡겨요?》

달래가 칠성이의 코를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아야!》

《너 이 누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너한테 기딱막히게 좋은 매부를 데려왔는데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게 다야? 다시는 날 보구 누나라고 부르지 말아. 알겠어?》

설유가 두눈에 웃음을 머금고 서로 찧고받으며 싱갱이질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구레나룻이 수북한 사내가 허준에게 덥석 인사를 하였다.

《의원님께 문안드리오이다.》

허준은 초면에 칠성이가 그렇게 볼부은 소리를 하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는듯 대범하게 몸가짐을 하는 사내다운 기질이 마음에 들어 다정하게 물었다.

《자넨 어데 사는 누구인가?》

《형조에서 일보는 박응규라 하옵니다. 본관은 밀양인데 부친을 따라 한성으로 왔소이다.》

그의 말에 허준은 물론 모두가 놀랐다. 형조라면 한성부에 속한것이 아니라 륙조에 속하는 조정의 중앙관청이였기때문이다.

헌데 어떻게 되여 달래가 그런 어마어마한 관청의 아전과 눈이 맞았을가. 그리고 아전이라 해두 가재도 게편이라고 량반과 한짝이 아닌가. 모두의 눈에 비낀 의혹을 눈치챈 달래가 생글거리며 나섰다.

《조금도 걱정마시오이다. 우리 서방님의 부친은 몰락한 선비올시다. 그리고 저이도 우리같은 평백성들과 마음이 같사와요.》

허준은 달래와 박응규의 얼굴을 번갈아 살펴보다가 넌지시 물었다.

《헌데 어떻게 되여 서로 만났나?》

달래가 우물쭈물하는 티가 전혀없이 선뜻 대답하였다.

《제가 녹여냈지요 뭐. 또 저이도 날 몹시 좋아하구요.》

박응규는 게면쩍은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정직한 사내라는것이 대번에 알렸다. 허준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달래가 정말 보통이 아니야. 괜찮아, 정말 잘되였어!》

달래가 반색하며 두손을 가슴에 모아붙였다.

《의원님! 그 말이 정말이오이까?》

《정말아니구, 내 맘에 흠뻑 드네. 부인이 보기에도 그렇지 않소?》

설유가 허준의 그 물음에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눈가에 웃음을 짓고 달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달래가 설유의 가슴에 조용히 얼굴을 묻었다. 허준이 분위기를 일소하듯 호탕하게 말을 이었다.

《이자 보니 달래가 엉큼하단 말이야. 일전에 옥에 왔을적에 내가 풀려나오면 인차 국수를 먹게 될것이라고 하더니 그때 벌써 저들끼리 마련이 있었구만. 안그래?》

설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로 달래는 재잘거렸다.

《이 달래가 어찌 의원님앞에서 거짓을 꾸미겠나이까. 그랬다간 천벌을 받으려구요.》

눈이 퀭해서 이 사람, 저 사람 살피던 기동이가 화제거리가 웃음으로 번져지자 기세가 올라 집주인답게 소리쳤다.

《자, 그러니 오늘은 복이 쌍으로 이 집에 들어왔소이다. 의원님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셨지, 또 우리 달래동생이 끌끌한 서방님을 척 데리고 오셨지, 그러니 한상 차려야 할가 봅니다. 모두 뜰안에 서있지 말고 어서 방으로 들어가십시다.》

잠간새에 방에는 설유와 기동의 안해가 준비하고 또 달래가 차려가지고 온 음식으로 푸짐한 상이 마련되였다.

달래가 원앙이 새겨진 술잔을 들자 박응규가 저들이 가져온 고량주를 찰찰 부었다.

《의원님, 칠성이와 저에게 새 생명과 건강을 안겨준 의원님께 한평생 변함없을 우리들의 마음담아 이 잔을 부었나이다.》

《고맙네. 우리 서로 의지해 험한 세월을 헤쳐가자구. 사람의 한생에 좋은 사람 만난다는것도 복이거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 해로하게.》

이어 그들은 설유에게도 술을 부었다.

《정말 고마와요. 우린 달래에게 이런 행복한 날이 오리라 믿었어요. 부디 행복하세요.》

칠성이와 기동이부부, 달래와 박응규들은 허준이내외와 밤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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