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3 장  한성에 나타난 시골의원

2

 

아지랑이 피여나는 따스한 봄날에 산음을 떠났는데 벌써 엄동설한의 겨울이 닥쳐왔다.

허준은 병자치료로 언제 봄이 가고 여름,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왔는지도 몰랐다.

지금에 와서 그의 의술은 그 누구도 무시할수 없는것으로 되였다.

허나 워낙 터세가 센 한성부인지라 아직 부자동이라고 불리우는 장동의 량반댁들은 허준을 시골에서 굴러온 의원이라고 숫보면서 한성부 의원들한테서만 치료받고있었다.

한성부에 있다는 한다하는 의원들도 그러한 권문세가들과 손벽을 치며 허준의 의술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일찍 일어나 밖에 나섰던 기동이가 후닥닥 뛰여들어오며 질겁하여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났소이다.》

허준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왜 그리 헤덤비며 신새벽부터 고함질이냐? 대체 무슨 일이냐?》

《선생님, 우리 집 문짝에 이런 글이…》

《어디 좀 보자.》

허준은 기동이 내미는 종이장에 눈길을 주었다.

《산음현의 시골 촌의원에게 경고하노라!

비천한 서얼출신인 네놈이 과거장에서 쫓겨난 그 주제에 의원이랍시고 한성부가 좁다하게 제노라 날쳐대는데 경거망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이제 다시 명의흉내를 내면서 사람들을 미혹시키며 치료에 나선다면 의과자격을 갖추지 못한 의원으로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희롱하는 놈이라고 한성부에 고소하여 옥에 처넣고말터이다. 그러니 찍소리 말고 네가 살던 시골로 돌아갈것을 권고한다!》

《선생님, 제 다시 보소이다.》

허준은 아무 말도 없이 종이장을 기동에게 넘겨주었다. 글을 다 읽고난 기동의 눈에 번개불이 일었다.

《원, 시러베아들놈들같으니! 망할놈의 자식들! 저들은 다 죽어가는 병자들을 제대로 살려내지도 못하면서 남을 걸고들어?》

분격하여 길길이 뛰는 기동을 만류하며 허준이 담담한 어조로 말하였다.

《됐네, 그만하게.》

이때 뜰안으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이 곤두선 기동이 지게문을 벌컥 열고 뜰안에 나섰다. 웬 녀인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얼굴이 질려 들어섰다. 그는 다짜고짜로 기동에게 하소연하였다.

《우리 주인이 다 죽게 되였소이다. 그래서 의원님을…》

《지금 의원님께서 중한 일이 생겨서 그리하오니 당장은 안되겠소이다.》

《그럼 우리 주인은 어떻게 하오이까? 그대로 놔두면 숨이 질것 같은데 제발 좀 살려주사이다.》

기동이 그 말에 주춤거렸다. 이자 방금 협박장을 받은 허준이 병자치료의 여유가 있겠는지…

불쑥 허준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들이 서로 오간 이야기를 다 들었던것이다.

《아주머니, 주인이 어떻게 앓소이까?》

《네, 때식을 제대로 못하고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그만 현훈증이 일면서 정신을 잃고 산에 쓰러졌소이다. 하도 돌아오지 않아 미심결에 마중나갔더니 산중턱에 쓰러져있지 않겠소이까. 너무 늦게야 발견하다나니 이 엄동설한에 몸이 다 얼어 꽛꽛해진게 살아나겠는지 모르겠나이다. 의원님, 제발 우리 주인을 살려주세요. 세상에 참 이런 일이 다 생기다니…》

녀인은 설음이 북받쳐 말끝을 채 맺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빨리 들어가서 치료도구들을 내오너라.》

기동이 놀라며 부르짖었다.

《아니? 선생님, 금방 협박장을 받았는데 일없겠소이까?》

허준의 짙은 눈섭이 꿈틀거렸다.

《뭐라구? 너 지금 제정신이 있느냐. 협박장이 어쨌단 말이냐.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따위 종이장이 어쨌단 말이냐.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제몸부터 생각한다면 그게 무슨 의원이겠느냐. 두말말고 빨리 내오거라.》

《선생님, 알겠소이다.》

허준과 기동은 녀인과 함께 숨이 턱에 닿게 병자의 집에 허겁지겁 들어섰다.

녀인의 주인인듯 한 중년의 사나이가 인사불성이 되여 누워있었다. 얼굴은 너무 얼어서 시퍼렇고 온몸은 장작개비처럼 꽛꽛하였다. 사나이를 일별해본 허준은 익숙된 동작으로 손가락끝을 병자의 코구멍에 가져다대였다. 다행히도 아직 숨소리가 간간하였다. 허준은 녀인을 돌아보며 다급히 말하였다.

《아주머닌 어서 부엌에서 재를 뜨뜻할 정도로 덥혀 주머니에 넣어 들여오시우. 너무 뜨거우면 절대로 안되우다.》

잠시후 녀인이 허준의 말대로 뜨뜻한 재를 채운 주머니를 들고 다급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허준은 그 주머니를 넘겨받아 연신 교체해가면서 병자의 가슴을 덥혀주었다. 그러면서 기동에게 설명해주었다.

《이렇게 얼어죽게 된 병자를 꽁꽁 얼었다고 해서 인차 불로 뜨겁게 해주면 몸의 찬기운과 불기운이 서로 상박되여 영낙없이 죽게 되네. 이걸 꼭 명심해두라구.》

병자가 좀 피여나자 허준은 생강을 달인 물을 먹이도록 하였다. 병자의 집에서 돌아온 허준은 기동을 앉혀놓고 엄하게 질책하였다.

《자넨 의술을 배우기전에 병자를 대하는 태도부터 먼저 배워야겠어. 병을 치료하는 의원이 병자보다 제 일신부터 먼저 생각하면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아무리 명의술을 지녔다 해도 그런 마음이 없으면 병을 고칠수 없어. 병자들을 제살붙이처럼 생각하고 치료에 제 육신을 바칠 때 의원이 지닌 명의술도 은을 낼수 있는거야. 내 말의 뜻을 알겠나?》

머리를 수그린 기동의 대답은 예상외로 씩씩하였다.

《선생님, 알겠소이다. 제 꼭 명심하겠소이다.》

《그리고 사람은 한번 마음을 먹었으면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곧바로 나가는 강직성이 있어야 아무 일에서나 성공할수 있는거네. 그따위 협박장이 뭐길래 그렇게 허둥거리며 벌벌 떠나? 그래가지구선 아무 일도 할수 없네. 사내로 태여나 무슨 일을 치려면 담이 있어야 해. 강직한 마음과 담을 지니려면 사나이로서의 의로운 뜻과 확고한 목표를 지녀야 하네. 그것만 있으면 무서울것이 없으며 자그마한 일에 임자처럼 허둥거리질 않아. 임잔 앞으로 명의가 되겠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울것 같나? 사람이 자기가 세운 뜻을 실현하자면 오늘보다 더 험한 곤경도 겪어야 할터인데 그렇게 심지가 나약해서 장차 어떻게 하겠나?》

기동은 허준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준이 명의라는것은 실지 제눈으로 체험한 기동이였다. 허나 그 명의술로 수굿이 치료만 하는 촌선비인줄 알았지 그의 마음속에 그렇게도 당당한 의기가 들어있는지는 몰랐었다. 하지만 기동은 허준의 됨됨을 새로운 눈으로 보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좀처럼 털어버릴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 기동이 우려하고 걱정하던 일은 종시 터지고야말았다.

정오가 지날무렵 점심상을 방금 물렸는데 라졸복색을 한 군노 셋이 집뜨락으로 욱- 밀려들어왔다. 하나같이 감때사납게 생긴자들이였다. 라장인듯 한 털보가 황황히 뜰아래로 내려서는 설유와 기동을 눈을 치뜨고 쏘아보더니 거칠게 물었다.

《누가 허준인가?》

허준이 마루에 성큼 나섰다.

《나요. 왜 그러오?》

라장의 퉁방울눈이 허준의 온몸을 훑었다.

《우린 한성부에서 나왔다. 참군나리께서 당신을 데려오라고 보냈으니 우리와 함께 가야겠다.》

설유와 기동의 얼굴에 놀라움과 공포의 빛이 비꼈다. 기동이가 한걸음 나서며 라장에게 따졌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구 우리 선생님을 끌어가나이까?》

라장의 뒤에 섰던 곰보가 꽥- 소리를 지르며 기동에게 눈을 부라렸다.

《넌 왜 중뿔나게 나서면서 그래? 가보면 알게 아니야.》

허준이 안심하라는듯 설유에게 눈을 한번 끔뻑하고는 기동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었다.

《걱정말게. 다른 일이 없을거네. 기동이, 내가 없는 사이에 찾아오는 병자들을 잘 봐주게나.》

설유와 기동이가 허준의 손을 부여잡고 놓을줄 몰랐다. 그들의 머리우에 라장의 돼지멱따는 고함소리가 터졌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서 떨어지라.》

그리고는 자기 패당들에게 한마디 더 소리쳤다.

《시간이 늦으면 우리가 벼락맞는다. 어서 빨리 가자!》

허준은 라졸들의 압송하에 한성부에로 끌려갔다. 하루아침에 허준은 영문도 모르고 옥에 갇히였다. 이무렵 허모는 오매앞에 앉아있었다.

《으하하!- 네놈이 이젠 나한테 꼼짝 못하게 되였지. 이 허모가 그렇게 만만할줄 알았더냐! 이래뵈두 고귀한 량반이란말이야. 네깟놈이 뭐 날 디디구 올라서보겠다구? 흥, 어림없어, 어림없단말이다! 네놈의 신세가 어떻게 되나 내 좀 구경해주지…》

자리에 누워있던 오매가 긴긴세월 병상에 있던 병자답지 않게 벌떡 일어나앉았다.

《무슨 희소식이라두 있느냐? 오자바람으로 정신나간 놈처럼 혼자서 그렇게 좋아하느냐? 내가 알면 안되겠느냐?》

《어머니, 그 허준이 자식말이요, 한성에 올라가서 네활개를 치면서 병자들을 치료하는걸 내가 옥에 처넣고말았수다.》

《뭐뭐? 그게 적실한 말이냐?》

그렇게도 피둥피둥하던 오매의 얼굴은 긴 병의 고행길로 훌쭉해지고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흰서리가 보였다.

허준이 명의술을 소유하고 류이태의 권유로 한성에까지 진출하여 의술을 떨치고있을 때 허모는 가만있지 않았다.

조정의 권력지반을 주시하면서 이미전부터 줄을 잡은 대사헌 박근원에게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아버지 허륜이 뒤에서 적지 않게 뒤받침해주었다. 허륜은 허준의 모자가 산음에 내려가고 허모가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때부터 허모가 요구하는대로 금은붙이를 내놓군 하였다. 현감이라는 벼슬을 턱에 걸고 긁어모은 재물과 아버지가 내놓은 금전으로 허모는 대사헌 박근원을 흠뻑 주물러놓았다. 한성의 북산기슭에 자리잡은 박근원의 집에 한해치고 대여섯번은 행차한 허모를 박근원이 모른다고 할리 없었다. 결국은 한해전에 허모는 사헌부의 감찰(정6품)벼슬에 임명되게 되였다.

감찰이라고 하면 사헌부에서는 제일 낮은 품계의 벼슬이였지만 허모에게 있어서 이것은 룡이 개천에서 한강으로 뛰여든것이나 같은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그의 소원대로 조정의 중앙관직에 발을 붙인것이다. 물론 허모가 차지한 감찰의 벼슬품계우에는 지평(정5품)이 있었고 그우에는 또 장령(정4품), 집의(종3품), 대사헌(종2품) 등의 더 높은 벼슬직이 있었다.

이제 다시한번 용을 써서 벼슬의 동아줄을 잡고 권력의 상층에로 치닫는것은 자기의 팽이머리와 능력으로써는 시간문제라고 스스로 자부하고있는 허모는 장차 사헌부의 제일 높은 벼슬인 대사헌도 자기가 차지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감찰로 임명되여 한성에 올라온 허모는 명의로 한창 이름을 들날리고있는 허준을 매장해버리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이번 계책은 권력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못하는짓이 없는 위력한 수단이라는 허모의 신조를 더욱 굳혀주었다.

원체 사헌부의 직능자체가 모든 관리들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고 협잡행위를 단속하는 일이여서 허모는 사헌부에 올라온 즉시로 명의라고 이름을 떨치고있는 허준의 행적을 낱낱이 장악하였다.

산음이나 사천과 같은 지방관청의 관리들은 물론 개경부나 한성부의 관리들도 사헌부관리의 말이라고 하면 비록 그 벼슬품계가 정6품인 감찰의 말이라 해도 허술히 대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금전이 그뒤를 따르니 공것이라면 언똥이라도 삼킬 위인들이 가만있을리 만무하였다.

금년초에 허준이 한성에까지 올라와 명의로 이름을 날리고있다는 소문이 허모의 귀에도 들려왔다. 허모로서는 몹시 떫은 감을 입에 넣은듯 한 불길한 소식이였다. 그러다가 왕궁에까지 그 소문이 들어가면 난사였다.

더우기 명의라고 하면 권세와 부귀에 물젖은자들이 그 부귀영화를 오래 누리기 위해 자기의 건강과 장수에 자못 왼심을 쓰고있는지라 자칫 잘못하면 허준이 고관대가에까지 손을 뻗칠수 있었다. 자기의 병을 보아주고 목숨을 구해주며 장수를 담보하는 명의의 부탁을 외면할 대감들이 과연 어디에 있을터인가.

방임할수 없었다. 이것을 그냥 허용하고 방임해두면 서자인 허준이 적자인 이 허모를 딛고 올라설수 있었다.

한편 이것은 설유에 대한 앙갚음이기도 했다.

설유가 허준에게 시집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허모는 뒤로 벌컥 나자빠졌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설유를 품에 안는 꿈을 꾸며 앙앙불락하던 자기가 아닌가. 그런데 자기는 거들떠보지 않고 심지어 말 못하는 종신불구로 만들번했던 설유가 다른 사람도 아닌 허준에게 시집갔다니 울화통이 터져 미칠것만 같았다. 욕심같아서는 허준을 아예 죽여버려 설유가 기절초풍하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그렇게는 못한다쳐도 만일 허준이 귀양간다면 설유가 한절반 혼이 빠져 망연자실할것이라고 허모는 생각했다. 그 길만이 자기의 울분과 한을 풀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다.

허모는 얼마전 한성부의 서윤에게 허준을 옥에 처넣으라고 귀띔했고 서윤은 참군을 시켜 허준을 끌어온것이다. 협박장은 허모가 쓴것이였다.

한성의 의원들이 허준에게 아무리 시기심을 가지고 아니꼽게 본다고 해도 고루한 선비의 기질을 타고난 이들이 협박장을 붙이고 관가에 고소하여 옥에 처넣을 담은 없었다.

허모는 이번 기회에 허준을 완전히 매장시키려고 작정하였다.

몇달 옥살이를 시켜 혼을 뽑아놓은 다음에는 적합한 죄목을 들씌워 먼곳에 귀양을 보내자는것이 허모의 계책이였다. 허모는 귀양살이중에서도 가장 모진 위리안치(정배보낸 죄인이 거처하는 집둘레에 가시울타리를 치고 자유를 구속하는 형벌)를 시키려고 작정하였다. 당초에 이 세상에서 자기의 이복동생인 허준을 없애버리자는것이였다.

이것은 사헌부관리인 허모로서는 십분 가능한 일이였다. 권세만 있으면 죄목과 형벌은 꾸며내기탓인것이다.

한가지 애석한것은 아버지 허륜이 두달전에 이 세상을 하직한것이였다. 자기가 조정의 중앙관청에 진출하여 제발로 걸어갈무렵에 아버지가 별세한것은 참말로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허모는 자기를 금전으로 밀어준 아버지에 대하여 무등 고맙게 생각하고있었다. 허나 허륜의 비명은 처첩생활의 번민과 질시, 불화로 얻은 심화병인지라 제손으로 제눈을 찌른 격이라고 허모는 제나름의 견해를 가지고있었다.

이제는 남은 어머니만이라도 잘 돌보아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주 룡천고을에 걸음을 하군 하였는데 오늘은 이런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였던것이다. 당장 앓고있는 어머니를 한성으로 데려가고싶었으나 자리도 채 잡지 못한 처지에서 조금 더 두고보기로 하였다. 가만 살펴보니 병색이 짙은 어머니는 얼마 오래 살것 같지 못했다.

(모든 불화의 근원은 허준이 그놈한테 있어!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려면 어떻게 하나 그 자식이 이 세상에서 아예 없어져야 해!)

가늘게 쪼프린 허모의 실눈에 독기가 언뜻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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