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산음의 명의

3

 

그날밤 허모는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만하면 류이태가 자기가 던진 낚시에 걸렸으니 앞으로 허준의 일이 어떻게 펴나가리라는것은 눈감고도 알수 있었다. 허나 허모는 이 시각 허준의 일때문이 아니라 아릿다운 설유의 자태가 눈앞에 얼른거려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한성에 갈적마다 제노라는 미인들을 품안에서 주물러대던 이 허모가 아무렴 이 촌구석에 있는 미인을 놓친단 말인가. 아니될 말이야. 그러면 허모가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허모는 불이 설설 이는 화독처럼 몸이 달아올랐다.

허모에게는 자기나름의 생활신조가 있었다. 《죽은 정승 산 개보다 못하다.》는 옛사람들의 말이야말로 자기의 생활신조를 집약화한 고견이라고 생각하고있는 허모이다.

허모는 사람의 생이란 그닥 길지 않으며 또 하늘은 사람에게 한번의 인생 즉 한생밖에 주지 않았으니 그 한생을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자기의 이 생각을 철석같은 생활신조로 골수에 새겨넣은 허모이다. 이로부터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마음껏 먹고 즐겨야 한다는것이 다름아닌 허모의 생활신조이자 지론이였다. 거기에서 기본으로 되는것은 권력과 재력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인간으로서 누릴수 있는 온갖 향락을 마음껏 누리는것이였다. 그 향락가운데서 최대의 락은 자기의 욕정을 마음껏 향유하며 이 세상의 온갖 미인들을 제하고싶은대로 데리고 즐기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는 허모였기에 자기의 방탕을 합리화하는 제나름대로의 론조까지 가지고있었다.

(괜히 삼계탕을 쓸 때 남자에게는 암닭을 써야 효험이 있고 녀자에게는 수닭을 써야 효험이 있나? 그건 다 서로 남녀상합이 필수불가결의 리치라는 소리렷다. 말하자면 음양의 원리가 남녀간의 그 일에도 적합하단 말이 아닌가. 결국 이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자는 계집이 없인 못살구 녀잔 사내없인 못산다는게지. 그러니 제아무리 도덕군자라 해도 녀색만은 멀리 하지 못한단 말이야. 난 인간세상의 그 리치를 따르는 명실공히 사내라고 당당히 말할수 있어. )

이런 허모의 눈앞에 불쑥 천하의 절색인 설유가 나타난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년을 삼킬수 있을가? 만일 그년을 내가 차지하면 기필코 허준이 그 자식의 일은 닭알장사 속구구가 되고말터인데…)

래일 아침이면 서원으로 떠나기로 내정한 허모였으나 머리를 저었다. 하루이틀 늦는다고 서원에서 쫓아내지는 않을것이다. 늦게 도착한 구실은 얼마든지 지어낼수 있었다.

이튿날부터 허모는 류이태의 집 앞골목에 숨어 기회를 엿보기 시작하였다. 첫날에는 소득이 없었다. 두번째 날에도 여전히 소득은 없었다. 문제는 류이태가 치료를 나가고 설유가 혼자 집안에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것이였다.

(오늘은 무슨 마련을 봐야 하겠는데… 셋이란 수자야 길수가 아닌가? 그러니 오늘은 필경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몰라.)

허모는 달아오르다못해 널뛰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눅잦히며 인내성있게 기다렸다.

그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사시(오전 9~11시)경에 상투를 튼 중년사내가 헐레벌떡 류이태의 집으로 뛰여들어가는것이였다.

허모는 바싹 긴장하여 류이태의 대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인차 중년사나이를 앞세우고 류이태가 치료가방을 들고 큰길쪽으로 사라졌다. 사위를 한바퀴 휘둘러본 허모는 다급한 시늉을 하며 류이태의 집마당으로 뛰여들어갔다.

《의원님! 의원님!》

다급한 웨침소리를 듣고 설유가 아래방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보았다.

《무슨 일이오이까?》

《아씨! 의원님을 빨리 좀!》

《아버진 방금 급한 병자가 있어 치료나갔소이다.》

《어이쿠!-》

허모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털써덕 주저앉았다.

《아이고! 우리 작은어머닌 이젠 영낙없이 죽었구나!》

설유가 황황히 뜰아래로 내려섰다.

《도련님, 대체 무슨 일이오이까?》

《네, 사실은 작은어머니 병이 퍼그나 나았기에 전 래일 서원으로 떠나려고 했지요. 떠나기 전에 동생이랑 작은어머니에게 뭘 좀 사주려고 함께 저자에 나가는데 글쎄 갑자기 행길에서 작은어머니가 얼굴이 해쓱해지면서 맥없이 그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숨소리마저 희미한게 당장 무슨 일이 날것 같습디다. 창황중에 당한 일이라 그옆에 있는 객사에 작은어머니를 눕혀놓고 동생더러 지키게 하고 이렇게 막 달려오는중입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원 세상에 이런 난사라구야. 헌데 의원님도 안 계시니 이걸 어떡하면 좋습니까?》

설유가 급히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치료에 필요한것들을 싸가지고나왔다.

《도련님! 빨리 가시오이다. 제가 봐드리지요.》

《아니, 아씨가요?!》

《사람이 당장 죽어가는데 이럴새가 있소이까.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가시오이다!》

가벼운 흥분이 허모의 가슴속에서 전률하였다. 그 흥분으로 하여 다리마저 후들후들 떨리는듯싶다. 그러나 허모는 끓어오르는 자기의 감정을 다잡으며 설유를 꼬리에 달고 거의 달음박질하다싶이 하며 완기와 이미 약속한 객사로 발걸음을 다그쳤다.

삐익- 무거운 돌쩌귀소리를 내며 객사의 대문이 힘겹게 열리였다. 언뜻 객사의 담장에 붙어서있는 완기가 아무 일도 없다는듯 머리를 흔드는것이 허모의 눈에 띄였다. 이미 약속된 신호였다. 오직 병자를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에만 옴해있는 설유의 눈에 완기의 그러한 몸짓이 띄울리 만무하였다.

ㄱ자형으로 생긴 객사의 맨 끝방으로 허모는 바삐 재우쳐갔다. 그뒤를 따르던 설유가 물었다.

《병자가 든 방이 어디나이까?》

《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여서 조용한 제일 끝방에 눕혀놓았소이다.》

끝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며 허모가 대척하였다. 설유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방안에 들어섰다. 두칸으로 되여있는 방이다. 아래방엔 병자도 그를 간호한다는 허준의 모습도 없었다.

《아니, 병자는?》

《네, 저 웃방에 누워있소이다. 어서!》

《그렇소이까?》

설유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웃방을 들여다보는데 어느새 허모는 방문의 빗장을 슬쩍 걸어놓는다. 그리고는 설유의 옆에 다가섰다.

《자, 여기 웃방에 들어가시오이다.》

웃방으로 한발을 내짚던 설유가 의아해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웃방에도 병자가 없지 않소이까?》

불시에 짙은 의혹의 빛이 설유의 고운 눈에 어렸다. 생긋이 웃을 때에는 그 눈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왔는데 이렇게 의혹짙은 눈은 그것대로 더 매력이 있었다. 허모는 입술이 다 타드는것 같았다. 열에 뜬 허모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씨! 실은 제…》

순간 반사적으로 설유가 몸을 옹송그렸다.

《왜 그러나이까? 있다던 병자는 어디 있소이까?》

설유의 눈이 놀라움으로 하여 더욱 커졌다. 버들잎같은 눈섭의 바깥쪽이 그 놀라움으로 하여 약간 들리운다.

례의를 차려 자기의 성의를 한껏 보이되 조심히 다루어야지 자칫 잘못하면 우리안에 다 잡아넣은 파랑새를 다쳐도 못 보고 놓쳐버릴수 있다는 위구감에 허모는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은근하면서도 례의있는 어조로 애원하였다.

《아씨! 달리 생각지 마소이다. 량반댁가세에 어울리지 않는 무례한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하소이다. 허나 아씨를 보는 그 순간부터 아씨에게로 쏠리는 마음이 불같이 동하여 자기를 자제 못하고 이런 몰렴치한 행동을 하였으니 부디 이 소행을 리해해주시기 바라나이다. 아씨의 얼굴을 마음놓고 바라보고싶어서 륜리에 어긋나지만 이런 일을 꾸몄소이다.》

사태의 진상을 깨닫는 설유의 낯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허나 그 눈빛에는 겁기란 전혀 엿볼수 없었다. 오히려 서리찬 랭랭한 눈빛이였다.

《전 빨리 집으로 가야 하오이다. 숱한 사람들이 지금 절 기다리고있소이다!》

조급해진 허모는 설유앞에 무릎꿇고 주저앉았다.

《아씨! 잠간만이라도 저의 정을 받아주사이다. 진정으로 아씨를 사모하는 저의 정을 말이오이다.》

《도련님! 절 막지 마소이다. 전 시간이 급한 사람입니다.》

《시간이 정 급하면 잠간만이라도…》

허모는 설유의 하얀 손을 덥석 그러잡았다.

《어마나!-》

설유가 뒤로 물러서며 손을 빼려고 모지름을 썼다. 허모가 설유의 손목을 더욱 으스러지게 그러쥔다.

《아씨! 아씨! 한번만이라도…》

허모의 목소리는 흥분과 격정으로 떨렸다. 거센 숨소리가 온 방안을 들었다놓는다. 설유가 더욱더 모지름을 쓰며 우악스러운 터럭손에서 자기의 손목을 뽑으려고 하였다.

《도련님! 이러면 안되오이다! 내 손을 놓으시오이다!》

허모는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설유를 무작정 그러안았다. 동실한 어깨가 허모의 팔에 류다른 촉감을 안겨주었다.

《도련님! 이걸 놓으세요. 이러면 안돼요!》

설유의 고함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허모는 설유의 동실한 어깨와 토실토실한 감각이 느껴지는 허리를 세괃게 그러안으며 속으로 뇌까렸다.

(네년은 이젠 올데갈데 없는 내거야! 네가 아무리 애쓴들 용빼는수가 없어! 객사의 이 빈방엔 너와 나뿐이야. 내 오늘 네년을 축 늘어지게 해주마!)

죽어라고 모지름을 쓰며 몸을 비틀던 설유의 몸이 문득 예상외로 고분해졌다.

(그러니 네년두 결국 남녀간의 이 놀음이 싫지 않단 말이지, 진작 그럴것이지 태가락을 부리긴…)

허모는 속으로 쾌재를 올리며 녀인고유의 체취를 마음껏 들이키려는듯 코를 벌름거렸다. 그의 거쿨진 손이 설유의 몸의 우아래를 향방없이 더듬었다. 설유는 정신없이 마구 덤벼치는 허모의 그 완력에 못 견디는척 하면서 손더듬으로 자기의 가방에서 침통을 꺼내들었다. 한창 설유의 옷섶을 헤집던 허모의 입에서 갑자기 《헉!》하는 이상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바람에 설유를 우악스럽게 그러안았던 허모의 손이 한순간 풀어졌다. 허모에게 깔렸던 설유가 재빨리 몸을 빼고 일어나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벽에 기대섰다.

《어!- 어!- 어!-》

허모는 자기 목을 부여잡고 안타까이 소리를 질렀으나 어찌된 일인지 소리가 목안에서만 맴돌고 시원스레 입밖으로 튀여나오지 않는다. 설유가 침통에서 굵은 동침을 뽑아서 제 몸우에서 허둥거리는 허모의 목뒤 아문혈을 사정없이 찌른것이다. 한참 모지름을 쓰던 허모는 그제서야 설유가 자기 목뒤에 침을 박았으며 자기가 그로 하여 순식간에 벙어리가 되여버렸다는것을 알아차렸다. 허모는 다시금 설유앞에 무릎을 었다. 종전의 무릎꿇음과 전혀 다른것이였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계집맛을 보려다가 벙어리가 되다니?! 벙어리가 되면 난 끝장이다. 세상에 말 못하는 량반대감이 어데 있다더냐. 아이구 맙소사!)

허모는 설유를 바라보며 손짓, 몸짓으로 애걸복걸하기 시작하였다. 설유의 눈에선 시퍼런 불길이 황황 일고 그의 입에선 인간아닌 인간을 꾸짖는 야멸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같은 놈은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게 낫다! 인간의 가장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진정을 네놈은 그 노란 입으로 분명 유혹했고 더럽혔으니 평생 벙어리로 살아라! 이는 하늘이 너에게 내린 벌이거늘 다시는 인간의 아름다움과 진정을 모욕하지 말라!》

허모를 쏘아보는 설유의 눈에서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 불길은 삽시에 허모라는 인간을 태워 한줌의 재로 만들상싶었다. 손세 몸세 다 써가며 제앞에 꿇어앉아 애걸하는 허모의 모습을 뚫어지게 쏘아보던 설유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며 바람같이 문밖으로 사라졌다. 설유가 사라지자 허모는 절망에 빠져 그자리에 다리를 꼬부리고 모로 누워 꿍꿍거렸다.

(이 무슨 청청하늘에 날벼락인가? 내가 계집한테 봉변을 당하고 벙어리가 되다니?! 장차 어쩌면 좋을고?!)

별안간 방문이 왈칵 열리며 밖에서 망을 보던 완기가 들어섰다. 허모가 거사를 치른 다음 이제 자기가 설유를 데리고노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담장곁에서 서성거리던 완기는 대문을 콱 밀며 총총히 사라지는 설유의 모습을 보자 사팔눈이 확 뒤집혔다.

(저렇게 가버리면 난 어떡한단 말인가.)

성이 독같이 올라 허모한테 해보려고 막 들어서던 완기는 방안에서 다리를 꼬부리고 신음소리를 내는 허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자네 이거 어떻게 된 일인가?》

허모가 입을 벌리는것 같은데 소리가 안 나온다. 허모가 손으로 제 뒤목을 가리킨다. 그의 뒤목을 보던 완기는 입을 쩍 벌렸다. 뜨개바늘만큼 굵은 동침이 꾹 박혀있는것이 아닌가.

《누가 이랬나? 그 계집이? … 어떡하라나? 뽑으라나?》

허모가 뽑으라는듯 턱을 흔들었다.

완기가 한손으로 동침이 박힌 부위를 누르고 윽- 하며 침을 뽑았다. 뽑고보니 거의 두치나 들이박혀있었다. 동침을 뽑는 순간 허모가 푸들쩍 몸을 떨었다.

침을 뽑자 허모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얼마나 혼쌀이 났는지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다. 완기의 두손을 잡은 허모가 입을 놀리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자네 벙어리가 된게 아니야? 그년이 그렇게 했어?》

허모가 머리를 아래우로 흔들었다.

《침 한대로 벙어리가 된다는 소릴 난생 처음 듣는다. 자네 한번 말을 해보게. 내 이제 하는대로 따라하게나.》

완기가 《아-》 하니 허모가 같이 입을 벌리는데 소리가 영 없다. 그저 쌕- 하는 소리뿐이다.

《이런 변이라구야. 자네 이자 보니 벙어리가 됐어! 세상에, 계집과 한번 놀아보려다가 벙어리가 되다니. 소가 웃다 꾸레미터질 노릇이로군.》

허모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친구의 불상사를 목격한 완기의 사팔눈에도 눈물이 글썽하였다.

그날밤 허모는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설유를 손에 넣을 흉계를 꾸미느라 잠을 못 이루던 그밤이 바로 며칠전이였다. 곁에서 간호한다던 완기는 온 방안을 다 차지하고 누워 뒹굴다가 꿈에서 계집과 재미를 보는지 신음소리를 지르더니 제풀에 푸푸거리다가 요란스레 코를 골아대고있다.

(벙어릴 고칠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류이태뿐이다! 렴치와 체면을 무릅쓰고 래일 류이태를 찾아가야 한다. 이건 내가 다시 소생하는가 아니면 벙어리가 되여 평생 버러지처럼 사는가 하는 운명적인 문제이니 더 생각해볼 여지가 없다. 래일 류이태를 찾아가자!)

다음날 허모는 류이태의 앞에 나섰다. 자기앞에 나타난 허모를 바라본 류이태가 깜짝 놀랐다.

《임자 대체 웬일인가?》

허모의 몰골은 하루밤새 눈확이 쑥 패이고 초췌해져 흡사 물에 빠진 쥐를 건져놓은것 같았다. 허모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짓몸짓을 해가며 자기의 의사를 나타내려고 노력하였다. 류이태의 눈이 커졌다.

《엉?! 임자 말을 못하는게 아닌가?》

허모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대관절 어떻게 되여 이렇게 되였나?》

허모는 다시 손세몸세 써가며 안타깝게 호소하려고 애썼으나 그것이 류이태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리 좀 가까이 오게.》

두눈을 지그시 쪼프리고 맥을 가늠해보던 류이태가 머리를 기웃거렸다.

《아니, 자네 맥이 왜 이 모양인가? 독맥의 웃끝에서 기가 막혀버렸구만.》

머리를 기웃거리던 류이태가 허모를 돌려세우고 독맥이 주행하는 잔등의 척추를 따라 눈길을 더듬다가 목뒤를 찬찬히 살핀다.

《아, 이런 변이라구야! 누가 아문혈에 침을 놓았나? 아문혈에 망탕 침을 놓으면 이렇게 독맥의 기가 막혀 말을 못하게 된다네.》

어처구니없어 하던 류이태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가느다란 호침을 빼들고 허모의 목뒤로 다가섰다. 허모는 대번에 기가 질려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우며 손을 가로 저었다.

《겁나하지 말게. 원체 아문혈에 이렇게 망탕 침을 놓으면 벙어리가 되고마네. 허나 이 침혈은 벙어리가 된것을 고치는 혈이기도 하지. 문제는 어떻게 침을 놓는가에 달려있다네. 자네를 찌른 굵은 동침을 가지고 사법으로 침을 세게 놓으면 이렇게 벙어리가 되지만 가는 호침을 가지고 보법으로 침을 놓으면 막혔던 독맥의 기가 열리면서 말 못하던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지.

자, 그러니 겁나하지 말구 어서 일어나 앉게나! 벙어리가 된지 얼마 안되니 제꺽 손을 쓰면 입이 열릴수 있네. 허나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네에겐 불리해지네. 영영 벙어리신세를 면치 못할수 있단 말일세.》

허모는 의학의 리치는 잘 몰랐으나 류이태의 그 말은 공감이 되여 순순히 그의 손에 목을 맡겼다, 이윽고 목에서 띠끔 하는 감각이 느껴지면서 찌르륵- 기운이 목뒤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쭉 뻗쳐올라간다. 침대를 쥐고 살살 돌리던 류이태가 《이젠 아- 하고 말해보게나.》하기에 허모가 입을 쩍 벌리며 《아-》했으나 여전히 쐑소리만 흘러나온다.

《하, 이런 난사라구야. 어떤 놈의 자식이 아문혈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들이찔렀을가?

염병앓을 놈 같으니라구야. 이따위 돌팔이가 의원이랍시구 침대를 마구 휘두르니 병을 고칠수 있나. 참 한심한 놈이야!》

개탄조로 탄식하는 류이태의 말을 들으며 허모는 서가쪽 책상앞에 앉아 첩약을 짓고있는 설유를 힐끔 쳐다보았다. 짐짓 모르쇠하고 천연스러운 기색으로 자기 일에 열중하는듯싶었다.

《안되겠어. 침혈 몇개를 더 써야겠구만.》

류이태는 다시금 가는 호침을 아문혈밑의 풍부혈과 손의 합곡, 관충혈에 놓은 다음 여전히 침대를 살살 돌리며 허모에게 분부하였다.

《이젠 다시 <아-> 해보게!》

허모는 낚시에 물려나온 붕어처럼 입을 쩍 벌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한본새로 빈소리뿐이다.

류이태는 마치 어린애에게 첫말을 배워주듯 근기있게 계속 시켰다.

《아-》

(아!-)

《아-》

(아!-)

허모의 입이 붕어입처럼 연신 넙직넙적 열렸다. 그렇게 한식경정도 지나자 드디여 허모의 입에서 《아!-》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류이태는 끊지 않고 계속 말련습을 시켰다.

《가-》

《가아!-》

《갸-》

《갸아!-》

《거-》

《거어!-》

《겨-》

《겨어!- 아이쿠, 살았다, 살았어! 벙어리신셀 내 면했구나!》

허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너무 기뻐 껑충껑충 뛰였다. 그 놀아대는 꼴이 하도 우스워 설유가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키드득 웃었다. 허모는 덥석 류이태의 손을 잡으며 격정에 겨워 소리쳤다.

《의원님! 의원님은 과시 명의로소이다. 참말 고맙소이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참으로 괴이한 인연이였다. 딸은 벙어리로 만들어놓고 그 아버지는 벙어리를 고쳐주고.

류이태는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는 허모에게 물었다.

《이젠 자네의 말을 좀 들어보세. 대관절 어떻게 되여 그렇게 행방없이 벙어리가 되여버렸나? 며칠전에 날 찾아왔을 때도 변사 못지 않게 류창하던 자네가 아닌가?》

허모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 사연이야말로 이실직고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그의 팽이머리가 궁색한 처지에서 그를 건져주었다.

《네, 며칠전 급한 일이 있어 밤길을 걸었더니 그만 고뿔에 걸렸던것 같소이다. 그래서 읍내 의원 한사람에게 갔었는데 그가 하는 말이 고뿔엔 침 한대면 즉효라고 하기에 믿구 몸을 맡겼지요. 하, 그런데 고뿔이 낫기는커녕 그 다음날부터 덜커덕 벙어리가 되는게 아니겠소이까.》

《아니, 그게 대체 어떤 놈인가? 고을안의 의원들은 내가 다 아는데 그 의원의 함자가 뭐라고 하던가?》

《글쎄요. 그렇게 망탕 침을 놓는 서푼짜리 돌팔이의원에게 함자가 있을리 만무하지요.》

《륙실할 놈 같으니라구! 사람을 살리는 의원이 아니라 도리여 죽이는 의원이로군. 사람의 목숨을 가지구 마구 장난질하다니? 그런 놈은 관가에 고소해서 잡아다가 콱- 혼쭐을 내주어야 해!》

허모는 설유를 힐끗 바라보며 제법 기염을 돋구며 맞장구를 쳐댔다.

《옳소이다. 내 앞으로 그놈을 잡아내여 단단히 골탕을 먹이지 않나 두고보시오이다.》

동안이 지나 허모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의원님! 치료비는 대체 얼마인지…》

《음, 얼마 안되네. 오십냥만 내게나.》

《오십냥이요?!》

허모가 놀라며 실눈을 크게 뜨고 류이태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나? 말을 못하는 벙어리를 살려놓았는데 오십냥이 과하단 말인가? 그럼 다시 되돌려세웁세. 그건 아주 간단하다니.》

《아니올시다. 아,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여 살아도 죽은 목숨이나 같은 저를 이렇게 살려주었는데 오십냥이 대수겠소이까?》

옆에서 피- 하는 설유의 빈정기어린 가벼운 코웃음소리가 들렸다. 허모는 속이 뜨끔해났다.

(이 두상태기가 혹시 내막을 다 알고있는게 아니야?)

류이태의 천연스러운 거동을 봐서는 모르는것 같았다. 허모의 경험에 의하면 설유같은 처지에 놓인 녀인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불미스러운 일인지라 혼자서 속을 태울지언정 외간사람이나 집안식구들에게 제 입으로 발설하는 일은 거의나 없었다. 설유도 그와 마찬가지일것이라고 단정하며 허모는 성큼하게 대답하였다.

《의원님! 제 오십냥을 오늘중으로 보내겠소이다.》 ·

《음, 그리하게나. 그리고 다시는 그따위 바보짓은 하지 말게!》

《네? 바보짓이라니요?!》

가슴이 선뜩해서 허모는 반문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하면 그따위 의원같지 않은 놈에게 다시는 자네의 귀한 몸을 망탕 내맡기지 말라는 소리일세. 이젠 알겠나?》

《아 알지 않구요. 여부가 있겠소이까.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소이다.》

장지문을 열고 류이태의 방을 나서면서 허모는 으드득- 이발을 갈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년, 두고보자! 네년이 날 이렇게 웃음거리 만들구두 무사할줄 아느냐? 내 언제인가는 네년의 그 하얀 몸뚱아리를 발기발기 찢고 통채로 씹어삼키고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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