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산음의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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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갈을 받고 허모는 백운동서원에서 한달음에 룡천으로 달려왔다. 허위단심 달려와보니 어머니가 덜커덕 중풍에 걸린지 닷새째나 된다.

비단이부자리에 누워서 팔과 다리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반신불수의 모습을 보는 순간 허모의 가슴은 찢어지는것 같았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약을 달여먹고 매일 침을 맞으며 치료한다지만 오매의 삐뚤어진 얼굴과 입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서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매는 연신 념불외우듯 중얼거리기만 하였다.

《려월이 이년! 이 죽일 년같은것! 천벌을 받을 년! 내 이제 일어서면 네년이 사는 경상도에 가서 다시는 내앞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가랭이를 찢어놓고말테다!》

허모는 반신불수인 어머니의 그 정상에 처음엔 눈물이 나오다가 오매가 얼빠진듯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자 과연 이 녀인이 나의 어머니가 맞긴 맞는가 하는 의심이 버쩍 들었다.

《어머니, 이젠 고정하시우. 그러면 병이 더 심해지우.》

비록 얼굴이 찌그러지고 오륙을 놀리지 못하지만 오매의 정신과 입심만은 오히려 또릿하다.

《얘야! 그년놈들을 혼쭐낼 무슨 수가 없겠냐? 그년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어디 누워있을수가 없구나.》

《알겠수다, 어머니! 내 꼭 어머니의 한을 풀어줄터이니 지금은 한시바삐 일어나야 하우다. 어머니가 자리털고 일어나야 그년놈들에게 다시 골탕을 먹일게 아니우.》

말은 이렇게 천연스레 하지만 허모의 가슴은 아파났다.

어머니를 이 꼴로 만든 근본장본인은 려월이와 아버지 허륜이다. 그러나 허모는 려월에 대해서는 그닥 반감이 없었다.

오매에게 있어서 질투의 대상이 려월이라면 허모에게 있어서 반목과 질시의 상대는 허준이였다. 허모는 서자인 허준을 절대로 적자인 자기의 우에 올려세울수 없었다. 그것은 자기의 명예와 존엄에 대한 심한 모욕이였고 수치였다. 그리고 자기의 무능을 온 세상에 알리는 실로 수수방관할수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허모의 온 신경은 오직 허준에게로만 쏠려있었다. 이번에 자기의 계책이 멋있게 성공하였다. 첫 시작이 그만하면 괜찮은셈이다. 이번 일을 통해 허모는 자기에 대한 과신이 더 굳어졌다. 이러한 처세술과 림기응변이면 벼슬길을 톺는것은 그야말로 누운 소 타기였다.

어머니를 이 꼴로 만든 또 하나의 장본인은 아버지 허륜이다.

하지만 아버지 허륜은 아직까지 자기 출세의 디딤돌이기도 하였다. 제가 아무리 신분과 본관이 좋고 림기응변의 처세술을 가졌다고 해도 아버지의 든든한 뒤배경을 업지 않고서는 또 화수분과 같은 아버지의 돈줄이 없이는 모래우에 성을 쌓는것이나 다름없다는것을 허모는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허모는 아버지 허륜이앞에서는 공손한 태도를 취하군 하였으며 이번에 집에 와서도 진정으로 아버지를 위로하였다.

오매를 보면서 허모는 슬프다고 할지, 웃지 못할 희비극이라고 할지 말로 표현할길 없는 그러한 심리로 하여 스스로 서글퍼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머니 오매가 이렇게 중풍으로 병신이 되여 누워있는것을 허모는 상상도 못하였다. 어쨌든 오매는 자기를 낳아 키워준 친어머니였다. 물론 우직하고 단순한 어머니앞에서 버릇없이 굴어대고 제 줌안에 넣고 마음대로 조종했지만 이렇게 종신불구가 되는것은 꿈에서도 바라지 않는 허모이다.

허모는 룡천관아의 책방이 보낸 서신을 통해 허준모자의 산음행이 단지 어머니의 등쌀에 못이겨 피신하는것보다는 허준의 장래를 위해 의도적으로 단행한 걸음이라는것을 알고 경악하였다.

(내 어떻게 해서든지 허준이 그놈을 짓뭉개버릴테다!)

허나 정작 와보니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 더 맹랑한 일이 자기를 기다릴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허준이와 려월은 이미 산음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중풍을 만나 병신이 되였다.

《어머니! 내 시간을 내서 허준이놈이 살고있다는 산음에 다녀오겠수.》

《네가?! 거긴 왜?》

허모는 방문을 열고 누가 없는가를 확인한 다음 다시 오매에게로 다가와 그의 귀에 자기 얼굴을 바싹 가져갔다.

《이건 절대 발설해선 안되우. 저기 경상도 산음현감이 바로…》

《그게 적실하냐? 그러문야 그년놈들을 족살내는거야 얼음판에 박밀기가 아니냐?》

오매는 너무 좋아 찌그러진 입을 크게 벌렸다. 너무도 험상하고 소름끼치는 그 몰골에 허모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아, 조용하우. 그러다간 누가 듣겠수. 내 이제 그놈들을 어떻게 골탕먹이나 두고보시우!》

《그렇게만 되면 내 당장이라두 자리털구 일어난다! 그러니 실수없이 조처해라.》

이튿날 허모는 그간 어머니를 치료해준 죽순을 찾아 솔골로 갔다. 그의 손에는 죽순에게 인사차림할 물건들이 들려있었다.

《의원님께 문안을 드리옵니다.》

죽순이가 의아한 눈빛으로 허모를 바라보았다. 그곁에 선복이가 눈이 올롱해 서있었다.

《뉘신가요?》

《네, 이 고을 사또댁 장손이옵니다.》

《그렇다면 저 풍기 백운동서원에서 공부하신다는 도련님이시오이까?》

《예, 그러하오이다.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어 고맙소이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

《은혜는 무슨… 의원으로서 응당한 일이오이다. 너무 걱정마소이다. 이젠 급한 고비는 넘겼으니 큰일은 없을겁니다. 중요한건 병자가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기분상태를 잘 조절하는거지요.》

《네, 고맙소이다. 헌데 기분상태를 잘 조절하는것이 중요하다지만 어머니의 기분상태는 영원히 평온치 않을겁니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인지…》

《네, 이건 우리 집안 일이여서 말하기 쑥스럽지만 의원님한테야 뭘 숨기겠나이까.》

허모가 죽순을 찾아온 목적은 인사차림의 명목밑에 허준모자에 대한 동정을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룡천에 당도한 첫날에 책방은 허모에게 슬며시 이렇게 귀띔하였다.

《작은마님과 작은도련님이 보아하니 녀의원과 보통사이같지 않던데 그 녀의원을 만나면 그들의 산음행의 진의도를 자상히 알것 같소이다.》

허모는 책방의 말을 들으면서 조용히 팽이머리를 굴려보았다. 허준모자의 산음행이 어머니 오매의 등쌀을 피하는것도 있겠지만 보다는 허준을 위해 단행된것만은 여불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서얼자식이 산음에 가서 무슨 일을 친다는것인데 암만 생각해봐야 가늠이 가지 않았다.

가만, 허준의 형편에서 책방의 말마따나 녀의원과 연고가 있다면 혹 의술을 배우는것이 제일 타당할수 있지 않을가? 헌데 어떻게, 누구한테서 배우단 말인가?

허준의 능력을 너무도 잘 아는 허모였다. 과시장에서 그런 험창한 욕을 보고도 도리여 큰일을 한다며 학문을 줴버리지 않은 허준이다. 분명 허준은 학문으로 성공하려고 할것이다.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성인이요 군자요 하면서 벼슬과 인연없는 학문연구로 여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죽순의 기색을 살피며 허모는 자기 집안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려월이와 오매를 치료하는 과정에 사또댁의 모순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있는 죽순이였으나 허모의 입에서 튀여나온 말에는 아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가 알기에는 그지없이 순박하고 마음어진 려월이였다. 헌데 허모의 말을 들어보면 간특하고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녀인이 아닌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허모는 자기 집안의 일을 꺼내면서 첩으로 들어온 려월이가 미모와 교태로 아버지의 정을 독차지하고 그로 하여 본댁인 자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서 소박을 당했으며 처첩간의 갈등은 자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능갈치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더구나 아버지가 간사한 첩의 간계에 넘어가 정실부인이 낳은 허씨가문의 종손인 자기를 밀어내고 서자인 허준을 과거에 응시시키려다가 시험관에게 발각되여 쫓겨났으며 족보위조(려월이가 아버지에게 술을 잔뜩 먹여 술에 취한 아버지가 얼결에 수결하게 하였다.)로 아버지가 탄핵당했으며 지금은 군수벼슬직을 박탈당할 처지에 놓여있다고 횡설수설하였다. 경악함을 금치 못해하는 죽순에게 허모는 려월이가 제 아들이 시험장에서 쫓겨나오자 마치 오매의 탓이기라도 한듯 아버지를 추동하였으며 그로 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는둥 그후 려월이의 간계를 알게 된 아버지가 려월모자더러 당장 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는둥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 만류하였으나 아버지의 결심을 돌려세울수 없게 되자 그 일로 신경쓰다가 중풍에 걸렸다는둥 사공 배머리돌리듯 잘도 둘러맞추었다.

죽순은 너무도 엄청난 사실앞에서 한동안 입을 벌리고 다물지 못하였다. 려월이를 치료하면서 왜 이렇게 상처를 입었느냐고 물었을 때 려월은 그저 본래 약한 체질에 아들일로 신경쓰다가 퇴마루에서 옆어져 난 상처라고 말하였다. 허나 죽순은 의원의 눈으로 려월의 상처가 폭행의 흔적임을 어렵지 않게 직감하였지만 남의 일에 너무 간섭하는것 같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허모의 말을 들으니 그 어지고 션량해보이는 녀인이 그런 몸서리치는 흉계와 간특성으로 본댁을 밀어내고 정실부인으로 되려고 했다지 않는가.

죽순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인간에게서 제일 하지 말아야 할짓이 다름아닌 사람의 정을 가지고 희롱하는것이라고 생각하고있는 죽순이다. 더구나 남녀사이의 정을 희롱하는것은 악한중의 악한이라고 지탄하고있던 죽순으로서는 허모의 그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려월모자에 대한 호의적감정이 슬그머니 의심으로 바뀜을 어쩔수 없었다.

《그런데 의원님. 작은어머니와 내 동생이 산음에 간것은 아버지의 령이기도 했지만 들리는 말에는 동생이 무슨 뜻을 성공시킨다면서 내려갔다고들 하던데… 마음이 놓이지 않소이다. 과시장에서 쫓겨난 동생이 혹시 그곳에 가서 우리 허씨가문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을 할가봐 우려되오이다.》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더니… 허준도련님은 산음에 가서 의술을 배우겠다고 했소이다. 그곳에 류이태라는 명의가 있거든요. 그것두 모르고 난 작은도련님에게 소개까지 했는걸요. 갈 때에는 꼭 성공하여 나라안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병의가 되라고 나한테 있던 의서까지 주어서 보냈어요.》

허모는 실눈을 까박거렸다.

산음에 있다는 명의한테서 의술을 배운다? 의원이라는 지체가 높은 벼슬자리는 아니여도 그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목숨과 관련된것이여서 운수만 트이면 웬간한 벼슬자리도 우습게 여길 그런 직분이 아닌가? 허준의 재능과 성정으로 볼 때 충분히 명의가 될수 있다. 한성의 명문대가들이 줄지어 허준에게 병보이러 오는 광경이 눈앞에 얼른거린다. 허모는 비트는듯 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죽순은 갑작스레 낯색이 무섭게 변하며 입술을 옥무는 허모를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허모는 그 눈길을 피하며 부랴부랴 죽순의 집을 나섰다.

그로부터 두달후 허모는 산음에 나타났다.

허모의 꽁무니에는 산음현감의 조카인 완기가 붙어있었다. 허모의 둘도 없는 짝패인 완기는 그의 말이라면 두팔걷고나서는 사내였다. 난봉질과 못된짓에서 배꼽이 딱 맞는 완기는 허모의 더없는 친구였고 그림자였다. 허모네 가정사를 제 집안일처럼 환히 아는 완기는 제편에서 오히려 씩씩거리며 나섰다.

산음에 당도한 허모는 자기 행색을 드러내지 않고 완기더러 허준과 류이태에 대해 알아보게 하였다. 완기는 며칠새에 허준모자가 읍에서 시오리 떨어진 오곡마을에 살고있으며 그 집에서 동안을 두고 명의라는 류이태의 집이 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헌데 말이야, 그 의원댁의 딸년이 절색이더구만. 어때? 우리 한번 그년을 건드려볼가?》

사팔뜨기눈을 번뜩이며 완기가 허모를 돌아보며 하는 말이였다. 물동이에 치마를 씌워놓아도 허겁대며 달려들 완기이다. 허준의 모자한테 온 정신이 쏠려있던 허모의 귀에 그 말이 들어올리 만무하였다. 허모는 주독으로 새빨개진 완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불쑥 (가만! 혹시 여기에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올수 있으렸다!)하고 생각하며 완기에게 다시 물었다.

《이자 자네 뭐라고 했나?》

《응, 그 의원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 기막히게 곱게 생긴 딸년이 있어. 그년을 내 얼핏 보았는데 경국지색이야.》

《자네가 직접 봤나?》

《그럼 내가 그 의원집에까지 갔다가 그년을 몰래 훔쳐보았는데, 히야- 얼마나 곱게 생겼는지 막 미칠것 같더라니.》

완기의 그 말에 순간적으로 허모의 팽이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자기의 과녁은 허준이지만 그가 의술을 배우려 한다면 류이태도 허모의 과녁으로 될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딸년을 손아귀에 걷어넣으면 애비인 류이태도 넉근히 손안에 거머쥘수 있지 않겠는가. 허준이 류이태에게서 의술을 배우는 조건에서 자칫하면 그 절세가인이 허준의 손에 들어갈수 있다는 예감이 뇌리를 쳤다. 안될 소리다. 저도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그렇다! 허준이 그자식이 명의로 되는 날엔 그 딸년도 허준의것이 될수 있다! 그러니 그년을 어떻게 하나 손아귀에 걷어넣고 허준이녀석을 짓뭉개는데 써먹어야 한다!)

허모는 먼저 허준의 집을 찾아가기로 작정하였다. 아버지가 보내서 왔다는 구실을 대고 찾아가 허준의 형편을 알아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려월은 불쑥 집안에 들어선 허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들은 약지으러 의원댁으로 가고 어머니는 저자에 장보러 가다나니 집안엔 려월 혼자뿐이였다.

《그새 무고하셨소? 작은어머니!》

《아니, 큰댁 도련님이 여길 어떻게?》

《예- 아버님이 작은어머님이랑 동생이랑 어떻게 살고있는지 살림형편을 가보라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겨우 짬을 내서 왔소.》

《공부하느라 바쁘실텐데 이 먼델 다 오시다니… 아버님이랑 큰집에서랑 다 무고하나이까?》

《예, 아버님은 여전히 관가일로 눈코뜰새없이 지내시구 어머니는 정신이랑 말이랑 음식드는거랑 그만하면 괜찮은데 다만 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하지요.》

허모는 방안을 휘둘러보며 조용히 물었다.

《헌데 동생은 어데 갔소?》

《내가 계속 이렇게 병석에 있으니 의원댁에 약지으러 갔소이다.》

《자, 이건 아버님이 살림에 보태라구 주는거요.》

허모는 품속에서 금가락 두개를 꺼내놓았다. 언제인가 오매에게서 받았던 금가락이다. 여기로 오면서 허모는 그중 두개를 가지고왔던것이다. 아버지가 보낸다고 하면서 꺼내놓았지만 속이 알알했다. 허나 앞으로를 위해 이쯤한것은 희생해야 한다고 스스로 위안하였다.

《작은어머니랑 떠나간 다음 어머니는 자기가 너무했다고 늘 자책하지요. 내 이번에 아버님의 당부도 있고 또 어머니의 부탁도 있어 여기로 왔는데 어떻소? 다시 룡천으로 가지 않겠소? 한집안사람들이 크지 않은 일로 서로 오감을 가지고 흩어져산다는게 어디 가당한 말이요? 남들이 우리 허씨집안을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아시우? 찌개비집안이요, 상가난 집안이라구 수군거리지요. 어머니두 이젠 전같지 않소. 더구나 작은어머니 생각만 하는 아버님두 생각하셔야지요.》

그 말에 려월은 눈물이 글썽해서 고개를 숙였다. 죽어도 다시 가고싶지 않다. 허나 남편의 정상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여하튼 허륜은 그와 정을 나눈 사내이고 준의 아버지이다. 자기에게 극진하던 남편이다. 본댁인 오매의 강새암과 심술로 마음이 아파도 허륜의 그 넓은 품에 안기면 만시름을 잊군 하던 려월이다. 자기 나이 아직 마흔전, 부부간의 정을 깨쏟아지게 누릴 한창나이였다. 허나 홀로 사는 과수댁마냥 남편과 수천리나 떨어진 이곳에 와있다. 한달음에 달려가 남편의 품에 안기고싶은 생각이 굴뚝마냥 치솟는다.

려월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을 지켜보는 허모의 실눈에 다 잡아놓은 개구리를 눈앞에 놓고 입을 다시는 뱀의 야릇한 표정이 비꼈다.

미묘한 웃음을 띠고있는 허모의 실눈을 보는 찰나 려월은 입에서 막 튀여나오려고 하던 《가겠어요.》 하는 말이 혀끝에서 맴돌다가 쑥 들어가버렸다. 뱀이 곁에 다가온것을 모르고 멍하니 있던 개구리가 본능적으로 그 어떤 위험을 느끼고 몸을 도사리듯 려월은 자기의 온몸에 선뜻한 랭기가 와닿는감을 느꼈다. 개구리가 일단 위험을 느끼고 몸을 도사리는 순간이면 때는 이미 늦는다. 뱀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한입에 개구리를 삼켜버리기때문이다. 허나 려월은 뱀이 아가리를 벌리려는 순간 소스라치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그 뱀을 털어버리려는듯 세차게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안돼요!》

허모의 실눈이 우로 솟구쳤다. 보이지 않던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산한다.

《왜요?》

생각보다 허모의 목소리는 살갑다. 그 살가운 목소리는 입에 다 넣게 된 개구리를 놓쳐버린 뱀이 다시 기회를 노리며 슬그머니 옴뛰고있는 개구리를 따르는것과 같았다.

려월은 허모의 눈에서 발광하는 소름끼치는 랭기를 감득하며 두손으로 떨리는 가슴을 꼭 눌렀다.

《사실은 우리 준이때문에…》

《준이가 어째서요?》

《우리 모자가 여기로 온것은 큰마님탓만도 아니오이다. 준이가 어떻게 하나 제 뜻을 굽히지 않구 학문을 연구하겠다기에 우정 내려온겁니다.》

허모는 처음 듣는 소리라는듯 실눈을 크게 떴다. 실눈이 메밀눈으로 변했다.

《그럼 동생이 대단한 학문이라도 연구하는게지요?》

《대단하기야 무슨… 그저 여기에 명의가 있다기에 의술을 배우겠다는가 봅니다.》

《의술을 배워 명의가 되겠다는건데 참 좋군요. 의원이라는게 그래보여두 잘만 하면 팔자를 고친다고 합디다. 병이 나면 그 누구든지 의원한테 찾아오지 않소. 동생의 생각이 참 신통하오. 여기에 온지 서너달 되였으니 동생의 의술수준이 꽤 늘었겠소?》

《수준은 무슨… 아직 얼굴도 내밀지 못했소이다.》

《그게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요?》

《우리 준이 성정을 큰도련님도 잘 알지 않소이까. 워낙 속이 깊은 애라 아직 의원님한테 말을 비치지 않은가봐요. 그 의원님이 비록 이 자그마한 시골에 살아도 경상도지경뿐아니라 저 한성에까지 명의로 소문난 어른이시니 서뿔리 말을 꺼냈다가 퇴짜라도 맞으면 어쩌나 하는 심사겠지요. 무슨 앤지 에미인 나도 그 속내를 대중하기 어렵나이다.》

허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니 준이 네놈이 의원한테 붙지 못했구나!)

《그럼 내가 한번 그 의원을 만나 동생의 일을 말해볼가요?》

《아스시오! 큰도련님한테 그런 페까지 끼치겠소이까. 이제 때가 되면 어련히 감이 익겠는데… 억지로 딴 감은 떫어 맛이 없지요. 그 의원님이 여간 도고한분이 아니라는데 괜히 그러다간 오해할수 있으니 제발 그만두사이다.》

《예- 작은어머니 소원이 정 그렇다면 내 그만두겠소.》

허모가 돌아간 후 려월은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온통 머리가 뒤숭숭한게 꼭 무슨 최면술에 걸린것 같았다. 준이가 과거에 응시 못하도록 훼방을 논 허모가 준이를 위해 의원을 만나겠다니 이게 어디 있을번 한 일인가.

그가 하던 말이 귀전에서 떠날줄 몰랐다. 준이가 오면 뭐라고 말할가? 겉보기엔 조용한것 같지만 성정이 불같은 아들이다. 불의앞에선 조금도 에누리를 모르는 그 성정이 오히려 성공한다고들 하지만 려월은 어쩐지 반대로 어떤 화를 몰아올지 몰라 늘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하지만 려월은 아들에게 속이는것이 없었다. 이제 아들이 오면 그대로 말해보자. 그리면 아들의 입에서 무슨 대답이 나올가.

대문밖에서 기다리던 완기가 허모의 낯색을 얼추 살피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들어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나?》

《음- 아직 준이녀석이 의원한테 붙지 못했어. 그리니 우리 이길로 의원네 집에 가보자구.》

약을 지어가지고 집대문앞에 이른 허준은 고샅길로 사라지는 두 사내의 모습이 어딘가 낯익어보였다. 분명 한사람은 허모와 비슷해보였다.

(그가 여기에 올리 만무한테. 혹시?)

허준은 부리나케 방안으로 뛰여들어갔다.

《어머니! 이자 우리 집에 누가 왔댔나요?》

어머니가 덤덤히 대답하였다.

《방금 큰댁 도련님이 왔다 갔다.》

《뭐라구요? 아니 그가 왜 여기에 왔나요?》

려월은 허모가 찾아온 사연과 그가 하던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허준의 생각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여기에 왜 왔을가? 물론 아버지가 가보라고 할수도 있다. 허나 내 일이라면 오뉴월에도 손이 시려 하는 허모가 도저히 올수가 없다. 여기엔 무슨 쪼간이 있는게 분명하다. 더구나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꼬치꼬치 따져물었다는것이 마음에 께름직하다. 그리고 류의원에게 소개해주겠다고 말했다는데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는다.

류이태의 집에 이른 허모는 완기를 밖에 떨구어놓고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마침 병자치료를 마친 류이태가 손씻으려고 퇴마루로 나오던 참이였다.

《의원님! 무고하시오이까.》

류이태가 난데없이 나타난 허모를 의아해 바라보았다.

《난 젊은이가 누군지 모르는데… 대관절 어데서 온 젊은인가?》

자그마한 놋대야에 아버지가 씻을 물을 떠가지고 마당으로 나오던 설유가 처음 보는 사대를 얼핏 쳐다보았다. 허모의 실눈이 설유를 놓치지 않고 시야에 넣었다.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피줄이 다 들여다보일것 같은 새하얀 뺨에 살풋이 길게 내뻗은 속눈섭, 그밑에 자리잡고있는 바라만 보아도 사내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검고 그윽한 눈, 도토롬하고 꼭 다물어진 앵두입술, 동백꽃기름을 바른듯 한 함치르르한 머리태, 시원하면서도 생큼하게 쭉 뽑아진 흰목, 륜곽이 또렷한 동그란 어깨와 치마속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미출한 두다리…

(저런 절세가인이 이런 촌구석에 박혀있다니!)

설유는 대문안에 들어선 사내가 자기를 걸탐스레 쳐다보자 얼굴을 붉히며 얼른 놋대야를 마당가에 내려놓고 총총히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류이태는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낯선 사내가 어딘가를 정신없이 바라보자 그 눈길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설유가 놋대야를 놓고 지나가고있었다. 류이태는 입이 쓰거워났다.

《어험!, 어험!》

류이태의 기침이 련거퍼 울리자 허모는 정신을 수습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제 평안도 룡천군수댁 장손되는 허모라 하오이다. 의원님한테서 치료받는 려월이란 녀인이 저의 작은어머니이고 약을 지으러 오는 허준이가 저의 이복동생이옵니다.》

류이태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서 허모를 내려다보았다. 려월이가 저기 평안도 룡천군수의 소실이며 허준이가 서자라는것은 이미 알고있는 류이태이다. 려월이를 치료하고 약을 지으러 오는 허준이를 대면하면서 그들모자가 왜 룡천땅에서 살지 않고 여기로 왔는지 비슷이 짐작하고있던 류의태였지만 정작 정실부인의 아들이라는 허모를 대면하는 순간 어딘가 모르게 그 집안사가 여의치 않다는것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그런가? 헌데 무슨 일로 군수댁 장손이 이런 시골에 사는 날 찾아왔나?》

《다름이 아니라 두가지 일때문에 왔소이다.》

《두가지 일이라니? 그게 대체 뭔데?》

허모는 류이태가 자기가 던진 낚시를 받아물었다고 여기며 조심히 줄을 당기기 시작하였다.

《작은어머니의 병을 성의껏 치료해주어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온것이 첫번째 일이옵니다.》

류이태의 반응을 살피며 허모가 말을 이었다.

《두번째는 제 동생의 일이온데 우리 동생이 여기로 온것은 사실상 의원님한테서 의술을 배워 명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헌데 동생을 만나 물어보니 선생님이 너무 엄해서 아직 의술을 배우겠다는 말도 못했다고 하오이다. 그래서 제가 형으로서 이번 기회에 의원님께 동생한테 의술을 배워주십사 하고 청을 드리려구 왔소이다.》

류이태는 아무 말없이 허모를 노려보았다.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허준이가 준수한 젊은이라는것은 알지만 왜서 평안도에서 여기 경상도 산골막바지에 왔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그가 의서를 보겠다고 청하기에 허영에 들뜬 젊은 혈기에 의술이 신기해서 심심풀이로 보려는줄 알고 단박에 거절하였는데 이자 보니 의술을 배우려는 의도에서 청을 한것이였다. 사내라면 옴쟁이처럼 쭈물거리지 말고 직방 터놓을게지 빙빙 에돌다가 형을 내세워 의술을 배우겠다고 의사를 표명한단 말인가. 그런 배짱과 그런 심지를 가지고 어떻게 의술을 배워낸단 말인가. 류이태는 버럭 언성을 높였다.

《임자네 동생은 의술은 고사하고 아무짝에도 필요없어! 의술을 배우는게 정 소원이라면 제가 나서서 말할것이지 사내녀석이 계집애처럼 뒤에서 우물거리다니. 난 그런 녀석한테 의술을 배워줄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네! 그리구 난 의원이지 서당훈장은 아닐세. 그리니 젊은인 괜한 수고를 말고 어서 돌아가 동생한테 그렇게 말해주게!》

류이태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당가에 내려놓은 놋대야에 손을 씻더니 잘 가라는 소리없이 방안으로 휭 들어가버렸다. 그러한 류이태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허모의 눈에 삵의 웃음이 언뜻거렸다. 닫긴 방문을 향해 허모는 진정의 내심을 담아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혔다.

《의원님! 제 그럼 의원님만 믿고 돌아가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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