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불우한 서자

7

 

밤늦게까지 별채를 향해 게거품을 물고 왝왝 고아대던 오매는 제풀에 기진맥진하여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렁청한 빈방에 홀로 앉아있는 오매의 뺨으로 고뇌의 쓴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였다.

삼십대 초반의 한창나이부터 남편의 정과 사랑은 자기에게로가 아니라 려월에게 쏠렸다. 그러니 그 나날에 겪은 심중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오매의 쌓이고쌓인 그 원한이 바로 오늘밤에 폭발했던것이다. 오매는 분하고 원통한 자기의 심중을 담아 남편에게 고래고래 소리질러댔지만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오매는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모든 불행의 화근이 따져놓고보면 려월이 이 집문턱을 넘어선 그날로부터 시작된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려월이 낳은 허준이로 하여 그 화근이 더욱더 뿌리깊어졌다고 생각하니 려월이와 그가 낳은 허준이 미운 정도가 아니라 막 죽이고싶었다. 남편한테 하대받으면서도 참아야 했던 오매의 시기와 질투심이 화산마냥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장본인은 그 화냥년때문이야. 그 쌍년을 아예 짓뭉개버릴테다!)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운 오매는 남편의 동정을 살피다가 닷새째 되는날 려월이 산다는 솔골로 걸음하였다.

허준의 일로 받은 마음의 상처로 하여 이제껏 지탱하던 의지점을 잃은 려월은 골병으로 자리펴고 누워있다가 기척도 없이 문을 쾅 열어제끼고 들어서는 오매를 보자 창황중에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아니, 마님이 어떻게?》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다듬으며 하는 려월의 인사말에 오매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신을 신은채로 방안에 들어섰다.

《임자 팔자가 삼복철 개팔자 부럽지 않군. 큰집에선 그 잘난 임자네 아들때문에 며칠 잠도 못 자고 초상난 집안이 되였는데 임잔 셈평좋게 청청 푸른 대낮에 자빠져 잠을 자고있군.》

힘겹게 일어나앉은 려월의 얼굴에 병색이 짙건만 오매의 눈에 병자의 모습이 띄울리 만무하였다.

려월은 벼락치듯 쳐들어와 야비하고 조폭한 언사를 던지는 오매의 거치른 행동에서 허륜과 오매사이에 허준의 일로 소동이 일어났고 그 화풀이로 오매가 이 집에 들어섰음을 알아차렸다. 더구나 오매의 뺨에 시퍼런 멍이 든것을 띄여보고 려월은 이제 한바탕 복닥소동이 일어날것이라고 예감하며 마음을 조였다.

《임잔 대체 치마폭이 얼마나 넓기에 령감이 임자말이라면 그렇게도 꼼짝 못하나?》

려월은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이 집에 들어선 첫날부터 항시 이런 박대와 구박속에서 살아온 려월이다.

《왜? 또 내 말이 쓰겁다는건가? 대체 어떻게 꼬였기에 령감이 준이녀석때문에 도감영에까지 찾아갔을가? 어디 한번 나한테도 그 재간을 배워주게나.》

려월은 들으니 금시초문이라 숙였던 머리를 쳐들었다.

《무슨 말씀인지 전 그런건 전혀 모르오이다.》

《이젠 거짓말까지 다 하구? 밤낮으로 한이불속에 들어가 재미를 보며 별별 요사를 다 피우더니 이제 와서는 제법 시치미를 떼는군.

그래, 솔직히 말해보게. 어떻게 령감을 꼬였는지 나한테 그대로 말해주지 않겠나?》

려월은 그 말에 오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병색으로 해쓱해진 그의 얼굴이 모욕감과 수치감으로 화로불마냥 붉어졌다. 려월은 같은 녀성으로서 남편의 무관심으로 하여 오매가 겪은 심리적고충과 설음을 리해하였기에 될수록이면 그 모욕과 멸시를 고스란히 감수하군 하였다. 려월은 오매의 생억지와 트집에 저까지 말려들어 시비를 가르며 싸운다면 체면과 인격을 중시하는 남편의 얼굴에 흙칠을 하는것 같았고 또 비록 서자이지만 허준의 일이라면 왼심을 쓰는 남편에게 마음의 그늘을 줄것 같아 여직껏 참아왔었다. 허나 허준이 과거장에서 서얼이라는 리유로 쫓겨난것이 오매와 허모의 작간질이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난 다음부터 무맥하게 앉아서 더이상 수모를 받지 않으리라 다짐하고있었다.

려월은 자기의 몸이 좀 나아지면 그때가서 오매와 마주앉으리라 생각하고있었지만 오늘 오매가 독을 품고 행악질을 해대는 꼴이 잡도리가 여느때와는 다르다는것을 짐작하고 더는 미룰수가 없었다.

《하, 이것봐라! 이젠 두눈을 똑바로 뜨고 쏘아본다?!

그래, 쏘아보면 어쩔텐가. 응, 어쩔테야?》

려월은 벽에 의지해 안깐힘을 쓰며 일어서서 오매를 향해 나직하나 또박또박 쏘아붙였다.

《오늘은 내 말 좀 해야겠어요.

난 여태 나리의 관심밖에 있는 마님을 동정했고 나리의 정이 나한테 쏠릴 때마다 마님앞에 죄스러웠어요. 그래서 마님에게서 별의별 상상 못할 수모와 멸시를 받으면서도 리해하려고 애썼어요. 왜냐면 마님도 녀자이고 나도 녀자이기때문이예요. 남정들과는 달리 녀자들은 녀인이라는 그 한가지 공통점으로 해서 서로 리해하고 속을 터놓을수 있지요.

난 형제가 없어요. 저 경상도에 홀어머니가 계실뿐 나에겐 아무런 혈붙이가 없어요.

사실말이지 이 집에 내가 오고싶어 왔나요?》

려월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속에는 악한이라도 감복할 그런 따스한 정이 흐르고있었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마님을 언니로 따르고싶었어요. 비록 신분적장벽이 우리 둘사이에 가로놓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한사내를 지아비로 섬기는 녀인들이 아닌가요.

헌데 그 생각은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깨져버렸지요. 그 리유는 마님이 더 잘 알기에 말하지 않겠어요.

오죽하면 나리가 우리 모자를 따로 갈라 이 집에 옮겼겠나요?!

이자 마님이 우리 준이 문제를 꺼냈는데 입은 비뚤어져두 주라는 바로 불란다구 마님모자가 훼방한 노릇이 아니나요?

나나 준이는 애당초 과거에 응시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어요. 허나 준이도 허씨집안의 피를 받은 자식이기에 비록 첩의 소생이지만 나리는 어떻게 하나 아버지로서의 도리를 다하려구 준이를 과거에 응시시키려구 한거예요.

우리 모자는 그 내막을 자세히 알지 못해요. 그저 나리가 준이더러 과거에 응시하라구 하기에 갔던것인데 마님과 큰도련님이 나리의 금고에서 금가락을 훔쳐 우리 준이가 응시 못하게 하려구 흉계를 꾸몄지요.

그래 하나 묻자요. 큰도련님과 우리 준이가 허씨집안의 피를 받은 형제가 아닌가요? 설사 첩의 소생이래두 형제야 형제가 아닌가요.

어쩌면 사람이 그럴수가 있어요? 아마도 그래서 나리가 마님에게 시비를 가른것 같은데 마님은 지금 나한테 와서 오히려 그 밸풀이를 하려구 하나요?

어디 한번 말해봐요. 입이 열개라두 마님은 할 말이 없을거예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마님네들처럼 지체는 높지 않아두 사람의 도리나 인간생활의 리치는 잘 알고있답니다.》

오매는 별안간 박아놓은 말뚝처럼 그자리에 굳어져버렸다. 늘 봐야 자기의 행악질에 죽었수다 하고 잠자코 있던 려월의 입에서 청산류수와 같은 이런 말이 흘러나올줄 상상도 못했던 오매이다. 말도 청산류수이지만 듣고보니 너무도 리치에 닿는 소리여서 뻐꾹소리 한마디 할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오매는 그제서야 남편이 왜 려월에게 혼맹이가 빠져 돌아가는지 짐작되는것 같았다. 오매가 알고있는 남편은 주색에 주린 사내가 아니였다. 한개 군의 관장이라면 고을의 기생들을 눈짓 한번이면 수청들게 할수 있으련만 언제한번 기생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은 듣지 못하였다. 헌데 이상하게도 려월이한테 유별나게 정을 쏟아붓는다.

그 순간 오매는 자기가 그리도 숫보고 업신여기며 질투심으로 복수하고싶은 려월이가 천첩이지만 자기와는 아득한 차이가 있는 숙녀로 돋보이였다.

하지만 오매는 역시 오매였다. 지금 이 시각 려월이가 녀인으로서 인간으로서 신분적장벽을 초월하여 리해와 화목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오매는 거절하였다. 이로 하여 오매는 남은 여생을 비운으로 고통받았으며 결국은 그의 아들인 허모의 운명도 비참한 일로를 걷게 되였다.

오매는 지체높은 량반가문출신의 당당한 정실인 자기가 한갖 천한 노비출신의 첩보다 렬등하다는 모멸감으로 하여 불쑥 수치감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도 려월의 눈에 비낀 자기라는 존재가 얼마나 꼴불견일가 하는 생각에 울화가 북받쳤다고 해야 옳을것이다.

오매는 먹이를 노리는 독사마냥 곱살하고 연해보이는 려월을 노려보며 한걸음 바투 다가섰다.

《이자 보니 임잔 꽤 유식하구만. 정실댁마님더러 잘못했다고 하지 않나. 또 그 주제에 누굴 가르치려고 훈시하지 않나. 임자가 가르치지 않아두 난 다 알고있어!

이젠 나같은건 사람값에 못 간다는건데 꽤 담이 커졌는걸. 임자의 어데서 그런 담이 생겼는지 오늘 내가 봐야겠어!》

오매는 독수리 병아리 덮치듯 간신히 벽에 의지해 서있는 려월의 저고리를 와락 잡아 마구 뜯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 무슨 추태…》

려월이 필사적으로 항거해나섰으나 병으로 쇠약해진데다가 사내들을 찜쪄먹을 정도로 뚝심이 센 오매의 완력앞에 어린애가 어른을 대항하는 격이 되고말았다.

순식간에 려월의 옷이 갈기갈기 찢겨졌다. 아직도 젊음이 생생한 려월의 상체가 고스란히 오매의 눈앞에 드러났다. 상아를 다듬은듯 희고 매출한 젖가슴이며 동그란 어깨를 보는 순간 오매는 불현듯 처음으로 그 희디흰 아름다운 육체와 보기 흉한 자기의 뚱뚱한 육체를 대비해보면서 잠재하고있던 질투심이 더 머리를 쳐들었다. 사정없이 달려들어 려월의 젖가슴이며 살을 마구 꼬집어대고 비틀어대기 시작하였다. 남편이 젊은 이 육체에 미쳐 자기같은것은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반감에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비명을 지르는 려월의 하소연같은것은 꼬물만치도 안중에 없었다. 려월의 새하얀 상체는 온통 피멍이 들었다. 그는 동가슴을 손으로 가리운채 실신상태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오매는 신을 신은 발로 그의 얼굴과 허리, 젖가슴을 짓밟았다.

《이년아! 오늘은 내 직성을 푸는 날이다. 네년이 다시는 량반댁을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할테다!

까마귀 백년가도 백로 못된다! 알겠냐? 뭐, 같은 녀자라 동정했다구?! 그래, 내가 너같은 천첩의 동정이나 받는 그런 약골로 보여?!》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발광하던 오매는 려월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마냥 눈을 떼룩거리며 한참동안 려월을 굽어보다가 그의 코밑에 손을 대보았다. 간간히 숨소리가 들리자 죽지는 않았구나 하며 퉤 하고 돌아서서 황급히 그 집을 나섰다.

오매가 물러간 뒤 한식경이나 되여 겨우 정신을 차린 려월은 자기의 처참한 몰골에 억이 막혔다. 눈물도 이제는 다 말라 나오지도 않는다. 이제 곧 준이가 올텐데 이 몰골을 보여서는 안된다. 려월이 안깐힘을 다해 옷가짐을 수습하고 방안을 정리하고났을 때 서원에서 점심하러 들어오는 허준이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찰나 려월은 그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방문을 열던 허준은 깜짝 놀랐다.

《어머니!》

다급히 소리치며 방바닥에 쓰러진 어머니를 일으켜안은 허준은 어머니의 얼굴에 험상하게 난 상처자리며 부어오른 눈잔등을 보고 분명 오매가 한짓임을 알았다. 오매가 아니고서야 세상에서 제일 선량하고 마음착한 어머니의 몸을 이렇게 만신창으로 만들수 있으랴.

《어머니! 이 어인 일이오이까. 정신을 차리소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허준은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내달렸다. 솔골에는 의술이 용한 삼십대의 녀의원이 살고있었다. 녀의원의 이름은 죽순이다. 한달음에 의원집에 이른 허준은 대문을 열고 뜰안에 들어섰다.

《의원님! 의원님!》

허준의 고함소리를 듣고 지게문이 열리면서 열세살가량 나보이는 처녀애가 퇴마루에 나타났다.

《도련님! 무슨 일이오이까?》

허준은 선복이라고 부르는 이 처녀애를 잘 알고있었다. 서원으로 오가면서 늘 약초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오르는 애를 한두번만 보지 않았다. 두눈이 새별처럼 초롱초롱한게 여간 귀엽지 않았다.

《의원님이 계시냐? 우리 어머니가 위급해서 그런다.》

《예. 있소이다.》

선복이가 방문을 열며 안에 대고 소리쳤다.

《어머니, 사또댁 작은도련님이 오셨나이다.》

허준은 선복의 뒤를 좇아 방안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대여섯명의 병보이러 온 사람들이 주런이 앉아 자기의 순번을 기다리고있는데 대개가 녀인들이였다. 장지문너머 웃방에서는 녀의원이 병자치료를 하고있었다. 선복이가 제 어머니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리자 녀의원이 급히 일어나 아래방으로 내려와 허준에게로 다가왔다. 수수한 비단저고리차림에 허준을 바라보는 녀의원의 동그란 얼굴에서는 유표하게 정기가 있어보이는 두눈이 은은한 광채를 발산하고있었다.

《사또댁 작은도련님이 어떻게?》

《저 의원님! 우리 어머니가 당장 죽어가고있소이다.》

《뭐라구요?》

녀의원은 아래방에 주런이 앉아있는 녀인들에게 량해를 구하였다.

《제 급한 병자가 생겨 그러하니 잠시 기다려주세요.》

허준의 집에 이르러 방에 들어선 죽순은 죽은듯이 누워있는 려월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창백한 려월의 얼굴은 아직도 오매의 드세찬 손아귀에서 시달리고있는듯 이지러져보였다.

죽순은 다급히 눈까풀을 뒤집고 그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재빨리 가방에서 침통을 꺼내들었다. 굵은 동침이 려월의 인중에 들이박혔다. 허나 려월은 여전히 인사불성이다.

죽순이 열손가락끝의 십선혈에 열개의 작은 침을 잽싸게 들이박았다. 려월의 몸이 옴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병자의 반응을 예리하게 주시하던 죽순은 다시 열개의 침을 뽑고 가운데손가락끝을 가볍게 주물러 침자리에서 한방울가량의 피를 뽑아냈다.

이윽고 후- 하는 긴 숨소리가 새나오더니 인츰 려월이 눈까풀을 가벼이 떨다가 슬며시 눈을 떴다.

《어머니!》

허준은 너무 기뻐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죽순의 입에서 가벼운 안도의 숨이 흘러나온다. 그러던 죽순은 재차 려월의 맥을 짚어보고는 손목의 내관혈과 대릉혈 그리고 머리의 백회혈과 상성혈에 침을 놓았다. 정신이 좀 들었는지 침을 놓을 때마다 려월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제서야 죽순은 가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련님, 이젠 급한 고비는 넘긴것 같군요.》

《그렇소이까?!》

허준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몸집이 체소하고 얼굴이 동실한 녀의원을 바라보았다. 녀의원의 이 모든 치료조작은 마치 도술을 부리는것 같았다. 약 한첩 쓰지 않고 몇대의 침으로 인사불성이 된 사람을 순간에 살려내다니 조물주가 아니고서야 이렇듯 신비할수 있는가. 학문탐구의 세계에 늘 깊숙이 빠져있던 허준이로서는 녀의원의 치료가 신비스럽기만 하였다.

려월이가 정신을 차리자 죽순은 조용히 허준을 바라보았다.

《저 도련님! 잠간 밖에 나가셨다가 제가 찾으면 들어오세요.》

허준은 그 말이 무슨 소린가 했다가 죽순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보고 어머니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려 한다는것을 눈치채고 얼른 일어섰다.

한참후에 죽순이 《도련님! 이젠 들어오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준은 어머니가 안정되여 숨소리가 고르로운것을 보자 다소 마음의 여유를 찾고 경황에 어울리지 않는줄 알면서도 녀의원에게 불쑥 물었다.

《저, 의원님! 어떻게 침 몇대로 다 죽어가는 병자를 살려낼수 있소이까?》

병자의 상태를 관찰해보던 죽순은 그 물음에 빙그레 웃음을 짓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도련님은 의학에 대해 잘 모를테니 제가 설명해주어도 리해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알고싶소이다. 의원님의 말뜻을 백에 하나라도 리해할수 있다면 의원님의 얘기를 다 듣고싶나이다. 병을 다스리는 리치나 자연을 다스리는 리치나 다 같지 않겠소이까.》

《?!》

고집스러우면서도 당돌한 허준의 말에 죽순은 다소 놀란듯 하였다.

《그럼 간단하게 설명하지요. 도련님의 어머니가 이렇게 인사불성이 된건 심화가 동해서 심규(심장의 기가 통하는 구멍)를 막았기때문이예요. 그럴 때엔 먼저 인중혈을 써서 병자가 정신이 들게 해주어야 해요.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열손가락끝에 있는 십선혈을 찔러 피를 한방울 내면 틀림없이 정신을 차리게 되지요.

그다음에 심규를 열어주고 안신시키기 위해 심장의 기가 통하는 손목의 내관혈과 대릉혈을 써주며 여기다가 성뇌작용(정신을 각성시키는 작용)이 있는 머리의 상성혈과 백가지 기가 모여든다는 백회혈을 더 써주면 이렇게 인사불성상태에서 깨여나 안신될수 있어요.》

《백가지 기말이오이까?》

기라는 소리가 나오자 허준의 머리속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하늘땅은 기로 이루어졌다는 화담선생의 리기설이 문득 떠올랐다. 그 기와 녀의원이 말하는 기가 같은것인가고 당장이라도 묻고싶었지만 너무도 주제넘고 경망스러운것 같아 혀끝에서 그 말을 삼키고말았다. 그러나 허준은 녀의원의 말에서 의학에도 자기가 지금껏 서원에서 배워온 지식에 못지 않은, 어찌 보면 그보다도 더 심오한 리치가 담겨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월의 숨소리가 고르로운것을 재삼 확인하고나서 죽순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은 다 낫다고 장담하기 어려우니 오후에 우리 집에 와서 약을 지어가도록 하세요.》

녀의원의 말대로 허준은 오후에 약을 지으러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대문을 열고 토방에 올라선 허준은 잠시 쭈밋거렸다. 정오때에는 인사불성이 된 어머니때문에 경황없이 이 집에 뛰여들어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급한 마음이 가라앉은 지금에 와서는 내인들만 치료받으러 오는 이 집에 젊은 사내가 들어서는것이 어쩐지 게면쩍은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허준은 조용히 아래방의 지게문을 두드렸다. 선복이가 얼굴을 빠끔히 내밀더니 허준을 보고 생긋거리며 보조개를 팠다.

《어머니가 계시냐? 약을 지으러 왔다구 알려라.》

선복이 초롱초롱한 새별눈을 깜빡거렸다.

《어서 들어오시오이다.》

암만 봐도 귀엽기 그지없는 애였다. 허준은 선복의 보조개 핀 능금알같은 볼을 살짝 건드리고나서 방안으로 들어섰다. 아까보다 더 많은 내인들이 병치료를 받으려고 순번을 기다리고있었다. 선복의 뒤를 따라 들어선 허준은 치료하고있는 죽순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하였다.

방금 한 병자의 진찰을 끝낸 죽순은 눈가에 웃음을 지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러더니 선복에게 이른다.

《선복아, 아까 어머니가 말한 처방대로 첩을 짓거라.》

자그마한 앉은뱅이책상을 마주한 선복이가 주런이 렬을 지어 규칙적으로 놓인 하얀 종이우에 제법 날렵한 솜씨로 약제들을 배렬하고 한첩한첩 그 약들을 익은 솜씨로 싸기 시작하였다. 조꼬마한 선복의 손은 마치 률동에 맞춰 춤을 추는것 같았다. 허준은 어린 선복의 그 날렵한 손동작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이 집엔 남정이 없다. 선복의 아버지를 허준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분명 무슨 내막이 있는 의윈집이였다.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캐오고 약처방대로 첩을 짓고있는 선복이다.

새삼스런 눈길로 허준은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의원댁이라지만 눈에 걸리는 값나가는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류다른것이 있다면 치료실 한쪽벽면에 있는 당반인데 거기에는 《당귀》, 《숙지황》, 《단너삼》, 《작약》 등 약명들을 써넣은 작은 서랍들을 층층이 개여서 올리쌓았다. 그옆에 아이키만 한 자그마한 서가가 있다. 얼핏 보니 열댓권의 책들이 놓여있는듯 하였다.

(혹시 저 책들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귀신같이 고쳐내는 신비한 의술이 적혀있지 않을가?)

《어머니, 약을 다 지었사와요.》

선복의 그 목소리에 허준은 시선을 죽순에게로 돌렸다. 나이는 허준의 어머니와 비슷해보이는데 언행이 침착하면서도 여유작작하다. 이 린근의 녀인들과 아이들은 대개 죽순에게서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룡천고을에는 여러명의 남자의원들이 있으나 녀의원은 죽순이 하나뿐이다. 그래서인지 죽순의 집에는 늘 내인병자들이 끊기지 않는다.

어떻게 되여 죽순이가 의원이 되였는지 허준은 조금도 모르고있었다. 하긴 어머니때문이 아니라면 이 집에 올 필요가 없지 않았던가.

 죽순이 첩약꾸레미를 허준에게 내밀었다.

《조중석으로 달여먹이세요. 그럼 효험이 있을거예요.》

《저… 의원님, 약값은요?》

《어머니가 병이 다 나은 다음 한꺼번에 내세요.》

허준은 약꾸레미를 들고 죽순의 집을 나섰다. 치료받으러 왔던 내인들이 준수하고 잘난 저 총각이 사또댁 작은도령이라느니 본댁의 성화에 못 이겨 사또가 집을 여기 솔골로 옮겨놓았다느니 등 저들끼리 수군거리는 소리가 허준의 귀전에 들려왔다. 한시도 찧고까불지 않으면 속이 편안치 않는 내인들이지만 허준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온 룡천땅에 자기와 자기 집에 대한 소문이 날대로 났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오매의 행패질이 있은 때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저물녘에 솔골에 들린 허륜은 방안에 누워있는 려월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대경실색하였다.

죽순의 치료로 몸상태는 어지간히 호전되였으나 얼굴과 몸에는 폭행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려월이다.

《아니, 이 대체 어찌된 일인가?》

려월은 그 물음에 눈물만 소리없이 흘리고 간호하던 허준은 머리를 돌렸다. 모자의 행동에서 허륜은 어렵지 않게 오매의 소행임을 간파하였다.

《그럼, 그 우직한 년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무슨 일을 칠것 같았다. 그리도 곱던 려월의 얼굴과 옥을 다듬은듯 한 새하얀 목 여기저기에 피멍이 들어 시퍼렇고 눈등엔 시꺼먼 딱지가 붙어있었다.

《임자네가 괜한 봉변을 당하는구려. 내 임자와 준이를 볼 면목이 없네.》

이불밖으로 나온 려월의 손을 꼭 잡고 허륜은 그 말밖에는 다른 소리를 할수 없었다. 이어 두눈이 번쩍 빛을 발산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급히 일어서는 허륜의 바지가랭이를 려월이 가까스로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허륜은 아연해서 려월이를 내려다보았다. 안깐힘을 쓰며 려월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허준이 어머니의 몸을 부축해주었다.

《그러면 안되나이다. 이제 나리가 마님에게 화풀이를 하시면 일이 더 복잡해지오이다.

제발 자중하시오이다. 한개 고을의 관장인 나리의 댁에서 소동이 일어나면 관속들의 뒤소리를 들을것이구 또 그 소문이 조정에 퍼지면 나리의 명성에 흠이 가지 않소이까.

소첩의 얼굴을 봐서라두 그만… 진심으로 비나이다.》

피를 토하듯 열에 떠서 두손모아 빌고있는 려월의 애절한 목소리가 방안을 꽉 채웠다. 어머니의 잔등을 두손으로 받치고있던 허준의 얼굴에선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허륜은 모자의 그 정상앞에서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장승처럼 박힌듯 서있는 그의 귀전에 려월의 차분하나 또박또박 그루를 박은 말소리가 또 들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나리와 한가지 상론할것이 있소이다.》

허륜은 흠칫하며 내키지 않는 자세로 다시 방바닥에 앉아 려월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지켜보았다.

《소첩이 골백번 생각하고 내린 결심이니 나리께서 승낙하기 바라오이다.

사실 우리 모자를 각별히 위해주는 나리를 대할 때마다 준이와 소첩은 미안하고 옹색했나이다. 더구나 우리때문에 큰댁마님이 야단치고 또 그 일로 해서 고을정사에 지장되고 나리의 명성에 흠이 가는것을 우린 바라지 않소이다.》

려월은 숨이 차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 말소리는 낮았으나 마디마디 쪼아박으며 말한다는것이 허륜의 눈에도 헨둥하게 알렸다.

《이젠 뭘 숨기겠나이까. 사실 준이가 과시장에서 쫓겨난 다음부터 소첩은 애가 삐뚤게 나갈가봐 은근히 속으로 두려웠소이다.

헌데 남들같으면 일어나지도 못할 그런 불행을 당하고도 저앤 저 혼자 속에 묻고 이 어미한테까지 숨기려 했소이다. 그러자니 저애의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나이까!

저앤 지금도 이 에미와 사람들앞에서는 아무런 일도 없는듯이 태연한척 하지만 밤에 잘 때 가만히 지켜보느라면 꿈속에서도 흐느끼고 있는것을 이 눈으로 몇번이나 목격한지 모르나이다. 그 모습을 볼 때 어머니인 제 마음이 어떠했는지 아시오이까.》

려월의 목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그러나 소첩은 저애가 비록 서자라지만 량반댁의 열자식 부럽지 않나이다. 그런 아픈 상처를 당하고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큰 마음을 먹고 직심스레 공부만 하려는 저애를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오려는것이 소첩의 마음이옵니다.

그래서 소첩은 저애를 데리고 고향인 산음으로 내려가기로 속으로 내정했소이다.》 ·

허륜과 허준은 동시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너무도 뜻밖의 소리였다. 두눈이 벌개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마주보았다. 금시초문은 둘째치고 마른하늘에 벼락치듯 한 그런 놀라운 소리였다.

《그건 무슨 소린가?》

《그닥 놀랄 일은 아니오이다. 때없이 이 집에 들이닥치는 살기와 찬바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우리 준이가 하루빨리 자기 뜻을 이루자면 이곳에 더는 있어서는 안되오이다. 더는 중임을 맡은 나리에게 근심을 주고싶지 않소이다.

우리가 뜨면 큰마님도 달라지리라 생각되오이다. 또 준이도 이 생활환경에서 벗어나야 자기의 뜻을 바로 정할수 있고 의로운 일을 하려는 자기의 초지를 실현할수 있다고 보오이다.

소첩이 나리와 의논없이 내정한 생각이니 부디 너그러운 아량을 베푸시여 우리 모자를 산음으로 보내주사이다. 소첩이 병이 다 나으면 여쭈리라 생각했던것인데 미리 말씀드리는것이오니 나리께서 깊이 료량해주시오이다.》

한동안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허준은 새삼스럽게 어머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시각 허준의 눈에 비쳐진 어머니의 모습은 평시에 어질고 착하기만 하여 오매의 수모와 멸시를 고스란히 받던 천첩이라는 숙명에 순종할줄만 아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였다.

한편 허륜은 저앞에 앉아있는 려월이를 보면서 그가 이리도 웅심깊고 강인한 녀인인줄 새삼스레 깨달았다. 오매의 말처럼 려월은 결코 자기가 빚어놓은대로 있는 밀가루반죽같은 녀인이 아니였다.

불현듯 그뒤에 있는 허준이를 생각하였다. 저런 녀인이 낳은 아들이고 저런 녀인의 손에서 자란 아들이기에 과시장에서 상상 못할 모욕과 멸시를 받았어도 내색하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고있는것이 아닌가. 허륜은 앞으로 허준이가 큰일을 칠 사내라는것을 이자리에서 다시금 확신하였다.

훌륭한 아들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듯이 저런 외유내강한 려월이가 있어 준이는 자기 운명에 순종하는 패배자가 아니라 서자라는 신분적차별로부터 오는 고통과 번뇌를 성공의 주추돌로 딛고 꼭 성공하리라.

먹장구름이 가시고 해가 비치듯 늘 무겁던 허륜의 가슴이 확 트이는것 같았다.

허륜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려월과 허준이가 실성하지 않았는가 해서 의아해 쳐다본다.

《이자 보니 임잔 역시 내 사람일세. 이 허륜이가 임자를 만난건 참 다행일세!

난 쾌히 찬성일세. 우리 양천 허씨가문을 크게 빛내일 사람은 바로 저 허준이 녀석이야! 난 반대없네. 쌍수를 들어 찬성이네.》

말갈기가 외로 갈지 우로 갈지 은근히 왼심을 쓰던 려월이의 창백한 얼굴에 아지랑이가 피여나고 애기사슴같이 티 하나 없는 커다란 두눈이 활짝 웃는다. 인상좋은 허준의 준수한 얼굴에도 빙그레 웃음이 어린다.

《준이야! 이젠 너도 다 컸으니 세상리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있을게다. 이 아비의 부탁을 말하니 네 어머니를 잘 모셔라. 이런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길 이 애빈 믿는다. 그간 내가 너희 모자에게 왼심을 쓰느라 했지만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였어. … 어쨌든 빨리 몸을 추세워 춥기 전에 떠나도록 해라. 내 미리 준비를 해두마.

오늘은 정말 내 기분이 좋구만. 좋아!

준이야! 참 집에 술이 있겠지?!

이런 날에야 한잔 들어야지. 그렇지 않나? 내 오늘밤 여기서 묵겠네.

하하!》

방안이 떠나갈듯 한 허륜의 요란한 웃음소리에 뒤이어 간간히 울리는 려월이의 낮은 웃음소리로 분위기는 한결 따스하였다. 솔골에 이사온 후 처음으로 세 식구가 모여앉은 류다른 밤이였다. 오늘따라 피를 토하듯 울어대던 소쩍새가 방안에 흐르는 안정과 기쁨을 깨지 않으려는듯 조심스레 목청을 뽑는다.

소쩍- 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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