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불우한 서자

4

 

요즈음 허륜의 머리는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오매의 눈앞에서 허준의 모자를 일단 빼돌렸다지만 계속 그렇게만 둘수는 없었다. 허준이가 비록 서자라지만 자기의 피를 받은 살붙이고 더구나 려월에 대한 정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가는 허륜이다.

려월이를 봐서라도 그래 또 허준의 재능을 봐서도 그래 그애를 저렇게 속절없이 그냥 놔두어서는 안된다. 지금 형편에서는 허모보다 더 급한것이 허준의 사정이다. 순차로 보나 도리로 보나 허모를 먼저 과거에 응시시키는것이 옳으나 허륜은 허모에 대해서는 그닥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허모는 과거에 응시하면 문벌과 출신이 그쯘하기때문에 불미스러운 말썽이 생길수 없다. 실력이 좀 모자라면 어떻단 말인가. 그때에는 부처도 움직일수 있다는 은전을 슬그머니 시험관이라든가 면식있는 친구들에게 찔러주면 모르쇠를 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허준의 경우에는 다르다. 출신이 천첩의 소생이니 그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을것은 불보듯 뻔하였다. 이 상태로 그냥 방임하면 과거급제는커녕 기껏해야 자그마한 시골의 아전자리도 겨우 차지할것이다.

허륜은 다음해에 진행되는 식년시에 허준을 응시시킬 생각이였다.

식년시란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등 12지중에서 자, 묘, 오, 유년을 식년으로 하고 그해들에 치르는 과거시험을 말하는것으로서 3년에 한번씩 치르는것이다.

식년시에서는 세번의 시험을 치는데 그 전해의 가을에 보이는 예비시험은 《초시》, 그해 초봄에 보이는 원시험은 《복시(일명 회시)》, 성적순위를 정하는 최종시험은 대궐앞에서 친다는 의미에서 《전시》라고 불렀다.

문과초시에는 향시, 한정시, 관시(일명 성균관시) 등이 있는데 각 도에서 각각 실시하는 초시를 《향시》, 한성부에서 실시하는 초시를 《한정시》,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초시를 《관시》 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초시에 합격시키는 인원수는 240명으로서 그중 관시에서는 50명, 한성시에서는 40명이다. 8도에서 150명을 선발하는데 그 150명가운데서 평안도에 할당된 인원수는 15명이였다.

2단계시험인 복시에서는 초시합격자 24O명중에서 33명만을 선발하여 3단계시험 즉 최종시험인 전시에 참가시킨다.

전시는 복시에서 당선된 33명의 실력순위를 정하는 시험으로서 사실상 원시험인 복시에 합격하면 과거에 급제한것으로 된다. 순위는 갑, 을, 병 등으로 등급을 구분하는데 갑과는 3명, 을과는 7명, 병과는 23명이였다.

실력이 제일 우수한 갑과 당선자 3명은 국왕이 하사하는 어사화를 모자우에 꽂으며 그중에서 1등을 《장원》, 2등을 《방안》, 3등을 《탐화》 혹은 《랑》이라고 부르며 우대해준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평안도에 할당된 향시합격자 15명중에 허준이가 당선되여야 다음해의 원시험에 응시할수 있었다. 허륜은 부친으로서가 아니라 다년간 벼슬살이에 리력이 튼 눈으로 허준의 실력이면 향시는 물론 국왕앞에서 치르는 전시에서도 당당히 갑과 장원으로 급제할수 있다고 보았다.

나라의 엄정한 록명제도가 법으로 규정되여있는 조건에서 허준의 과거응시는 불가능하였지만 허륜은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독틈에도 용빼는 수가 있다는데 사람이 할탓이야! 세상에 법대로 진행되는게 과연 어데 있다더냐? 그리구 또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무던한 량반이라도 재물앞에서는 웃는 세월이 아닌가!)

마침 평안감영으로 봉물짐을 떠나보낼 기회가 생겼다. 향시까지는 아직 한달가량 여유가 있었지만 허륜은 이번 기회에 허준의 과시를 위해 미리 사전대책을 취하기로 작정하고 자기가 신임하는 례방비장을 조용히 불렀다. 다행히도 혀륜이 오위도총부에 있을 때 부하로 있던 친구가 평안감영에서 관찰사를 돕는 도사(종5품)였다. 그가 나서면 얼마든지 감시관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할수도 있다는 타산이 있어 허륜은 감사에게 보내는 봉물짐을 동행하는 인솔관으로 례방비장을 선정하고 그에게 별도로 금붙이와 여사여사한 사정을 담은 서신을 주며 절대로 이 일을 비밀에 붙이고 발설말것을 다짐두었다.

룡천관가에서 감영에 보내는 봉물짐과 일행을 인솔하고 떠난 례방비장은 이틀만에 평안감영에 당도하였다.

봉물짐을 이관한 례방비장은 허륜의 당부대로 그날밤 조용히 도사의 집을 찾아갔다. 도사의 집은 경상골안에 있었다. 감영의 도사라면 품계는 비록 높지 않아도 그 권한과 위세는 감사를 릉가할 정도로 간단치 않다. 왜냐면 관찰사가 일명 한개 도의 상징적벼슬이라면 실지 실무적인 문제는 도사의 손탁에서 체결되는 일이 보통이기때문이다. 더구나 관찰사가 도의 정사는 물론 군사문제까지 총괄하는 형편에서 놓치는것이 적지 않고 또 관심하지 못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기때문에 도사의 몫이 여간 중요치 않다. 비유하면 오늘날의 서기 비슷한 직무가 다름아닌 도사의 벼슬직이다. 그래서인지 감영의 도사들이 관찰사에게 도안의 정사에 관한 일들을 보고하고 수결을 받아 처리한다지만 많은 경우에는 자기 단계에서 처결하는 률이 많다.

평안감영의 도사는 정7품인 부위로부터 일약 종5품 참상관으로 벼슬이 뛰여오른 사람으로서 그 어느 감영의 도사들보다 령리하고 돈자리 구멍수를 놓치지 않는 위인이였다. 오죽하면 감영의 관속들이 그를 가리켜 모기다리에서도 피를 뽑아 먹을 위인이라고 했을가. 한편 룡천관가의 례방비장은 도가집 강아지마냥 눈치가 말짱한, 이를테면 역빠른 사람이였다.

비장은 군수가 보낸 뢰물보따리는 아직 꺼내놓지 않고 도사의 태도를 지켜보기로 하였다. 비스듬히 걸터앉아 허륜이 보낸 편지를 읽고있던 도사가 궁치에 불이 달린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눈이 화등잔마냥 커지더닌 흰자위만이 번뜩거렸다.

《아니, 서얼이라니? 이 무슨 황당한 소리냐? 너희네 군수령감이 정신이 쑥 빠진게 아니야? 서얼을 어떻게 과거에 응시시킨단 말인가? 안돼! 무슨 곤경을 치르자구 이따위 부탁을 나한테 한단 말인가. 당장 돌아가 안된다구 말해라.》

도사의 눈치를 보아가던 비장은 얼른 눈길을 떨구고 공손히 허리를 구부렸다.

《우리 사또께선 어르신이 이쯤한 일은 히죽 웃으며 염낭에서 제 손목을 빼내는것만큼 수월하게 처리할거라고 하셨소이다.》

《뭐 뭐? 염낭에서 제 손을 뺀다구? 손은 뺐다가도 다시 넣을수 있지만 이 모가지는 한번 떨어지면 영영 붙이지 못해. 두말말구 돌아가 사또에게 못한다구 해라.》

비장은 도사의 그 호령질에 전혀 놀라지도 않고 다시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독틈에도 용수가 있는 법이라구 우리 사또께서 이자 그 말을 꼭 전하라구 하셨소이다. 그러시면서 이전날의 정과 의리를 잊을수 없다시며 이걸 보내주셨소이다. 사실은 감영의 대소사를 돌보느라 마음쓰실 일이 많으신 어르신께 룡천고을의 특산을 한수레 보냈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의 눈이 많아 오히려 그것이 어르신의 명성에 손상된다시며 이걸…》

비장은 품안에서 명주천에 싼 물건을 꺼내 도사앞에 펼쳐보였다. 빛뿌리는 두개의 금가락과 정히 포장한 산삼 한뿌리가 도사를 쳐다본다.

《이건 백년 묵은 산삼이라 사또께서 품놓아 마련하신것인데 어르신의 몸보신에 쓰라고 하셨소이다.》

도사의 눈에 광채가 번뜩이더니 다시 본래의 자세로 돌아갔다. 그의 입에선 한본새로 거절하는 말이 튀여나오는데 좀전과 달리 가시가 없다.

《내 이런 금전을 받자고 그러는게 아니네. 내가 이전에 사또령감 부하였구 그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으니 그 령감의 부탁이라면 발벗구 나서는게 응당한 도리라는걸 왜 모르겠나.

허나 과시에 서얼은 응시할수 없다는거야 나라의 법이 아닌가. 나라법이 어떤것인지 자네나 사또령감도 잘 알테지. 그러니 이 물건들을 어서 걷어넣게.》

비장은 도사의 태도가 한결 누긋해진것을 보고 재차 말을 이었다.

《우리 사또댁 도련님의 성함이 허준이라 하온데 고을안에선 그 재능이 첫손가락에 꼽히오이다. 여기에 도련님의 함자와 생년일시를 적었으니 어른께서 잘 보살펴주사이다.

그럼 소인은 어르신을 믿구 돌아가겠소이다. 사또께 어르신이 맘을 폭 놓으라고 했다고 여쭈겠소이다.》

도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비장은 몸을 돌렸다.

《하 참, 딱한 일이라구야…》

평양부에 다녀온 비장으로부터 전후수말을 듣고난 허륜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이쯤하면 일은 땅짚고 헤염치기이다. 자기도 저런 뢰물을 얼마나 많은 고관들에게 들이밀었고 또 받았던가. 자기의 경우를 두고봐도 그 뢰물로 하여 오위도총부의 6명의 경력들속에서 문관출신이 임명되는 군의 관장으로 등용되지 않았던가. 비록 경력이나 군수는 종4품으로 품계가 같다지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가 더 좋고 소꼬리보다 쥐대가리가 더 좋은것이 아닌가. 그리고 한개 군의 생사권을 틀어쥔 관장인 자기에게 잘 보이느라고 비나리를 치며 뢰물을 들고오는자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눈 한번 찔끔 감고 모르는척 한 대가로 금가락 두개와 백년묵은 산삼 한뿌리를 받았으면 수지가 맞는 일이 아닌가. 저기 한성의 남대문앞을 지나는 숱한 량반들에게 물어보라. 청렴결백하다고 여드레 팔자걸음하고 관복을 떨뜨린 벼슬아치 그 누구든지 입을 모아 백번 해볼 일이라고 할것이니라.

허륜은 자기의 행위를 천만번 정정당당하다고 위안하며 사인교에 올라 동헌의 삼문을 벗어나 허준모자가 있는 솔골로 향했다. 그러나 허륜은 자기가 비밀리에 펴놓은 이 일이 경상도에 있는 허모에게 이미전에 알려진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뜻밖에 나타난 허륜이앞에 려월과 허준은 무릎을 끓고앉았다. 어제도 왔다간 허륜이다. 이삼일 건너 한번씩 들리던가 어떤 때는 열흘만에야 나타나던 허륜이 어제 이어 오늘 불쑥 나타난것을 봐서는 분명 무슨 긴요한 일이 있는게 분명하였다.

오늘따라 허륜의 인상이 환하고 허준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잔잔한 웃음이 어렸다.

《준이야, 금년 네 나이가 벌써 스무살인데 장래에 대해 좀 생각을 해보았느냐?》

뜻밖의 물음에 허준은 놀랐으나 차츰 왜 아버지가 그걸 묻는지 가늠되였다. 생각같아서는 자기가 품고있는 생각을 얘기하고싶었으나 아직은 채 익지 않은 과일을 내놓는것 같아 주저하였다. 무슨 말을 할듯말듯 하는 허준을 응시하던 허륜이 머리를 기웃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음- 이렇게 하자. 래년이 식년에 해당되는 정묘년이라 과거시험이 있을게 아니냐. 그래서 올가을에 평양부에서 향시를 치른다더라. 그래서 난 너를 향시에 응시시키려고 한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놀란것은 허준이 아니라 려월이였다.

《네? 과거를 보다니, 어떻게?》

려월로서는 상상밖의 일이 아닐수 없었다.

《임자의 심정은 리해할만 하네. 내게 생각이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그게 정맡이오이까?》

이날이때까지 아들의 장래에 대하여 남모르게 속을 많이 썩여온 려월이다. 려월은 믿어지지 않아 가만히 자기의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꿈아닌 현실임을 깨닫는 순간 려월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는 어머니의 손에 허준이 자기의 손을 가만히 얹으며 《어머니-》 하고 나직이 불렀다. 모자의 모습을 추연한 눈길로 바라보던 허륜이 허준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래, 준이의 의향은 어떠냐?》

허준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소자는 과거에 응시할 생각이 없소이다.》

《뭐?》

허륜과 려월의 입에서 동시에 놀라움의 소리가 튀여나왔다. 방금까지 눈물짓던 려월이 자기의 손우에 얹은 허준의 손을 뿌리치며 아연해하였다.

《얘야, 그게 무슨 말이냐? 모처럼 마련된 기회인데 그걸 마다하다니…》

허준은 고집스레 입술을 옥물고 아무런 대척도 없었다. 허준을 주시하는 허륜의 눈섭이 알릴락말락 가볍게 떨렸다.

《네 마음은 알만 하다. 남들한테 수모를 당할가봐 그러는것 같은데 내 그래서 방비책을 다 세워놓았다. 그러니 과시장에서는 너의 일에 대해서 누구도 전혀 모를게다.》

허륜에게도 제나름의 타산이 있었다. 이번 초시만 일단 무난히 넘기면 도감사를 직접 만나 가짜문서를 만들어 서얼의 신분을 벗긴 다음 조정에 줄을 놓아 허준을 벼슬길에 내세우리라 결심하고있었다.

고을에서 초시에 응시할 사람의 기초문서는 다름아닌 이 고을의 관장인 자기의 손에서 작성되여 감사에게 올려보낸다. 제가 수결하는 허준의 문서인데 허준의 출신 하나 고쳐놓지 못하랴. 그러지 않아도 군안의 초시 응시생 기초명부에 허준을 적자라고 써넣을 작정을 하고있는 허륜이다. 후날에 리력을 기만했다고 탄핵되면 여불없이 파직이지만 제 아들의 앞날, 더구나 려월의 몸에서 떨어진 허준이때문이라면 달게 받아들일 각오가 되여있었다. 설사 파직된다쳐도 조정사는 삼일간다고 그간 모아들인 재물을 고이면 인차 등용될수 있다.

《그러니 너는 그런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사실 이 말은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번 초시만 넘기면 네 신분을 아예 고쳐버리려고 한다. 어떠냐? 이게 좀 좋은 기회냐? 내가 적지 않은 품을 들여 마련한 절호의 기회이니 그렇게 하도록 하자. 더구나 널 하나 믿고 사는 네 에미를 봐서라두 과시에 응시하는것이 도리가 아니겠냐?》

허준은 새삼스레 자기앞에 앉은 아버지가 평시에도 어머니와 나를 이리도 끔찍이 위했던가 하는 생각과 아울러 애절한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그 심정이 가슴에 미쳐와 차마 더 고집을 세울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다 방비책을 했다니 혹시나 하는 미련도 없지 않았다. 정말로 서자의 운명을 면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실오리같은 한가닥 기대가 가슴속에 슬그머니 깃들면서 동시에 그것은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을 외면할수 없는 감정과 융합되여 마침내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로 응하였다. 허준이 과거시험에 응하자 창백하던 려월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어렸다.

 

백운동서원에서 룡천땅으로 불쑥 날아온 허모는 들어서자바람으로 오매에게 물었다.

《어머니. 어떻게 됐수?》

《네가 이른대로 다 해냈다. 해냈어!》

《그래요?!》

오매가 일어나서 웃방으로 올라가더니 붉은 비단주머니를 들고 내려왔다. 그 주머니를 방바닥에 내려놓자 《댕그랑-》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어디 내 한번 보자요.》

허모가 덤벼치며 주머니의 아구리를 풀었다. 주머니안에는 시누런 금가락들이 들어있었다.

《열개다!》

오매가 열손가락을 쫙 펴서 허모의 눈앞에 내밀었다. 허모의 입이 벙글써하게 벌어졌다. 이전에 오매가 별채에 가서 려월모자에게 행패질을 하고 돌아온 날 저녁 허모는 제 에미의 귀에 대고 귀띔하였다. 허모의 귀띔을 받은 오매는 그때부터 바싹 정신을 도사리고 령감의 일거일동을 몰래 살폈다. 허륜이 금전을 보관하는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려월의 모자가 별채에서 솔골로 옮겨간 후 오매의 심술은 사그라진것이 아니라 마른 장작더미에 불이 달린것처럼 더 타올랐다. 그래도 한 울타리안의 별채에 있을 때에는 심심하면 행악질을 할수 있었다. 속이 뒤틀려지고 투기심이 머리를 쳐들 때에는 한바탕 행악질을 해대고 그것들이 쩔쩔매는 꼴을 보면 속이라도 좀 후련해지군 하였다. 헌데 이제는 그런 행악질도 제맘대로 못하게 되였으니 그저 벙어리 랭가슴앓듯 할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더 속이 뒤번져지는것은 자기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허준의 모자를 옮겨놓은 령감이 뻗닿게 그 집에 드나들어도 오매 자기는 전혀 모르고있다는것이다. 한집 울타리안에 있을 때는 령감이 별채에 드나드는것을 손금보듯 알고있었는데 이건 도저히 알수 없다.

그전에는 령감이 별채에 가서 잠자리를 보아도 자기의 눈치를 보는것 같더니 이제는 건덕지가 없으니 제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 분명 려월년에게 갔다온것만은 사실인데 제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령감의 자기에 대한 무관심성에 순종해야 할 판이다.

부부로 결합된 남녀간에 사내의 무관심만큼 녀인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 일은 없다. 이제는 호박꽃잎같은 제 나이에 애정을 거론한다는것은 좀 쑥스러운 일이지만 날이 갈수록 성쌓다 남은 돌처럼 자기를 흥심없이 대하는 령감에 대한 원한과 자기를 이런 궁지에 몰아넣은 려월에 대한 증오로 오매는 처음엔 자다가도 이를 박박 갈며 가슴을 뜯었다. 허나 사내의 정이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일단 곬을 타면 멈춰세울수 없다. 하여 오매는 남편이 려월에게 가든말든 방심하고말았다.

헌데 그 일은 그럭저럭 참을수 있다지만 참을수 없는것은 애정보다 더 귀한 금전이 려월이와 그가 낳은 허준에게 흘러들어가는것이였다. 이런것들을 생각할 때면 오매는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고 부지중에 한밤중에라도 잠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나군 하였다. 아니, 이건 정녕 자다가도 까무라칠 일이였다.

그래서 오매는 려월과 허준을 골탕먹이는 일, 말하자면 허륜의 금전을 훔쳐내는 일에 눈이 새빨갛게 되여 나섰다. 천첩과 그 소생에게 새나가는 화수분을 없애고 그 모자의 운명을 칼탕치는 일은 오직 하나, 령감의 금전을 훔쳐내여 제 보따리를 꿍지는 일이라고 오매는 생각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일러준대로 그간 눈에 쌍심지를 달고 령감의 금전은닉장소를 탐문하였다. 한지붕아래서 사는 오매가 눈에 등불을 켜니 곧 령감의 금고가 오매의 수중에 장악되였다.

며칠전에 오매는 아들 허모로부터 그 금전중에서 금가락 열개를 꺼내 감추라는 기별을 받았다.

금가락을 쳐들고 이리저리 뜯어보는 허모의 손을 잡으며 오매가 궁금 하다는듯 재우쳐물었다.

《그래 대체 이걸루 그년놈들을 어떻게 골탕먹인다는거냐?》

허모가 실눈에 삵웃음을 지으며 내뱉았다.

《어머니 이제 스무날 있으면 초시가 있수다. 룡천은 평안도땅이니 평양부에서 향시를 치를거유.》

《그래서?》

오매가 닭알침을 삼켰다.

《고을 책방이 이미전에 아버지와 려월이년과 관련한 일은 죄다 내게 기별하기로 약속했수다. 이틀전에 례방비장이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평안감영의 도사를 찾아갔다우다.》

《헌데 그게 려월이년과 무슨 연고가 있다더냐?》

역시 오매는 큰소리를 쳐대고 승악스럽게 심술을 부리는데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았지만 머리를 쓰는데서는 허모의 발꿈치에도 못 따른다.

《이런 참, 코막구 답답하다구야. 려월은 또 무슨 말라빠진 려월이요? 아버지가 왜 례방비장을 감영의 도사한테 보냈겠수? 내 일때문에 그러겠수? 그거야 뻔하지 않수. 준이 그놈을 평양부에서 치르는 향시에 응시시키려구 보낸거지 다른 까닭이 있겠수? 책방의 말을 듣자니 감영의 도사가 아버지가 한성에 있을 때 데리고있던 부하라고 합디다.》

《뭐뭐, 어쨌다구? 아니, 그놈의 두상태기가 미치지 않았어? 그 잘난 천첩의 아들놈때문에 그곳에까지 일부러 사람을 보낸단 말이냐? 내 당장 령감한테 달려가서…》

허모는 고삐 풀어놓은 상사말처럼 길길이 올리뛰는 오매의 뚱뚱한 몸통을 다급히 잡아끌어 앉히며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일부러 사람을 보내다니요? 그런게 아니라 평안감사한테 보낼 진상품을 인솔해가는 소임을 례방비장한테 지으면서 겸사해 분부했다는지… 어머니도 알다싶이 그 례방비장이 아버지의 말이라면 소금섬을 강녘에 끌라구 해두 끌 위인이 아니우. 헌데 그 례방비장이 술이라면 제 녀편네두 팔 지독한 술군이고 또 책방과는 서로 숨기는게 없다지 않수. 그래서 그 비밀이 책방한테 새나가구 나한테까지 닿은거우다. 어머니처럼 그렇게 덤벼치다간 품들여 준비한 대살 다 망치겠수다.》

허모가 손세, 몸세 써가며 설복했지만 오매는 한대중 길길이 날뛰였다.

《아니야, 아니! 난 이럴 땐 실컷 고아대야 직성이 풀려. 이거 분통이 나서 살겠니? 량반신분의 정실안해의 아들은 둬두고 천한 첩년의 새끼를 급제시키려구 금은재물을 퍼붓다니 이게 어디 될 일이냐?》

《야 이거참. 누가 듣겠수다. 제발 고정하시우. 그 도사가 한성에서 아버지와 함께 벼슬살이를 했다는데 내가 래일 감영에 가겠수다.》

허모가 길게 설복해서야 오매는 간신히 분기를 눌렀으나 아직도 뿔난 황소마냥 씩씩거렸다.

《어머니, 이제 스무날만 참으시우. 내게 계책이 있수. 내 이제 도감영에 가면 어머니의 속을 후련하게 할 희소식이 날아올거우다!》

다음날 어뜩새벽, 허모는 평안감영으로 떠났다. 오매에게 평양부에 가는 그길로 그냥 경상도로 떠나겠다고 말하고난 허모는 평양부에 당도하여 직방 경상골에 있는 도사의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도사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기에 허모는 그길로 이아로 걸음을 옮겼다. 이아란 도사가 정사를 보는 곳이다. 룡천군수댁 자제가 찾아왔다는 기별을 받은 도사는 머리를 기웃거리였다.

(이건 또 무슨 감투끈인가. 요 먼저번엔 아비가 보낸 비장이 오더니 오늘은 아들이 직접 찾아온다? 정말 시끄럽게 구는군.) 하며 전갈하는 군교더러 들여보내라고 지시하였다.

《나리께 문안드리오이다.》

《음- 자네가 룡천군수령감의 아들인가?》

《그렇소이다.》

《내 일전에 자네 부친한테서 이야기를 다 들었네. 걱정말라구. 자네 이름이 허준이라지?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 너무 근심말구 돌아가게.》

정작 대면하고보니 대틀인 아비와는 달리 키가 작은게 탐탐해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대상하고 물리칠 생각으로 한마디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나리, 그런게 아니오이다.》하는 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일어서려던 도사가 그 말에 다시 주저앉으며 허모의 여읜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또 다른 문제가 있나?》

《아니, 그 말이 아니오이다. 이번에 향시에 응시하는건 제가 아니오이다.》

《뭐야, 그럼 대체 자넨 누군가?》

《전 그 집 종손인 허모라 하오이다. 허준은 저의 이복동생이오이다.》

도사는 가슴이 섬찍해났다. 그러니 이 녀석은 본댁의 아들이란 말인가.

《헌데 과거응시하지 않는 자네가 어인 일로 여기에 걸음했나?》

허모는 실눈을 까박거리며 속삭이듯 물었다.

《어르신께선 제 동생의 과거응시를 어떻게 하시려고 하오이까?》

《자네 부친의 간곡한 부탁인데 의리상 모른다고 할수 없지. 그런데 그걸 왜 묻나?》

허모의 목소리는 나직하나 어조에는 은근한 암시가 풍겼다.

《제가 알기에는 어르신께선 그런 일을 조사하고 바로잡아야 하실것 같은데 그렇게 일을 처리해두 일없으신지요? 나라법엔 서얼은 과거응시를 못하게 되여있지 않소이까?》

그 말에 도사는 가시밭에 앉아 모래밥을 씹는듯 한 착각이 들면서 엉치를 떼고 일어서며 벌컥 성을 냈다.

《네가 감히 날 훈시해?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더니 네놈이 과시 담도 크구나. 여기가 어데라구 들어와서는 날 걸고들어? 그래, 내가 네 부친의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대체 어쩔테냐? 어쩔테냐 말이야!》

도사가 언성을 높일수록 허모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더욱 곰상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전 어르신의 처신이나 캐자고 걸음을 한게 아니옵니다. 어르신께서 성을 가라앉히고 소인의 말을 한번 들어보시오이다. 어르신이 소인의 처지라면 어떻게 하겠소이까. 소인은 허씨가문의 종손이옵니다. 헌데 종손이라는 저도 아직 과거응시를 못했는데 서얼인 내 이복동생이 과거에 응시하는것을 눈을 편히 뜨고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아야 하나이까? 첩의 소생은 과거응시를 할수 없다는 나라법도 안중에 없이 서얼동생이 량반신분인 제 형을 짓밟고 먼저 급제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참아야 옳소이까?》

가만히 듣고보니 그 말이 그른데가 하나도 없다. 도사는 깨도가 된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임잔 그래서 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건가? 임자의 부친은 날더러 조용히 눈감아달라구 신신당부했는데 그 아들은 그것이 그른것이라며 날 몰아대니 대체 어쩌자는건가. 내 군수령감과 절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벼슬이 떨어져나갈 이런 위태로운 일에 발을 잠그지 않네.》

《지당한 말씀이오이다. 어르신의 립장이 난처한줄을 전 충분히 리해하오이다. 허나 어르신이 넓게 생각하시고 저의 편에 서주시기 바라나이다. 어르신도 본관과 출신이 당당하고 순결무구한 량반중의 참량반일진대 어찌 저의 편역을 들지 않고 서얼의 편에 선단 말이오이까? 이게 리치에 닿는 일이오이까?》

도사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허나 허륜의 부탁을 거절하자니 이미 받아놓은 금가락이 목에 걸렀다. 도사의 심기를 가늠한듯 허모가 때를 놓치지 않고 슬그머니 괴춤에서 붉은 비단주머니를 꺼내들어 탁자우에 올려놓았다.

도사의 눈이 대번에 휘둥그래졌다.

《아, 이건 대체 뭐인고?》

허모는 주먹만 한 얼굴에 해사한 웃음을 지었다.

《저- 어르신께 버릇없이 굴어 죄송하기 그지없소이다. 그리고 어르신이 내 편에 서면 자못 난처하실터라 그래서 제가 얼마간의 성의를 표시한것이오이다. 달리 생각마시고 받아주소이다.》

도사의 눈이 재빨리 붉은 주머니를 훑었다. 묵직하고 커보였다. 허륜의 금가락보다 값이 배이상으로 나가보였다.

《금가락이 다섯개오이다.》

오매가 준 금가락 열개중에서 그 절반만 내놓고 나머지는 제 주머니에 넣은 허모이다.

《뭐 다섯?!》

도사가 놀라며 저도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 놀라움으로 하여 머리칼이 다 쭈빗 서는것 같다. 등골에서 가벼운 기쁨과 쾌락의 진동이 아래도리로 쭉 뻗쳐내렸다. 허나 입에서 튀여나온 정반대의 소리.

《아, 아, 이보게! 뭘 이런것을 다 들고다니면서 그러나? 내 량반의 신분을 봐서 응당 들어주지 않으리.》

하면서도 도사는 누가 볼세라 얼른 붉은 비단주머니를 탁자에서 자기 무릎밑에 감추었다.

《그래 임자의 요구란게 뭔가?》

《예, 물론 과거에 응시 못하게 하는것이 당연하지요. 그러되 그놈이 서얼이라는 제 처지가 어떤것인지 죽어서도 잊지 않도록 되게 다불러주었으면 하오이다. 무참하게 망신주어 다시는 제 처지를 알고 푼수없이 놀아대지 못하도록 해주사이다.》

도사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세상에 이럴수도 있는가. 배다른 동생이라고 해서 또 천첩이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이리도 고약할수 있단말인가.

《흠, 자네두 꽤 모질구만.… 내 알겠네. 자네의 말대로 하지. 조금도 걱정말게나.》

평안감영을 나온 허모는 그길로 곧바로 경상도로 떠났다. 천번중의 단 한번이라도 일이 여의치 않으면 불찌가 자기에게 튈수 있었다. 그럴 때에는 36계가 상책이다. 범같은 아버지래도 아무려면 천리밖의 아들을 혼내우려고 찾아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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