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7

 

해적선의 포위속에서 《류성》호가 항해를 멈춘지 벌써 8시간이나 흘러갔다.

지금은 캄캄한 밤이였으나 《류성》호 선원들은 누구 하나 잠들지 못하였다. 아니 잠들수가 없었다. 해적선도 마찬가지였다. 마치도 승리감에 들뜬 놈들처럼 으시대며 배들마다에 울긋불긋 전등불을 환하게 켜놓고 갑판우에서 먹고마시면서 왁작 지껄이고있었다. 음악소리도 들려왔다. 20~30m 높이에 떠있는 인공안개가 해적선에서 나오는 불빛을 공중으로 꿰뚫지 못하게 하다보니 오히려 그 반사광이 비쳐 《류성》호의 주변까지도 희붐했다. 이것은 전지구위치측정체계를 통하여 해상을 관측 또는 관찰하고있는 여러 나라들과 해상감시기구들이 자기들의 위치를 알수 없게 하려는 해적놈들의 간교한 술책이였다.

포위속에 든 《류성》호는 고요속에 묻혀있었다.

홀로 갑판을 거니는 진호의 눈앞에는 좀전에 치료실에서 본 선장의 창백한 모습이 자꾸만 얼른거리였다.

《급한 고비는 넘겼지만 시급히 전문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지 그냥 이대로 있다가는 상태가 더 악화될수 있습니다.》

의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팔과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두명의 선원들은 응급처치를 했기때문에 별일이 없겠지만 선장이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도저히 어쩔수가 없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은 진호의 눈길이 저도모르게 먼 북녘하늘가로 향해졌다. 지금 조국에서는 얼마나 안타깝게 우리를 찾고있을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전혀 소식을 보낼수 없으니… 해적들이 쏜 전자기포탄으로 《류성》호 통신설비들은 모두가 마비된 상태다. 위성통신설비뿐만이 아니다. 반도체라지오, 심지어 선원들이 리용하고있는 손대화기들을 비롯한 통신기재들이 모두 못쓰게 되였다. 통신장 수근의 말에 의하면 파괴된 위성통신설비는 당장 수리할 가망이 없다고 했다.

무슨 수로 조국에 이 사실을 알릴수 있단 말인가. … 진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지금껏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수많은 나날들을 흘러보냈지만 지금처럼 조국이 그립고 지금처럼 조국의 손길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고개를 짓숙인채 또다시 갑판우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였다. 이때 희뿌연 어둠속 맞은켠쪽에서 이쪽으로 누군가 급히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리였다.

《부선장동무가 거기 있소?》

자기를 찾는 소리에 진호는 긴장해서 앞을 보며 대답했다.

《나 여기 있소.》

그러자 쿵쿵 갑판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한 선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뛰여왔다. 다가온 사람은 당직선원이였다.

《왜 그러오?》

《부선장동무, 통신장동무와 통신수 성철동무가…》

당직선원은 숨을 톺느라 미처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들이 어떻게 됐다는거요?》

《보이지 않습니다.》

《뭐요?…》

《통신실에도 없고… 있을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는데.》

《그들이 도대체 어디 갔다는거요?…》

신경이 날카로와졌는지 진호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저 혹시 해적선에 통신설비를 탈취하려고 가지 않았을가요?》

《?!…》

진호는 그 선원에게 한발자국 바투 다가섰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몇시간전부터 통신장동무랑 성철동무가 해적선의 통신설비소리를 자꾸 외우댔는데 그걸 봐선…》

《뭐요?… 동문 당장 선창에 가서 그 동무들의 날개옷(추진기가 달린 특수한 웃)이 있는가 보오.》

《알았습니다.》 하고 선원은 돌아서 선창쪽으로 뛰여갔다. 진호는 가슴이 답답해났다.

수근이, 동문 지금 어디에 있소?… 진호는 갑판을 오락가락했다. 초조한 발자국소리만이 조용히 울릴뿐이다. 저쪽에서 당직선원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두사람의 날개옷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 동무들이 적들속으로 들어간게 틀림없구만. 동무두 참.》

진호는 어물거리는 당직선원에게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나서 그만에야 자기 이마를 싸쥐였다. 수근이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있는가? 놈들이 만약 이렇게 되기를 바랐다면 이것은 도저히 수수방관할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저녁무렵에 수근이가 진호를 찾아왔었다. 그때 수근은 진호에게 해적들의 통신설비를 탈취해서 조국에 《류성》호가 처한 사태를 알리자고 제기했지만 그는 즉시 밀막아버렸었다.

《좀더 두고보기요.》

《아니요, 그래두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범의 굴도 실정을 알아보고 들어가야지 욕망 하나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요. 모험을 하지 맙시다.》

《모험? 지금의 이런 형편에서 모험이구 뭐구 가리게 됐소?》

《아무튼 안되오. 우리 18명의 선원들중에서 단 한명도 해적들의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단 말이요. 난 이 배의 지휘관으로서 명령하오!》

《?!…》

단호한 진호의 말에 박수근은 머리를 떨구고 돌아섰었다. 그런데 끝내 자유주의적인 행동을 하다니.…

아직 해적선쪽에서는 조용하지만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아니, 해적들은 벌써 우리 두 선원을 어찌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눈길로 선체밖을 내다보는 진호의 얼굴에 자책의 진한 빛이 비꼈다.

내가 왜 이러는가, 현상황에서는 선원들모두가 지휘관의 명령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강한 규률을 그 어느때보다 더 엄격하게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선장동지도 바로 나에게 이런 비정상적인 사태를 예견해서 애타게 배와 선원들을 부탁했다. 아, 그런데 나는… 진호는 다급히 현측사다리쪽으로 뛰여갔다. 우선 수근이와 성철이부터 구원해야 했다. 현측사다리에 이른 진호는 뒤따라 달려온 당직선원에게 차후임무를 구체적으로 주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동문 전체 선원들에게 알리오. 나의 명령없이 절대로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소.》

《알았습니다!》

당직선원이 돌아서 어둠속으로 내닫는 모습이 해적선들에서 비쳐대는 탐조등불빛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진호는 다시 돌아서 해적선들을 쏘아보았다. 해적선쪽에서는 여전히 귀에 선 이질적인 음악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놈들이 노는 꼴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보였다.

어떤 흉계를 꾸미고있을가?…

음악까지 틀어놓고 미친듯이 술을 퍼먹으며 놀아대는것은 우리 선원들로 하여금 제놈들이 해이되였다는것을 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술책이 아닐가? 놈들은 위성통신설비가 파괴된 《류성》호 선원들이 어떤 모험이라도 할수 있다고 생각할것이다. 그렇다면 해적들이 해이된줄로만 알고 통신설비를 탈취하려고 해적선에 간 수근이와 통신수는 영낙없이 놈들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드는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는가? 진호는 안타까운 마음에 저절로 숨을 길게 톺았다. 해적선을 쏘아보는 그의 두눈에서는 놈들에 대한 증오의 불길이 펄펄 일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는 이런 때일수록 선원들이 더더욱 한마음한뜻으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였다. 《류성》호는 비록 통신이 두절되고 조국과 멀리 떨어져있지만 우리는 외롭지 않다. 우리 《류성》호는 여전히 조국의 한 부분이다. 이렇게 마음을 가다듬으니 배심이 든든해졌다.

(어떻게 해서든 해적들의 마수로부터 수근이와 성철동무부터 구원해야 한다. )

진호는 선창에 들어가 추진기가 달린 날개옷을 입고 나왔다. 그때까지 해적선에서 울리는 음악소리는 그치지 않고있었다.

 

×

 

프란쯔 모텔은 《류성》호에서의 반발이 너무 세차지자 위구심이 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해적들이 달려들면 배를 통채로 폭파하겠다는 《류성》호의 경고를 들었을 때 가슴이 다 섬찍했다. 한편 낮에 통신실창가를 통해 쌍안경으로 본 그 사람의 얼굴이 어덴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자기와 엇비슷한데 어디선가 꼭 본것 같은 인상이였다.

어디서 보았을가?…

모텔은 소년시절에 생활이 넉넉한 덕분으로 해외려행을 많이 했었다. 그때 동방인들도 수태 만나보았었는데 그 나날에 혹시?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혹은 해적생활기간 그와 비슷한 인간들을 보지 않았을가? 아리숭해서 도저히 알수 없었다.

사실 모텔이 해적생활하면서 지금까지 보아온 습격대상이란 치면 맞고 달려들면 두손을 번쩍 쳐드는 그런 무맥한 존재들이였다. 그래서 더욱 기고만장해진 해적들이였다.

그런데 부선장을 비롯해서 《류성》호의 선원들은 달랐다. 해적들이 기승을 부릴수록 여유작작하게 대항해나섰다. 이것은 웬간한 담력을 가지고는 할수 없는 행동이였다. 더우기 그 기상이 간단치 않았다. 지금까지 본 사람들과 다르다는것이 알렸다.

저 부선장이 분명 낯이 익은데 어데서 보았을가?… 모텔은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류성》호를 바라보았다.

지금 《류성》호는 무연한 날바다의 주인행세를 하는 해적들앞에서도 호락호락 굽어들지 않고있다. 모텔은 8000톤급의 무역선인 《류성》호의 연유탕크가 폭발하면 그것을 둘러싸고있던 자기들이 어떻게 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온 바다가 불바다로 화할것이며 《류성》호도 해적선들도 그 불길속에 휩싸여 타버릴것이다.

속담에 단것은 종당에 쓴것을 가져온다고 했거늘 지금껏 맛본 략탈의 재미가 오늘로 끝장을 가져올지 어이 알랴.

그러고보면 범의 꼬리를 쥐고 놓을수도 없고 잡을수도 없는 처지에 빠진것이 자기들이라고 생각해볼 때 모텔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더더욱 환멸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울적한 기분에 젖은 모텔은 잭크가 가져다놓은 탐측기에 전원을 투입하고 파장조절기를 돌려보았다. 무심결에 조종해보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껏 아무리 만지고 조절해보아도 끄떡하지 않던 탐측기가 별안간 삑― 삑― 소리를 내는것이 아닌가? 탐측기가 살아났는가?!… 모텔의 눈이 둥그래졌다.

사실 이 탐측기는 대역파장이 넓은 뇌파송수신기였다. 상대방의 송신기에서 내보내는 파장이 수신대역에 들어오면 자동적으로 기재가 살아서 소리를 내게 되여있었던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상대방과 파장이 맞아떨어져 신호음이 나기 시작했던것이였다.

그러나 이 설비에 대한 파악이 전혀 없었던 모텔로서는 《류성》호의 습격과 때를 같이하여 살아난 미지의 탐측기에서 울리는 신호음에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이것이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모텔은 지금껏 우연을 믿지 않았었다. 과학을 신봉해서인지 그는 하나의 현상에도 다 필연적인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터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탐측기에서 계속 울리는 신호음에 모텔은 와짝 소름이 돋는것을 느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지꿎게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아, 《류성》호의 기습은 하늘의 뜻이 아닌가부다. )

모텔은 마치도 탐측기가 하느님이 내려보낸 신령처럼 생각되여 가슴이 활랑거렸다.

이때 잭크가 다시 통신실로 찾아왔다. 아직도 갑판에서 놀던 흥취가 가셔지지 않은듯 발장단을 치며 흔들거리는 잭크의 모습은 허장성세해보였다.

《모텔, 저걸 좀 내다보라구.》

《?…》

잭크가 가리켜보이는 시창밖으로는 해적선의 탐조등불빛에 《류성》호의 자태가 우렷이 바라보이였다.

《〈류성〉호의 신세가 참 안됐네. 칼도마우에 올려놓은 도미라고 해야 할지.》

흥에 겨워 씨벌여대는 잭크를 보며 모텔은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너무 이죽거리는게 아닌가? 저 〈류성〉호가 나한테는 꼭 상처입은 상어처럼 느껴진단 말일세.》

《상처입은 상어?… 핫핫… 참 그 비유가 걸작일세. 하지만 차라리 상어라면 좋겠어. 고기맛이 더 좋을테니까.》

잭크는 모텔의 속내를 모르고 제 흥에 떠들며 전투복주머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 잔도 없이 입안에 쏟아넣었다.

《카― 상어든 도미든 이제 날이 밝으면 우린 그 맛을 톡톡히 보게 될걸세.》

초저녁부터 갑판우에서 마셔대던 술이 깨지 않은듯 눈가녁에 껍진껍진해보이는 허연 진이 잔뜩 나와있는 잭크를 마뜩지 않은 눈길로 쏘아보며 모텔이 입을 열었다.

《흥, 그 인삼술말인가? 그게 우리한테 차례지기나 할걸 가지고 그러나.》

술병안의것을 마저 비운 잭크가 열려진 문으로 그것을 휙 집어던지고 돌아섰다.

《자넨 여전히 천진하구만. 이번 작전이 뭐 고려인삼술만 빼앗자는것인줄 아나?》

《?!…》

말뜻을 몰라 멍해있는 모텔에게 잭크는 히죽거리며 자랑스럽게 씨벌여댔다.

《얼마전에 바이킹이 나한테 슬쩍 얘기했는데 저 〈류성〉호에는 고려인삼술상자들은 물론 첨단공작기계설비들이 있다고 합데. 그걸 손에 넣기만 하면 우린 많은 돈을 받는단 말일세. 알만 한가?》

《그러다 실패라도 하는 날엔 야단이 아닌가?…》

머리를 기웃거리는 모텔을 천진스럽게 바라보며 잭크가 사기가 나서 지껄이였다.

《이제 말일세. 실패하는 경우에도 다 구실이 있단 말일세. 사진들을 그럴듯하게 합성해가지고 신문들에 〈조선의 무역짐배, 마약밀매!!〉 이런 표제를 달자는걸세.》

《그런 거짓말을 누가 곧이 믿겠나?》

모텔이 눈이 둥그래서 잭크에게 물었다.

《하, 이 친구 아직 캄캄이로구만. 우리한테는 위력한 보도진이 다 있네. 해적선에서 목격한 일이라면서 사진과 함께 기사형식으로 쓴 글이 이미 준비되여있단 말일세. 그 글을 누가 쓴줄 아나? 우리가 ××항구에서 모셔온 바로 그 금발머리미인일세. 히히… 이제 금발머리녀자가 쓴 그 글이 사진과 함께 공개되면… 아마 세상을 들었다놓을걸세. 우린 그통에 마약밀수배를 적발한것으로 되여 몸을 얼마든지 사릴수 있거든. 이젠 알겠나?》

잭크는 으쓱해서 모텔의 잔등까지 툭툭 쳤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걸음으로 문밖으로 나가다가 돌아서서 입에 손가락을 모로 세웠다. 입을 다물고있으라는것이였다. 모텔은 너무도 허망스러워 쓰겁게 웃었다.

《그따위 장난이 우리한테 왜 필요한가?》

잭크가 문가에서 돌아섰다.

《왜 필요한가구? 그거야 돈때문이지. 돈…》

《…》

《돈이라면 사람을 파리잡듯 하는 우리가 아닌가. 이렇게 뚜룩뚜룩…》

잭크는 두손을 받쳐들고 기관총을 쏘는 흉내를 내며 낄낄거렸다.

《그까짓 배나 격침시키자면 벌써 그렇게 했지. 하지만 이번 일은 그게 기본이 아니거든. 모텔, 이번 일만 성공하면 우리한테도 막대한 돈이 차례질걸세. 이건 정말이야. 그렇게 약조가 되여있다니까. 어… 취한다.》

잭크는 이렇게 씨벌여대고 문밖으로 사라졌다. 모텔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내가 이런 곳에 오다니…

모텔은 해적활동에 신물이 날대로 나 이제는 진저리칠정도였다. 해적들의 생활이란 하나와 같이 짐승들처럼 먹이감을 놓고 으르렁거리는 승냥이들의 생활이였다.

해적활동은 미국에서 코카인장사가 급격히 늘어난 때부터 성행하기 시작했었다. 그를 기화로 강도적인 기업들은 범죄자들과 결탁하여 뒤에서 은밀히 돈벌이를 하고있었다.

《류성》호에 대한 해적들의 기습사건도 이런데로부터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었다. 그 누군가가 《류성》호를 습격하기 위해 해적들에게 많은 돈을 댄 모양이였다. 모텔은 머리를 싸쥐였다. 이런 일에 말려든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다시금 그의 내심에서 꿈틀거리였다. 매일밤 통신실에 홀로 박혀 무선기를 통해 울려나오는 해적들에 대한 세계의 규탄을 들으며 치욕으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싸쥐던 모텔이였다. 고향에서 내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있는 젠니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면… 돌아가자니 그것도 마음대로 갈수 없었다. 해적들의 계률에서는 죽어서만 여기서 나갈수 있었다. 아, 이제 나는 더이상 이런짓을 못하겠다!…

모텔이 절망에 빠져 머리를 마구 흔드는데 어디선가 낮은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자기 방문앞에 와 소리가 멎었다. 모텔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순간 그의 눈은 공포로 휘딱 뒤집어졌다.

《?!…》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두명의 《류성》호 선원이 자기앞에 우뚝 서있는것이 아닌가. 두 선원중 나이가 든 선원이 모텔을 무섭게 쏘아보며 영어로 말했다.

《살려거든 리성을 가지고 행동하시오!》

그는 낮으나 엄한 목소리로 모텔에게 오금을 박았다. 모텔은 사시나무떨듯 하며 꼼짝 못한채 그냥 앉아있었다. 이어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제꺽 위성통신설비앞에 마주 앉았다. 한동안 설비의 조작단추를 돌리던 그 선원은 모텔쪽으로 돌아보는데 눈에서 불이 뿜어나오는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기 사람에게는 온화하게 말한다.

《통신장동지! 놈들의 설비가 동작하지 않습니다. 주파수변환관을 뽑았습니다.》

《뭐요?!》

통신장이 얼굴을 찡그리자 젊은 선원은 다짜고짜로 모텔에게 다가섰다.

《네놈이 설비의 부속품을 뺐지?》

《아니요, 난 설비를 다치지도 않았소.》

모텔은 황급히 두손을 내저었다. 사실상 모텔은 그 누군가가 자기의 위성통신설비에서 부속품을 뽑아간것도 모르고있었다.

《거짓말말아!》

통신수청년이 불끈 두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아, 아니요. 이건 정말이요.》

모텔이 몸을 우들우들 떨며 손을 내흔들었다.

《성철이!… 그만두오. 우리가 너무 경솔했던것 같소. 가만보니 여긴 놈들의 함정인것 같소.》

《예?!…》

《빨리 여기서 빠지기요.》

박수근이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져가지고 말하자 통신수청년이 머리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어느새 문가에 잭크가 나타나서 얼굴에 음험한 웃음을 짓고있었던것이다. 그놈은 이렇게 씨벌여댔다.

《통신설비때문에 오리라고 기다렸소. 이 부속품을 찾소?》

잭크는 주머니에서 부속품을 꺼내 흔들었다.

《잭크!》

모텔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잭크, 개자식! 네가 나도 몰래 통신설비의 부속을 훔쳤구나 하는 분한 생각이 치밀어올랐다.

《모텔, 미안하네.》

잭크가 모텔에게 한마디 뇌까리더니 다시 수근이쪽으로 돌아섰다.

《역시 메리아가씨의 예언은 하느님의 계시나 다를바 없거든. 핫핫…》

잭크는 권총을 꺼내들고 뱅글뱅글 돌리며 이죽거리였다. 잭크의 뒤에 여러명의 해적들이 서서 두 선원에게 총부리를 내대고있었다. 잭크는 천천히 선원들앞으로 다가왔다.

《그물에 고기가 들긴 드누만. 히히…》

《…》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있는지 잭크는 또다시 낄낄거리더니 동료들에게 소리질렀다.

《이자식들을 묶으라! 아가씨에게 끌고가야겠어.》

둘러섰던 해적들이 우르르 두 선원에게로 다가들었다. 수근은 포승줄을 쥐고 선참으로 덤벼들던 놈의 배허벅을 드센 발길로 차넘기였다.

《헉―》

그놈은 배를 싸쥐고 풀썩 주저앉았다. 수근은 틈을 주지 않고 뒤따라 잽싼 주먹과 발타격으로 또 한놈을 쓰러뜨렸다.

《다가서지 말앗!》

그의 벼락같은 소리에 해적들이 주춤거렸다. 이때 수근은 등뒤에 있는 열려진 창문으로 통신수청년을 떠밀었다.

《성철이, 빨리 저 창문으로 뛰여내리라구. 어서!》

《안됩니다. 통신장동지가…》

《어서!》

수근은 벼락치듯 웨쳤다. 잭크가 무어라고 고함을 지르자 잠시 주춤거리던 해적들이 와락 수근에게 달려들었다.

이때였다.

《가만!》

별안간 문가에서 울리는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라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는 또 한명의 《류성》호 선원이 서있었다.  건장한 체격에 기강이 넘쳐흐르는 그의 태도에 해적들은 한동안 멍청해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부선장동지!》

통신수청년이 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부선장동무, 여기가 어디라구?…》

박수근이도 격해서 소리쳤다.

통신실 한구석에 웅크리고있던 모텔의 두눈이 반짝이였다. 《류성》호의 마스트갑판우에 올라서서 배의 폭파를 경고하던 그 사람이였다. 잭크를 비롯한 여러명의 해적들이 그가 《류성》호의 부선장이라는것을 대뜸 알아보고 쾌재를 불렀다.

《아, 드디여 〈류성〉호에서 큰 인물이 찾아왔군.》

잭크는 싱글벙글 웃으며 권총을 쥔 손으로 모자채양을 올려밀었다. 하지만 속은 떨고있었다. 해적선에 올라서도 주눅이 들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라군 조금도 없는 젊은이의 기상에 놀랐던것이다.

부선장을 바라보는 모텔은 두눈만 슴뻑이였다. 저 사람은 무슨 힘이 있어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이곳에 선뜻 나타났는가, 《류성》호가 외부와의 교신도 할수 없는 처지에서 무슨 힘으로?…

한편 잭크는 전자기포탄의 폭발로 인한 강력한 파장으로해서 위성통신망과 휴대용대화기까지 모두 마비되여있는 이 고립무원한 상태에서 제까짓것들이 무슨 힘으로 우리와 감히 맞선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지면서 심신이 거뿐해지는것을 느꼈다.

《부선장이라… 아직은 새파란 나이군. 그래 젊음이 아깝지 않소?》

《아깝소. 하지만 우린 그 젊음을 두고 비굴하게 살려고는 하지 않소.》

《오, 그럼 어디 두고보기요.》

잭크는 코방귀를 내불며 어정쩡해 서있는 해적들에게 고개짓을 하였다. 그러자 해적들이 우르르 진호에게 다가들었다.

《다가서지 말앗!》

진호는 두손을 들어올리며 소리질렀다. 그의 손에는 자그마한 손전화기같은 물건이 쥐여져있었다. 해적들은 그것을 보고 주춤거리였다.

《이것은 레이자폭탄이다. 만약 네놈들이 분별없이 달려들면 이걸 폭파시켜 모두 수장시켜버릴테다!》

진호는 스위치에 손을 대고 놈들을 쏘아보았다. 잭크가 흠칫 놀라더니 인츰 얼굴에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걸로 우릴 위협해보겠다는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호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 잭크는 뒤걸음쳤다.

진호가 손에 든 물건을 우로 향하자 눈부신 강렬한 빛묶음이 나오면서 천정에 둥그런 구멍이 펑 뚫렸다. 그러자 놈들은 겁먹은 인상이 되여 잠시 허둥거렸다. 잭크는 진호의 손가락이 레이자폭탄의 그 어떤 단추를 누르는 날에는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것을 분명 알았던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통신실안은 물론 해적선전체가 날아날것이였다.

《좋소. 당신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만 준다면 문제를 좋게 해결할수도 있소. 우린 얼마간의 당신네 인삼술이 요구될뿐이요.》

잭크의 어조에는 겁기가 어려있었다.

《가소롭소. 우린 한상자도 배에서 내릴수 없소.》

《그러면 당신들은 항해하기가 힘들거요.》

잭크는 나직이 중얼거리였다.

《당신들은 우리 앞길을 막지 못하오.》

상대가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자 잭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렇게 왔던김에 우리 두령님을 만나보지 않겠소?》

《좋소, 만나보기요.》

진호가 승인하자 잭크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휴대용손대화기를 꺼내들었다.

《바이킹! 지금 우리 배에 〈류성〉호 선원들이 와있습니다. … 예, 두령님을 만나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 어른들을 잘 대접하라구. 만나주어야지.》

손대화기에서는 잭크의 보고에 응답하며 거드름을 피우는 바이킹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한갖 객기에 지나지 않는것이였다. 그때까지 해적들은 《류성》호 선원들을 향한 총구를 여전히 내리우지 않고있었다.

 

×

 

스미스의 방은 배의 선실복도에서 제일 구석쪽으로 아주 안침한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그래서 부하들은 그 방을 가리켜 일명 《불랙룸》이라고 불렀다. 현란한 불빛아래 바닥에 깔린 부드러운 융단, 벽에 붙어있는 《자유의 녀신상》의 풍경… 방안에는 값진 여러가지 비품들이 틈틈이 들어차있었다.

한편 그 방에서는 스미스와 메리가 TV화면에 비쳐지는 록화장면을 지켜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화면에는 메리가 《류성》호에 대한 습격과정을 촬영한 록화장면이 비쳐지고있었다. 이제 이 장면들은 해적들에게 유괴당한 《××타임스》지 탐방기자 메리가 직접 목격한것으로 합성되여 텔렉스를 거쳐 온 세상에 퍼져갈 토핑뉴스감이였다.

해적선의 갑판우에서 울리는 음탕한 음악소리도 다 메리의 작간에 의한것이였다. 년은 인적도 없는 대양의 한가운데서 울리는 음악소리와 왁자지껄임이 《류성》호의 선원들에게 약간의 심리적작용이라도 줄수 있다고 보았던것이다.

《문제는 〈류성〉호의 내부촬영이예요. 그 배의 내부와 선창 그리고 인삼술상자들이 실황으로 촬영되여야 신빙성을 부여할수 있어요.》

《걱정마오. 일본속담에 원하는자가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이 있지 않소. 우리 애들이 지금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있으니까… 인차 실현될거요.》

메리의 앙탈에 어지간히 짜증난 스미스가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대수롭지 않다는 기색을 지었다.

《흥! 밤이 짧으면 대신 낮이 길다는걸 모르세요. 해상경찰이나 련합군이 잠자고있지 않다는걸 알아두라요.》

《…》

메리는 스미스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채 코웃음을 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당신은 뭐랬어요? 해지기 전에 〈류성〉호를 타고앉는다고 했는데 이제 와선 날밝기를 기다린다는거예요? 흥, 정말 믿을수가 없군요.》

《메리, 이번 일이야 보통때와는 다르지 않소.》

《뭐가 다르단 말이예요? 그만큼 현대적인 무기를 다 갖추어주었는데도 극상 한다는 꼴이 총질이나 하고 고함을 지르는것밖에 더 있어요?》

스미스는 입을 쩝쩝 다시였다.

《그거야 〈류성〉호 녀석들이 우리가 어쩌기만 하면 폭침시키겠다고 하니 좀 경중을 보느라고 지체했을뿐인데 뭘.》

《흥, 구실은 그럴듯하군요.》

스미스는 능글맞게 웃으며 거의 상반신을 드러내놓고 있는 메리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자, 그러지 말고 밤도 깊었는데 이젠 그만 잠자리에 들어야지.》

메리가 몸을 꼬아댄다.

《저리 비켜요. 일이 튈것 같아 속이 쏘는데 잠이 와요? 저길 좀 봐요.》

화면에는 《류성》호의 조타실지붕우에 올라선 름름한 체구의 젊은 선원이 비쳐지고있었다. 휴대용확성기로 《류성》호의 자폭경고를 하고있는 그 사람의 두눈에는 불이 이는듯 하였다.

《죤, 그래 저런 사람들을 당신네 부하들이 휘여낼것 같아요?》

《걱정마오. 그것들이야 맨주먹인데 용빼는수가 있소? 치면 맞아야 하는거요.》

《난 어쩐지 도저히 마음을 놓을수가 없군요.》

이때 별안간 탁자우에 놓인 무선대화기가 호출신호를 울리였다. 스미스는 낯을 찡그리며 누운 상태에서 무선대화기를 잡아당기였다.

《뭐야! 무슨 일인가?》

무선대화기에서 잭크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바이킹! 지금 우리 배에 〈류성〉호 선원들이 와있습니다.》

《뭐라구?!》

스미스는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게 정말인가?》

《예, 두령님을 만나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 어른들을 잘 대접하라구. 만나주어야지.》

무선대화기를 놓은 스미스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자들이 생각이 달라졌는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지 말아요. 그자들이 생각이 달라서 왔다면 통신실엔 왜 왔겠어요?》

《?…》

《내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통신설비의 중요부속품을 모텔 몰래 뽑아놓으라고 잭크에게 과업을 주었댔어요. 그렇게 하길 천만다행이지 아마 벌써 〈류성〉호소식이 평양으로 날아갔을지도 모를거예요.》

스미스는 그제야 리해된다는듯 헤식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역시 계집들이란 앙큼하기 그지없는 족속들이거든… 메리가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치면서 얼마나 많은 모략을 벌렸으며 그 과정에 또 재부는 얼마나 많이 치부했겠는지에 대해서는 스미스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까이 지내볼수록 년이 생각하는 품이 간단치 않다. 오늘만 놓고보아도 메리가 제때에 위성통신설비의 부속품을 뽑아 건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통신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것인가?

《당신은 정말 천사와 같소. 그래 나와 같이 그자들을 만나보지 않겠소?》

《아니, 나는 지금 그자들에게 얼굴을 보여선 안돼요. 나야 당신네한테 유괴되여온 〈탐방기자〉가 아닌가요.》

《참, 그렇지. 알겠소.》

삵의 웃음을 짓는 메리에게 멋적게 말하며 스미스가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메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장에서 자기의 손가방을 꺼냈다.

《표범도 자기의 발통을 아낀다고 했어요.》

《?!…》

메리가 손가방에서 검은색안경을 끄집어내였다.

《죤, 이걸 끼고가세요. 당신의 모습은 아직 그네들한테 알려져서는 안돼요.》

《알겠소.》

스미스는 메리가 내여준 검은색안경을 받아 끼고 《불랙룸》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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