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6 장

4

 

《야, 바줄을 던져!》

《대위님, 배채로 끌어가잡니까?》

《별수 있나. 인민군이 사납다는걸 몰라?》

《목대가 가는게 별루…》

《주의해, 상사! 아직 숨이 붙어있는것 같구만!》

《혹시 귀순의사가 아닐런지…》

《무슨 소릴 하는거야? 하필이면 이런 날을 잡았겠나? 뭔가 심상치 않아. 이자들이 오늘은 도발하는 날이야. 미군함선들이 군항에서 긴급출동했어. 저 동해 한복판에서는 무슨 굉장한 사건이 생긴 모양이야.》

김강인은 어슴푸레한 의식속에 꿈결에서처럼 그것을 듣고있었다.

처음 그는 말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자기가 드디여 전우들속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끙 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머리가 천근바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 순간 점차 맑아오는 의식속에 귀에 선 말소리들이 선뜩하게 들려온다.

《가만, 상사! 이자가 의식을 차린게야. 빨리 배를 붙여! 내려가서 끌어오게! 빨리 야전군 공보처에 보고해야지. 빨리 빨리. 오늘 티비에서 피커 스케이팅(휘거)결승이야. 허리가 잘룩하고 엉치가 호마짝같은 미녀들이야.》

김강인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소스라쳐 놀랐다.

운명은 그를 적진으로 이끌어온것이다. 그러니 그는 의식을 잃은채 강을 따라 몇시간을 흘러내려 남쪽바다에까지 이른것이 아닌가. 그는 별안간 쿵쿵 뛰기 시작한 자기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적들에게 포로되여서는 안된다. 그의 머리속으로는 군인선서의 신성한 구절과 군인의 의무가 번개치듯 떠올랐다. 그는 적수공권이였다. 하긴 후방기지에 나온지도 이틀째다. 문득 뇌리를 치는것이 있다.

그의 허리밑에는 노대를 수리할 때 김창모땅크장에게서 빌린 손도끼가 깔려있었다. 바람이 잦아들었는지 전마선은 물우에서 가볍게 흔들리고있었다. 그는 슬며시 손을 뻗쳐 더듬었다. 곧 도끼가 손에 잡혔다. 그는 몸을 돌리며 눈을 떴다. 금시 그의 눈에서 불길이 펄펄 일었다. 전마선을 사이에 두고 두척의 경비정이 센 불빛을 내리비치고있다. 철갑모와 자동총을 번뜩이며 갑판에 서있는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 바다의 후광에 용암되여 안겨든다.

전마선은 경비정에 바투 붙어버렸다. 갑판에서 던진 갈구리가 달린 바줄이 팽팽하게 켕기여있다.

검은 형체가 금방 란간에 매달려 전마선에 뛰여내릴 차비다. 김강인은 번개같이 일어나 배전에 갈구리를 박은 바줄에 대고 도끼를 휘둘렀다. 전마선이 넘실 튕겨 바줄에 의지했던 검은 형체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물에 첨벙 떨어져내렸다.

김강인은 도끼를 틀어쥔채 전마선의 중심에 우뚝 버티고섰다.

《야! 주의하라! 위협사격하라!》

전마선주변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렸다.

김강인은 도끼를 틀어쥐고 주위를 얼핏 둘러보았다. 어둠속이지만 그는 여기가 바다기슭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기가 막혔다. 그는 자기가 지금 최악의 경우에 빠졌다는것을 분명 의식하였다.

《여, 인민군형님! 너무 긴장할건 없어. 당신은 지금 휴전선을 넘어 남쪽에 흘러왔단 말이야. 좋아. 귀순이 아니라면 우린 사고로 인정하고 방조를 주자는거야. 순순히 단속에 응하는게 좋아!》

방수포비옷을 걸친 대위가 란간에 몸을 구부리고 자못 친절한 어조로 내뱉았다.

김강인은 긴장한 눈길로 그쪽을 쏘아보았다.

《누구든지 배에 접근하지 말라. 무자비하게 타격하겠다. 그리고 앞길을 열라! 파도가 잦았으니 나는 부대로 돌아가겠다.》

《자중하라. 병사!》

김강인은 코웃음을 쳤다.

불쑥 경비정 량쪽에서 바줄이 달린 갈구리들이 련속 날아들었다.

바줄이 팽팽해지자 경비정이 발동을 걸며 기슭으로 급히 움직인다. 억류해보려는 눈치다.

김강인은 눈으로 불을 펄펄 내뿜으며 도끼를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단단한 바줄이 활시위줄처럼 탁탁 튕기다가 끊어져나가군 했다.

경비정은 얼마쯤 전진했다가 다시 전마선에 바투 다가섰다. 강력한 탐색등빛에 방수포비옷을 입은 대위의 너부죽한 얼굴이 드러났다.

세모진 눈에 잔뜩 독이 올랐으나 아직도 목소리는 제법 침착하다.

《병사, 정 반항하면 기무사에 넘기겠어! 그럼 다야. 다시는 세상구경 못해. 북에서도 기무사명성은 분명 들었을텐데?… 우리의 자제력에도 한계가 있어!》

《개수작말아! 그런 위협에 주저할 인민군병사가 아니다!》

《이자식 말버릇봐라. 어디라구. 장교님앞에서…》

바다물에 떨어졌던 상사가 악에 받쳐 입술을 악물었다.

김강인과 그자의 눈길이 부딪쳤다.

《길을 열라!》

《안돼! 여긴 너의 해역이 아니야!》

《여기도 우리 바다다.》

《뭐? 우리 바다? 그건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야?》

《왜, 여기는 우리 조선의 바다가 아니구 남의 나라 바다인가?》

김강인의 당당한 웨침에 상사는 말문이 막혀 눈만 꿈벅거렸다.

김강인의 눈에 미소가 굳어졌다.

이윽고 틈을 노리던 적함에서 또다시 바줄들이 날아들었다. 김강인은 서슴없이 그것을 잘라버렸다.

힘겨운 란투가 여러차례 벌어지는 속에 시간은 굼뜨게 흘러갔다.

김강인은 차차 긴장했던 몸이 풀리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쾌속정 한척이 다가왔다. 일어선 물결에 전마선이 춤추듯 흔들거린다.

적들도 지쳤는지 한동안 공격기세를 늦추었다.

검은색코트에 중절모를 쓴 다부진 사나이가 경비정갑판에 나타났다. 탐색등불빛이 얼비치일 때마다 눈섭이 연하고 그밑에서 눈이 간사하게 번쩍이는 창백한 얼굴이 나타나군 했다. 사나이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물더니 곽을 흔들었다.

《담배를 피우겠나? 친구.》

《내게도 있다.》

《그렇다?ㅡ》

검은 코트는 말꼬리를 길게 뽑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럼 식사라도 해야지?…》

《?!…》

《뭘 그러나? 병사, 우린 제도와 리념이 달라 그렇지 다 같은 민족이야! 부득이해서 병사가 표류된 모양인데 돕는거야 응당한 일이지. 우린 단군할아버님의 피줄을 이은 한겨레야. 우리 대통령이 뭐랬는지 알아?》

《허튼 수작말아! 일본왕을 〈천황〉이라고 추어올리고 독도주변어장을 왜놈들에게 섬긴 주제에 뭐 단군할아버님?…》

《허허, 북군이 제법 유식한데? 이봐, 대통령을 비난할건 없어. 어쨌든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고생한분이야.》

《그따위 헌 수작은 인정하지도 않는다. 미제침략자들에게 빌붙는 주제에 무슨 민주주의야. …》

검은 코트는 코를 킁킁거리더니 수세에 빠진 제 처지를 가리우려는듯 속에 없는 빈웃음을 지으며 김강인을 건너다보았다.

《허, 중급병사가 대단한데? 좋아, 소속과 이름이라도 대달라구. 우리가 인민군측에 련락하지.》

검은 코트는 아주 친절한 표정을 지었다.

김강인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실지 여기에서 빠져나간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부대에서는 지금 나의 행방을 찾고있을것이다. 어떻게 하나 출로를 열어야 한다. 우리 분대장동지라면 이런 때 어떻게 했겠는가. 김강인은 비로소 정신적여유를 느끼며 두루 생각을 굴렸다.

최명진의 얼굴이 떠오르자 김강인은 금시 마음이 든든해졌다. 문제는 조선인민군 군인답게 피동에 빠지지 않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좋다. 당신들이 억류의도를 버리면 나도 담판할 생각이 있다.》

검은 코트는 김강인의 당돌한 말에 쓰거운지 입맛만 쩝쩝 다셨다.

《과장님, 뭘 일개 병사를 놓고 신사적으로 그럽니까? 제꺽 돌진하여 결박해버리고 맙시다.》

대위가 눈을 부라렸다.

《아, 아! 뭘 그리 우물에 가 숭늉 달라기나.

그래 물속에서 달을 건져낼텐가. 방금 동해바다에선 저쪽 함선이 자폭했어. 뭘 알기나 하구 덤벼? 저 병사가 보통남자가 아니야. 우리같은 송사리가 아니란 말이야. 절대로 순순히 굽어들것 같지 않아.》

검은 코트는 넌지시 김강인을 치떠보고나서 대위를 옆으로 밀어제꼈다.

《좋소. 우린 담판에 응하겠소. 소속과 이름을 대주시오.》

《나는 조선인민군 군인 중급병사 김강인이다.》

《아 좋아좋아. 난 기무사 리웅서중령이요. 먼저 귀측의 요구부터 제기하시오.》

중령이 대위를 슬쩍 곁눈질하며 점잖게 하는 말이였다.

《나는 긴말을 좋아안한다. 나는 임무수행과정에 폭우를 만나 방향을 잃었을뿐이다. 당신들이 나를 안내하여 우리측 지역으로 보내주기 바란다.

우리 부대에서는 당신들의 행동을 응당하게 평가할것이다.》

리웅서중령의 가늘게 째진 눈에 비웃음이 가득 찼다.

그는 애써 자제하는듯 담배를 또 꺼내 입에 물었다.

《좋은 제안이라고 류의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상급이 있다. 그렇게 되면 당신들의 평가는 받겠지만 우린 다 모가지야. 알겠나? 대표선생!》

《모를게 하나도 없지. 그것두 다 생각이 있다. 우리 공화국의 품은 관대하다. 당신들이 나와 함께 입북한다면 그건 통일을 위한 장한 일로 될것이다. 도대체 미국놈들한테서 뭘 얻어먹겠다구 그래? 제 사람에게 붙어야지.》

《허허허… 이거 대단한 랑만주의자와 맞다들었는걸? 가르쳐주어 고맙소. 하지만 병사각하, 당신의 그 서푼짜리 선동에 넘어갈 사람이 여긴 한명도 없어!》

리웅서는 너부죽한 얼굴을 쳐들고 트림이나 하듯 껄껄거리였다.

제법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김강인은 자기의 함화공작이 수포로 돌아간것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늘 계기가 늦는 전사가 아니다. 김강인은 이번에는 다른 수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내 말은 선동이 아니다. 통일의 날도 가까와오는데 처신을 바로 하는것이 좋을것이다. 당신들이 나를 억류하려들면 당장 우리 부대가 보복타격을 가한다는걸 알라!》

리웅서는 미심쩍은듯 표표한 눈알을 굴렸다.

《당신의 소속을 구체적으로 밝히라!》

《군사비밀이다.》

《김강인씨, 군사비밀을 묻는건 아니야. 그건 우리 권한밖이라는걸 인정해. 그래두 소인들이 정확히 알아야 해당한 대책과 당신의 그 훌륭한 제안을 연구하지. …》

김강인은 허리를 쭉 펴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정 알고싶으면 말하지. 나는 해군소속 특수정찰에 복무한다.》

리웅서가 쓴웃음을 짓자 결이 난 대위가 상사패를 돌아보았다.

《야, 저 자식이 우릴 놀린다. 당장 덮쳐라!》

김강인은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달려드는 놈은 박살을 내겠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 도끼로 내 목숨을 끊을테다. 조선인민군 군인은 살아서 절대로 포로되지 않는다!》

한순간 살기가 뻗쳐 윽윽하던 경비정갑판이 조용해졌다.

대위가 목을 내밀고 주저하다가 소리질렀다.

《야 병사! 넌 뭘 믿고 큰소리야! 넌 여기 혼자뿐이야. 살고싶거든 손을 들어!》

김강인은 준절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개수작말아! 내가 혼자라구? 내 뒤엔 우리 동지들과 사회주의조국이 있다. 똑똑히 들으라. 나는 천하제일명장 김정일장군님의 전사다!》

《?!…》

벌써 새벽이 가까와오는지 바다물색이 검푸르러지기 시작하고 파도가 높아져간다. 어디선가 갈매기울음소리도 들려온다. 하늘이 허옇게 트이는것 같다. 지금쯤은 사관장이 먼저 일어나 병실안을 조심히 돌며 분대장들을 깨울것이다. 김강인은 어느새 눈을 살며시 뜨고 모포깃을 재빨리 여며쥔다. 기상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것이다. 이젠 구대원대렬에 당당히 들어선것이다.

김강인은 눈을 감았다. 그 모든것, 꿈결에도 그리운 곳, 한모금 물도 나누며 생사를 같이한 전우들이 있고 전투적우의와 랑만이 있는 곳,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친필이 존엄있게 빛나는 교양실, 이제 그는 그 모든 소중한것, 아름다운 삶과 무자비하게 결별해야 했다!

끼니를 건느고 피를 흘리고 폭풍속에서 오래동안 시달린 그의 몸에서는 마지막정력이 가까스로 버티고있었다. 그는 격동된 나머지 자기 육체의 한계를 잊고있었다. 눈을 뜨면 온통 주위가 빙글빙글 돌것 같다.

바다우에서는 조선인민군 한 병사를 억류하려는 격렬한 공방전이 근 열시간 가까이 계속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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