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5 장

10

 

안토니 릴씨는 텔레비죤화면을 《CNN》(씨엔엔)통로로 바꾸고나서 한동안 번거로운 생각에 시달렸다. 아칸소주에 있는 세습령지의 농작물이 세기말의 전례없는 폭우와 큰물로 막대한 피해를 받았다는 이복동생의 불쾌한 서신을 받은 어제 저녁부터 줄곧 침울한 심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경영하던 언론기업도 파산의 낭떠러지에 걸려 흔들거리고있었다. 이제 크지 않은 조그마한 힘이 가해져도 가차없이 심연속으로 굴러떨어질 판이다. 릴씨는 실망감과 좌절, 비애에 시달렸다. 정치란 돈과 이어진 물건이지만 알을 낳지 못하는 닭도 있는것이다.

클린톤도 결국 황금알을 낳지 못했고 릴씨 또한 황금암닭이 될 운명을 지니지 못했다. 지금 릴씨는 그것을 똑똑히 느끼고있었다. 그는 쉰살이 가까와오는 현 시점에 와서야 비로소 이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것이였다. 뒤를 돌아보아야 화려했던 시절은 먼 보라빛운무에 가리워진 페허처럼 느껴졌고 파산이라는 늙은 로파의 먼지낀 지팽이만 남았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는 명예도 직위도 불안전한 구슬픈 독신남자였고 그 고독을 길동무해줄만 한 진실한 벗도 다정한 안해도 없었다.

릴씨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장발한 《씨엔엔》녀방송원의 활력넘치는 목소리를 우울하게 듣고있었다.

(그러니 가련하게도 나는 대통령의 한계없는 방탕을 위해 얼마나 힘겨운 마라손경기를 해왔는가.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였는가. 국가의 안보를 위해 동분서주할 때 나 개인의 안보는 사라져가고있었다. 그렇다. 이제는 사색할 시간도 없다. 그야말로 운명의 갈림길이다. 정치적으로 솟구치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은 틀림없는 진리이고 현실이다. 그래, 틀림없는 진실이야!…)

릴씨는 누운채 텔레비죤의 통로를 바꾸었다. 모니카 루윈스키와의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릴씨는 한때 자기의 애인이였던 그 녀자의 어딘지 모르게 해쓱해지고 더 때가 쭉 빠진것같은 청초한 모습을 류다른 악감을 가지고 주시했다. 음성단추를 다쳤는지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릴씨는 신경질적으로 음성단추를 눌렀다.

《클린톤은 어떤 남자였습니까?》

《그를 처음 보았을 때 숨이 멎는것 같았습니다. 그가 연단으로 걸어나올 때 이 남자야말로 활력과 관능 그리고 남성적매력으로 가득찬 인물이라고 느꼈고 그때부터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는 위안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나는 그를 대통령이 아니라 한 남자로 평가하고있어요.》

(너절한 년, 이건 창녀들이나 할 소리가 아닌가?…)

《당신이 받은 휘트만시집 〈풀잎〉의 기만을 알았을 때의 심정은?》

《그 사실로 해서 그의 행동의 진실성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사회에 공헌하고싶습니다. 약간 진부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에게 알맞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가지고싶습니다.》

《그 애들에게 후날 뭐라고 하죠?》

《〈엄마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단다. 〉라고 말해주지요.…》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릴씨는 재빨리 침대우를 정돈하고 문득 텔레비죤앞으로 다가가 스위치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늘씬한 녀자가 방에 재빨리 들어섰다.

《스위치를 끄려고 서두를건 없어요.》

모니카는 침대우에 손가방을 던지고 팔걸이걸상에 앉았다.

짧은 치마가 탄력있는 몸에 말리였다.

릴씨는 풀이 죽어가지고 그 녀자를 주시했다. 화면에서보다 더 축가고 날씬해지기까지 한 모니카는 여전히 아름답고 리지적이였다. 파란 눈동자가 지금 파르르 떨며 무엇인가를 탐색해내려는듯 자기의 얼굴을 예민하게 살핀다.

릴씨는 한숨을 쉬고나서 그 녀자앞에 커피주전자를 가져다놓았다.

《아마 당신이 아니였다면 난 클린톤이라는 인간을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로 여겼을거예요. 당신이야말로 그의 측근으로서 그의 미감에 맞는 녀자를 품들여 키워 들이민것이지요.》

《그런 말은 케이씨나 그 뒤사람에게 하지. …》

릴씨는 지꿎은 시선으로 그 녀자를 쏘아보았다. 불현듯 모니카의 입이 벌려지려다가 그대로 굳어지고말았다. 그 녀자는 아연해진 시선으로 릴씨의 눈길을 붙잡았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떨리고 갑자기 눈굽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릴씨는 무엇인가 자기가 던진 무심한 말이 그 녀자의 정통을 찔렀다는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넘지 말아야 할 계선을 넘은것이다. 하지만 벌써 때는 늦었다.

릴씨는 자기가 실수했다는것을 분명 느끼고있었으나 한편 꿈만 한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결국 아무런 창조도 할수 없는 미완성품이다. 모니카, 너도 같아. 괴로와 말아, 슬퍼 말어. 너의 인생은 평범한것 같지만 비극적이고 얼굴은 깨끗하지만 속은 어지럽거든. 학창시절에는 모니카도 평범한 미국녀학생이였지. 대학졸업후에는 무직으로 되여버렸지. 이붓아버지인 언론재벌덕분에 모니카는 억만장자 월터 케이부부와 친교를 맺게 되였다. 어느 화창한 봄날 케이는 그 녀자에게 백악관에서 근무할 생각이 없는가고 넌지시 비쳤다. 사실 백악관봉사원자리를 얻기란 락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힘든것이였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이즈음 백악관에서는 클린톤의 선거공약에 따라 직원의 25%를 자원봉사원으로 바꾸는 사변이 벌어졌다. 릴씨는 어느 한 유력한 유태계 은행가의 저택에서 케이부부와 동행한 모니카 루윈스키를 만났다.… 몇달후 모니카는 그 어디에나 자유로이 나들수 있는 파란색출입증을 가진 성원으로 임명되였다. 릴씨는 클린톤에게마저 이 사실을 숨기고있었다.

릴씨는 려송연을 깊이 빨며 흐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창문을 열려했으나 그 순간 모니카의 부드러운 팔이 뒤로부터 그의 목에 휘감겼다.

그 녀자의 뜨거운 숨결이 목덜미에 와닿았다.

《토니, 당신이나 나나 다 운명에 도전할 팔자를 타고 난걸요. 행복이란 없는거예요. 우리가 부르던 노래에 있지요?》

릴씨는 랭정하게 뿌리치고싶었으나 그 녀자의 마지막말이 봄날의 비처럼 그의 언 가슴을 녹이려했다.

릴씨는 눈을 감았다. 멀리, 썩 멀리에서, 아니 무척 가까운 심장의 기슭에서 그것은 슬며시 눈앞에 다가오는것이다.

가버린 노래, 순수한 장미빛십자가…

 

             인생은 미완성

             부르다 만 노래

             새기다 만 조각

             …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나그넨걸

             …

 

《토니, 난 당신의 이복동생 제임스를 만났댔어요.》

《나도 어제 편지를 받았소.》

《당신만 반대없다면 난 토니, 당신의 안해가 될래요.》

릴씨는 다정히 그의 손을 잡아내렸다. 그는 눈을 뜨지 않은채 행복을 보려했으나… 그것은 아름다운 먼 신기루 같은것이였다.

그랬다. 이 혼탁된 세상에서 눈을 뜨고는 멀리를 볼수 없다. 지어 한치도 내다볼수 없다. 오직, 오직 상상속에서만, 공상속에서만 인간은 자기의 지성과 리성이 자라는껏 멀리를 볼수 있는것이다. 그래 그 먼곳에는 무엇이 있단말인가? 도대체 인간이 꿈꾸는 진정한 행복이라는것이 실제적으로 존재하기나 할가? 릴씨는 환멸이 온몸에 가득차 오르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유감스럽지만 난 당신의 허영을 만족시킬만 한 능력과 재력을 이미 상실했소.》

모니카는 무엇인가 잠시 망설이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눈길을 들었다.

《토니, 난 이번에 런던에서 누군가를 만났어요. 언젠가 당신이 흥미를 가졌던 그 사람!…》

릴씨는 눈을 뜨고 얼굴을 홱 돌렸다.

《피푸스후작을?!…》

《그는 지금 프랑스에서 전략연구쎈터를 틀어쥐고있어요. 그는 당신을, 아니 우리를 파산에서 건져줄거예요.》

릴씨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건… 명예를, 아니, 생명을 모험하는 위험한 길이요.》

《난 짧아도 굵은 생을 원하지요.》

릴씨는 눈을 감고 모니카는 눈을 뜨고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속의 시선이 이 순간 하나로 합쳐졌다.

전화종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릴씨는 탁자로 다가가며 속으로 결심했다.

(모니카, 이 녀자하고라면 한번 인생을 모험해볼만도 하지.

최악의 경우 이 녀자자신이 큰 자본이 될수 있다. 그 늙은 케네스는 영원히 릴씨가문이 이끄는 일류급신문의 사회부기자로 남아있어야 해! 모니카, 너는 너의 리상대로 명문가인 릴씨라는 성을 받은 21세기의 주인이 될 아이들을 낳게 될게다. 그 애들에게 언젠가 말하게 되겠지. 《엄마는 아빠와 함께 엄청난 모험을 했더란다.》…)

전화는 백악관에서 온것이였다. 그것은 비상경보에 가까운것이였다. 릴씨는 집열쇠를 모니카에게 던져주고 급히 방을 나섰다.

대통령집무실에는 국방장관 코헨과 국무장관 알브라이트와 여러 보좌관들이 우울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다들 릴씨를 쓴외보듯 하는데 고어부대통령이 그를 자기곁으로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각하!》

《부쉬패거리가 검은 가방을 빼앗으려 들게 되였소.》

고어는 오히려 유쾌한 표정을 지었다.

클린톤과 알브라이트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고어쪽을 쏘아보았다.

《전쟁입니까?》

《그래, 전쟁이야!》

《드디여 발칸에서?…》

《아니, 극동이야! 북조선이 인공지구위성을 쏴올렸단말이요. 그것도 단 한번에 우주궤도에 진입시켰소. 놀라운 일이요. 드디여 이 지구에 새로운 위성보유국이 탄생했소!》

릴씨는 금시 가슴이 졸아드는것 같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사실입니까?》

코헨국방장관이 침착한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로씨야우주탐지기구가 우리의 탐색보다 먼저 확증했소. 아직도 로씨야사람들은 잠재력이 있거든. 평양은 공식보도를 날리지 않고 시치미를 따고있소. 그 의도를 알수 없단 말이요.》

릴씨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려송연을 꺼내들었다.

리버만이 조용히 들어와 커피잔들을 돌려놔주었다.

릴씨는 려송연곽을 도로 내려놓고 기분이 처져있는 클린톤에게로 돌아섰다.

《대통령각하, 제가 이미 말씀드렸지요. 북조선은 벌써 썩 전에 인공지구위성은 물론 대륙간탄도미싸일을 발사할수 있는 강력한 국방력을 마련해놓았습니다. 이번 페리씨의 도착보고에도 언급되였지만 정세는 결정적인 대책을 요구하고있습니다.》

클린톤이 의자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있었고 눈빛이 번쩍거렸다.

평소에는 볼수 없었던 류다른 인상이였다. 무엇인가 섬찍한것이 그에게서 풍겨왔다.

릴씨는 이 순간 다시한번 그가 간단치 않은 사나이라는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것이 눈빛에서, 온몸에서 풍겨왔다.

(대체 클린톤씨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가? 저런 눈빛은 내가 알고있는것이다. 중대한 결심이나 착상이 떠오를 때 이 사나이는 늘 침착해진다. 마치 알렉산더대왕이나 루즈벨트대통령처럼 랭정해진다. 하지만 그 속심은 알수 없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를 탄핵마당에까지 내몬 성추문사건에조차 코웃음을 치며 내심으로는 정치문제에만 고심해왔다.

북조선의 인공지구위성발사! 이건 대륙간탄도미싸일발사나 다름없다. 이것은 에짚트의 미이라도 눈을 뜨게 할만 한 세계적사변이다! 이 극적인 충격앞에 저 사나이가 과연 제 본색을 드러내고야말것인가?…)

릴씨는 착잡한 눈길로 클린톤을 쏘아보았다.

클린톤은 오래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번쩍이는 시선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제씨들! 나의 포용정책은 북조선이라는 비행기의 연유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것이였소. 모두의 눈에는 그 연유가 점차 떨어지는것으로 보여왔소. 하지만 이제 그들은 비행기안에서 연유를 자체로 만들고있다는것을 선포해왔소.

페리의 방북보고서는 보류요!

제씨들! 오래동안 무르익혀온 나의 최종결심을 알리겠소!

이제는 우리가 준비한 미싸일로 그 비행기를 타격할 때가 온것 같소. 마지막주패장을 내댈 력사적인 시각이 왔단 말이요! 북조선은 우리의 성의있는 권고안을 단호한 선전포고로 눌러버린셈이요. 국방성은 합동참모본부와 함께 우리가 년초부터 준비해온 〈작전계획5027ㅡ98〉을 실전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겠소. 실전에 배비하기 위한 전투서렬편성과 명령서들을 준비하시오. 릴씨, 당신이 직접 주관하시오. 이것은 국가의 생사존망과 관련된 극비중의 극비라는걸 명심하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이 새나가선 안되겠소. 특히 그것이 평양에 알려지는 경우 우리는 세계대전을 각오해야 해!》

《오히려 그것이 알려지는 경우 평양이 신축성을 보일수도 있지 않을가요?》

《무슨 잠꼬대요? 릴씨!》

대통령의 눈이 완전한 삼각형을 이루었다.

《알았습니다, 대통령각하!》

클린톤은 찌프린 낯으로 코헨을 돌아보았다.

《국방장관, 이 돌발적인 인공위성사건이 평양과의 장령급군부회담에는 어떤 영향을 줄것 같소?》

《그들에게 주패장을 쥐여준것이나 다름없지요. 지금상태로는 승부가 정해진것이나 같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의 강력한 주패장이 필요하다는거야. 그들에게 군사적우위만이 아니라 정신적힘의 세례, 힘의 압력을 가해야 하거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전계획은 그들의 정신력을 제압하는 타격으로 될거요. 회담은 계획대로 진척시키시오. 우리의 마지막인내성을 발휘하여봅시다. 유엔이나 국제사회도 우리의 인도주의적인 아메리카정신에 리해를 표시할거요. 그래 협상자는 누구요?》

《던소장입니다.》

클린톤은 의심쩍은 눈길을 들었다.

《〈나토〉를 조정하던 인물이 아니요?》

《지금 8군에 나가있는데 군사외교경험이 풍부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페리씨보다 그를 더 신임하고있지요. 북조선측도 그를 무시하지 못하고있습니다.》

코헨은 자부심을 가지고 두팔을 벌려보였다.

《회담장소는?》

《판문점으로 처음 론의되였으나 남조선군부가 저들의 리해관계때문에 복잡하게 굴것 같아 제3국으로 제안하고있습니다.》

《잘했소. 지금은 미조관계에서 그들이 시끄러운 존재로 되고있소.》

클린톤은 다시 릴씨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밀튼과 리오타를 그 회담준비에 인입시키시오. 장령급회담도 그리고 금후 미조관계발전전망도 결국은 이번 중대작전계획실행에 달렸다는걸 잊지 마오.》

《명심하겠습니다.》

릴씨는 운명이 자기를 돕는것인지 기만하는것인지 아직은 알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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