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4 장

3

 

희끗희끗한 산벼랑들과 이깔숲이 무성한 깊은 골짜기, 멀리 보이는 눈같이 흰 산정들, 그것은 백설이 아니고 마그네사이트의 인상적인 색조이다.

깊은 협곡을 누비며 독특한 색을 띤 북천물이 사품쳐흐른다. 북천기슭을 따라 광산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아늑하게 자리잡고있다.

김혜정은 밤중에 렬차에서 내렸을 때 깜짝 놀랐었다.

불야성을 이룬 광산의 풍경이 대도시를 방불케 했던것이다. 그렇게 철길량켠으로 거대한 고층건물들이 일떠선것처럼 창가의 불빛들이 빛났던것이다.

아침에 광산합숙창가에서 김혜정은 간밤 자기 눈을 속인 《신기루》를 알아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북천기슭으로부터 아득한 산중턱까지 급한 경사를 깎아내고 아담한 단층살림집들이 빼곡이 들어찼던것이다. 마치 거대한 층계를 따라 집들을 차곡차곡 규모있게 건설한것 같았다.

그렇게 비좁은 땅이였다.

이곳에서는 하늘도 손바닥같이 올려다보인다. 해뜨는 시간도 어지간히 늦고 점심참이 조금 지나면 벌써 서둘러 어둠이 찾아든다.

김혜정이 광산에 첫발을 들여놨을 때는 광산합숙뒤산에 진달래가 붉게 탔는데 벌써 벼랑들과 깎아지른듯한 높은 봉우리들이 점잖게 푸른 단장을 해버렸다. 푸른 잡관목들이 마치 폭신한 외투마냥 지나치게 억세고 거치른 이 고장의 산들을 부드럽게 감싼것이다.

김혜정은 교대를 마치자 광산청년동맹에 들렸다가 3부락쪽으로 향했다.

광산양복부에서 재단사로 일하는 박신철의 어머니 유부들이 저녁에 집에 꼭 들려달라고 당부했던것이다. 사실 이 고장에 난생 처음 발을 들여놓은 김혜정에게 있어서 자기의 대원이였던 리순금이말고 가까운 사람이란 유부들밖에 더 없었다. 비록 직접 만나본 일은 없지만 박신철은 한철준의 벗이였고 또 최단아의 애인이였다. 그토록 피할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진 어머니였으나 김혜정은 처녀다운 겸양으로 집에 찾아가는것만은 삼가해왔다. 하지만 오늘 아침 광산합숙을 나서다 북천다리입구에서 유부들을 만난 김혜정은 차마 그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잔 주름이 곱게 잡힌 아직도 륜곽이 선명한 얼굴에 어째선지 쓸쓸한 기색이 어려있었기때문이였다.

그것은 먼곳에 있는 아들을 그리며 기다리는 홀어머니의 고독과 기대가 세월의 흐름속에 천천히 굳어진 어쩔수 없는 인생의 무늬라는것을 김혜정은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박신철의 고향집은 광산역뒤 산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 바라보면 눈앞처럼 여겨지지만 굽이굽이 라선형으로 에돌아 올라간 신작로를 따라 걷자니 그것도 가까운 거리가 아니였다.

김혜정은 마늘이며 쑥갓, 줄당콩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라는 단층집앞의 자그마한 터밭을 마주하고 땀을 들이였다. 벌방과는 달리 이 고장은 흙이 발라 작물들도 키가 낮고 힘들게 숨을 쉬는게 한눈에 알렸다. 아마 가꾸는 품에 비해 주인의 마음을 만족시키지는 못할것 같았다.

척박한 땅을 비집고 억세게 움터나 간고하게 자라는 어린 싹들, 린색한 빛을 그리며 창공을 향해 모지름을 쓰는것 같은 그 여리고 담찬 모습을 바라보니 불시에 남다른 고민과 사연을 품고 낯설은 고장에 부디부디 찾아와 생활과 인간을 개척하려고 발버둥치는 자기의 처지가 눈물겹게 생각되였다.

과연 이 땅이 나를 받아주어 억센 뿌리를 내리게 할수 있을가? 저 연약하나 푸르다못해 검스레한 생명체들처럼 이 거친 땅에 정을 바쳐, 후줄근해진 한 녀전사의 운명을 개척할수 있을가? 생각해보면 자기의 지향과 행동이 현실에 동떨어진 일면적이고 주관적인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김혜정은 불현듯 설음같은것이 북받쳐오르고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눈물에 젖은 시선으로 조그마한 터밭의 어린 싹들을 바라보았다. 입술을 깨물며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절대로 그럴수 없어. 만약 내 가슴속에 순금의 운명에 대한 의혹이 조금이라도 깃든다면 저 마음이 비틀린 인간에게는 그것이 굳은 바위처럼 들어앉았을거야. 진심으로 우리 장군님을 받들고 우리 당과 숨결을 같이 할 신념이 억척같다면 그 바위는 산산이 부서지고말거야. 문제는 내가 정치일군으로서 끝내 그 바위를 녹여주지 못한데 있어. 그래서 내가 불원천리 이 땅을 찾아온거야.

하지만 그 바위는 굳을대로 굳어졌다. 김혜정은 그 바위를 어떻게 부셔버려야 할지 처음엔 결심이 서지 않았다. 착암기로도 잘 뚫리지 않는다. 정대가 부러져나갔다. 김혜정이 련합기업소청년동맹에 며칠 갔다오는 사이에 리순금은 휴가를 받아가지고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렸던것이다.

벌써 보름이 되여오건만 리순금은 조쇄직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광산자재과 창고장을 하는 순금의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그 대답이 아리숭하였다.

봄이 다 간 때까지 두툼한 솜옷을 껴입은 그 녀인은 거칠고 억양이 강한 북방말투에 습관되지 않은 김혜정에게 친근감은커녕 오히려 무엇인가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툭 삐여진 어조로 딸의 출장용무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녀인은 잔뜩 경계심을 품고있었다. 광산참모부에 제기해서 메기공장건설용자재인수차로 함께 리순금을 떠나보냈다는것이였다.

녀인의 살갗과 얼굴에는 북방의 추위와 바람에 오랜 세월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시녀성다운 다듬매와 일종의 자존심이 흔적으로나마 남아있었다. 녀인의 외적인 친절성에 가리운 류다른 경계심은 병적인것은 아니였으나 김혜정을 저으기 실망케 하였다.

먼 길을 품들여 찾아온 자신이 그 어떤 관용과 고마움을 기대한것은 결코 아니였지만 잔뜩 속을 도사린 모녀의 얼어붙은 마음이 그 녀자를 괴롭게 하였다.

어쩌면 이럴수 있을가? 순금이, 넌 뭐야? 개인적인 행복과 고향마을까지 등진채 오직 내 심장속에 못박혀있는 너 하나를 위해 산설고 물설은 북방길에 오른 이 정치지도원을 그렇게 랭담히 대할수 있니? 광산당위원회에서 정치군관경력자라고 당부원으로 일하라는것을 난 그래도 부득부득 우겨 네가 일하는 조쇄직장으로 찾아갔어. 당조직에서 직장청년동맹사업을 맡겼을 때는 한번 이 거창하고 들끓는 로동계급속에서 너와 함께 땀흘려 일하며 초소에서처럼 참된 우정을 나누려고 말없이 받아들였지. 한데 너는 정면에서는 외면할수 없으니 어머니까지 내세워 슬며시 나를 따돌리누나.

하지만 난 너를 버릴수도 외면할수도 없어. 그럴 생각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었다면 가까운 사람들을 괴롭히며 이 북방땅을 찾지도 않았을것이고 벌써 이 땅을 떠났을거야. 난 네가 당의 품에서 단 한걸음이라도 멀어지게 할수 없어. 끝까지 충심으로부터 당을 믿고 따르는 참된 당원으로 키우기 전에는 물러설 곳도 피할 곳도 없는 나야. …

북천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느새 땀이 잦아들었다. 김혜정은 상념속을 헤매며 어수선한 마음으로 터밭울바자에 기대여 서있었다.

《혜정이, 뭘 그러구 서있나? 인츰 들어설게지.》

서슬병을 손에 든 유부들의 다정한 목소리에 김혜정은 와뜰 놀라며 얼굴을 가볍게 붉혔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집을 확인하느라구…》

《온, 이 좁은 골안에서 찾을게 따루 있지. 사람은 오글오글해두 다 한집안처럼 빤하다네. 자, 어서 들어가자구.》

유부들은 김혜정의 등을 떠밀었다.

크지 않은 두칸짜리 방이 사이문으로 맞달려있고 부엌은 북방특유의 정지간형식이다. 가마에서는 김이 문문 나고 부뚜막에는 매돌과 큰 함지가 놓여있다. 유부들은 들어서는참으로 김이 서린 큰 가마에 서슬을 조금씩 부어넣었다.

《두부를 앗던참일세. 이 고장에서는 콩도 발라서 지난 가을에 평양적은이가 가져다준걸 건사해두었댔지.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게. 혜정이가 할 일은 없어.》

《어머니, 저도 좀 보고싶어요.》

김혜정은 팔소매를 올려붙이고 희뿌연 콩물이 가마안에서 서서히 흰 순두부로 엉켜 붙는것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보면 서슬이라는것이 참 신비하기도 했다. 개개로 흩어져있던것들을 하나로 든든히 모아들이는 그 놀랄만 한 힘이 비록 자연스러운 물리적현상이기는 했어도 놀랍고 부러웠다. 저런 친화력,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끌힘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김혜정은 가볍게 얼굴을 붉혔다. 너무나도 생각이 자꾸 외곬으로 흐르는것이 자신으로서도 어처구니없어 보였던것이다.

유부들은 걸싼 솜씨로 흰 앙금같은것들을 걷어내여 베보자기에 쌌다. 녀인은 뽀얀 김속에서도 이따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김혜정을 유심히 뜯어보는것이였다.

《어머니, 왜 그리 찬찬히 보세요? 그새 제가 미워졌지요?》

김혜정은 어쩐지 친어머니앞에라도 온듯 마음이 풀리고 부드러워지는것을 느꼈다.

《아닐세. 미워지긴. 광산총각들이 우리 양복부에 와서 뭐라는지 아나?

합숙에 새로 온 절색인 제대군관처녀의 눈에 들게 옷을 새로 짓는다는거야. 혜정인 백금산바람을 맞더니 더 세련되였어.》

《어머니두 참, 제가 모르는줄 아세요? 광산총각들이 제 뒤소리를 많이 하더군요. 늙은 공주라느니, 또 뭐라든가…》

김혜정은 처음으로 깔깔거리며 소리내여 웃어버렸다.

유부들의 잔주름 잡힌 입가에도 미소가 흘렀다.

김혜정은 눈을 새물거리며 유부들을 마주 쳐다보았다.

《어머니, 우리 단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세요?》

《글쎄, 그 녀석이 어디 사진 한장 보내주더라구.》

《호호호. 어머니요, 이 집 신철동지가 복덩이를 잡았어요. 마음씨 곱고 무서운 이악쟁이거든요. 게다가 인물은 제가 막 시샘할만큼 곱고 싱싱한 미인이예요. 그 애곁에 서면 이 광산총각들의 평마따나 나같은건 한물진 할머니처녀죠. 탄력이 있는 날씬한 몸매에 살갗은 이 백금산광석보다 더 환해요.》

유부들은 저도모르게 입이 헤벌어져 잔잔한 미소가 담긴 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김혜정을 바라보았다.

《그 무슨 얼굴이 주근깨투성이라던가.》

그 말에 김혜정은 대뜸 눈살을 찌프렸다.

《신철동지두 한심하기란… 아마 어머니가 우리 단아를 보셨다면 연한 주근깨야말로 복주근깨라는걸 대뜸 알아채실거예요. 아마 이 집 아들도 분명 거기에 매혹되였을테니까요. …》

《하, 이거 오늘 갱장네 집에서 잔치상을 차리려는게 아니요? 처녀목소리도 나고…》

어깨폭이 넓고 철빛얼굴이 칼칼해보이는 중년사나이가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방을 들여다보자 두 녀자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당비서아주버니가 어떻게?…》

유부들은 물묻은 손을 행주치마에 훔치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허, 오늘이 신철이 아버지 귀빠진 날이 아니요.

옛 갱부문당비서가 그냥 지나갈수가 있소? 로친네 혼자 적적해할것 같아 마침 들렸더니 혜정동무도 와있었구만.》

광산당비서 차원호는 당위원회 조직부비서와 꾸레미를 든 운전사를 앞세우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차원호는 밥상우에 차려놓은 소박한 음식들을 둘러보더니 아래목에 퍼더버리고앉아 두툼한 손으로 방바닥을 여기저기 짚어보았다.

《불은 잘 들지요?》

《지난 가을에 갱광부들이 구들을 놔준 이후로는 방이 설설 끓습니다. 내굴 한점 안나요.》

《흠, 신철이 그 사람이 언제면 홀어머니를 모셔가겠는지… 자, 그럼 우리 갱장동지를 추억해서 한잔씩 듭시다. 음식이 풍성하구만.》

유부들은 황황히 술병들을 꺼내는 조직부비서를 면구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준비하는건데… 사실은 이 혜정이가 외지에 와서 고생하길래 겸사해서 한끼 마련하려고 두부를 앗댔수다. 자, 혜정아, 너도 이리나와 앉아라.》

차원호는 제대군관복차림 그대로 한옆에 쪼그리고앉는 김혜정을 생각깊은 눈길로 살펴보았다.

《그래, 혜정동무, 광산일이 힘들지?》

김혜정은 눈길을 들었다가 도로 내리깔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장판을 의미없이 문질렀다.

《익숙되여갑니다. 처음엔 교대작업에 버릇되지 않아 불안했는데 이젠 견딜만 합니다.》

《허허허, 괜히 당위원회에 떨어지라는걸 옹고집을 부리더니… 사실 정치사업경험이 풍부한 동무같은 일군이 우리에게는 정말 귀하오.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때에 동무가 우리 곁에서 앞채를 메주면 얼마나 힘이 되겠나.》

김혜정은 눈길을 들고 당비서를 올려다보았다. 첫 대면부터 자기를 깊이 리해해준 이 진실하고 높은 품격이 엿보이는 당일군앞에서 속마음을 감추고싶지 않았다.

《비서동지, 전 끝까지 리순금동무곁에 있고싶어서 광산을 찾아온 사람이 아닙니까.》

차원호는 웬일인지 지꿎게 쳐다보는 김혜정의 눈길을 피하며 담배곽을 꺼내들었다.

《여기 조직부비서동무도 있지만 동무심정을 왜 모르겠소. 우리 서로 합심해서 리순금동무를 잘 도와주기요.》

차원호의 말에 김혜정은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비서동지앞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요즘 생각이 깊어집니다. 제가 데리고있던 리순금동무는 아직 당원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군사복무기간에도 생활을 바로 못했습니다. 하지만 꼭 장군님앞에 떳떳한 충직한 인간으로 만들겠습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차원호가 내뿜는 담배연기가 순간에 좁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조직부비서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부엌에 대고 너스레를 떨며 소리질렀다.

《재단사아주머니, 빨리 두부부터 들여오시우. 이거야 어디 출출해서 견디겠소.》

차원호는 김혜정이앞에 자꾸만 음식을 밀어놓았다.

그는 어쩐지 감심된것 같기도 하고 측은해하는것 같은 눈길로 김혜정을 얼핏얼핏 쳐다보았다.

《조쇄직장사람들이 투박하지요? 총각들이랑 애를 먹이지 않습데?》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엔 성격이 좀 거칠어보이지만 전 정말 이곳 로동계급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더해갑니다. 어젠 수리공동무들이 저의 점심곽우에 손이 상한다고 장갑까지 세컬레씩이나 놓고 달아났답니다.》

《음, 혜정동무가 우리 로동계급을 리해해주니 좋구만, 그게 중요한거지. 그 조쇄직장파쇄기는 우리 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파쇄기요. 집채같은 큰 기계로 한아름되는 큰 돌들을 파쇄하는 곳이니 사람들도 성격들이 큼직큼직하지. 혁명적군인정신을 받들고 일을 해제끼는데서도 우리 광부들이 앞장서고있소.

나도 60년대초에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들고 이 집 신철이 아버지랑 제대배낭을 풀어놓은지 수십년이 흘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사무치는게 광부들의 인정이고 진정이요… 일을 해도 걸싸게 하고 생활이나 사람들을 대해도 가식이 없거든. 당을 받드는데도 저 백금산광석처럼 티가 없단말이요.》

차원호는 앞에 놓인 큰 잔을 들어 단숨에 쭉 들이키였다.

《참 혜정동무, 다음주엔 자재 실으러 저 평남도에 갔던 화물차가 도착할것같아. 아마 동무속을 태우는 그 리순금이도 돌아올거요. 장거리전화가 왔댔소.》

《그렇습니까?》

김혜정은 숙였던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한번 집에 찾아가보우. 순금이 아버진 사실 문건에 몇줄 남긴 불명예스러운 사실로만은 함부로 평가할수 없는 견실한 사람이요. 내 수십년간을 함께 지내보니 그 인간이 중앙에서 큰 공장 기사장을 하다가 엄중한 사고를 내서 나라에 손실을 주고 법적제재까지 받은 사람이지만 그건 본의는 아니구 이 광산에 와서 혁명화를 착실히 했지. 사람이 성실하고 안팎이 올곧거든.

그리구 언제한번 자기 처지를 탓한적없이 그저 수걱수걱 광산기술부에서 일해왔지. 그가 없으면 이 광산기술사업이 지금처럼 발전하지는 못했을거요. 순금이가 제대되여왔을 때도 그가 딸애에게 뭐랬는지 아나? 아버지가 당앞에 지은 죄를 다 씻으려면 네 손자대까지 뼈빠지게 일한대도 모자란다는거야. 죄지은 아버지를 따돌리지 않고 그 자식에게 혁명의 군복을 입혀준것만도 너무 과분한데 뭘 타발하는가고 간곡히 타일렀지. 정말 우리가 그 집 운명문제를 너무 경원시한것 같아 면목이 없는거요.》

차원호는 깊은 생각에 잠겨 담배곽을 집어들었다.

김혜정은 무엇인가 가슴속에 옹친것이 한순간에 풀린듯 싶어 마음이 후련해옴을 느꼈다. 자기가 흔치 않은 진실한 사람들속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 어떤 크낙한것에 대한 감사의 정이 가슴속에 차오르는것이였다.

김혜정은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차원호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절절히 부르짖었다.

《비서동지, 좋은 말씀을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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