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4 장

1

 

행군나팔소리는 아직도 귀가에서 메아리쳤다. 병사들은 저마끔 사색에 잠겨 동터오는 산발들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어둠이 설펴지고 대지는 잠에서 깨여나려고 몸부림친다. 하늘은 차츰 검보라빛으로부터 연한 감색으로, 그다음 푸르무레한 색으로 물들더니 이윽고 그 짙푸른 창공전체를 아침노을이 부드럽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총창과 철갑모가 해빛에 반짝였다.

새벽녘에 돋은 이슬방울들이 그 선뜩한 총창과 철갑모 가장자리에 뽀얗게 맺혀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것이다.

밤새 졸음과 피곤에 시달리며 묵묵히 먼 행군길을 다그쳐온 병사들의 얼굴근육이 풀려버리고 여기저기서 웃음이 피여올랐다.

김강인은 어깨를 파고드는 무거운 배낭과 걸음을 지꿎게 방해하며 철떡거리는 장구류들에 이제는 어지간히 습관되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저도모르게 걸음발이 떠지는것을 감촉하였다.

땀이 비오듯 흐르다 못해 이제는 속옷이 후줄근히 젖어서 몸에 착 달라붙는다. 가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게 도저히 견딜것 같지 못하다. 문제는 배낭밑굽에 든든히 도사리고앉은 그놈의 금속가락지였다.

어제 저녁 행군훈련을 앞두고 최명진분대장이 땀을 철철 흘리며 주변 포구분대에 가서 얻어온것이였다.

소형발전소운영에 필요한 부속품을 깎는데 쓸수 있는 금속소재였다. 군부대병기수리소의 마음씨 고운 초기복무사관은 소재만 얻어오면 토시와 기타 부속품들은 얼마든지 깎아주겠다고 약속했었다.

5㎏은 실히 나갈 못쓰게 된 금속가락지였다.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서 애를 먹이기 시작한 발전기였다. 김강인은 그 탐스러운 소재를 받아안고 환성을 질렀다. 그는 그것을 배낭고뒤에 숨겨두려다가 고쳐 생각하고 배낭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혹시 사관장의 눈에 띄거나 대대양수장을 맡은 김창모땅크장에게 걸려들면 《조절》당할 위험성이 있었다.

밤중에 비상소집으로 뛰쳐일어나 급히 병영을 빠져나올 때까지 김강인은 그 금속가락지를 감감 잊고있었다.

두번째 휴식구령이 내렸을 때 감각적으로 어깨를 파고드는 배낭의 무게를 가늠하였다.

하지만 김강인은 그것을 행군전기간 간수할것을 결심하였다.

구대원대렬에 당당히 들어서기 위해서라도 이번 행군길에서 의지와 인내력을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배낭무게가 조금 는다고 우려하거나 물러설 김강인이 아니였다. 요즘 가만히 보면 소대장이나 지어 한철준대대장까지 자기를 기계속에나 밝은 약골로 치부하며 은근히 어려운 훈련에서 따돌리려는 기색이 엿보이군 하였다.

김강인은 지금도 지난해 가을 무장강행군때의 꼴불견을 잊을수가 없다. 감기를 갓 앓고난 뒤였으나 그는 산골내기특유의 이악성을 발휘하여 행군의 극한점을 극복하였다. 하지만 마지막결승선을 코앞에 놓고 끝내는 비틀거리다가 빈사상태에 빠져 위생차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되였다. 참으로 상기하기조차 괴로운 추억이였다. 독감직후여서 음식이 당기지 않아 속이 비여있지만 않았다면 절대로 그런 무참한 일은 없었을것이였다. 그것은 결코 정신력이나 의지의 나약성에서 온것이 아니였고 굳이 말한다면 김강인이라는 존재와 별도로 생겨난 결과였다. 김강인은 이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동지들앞에, 분대앞에, 아니 온 대대앞에 그는 자기의 힘을 시위해야 했다.

강의하고 전투력있는 병사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줌으로써 누구도 감히 무시할수 없다는 평판이 당장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김강인은 행군휴식후 단단히 속다짐을 하며 배낭을 그대로 등에 졌던것이다. 그리고 행군이 끝나는 길로 제창 병기수리소에 들리리라 결심하였다.

그런데 해가 뜨자 어쩐지 몸가짐에 이상이 생기는것 같다. 행군길에서는 눈섭도 무겁다는데 혹시 정량을 넘어선 배낭무게가 심술을 부리는게 아닐가? 다리가 뻣뻣해오고 어깨근육이 마비된듯 이제는 그저 얼얼하기만 하다.

《강인동무, 힘들지?》

최명진이 곁에 다가와 단숨을 헉헉 내쉬는 그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남보다 얼굴빛이 류달리 희고 총총한 눈매와 선이 명백하고 섬세한 륜곽으로 하여 대뜸 리지적인 느낌이 오는 분대장은 조금도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어찌보면 얼굴에 땀발조차 배지 않은것 같다. 가지런한 흰이를 드러내며 싱긋이 웃는 그의 정찬 얼굴을 대하자 정신이 번쩍들면서 피로가 사라지는것 같았다. 김강인은 대답없이 마주 웃으려 했으나 겨우 입귀가 열렸을뿐이다.

《조금만 참으라구. 이제 곧 휴식이야. 진짜행군은 그 다음부터요. 오십리가 넘는다는 아천령을 돌파해야지.》

《구대원들이 말하던데 그 령마루까진 샘물한줄기 솟지 않는다지요?》

《다 정찰해두었구만. 그래서 병사라면 무장강행군으로 넘어볼만 한 진짜령이지. 비파령같은건 험하긴 하지만 거기대면 아무것도 아니요. 물을 아껴 마시라구.》

《걱정마십시오, 분대장동지. 이 김강인이 절대로 분대의 짐이 되진 않을것입니다.》

김강인은 어깨를 쭉 펴며 제법 다기찬 자세를 지었다. 배낭무게때문인지 웃몸이 뒤로 제쳐졌다. 김강인은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유지하였다.

최명진은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잡아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김강인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씨엉씨엉 분대의 앞으로 걸어나가는 분대장의 날파람있는 뒤모습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겉보기엔 자기보다 키도 크지 않고 체격도 보통인 그의 다부진 몸 어디에 저런 마를줄 모르는 샘같은 힘과 의지와 열정이 숨어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였다.

게다가 최명진분대장은 무슨 일에서나 막히는데가 없는것같다. 훈련에서나 생활에서나 학습에서나 늘 대대적으로 첫 자리다. 도시내기지만 염소나 토끼기르기에서도 물계가 밝고 부업지에 나가면 또 어떤가. 콩농사도 우리 분대가 1등이고 염소우리를 손질하는걸 보면 한철준대대장까지 혀를 찬다. 부업지가 있는 강하구에 덤장을 치거나 때로 휴식일때 낚시질을 해도 유독 분대장의 손에는 물고기들도 큰 놈들만 걸려든다. 헤염이 서툰 김강인에게 자맥질까지 배워주려고 애쓰는 분대장이다. 언제한번 병사들에게 눈살을 찌프리거나 신경질을 내는 일이 없다. 그는 아예 날때부터 분대장으로 타고난것 같다. 언젠가 김강인은 소형발전소건설장에서 묵은 콩단을 털어 콩청대를 하다 들킨 병사들을 도가 넘게 홍달군 김창모중사와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최명진을 본 일이 있다. 김창모는 중대정치지도원에게 불리워가 되게 비판을 받고 풀이 죽은 상태였다.

그때 귀동냥해 들은 최명진분대장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창모동무, 내 같은 사관으로서 하는 소리로만 듣지 마오. 분대장, 사실 직무로 보나 거느리는 대원수로 보면 전군적으로 물방울같은 작은 위치지만 그 중요성은 얼마나 큰지 몰라. 병사는 군사복무의 시작부터 전기간 직속상관인 분대장의 눈길밑에서 살지. 내가 입대할 때 우리 어머니가 뭐라고 걱정했는지 아오? 네가 어떤 분대장을 만나겠는지, 혹시 성격이 메마른 분대장을 만나 마음고생이나 하지 않겠는지, 편협하고 추궁만 아는 분대장을 만나 기를 펴지 못할가봐 걱정이라고 근심이 대단했지. 병사의 상관은 많으나 그저 분대장의 눈밖에 나면 야단이라는거지.

우리 어머니들이 제일 기대하고 관심하고 우려하는게 바로 우리 분대장들이란 말이요. 어머니들은 제 아들이 군대에 나가 친형같은 분대장을 만나면 만시름을 푹 놓는단말이요. 바로 부모들의 기대와 관심을 아낌없이 풀어주는 그런 분대장이야말로 우리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바라시는 병사의 진짜 직속상관이 아닐가?…》

김강인은 머리를 짓수굿한채 땅을 바라보며 걸음을 다그쳤다.

정말 군대란 별난데야. 갈수록 정이 드는게 중대이고 나날이 흐를수록 정이 깊어지는게 동지들이거든. 더우기 같은 분대원들이야말로 친형제나 부모보다 더한 뜨거운 우정과 사랑으로 인연이 맺어지거든. 전번 건군절때 새끼염소를 안고 찾아왔던 안변농장의 작업반장을 보지? 유치원교양원을 하는 안해까지 척 데리고온 그가 바로 우리 최명진분대장의 첫 분대장이였다지. 그리고 지금도 늘 편지를 보내오는 성진제강소의 주물직장장도 우리 분대 태생이라지. 우리 아버진 지금도 군사복무시절의 분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랑이거든. 하긴 철도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비행사가 못되였던것은 대단히 유감이야. 비행구분대에 있었으면 당당한 비행사가 되여야지 기술근무원이였거든. 그래도 아버진 자부심이 대단했지. 명절때 한잔 들어가면 늘 《나의 매, 나의 매들! 마음은 푸른 하늘에 얹고 살았지. 용감한 나의 편대승조원들!》 하였지. 비행사노래는 또 얼마나 멋들어지게 잘 불렀던가.

자동차발동소리가 가볍게 울리는바람에 김강인은 상념에서 깨여나 뒤를 돌아보았다.

방수포를 씌운 짐을 만재한 화물자동차 한대가 무섭게 달려오고있었다. 지난 봄시위물에 패웠던 홈채기들에 바퀴가 빠질 때마다 묵중한 차체가 한옆으로 위태롭게 기우뚱거렸으나 화물차는 그때마다 가쁜 발동소리를 내지르며 침착하게 길을 따라왔다.

아침바람에 적재함에 씌운 방수포가 펄럭거린다.

화물자동차는 대오를 벗어나자 속도를 높여 멀리 산기슭쪽으로 뻗어간 길을 따라 힘차게 달려갔다.

《뭘 그리 멍청히 보고있소? 왜 11호차가 이젠 싫증났나?》

부대정치위원 리만순이 성큼성큼 옆을 스쳐지나가며 투박한 손으로 김강인의 등을 툭 쳤다.

《정치위원동지, 너무 숙보지 마십시오. 이번엔 절대로 위생차를 넘보지 않겠습니다.》

김강인은 셈평좋게 한마디 던지고 약간 사이가 떠진 앞사람을 따라섰다.

《두고보기요. 병아리는 가을에 가서 세라고 했으니까.》

리만순은 벌써 멀리 앞으로 걸어나가며 한손을 홱 내저었다. 수수한 몸집의 보통키에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언제 말을 더 건넬새가 없다.

《쳇!…》

리만순은 저만치 앞에서 한철준대대장과 보조를 맞추더니 철갑모를 비껴올리고 이마의 땀을 씻어내며 몇마디 주고받는다.

《대대장동무, 령이 험한만큼 준비를 잘해야 돼.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놓소. 병사들이 이제 령을 내릴 때까지 줄곧 에스키모생각에 시달릴거요.》

《정치위원동지, 우리 대대는 걱정마십시오.》

한철준의 결기있는 대답에 리만순대좌는 머리를 내흔든다.

《그렇지두 않아. 벌써부터 걸음새가 흔들리는 대원들이 있소. 탕개를 늦추면 안되오. 이번 행군을 잘해야 되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늘 행군훈련에 대하여 관심하신다는것을 명심하오.》

김강인은 리만순정치위원이 자기를 념두에 두고 은근히 모를 세우는것 같아 저으기 속이 좋지 않았다.

정치위원은 다른때 보면 허물이 없고 소탈하여 여간 마음이 좋은 아바이가 아닌것 같은데 훈련에만 들어가면 사람이 싹 달라져버린다. 그 부드럽던 눈빛마저 근엄하게 번쩍이는게 무섭게 요구성이 높은 한철준대대장과 한동아리가 되여버린다.

김강인은 속으로 은근히 불안이 살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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