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3 장

5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색에 잠기시여 줄곧 차창밖을 부감하시였다. 야전승용차는 어둠이 짙은 해안을 옆에 끼고 고속으로 달리고있었다. 밤이 깊었건만 전혀 피곤함을 느낄수 없는것이 이상하셨다. 눈을 감으셨으나 정신이 맑은게 잠드실수 없었다. 뒤좌석에서는 유진성과 부관이 졸음을 쫓는지 이따금 부스럭소리가 들릴뿐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해안을 바라보시였다.

밤의 바다는 제나름의 사색과 률조를 가지고있는것 같다. 대양의 먼 소식을 싣고 쉬임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해안을 사납게 때릴 때마다 달빛에 흰 물보라가 번쩍이고 소란하고도 규칙적인 영원한 바다의 음향이 어쩐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마치도 거세게 일어서는 노도가 대지의 잠을 깨우려고 쉬임없이 안깐힘을 쓰는듯 잠시도 진정할줄 모른다. 하지만 갈매기찌가 허옇게 불려 희끗희끗해진 회백색산벼랑들이며 아득히 뻗어간 기슭들은 묵묵히 파도의 희롱을 참고 견디며 대륙의 웅심깊은 열기와 자제력으로 그것과 맞선다. 해풍과 파도는 서로 어우러져 힘을 모아가지고 더더욱 기승을 부리나 그것도 한갖 어쩔수 없는 한계가 그어진 시계추운동같은 반복뿐이여서 대지는 다시 눈을 감고 기지개를 켜며 깊은 잠에 빠져버린다. 하지만 대양은 광활하다. 기슭에서는 파도가 벼랑과 맞서 부질없는 힘을 빼고있지만 먼 해역에서는 바다의 크나큰 심장이 거센 호흡으로 숨쉬며 거창한 조화를 맞추어나가고있다.

그래서 바다는 매혹적인것이고 심원한것이고 아름다운것인가. 그래서 바다를 대하면 인간의 사색이 드넓어지는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시창앞을 내다보시였다. 멀리 검은 산발들너머로 하늘이 희붐히 틔여보인다. 벌써 대도시가 눈앞에 다가온것이다. 그것은 항구의 불빛이였다. 야전승용차는 이윽하여 해안도시를 가까이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프신 마음으로 항구거리를 내다보시였다. 시민들이 깊은 잠에 들었다고 위안할수는 있었으나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것이나 다름없다. 거리에는 불빛한점 비치지 않는다. 나라의 전력사정은 엄혹하다. 평양에서도 사람들은 겨우 저녁시간에나 전등불신세를 지고있다. 인민들은 의지와 신념, 미래에 대한 락관으로 난관을 이겨낸다. 추위와 굶주림도 사회주의를 수호하려는 조선인민을 굴복시킬수 없다.

얼마전 어느한 제강소를 찾으셨던 때의 일이 떠오르시였다.

연기 없는 굴뚝을 아프게 바라보셨던 그이께서는 제강소의 한 직장안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로동자들이 크지 않은 용선로에서 쇠물을 뽑아내고있었다. 사품치며 이글거리는 주홍빛쇠물이 흘러내리며 용선로앞에 서있는 용해공들의 얼굴을 얼비추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땀을 철철 흘리는 오랜 용해공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

《로장동무, 그러니 이 제강소는 살아있었구만.》

장군님, 우리 제강소는 걱정마십시오. 전기가 없으면 풍구질을 해서라도 쇠물을 뽑겠습니다. 이 쇠물이 있어야 저 평양ㅡ남포고속도로(청년영웅도로), 닭공장과 소금밭도 일어설게 아닙니까. 벌써 우리 힘으로 자체발전소도 건설하였습니다.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워 제 힘으로 일떠서겠습니다.》

오랜 로장은 두 눈을 슴벅이며 진정을 터쳐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굽이 뜨거우시였다.

《고맙소, 로장동무! 당은 동무들을 믿고 사회주의경제를 일떠세우고있소. 그래, 혁명적군인정신이지! 믿겠소! 우리 로동계급을 믿겠소!》

그렇게 우리 인민은 굴함없이 일떠서고있다. 험난한 행군길을 억척같이 헤쳐나가고있다. 이런 불굴의 인민을 그이께서는 어디서나 만날수 있으시였다.

강계와 희천에서, 성강에서 그리고 과학원과 토지정리를 시작한 강원도땅에서…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운전사를 돌아보시였다.

《차속도를 좀 죽이오. 사람들이 잠에서 깨여날수 있소.》

그이께서는 시창옆으로 지나치는 고층살림집들을 유심히 올려다보시였다. 구름사이로 헤염치는 달빛만이 그 불꺼진 창문이며 로대를 엇비스듬히 비칠따름이다. 이 밤, 인민들은 새날의 억센 로동과 창조를 위해 묵묵히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있으며 승리의 신심과 랑만에 넘쳐 단잠에 든것이다. 그리고 새벽에는 희미한 기름등잔앞에서 간소한 밥상을 마주할것이다. 가슴이 아프시였다.

인민들, 절대로 신심을 잃지 말라. 비록 창문가에 일시적으로 불빛이 흐르지 못해도 우리 혁명의 래일은 눈부시다.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이 우리의 붉은기를 내리우려고 군사적압력과 경제봉쇄로 사상최대의 공격을 해와도 일없다. 우리 인민은 뚫고나갈것이며 우리 혁명은 사회주의의 길을 버리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름다운것, 정의로운것, 진보적인것을 지향하기때문이다. 인민은 우리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우리 당이 시종일관 견지하고있는 인민적정치, 붉은기정치, 사회주의정치를 믿고있기때문이다.

그이의 사색은 아지를 쳐갔다.

부르죠아정치가들은 정치의 의미를 술책을 론하는것으로 내놓고 말하고있다. 하기에 서방정치학자들은 《지배권력은 정치의 본질》이라고 력설했고 영국의 처칠은 《정치는 국민이 감동할수 있는 고도의 사기》라고 그 사이비철학의 리면을 제나름대로 파헤쳤다.

로베스삐에르의 《덕행의 정치》도 플라톤의 《철인정치》도 옥타비아누스의 《시민정치》도 칸트의 《계몽된 군주정치》도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치》도 링컨의 《신의 정치》도 묵자의 《겸애정치》도 결국 권력은 강자의 의사를 조건화하는 힘의 관계라고 제창한 고전정치학설의 변종에 불과하다.

일찌기 레닌이 정치란 계급간의 관계, 투쟁이며 집중된 경제라고 한 명제나 엥겔스가 국가를 두고 일정한 발전단계의 사회적산물, 계급적모순의 산물이라고 한것은 유물사관의 견지에서 사회주의정치의 중요한 바탕을 투철하게 내다본것이라 하겠다.

그런면에서 볼 때 우리 선조들은 또 얼마나 현명하고 소박하게 인민적정치의 근본을 지향하고 념원했던가. 실학자 정다산은 《육기》6조에서 《스스로 바르게 하고 청렴하게 잘 다스리고 청탁을 물리치며 씀씀이를 줄이고 혜택을 베풀기를 즐겨야 한다.》라고 자기의 정치관을 내비쳤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통일적으로 지휘하고 관리하는 사회적기능인것이다. 인민적인 정치, 사회주의적인 정치는 다름아닌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랑의 정치, 인덕정치, 선군정치이다. 이것이야말로 절대의 정치인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줄곧 사색에 잠기시여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문득 그이께서는 눈을 크게 뜨시였다. 희붐한 항만의 불빛속에 검은 형체들이 소리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뜨인것이다. 그이께서는 놀라시였다. 그것은 항구로동자들의 밤작업모습이였다. 그들은 시민들의 단꿈을 깨울가봐 소리없이 일하고있었다. 짐을 옮기는 모양이다. 조금도 지친 빛이 없는 률동적인 걸음들이 눈길을 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이 작업하는 부두의 옆천정기중기에 가로 걸린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가 어둠속에 드러난다. 이윽고 그 모습들은 지나가버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 마음이 가벼워지는것을 느끼시였다. 그이의 사색은 계속 이어지셨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험난한 혁명의 새벽길을 개척하시는 간고한 투쟁속에서 인민을 위한 주체의 사회주의정치의 진로를 마련하시고 그 진수인 철저한 수령론을 내놓으신것이 아닌가.

인민이 바라고 실지 체험을 통해 그 진리성을 확증했으며 수령님께서 그 승리적완성의 합법칙성을 뚜렷이 명시하신 붉은기정치는 이 세계의 인류를 구원할 가장 리상적인 정치인것이다. 우리는 이 위대한 사회주의붉은기정치를 한치의 드팀도 없이 실현해나갈것이다.

그렇다. 우리 혁명의 기둥이며 주력군인 인민군대가 있고 군력이 강하면 주체혁명위업의 미래는 찬란하다.

우리 나라 그 어디에나 붉은 바탕에 힘있게 씌여진 저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신념의 구호가 나붓기고있는 한, 그것이 군대와 인민의 의지로 되는 한 사회주의붉은기는 이 땅우에 영원히 휘날릴것이다.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을 떠밀어나갈 때,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오늘의 시련을 헤쳐나갈 때 주체혁명위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사색속에서 우리 식 정치방식에 대한 확신이 더 강해지시였다. 그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개척하고 이끌어오신 선군혁명령도에 대한 시대의 검증과 계승, 완성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불꺼진 창문들을 보시며 자신의 사색과 추상이 때없이 상승되고 예리해졌다는것을 느끼시였다.

사색은 그이의 참다운 길동무였다. 사색이 없이 창조와 발견이 있을수 있겠는가. 개척자는 황야에서 태여나는 법이다.

어느새 야전승용차는 항구도시를 벗어나 내륙으로 뻗은 폭이 넓은 도로를 질주하고있었다.

갑자기 서북풍이 터지면서 차창유리가 울었다. 속도를 죽여 시내를 굼뜨게 달리던 봉창을 하려는지 운전사가 속력을 내자 바람소리는 점차 더 커져갔다.

조국의 동서부를 련결하는 이 도로도 오래전에 군대가 달라붙어 닦은것이였다. 산이 다가서면 깎아 내리고 령이 막아서면 굴을 뚫으면서 불이 번쩍나게 해제낀 간선도로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벌써 그 10년이 두번 꺾이였다. 도로만큼 경제와 시대발전에 민감한것은 없다.

인민군군인들은 지금 또다시 떨쳐나서서 도로와 굴들을 넓히기 시작했다.

《노을동굴》가까이에 이르러 야전승용차는 다시 속도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굴입구주변에는 건설자재들과 륜전기재들, 림시가설건물들이 뒤덮여 겨우 외통길이 나있을뿐이였다.

야전승용차는 굼뜨게 움직이는 선두차들을 뒤따라 굴속으로 접어들었다. 전조등불빛만 없다면 굴속은 캄캄세상이였다. 궁륭형으로 시원하게 트인 굴은 이미 완성되여가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진성을 돌아보시였다.

《그런데 왜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작업하고있소?》

《발파가 련속되기때문에 전기설비를 아직 보강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전력사정도 긴장하고 해서…》

유진성의 난감해하는 어조가 그이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아무리 전력사정이 어렵더라도 방도를 연구해야지. 군인들이 등불을 켜고 일하다가는 사고를 낼수 있소. 해당 단위에 지시해서 당장은 충전등들을 가져와야겠소.》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전조등불빛이 비치는 버럭더미우에서 군복저고리를 벗어제낀 한무리의 군인들이 앞차에 대고 뭐라 소리지르고있는 모습이 눈에 안겨들었다.

선두차가 빠져나가는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웃몸을 약간 일으키시였다.

《가만, 지금 병사들이 식사를 하고있구만. 차를 세우시오!》

최고사령관동지, 이러시면 안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 일어서려는 유진성을 눌러앉히시였다.

《병사들이 어둠속에서 식사를 하는데 그냥 지나갈수가 있나. 운전사동무,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불을 비쳐줍시다.》

야전승용차가 멈춰선채 눈부신 전조등을 버럭무지쪽에 비치기 시작하자 금방 가져온듯한 국가마곁에서 주먹밥들을 받아들던 군인들이 유쾌하게 웃고 떠들며 싱글벙글거렸다.

《야, 이거 우리를 알아주는 좋은 사람들도 있구만. 다른 차들은 다 바쁘다고 달아빼군 하댔는데…》

《운전사동지! 고맙습니다. 우리 제꺽 식사를 끝내구 돌격하지요.》

얼굴이 검붉게 타고 눈흰자위만이 반짝이는 군인들이 떠들썩하게 한마디씩 하였다.

김정일동지의 눈길은 그들이 먹고있는 주먹밥이며 퇴색한 군복들이며 투박한 목도채와 정대들에 가서 멎었다. 병사들이 한치한치 헤쳐가는 이 굴간이 어떤 열정과 신념에 의해서 넓어지고있는가를 한눈에 알아볼수 있게 하는 화폭이였다. 그이께서는 아픈 시선으로 이 모든것을 바라보고 계시였다. 하지만 병사들은 조금도 주접이 들지 않은 담차고 락관적인 모습으로 이 밤을 새며 전투를 벌리고있는것이다.

(병사동무들! 고맙소. 이 최고사령관은 동무들의 억센 모습에서 힘을 얻습니다. )

야전승용차의 전조등불빛은 병사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꺼질줄 몰랐다.

식사가 끝나자 상체가 쩍 버그러지고 길쑴한 얼굴이 검실검실한 병사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동무들! 저 바닥에 널린 돌들을 치우기요. 이제까지는 경적만 울리며 지나치는 차들이 괘씸해서 그냥 둬두었는데 고마운분들에게야 인사가 있어야지!》

병사의 웨침에 따라 군인들이 우르르 일어서서 앞길을 반반히 치우기 시작했다.

야전승용차는 병사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소리없이 굴간을 통과해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몸을 돌리신채 야전차의 뒤창문으로 병사들이 있는쪽을 그냥 바라보시였다. 어둠속에 묻혀 이제 더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이 순간 아쉽고 서운한감이 드시여 속이 좋지 않으시였다.

시간만 있다면 그들의 석수에 젖고 돌가루가 묻은 억센 몸들을 포옹해주고 함께 함마를 휘두르고싶으신 심정이시였다.

《노을동굴》을 빠져나오자 자욱한 안개가 야전승용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 마전령은 이를테면 해안지대와 내륙지방을 가르는 분수령이나 다름없다. 산세도 달라지고 기온도 현저히 차이가 났다.

새날이 밝으려는지 길주변의 험준한 산발들이 검푸른색으로 변하고 하늘도 어쩐지 훤해진 느낌이다.

야전승용차는 미명의 하늘밑으로 곧추 뻗어간 포장도로를 따라 천천히 전진해갔다. 얼마쯤 달리자 안개는 씻은듯이 사라지고말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고뇌에 잠기시여 좌석등받이에 몸을 기대시였다. 뒤따라 피곤이 온몸에 무겁게 실리는것이였다. 결국 간밤을 꼬박 밝힌셈이다. 그이께서는 눈을 감으시였다.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다시 바람소리가 귀가에서 메아리친다.

바람소리, 바람소리, 그 바람소리가 문득 눈보라 몰아치는 장엄한 음향으로 뒤바뀐다. 그러자 밀림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ㅡ우ㅡ 사나운 눈보라가 회오리를 일으키며 광야를 휩쓸자 밀림의 바다가 설레인다.… 그이께서는 눈보라우는 밀림속을 걷고계시였다. 온몸은 천근으로 무겁고 한치한치 힘들게 걸음을 옮기셔야 했다. 그이께서는 걸으시면서 간고하고 준엄한 우리 혁명의 현실을 생각하셨다. 걸음마다 피와 눈물을 깨물며 힘겹게 헤쳐나가는 고난의 길, 시련의 길이였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내가 가지 않으면 안된다. 전사들이 나의 뒤를 따라서고있다. 아직도 눈보라에 가리워 백두산은 보이지 않았다. 신비한 그 령봉은 저 밀림의 바다너머 멀리에 있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만세의 함성이 들려온다. 아, 저기 빨찌산대오가 서있구나….

문득 김정일동지께서는 쪽잠에서 깨여나시였다.

야전승용차는 고르로운 발동소리를 울리며 가볍게 달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뒤자리를 돌아보시였다.

《동무들,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소?》

《예?》

부관은 흠칫 놀라며 긴장한 눈길로 시창앞을 쏘아보았다.

부관의 모가없는 둥실한 얼굴에는 침착한 표정이 떠올랐다.

장군님, 바람이 세찹니다.》

《내가 잘못 들었는가? 허허허. 방금전 쪽잠에서도 눈보라소리를 들었거든. … 가만… 운전사동무, 차를 좀 세워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가 멎자 천천히 밖으로 나서시였다. 싸늘한 랭기가 온몸을 휩쌌다. 그이께서는 푸릿한 새벽기류속에 흰띠처럼 드러난 길을 돌아보시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함성같기도 하고 웨침소리 같기도 한 소음이 간간이 들려오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한팔을 들어 손채양을 하시고 먼 산발을 살피시였다.

유진성이 급히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 진성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진성장령을 다소 의아한 눈길로 마주 보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저 함성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진성의 손길을 따라 푸른 새벽기운이 감도는 지나온 기슭쪽을 바라보시였다.

캄캄한 하늘가 멀리, 검은 산발들이 연줄연줄 흘러간 기슭으로부터 무슨 함성소리가 들리는듯 싶다.

최고사령관동지! 병사들이… 장군님께서 오랜 시간 식사를 하는 자기들의 현장을 야전승용차전조등으로 비쳐주고 떠나셨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안 병사들이 저렇게 온통 떨쳐나섰습니다.

수천명의 병사들이 마전령에 올라 장군님 떠나신 쪽을 향해 만세를 부르고있습니다!》

유진성은 목이 꺽 막히여 말을 더듬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 가슴속이 뭉클하는 느낌을 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황급히 돌아서시여 마전령기슭쪽을 바라보시였다.

그 순간 거세찬 바람결에 병사들이 웨치는 목메인 함성소리가 귀를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몇걸음 더 걸어나가시며 뜨거운 시선을 보내시였다.

그곳, 푸른 려명이 비껴간 그곳,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원경으로 마전령의 산발이 우렷한 모습을 드러내고있었다. 산을 까맣게 덮은 병사들의 모습이 금시 눈에 보이는듯 싶다. 아니 그이께서는 분명 두손들을 높이 추켜들고 평양하늘을 우러러 만세를 부르는 병사들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들을 보고계시였다. 석수와 돌가루에 젖고 터진 군복들을 입고 돌에 찢긴 손등에 붕대를 감은 그 불굴의 모습들이, 목도채에 부풀어오른 그 어깨들이, 성벽을 이룬 병사들의 사랑스러운 군상이 안겨오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굳어진 유진성과 부관을 피해 얼굴을 돌리시였다. 눈물이 걷잡을새없이 솟구쳐 올라 도무지 그냥 서계실수가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줄기를 씻으시였다.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픈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심장을 쿵쿵 치는 강렬한 행복감이 체내에 솟구쳐오르는것 같기도 하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뜨거운 눈물을 걷잡지 못하시며 마음속으로 웨치시였다.

(동무들, 병사동무들!… 나는 지금 동무들의 함성소리를 듣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을 따르며 그리는 동무들의 그 눈물겨운 모습을 보고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따뜻한 잠자리조차 없이 불빛없는 전투장에서 고생시키는데 동무들은 나를 향해 만세를 부르고있습니다.

병사동무들! 죄송스럽습니다. 동무들을 위해 더 헌신하지 못하는 이 최고사령관은 지금 깊은 자책감을 느낍니다.

동무들! 나는 동무들의 기대와 믿음에 보답할것입니다. 이 김정일이는 세상이 열백번 바뀌고 지금보다 더 큰 시련이 막아서도 언제나 동무들과 함께 우리의 붉은기를, 우리의 사회주의를 지킬것입니다.

동무들! 병사동무들!…)

병사들이 목메여 웨치는 만세의 함성이 점점 더 크게 김정일동지의 귀가에 메아리치는것이였다.

마치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샘줄기가 터진듯 그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눈물에 가리워 이제는 먼 산발도 희붐한 하늘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이의 눈앞에 어깨와 어깨들을 겹싸안고 성새마냥 뭉쳐서서 최고사령관을 목메여 부르는 병사들의 불굴의 모습만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바람이, 강렬한 폭풍을 예고하는 내륙풍이 세차게 불어치면서 그이의 야전복자락을 마구 날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신채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계시였다.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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