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2 장

3

 

사람이 자기를 알면 강한 인간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를 안다는것이 얼마나 힘든것인가.

자신과 전쟁을 선포한 사람은 자기의 가치를 확정한 사람인것이다.

최남호는 자기가 남보다 붙임성이 적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것을 어느정도 간파하고있었다. 사실 이러한 성격의 발견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있었다. 그것은 바꿔말하면 혁명군대지휘관에게 필수적인 도량과 인정, 대중의 신뢰를 받을수 있는 인간적향기가 메마르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기때문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쾌활하지 못하였고 명랑한 품성을 타고나지 못했다.

롱담이나 익살을 몰랐고 그것을 받아들이는데서 무표정했다. 아니, 몇몇 밭은 친구들을 제외한 동지들이나 아래사람들은 최남호앞에서 롱담하는것을 삼가하였다. 이 최남호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익살이나 우스개소리를 싫어하거나 리해못하는것인가. 천만에. 그는 언젠가 딸애가 가져온 유모아집을 밤을 새워가며 들여다본 일이 있었다. 정말 흥미있고 유쾌하였다. 하지만 그 책이 목표로 하는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딸이 혼자 읽다가 배를 그러쥐고 깔깔거리던 대목도 그저 기지 있다는 생각이 들뿐이였다. 어떤 일화들은 심상하였고 때로는 어처구니 없거나 짜증이 나는것도 있었다. 지어 너무 어색하여 보슴털이 오싹해지는 대목도 있었다.

최남호는 책을 덮고나서 한동안 의혹을 품었다. 남들이 다 웃는데 왜 나만 유독 웃음이 나오지 않을가? 혹시 나의 문명도가 낮거나 웃음신경이 마비된것이 아닌가? 현대의학자들은 웃음이 사람에게 대단히 필요하고 거의 운동에 가까운 효과를 가져온다는것을 증명하였다. 아니, 웃음은 음악과 운동의 결합처럼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억지로 웃을수야 없지 않은가.

최남호는 납득되지 않았지만 그 유모아집만은 며칠동안 정히 가방안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물론 남이 보지 않을 때만, 드물게 시간이 생길 때만 펼쳐들고 그 내용을 퍽 안착된 기분으로 연구하였다.

어떤 독설가들은 롱담을 즐기는이는 상대방을 자기보다 낮추 보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비평하기도 한다. 최남호는 또 한번 의심을 품었다. 롱담이란 결국 상대방의 기분을 띄우는것인데 왜 낮추보는것인가.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관심이 아니겠는가.

최남호는 롱담을 할줄 모르는 다소 침울한 사람이였지만 사실 세심히 따지고보면 인정에 무르고 사람들을 심장으로 뜨겁게, 진정으로 대하는 지휘관이였다.

몇해동안 북부지구에서 부대장을 할 때 함께 복무한 전우들은 지금도 허물없이 그의 집을 찾군 한다.

손을 맞잡고 떠들썩하게 분위기를 돋구진 않았지만 발길이 떠지지 않는다. 그저 다들 제 집처럼 생각할뿐이다.

그는 사람들을 엄엄하고 뚝하게 대하였지만 유독 한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집안의 귀한 딸이였다. 딸애는 그의 사랑이였고 자랑이였고 넋을 통채로 빼앗아가는 류다른 존재였다. 딸은 어렸을 때 몸이 허약하여 밤이면 열이 높아가지고 할딱할딱하군 하였다. 말이 적은 안해는 약을 먹인후 얼마간 다독이다가는 세상 모르게 잠들군 했다. 그러면 그는 살며시 일어나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딸의 이마를 짚어보군 했다. 딸애의 얼굴은 열에 들떠 발그레하게 익었다. 최남호는 부리나케 부엌으로 나가 수건을 적셔가지고 그 애의 이마우에 얹어놓는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아 그냥 딸애의 얼굴을 지켜본다. 열이 내리자 딸애의 숨소리가 고르로와졌다. 최남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부자리로 들어가나 10분도 못되여 다시 부스럭거리며 일어난다. 잠든 안해를 깨울세라 발끝걸음으로 다가가 딸애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가늠한다. 그리고는 또 불에 덴 사람처럼 닁큼 놀라 부엌으로 달려간다. 이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운것이 그 몇밤이였던가. 어떤 날은 딸애를 품속에 안고 밤길을 달려 부대군의소로 가기도 하였다. 군의가 강심제를 놔주며 마음을 푹 놓으라고 하면 다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군 하였다. 어찌나 조용히 집에 들어서군 했던지 장난 세찬 인민학교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노상 지친 안해는 세상모르게 그냥 자고있다가도 아침이면 생기가 도는 딸애의 얼굴을 씻어주며 《보세요. 이 앤 약물반응이 어찌 빠른지 어제 저녁 한알 먹였는데 벌써 효력이 있군요.》 하면서 볼을 다독인다.

야전가방을 메고 방문을 나서던 최남호는 다시 돌아서서 딸을 한참 들여다보고서야 말없이 출근길에 오른다.

딸자식이란 호박넝쿨과 같아서 부모들이 덕대를 치고 줄을 매주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렇게 안하면 엉뚱한 곳으로 순을 쳐가거나 아니면 땅바닥을 안고 사방 기여나가 녀자의 아름다움도 꽃도 열매도 바랄수 없게 된다고 한다.

최남호는 딸애가 유치원생이 되자 휘거를 시키느라고 무던히 애를 썼다. 가끔 애리애리한 그 애를 안고 훈련장으로 뛰여다녔다. 딸애는 아버지의 턱수염이 볼을 찌른다고 야단이다. 어뜩새벽이면 그 애를 품고 훈련장으로 찾아가군 했다. 출장이 끝나도 집이 아니라 훈련장부터 찾군 했다.

응석을 부리며 늘 투정질이 많던 소녀도 오래간만에 아버지를 만날 때면 정신없이 달려와 붙안고 볼을 비비며 깡충깡충 뛰였다. 물론 턱수염이 볼과 목을 찌른다고 종알대지도 않았다.

지금은 그 딸이 다 자라 벌써부터 둥지를 날아갈 차비를 하고있다. 벌써 시집갈 때가 된것이다.

까불고 도고하고 어쩐지 변덕스럽기도 하던 그 애가 얼마나 침착하고 사려깊고 애교있는 세련된 처녀로 자랐는지 최남호는 문득문득 놀라움을 품고 주시할뿐이다. 군대에 나간 동생도 그애 손에서 점잖게 철이 들었고 앓는 안해도 그 애의 세심한 시중속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있다.

개천에서 룡이 난다고, 뚝배기 봐서는 장맛이 달다고 딸애는 과묵한 부모와는 판판 다른 발랄하고 명랑한 새침데기로, 애교덩이로 자라났다.

그 애는 집안의 꽃이였고 노래였고 노을이였다.

최남호는 달리는 군용차안에서 딸애의 짧은 편지를 한참 들여다보고나니 울적했던 마음이 한결 가셔지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길을 차창밖으로 돌렸다.

서남부지대에서는 벌써 눈석이가 시작되였다지만 여기 동부산악지대는 아직 겨울이다. 험준한 계곡마다 잔설이 아니라 깊은 눈이 쌓여있고 이따금 바람질을 할 때마다 뽀얀 눈보라가 일어난다. 재빛나무숲은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않은듯 전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고 길은 미끄럽다. 하긴 밤새 꽛꽛하게 얼어들었던 땅이 한낮이면 조금 물기가 내배여 더 미끄러운지도 모른다.

야전군용차는 올리막길을 톺아올라갈 때마다 무척 힘들게 기운을 뽑는다.

하늘도 오늘은 흐리터분한게 도무지 정신이 들지 않는다.

단조로운 회색으로 잔뜩 흐려있어 벌써 저녁이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든다. 점심을 하고 떠난 길이니 이제 중낮이 좀 지났을뿐이다.

래일부터 대렬전술훈련에 들어가야 할 부대관하 구분대들을 돌아본 그의 마음은 지금 몹시 처져있었다. 눈사태와 그 이후 굼뜨게 시작된 얼치기눈석이로 하여 도로들은 말이 아니였고 연유가 떨어져 근 보름째 후방물자수송이 중단된 형편이였다. 어떤 구분대들은 통강냉이를 그냥 소금물에 삶아 급식을 보장하고있었다. 방금전 최남호는 관하대대장이 들고온 군용밥통을 들여다보고 미간을 찌프렸다. 거기에는 비상미로 지은 흰 쌀밥이 들어있었다. 그는 군용밥통을 들고 대대지휘부를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철빛얼굴에 이목구비가 단정한 장령이 들어서자 병사들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최남호는 군복이 헐렁하도록 몸이 약하고 목이 쑥 빠진 병사앞에 군용밥통을 놓은후 소금물에 삶은 통강냉이그릇을 식탁앞에 당겨놓았다. 어쩔줄 몰라 하며 따라들어온 대대장은 한숨을 내쉬며 곁에 앉았다.

《대대장동무, 한숨까지 쉴건 없소. 이것마저 떨어지기전에 대책을 세워야지. 자, 들기요. 항일투사들은 이런 통강냉이마저 한알두알 세여먹으며 붉은기를 지켰거든.》

최남호는 무뚝뚝하게 내뱉고나서 숟가락으로 통강냉이를 퍼올렸다.

그러자 시무룩해있던 병사들이 벌쭉벌쭉하며 부지런히 술질을 시작했다.

그 길로 차에 올라 지금은 부대지휘부로 가는 길이다. 구분대장들을 뒤자리에 빼곡이 태우고 떠났다. 래일의 훈련을 위해 무슨 방도가 없겠는가. 어째서 연유보장사업을 현지에서 협조하라고 임무를 주어 파견한 김한경대좌에게서는 소식이 없는가. 최남호는 이마살을 찌프린채 왼손을 들어 수염터가 푸릿푸릿한 턱을 쓰다듬었다.

벌써 사흘전에 도착했어야 할 훈련용기름이였다. 기계화부대의 훈련인만큼 한걸음을 움직이려해도 기름이 필요하였다. 수송을 담당한 연유차들은 이미 며칠전에 출발했었다. 무슨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긴것인가?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시창앞을 주시하며 말없이 앉아있었으나 속은 단 가마처럼 빠질빠질 타들었다.

훈련은 무조건 래일부터 시작하여야 했다. 부대들과 구분대들은 차지한 집결구역으로부터 신속히 이동하여 지체없이 가상적인 대상물을 점령해야 한다. 이 훈련은 인차 진행되는 군부대 타격훈련의 결정적인 서막으로 이어질것이다. 그것은 전군적인 관심과 기대가 집중된 훈련이였다.

하지만 오늘 저녁까지 연유가 도착하지 않는다면? 훈련을 미루어야 하는가? 그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였다.

야전차는 잎떨어진 수삼나무가 량쪽에 묵묵히 렬을 지어 서있는 골짜기길을 톺아올랐다.

부대지휘부에 들어서자 전화통에 매달려있던 몸이 다부지고 벌거우리한 목이 류달리 굵은 대좌가 지친 얼굴로 일어서며 경례를 하였다.

밤새 잠을 설쳐서인지 강무전대좌의 눈은 충혈되여있었다.

《어떻게 됐소? 부대장동무.》

최남호는 장령모를 벗어 작전대우에 놓았다. 모자자리에 눌린 굵은 머리칼들이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아직 방도가 없습니다. 그 문제로 군부대 후방부에 갔다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부국장동지, 갈수록 험산이라고 그것 말고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요?》

《후방부로 떠나기전에 보고받았는데 어제밤 눈석이에 북산강쪽으로 빠지는 작전도로가 막혔답니다. 래일 훈련에 들어가려면 다리를 놓을 자재가 있어야겠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림시다리를 놓으려해도 어디 통나무가 있습니까.》

최남호는 만나자바람으로 우는 소리를 하는 강무전이 불만스러웠다.

그는 묵묵히 강무전대좌를 내려다보았다.

《그 문젠 마음을 놓소.》

《예?!》

《아침에 1대대장으로부터 보고받고 내 북산탄광에 갔댔소. 일전에 동발목감으로 쌓아둔 통나무들을 본 기억이 있어 탄광일군들과 협의했소. 지배인이 없어 기사장이 좀 딱해했지만 내가 군대를 위한 일인데 뭘 그러느냐고 하니 내놓더군. 지금쯤 대대병사들이 그 통나무로 통로를 개척하고있을거요.》

최남호의 무뚝뚝한 말에 강무전은 반색을 하며 일어섰으나 한순간 주춤거렸다.

《이거 부국장동지가 큰 문제를 해결했는데… 군민관계측면에서 일없을가요?…》

최남호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됐소. 내 그 지배인을 좀 아니 일없을게요. 그 문젠 내가 책임지겠소. 훈련이 끝난다음 배로 해결해줍시다.》

강무전이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렇다면 됐습니다. 이젠 결국 기름문제가 걸렸다는건데…

부국장동지, 어쨌든 기름이 도착할 때까지 훈련을 좀 미루는것이 어떻습니까?》

강무전의 마감말에 최남호는 얼굴을 홱 돌렸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훈련은 반드시 래일 시작하여야 하오.》

《하지만 부국장동지도 아시다싶이 지금 실정이 그걸 어디 허용합니까?》

《또 방도를 찾아야지.》

최남호는 약간 갈린 석쉼한 어조로 말하고나서 작전대앞의 걸상을 끌어당겼다.

강무전대좌는 굵은 목을 꼿꼿이 편채 최남호를 흘깃 바라보더니 무엇인가를 말하려다말고 큰 숨을 내쉬였다.

그는 전화기를 옆으로 밀어놓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처럼 곤경에 빠져보기가 처음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에다 손을 내민적이 없는 우리 부대입니다.

전투훈련을 맡은 부국장동지도 알겠지만 우린 언제한번 훈련계획을 미달한적이 없고 군부대적으로 늘 모범이였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현대전은 알전쟁, 기름전쟁이라고 하셨는데 그래 맨주먹으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이거야 숨구멍을 열어주고 냅다 조겨야지 너무하지 않습니까.》

강무전은 자기가 구차스럽게 느껴졌던지 거북스레 팔을 저으며 눈을 껌벅거렸다.

《우는 소린 싹 걷어치우오. 한다하는 싸움군인 부대장동무가 그런 패배주의에 빠져있으니 아래사람들은 한숨만 쉬고 있지 않는가!》

최남호는 그를 마뜩지 않은 눈초리로 흘겨보며 말에 그루를 박았다.

강무전의 굵은 목에 피대가 솟았다.

《패배주의요? 그렇다면 부국장동진 이 최악의 상태에서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다는겁니까?》

《우선 정신이 문제란 말이요, 정신이!》

《글쎄, 방도를 내놓으십시오!》

《?!…》

《!?…》

두사람의 거친 눈길이 한점에서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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