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3

 

대지는 자기의 고유한 색조와 음조를 가지고 몸부림쳤다. 바람이 숲을 마구 흔들며 지나가자 광야는 안정을 잃은채 설레인다.

눈이 깊게 깔린 골짜기에서 일어난 싸늘한 바람이 희뿌연 눈가루를 창공으로 마구 휘뿌려대자 그 희끗희끗한 장막사이로 별들마저 희미하게 떨고있다.

먼 북방대륙의 동토대처럼 두텁게 얼어붙은 대지는 자기의 깊은 잠을 깨우려고 모지름을 쓰며 달려드는 광풍의 시달림에서 벗어나려는듯 우ㅡ우ㅡ 거센 호흡을 하며 사납게 꿈틀거린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높아졌다 낮아지고 커졌다 작아지며 숨가뿔 정도로 지속음을 내다가도 무엇인가를 두드리는듯한 굉음이 터져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어찌보면 거기에도 감정의 치달음과 은근하고 미묘한 호소가 깔린듯싶다. 야전승용차의 고르로운 발동소리가 마치도 그 자연의 관현악을 조화시키는 특이한 선률처럼 들려온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분명 그 대지의 숨결을 느끼시였다. 그것은 겨울속의 봄의 숨결이 아니였다.

준엄하고 엄혹한 겨울의 억센 숨결이였다. 겨울의 대지는 자고있는것이 아니다. 겨울의 숨결은 대지의 지심깊은 곳에서, 하늘과 땅의 엄청난 넓은 공간에서 큰 호흡으로 느껴오는 웅장하고 거창한것이였다.

그것이 겨울숲의 설레임소리인가 아니면 깊은 계곡을 빠져나오는 바람의 웅심깊은 웨침인가, 아니 그것은 겨울의 대지를 애무하는 눈보라의 노래인가, 땅과 바람이 다투며 붙으며 함께 창조해가는 대자연의 아름다운 선률인가.

그이께서는 계절중에서도 류별나게 겨울이 마음에 드시였다. 겨울의 남성적인 그 완강성, 그 억셈, 그 선명하고 깨끗한 세계, 그 호방하고 웅대한 자유분방함을 사랑하시였다. 아마도 사철 겨울을 안고사는 백두산에서 나서 자라셨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람소리가 금시 세차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그 소리를 여겨들으시였다.

문득 떠나온 북방의 기슭, 자강땅의 눈보라우는 소리가 또다시 아츠러지게 이어지는듯싶다.

바람은 세찼지만 그 불굴의 땅에서는 언땅을 비집고 억척같이 내돋는 강의한 새싹과도 같은 기적이 창조되고있었다.

아픔과 좌절, 희생과 눈물속에 흘러간 몇해어간의 고난의 나날, 그이께서 숨죽은 공장과 불꺼진 마을을 묵묵히 지나쳐 험준한 전선길을 걷고계실 때 그 땅에서는 사람들이 불사조마냥 일어서고있었다. 홰불망치를 들고 적기가를 부르면서 강줄기들에 언제를 막아 어둠이 짙은 공장과 마을들에 눈부신 불빛이 흐르게 했고 등짐과 손수레로 땅을 살찌우고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 자강땅의 골짜기들마다에는 수력타빈이 돌고 공장들에서는 로동계급이 눈을 번쩍이며 기계들을 다루고있었다. 참기 어려운 곤난과 시련으로 힘겨울 때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구내에서 펄럭이는 붉은기를 지켜보군 하였다. 강계땅에서는 불굴의 정신이 창조되고있었다.

그것이 무슨 힘이였는가. 예로부터 산간벽지로, 산많고 부침땅이 적어 살림이 궁색하기로 소문난 그 땅에 무거운 걸음으로 들어서시였던 김정일동지이시였으나 그곳을 떠날 때는 마음이 밝아지고 가슴속에 크낙한 격정을 안으시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어붙은 북천강기슭을 떠나 령길을 달리시다가 눈덮인 언덕에서 차를 멈추시였다.

골짜기를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쳤다.

그이께서는 경사가 느린 언덕에 오르시였다.

희끗희끗한 눈속에서 무엇인가 파릿파릿한것이 시야에 안겨들었다.

그이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눈속을 헤집으시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가벼운 탄성을 지르시였다. 그것은 이 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애어린 보리싹이였다.

눈속에서 파르르 떠는 그 파란 싹을 뽑아드시고 허리를 펴시였다.

세찬 바람에 파란 싹이 떨었으나 그 진한 푸른 빛갈과 험한 땅에 뿌리내린 생명체의 억센 모습이 눈물겹게 가슴을 쳤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따라선 강태혁도당책임비서와 수행일군들을 돌아보시였다.

《동무들, 보시오. 보리싹이요.》

《이 언덕받이로부터 저 전나무숲까지가 다 보리밭입니다. 지난해 가을 도내 청년들이 안변청년발전소에서 발휘된 인민군대의 혁명적군인정신을 본받는다면서 떨쳐나서서 개간한 땅입니다.》

장대한 체격의 강태혁책임비서는 석쉼한 목소리로 띠염띠염 말을 옮겼다.

웬일인지 강태혁의 두터운 안경이 약간 흐려보인다. 맞바람이 세차 뜨거운 입김이 서린 모양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파란 보리싹을 내려다보시였다.

그러니 처녀지를 개간한셈이다.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그 어린 싹이 무심하게 생각되지 않으시였다. 붉은기를 따라 사생결단으로 일떠선 자강도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이시였다.

그래, 이 자강도사람들은 인민군대의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살며 싸우길 원했다.

안변청년발전소에서 창조된 혁명적군인정신이 이 북방땅사람들의 심장속에서도 타번지고있다.

이것은 결국 혁명적군인정신이 낳은 강계정신이다.

선군정치의 초석을 이루는 혁명적군인정신이 우리 혁명의 광야에 퍼져 세찬 불길로 타오르고있다. 인민들이 이 정신을 이어받고있다.

우리의 사회주의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 선군의 기치를 들고 굴함없이 걸어온 천만리 전선길과 철령과 오성산이 불시에 눈앞에 떠오르자 그이께서는 코허리가 시큰해지시였다.

군대와 함께 인민이 이 길을 따라서고있다. 우리 혁명이 주저없이 선택한 선군의 길에 심장과 넋을 바치고있다.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선군의 길에 사회주의승리의 길이 있음을 확신하고 락관하고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배심이 든든해짐을 의식하시였다.

그렇다. 첫째도 둘째도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강화해야 한다. 올해를 인민군대강화의 대전환의 해로 되게 하여야 한다.

총대만 강하면 무서울것이 없다.

인민들이 총대를 목숨처럼 여기며 따라나서고있다. 이것이면 된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명상에서 깨여나시여 차창밖의 검은 산발들을 이윽토록 부감하시였다.

진록색야전승용차는 언땅을 물어뜯으며 눈보라치는 최전연길을 쉼없이 달리고있었다.

야전승용차의 전조등빛에 잎떨어진 가로수들과 그사이로 이따금씩 리정표들이 나타났다.

점차 길의 구배가 심해지고 산세가 험해지는것이 알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을 유심히 살피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시였다.

《가만, 어딘가 지형이 낯익습니다.

유진성동무, 이 근방에 부대지휘부가 자리잡고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이제 얼마 안가서 이곳 군부대관하 부대 주둔지역으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나집니다.》

유진성은 정중하게 몸자세를 바로 하며 보고드리였다.

《지금 부대들은 훈련을 하겠지요?》

《예, 현재 본격적으로 전투정치훈련을 다그치고있습니다. 이곳 기계화타격집단도 이미 지휘참모훈련을 끝마치고 훈련계획에 따라 구분대들의 훈련을 하고있습니다. 래일 선견대가 비파령을 넘어 타격지점인 북산강도하장부근에 도착하게 되여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침착한 음성으로 부대실태를 설명하는 유진성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몹시 피곤이 몰린 기색이다. 약간 부석부석한 눈부위며 피기가 빠진 기름한 얼굴이 눈에 설게 짚이신다. 몇해전 군부대를 지휘할 때까지만도 얼굴이 불깃불깃하고 다부진 몸에 탄력이 넘쳐 쇠소리가 쩡쩡 나던 건장한 모습이였었다. 병사들과 한데 어울려 롱구장이 좁다하게 뛰여다니던 그를 상기하자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으시였다.

진중하고 고지식하고 또 자신께서 특별히 신임하는 일군이였기에 말갈데소갈데 가리지 않고 어려운 모퉁이에는 도맡아 내보내군 하시였었다. 아무래도 신장이 좋지 않아 보이시였다. 콩팥계통은 과로와 추위에 민감한 법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의깊은 시선으로 유진성을 여겨보시였다.

《유대장동무, 미제의 〈5027작전계획〉과 관련한 총참모부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김정일동지의 물으심에 유진성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최고사령관동지, 최근 종합된 자료들을 분석해보면 적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미제가 이미 거덜이 났던 〈5027〉을 새롭게 들고나오는데는 결국 우리 공화국을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로골적인 기도가 엿보입니다. 이 전쟁각본은 지난 시기와는 달리 전쟁구실과 개시, 과정, 종결에 이르기까지 작전계획이 치밀하게 작성되여있습니다.

거기에 동원되게 되는 최신군사장비들이 특히 주목을 끕니다.

여러개의 항공모함집단과 스텔스전투폭격기〈Fㅡ117〉, 핵무기를 적재한 전략폭격기〈Bㅡ1〉, 〈Bㅡ52〉등이 수십만의 지상무력과 함께 동원될것이 예견되여있습니다.

벌써부터 미국군수산업이 활기를 띠고있습니다.》

유진성의 근엄한 음성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얼핏 돌아보시였다.

《그러니 이번에 놈들이 극비밀리에 다그치는 전쟁작전은 정치적효과를 노리는 전술적구호가 아니라는것이 이미 명백해졌단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미제침략군이 남쪽에서 벌리는 군사연습과 나토공군무력의 극동에로의 조심스러운 이동이 그 위험성을 실지로 확증해주고있습니다. …》

유진성은 무엇인가 부언하려다가 자제하는듯 가벼운 숨을 내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신중한 표정으로 차창밖을 내다보시였다.

《우리 조국앞에는 준엄한 시련이 다가오고있소.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경제봉쇄는 이해에 최절정으로 치달을거요. 그래서 우리는 이해에 엄혹한 〈고난의 행군〉을 이어 더 험난한 강행군길에 오른것이 아니요.

사회주의조국앞에 현실적으로 다가온 이 위험을 그래 어떻게 뚫고 나갈것인가?…》

마지막물음은 그이자신께 하시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둠짙은 차창밖의 대지에서는 눈보라가 성급하게 우우 몰아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덧 사색의 세계에 잠겨드시였다.

존엄, 존엄을 지키기는 힘들어도 잃기는 쉽다. 그 존엄중에서도 민족의 존엄을 지킨다는것이 얼마나 간고한것인가.

한번 잃은 민족의 존엄, 빼앗긴 조국을 되찾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했던가.

항일의 투사들이 피로 연 그 길, 락동강전사들이 목숨바쳐 지킨 이 길, 그 길에 기수는 쓰러져도 대오앞에는 늘 기발이 휘날렸다. 기발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사들, 인민들, 이 진리를 명심하라. 그 붉은 기폭앞에서 잠시라도 물러선다면 우리는 모든것을 잃을수 있다.

오직 총대로 이 기발을 지키는 길밖에 없다. 총대를 놓으면 기발을 잃는다.

지금 미제와 제국주의련합세력은 총대를 틀어쥔 우리의 손힘이 풀리기를 기다리고있다.

결국 클린톤의 인내성도 한계점에 이르고만셈이다. 우리를 지켜보며 없는 웃음을 꾸미고있던 그도 이제는 지쳐버리고말았다. 《포용정책》의 《가면무도회》를 그만하라고 앙탈을 부리며 위협하는 강경보수세력들의 검질긴 공격앞에서 가면마저 벗어버리려 하고있다. 아니다. 클린톤류들이 기다린것은 《가면무도회》뒤의 성찬이 아니였다. 상대의 기운을 빼고 손쉽게 칼부림으로 완전어깨닿기하려는 어리석은 꿈이였다. 그 몽상에서 때이르게, 조급하게 깨여났을뿐이다. 꿈에서 깨여난자들과 전쟁열로 신경이 곤두선자들의 결탁은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있다.

그 위험이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앞에 다가오고있는것이다. 준엄한 시련이 막아서고있다.

《5027작전계획》ㅡ그것은 국방성의 먼지낀 문서고에 덧쌓여있는 페르샤만전쟁직후의 그 정치전략적《선전화》가 아니다.

우리 사회주의조국의 실체를 이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계급적본성이 집대성된 현실적인 전쟁문서인것이다. 그들도 우리의 정신력과 군력을 아는이상 어차피 희생을 각오할것이다. 그러되 그 희생을 줄이려고 담보서한이요 《포용정책》이요 하며 노죽을 부렸을따름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클린톤이 심중으로 노리는《연착륙작전》과 《외과수술식타격》의 시기가 왔다고 판별하였는가? 전면공격, 선제타격으로 사회주의조선을 타고앉을 결정적인 기회라고 여긴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두눈을 감으시였다.

우리 인민의 《고난의 행군》은 최악의 상태에서 더 엄혹한 강행군으로 이행하였다. 공장이 멎고 전야가 물에 잠기고 상점들의 진렬대가 비고 불꺼진 방안의 밥상들에는 대용식품마저 그릇바닥을 겨우 가리우고있다. 시련과 난관은 갈수록 겹쌓이고 사람들이 기아에 쓰러지고있다.

멀리서 지켜보는자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등뒤에 감추었던 칼을 번뜩이고있다.

아니, 아직은 그들이 그 칼을 감추고있다. 돌아서서 때가 왔다고 떠들면서 그 칼들에 서리발을 세우고있다.

번쩍이는 그 칼빛에 겁을 집어먹은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가? 또다시 노예가 되겠는가, 아니면 존엄높은 자주적근위병이 되겠는가?

땅이 불타고 대지에 얼음이 덮여도 봄은 오는것이다. 문득 그이께서는 먼 자강땅의 바람거친 언덕에 돋아난 그 푸른 보리싹을 상기하시였다.

그렇다. 인민들은 언제나 붉은기가 나붓기게 하려고 달리고있다. 이 강행군길에 분연히 떨쳐일어섰다. 이 세계와 인간을 새롭게 깨우치는 정신ㅡ 인민군대의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우리 식의 삶을 선택했다.

그것이였다. 군대만 강하면, 총대를 틀어쥔 주먹만 억세면 된다.

군대만 강하면 붉은 기폭이 나붓기고 인민이 따라서고 이 강행군이 락원의 행군으로 이어질것이다. 미제가 또다시 강요하는 오늘의 전쟁위협을 백승의 무쇠주먹으로 짓부셔버릴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준엄한 이해를 군력강화의 전환의 해로, 거창한 훈련의 해로 결심하신것이 옳았다는 확신이 드시자 어느정도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는듯싶으시였다.

야전승용차가 가볍게 들추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색에서 깨여나시여 전방을 살피시였다.

《가만. 대장동무, 방금 비파령이라고 했지요?》

《예.》

《비파령이라… 오성산으로 가는 길이구만. 그 령도 몹시 험한 준령이지. 전쟁땐 보병들도 넘기 힘들어했습니다.

타격집단의 용감한 장갑보병병사들이 보고싶구만.

대장동무, 아무래도 가는 길인데 우리 부대에 들렸다 갑시다.》

최고사령관동지, 이젠 밤이 퍽 깊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번 전선현지시찰일정이 꽉 맞물려있습니다. 래일부터 군부대들을 지도하시려면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셔야지 않습니까.

최고사령관동지, 눈가에 피곤이 몰렸습니다.》

절절하게 호소하는 유진성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에 푹 젖어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허허허, 내가 할 소릴 되려 먼저 하누만. 사실은 동무신색이 좋지 않아서 내가 좀 재는게 없지 않소. 이번 전선시찰이 끝나면 시간을 뚝 떼서 휴식을 해야겠소. 혁명이 하루이틀에 끝나는것도 아닌데 강철인들 견디겠소.》

장군님, 전 조금도 일없습니다. 일자리를 축내지 못해서 그게 정신적짐이 될뿐입니다. 제 건강은 조금도 념려마십시오.》

착잡한 표정을 짓는 유진성을 그이께서는 유심히 건너다보시였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함께 견디여봅시다. 아마 병사들을 만나면 피곤도 천리로 달아날거요. 병사들과 함께 있는것이 우리에겐 휴식이고 보약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병사들과 인민들이 저희들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유진성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군모를 벗어들었다. 흥분할 때마다 하는 그의 군동작이다. 총이 연한 머리칼은 송송히 땀이 돋은 흰 이마에 눌려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눈보라가 울고 야전승용차의 발동소리가 숨가쁘게 들려온다.

그이께서는 짧은 숨을 내쉬시였다.

《진성동무, 동무들이 자주 나의 건강을 놓고 왼심들을 쓰는데 그 진정을 왜 모르겠소. 그런데 난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병사들을 떠나서야 최고사령관이 무슨 존재인가, 최고사령관을 위해서 병사들이 있는것이 아니라 병사들을 위해서 최고사령관이 있는것이다.

이 평범하면서도 심오한 진리를 나는 우리 수령님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민을 떠난 당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움직일수 없는 혁명의 공식입니다.

그래서 나는 병사들을 위해서, 인민들을 위해서 복무하는것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유진성은 머리를 번쩍들고 김정일동지를 우러러 보았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번뜩이였다.

《동무들이 진정으로 혁명의 수뇌부를 받들겠다면 최고사령관이 가는 길을 막아설것이 아니라 따라나서야 합니다. 나는 이런 일군을 기대합니다. 허허, 내가 동무들의 진정을 모르고 너무 역습하는게 아닙니까?》

김정일동지의 따뜻한 말씀에 유진성의 달아오른 얼굴에는 감격에 젖은 순진한 미소가 비꼈다.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너무 강한 역습이여서 도무지 빠져나갈틈을 못찾겠습니다.》

《왜 아직 의견이 있습니까?》

《예, 의견이 있습니다. 진실은 우리쪽에 있는것 같은데 장군님말씀을 듣고보면 또 그 진리가 가슴을 칩니다.》

《허허허, 걸작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명쾌한 음성으로 웃으시고나서 유진성을 자애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참, 진성동무, 지난해 가을 이곳 부대에 두개대대가 배속되였지요?》

《그렇습니다. 서부지구의 군부대에서 몇개 구분대들을 배속시켰습니다.》

유진성의 신중한 대답에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음…사실은 내가 이 부대에 들려 꼭 만나보고싶은 군인이 한명 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혼자소리처럼 외우시며 사색에 잠기시였다.

이윽하여 야전승용차는 간선도로를 벗어났다. 길은 협곡을 따라 구불구불 뻗어나갔다. 여름철이라면 길옆의 골짜기를 따라 시내물이 흐를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깊은 눈이 쌓여있다. 바람도 조금 잦아든것 같다. 눈보라가 없어서인지 전조등불빛에 앞길이 멀리까지 선명하게 내다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을 조금 내리시였다. 그러자 선뜩한 바람이 확 밀려들고 먼지맛이 섞인 슴슴한 눈냄새가 흘러들었다. 그 류다른 눈냄새가 페부에 스며들자 그이께서는 이름할수 없는 짜릿한 정취를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가볍게 눈을 감으시였다. 그러자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그것은 먼 추억이였다. 눈냄새, 그리고 물소리… 밀림의 설레임소리, 귀틀집의 싱그러운 나무냄새, 숫눈길… 바람이 점차 세차진다. 밀림, 광야가 잠에서 깨여난듯 뒤설레이기 시작한다. 눈보라가 치솟아 올라 밀림의 하늘을 뒤덮는다. 아니, 그것은 먼 추억이 아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눈보라우는 밀림속을 걷고계시였다. 멀리 려명이 비낀 백두산의 모습이 보인다. 몇해전의 눈보라 사나운 2월의 새벽이였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 한 시각도 자신께서 그 백두산의 눈보라를 잊지 않고있다는것을 불현듯 깨달으시였다.

문득 야전승용차가 멈칫하며 경적소리를 웅글게 내는바람에 그이께서는 눈을 뜨시였다.

묵직한 군용배낭을 등에 진 젊은 군인이 경적소리에 놀라 길옆으로 멈춰서서 전조등불빛에 눈이 시운듯 머리를 약간 뒤로 젖혔다.

몸매가 다부지고 날파람 있어보이는 군인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를 멈추게 하시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겨울밤의 언 랭기가 싸늘하게 피부를 자극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활달한 걸음을 옮겨 군인의 앞으로 다가가시였다.

갑자기 중사의 눈이 커지더니 금시 량볼이 붉게 달아오른다. 몹시 흥분하여 달려올듯싶더니 급히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순간 등에 진 배낭의 무게로 하여 중사는 뒤로 넘어질것처럼 휘친거렸다. 했으나 그는 용케도 몸중심을 잡은채 힘있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몹시 옹골찬 목소리가 골짜기가 떠나가게 쩌렁쩌렁 울려나왔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동지, 중사 최명진 임무를 수행하고있습니다.》

《음, 수고하누만. 중사동무!》

김정일동지께서는 최명진에게로 다가가 경례를 붙인채 아직도 내리우지 못하고있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으시였다. 손이 얼어서 찬돌덩이 같았다. 그이께서는 그의 언손을 따뜻이 손으로 주물러 녹여주시다가 어깨를 파고든 배낭끈을 일별하시였다.

《왜, 장갑을 끼고 다녀야지 손이 얼음장 같구만. 그러다 동상을 입겠소. 명진동무, 배낭이 몹시 무거워보이누만.》

최고사령관동지, 일없습니다. 이제 조금 더 가면 우리 대대지휘부입니다.》

《그래 등에 진게 뭐요?》

《저… 비동기전동기부속입니다.》

최명진이 배낭을 벗으려하자 옆에 서있던 유진성과 책임부관이 거들어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배낭아구리를 넓히고 안을 들여다보시였다. 쇠내와 기름냄새가 물씬 풍겼다.

칠이 좀 벗겨진 전동기부속동체가 연한 달빛에 번쩍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를 펴시고 갸름한 얼굴에 유별나게 영채가 돌아 어딘지 낯익어보이는 최명진의 인상적인 눈을 유심히 바라보시였다.

《음, 명진동무, 이 부속은 어디에 쓰려는거요?》

《사실 우리 분대의 한 병사가 비동기전동기를 발전기로 개조해가지고 중대에 소형수력발전소를 건설할수 있다고해서…》

최명진은 손을 뒤더수기에 가져가며 벌씬 웃었다. 하얀 이가 살짝 드러났다.

《소형수력발전소라? 분대의 병사동무가 아주 좋은 생각을 했구만.》

《우리 중대에서랑 그리고 대대장동지랑 적극 찬성해주었습니다. 이 전동기부속도 대대장동지가 선을 놔서 부대병기수리소에서 얻어옵니다.》

《허, 동무네가 정말 훌륭한 지휘관들을 두었구만. 그래 그 병사동무가 전기문제에 밝은 모양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시고 대견하신듯 중사를 바라보시였다.

최명진의 영채도는 큰 눈에는 자부심에 가까운 긍지가 비껴있는듯싶다.

《중학교시절 물리소조에 다닐 때 한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답니다. 분대원모두가 자신있어 합니다.》

자신이 있단말이지? 정말 훌륭한 결심이요. 동무들의 생각을 이 최고사령관이 지지한다고 지휘관들에게 전하라구.》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믿음어린 눈길로 한참동안이나 바라보시다가 그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시였다.

《그래 요즘 전기사정이 곤난하지?》

최명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영채도는 시선을 들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자주 정전됩니다. 재미있는 텔레비죤종목을 보다가도 정전이 되면 우린 송배전부사람들을 되게 욕하군 합니다. 어떤 동무들은 송배전부에서 일부러 정전시키지 않는가고 윽윽합니다.》

《허허허, 송배전부도 전기가 딸리니 어쩌는수 없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최명진의 어깨를 툭 치셨다.

최명진은 얼굴이 벌개져서 눈길을 내리깔았다.

《체육경기 같은걸 보다가 전기가 가면 정말 후끈달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대대장동지는 나라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봉쇄속에서 어려운 강행군을 하고있는데 우를 쳐다볼게 아니라면서 깨우쳐주군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항일혁명투사들처럼 자력갱생을 하자는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팔을 엇결으시고 최명진을 생각깊은 눈길로 내려다보시다가 옆에 말없이 서있는 지휘성원들쪽으로 돌아서시였다.

《이 중사동무가 우리에게 오히려 힘을 주는 말을 하누만. 자력갱생! 그래, 자력갱생만이 살 길이지.》

그이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여 길옆으로 다가가시였다. 어둠에 싸인 우중충한 산발들이 생각에라도 잠긴듯 까딱않고 솟아있다. 연한 달빛에 원경으로 드러나는 산릉선마다 나무 한대 볼수 없이 밋밋하다. 그러니 장마가 지면 큰물이 날수밖에 없다. 산이 물을 잡자면 숲이 있어야 한다. 문득 깊은 고뇌가 어쩔수없이 마음속으로 찾아든다. 70년대 중엽 수령님을 모시고 이곳을 찾으셨을 때만 해도 범이 새끼칠 정도로 산림이 무성하고 무인지경처럼 계곡이 깊어보였었다. 특히 소나무가 울창했다. 하지만 지금은 산마다 면도를 한듯 반반하다. 땔감이 부족하니 산이 헐벗을수밖에 없다. 병사들은 그 해결방도를 전기에서 찾으려 하고있다. 병실에 언제나 불빛이 흐르게 하려 하고있다.

우리 병사들은 얼마나 슬기로운가. 엄혹하고 무자비한 현실을 스스로 자각하고 그로부터 출발하여 당의 의도와 결심을 심장으로, 자기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있지 않는가.

전사들, 보통병사들, 그래서 우리 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한평생을 병사들속에 계신것이다.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힘, 그것은 바로 우리 병사들이다. 이 병사들이 우리의 힘이며, 무기이며, 행복이다.

차라리 잘되였다. 학자들도 소나무가 산을 산성화시킨다고 주장을 하는데 이제 좋은 수종의 나무모들을 키워 저 산들을 살찌우자. 전국의 모든 산들을 무성한 수림으로 뒤덮어 후대들에게 물려주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명상에서 깨여나 최명진에게로 돌아서시였다.

《최명진동무, 그래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오?》

김정일동지의 물으심에 최명진은 가볍게 눈길을 떨구었다.

《인민무력부에서 부국장으로 복무합니다.》

《부국장?… 그럼 최남호동무의 아들인가?》

《그렇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색을 하시며 유진성을 돌아보시였다.

《어쩐지 처음부터 낯이 익다 했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더니… 유동무, 이렇게 간부자식들이 최전선에서 성실히 복무하니 얼마나 좋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대견하신 눈길로 최명진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며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최전선의 산발쪽으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그래 명진동무, 동무네가 건설하려는 소형수력발전소위치가 어디요?》

《이 산넘어 대대지휘부 뒤골짜기입니다. 거기 바위틈에서 사철 얼지 않는 샘줄기가 콸콸 쏟아지는데 여름에는 덕수로 씁니다.》

《아, 덕수! 생각나오. 수령님을 모시고 왔을 때 최현동지가 그 덕수를 맞고오겠다고해서 함께 돌아보았댔소. 음, 그 물량이면 괜찮아.

유진성대장동무, 이 동무들을 잘 도와주어 전군적인 본보기를 하나 창조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활달하신 손세를 쓰시며 인민무력부장곁에 서있는 유진성을 돌아보시였다.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어쩐지 자책감에 젖은 음성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명진을 앞세우고 야전승용차로 향하시였다.

갑자기 하늘이 더 어두워지고 협곡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또다시 눈보라가 터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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