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5 장

9

 

화물자동차는 삼포읍을 지나 배등령고개길에 들어서자 속력을 늦추었다. 령길에는 캄캄한 어둠이 깔려있었다. 자동차는 전조등으로 령길을 한치한치 더듬으며 부르릉거렸다. 적재함에는 여러대의 풍력발전기가 실려있었다.

홍진은 전조등빛에 드러나는 낯익은 도로와 길 량옆의 무성한 숲을 생각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불과 두달동안 떠나있었지만 여러해동안 헤여져있은듯 한 심정이였다.

그는 도안의 몇몇 기계공장들에서 풍력발전기제작을 도움받을 작정으로 풍덕땅을 떠났었다.

도에서도 이름있는 ㅅ기계공장은 홍진의 삼촌이 지배인을 하고있는터여서 풍력발전기 몇대쯤은 문제없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뜻대로 안되는것은 역시 일인듯싶었다.

홍진은 생각다못해 대학에 들려 그동안 현실체험정형을 보고하면서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기계학부에서는 전국적으로 발전설비를 생산하는 공장들과 련계를 가져볼것을 권고했다.

홍진은 북방의 기계공장이며 전기설비를 생산하는 공장들을 찾아 수백리 기차행군도 하였고 밤길을 걷기도 했었다. 그러던중 렬차에서 ㄱ군에 있는 자그마한 영예군인공장 지배인을 알게 되여 자기의 마음속 고충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염소작업반 자체의 힘으로 그렇게 큰 건설을 벌려놓았단 말이요?… 풍력발전기까지 세우고… 젖가공, 먹이가공, 염소방목도 콤퓨터화한다?… 대단하구만. 내 동무한테 신세갚음을 할테니 우리 일을 좀 도와주오. 우리 공장 부업목장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멋쟁이로 꾸리자고 하는데 이렇게 귀인을 만났구만.》

《아니, 어떻게 신세갚음을 한다는겁니까?》

홍진은 무척 혈기왕성하고 과단성이 있어보이는 40대의 젊은 지배인을 호기심을 안고 쳐다보았다.

《우리가 풍력발전기를 해결해주면 되지 않겠소?》

홍진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동문 제대군인이라지?… 그러니 우린 다같이 마음속 군복을 벗지 않은 병사요.

병사시절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달라붙으면 못해낼 일이 뭐겠소?》

홍진은 눈굽이 화끈 달아올랐다.

《너무 걱정마오. 사실 우린 군안의 몇개 농장들에서 요구하는 풍력발전기를 만들어 보내준 경험이 있소.》

《그렇습니까. … 제 힘껏 영예군인동지들의 일을 돕겠습니다.》

그렇게 되여 결국 이름없는 자그마한 영예군인공장에 머무르면서 풍력발전기를 제작하였고 그 공장의 부업목장일도 기술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나날 영예군인들과 함께 풍력발전기만을 제작한것이 아니였다. 그들의 투쟁모습을 통하여 피흘려 지킨 삶의 터전, 이 땅을 어떻게 가꾸고 락원으로 꾸려야 하는가를 가슴깊이 새기였었다.

공장에서는 자동차까지 내여 풍력발전기를 실어가도록 해주었다. 발전기를 싣고 떠날 때 공장로동자들이 정문까지 나와 그를 바래워주었다. 홍진은 그들앞에 군사복무의 나날처럼 거수경례를 하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고맙습니다, 영예군인동지들! 동지들이 마련해준 이 귀중한 풍력발전기로 풍덕등판에 새 세기의 불야경을 기어이 펼쳐놓겠습니다. )

그것은 그 혼자만의 맹세가 아니였다. 순미와 청년염소반원들모두의 맹세이고 목표였다.

차창밖에서는 숲이 설레이고 산촌의 특유한 향취가 흐른다.

풍덕땅이 가까와오자 홍진은 불쑥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들과 함께 송도원에 나갔던 일이 떠올랐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바다, 은모래 반짝이는 백사장, 해당화꽃이 만발한 바다가의 경치는 얼마나 멋이 있었던가. 모래불을 희롱하며 끝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흰파도…

나어린 소년은 흰파도가 부글부글 끓는 바다물에 종아리를 적시며 너무 좋아 깔깔 웃어댔다. 어머니가 물었다.

《홍진학생, 뭐가 그렇게도 좋은가요?》

《내 고향 원산! 송도원 앞바다의 흰파도! 흰갈매기!》

소년은 또랑또랑 청고운 목소리로 시읊듯 대답했다.

어머니는 그의 대답이 너무 기특하여 아들을 와락 그러안고 애무해주었다.

《어머니, 난 아버지의 고향도 잘 알아요.》

《어서 말해보렴.》

《양, 염소떼가 흰구름처럼 흘러가는 풍덕〈바다〉!》

어머니는 놀라고 아버지도 놀랐다.

《여보, 홍진이한텐 분명 시적인 재능이 있어요.》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홍진아, 누가 풍덕〈바다〉라고 대주더냐?》

《아버지의 고향은 풀밭이 넓고 푸르다고 했어요. 그러니 〈바다〉가 아니예요? 내 고향 원산 앞바다는 물고기가 많은 바다, 아버지의 고향 풍덕은 양, 염소가 많은 〈바다〉!》

《정말 용쿠나. 넌 앞으로 커서 그 〈바다〉의 주인이 되거라.》

《알겠어요, 아버지, 어머니!》

잊을수 없는 추억이였다. 홍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풍력발전기를 싣고 ㄱ군을 떠나오던 길에 그는 집에 잠간 들렸었다.

이미 전화련계가 있어 영예군인공장에 가있은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그가 나타나 풍력발전기를 해결했다고 하자 부모들은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가 풍력발전기를 해결할 결심을 안고 올라왔을 때 풍덕땅을 위해 바치는 그의 지혜와 정열을 대견하게 평가했었다.

아들과 헤여지는 마당에서 아버지는 두툼한 책 한권과 편지를 주면서 순미의 어머니에게 전해줄것을 부탁했다.

《나도 지금 하고있는 일만 마무리하고는 풍덕에 한번 다녀오겠다.》

《아버지, 이건 뭡니까?》

아들의 호기심에 아버지는 새로 나온 축산부문 기술서적인 《고산지대에서의 양, 염소기르기》와 그와 관련한 내용을 해설한 편지라고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깊은 추억이 실린듯 한 그 말에서 홍진은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고향에 태를 묻은 사람이라면 그앞에 한점 티없이 깨끗하고 떳떳하려는 인간의 량심이였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렇듯 귀중한것이구나. …)

고향을 위해 심혼을 다 바쳐가는 순미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발전기를 가지고 돌아가면 그가 얼마나 기뻐할것인가?…)

며칠전 농장에 전화를 걸었을 때 권봉석위원장은 대뜸 순미반장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는 말부터 했었다. 그동안 소식 한장 없었으니 욕을 많이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것을 리해하고 용서해줄것이다. 홍진은 마음속으로 그와 끝없이 속삭였다.

자동차는 어느덧 배등령마루에 올라섰다. 운전사는 좀 쉬여가자며 차를 세웠다. 홍진은 차에서 내려 풍덕등판을 바라보았다.

《운전사동무, 저 등판에 마치 별무리가 내려앉은것처럼 불빛이 반짝이는 곳이 우리가 새로 꾸린 염소방목기지입니다.》

《그렇소?! 꼭 밤바다우의 도시같구만. 저렇게 도시처럼 불이 밝은데 풍력발전기는 왜 세우는거요?》

《염소방목기지의 기계화, 콤퓨터화를 실현하자면 많은 전기가 요구됩니다.》

그들은 다시 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나는듯이 령을 내렸다.

관리위원회마당에 들어서니 위원장방에서 두사람이 급히 달려나왔다. 권봉석과 박성복이였다. 그들은 마치 홍진이 온다는것을 알고있은듯 했다.

《홍진동무, 정말 수고했소. 우린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일을 했구만.》

권봉석이 홍진의 손을 잡아흔들며 목멘 소리를 했다.

《순미가 기뻐서 춤을 출거네. 아니, 너무 기뻐 울지도 몰라.》

권봉석은 웬일인지 젖은 목소리로 요즘 염소작업반에 경사가 겹친다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신문에 크게 소개된 청년염소반에 대한 긍정기사, 류옥련이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에서의 1등 당선, 풍력발전기의 해결…

《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우리 집으로 갑시다. 얼마나 시장하겠소.》

권봉석은 홍진이와 운전사를 집으로 이끌었다. 박성복리당비서도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늦은 식사를 하고난 뒤 홍진은 운전사의 잠자리를 보아주고 어둠이 짙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권봉석을 통해 그동안 염소작업반에서 한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였다.

순미반장이 내부공사와 방목지꾸리기를 내밀면서도 새끼생산조직도 빈틈없이 해나간단것이였다.

(순미동무, 동무는 정말 불덩어리 한가지구만. 언제나 꺼질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기만 하는 불덩어리…)

물론 그는 처녀의 심장이 무엇을 위해 고동치고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풍덕땅을 생각하면 그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의 모습이 떠오르면 힘과 용기가 솟구쳐올랐다. 풍덕땅을 떠나있은 나날 그런 감정을 자주 체험하였다.

그는 덕으로 향했다. 사방이 고요하였다. 모두 깊은 잠에 든 모양이였다. 염소우리호동쪽에서 염소울음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능금골 염소들이 모두 여기로 옮겨왔다고 했지. …)

홍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불밝은 염소우리호동들과 젖가공실, 콤퓨터조종실, 작업반선전실, 합숙 등 여러 건물들을 정깊은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사이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

그 순간 아버지가 부탁한 편지가 생각났다. 순미를 만나 그에게 주려고 생각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직접 어머니를 만나 전해주고싶었다.

(그 어머니도 기뻐하실거야. …)

책과 편지를 주면서 하던 아버지의 말이 귀전에 되살아올랐다.

《홍진아, 이 책은 염소반장처녀의 아버지가 풍덕땅에 와서 연구사업을 할 때 기록한 연구일지를 정리해서 출판한 기술서적이다.

필자의 이름을 라준이라고 그대로 실었다. 사실 이미전에 내놓았어야 할 책이였지. 오래전 내가 고향을 떠날 때 그 사람한테서 빌려보던 몇권의 기술서적들과 연구일지를 돌려주지 못한채 그만 새 부임지에 배치되였구나. 그다음은 일이 바쁘다고 고향에 내려가보지 못했지. 그래서 그 처녀의 어머니가 고까운 감정을 담은 편지도 보내오고… 난 차마 회답을 할수 없었다. 고향에 대해 관심을 돌리지 못한건 사실이였으니까. 그런데 라준동무가 그렇게 사망할줄이야. … 그후에도 그 기술서적과 연구일지는 내가 그냥 가지고있었다. 사업에 필요하기도 했거니와 큰 죄를 진것 같아 그냥 돌려줄 면목이 없더구나. 그렇게 세월이 흘렀지. 네가 풍덕에 현실체험지를 정한 다음부터 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구일지에 자료를 더 보충해서 기술도서를 완성했다. 그 처녀의 어머니한테 용서를 비는 심정으로 말이다. …》

(아버지, 고맙습니다. …)

콤퓨터조종실을 돌아보던 홍진은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장소로 정한 언덕우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았다. 바라보니 하나의 큼직한 불방망이였다.

누굴가? 혹시… 그의 심장은 갑자기 높뛰기 시작했다.

그는 권봉석으로부터 순미의 주장에 의해 박달나무로 발전기를 설치할 탑을 높이 쌓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결국 순미는 오늘같은 날이 있으리라고 믿었던것이다.

그는 언덕을 향해 뛰여올라갔다. 정교하게 높이 쌓아올린 방틀모양의 탑이 한눈에 안겨왔다. 그밑에 불방망이가 달린 긴 막대기를 땅에 박아놓고 누군가 부지런히 삽질을 하고있었다. 남들이 다 자는 이 깊은 밤 이곳에 남아있을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그밖에 없었다. 틀림없는 그였다.

안홍진의 마음은 바람을 안은 숲마냥 세차게 설레였다. 그는 지금까지 이처럼 가슴이 쿵쿵 뛰여본적은 없었다. 풍덕땅의 변덕인양 급기야 확 내리덮이는 밤안개의 짙은 장막으로 하여 앞이 뿌잇해졌으나 순미의 모습은 너무나 선명하게 안겨왔다.

홍진에게는 그가 자기를 기다려 풍력발전기탑을 쌓고 그 언덕을 차마 못 떠나는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아름다운 처녀! 그대의 가슴에 타오르는 불타는 정열과 지향을 나는 읽는다. 위대한 선군시대의 청춘인 그대가 받들어올린 이 땅의 창조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긍지로운것이다. 열정의 샘마냥 활활 솟구치는 아름다운 처녀의 그 마음… 가슴에서 불길이 확 일었다.

홍진은 뜨거운 목소리로 처녀를 불렀다. 순간 처녀의 눈빛이 별처럼 빛났다.

《홍진동무 아니예요?》

기쁨과 환희, 벅찬 감정에 흠뻑 젖은 정깊은 목소리에 홍진은 목이 메였다. 숨이 꺽 막히는듯 했다.

《반장동무!》

《홍진동무!》

그들은 서로 어떻게 다가섰는지, 어떻게 두손을 맞잡았는지 알지 못했다.

《끝내 왔구만요. 기다렸어요. 정말 애타게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 깊은 밤에 불쑥 나타났군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것처럼. …》

라순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밝게 웃었다.

《그건 내가 하자던 말이요.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난 반장동무가 기뻐하는걸 보고싶어 이밤으로 달려올라왔소. 풍력발전기를 싣고왔다는 그 한마디 말을 하고싶어서 말이요.》

《고마워요. 그새 힘들었지요?》

《아니, 조금도 힘든줄 몰랐소.》

홍진은 꼭 잡은 처녀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 순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을 지키더니 탑쪽으로 돌아서며 조용히 말했다.

《홍진동무, 정말 미안해요. 우리 작업반에 현실체험을 하러 온 동무에게 매번 힘든 일만… 무겁게 지워준 이 매정한 처녀를…》

《그러니까 어차피 이 고장을 떠나갈 안홍진이를 너무 혹사시켰다 이 말이겠소? 가다오다 들린 손님처럼 말이요?》

《아이참,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가다오다 들린 손님이라니요? 우린 홍진동무를 언제나…》

《그만하시오. 어쨌든 떠나갈 사람인것만은 사실이 아니요.》

홍진은 저도 모르게 갑자기 격해졌다.

《아니, 그거야 아무렴…》

순미는 말끝을 맺지 못한채 홍진의 황황 타는듯 한 두눈을 황급히 외면했다.

《반장동문 그런 처녀였소? 지금껏 이 안홍진이를 그렇게 보아왔는가 말이요? 그게 과연 고향을 사랑하고 가꾸는 처녀의 심장의 목소리가 옳소? 어째서 이 땅에 모든것을 다 바치고싶어하는 나의 심정을 리해해주지 못하오. 함께 이 땅을 가꾸고 영원히 빛내여가자는 소리는 왜 못하는가 말이요?》

《예?!》

순미는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가? 함께 이 땅을 가꾸고 빛내이자고? 그게 과연 진심일가?…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리성을 되찾았다.

그는 조용하나 강단이 느껴지는 어조로 말했다.

《홍진동무, 그건 안돼요. 절대로 그럴수 없어요. 동문 떠나가야 해요. 조국이 동무에게 더 큰 일을 맡길거예요.》

홍진은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았다.

순미가 무슨 말인가 계속했으나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다만 세차게, 더 세차게 고동치는 심장의 박동소리만이 느껴질뿐이였다.

그는 처녀에게 웨치고싶었다. 앞으로의 일은 이 땅이 결정할것이라고, 변모된 풍덕땅이 자석처럼 이 마음을 끌어당기는 한 자기는 떠날수 없다고… 풍덕땅이자 라순미이고 라순미이자 곧 풍덕땅이라고 웨치고싶었다.

《반장동무!》

《홍진동무, 고마워요. 그저 순미라고 불러주세요.》

《순미동무, 우리 그 이야긴 그만하고 풍력발전기를 설치할 탑에 한번 올라가봅시다.》

홍진은 순미의 손을 잡았다. 박달나무로 든든히 맞물려쌓고 삼합토미장을 한 탑은 견고하면서도 날씬했다. 그들은 한계단, 두계단 밟아올라갔다. 탑우에 오르니 저 멀리 동켠하늘쪽이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끝없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풍덕등판이 한눈에 굽어보였다.

《정말 볼수록 정이 가는 산촌이요. 난 이 땅에 영원히 뿌리를 내리고 나의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겠소!》

홍진은 격정에 넘쳐 부르짖었다.

《고마워요, 홍진동무!》

그들의 뜨거운 눈빛이 부딪쳐 강렬한 빛을 내뿜었다.

순미는 흥분된 어조로 덕중심에 펼쳐놓은 건설을 완전히 끝내고 방목쉼터들마다에 예견된 야외우리들과 여러 골짜기들의 이동방목지들까지 꾸리면 풍덕등판은 그야말로 하나의 염소방목기지로 전변될것이라고 격앙된 감정을 터쳐놓았다.

《다음에는 젖가공품을 운반하는 운반용삭도를 놓아 고향마을 사람들과 군내 인민들이 실지로 덕을 볼수 있게 하겠어요.》

순미는 지금껏 자기의 품안에 간수하고있는 노래수첩을 생각했다. 아버지가 자자구구 새기며 간직한 그 노래의 깊은 뜻이 다름아닌 지금 이 땅에 펼쳐진 그처럼 아름답고 눈부신 현실이 아니였을가.

순미는 앞으로 자기의 심정을 기쁨과 환희속에 이야기하게 될 그때 참으로 많은것을 그와 함께 속삭이게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아직은 할일이 더 많은 때였다. 청년염소반을 본보기로 꾸린 다음에는 그 기세, 그 투지로 면양반, 가금반, 돼지종축반 등 모든 작업반들을 현대적으로 꾸리는데서도 청년들이 앞장서야 할것이였다. 몰라보게 달라질 고향의 모습에 대하여, 보다 아름답고 풍요해질 생활에 대하여 순미는 끝없이, 끝없이 이야기했다.

홍진은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삶의 터전, 비옥한 대지에 피여난 한떨기 아름다운 꽃의 짙은 향기에 흠뻑 취해버린 심정이였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 저 멀리 최전연으로 뻗어간 전선길을 뜨겁게 바라보며 밝아오는 새벽대기속에 오래오래 서있었다. 머지않아 동이 틀것이였다. 그러면 이 넓은 등판에 청년들의 랑만에 넘친 투쟁의 노래가 누리를 진감하게 될것이다. 그것은 그대로 이 나라 청년들이 고향에 드리는 사랑의 노래, 가장 존엄높고 아름다운 조국에 드리는 뜨거운 송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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