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5 장

7

 

능금골에 올라가 태식이와 하루밤 지내고 온 신종선의 말이 그가 자기에게는 아무런 병도 없다면서 두길, 세길을 뛰더라는것이였다.

《제 사업에 빈틈이 많았어요. 반원들의 생활도 그렇고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전혀 낯을 돌리지 않은 제가 무슨 반장이겠나요.》

《반장동무가 그렇게 말하면 잘못은 이 신종선이에게 더 많소. 작업반 청년동맹비서로서 동무들에 대해 무관심했단 말이요. 한마디로 동지애가 부족했지.》

《우리 함께 교훈을 찾고 이제부터라도 동무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보자요.》

순미는 태식이를 위해서도 그렇고 능금골 방목지의 반토굴식침실에서 생활하는 방목공들의 건강을 고려하여 오늘 당장 새로 지은 염소우리호동으로 염소들을 옮기고 방목공들을 합숙으로 이사시키자고 했다.

《난 이길로 능금골에 가겠어요. 현재 꾸리는 호동을 내놓고 이미 꾸린 호동들을 정리해주세요.》

《알겠소.》

능금골에 도착한 순미는 송순애를 만나 방목공들중에 앓는 사람이 없는가, 김태식이 아침식사를 다 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서야 염소무리들이 풀을 뜯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갔다.

산협길주변에는 개암나무, 가둑나무, 싸리나무 같은 떨기나무들이 키낮은 숲을 이루고 도간도간 매자나무, 물앵두나무, 단풍나무들이 숲그늘을 지어주기도 했다. 골짜기 안쪽으로 얼마쯤 들어가니 그리 넓지 않은 공지의 한가운데 류달리 풍성한 돌배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 그 돌배나무를 축으로 왼쪽릉선과 오른쪽 펑퍼짐한 개바닥에 염소들이 하얗게 붙었다.

순미는 밑둥 굵은 돌배나무밑에 김태식이와 류옥련이 마주 서있는것을 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태식은 순미를 반기는 인상인데 옥련은 발깃하게 얼굴이 달아올라 그 자리에 서있었다. 분명 태식이 일때문에 서로 말이 오간 모양이였다. 하소연하듯 말꼭지를 먼저 뗀것은 태식이였다.

《반장동무, 정말 때마침 왔소. 옥련동무가 글쎄 날보고 염소방목조장도 그만두고 염소무리도 자기한테 맡기고 당장 병원에 가라는거요. 이런 강짜가 어데 있소. …》

그는 사뭇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필경 옥련이가 편지내용을 가지고 태식이를 공격했을것이다. 순미는 정색한 인상으로 태식을 쳐다보았다.

《태식동무, 옥련동무의 말을 흘려듣지 말아요.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서도 몸을 돌봐야 해요.》

태식의 인상이 굳어졌다.

그는 돌배나무에 기대서서 먼 하늘가에 눈길을 던졌다.

《반장동무까지 그런 립장이라니 말을 좀 해야겠소. 아마 돌격대시절 나를 동생처럼 돌봐주던 홍동무가 편지를 보내온 모양인데… 그래서 반장동무도 신종선동무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올라왔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완쾌된건 아니요. 자체로 찜질도 하고 몸관리를 잘하면 얼마든지 일을 할수 있기에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거요. 그쯤한걸 가지고 떠든다는게 말이 되오?…

우리가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있소? 설사 몸이 열쪼각이 난다 해도 맡은 초소는 떠날수 없소. 난 돌격대시절에 그렇게 배운 사람이요. 그러니 더 강요하지 마시오.》

그는 할말을 다 했다는듯 릉선에 붙은 염소무리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두 처녀는 한동안 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옥련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순미야,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왜 저 동무를 나쁘게만 대해왔을가?…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겉만 보려 했으니, 난 정말… 날 용서해.》

옥련의 눈굽에 고였던 맑은것이 구슬알처럼 부서져 흘러내렸다.

《옥련아, 그만 진정해. 그게 어디 너의 잘못만이겠니.

난 지금 네 가슴속에 꽉 차있는 소중한 감정을 기쁘게 느끼고있어. 그래서 네가 돋보이고 단순히 동무로서가 아니라 고향을 사랑하고 가꾸는 진정한 벗으로 너를 존경하게 된다.》

순미는 옥련의 어깨를 품어안았다.

《우리 어떻게하나 힘을 합쳐 태식동무의 건강도 회복시키고 일도 더 잘해보자.》

순미는 작업반에서 토론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옥련이는 마침 잘됐다고 찬성해나섰으나 태식의 생각은 달랐다.

《반장동무가 우리 방목공들의 건강과 생활에 대해 념려해주는건 고맙소, 그만큼 리해도 되고. …

하지만 아직은 이르오. 아직 두주일정도 여기 능금골에 있으면서 새끼생산조직을 하는것이 좋을것 같소. 지금 한창 인공수정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환경을 바꾸면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

순미는 선뜻 말을 할수가 없었다. 한마리의 염소라도 더 내려고 애를 쓰는 그 마음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이번주까지만 능금골에서 새끼생산조직을 내밀자요. 그러나 일요일에는 무조건 계획대로 움직여야겠어요.》

태식이도 그의 의견에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능금골방목지 철수문제를 결정하고난 오후무렵이였다.

갑자기 하늘에 먹장구름이 확 덮이더니 때아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새로 건설한 방목덕의 건물들은 끄떡없었다.

순미는 어쩐지 능금골방목지가 몹시 걱정되였다. 방목나갔던 염소들이 무사히 돌아왔겠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비는 도무지 멎을 기세가 아니였다. 오히려 갈수록 더 억수로 퍼붓는다.

《아무래도 능금골에 올라가봐야겠어요.》

신종선이도 같은 생각이라면서 순미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정갱이까지 차오르는 물을 첨벙첨벙 차던지며 방목지로 올라갔다.

순미는 방목지철수를 하루이틀 미룬것이 여간만 후회되지 않았다.

(난 아직 멀었어. 말로는 동무들에 대한 사랑에 대해 곧잘 외우면서 태식동무의 말만 쫓았으니. …)

그는 뼈아프게 자책했다. 능금골 넓은 공지에 이르니 방목나갔던 염소들이 급히 골짜기에서 달려내려온듯 무질서하게 호동으로 들어가고있었다.

김태식이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채 염소무리들을 호동들에 몰아넣느라 경황없이 뛰여다니고있었다.

《염소들이 다 내려왔어요?》

《우량종염소무리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소.》

《어느 방향으로 갔어요?》

리경칠이 아침일찍 오른쪽 개바닥으로 나가는것을 보았다고 했다. 대줄기같은 비는 여전히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빨리 찾아보자요. 염소들이 애를 먹이는 모양이예요.》

순미는 신종선, 김태식을 비롯한 여러 방목공들과 같이 옥련이를 부르며 뛰여갔다. 사방은 옥련을 부르는 소리와 세상만물을 무섭게 후려치는 비소리로 소연했다. 비교적 펑퍼짐한 풀판을 지나 나지막한 릉선을 넘어서니 그 앞쪽에 희끗희끗한것들이 나타났다. 염소들이였다. 두손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옥련을 부르며 달려내려가던 순미는 깜짝 놀라 굳어졌다. 골짜기 웃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위와 잡관목, 떨기나무들을 휩쓸며 흘러내리고있었다. 갑자기 불어난 산골짝물은 사정이 없었다. 아래쪽에서 옥련이가 염소들을 안아 릉선쪽으로 넘겨놓고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옥련아!》

순미는 이미 큰 개울이 돼버린 물가녁을 따라 내려가며 목터지게 불렀다. 주저없이 무릎우를 올려치는 물복판으로 헤가르며 들어섰다.

《순미야, 들어오지 말어―》

온몸이 비에 흠뻑 젖고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에 머리카락이 마구 흩어진 옥련이가 큰 어미염소 한마리를 두손으로 그러안고 물을 건너오다가 소리쳤다. 삽시에 불어난 골개물은 물살이 어찌나 센지 몸을 가누기가 수월치 않았다.

순미는 한걸음, 두걸음 물결을 헤갈랐다. 그들은 개울 한복판에서 서로 만났다.

《몇마리가 남았니?》

순미는 옥련이한테서 염소를 받아안으며 성급하게 물었다.

《아직 다섯마리가 있어.》

《그럼 넌 어서 릉선쪽으로 건너가. 나머지는 내가 건늬여올테니.》

《아니, 그쪽은 물살이 더 세서 위험해. 내가 마저 할테니…》

옥련은 무작정 순미의 등을 밀어내치고는 허둥지둥 개울을 건너갔다.

순미는 하는수없이 염소를 안고 릉선으로 나왔다. 이미 개울을 건너온 염소들이 옥련이쪽을 지켜보며 메―에, 메―에 애타게 울부짖었다. 저마끔 주인을 부르는 목소리였다.

순미가 다시 물에 들어섰을 때 신종선과 김태식이 릉선 웃쪽에 나타났다. 옥련이가 어미염소를 안은채 넘어지는것이 보였다.

순미는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정신없이 물살을 헤가르며 나갔다. 웬일인지 옥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비발사이로 앞을 바라보니 염소를 안은채 일어섰다가는 넘어지고 넘어져서는 물살에 떠밀리우며 이쪽으로 건너오려고 모지름을 쓰는 사람의 형체가 아물거렸다.

《옥련아―》

순미가 애타게 부르는데 어느새 달려온 신종선과 태식이 개울을 헤가르며 그에게 당장 돌아서라고 고함쳤다.

순미는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다. 요사이 무리한 탓이였다. 그는 잠시 감았던 눈을 무겁게 뜨고 입술을 옹다물었다. 아래쪽에서 종선이와 태식이 옥련이와 염소를 각각 안아들고 이쪽으로 건너온다.

옥련을 안고나온 태식이 그를 풀밭에 눕혀놓았다. 염소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비발이 조금 성기여진듯 하나 여전히 멎지 않는다.

《옥련아, 정신을 차려, 응.》

순미는 얼굴이 파릿해서 누워있는 옥련이의 어깨를 흔들며 소리쳤다.

그는 자기를 구원하러 온 태식이와 종선의 손길을 느끼는 순간 긴장감이 풀렸던것이다. 잠시후에야 눈을 떴다.

《옥련아, 정신이 드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아무 일 없는듯 몸을 일으켰다.

《염소들이 아직 저쪽에 있는데…》

《걱정말아. 종선동무와 태식동무가 건너갔어.》

그제야 옥련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순미야, 나의 귀염둥이들이… 이젠… 살았어… 살았단 말이야.》

《얼마나 혼났겠니? 넌 그 위급한 속에서도 우량종염소들을 끝내 지켜냈어.》

옥련은 기쁨과 격정에 넘쳐 어깨를 떨었다.

《난 정말 맹꽁이야. 글쎄 저 웃쪽으로 해서 염소들을 끌고가야 했을걸 부디 이 아래쪽으로 몰고올건 뭐니. 〈흰제비〉를 잃었댔으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으니…》

《그만해. 넌 오늘 옳게 행동했어. 풍덕처녀의 용감성을 실천으로 증명했거던. 호호호…》

두 처녀는 쏟아지는 비속에서도 쾌활한 웃음을 한껏 터쳤다. 그러는 사이에 신종선과 김태식이 량쪽겨드랑이에 각각 염소들을 껴안고 무사히 건너왔다. 염소들을 살피며 부지런히 오가는 옥련을 띄여본 김태식이 천성그대로 한마디 시까슬렀다.

《동문 노래만 잘 부르는줄 알았더니 자맥질도 참 잘하더구만.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이 김태식은 어쩌라는거요?》

《흥, 나같은게 뭐 대상이나 되는가요? 동무에게야 너무 많은게 처녀들인데…》

옥련의 대꾸에 네사람은 비속에서도 폭소를 터쳤다.

《자, 옥련동무가 목숨걸고 구원한 염소들인데 빨리 몰고 돌아가기요.》

신종선이 재촉하고는 태식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태식동문 옥련동무를 업고 올것!》

《어마나.》

옥련이 기겁을 하며 순미의 등뒤로 달아났다.

태식은 느릿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앞으로도 업어볼 날이 많겠는데 오늘은 그만두기요.》

비는 그냥 그치지 않고 내렸다. 골짜기엔 온통 물소리뿐이였다. 그들의 웃음소리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높았다. 그 웃음소리에 떠밀리기라도 한듯 비속을 뚫고 달려가는 염소들의 울음소리가 기운차게 골안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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