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5 장

2

 

도예술극장에서는 전국근로자들의 노래경연 참가자격을 위한 경연심사가 한창 진행되고있었다.

심사석에는 도내 음악예술전문가들이 매우 진중하면서도 침착한 자세로 앉아있었고 무대옆 대기실에는 군에서 선발된 출연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있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창밖을 내다보며 발장단을 가볍게 치는 청년이 있는가 하면 두손을 모두어잡은채 바람벽을 마주하고 몸가짐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처녀도 있었다. 오직 류옥련이만은 자그마한 밤색들가방을 품에 안은채 대기실 의자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무대에서는 어느 림산사업소에서 온 혁신자부부의 2중창이 진행되고있었다. 명랑하고 좀 빠르면서도 흥겨운 그들의 노래소리가 옥련의 귀전을 두드렸다. 어찌나 구색이 맞고 잘 부르는지 부러울 지경이였다. 전문성악배우들 못지 않았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도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그들부부는 필경 집에서도 금슬이 좋을거라고도 했고 혼성2중창치고 부부들만큼 호흡을 맞추기는 쉽지 않을거라고도 했다.

《저 사람들은 분명 노래로 인연을 맺었을거예요.》

《그야 물론이지요.》

서로가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고 초면인사를 나누기도 했으나 옥련의 귀에는 그 모든것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무대에서 울리는 노래의 선률에만 신경을 썼다. 이제 자기가 불러야 할 노래의 선률을 마음속으로 더듬어보았으나 어쩐지 가슴이 불안하고 울렁거리는것이였다. 한마디로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그들에 비하면 자기의 기량이 낮게만 여겨졌고 자신심마저 사라져버리는듯 했다. 불안한 마음은 다음사람이 무대에 나서자 더 커졌다.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그 중년사나이는 성량이 풍부하고 높은 소리와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잘 융합시켜 《저기 바다로 가자》하고 자신만만하게 불러대는데 도수산사업소 어로공이라고 했다.

(난 확실히 뭔가 부족한것 같아. …)

옥련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한숨을 내쉬였다.

명백한것은 군문화부 부원이 평가하듯 자기의 목소리가 그처럼 감탄할만큼 수준이 높은것이 아니라는것이였다. 심장이 쿵쿵거리며 무엇인가 고무하는것 같기도 하고 단념하라고 충고하는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할가?… 이제라도 포기해야지 않을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옥련의 안타까운 심정에는 아랑곳없이 또 다른 사람이 무대에 나선다.

편직공장 직포공처녀인데 우아하고 세련된 맛이 있다. 연분홍치마저고리를 입은 몸가짐이 시원스러우면서도 표정이 풍부했다. 겉볼안이라고 외형이 그러니 노래는 또 얼마나 잘 부르는지 대기실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그가 부르는 《녕변의 비단처녀》는 듣기만 해도 흥취가 났다. 모두가 그 처녀를 입을 모아 칭찬하자 옥련은 그만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우리 고향 풍덕땅이 과연 그 어느 림산사업소나 수산사업소, 편직공장보다 못하단 말인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우리 고향이야말로 노래불러 자랑할만 한 훌륭한 곳이지, 거기엔 뜨거운 심장을 고향에 바쳐가는 아름답고 깨끗한 청춘들이 있지 않는가.

비바람이 불던 그날 저녁 떳떳치 못하게 행동했던 때의 일이 불쑥 떠오른다.

순미는 이번에 옥련의 등을 떠밀어보내며 뭐라고 했던가. 우량종염소들의 상태가 좋아졌다고, 당당하게 노래경연무대에 나설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순미야, 고마워…)

옥련은 그 순간 향긋하고 쌉쌀한 풀냄새와 염소들의 비릿한 몸냄새가 풍기는 방목지가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는 떠나올 때 순미가 안겨준 닭알꾸레미가 있는 가방안을 살며시 열고 들여다보았다. 옥련은 고향과 동무들의 기대를 안고 무대에 나서야 할 자기의 존재를 새삼스레 인식했다. 그런데 어째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울고만싶어지는것일가. 이러다 실수라도 하면… 불쑥 김태식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동무가 이런 꼴을 본다면 또 뭐라고 할가. 자기가 곁에 없어서 그런다고 할지도 몰라. 참, 싱겁기란…)

옥련은 능금골을 떠나올 때 도에까지 같이 가서 2중창을 부르고싶다고 하던 그의 목소리가 귀전에 울려와 소리없이 웃었다. 덜퉁스럽고 어찌보면 실없어보이는듯 한 모습이였지만 그때를 더듬느라니 별로 마음이 든든해졌다. 온 풍덕사람들과 동무들모두가 자기를 지켜보며 곁에 있는듯이 느껴졌다.

난 내 고향 풍덕을 사랑해. 사람들모두가 화목하고 산좋고 물맑고… 창조와 랑만, 투쟁의 노래소리 높은 곳, 난 그 땅을 온 세상에 자랑하자고 여기로 온거야. 결코 목청을 뽐내고 평가나 받자고 온건 아니야. …

옥련은 마음속으로 끝없이 속삭였다.

어느덧 《녕변의 비단처녀》를 부른 직포공처녀가 한손으로 연분홍 비단치마자락을 살포시 들고 발깃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무대에서 나왔다.

이어 소개자가 《다음은 삼포군 풍덕리 청년염소작업반 류옥련동무의 노래 〈내 고향〉입니다.》 하고 맵시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옥련은 솟구쳐오르는 감정을 지그시 누르며 무대로 나갔다.

연하게 화장을 한 그의 얼굴은 아련하고 환했으나 촉촉히 젖은 눈굽만은 발깃하게 달아있었다. 객석에 앉아있는 심사성원들을 바라보는 순간 눈굽에 맺혔던 뜨거운것이 반짝 부서졌다. 격정의 파도가 사정없이 가슴을 들이쳤다.

《옥련아, 마음껏 노래를 불러라. 우리 고향 풍덕땅을 소리쳐 자랑하거라.》 하는 웨침과 함께 《옥련아, 침착해. 우리가 곁에 있지 않니. 마음을 푹 가라앉히고 자신있게 어서 불러.》 하는 순미의 속삭임소리가 들린다.

《동무가 그럴줄 알았으면 내가 꼭 따라갔어야 하는건데…》 하는 태식의 시까스르는듯 하면서도 진정에 넘친 목소리도 귀전을 울린다.

옥련은 반주에 맞추어 노래의 첫 소절을 뗐다.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있었다.

 

          뻐꾹새가 노래하는 곳

          사랑하는 내 고향일세

          로동으로 행복을 열고

          로동으로 꽃이 피는 곳

          …

 

옥련의 목소리는 점차 감정세계에 깊숙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는 고향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염소떼 흐르는 푸른 등판과 언덕들, 흘러가는 염소무리속에 서있는 처녀의 모습, 그 처녀는 노래를 부른다. 고향의 노래, 풍덕땅 청년들이 누구나 즐겨부르는 노래다. 그 노래소리에 홀린듯 살찐 염소들이 하나, 둘 모여온다. 처녀는 염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답게 부르며 애무의 손길로 쓰다듬어준다.

새로 일떠서는 염소생산기지, 정다운 일터 청년염소작업반의 모습도 안겨온다. 현대적으로 꾸려진 염소우리호동들, 날아갈듯 한 추녀를 인 합숙, 젖가공실, 콤퓨터조종실, 먹이가공실… 그속에서 처녀총각들의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울려나온다. 그 웃음소리는 그대로 뜨겁고 열렬한 고향에 대한 자랑과 긍지가 한껏 어려있는 노래의 선률이다.

옥련은 그 향토적이고 랑만적인 선률에 흠뻑 몸을 적시고있었다.

 

          …

          아 언제나 좋은 곳일세

          아 내 고향 어머니품아

 

마지막후렴구를 부를 때에는 량쪽팔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면서 춤가락을 펼쳤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얼굴에서 소리없이 뜨거운것이 흘러내리는것을 느꼈다. 그제야 자기가 울고있다는것을 알았다.

어떻게 노래를 끝냈는지 미처 느낄 사이도 없었다.

그가 무대에서 나가려는데 심사석에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옥련동무가 아주 잘 불렀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감정을 살려서 정말 잘 불렀습니다. 고향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막 넘쳐납니다.》

옥련은 환희의 감정에 휩싸여 다시한번 깊숙이 허리굽혀 인사를 한후 무대에서 나왔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무대에서 나온 그를 축하해주었다.

림산사업소의 녀인은 옥련의 얼굴에 물기로 해서 화장얼룩이 조금 생긴것을 보자 자기의 화장수건을 꺼내여 살근살근 지워주며 노래를 정말 잘 불렀다고 칭찬했고 누군가는 풍덕땅의 물과 공기가 좋은 모양이라고 했으며 조금도 마음의 구김살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를 봐서는 집단과 동무들이 참 좋은 모양이라고 한마디씩 해댔다. 《녕변의 비단처녀》를 부른 직포공처녀는 옥련의 연두색치마저고리차림이 그의 몸에 잘 어울린다고 한마디 하고는 손을 살그머니 잡아쥐며 혹시 애인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는가고 속삭이듯 물었다.

(어마나, 애인?…)

옥련의 얼굴이 활딱 붉어졌다. 장난기어린 눈길로 지켜보는 직포공처녀앞에 그만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그렇다고 자기는 아직 애인이 없다는 말을 하고싶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어쩐지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것이 떳떳치 못하게 생각되였다. 얄궂게도 태식이의 얼굴이 또 떠오르는 바람에 옥련은 직포공처녀앞에서 황황히 물러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당황하고 부끄러운 심정을 보이고싶지 않았다. 자기가 마음속에 그어놓은 선밖으로 떠밀칠수록 더 가까이 다가만 서는 김태식이라는 존재가 오늘처럼 두렵고 무서워보이기는 처음이였다.

(아, 난 어쩌면 좋아. …)

그의 가슴은 이상하게 뜨거워오르고 부드러운 감정으로 충만되였다.

도선발경연심사가 끝난 후 옥련은 숙소로 인차 들어가지 않고 해안가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었다. 달아오른 가슴을 식히고싶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당부하던 도예술단의 총각은 나타나지 않았다.

옥련은 그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설사 그를 만난다 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며 어색하고 따분하기 그지없는 순간을 넘길 일이 끔찍하기만 했다. 그 어떤 화려한 환경과 경력이 처녀의 사랑의 조건으로 될수는 없는것이다. 만약 그런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벌써 사랑이기를 그만둔것이다. 자기가 태여나 태를 묻었고 깨끗한 량심과 사랑으로 가꾸어온 고향, 바로 그 삶의 터전에 자기의 소중한 사랑도 있을것이라고 옥련은 굳게 믿고있었다.

류옥련은 그렇듯 가슴에 꽉 차오르는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렬차에 몸을 실었고 다음날 해질무렵에는 배등령마루에 올라서게 되였다.

그는 이마에 내밴 땀방울을 훔치며 그사이 더 아름다와진듯 한 고향산촌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마을앞을 흐르는 풍덕천은 저녁해빛을 받아 금빛은빛으로 반짝이고 새롭게 건설한 방목지의 전경이 손에 잡힐듯 안겨온다.

(그간 동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가? 이제부턴 두몫, 세몫씩 맡아 힘껏 일해야겠어. )

옥련은 마음속에서 출렁거리는 강렬한 사랑의 감정을 놀랍게 느끼고있었다. 순간도 떨어져 살수 없는 고향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애정이였다.

고향은 그에게 아름다운 노래의 선률을 주었고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쳐주었으며 미래에 대한 환희와 사랑의 열망을 북돋아주었다.

그는 나는듯이 배등령을 내렸다. 한시바삐 자기의 귀염둥이들을 안아보고싶었다.

리당과 청년동맹에 들려 출장보고를 한 다음에야 집에 들린 옥련은 오래 지체하지 않고 작업반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큰길까지 따라나서며 도예술단에 있는 청년을 만나봤는가고 은근히 물었다.

옥련은 그런 청년이 찾아오지도 않았으며 만나고싶은 마음 또한 없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그럼 어쩐다는거냐?》

《어머니, 나에게도 이제 훌륭한 총각이 나타날거예요.》

《아니, 뭐?…》

어머니는 어이없어 입을 딱 벌리는데 옥련이는 그냥 깔깔 웃어대며 작업반쪽으로 뛰여갔다.

젖가공실 실내공사를 다그치던 동무들속에서 누군가가 《옥련동무가 온다―》 하고 소리쳤다. 그 바람에 모두가 달려나와 그를 두겹, 세겹으로 에워쌌다.

《그래, 어떻게 됐소? 합격이요, 불합격이요?》

신종선이 성급히 물었다. 그 물음에 옥련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목이 꽉 메여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만에야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말았다.

《옥련아, 도대체 왜 그래?》

뒤늦게 달려온 순미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옥련은 그제야 눈물을 씻으며 머리를 들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불빛에 눈부시도록 아름다왔다.

《동무들, 미안해요.》

그는 동무들을 만나는 순간 극장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올랐던것이다.

《동무들, 난 극장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 염소반을 생각했어요. 지금껏 고향을 위해 투쟁해온 나날들이랑 그리고 귀염둥이 염소들이랑…》

《챠 이런, 그래서 어떻게 됐다는거요?》

《합격되였어요.》

《야!》

청년들이 옥련을 하늘공중에 춰올려던지자고 헤덤비자 처녀들이 아우성을 치며 몰아댔다.

순미는 옥련의 손을 꼭 잡으며 목메인 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옥련아, 축하한다. 너의 노래가 우리를 크게 고무해주더니 드디여 중앙경연에까지 올라가게 됐구나. 우리 고향의 자랑이 또 하나 늘었어.》

그의 목소리는 한껏 젖어있었다.

《자 동무들, 우리 잠간 휴식하면서 옥련동무가 이번에 극장무대에서 부른 노래를 듣는것이 어때요?》

순미가 소리쳤다.

《좋습니다.》

청년들이 와 호응해나섰다.

옥련은 무대에 나서듯 동무들앞에 나섰다.

(고마워요, 동무들!)

그는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옥련은 그동안 보고싶던 정다운 동무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노래 《내 고향》을 부르고 이어 《강성부흥아리랑》, 《붉은 철령》, 《휘파람》, 《준마처녀》 등 반원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련속 부르자 청년들은 《좋다!》, 《좋지!》 하며 덩실덩실 춤판을 벌려놓았다.

잠시후 건설조가 작업을 시작하자 옥련은 능금골로 올라갈 의향을 순미에게 비쳤다.

《그러지 말고 래일 아침에 떠나렴.》

《아니, 난 가야겠어. 귀염둥이들이 보고싶어 막 죽겠어.》

《옥련아, 넌 정말!…》

순미는 능금골에 함께 올라가자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생산절기를 앞두고 염소들의 영양관리와 먹이문제때문에 올라가려던 참이였다.

《우량종염소들의 영양상태가 어떻니?》

《태식동무가 특별히 관심을 돌려서 모두 좋아졌어. 너도 이번에 한번 본때를 보여봐. 주간방목과 야간관리를 다같이 관심해줘. 그래서 이번에 우량종염소들은 한마리도 빠짐없이 다 새끼생산에 참가시키자. 앞으로는 염소무리를 100프로 우량종으로 교체하고. …》

《알겠어.》

그들은 끝없이 속삭이며 능금골로 올라왔다. 방목공들의 보금자리인 야외천막은 조용한데 염소우리쪽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야?》

옥련이 근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소연하던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그들의 발자국소리에 놀란듯 조용해졌다. 맑고 청신한 밤공기가 페부를 자극했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불빛이 흘러나오는 우량종염소우리쪽으로 달려갔다. 통나무를 쌓아 지은 염소우리 뙤창문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등불을 켜든 김태식이 한 방목공청년과 함께 크고 실한 두마리의 큰 염소와 세마리의 새끼염소를 애무하며 먹이를 주고있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두 처녀를 깜짝 놀래웠다.

《〈흰제비〉가 새끼 세마리까지 척 거느리고 나타났다는걸 옥련동무가 알면 너무 기뻐서 울거요.》

《태식동무가 수고했지요 뭐. 현봉, 현락, 금봉… 몇개 농장 방목지들을 몽땅 훑었으니 이렇게 찾았지 어림이나 있어요? 반장동무한테 빨리 보고해야지요.》

순미와 옥련이는 너무 기뻐 우리안으로 뛰여들어갈 생각도 잊고 멍하니 서있었다.

옥련이 먼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으면…

《옥련아, 어서 들어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염소우리 출입문이 열렸다.

《누구요, 이 밤중에?》

등불이 확 비쳐졌다.

《아니, 반장동무가?…》

태식은 순미의 옆에 쭈그리고앉은 옥련을 알아보고는 별안간 껄껄 웃었다.

《범이 제소리하면 나타난다더니 옥련동문 혹시 범이 아니요?》

《태식동무, 정말 고마워요.》

옥련은 입속말로 한마디 중얼거리고는 염소우리안으로 달려들어갔다. 《흰제비》를 확인이라도 하듯 목에 달린 방울부터 만져보고는 《딸―랑.》 하고 울리는 방울소리에 활짝 웃음을 머금었다.

《끝내 나타났구나, 나타났어. …》

뿔을 만져보기도 하고 흰털을 쓸어보기도 하는 처녀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마치 헤여졌던 자식들을 다시 만난 어머니의 모습이구만. 참, 극적인 상봉이요.》

뒤따라 우리안으로 들어온 태식이 감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옥련은 희고 깨끗하고 귀엽게 생긴 세마리의 새끼염소들을 차례차례 안아보며 그냥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태식은 며칠동안 애쓰던 끝에 풍덕땅 아래쪽에 있는 금봉농장 염소방목지에서 《흰제비》와 그 암것이 낳은 세마리의 새끼염소를 찾아낸 사연을 순미에게 이야기했다. 그곳 염소방목공들은 《흰제비》가 풍덕청년염소반것인줄 짐작하고 돌려보내려 했었는데 암것이 당장 새끼를 낳아야 할 처지여서 그냥 남겨두고 새끼를 받았다는것이다.

그들은 풍덕청년염소반이 몰라보게 변모되고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왕이면 염소들을 앞세우고 구경을 가자던 참이였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이예요. 후날 만나면 단단히 인사를 하자요.》

순미는 새끼염소들을 한아름에 품어안으며 말했다.

《옥련아, 오늘은 정말 기쁜 일만 생기는구나. 도예선경연에서 당선되였지, 애타게 찾던 〈흰제비〉가 이렇게 나타났지. 태식동무한테 귀잡고 절이라도 해야지 않겠니?》

순미는 가슴에 차오르는 기쁨에 호호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옥련이 다투기라도 할듯 태식이한테 바투 다가서는것이였다.

《동문 도대체 뭐예요? 〈흰제비〉를 어데다 감췄다가 이제야 가져왔는가 말이예요?》

《어마나. 옥련아, 넌…》

순미가 깜짝 놀라 태식을 쳐다보는데 그와 방목공청년은 재미있다는듯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동무말이 옳소. 내가 감추었댔소. 다섯마리나 되는걸 여기 심장속에 감추고있자니 뻐근하더구만.》

옥련은 그의 너스레에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뛰여나갔다.

《태식동무, 옥련이 심정을 리해해줘요. 너무 기뻐서 저러는거예요.》

《반장동무, 처녀들은 기쁘면 다 저러오? 그 표현방식이 너그럽지 못하구만.》

순미는 웃으며 태식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냈다.

태식은 능금나무아래에 그린듯 서있는 옥련이곁으로 다가갔다. 순미가 오는줄 알고 돌아서던 옥련은 새침한 표정으로 다시 등을 돌려댔다.

《옥련동무, 동문 참 울보로구만. 모름지기 아이때부터 잘 울었을거요. 울보들이 커서 노래를 잘 부른다고 했으니까. …》

옥련은 대꾸를 안했다. 생각같아서는 고맙다는 말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하고싶었다. 하지만 그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고싶지 않았다.

(이 동무가 원래 이런 사람이였던가?…)

《이번에 도예선에서 합격된걸 축하하오. 물론 이 김태식이의 얼굴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을테지만…》

옥련은 얼굴을 가리웠던 손을 내리웠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동문 점쟁인가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허허허… 동무 얼굴에 다 씌여져있는데 왜 모르겠소. 이 김태식의 얼굴을 생각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합격될수 있었겠소. … 동문 아마 우리 고향을 그려보며 진심으로 노래를 불렀을거요.》

《옳아요. 모든것이 떠올랐어요, 이 세상 귀중한 모든것이…》

옥련은 그앞에서 난처한 처지에 빠질것만 같아 순미의 웃음소리가 울리는 호동쪽으로 달려갔다.

태식은 허겁지겁 달아나는 처녀의 뒤에 대고 껄껄 웃었다. 크나큰 행복감이 밀물처럼 쓸어들었다.

청춘이란 이렇듯 벅차고 환희롭고 즐거운것인가. 오, 나의 청춘, 나의 고향, 나의 사랑이여. …

그는 왜서인지 자꾸 웃고만싶어졌다. 그의 웃음소리가 능금골의 밤대기를 흔들었다. 어느 염소우리에선가 여러마리의 염소들이 동시에 《메―에》 소리를 낸다. 김태식이 맡아 방목하는 염소우리호동이였다. 주인의 웃음소리를 알아들은 염소들의 화답소리였다.

그 소리에 그는 다시금 환희에 넘친 웃음을 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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